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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 혼돈을 흩뿌리는 자 - 41앱에서 작성

일본어잘하고싶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02.25 04:12:18
조회 384 추천 12 댓글 14
														





나자릭 종복들에겐 소위 ‘지고의 존재들의 위대한 회의’라고 불리우는 아인즈와 이자벨의 담소 시간. 나자릭의 일원들은 두 지고의 존재들 외엔 절대 접근이 불가능한 이 시간에 두 지배자께서 나자릭과 세상을 향한 엄청난 계획을 나누고 있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물론, 실상은 그저 영양가 없는 유치한 대화가 8할을 차지하는 ‘얼렁뚱땅 나자릭 이끌기 회의’ 정도가 맞겠으나 적어도 오늘부터는 다르다고 볼 수 있겠다.


‘이야.. 세계정복이라니. 설마하니 정말 내가 세계정복을 목표로 하게 될 줄이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평범한 샐러리맨이었던 내가..’


설마하니 일전에 이자벨과 일탈을 했을 때 재밌자고 빈말을 해댔던 것이 실제가 되게 될 줄 아인즈라고 알았겠는가. 아마도 그 자리에 있었던 이자벨이나, 머리가 좋은 데미우르고스로서도 몰랐을 것이라고 아인즈는 확신했다.
그는 슬쩍 홍차에 설탕을 쏟아붓고 있는 이자벨의 모습을 흘겼다. 묘하게 긴장하고 있는 자신과 다르게 이자벨은 살짝 미소 지은 평소의 모습 그대로였다.


“크흠, 큼.. 그럼 이자벨 씨? 세계정복이라는 거창한 목표가 생기긴 했습니다만 어떤 것부터 시작하는 게 좋을까요?”

“음, 그렇네요. 꿈은 큰 게 좋다지만 너무 커서 어떤 것부터 시작해야 할지 갈피가 안 잡힐 정도에요. ...으음, 단순히 정복이 목적이라면 당장 주변국 정도는 어렵지 않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리 에스티제 왕국 정도라면 변수가 없다는 전제 하에 계층수호자들 선에서 손쉽게 정리되겠죠.”

“확실히.. 모두에게 월드아이템도 들려줬으니 갑자기 스물이라도 튀어나오지 않는 한 문제는 없겠네요. 어디 플레이어라도 숨어있다면 또 모르겠지만.. 왕국에 그런 저력을 숨겨 둘 여유가 있다고 생각되지는 않구요.”


하지만 이내 아인즈는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왕국을 그런 식으로 정복했다간 후차적인 문제가 많아져요. 일단 다른 국가들은 물론이고 어디 숨어있을지 모르는 강자들의 경계를 받을 겁니다.”

“동의해요. 애초에 우리는 우리 나자릭과, 언젠가 또 올지 모르는 동료들을 위한 낙원을 만들기 위해 세계정복을 하기로 결정한 것이었잖아요? 단순히 힘으로 지배해버린다면 세상은 지옥이 되어 버릴테죠. 그런 모습을 동료들에게 보여줄 수는 없어요.”

“흠, 그런 일단 어떤 식으로 정복할지, 또 정복한 땅을 어떤 식으로 관리할지에 대한 방향을 정하는 게 중요하겠네요.”


아인즈의 말에 이자벨은 일전부터 꿈꿔오던 그녀만의 목표를 떠올리며 미소지었다. 그녀의 꿈은, 그녀와 나자릭이.. 아인즈와 동료들이 결코 부정 당하지 않을 완벽한 세계를 만드는 것. 인간이었다면 불가능할 목표였겠지만 아인즈와 이자벨은 이형종으로, 수명이 없어 아주 오랜 시간을 공들여 이 세상에 군림할 수 있었다. 당장 육대신이라는 수백년 전의 인간 플레이어들도 엉겹의 시간을 거쳐 아직도 신으로 국가에 군림하고 있지를 않은가. 수명도 없는 아인즈와 이자벨이라면 전 세계에 군림할 수 있다고 해도 헛소리는 아니리라.
그 목표를 위해서라면 그녀의 잔인한 취미는 잠시 넣어두어야 한다. 이자벨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대답했다.


