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간 - 여담>
이자벨을 수행하기 위해서 카르네 마을에 갔다 온 데미우르고스는 그 이후 옥좌의 홀에서 진행되었던 회합을 통해 이자벨이 일전에 그에게 내렸던 명령을 완수해냈다. 그리고 며칠 후, 그는 자신의 부탁을 들어준 이자벨에게 감사를 표하고 명령 완수의 보고도 겸하기 위해 일찍이 이자벨을 담당하고 있던 메이드를 통해 알현을 허가 받아 둔 상태였다.
약속 시간보다 더 일찍 이자벨의 개인실 앞에 도착한 그는 곧 익숙한 존재를 발견했다.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휘하에 있었던 인물이자 그가 이자벨에게 붙여 준 근위대의 통솔자인 탐욕의 마장- 마몬이었다. 데미우르고스를 발견한 마몬 역시 다가오는 그에게 목례하여 예를 갖추었다.
“데미우르고스 님, 안그래도 오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오랜만입니다, 마몬. 호위는 잘 하고 있는 겁니까? 분에 넘치게도 손수 이름까지 내려주신 존체께 무례를 저지르고 있진 않겠지요?”
“그, 그런…! 그런 일은 결코 없었고, 또한 앞으로도 없도록 최선을 다 할 것입니다!”
“예, 당연히 그래야만 합니다. 그러나 최선보다 중요한 것은 완벽이라는 사실을 항상 잊지 말도록 하십시오.”
“명심하겠습니다! 그럼, 지금 방문을-”
“아뇨. 정시에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자신의 방문을 알리려는 마몬을 제지하며 데미우르고스는 자신의 왼쪽 손목에 감긴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그가 일부러 일찍 온 탓에 아직 10분 정도의 시간이 남아있었다. 그는 남은 10분 동안 스스로의 상태를 점검하고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그리곤 또다시 이자벨의 앞에서 당황하는 불경을 저지르지 않도록 정신에 만전을 기했다. 하지만 얼마 전, 그녀가 자신을 일부러 놀리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 차였기에 또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그로서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알현시각 정각, 데미우르고스의 방문을 알리는 메이드의 목소리에 뒤이어 짧게 그 요청을 허가하는 이자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고의 존재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그의 심장이 뛰고 마음에 기쁨이 차올랐다. ‘그저 가진 것을 다 바쳐 한 없이 경애하고 싶다.’ 그 단순한 본심이 뛰어난 지모와 복잡한 생각을 가진 그를 움직이는 유일한 행동 원리였다.
“제 7계층 수호자, 데미우르고스. 존귀하신 주군을 뵙습니다.”
“어서 와라, 데미우르고스. 요즘 자주 보니 좋군.”
“…! 더, 더욱 자주 찾아뵙겠습니다..!”
단순히 인사를 올렸을 뿐인데 주어지는 극찬에, 데미우르고스는 고개를 숙이며 감격했다. 그런 그의 모습이 기껍다는 듯 미소를 지은 이자벨이 고개를 까딱였다.
“고개를 들라. 그래, 오늘은 무슨 일로 이 몸을 찾아왔지?”
“일전에 제가 드렸던 부탁을 들어주신 것에 감사를 표하고 싶어 바쁘신 줄을 알면서도 알현을 청했습니다. 또한, 그 날 제게 하셨던 명령의 완수 역시 보고 드리고자 합니다.”
“부탁..? 아아, 그것 말이군. 그것에 관해선 신경 쓸 것 없다. 이 몸도 너를 선택해 득을 많이 봤으니까.”
이자벨이 수호자가 필요할 때 자신을 불러달라고 읍소했던 데미우르고스의 부탁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또.. 그 날이라면.. 역시 네가 운 날을 말하는 건가?”
“…불경한 모습을 보여 송구스럽습니다..”
“후후, 장난이다- 장난. 그나저나, 그 날 이 몸이 한 이야기를 다른 녀석들에게도 전부 전했단 말이지? 그래서 그 녀석들도 울던가?”
