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자신이 갭 모에 설정을 제대로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이자벨은, 다음 행선지로 모몬가를 만나러 가기로 결정했다. 애초에 전이를 겪고 난 이후로는 하루에 최소 한 번씩을 직접 만남을 가지고 있는 둘이었다.
“지고의 존재를 뵙습니다, 지금 모몬가 님께 이자벨 님의 방문을 알리겠나이다.”
“비켜.”
이자벨에게 한 번 혼난 기억이 있는 문 밖의 의장병들은, 이번에는 제대로 목례하는 것만으로 예를 표했다. 그러나 이자벨은 그런 그들을 지나치며 직접 문을 열어버리고는 성큼성큼 모몬가를 찾아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그 행실은 NPC나 서번트들이 보기에도 상당히 무례해보이는 것이다.
“아, 이자벨- 왔나.”
모몬가는 약간 부산스러워진 종복들을 느끼곤 곧 그녀를 발견할 수 있었다.
“놀라지 마라. 우리는 어느 정도의 의례따윈 무시할 수 있는 허물 없는 친구이니. 서로에게만큼은 예를 생략하고 지내기로 합의했다.”
그제서야 종복들이 이자벨의 행동을 이해하곤 자신들의 섣부른 판단을 부끄러워했다.
모몬가는 당황하지 않고 대답한 자신을 잠시 칭찬해주었다. 지난 며칠의 마왕 롤플레이로 어떻게든 있어보이게 대답한 그였지만, 실상은 ‘안그래도 답답하니 서로에게 만큼은 편하게 하도록 하죠!!!’라고 이자벨에게 절규했던 것이다. 모몬가는 지쳐서 한심해졌던 자신의 모습을 상기하며 뼈로 된 뺨을 긁적였다.
“길드장의 말이 맞다. 그런데, 뭘 하고 있었지?”
이자벨은 난잡하게 아이템들이 놓여 있는 드레스 룸 안에 서있는 모몬가에게 다가가며 물었다.
”아, 잠시 몇 가지를 시험해보고 있었다. 보여주지.”
모몬가는 무수히 놓인 무구 중에서 대충 그레이트 소드 한 자루를 골랐다. 칼집에 담기지 않았으므로 은백색 검신이 빛을 받아 번쩍 빛났다. 모몬가는 100레벨의 우수한 근력으로, 그 대검을 위 아래로 움직여보았다. 그는 매직 캐스터답게 마법에 관한 능력치가 높으며 육체에 관한 능력치는 낮았다. 그래도 100레벨의 누적된 근력치는, 저레벨 몬스터 정도는 스태프로도 때려잡을 수 있는 것이다.
모몬가는 잠시 자신에게 이렇게 커다란 대검이 깃털처럼 가벼울 정도면, 본격적인 전사인 이자벨에게는 대체 얼마나 가벼운 것일까하고 생각했다.
“자, 중요한 것은 이제부터다.”
모몬가는 잡념을 떨쳐버리곤 천천히 검을 상단으로 들며 자세를 잡았다. 그러자- 마치 일부로 놓친 것처럼 모몬가의 손에서 검이 떨어져 나와 바닥을 구르는 것이 아닌가. 전사계 클래스의 부재에 따른 전사계 장비의 장착 불가의 페널티였다. 잠시 떨어진 검과 저절로 힘이 풀려버린 제 손을 바라보던 모몬가가 중얼거리듯 이자벨에 말했다.
“나는 이것이 혼란스럽다. 지난 며칠 간 우리는 이 곳이 위그드라실과 다르다는 것을 몇 번이고 확인했다. 그러나 이 기묘한 육체의 제약은 마치 위그드라실의 세계와 다름이 없군.“
”..그렇군. 정말 ’리얼‘ 같았다면 어떤 무기를 장비해도 영향이 없어야 정상인 것을.“
하지만 그렇게 치자면 애초에 마법은 물론이고 그들의 존재 자체가 비정상적인 현상이었다. 현실에는 오버로드나, 악마 따위는 없었으므로.
”그러고보니, 이자벨 너는 어떤 장비도 상관없이 착용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지.“
”..그래, 말 그대로 ’착용만‘ 할 수 있는 것이지만.”