“...제 생각에는.. 될 수 있으면 온건한 방향으로, 이를테면 고통과 환난에 빠진 왕국을 구원한다..는 느낌이면 좋지 않을까 해요.”

“-에, 의외네요, 이자벨 씨! 이자벨 씨라면 무조건 학살을 일으키자고 말할 줄 알았습니다만!”

“물론, 그렇게 하고 싶긴 해요!!”

“예..? 아니- 이자벨 씨, 요즘 들어 더 악마 같아진 거 알아요? 중 2병이 실제가 되어버렸어!”


아인즈의 외침은 말 그대로 사실이었다. 어쩐지 경성경국 사건 이후로 이자벨의 행태는 인간의 내면을 완전히 벗어던지듯 더욱 더 잔악해지고, 가차 없어졌다. 말 그대로 악마. 그녀는 다시 태어난 듯 했다.
역시나, 이자벨은 금세 그 표정을 악마의 것으로 바꾸며 음흉한 웃음소리를 흘리기 시작했다.


“후후후... 자고로 악마란 원래 학살을 좋아하는 법이랍니다..? 아, 아니다! 죽이지 말고 전부 생포해서 다 같이 즐겁게 놀아보는 건 어때요?”

“아, 아뇨아뇨- 이자벨 씨 의견에 저도 동의합니다! 되도록 온건한 방향으로 설계해보도록 하죠! 우리 나자릭이 세상에 당당히 설 수 있도록!”


아인즈가 기겁하며 손사래를 치자 이자벨이 즐거운 웃음소리를 터트렸다. 아인즈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불만스런 목소리를 토해냈다.


“하여간 맨날 놀리기나 하고 말이에요..”

“아, 미안해요. 매번 반응이 너무 재밌어서 그만.. 흠흠, 그래서 아까의 이야기 말인데요, 우리가 목적을 제시하기만 하면 방법은 나자릭의 아이들이 만들어 줄 거에요. 그럼 우리는 그 계획을 듣고, 거슬리는 부분은 수정해서 보완하는 겁니다. 어때요?”

“이자벨 씨 말대로 잘 풀리면 다행입니다만..”


아인즈는 확신 없는 모습으로 말을 흐렸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의 지고의 존재께서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라는 수호자들의 일념 하에 나자릭의 제대로 된 계획조차 듣지 못한 것이 이미 여러 번이기 때문이었다.


“걱정 마요, 모몬가 씨는 거절하지 못하지만- 만약 이상한 계획이 나온다면 제가 뒤엎어버리면 되니까요! 봐요, 모몬가 씨는 매일 제멋대로라면서 잔소리하지만 제 이런 성격이 또 도움이 될 때도 있다구요?”

“예, 예, 대단하시네요. 이야, 이자벨 씨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에요. 제멋대로 버프가 이런 데에서 유용할 줄이야. -그럼 자세한 내용을 정한 후에 다음 회담에서 모두에게 발표하는 것으로 할까요.”

“좋아요. 일단 이 수첩에다 적어보도록 해요.”


그렇게 세부적인 사항까지 조정하자 당장의 할 일은 끝이 났다. 솔직히 말하면, 알베도나 데미우르고스 같은 지장들이 입안한 작전들을 보지 않으면 이런 국가 규모의 계획에는 무지한 아인즈나 이자벨로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잠시 잡담을 나누던 와중 이자벨이 생각났다는 듯이 손가락을 들어올렸다.


“아, 그리고 중요하게 할 말이 있어요, 모몬가 씨.”

“중요하게 할 말이라니, 이자벨 씨가 그런 말 하면 굉장히 불안해져요. 또 뭔가 사고를 쳤다던가, 칠 계획이라던가, 그런 거 아니죠?”

“에이, 제가 언제 그랬다고. 이번에는 아니에요, 그런 거.”


아인즈의 의심스럽다는 눈초리에도 불구하고 이자벨은 꽤나 진지한 모양새로 입을 열었다.