“모두가 크게 감격했습니다. 또한 더할 나위 없는 두 분의 자비로우심에, 더 큰 충정과 만전으로 보답할 것임을 맹세했습니다.”
“-…여기서 더 커진단 말이지. 그건 그것대로 놀랍겠군.”
아인즈가 들었다면 말리고 싶어 펄쩍 뛰었을 듯한 말을 하는 것에 이자벨은 내심 웃음을 지었다. 이어서 데미우르고스가 보고를 마치자, 이자벨은 그에게 차를 권했다. 그리고 데미우르고스는 무척이나 황공해하며 그 제안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러고 보니 요즘은 꽤나 너와 엮였었군. 다른 수호자들에게 신경을 많이 못 써주었던 듯도 싶은데… 혹시 질투를 드러내거나 편애를 느끼는 녀석들은 없었나?”
“-..만약 질투를 느낀다고 해도 그것을 드러내는 불경을 저지르는 이는 없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존체께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더욱 정진하는 것만이 올바른 방법일 것입니다.”
“뭐- 뭐, 네가 그렇게 반응하는 것도 이해는 된다만, 행동과 감정은 별개의 문제니까 말이다. 이 몸은 너희들끼리 자격지심이라던가 열등감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거든.”
“그런… 이 어찌나 훌륭하신 생각이신지.. 불초 데미우르고스,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이자벨 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길 것입니다.”
감탄을 드러낸 데미우르고스가 고개를 숙였다. 그 이후로도 후에 있을 계획에 대해 이야기하던 이자벨은 꽤 시간이 흘렀다는 걸 느끼곤 시간을 확인했다. 아니나 다를까, 아인즈와의 약속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나저나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군. 이 몸은 이제 길드장과의 회의가 있어서 말이다. 너는 이후로 일정이 어떻게 되지?”
“저 역시 다른 계층수호자들과의 회의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이런. 바쁜 시간을 빼앗아버린 것 같아 미안하군.”
“-그럴 리가 없습니다! 오히려 황공하기 짝이 없는 시간이었습니다.”
데미우르고스의 격한 대답에, 이자벨의 눈이 휘어지며 호선을 그렸다. 언제나 그 눈에 비춰지는 것은 변함없는 애정. 그 눈을 마주할 때마다 그는 마치 나자릭을 떠나지 않겠다던 선언을 재확인 받는 것만 같아 매번 기쁨으로 충만해졌다. 그리고 감정은 이자벨의 개인실을 나온 후에도 계속 잔향처럼 마음에 남아 모든 일을 완벽히 수행하도록 하는 원동력이 될 터였다. 회의를 위해 만난 동료들이 뭔가 이상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지 않았더라면 말이다.
“죄송합니다. 일정이 지연되어 조금 늦어졌습니다.”
“그대가 늦다니 별일이시와요. 그래도 마침 물어보고 싶었던 것이 생긴 차에 잘 와주셨사와요.”
“물어보고 싶은 것, 이라니. 무슨 일이죠, 샤르티아?”
데미우르고스는 묘하게 자신에게 주목된 수호자들의 시선에 의아해하며 되물었다. 말을 건 샤르티아는 물론이거니와 아우라와 마레, 심지어는 코퀴토스까지도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은 채 그 상황을 관전하고 있는 알베도는 덤이었다.
“..이자벨 님께서 그대에게 ‘귀엽다’고 말씀하셨다는 것이 사실이시와요?”
샤르티아의 의문이 토해짐과 동시에 데미우르고스는 알베도 쪽을 돌아보았다. 누가 말했는지 너무나도 뻔한 이야기였기 때문이었다.
“왜 나를 그렇게 볼까, 데미우르고스? 딱히 못할 말을 한 건 아니잖아?“
“예, 물론 그러시겠지요- 알베도. 하아.. 우선 샤르티아, 왜 그게 회의 자리에서까지 논의될 정도로 중요한 의문인지 모르겠군요.”
“-그 무엇보다 논의되어야 할 중요한 의문인 것이와요! 그런 것이와요!! 그래서, 그게 정말 사실인 것이와요???”