“-힘으로 지배하는 게 아니니까 앞으로 정복을 하고, 정복지가 국가 단위로 커지게 되는 데에는 시간이 좀 걸리겠죠. 그때가 도래하기 전에, 국가를 관리하는 법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알아 두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웬일로 정상적인 말을... 사실 저도 그 생각을 하지 않은 건 아니에요. 하지만 이자벨 씨도 알다싶이 저는 기본 교육만을 겨우 이수했거든요.. -군주론이라던가, 아슈르바니팔을 뒤져서 어떻게든 교재는 찾는다고 해도, 제대로 이해할 자신이 없어요. 어디서 배울 데도 없고..”


아인즈의 자신 없어보이는 대답에 이자벨이 얼른 악마의 눈을 번쩍 빛냈다.


“-배울 데가 없긴 왜 없어요! 세 명이나 있구만!”

“에..? 누굴 말하는 거에요? 설마...... 그 세 명이란 거- 알베도, 데미우르고스, 판도라즈 액터 녀석들을 말하는 건 아니죠?”

“-정답!”


이자벨의 말에 아인즈는 크게 당황하고 말았다. 아무리 그 셋이 나자릭의 지장들로 불린다지만, 설마 수호자들에게 공부를 배울 생각을 하다니.. 아니 뭐, 솔직하게 말하자면 맨날 주변인을 놀릴 궁리만 하던 이자벨이 공부를 하겠다고 말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다행인 일이기는 했지만 너무나 갑작스러웠다. 게다가 나자릭의 종복들은 아인즈와 이자벨을 전지전능한 신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갑자기 ‘사실 아무것도 모르니 너희가 가르쳐라’라고 말해도...


“-라고 생각하고 계신 것, 알고 있습니다!”

“에, 예..?”


자신의 걱정들이 이자벨의 입에서 줄줄이 나열되는 것에 아인즈의 붉은색 동공이 흐려졌다 밝아지기를 반복했다. 아마도 당황했다는 뜻이리라.
한 편, 아인즈의 소심한 성격을 알고 있던 이자벨은 진작부터 준비해 두었던 말들로 그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자기주장이 좀처럼 없는 아인즈를 상대로서는 그녀가 주장을 밀어붙이는 것만으로도 앞으로의 계획을 바꿀 수 있었지만 아무리 악마라 그래도 동료를 상대로 그렇게까지는 하고 싶지 않은 법이다.


“모몬가 씨,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아요. 굳이 수호자들을 납득시킬 필요는 없어요. 오히려 우리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나게 기뻐할 테니까요.”

“-...그건 확실히 그럴 것 같지만..”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서 느낀 게 많아요. 나자릭의 아이들이 우릴 얼마나 위하고, 사랑해주고 있는지를 말이에요. -전 드디어, 확신하게 된 거에요. 얼마나 기쁜 일인지..”


자신이 구원받았던 그 순간을 떠올리자, 마치 사랑에 빠진 소녀처럼 이자벨의 뺨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그러나 곧 아인즈의 시선을 의식하곤 헛기침을 하며 주의를 환기하는 것이다.


“그래도 거리낀다고 한다면, 수호자들을 납득시키는 건 제가 어떻게든 해 볼게요. 모몬가 씨는 정하기만 해요. 알베도, 데미우르고스, 판도라즈 액터 중 누가 좋으신가요? 전 상관 없으니까!”

“아, 에- 그냥 이 녀석들에게 배우기로 결정되어 버린 건가요..?”

“하지만 이 아이들이 아니면 달리 방법이 없는걸요? 자자, 알베도는 어때요?”

“-아, 알베도요..?”


무엇을 상상한 것인지 아인즈의 동공이 급속도로 흐려졌다. 그리고 오색찬란한 효과가 그의 전신에 일렁이기를 몇 번이고 반복했다.


“알베도랑 단 둘이서 과외인 건가요..? -무, 무서워 그거... 의도한 것 말고 다른 걸 가르치려고 들 것 같아...”

“아... 아아.. 맞네요, 무슨 뜻인지 이해해버렸어. 나도.. 알베도는 좀 그럴지도..”


얼마 전에 있었던 여자회에서 하루 종일 추근덕대던 알베도의 모습을 떠올린 이자벨의 표정도 복잡미묘해졌다. 이자벨은 매우 정상적인 취향을 가진 이성애자였다. 변태는 싫었다.