부담스럽게 쏘아지는 동료들의 눈빛에 데미우르고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방금 전 수호자들에게 질투나 열등감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다던 이자벨의 말에 존명의 뜻을 밝힌 데미우르고스였다. 벌써부터 이런 난관에 부딪힐 줄이야. 그는 마련된 자신의 자리에 앉으며 대답했다.
“그 말씀 자체로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황공하게도 이자벨 님께서는 우리 모든 수호자들을 귀애해주신다고……”
“귀엽다니, 이자벨 님께서 귀엽다고..!!! 그것도 데미우르고스에게..? 말도 안돼..!”
“그것 봐, 샤르티아. 내가 사실이라고 했지?”
“잠깐 잠깐- 일단 있어봐, 이자벨 님께서는 나와 마레에게도 귀엽다고 말씀해주신다고?”
“마- 맞아요.. 매번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는 걸요..!”
“..다들 제 말 듣고 계십니까..?”
대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웅성거리는 수호자들의 모습에 데미우르고스는 일이 어렵게 되고 있다고 느꼈다. 솔직히, 전이 후 지난 시간 동안 이자벨에게 과분한 대우를 받았던 것이 사실이었다. 만약 다른 누군가가 자신과 같은 특별취급을 받았다고 생각하면, 자신 역시도 질투를 느꼈을 것이 분명했기에 달리 변명을 늘어놓기도 웃긴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마레, 그대는 아직 어린 아이인 것이와요! 하지만 다들 데미우르고스를 보시와요!! 귀여운 구석이라곤 전혀 없지 않사와요?”
“샤르티아, 그것은 마치 저에 대한 욕처럼 들립니다만.”
“그대는 좀 있어 보시와요! 얼마 전, 데미우르고스가 이자벨 님의 수행원으로 선택된 것도 그렇사와요. 아무리 구성 자체는 후위라고는 해도, 이자벨 님을 보조하기에는 그대보단 마레가 적합하지 않사와요?”
“그건 제가-”
“저, 저는 이자벨 님께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데미우르고스 씨가 선택되어도 괜, 괜찮다고 생각해요..!”
“하아…”
대체 이 회의의 방향은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 것인가. 이야기가 점점 과열되고 있는 것에 데미우르고스는 절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는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자 준비되어있던 차를 입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정확히 그 순간, 알베도가 폭탄을 터트렸다.
“설마.. 이자벨 님께서는 데미우르고스를 신랑 후보에 두신 것이 아닐까?”
““하아아아!?!?””
알베도의 발언에 샤르티아와 아우라가 동시에 소리를 질렀고, 데미우르고스는 마시던 차를 거의 뱉어버릴 뻔했다. 손수건으로 입가를 닦으며 기침하던 그는 가까스로 이성을 되찾았다.
“ㄷ, 대체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 겁니까?”
“그야, 당신 요즘 이자벨 님과 함께하는 일이 많지 않았어? 그것 모두 이자벨 님께서 선택해서 기회를 주신 거지? 샤르티아가 말한 것처럼 수행원으로 당신을 선택하신 것도 그렇고, 중요한 이야기를 당신을 통해 전달하신 것도 그렇고.”
“-겨우 그러한 이유 때문에 지고하신 분의 생각을 억측한다는 것은 대단한 불경이라고 생각됩니다만, 알베도.”
“그 뿐만이 아니야. 그 반지… 이자벨 님께서 하사하신 거지?”
알베도는 물론이고 모든 수호자들의 시선이 자신의 왼손 약지로 향하는 것에 데미우르고스는 반사적으로 손을 탁자 밑으로 내렸다. 링 오브 아인즈 울 고운. 본래 지고의 존재들만이 소유할 수 있다던, 나자릭 전 계층을 자유자재로 전이 가능한 위대한 반지. 그것이 데미우르고스의 손가락에 끼워져있던 것이었다.
“듣지 못하셨습니까? 이 반지는 저는 물론이고 모든 계층수호자들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신도 받으셨잖습니까?”
“물론 들었지. 하지만 그 반지는 나자릭 은폐의 포상으로 마레가 하사받은 거잖아? 나야 총괄직에 있어 그 필요가 다른 이들보다 강하니 받았다고 쳐. 당신은? 당신은 그 때 달리 한 일도 없었을 텐데? 게다가, 우리 둘은 아인즈 님께 그 받지를 하사받았지. 이자벨 님께 받은 것은 당신 혼자잖아?”
“모아보니 정말로 이상한 것이와요. 이자벨 님께서 데미우르고스에게 관심이 있으시지 않고서야…”
우연의 일치인지, 반박하기가 어려운 상황들만 나열되는 것에 데미우르고스는 할 말을 잃고 침묵했다. 게다가 분명 처음에는 이자벨의 뜻에 따라 동료들의 질투를 막아보려고 했던 것이었는데, 어느샌가 자신이 이자벨의 짝으로 여겨지고 있는 것에 그는 머리가 무척 아파오기 시작했다.
“하아… 이 문제를 제가 왜 반박하고 있어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다들 주군의 생각을 염두해 두는 것은 좋지만 함부로 그 존귀하신 생각을 억측하는 것은 잘못된 행동입니다.”
“그러게, 달리 반박할 필요가 없는데 계속 반박하잖아? 데미우르고스. 정말 무언가 있는 것처럼.”
“틀립니다, 아우라. 정말 무언가 있었다면 반박할 필요도 없겠지요. 애초에 그 억측이 사실이라면 이런 반지를 하사하실 필요도 없이 제게 명령만 하신다면 즉시 저는 그 분의 짝이 될 겁니다. 저는 지금, 이러한 논의 자체가 불경이 아닌가 하는 말을 하고 있는 겁니다!”
“여자의 마음을 모르는구나, 당신은. 명령으로 맺어진다니… 여자라면 고백을 받고 싶은 것이 당연하잖아?”
“정말로, 아무리 똑똑한 데미우르고스여도 이런 부분에서는 바보가 되는 거구나-”
다시 한 번 말문이 막혀버린 데미우르고스는 어이없는 한숨을 토해냈다. 게다가 그 과정에서 눈이 마주친 유일한 친우, 코퀴토스는 슬쩍 눈을 피해버리는 것이다. 그 행동은 이 머리아픈 논쟁에 휘말리기 싫다는 기색이 다분이 포함되어 있었으니.. 이 회의는 이미 제 목적을 잃어버린 것임이 분명했다.
“제발 이제 다들 회의를 해 주십시오..”
***
나자릭 지하대분묘 최고지배자의 집무실 실내에 조화롭게 위치한 세간들은 섬세한 장식이 가미되어 값비싼 기색을 풍기면서도 품위가 넘친다. 또한 누군가 걸어도 소리가 나지 않도록 바닥에 선홍색의 푹신한 융단이 깔려있는 등 최고지배자의 집무를 위한 여러 배려가 엿보이는 인테리어를 가진 공간이기도 했다.
본래는 이 방의 주인과 시중들 자만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설계된 이 공간에는 그 설계와는 다르게 두 여악마가 함께하고 있었다.
“다음은 카르네 마을에서 조우한 인간 기사들에 대한 뉴로니스트의 정보 수집과, 양광성전에게서 얻은 정보를 추합한 것이옵니다. 내용은 오른쪽 보고서를 참고하여 주시옵소서.”
알베도의 말에 아인즈와 이자벨이 각각 주어진 종이 뭉치를 넘겨보았다.
본래 편의 시설은 물론이고 가지각색의 방이 모두 존재하는 나자릭 9계층에는 길드원 개인 집무실이 따로 존재했다. 그러나 모든 일을 의논하여 해결하는 아인즈와 이자벨의 특성상, 그들은 지금 아인즈의 집무실에서 거의 모든 일을 해결하고 있는 중이었다. 넓은 실내에 이자벨과 알베도를 위해 늘어난 집무 책상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 내용은 구두로 보고가 끝났을 텐데, 정리해서 다시 올라왔군.”