“그, 그럼, 데미우르고스는 어때요?”

“...데미우르고스요..?”


그러자 또 무슨 생각을 한 건지 다시금 아인즈의 전신에 찬란한 빛깔이 서렸다.


“그 녀석, 절 엄청난 대천재로 알고 있다구요? 초졸인 내 학습 수준은 전혀 배려해주지 않은 채로 어마무시하게 가르치려고 들 것 같아! 알베도와는 다른 의미로 무서워요! 알아듣지 못하는 절 보면서 ‘이것도 무언가 진정한 의미를 가지신 게 아닐까’ -하면서 해석하려고 들 것 같다구요!”

“음, 모몬가 씨가 싫다니 어쩔 수 없네요! 저는 그런 면에서는 면역이 있으니까 어.쩔.수.없.이 데미우르고스에게 제 선생님을 부탁해야겠어요.”


이자벨의 안색이 묘하게 밝아진 것에 아인즈는 눈을 가늘게 떴다.


“...어쩐지 기뻐보이시는 데다 여럿 강조점이 들어가 있는데 기분 탓일까요.”

“큼- 네, 기분 탓일 겁니다, 분명! -어찌 되었든! 그럼 모몬가 씨는 판도라즈 액터로 확정이네요.”

“..판도라... 그 녀석도 좀..”

“그럼 역시 알베도한테 받을래요?”

“판도라 녀석한테 받겠습니다.”


서큐버스에게서 정조를 지키고 싶은 언데드의 선택은 칼 같았다.


“음, 셋 다 어느 분야든 탑 클래스의 지식을 가지고 있을 것 같긴 하지만.. 굳이 따지자면 셋의 강점은 각각 내정, 군사, 재정이겠네요.”

“그러고보니 모몬가 씨도 위그드라실 시절에는 길드의 재정을 맡아서 관리해주셨죠? 역시 창조자! 판도라와 똑 닮았네요!”

“..그 녀석과 닮았다고 말씀하셔도 별로 기쁘지 않습니다만.. 뭔가 길드에서 했던 일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하니 조금은 부담이 덜한 느낌이네요.”

“그럼 일단은 각자의 강점을 가르치라고 해 볼까요. 그럼 저는 군사학이라거나 방위를 배우게 되겠네요.”

“으, 이자벨 씨- 엄청 어려워 보이는데요? 흠, 그럼 저는 재정이겠군요.. 녀석들에게 부탁해서 각자 배운 것을 일주일에 한 번 있는 회의 시간에 공유하는 것으로 할까요.”


무엇이 기대되는 것일까. 이자벨은 흥분한 모습을 감추질 못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리얼에서 배우지 못한 것에 한이라도 있는 것일까. 아니면 의외로 학구열이 높은 편..? 아인즈는 알 수 없어 속으로만 의문을 삼켰다.


“좋아요! 그럼 두 수호자에게는 언제 말하는 걸로 할까요? 마침 데미우르고스가 지금 나자릭에 있거든요. 그는 외부 임무로 나가 있는 시간이 긴 만큼 있을 때 말해두는 편이 좋다고 생각합니다만!”

“......이자벨 씨, 평소에 수호자들의 소재를 파악해두고 있는 거에요? 아니면 또 악마는 정장! -이러면서 데미우르고스를 괴롭히고 있는 걸까요.”

“후후~ 그건 어느 쪽일까요! 그럼 메이드를 시켜서... 아니, 판도라는 보물전에 있을테니까 전언으로 부르도록 할까요!”


‘묘하게 굉장히 신나보이네, 이자벨 씨. 또 수호자들을 놀릴 생각을 하고 있는 거려나..’


아인즈는 얼마 전, 이자벨이 마레에게 침대 밑에서 기어나온다는 괴물에 대한 괴담을 들려준 탓에 ‘괴물은 이 아인즈가 전부 처리했다며’ 잠 못 드는 마레를 달래주었던 것을 떠올렸다. 그런 의미에서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전언을 거는 이자벨의 모습은 그에겐 불안한 것일 수밖에 없으리라.



***



“제 7계층 수호자- 데미우르고스, 지고하신 주군들의 앞에.”

“보물전의 영-역 수호자이자, 아인즈 님의 유일한 창조물! 판도라즈 액터, 지고하신 창조주 앞에.”


데미우르고스의 한없이 경건하며 신사적인 인사에 이어 오버액션이 매우 가미된 판도라즈 액터가 무릎을 꿇자 그 갭 차이는 평소보다 더 크게 느껴지는 듯 했다. 아인즈는 벌써부터 피로가 노도처럼 밀려오는 것을 느끼며 제 미간을 손가락으로 꾹 눌렀다.


“아아, 그래. 잘 와주었다, 데미우르고스, 그리고 판도라즈 액터여.. 너도 건강한 듯 해 보이는구나. 갑작스러운 부름에도 응해준 너희의 충성에 감사하지.”

“감사라니, 이 몸은 지고의 존재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 필요하신 대로 불러주신다면 그것이 나자릭 모든 종복들의 기쁨일 것입니다.”

“데미우르고스 공의 말씀 그대로입니다. 이 부족한 몸으로나마 두 분의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이 판도라즈 액터! 언제든 이 한 몸을 바칠 것입니다.”


이어서 두 수호자가 깊게 고개를 숙이는 모습을 본 이자벨이 미소지으며 입을 열었다.


“너희의 충성은 잘 알았다. 그럼 안심하고 본론으로 들어가도록 하지. 내용은 간단하다. 앞으로 너희가, 우리 둘의 교육을 맡아주었으면 한다.”

“...!!? 교, 교육이라니-, 송구하지만 자세히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역시나 데미우르고스에게서 동요의 기색이 일었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뻥 뚫린 듯한 판도라즈 액터의 얼굴에서는 일체의 생각도 읽어낼 수가 없었다. 우선 아인즈는 설명이 필요하겠다고 판단했다.


“일전에 나자릭의 지표 부근에서 네가 우리의 호위를 맡아준 적이 있었지. 머리가 좋은 너라면 기억할 거라고 생각한다만, 우리가 그 때 ‘세계정복’에 대해서 이야기 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느냐, 데미우르고스?”

“-예, 황공하게도 두 분의 세상을 향한 광대한 배포를 들을 수 있어 더없는 영광이었습니다. 헌데 지금 그 이야기를 꺼내신다는 것은 역시 이자벨 님께서 말씀하신 ‘교육’이라는 것과 두 분의 세계정복에 대한 계획이 관련이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에, 설마 그거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있던 거야?’


무언가 납득시키기 위해 아인즈와 이자벨의 새로운 목표인 ‘세계정복’에 대해 설명해주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데미우르고스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이미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금세 끄덕였다. 아인즈는 내심 당황한 감정을 숨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ㄱ-과연, 바로 우리의 진의를 파악했구나, 데미우르고스.”


거기까지 말하곤 아인즈는 이자벨에게 다음 말을 넘겨받으라는 무언의 눈빛을 보냈다.


‘이자벨 씨가 어떻게든 납득시킨다고 했잖아요! 어서 설명하세요!’


아인즈의 압박이 섞인 듯한 눈빛에 미소 지은 이자벨이 말을 넘겨받았다.


“우리는 그동안 동료들과 함께 분담하여 나자릭의 전반적인 통치를 이루어냈다. 너희도 그 점은 알고 있을 테지.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나자릭 내부.. 길드에 한정된 통치일 뿐, 거점 이외의 지역은 정복하여 통치한 경험이 전무할뿐더러 그렇게 할 이유 또한 없었다. 하지만 앞으로 세계정복을 위해 외부의 세력들과 접촉하고 지배한다면 그에 대한 지식 역시 필요해진다.”

“설마...”

“꽤 놀란 듯 해 보이는군. 네 설마가 아마 맞을 것이다, 데미우르고스. 우리는 어떤 집단을 통치하는 데 있어서 학문적 지식이 전무하다. 따라서 너희를 통해 새로이 배우고자 하는 것이지.”