“두 분의 편의와, 기록의 목적도 겸한 것이옵니다. 또한 이쪽은 두 분의 명령으로 나자릭 근처에 위치한 대삼림을 조사한 아우라 벨라 피오라의 보고서이옵니다.”
“흠, 아무래도 대삼림에는 위그드라실 플레이어나 관련한 정보는 없는 모양이다, 이자벨.”
“..그렇군. 그럼 아우라 쪽에는 이대로 속행시키도록 할까.”
“그러지. 알베도, 아우라 부대는 이대로 명령을 수행하라 전하라.”
알베도가 막 존명의 뜻을 내비칠 때, 대기하고 있던 메이드가 다가왔다.
“아인즈 님, 이자벨 님. 제 1-3계층 수호자, 샤르티아 블러드폴른이 알현을 청하였나이다.”
“샤르티아가? 곧 있을 임무에 관한 건인가?”
이자벨이 중얼거리며 아인즈의 의사를 흘긋 살피곤 입실을 허가했다.
마침내 열리는 문 사이로 14살 정도의 절세 미인의 소녀가 발을 내딛는다. 단아하게 틀어올려 하나로 묶어내린 은발을 살랑이며, 샤르티아는 아인즈와 이자벨의 앞에 공손히 무릎을 꿇었다.
“제 1-3계층 수호자- 샤르티아 블러드폴른, 지고의 존재들께 문안 인사 올리사와요. 두 분 다, 기체후일향만강 하시옵는지요.”
“고개를 들라. 너희의 수호 덕에 우리는 편히 지내고 있다. 그래, 오늘 우리를 찾아온 이유는 무엇이냐.”
그러자 고개를 살며시 든 샤르티아와 알베도의 눈빛 사이에서 무언의 무언가가 오갔다. 번뜩이는 여자들의 눈빛에, 아인즈는 내심 당황하며 되물었다.
“샤르티아?”
“..예, 이제부터 두 분의 군명을 받들어 세바스와 합류하고자 하옵니다. 두 분께서도 곧 나자릭 바깥으로 나가게 되실 것인데, 당분간은 뵙지 못하게 될 듯 하여 인사를 드리고자 왔사옵니다. 부디 존체 보존하시옵소서.”
자리에서 일어난 샤르티아가 마치 옛날 사극의 여주인공처럼 아인즈와 이자벨에게 절을 올렸다. 정보수집을 위해 나자릭을 떠나 있는 세바스와, 더불어 샤르티아에게 내린 지령을 떠올린 아인즈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부디 방심하지 말고 임무를 수행한 후 무사히 돌아오거라, 샤르티아.”
“이 몸 역시, 네 활약을 기대하고 있겠다.”
“예! 소첩, 두 분께 결코 실망을 안겨드리지 않을 것이옵니다!”
낭랑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대답하는 그 눈빛에는 대답과 같이 열과 성이 가득해 보였다.
“그럼 이제 그만 물러나도 좋다, 샤르티아.”
“..저, 송구하오나 퇴실하기 전에, 이자벨 님께 여쭙고 싶은 것이 있사옵니다.”
“…이 몸에게? 뭐지?”
“혹, 이자벨 님께옵서 데미우르고스를 짝으로 생각하고 계신다는 것이 정말이시옵니까..?”
“..허?”
“에..? 에에-?!?”
듣도보도 못한 샤르티아의 질문에, 이자벨은 짧게 헛숨을 뱉었고, 아인즈는 지배자 연기도 잊고 절로 당혹감 어린 목소리를 토해냈다. 짝이라니, 짝이라고? 데미우르고스를…? 정말로?
‘아니 두 사람 친했잖아?? 절친이었던 우르베르트 씨의 자식과도 같은 데미우르고스를..? 정말인가..??’
아인즈는 샤르티아의 의문이 사실인지 확인하기 위해 반사적으로 이자벨을 쪽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막 무어라 대답하려고 하는 그 때,
“..아인즈 님, 이자벨 님.. 계층수호자 분들께서 갑자기 알현을 요청하고 있사옵니다.”
“에..? 이 타이밍에…?”
무엇을 본 것인지 매우 당황스러워 보이는 메이드의 말에 아인즈가 얼떨떨하게 중얼거렸다. 마치 정말로 짜 맞춘듯한 타이밍이 아닌가. 당황한 아인즈를 대신하여 이자벨이 그들의 입실을 허가했다. 그러자 안색이 하얘진 데미우르고스가 서두르는 몸짓으로 들어왔고, 그 뒤에는 아우라까지 함께하고 있는 것이었다. 흐트러진 모습의 데미우르고스는, 평소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ㄷ-데미우르고스, 무슨 일 있는 것이냐? 안색이 좋지 않구나.”
“ㅅ, 송구합니다. 그, 이자벨 님- 혹여 샤르티아가 무슨 말이라도…”
“다짜고짜 찾아와서는 질문부터 하다니, 무례하군. 정확히 무슨 말을 말하는 거지?”
“그, 그것이..”
말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애초에 데미우르고스는 특별 취급 받고 있다는 것을 함구하라는 이자벨의 명령을 지키지 못했다. 그런 주제 하필 ‘그런 식으로 일이 커졌다는 것’을 제 입으로 말해야 한다니. 아무리 그라고 해도 망설여지는 것이 당연했다.
“그러니까 무슨 말인지 대답을 해라. 혹시 네가 이 몸의 짝이냐고 물은 걸 말하는 건가?”
“…!!! 그, 그것은 억측입니다..! 샤르티아가 일전 제가 이자벨 님을 수호한 일로 마음이 다급해져 내뱉은 망언이오니 부디 잊어 주십시오..!”
샤르티아가 결국 저질러 버렸구나.. 안색이 더 하얘진 데미우르고스가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으며 소리쳤다.
이게 무슨 상황이야. 다짜고짜 샤르티아가 이상한 질문을 하질 않나, 그걸 또 어떻게 안 건지 타이밍 맞게 찾아온 데미우르고스가 무릎을 꿇지 않나.. 연달아 닥치는 기이한 일들에 아인즈는 몇 번의 정신 안정을 맞았으나, 뒤이어 이자벨이 던진 폭탄으로 인해 다시 당황의 감정에 휩쓸려버리고 말았다.
“-너는 왜.. 그게, 억측이라고 생각하지?”
“..예…?”
“너는.. 이 몸이- 싫은, 거군..?”
“에에에에??!!?”
““하아아아!?!?””
상처받은 듯 눈을 피하며 우울감에 젖어드는 이자벨의 모습에, 아인즈와 수호자들은 물론이고 메이드들까지 당황하여 집무실 안은 순식간에 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그, 그럴, 그럴 리가 없습니다, 이자벨 님!! 싫다니, 저 따위가 감히 싫다는 것은-”
“불경이사와요! 데미우르고스, 불경이사와요!!!”
“아.. 아아… 부럽다… 아아, 아인즈 님, 저도.. 소녀도…!”
“ㄸ, 떨어져라 알베도, 떨어져라! 밖에 누구 있느냐!!”
“으앗, 알베도- 지금 뭐하는 거야!!”
그리고 그 폭탄같은 대답이 이자벨의 장난이었다는 것을 안 것은 그로부터 한참 후, 수라장이 진정이 되고 난 후의 일이었다. 기진맥진한 100레벨 이형들의 사이에서, 기분이 좋아진 이자벨은 홀로 상쾌한 웃음을 터트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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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벨: 그나저나 너흰 어떻게 알고 온 거지?
아우라: 대삼림에 배치할 부대에 일부 변경이 있어서 이야기하는 중이었는데- 샤르티아가 중~요하게 물어볼 이야기가 있다고 이자벨 님을 찾아간 이야기를 하니까 데미우르고스가 갑자기 뛰어나가 버렸어요.
데미우르고스: ...
플레플레 플레아데스 정주행하다가 아수라장 된 나자릭 한 번 써보고 싶었음. 그래서 썼다. 끝.
다음 편부터는 2권에 해당하는 스토리 진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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