‘학문적 지식이 전무’하다는 말에 데미우르고스는 꽤나 혼란스러워 보였다. 그야 지금까지의 그의 행적을 살펴보자면 그에게 아인즈와 이자벨은 모든 것을 알고 있고 수호자들의 모든 생각을 꿰뚫어 보는 전지전능한 존재였을 터였다. 지성이란 것에 큰 가치를 두는 그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것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데미우르고스의 단아한 얼굴에 여러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학문적 지식’... 설마 그런 것이었던 것입니까?”

“응..? 어? 데미우르고스?”

“-..허?”

“설마 학문의 도움 없이도 이 거대한 나자릭을 통치하실 수 있으실 줄이야..”

“-..과연, 데미우르고스 공의 심경에 격하게 공감하는 바입니다. 학문의 도움을 받지 않으셨다는 것은 0부터 시작하셨다는 것과 다를 바가 없지요. 정말이지.. 학문적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도 이토록 완벽한 통치를 선보이시다니... 역시 지고하신 분!! 역시 이 판도라즈 액터를 창조하신! 으아아인즈 님!!”


데미우르고스의 깨달은 듯한 반응에 이어 판도라즈 액터의 감탄까지. 아인즈는 당황한 마음에 이자벨을 쳐다보았고 이자벨은 어찌되었든 잘 풀린 것이 아니냐는 듯한 반응으로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하지만 아직. 이 천재들과의 줄다리기는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어째서 학문을 채용하지 않으신 것입니까? 두 분의 위대하신 지성이 학문과 결합된다면 더욱이 최고의 효율을 발휘할 것인데..”


데미우르고스의 질문에 아인즈는 말문이 막히는 것을 느꼈다. 만약 그가 아인즈와 이자벨을 자기개발도 하지 않는 게으른 상사로 여겼다면 최악이다. 원래 나쁜 상사 중에서도 게으른 상사가 최악인 법이었으니.
아인즈는 구원의 바람을 담아 이자벨을 쳐다보았지만 그녀는 되려 정면돌파를 택했다.


“-알아야 하나?”

“...예..? 송구합니다?”

“우리가 그것을 알아야 하나? 너희가 있는데. 우리가 그걸 일일이 공부할 작정이었다면 너희를 안 만들었지.”


이자벨이 태연하게 대답하자 데미우르고스가 안경 너머에서 크게 뜬 보석안을 빠르게 깜빡였다. 푸른 보석안의 빛이 반짝였다가 눈꺼풀에 가려지기를 반복했다. 판도라즈 액터도 무엇인가 감격한 듯이 고개를 숙인 채로 부르르 떨었다.


“미천한 저희의 존재의의를 위해서 지식의 획득마저 마다하시다니.. 이 어찌나 자비로우신 모습이란 말입니까..”

“...에, 그게 그렇게 되는 거야..?”

“허, 이 정도면 무슨 짓을 해도 좋게 받아들여 주겠는데?”


두 지배자는 절로 터져나오는 중얼거림을 참지 못했다. 특히나 아인즈는 이쯤 되면 진심으로 데미우르고스와 판도라즈 액터의 머릿속에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그 머리를 열어서라도 알고 싶을 정도였다.


“-ㄱ, 과연 나자릭의 지장들이라 칭할만 하구나, 데미우르고스. 그리고 판도라즈 액터여. 우리의 진의를 단숨에 간파하다니. 지금껏 우리의 진심을 이토록 잘 알아준 이가 없었다. 너희의 혜안에 감사하지.”

“-아닙니다. 오히려 그 위대하시고 자비로우신 생각의 일면이라도 발견할 수 있어 이 데미우르고스, 굉장히 감복하였습니다.”

“지고의 존재들께서는 말 그대로 그 생각 하나하나도 지고하심을 깨달았습니다!”


두 지장이 열과 성이 넘치는 모습으로 대답하자 아인즈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엄청나게 기가 빨린 느낌이다. 대화한지 10분밖에 되지 않았건만 언데드의 정신을 이토록 너덜너덜하게 만들 수 있다니 어쩌면 아인즈가 모르는 어떠한 특수능력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는 진심으로 의심이 들었다.


“그럼 너희도 이해한 것 같으니 너희가 지금 나자릭에서 맡고있는 업무- 즉, 재정과 군사에 대한 학문적 지식을 우리에게 전수해주었으면 한다. 앞으로 우리의 목표인 세계정복을 위한 것도 생각해서, 쉬운 것부터 시작해 되도록 깊이를 넓혀주었으면 좋겠군. 판도라즈 액터, 너는 길드장을. 데미우르고스, 너는 이 몸의 선생이 되어주어야겠다.”

“...지고하신 분들의 선생이 된다니......”


감동해야 하는 것인지 불경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것인지.. 두 수호자의 반응이 복잡미묘해 보였다. 하지만 확실하게, 엄청난 영예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너희가 어떻게 받아들이던지 이것은 명령이다. 너희 둘 다, 일주일에 1회씩. 주기적으로 시간을 내어 보도록. 어디까지나 업무에 지장이 가지 않을 정도로 조정이 필요하겠지만 이쪽에도 신경을 써주지 않으면 곤란하다. 이렇게나 제대로 무언가를 배워보는 것은 우리에게도 꽤나 오랜만이거든.”

“-이, 이자벨의 말대로다. 되도록 아주 기초적인 것부터, 차근히 시작하면 좋겠구나. 달리 시간이 촉박한 것은 아니니.”


어쩐지 상황이 수호자들이 아인즈와 이자벨의 지성에 더욱 감탄하는 모양새가 되었기 때문에 아인즈는 재빨리 밑밥을 깔았다. 똑똑해 보인다고 해서 엄청난 양의 지식을 한 번에 쏟아부어짐 당하는 것은 사양이다. 뇌의 용량이 초과해버린다. 애초에 뇌는 없는 언데드지만 걱정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불초 데미우르고스, 감히 부족한 능력으로나마 노력해 보겠습니다. 이자벨 님, 과분한 영광을 누리게 해 주시어 황공할 따름입니다.”

“오오, 위대한 창조주이시여! 당신의 유일한 창조물, 판도라즈 액터! 아버님을 위해서라면 가시밭길도 감수할 것입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열의가 넘쳐 보이는 두 지장의 모습에, 아인즈는 불안해지는 마음을 어찌하지 못했다.


‘어쩌면 제 무덤을 제가 판다는 말은 여기에 쓰이는 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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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글을 쓰면서 대사가 너무 많다거나, 설명이 너무 많다거나.. 둘이 비율이 안맞으면 마음에 안드는 병이 있어.
이번 편은 대사가 많은 편이야 그 말은, 마음에 안든다는 거지

내 팬픽은 내가 오버로드를 읽으면서 문제라고 생각했던 부분이나 답답했던 점을 시원하게 만들기 위해 시작했어! 아인즈와 이자벨의 통치 공부도 그런 부분의 일환이야!


...근데 나 너무 글 못 쓰는 것 같아 어떡하지.. 현타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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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단 것을 먹으면 무심코 몽글몽글해지고야 마는 혼돈의 악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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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63 설문 시세차익 부러워 부동산 보는 눈 배우고 싶은 스타는? 운영자 24/05/2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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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497 공지 204% 즐기는 오버로드 (2022.08.06 업데이트) [19] 군단락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04.11 58334 60
79202 공지 스마트폰 게임 [Mass for the Dead] 번역 모음 [13] 군단락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9.06.12 27492 51
143823 공지 애니 유입들이 자주 하는 질문들 [8] ㅇㅇ(125.182) 22.10.21 6439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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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167 그림 AI 애니작화 느낌 알베도 [4] 소테츠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9:00 59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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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165 일반 어느정도보다가 "완결나면 봐야지"했던 라노벨이 [3] 오갤러(1.213) 05.29 13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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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163 일반 흡혈희 봤는데 ㄹㅇ 첫 스타트가 중요하네 [1] 오갤러(220.93) 05.29 117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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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160 일반 이게 고작 탱커다운? 스킬 정도냐? [8] 꾸꾸루삥뽕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5.29 186 0
153159 일반 이렇게 욕할정도로 이게 쓰래기 능력임? [14] 꾸꾸루삥뽕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5.29 270 2
153158 일반 용인이랑 인간은 교배가능한가?? [7] ㅇㅇ(61.97) 05.29 125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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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150 일반 17권 아직도 안나온거 실화냐? [3] 오갤러(1.213) 05.28 119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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