“한 번 실험해 보겠나? 실험 샘플은 많을수록 좋다.“
”뭐, 그러지.“
이자벨은 대수롭지 않게 언데드 종족 레벨이 있어야만 사용할 수 있는 스태프를 골라왔다.
이자벨이 가진 클래스, 혼돈의 주인(Lord of Chaos)이 가진 특성 중에는 ‘그 어떤 무구 및 방어구도 착용할 수 있다.’라는 언뜻 보면 사기같아 보이는 특성이 있었다. 하지만 본래 착용이 불가능했던 아이템들은 말 그대로 착용하고 사용하는 것만이 가능할 뿐 그것이 품은 마법이나, 능력치 상승 등의 모든 효과는 무효화되어 버렸다. 아무리 사기적인 신기급 무기도 이자벨이 착용하는 순간 그저 잘 파괴되지 않는 단단하고 평범한 무기가 되어버리는 것이니.. 이 특성은 이자벨과 같이 해괴한 롤플레이를 즐기는 플레이어가 아니라면 있으나마나 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마법화살 Magic Arrow>”
스태프를 쥔 이자벨은 씩 웃으며 모몬가를 향해 그것을 겨누었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자들이 순간 긴장했지만, 내뱉어진 것은 겨우 1 위계의, <마법화살 Magic Arrow>이였고, 그것은 모몬가의 <상위 마법 무효화>에 의해서 무시되었다. 애초에 이자벨이 구사할 수 있는 마법 중에서 고위계의 것은 거의 없었으므로 높은 마법 방어력까지 갖춘 모몬가에게 유효타를 먹일 수 있는 것은 없다고 보는 것이 맞으리라.
“음, 역시 스태프의 능력은 전혀 반영되지 않은 것 같군.”
모몬가가 1도 줄지 않은 자신의 HP를 가늠하며 중얼거렸다.
“뭐, 보다싶이- 그거다.“
”…위그드라실은 아니지만 위그드라실의 법칙을 철저히 따르고 있는 육체라.. 지금까지 판단 가능한 것은 이 정도이지만 역시나 정보가 부족하군.”
모몬가는 한숨을 내쉬며 방 한쪽을 뒤덮은 거대한 거울로 시선을 돌렸다. 거울에 비친 것은 중후한 느낌의 로브를 걸친 해골과, 까만 정장으로 빈틈없이 몸을 감싼 악마였다. 하루 아침에 자신과 동료의 몸이 변해버린 것에 공포를 느껴야 하는데도, 모몬가에게는 그러한 감정-.. 아니 일말의 위화감조차 없었다. 단순히 위그드라실을 오래 플레이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언데드가 되어 버린 외견과 마찬가지로 언데드의 정신 또한 그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었다.
남아있는 인간의 감정이 격해지면, 곧바로 언데드의 정신은 그 감정을 억압해 평탄하게 바꾸었다. 이러다 언젠가는 완전히 평탄해지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것은 이자벨 역시 그런 것이 아닐까. 자신의 변화에는 아무런 느낌을 받지 못하면서 그 사실에만큼은 미미한 불안감을 느끼는 모몬가였다.
“..이자벨, 잠시 둘이 나가지 않겠나.”
“어디로?”
“지표로는 어떤가.”
“왠일이지? 바깥은 아직 위험하다며 말리지 않았나.”
“…잠시 바람이라도 쐬면 좋을 것 같아서 말이다.”
“흠, 참을 수 없게 된 건가. 좋아, 그러지.”
둘의 대화가 나가는 것으로 결정되자, 곧바로 곁에서 대기하던 메이드가 입을 열었다.
“근위대는 이미 준비되어 있사옵니다, 모몬가 님, 이자벨 님.”
그래, 이거다. 모몬가는 이게 싫은 것이었다. 이자벨과 둘만 있을 때 풀어지는 것으로 겨우겨우 한숨을 돌리고는 있지만 하루 종일 자신을 쫓아다니며, 자신은 그 쫓아다니는 존재들에게 완벽한 지배자 상을 연기하는… 그것은 원래 단순한 일반인이었던 모몬가에게 정신적 피폐를 유발하고도 남을 만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자벨은 달랐다. 당연한 듯이 나자릭의 존재들을 휘어잡으며 부리는 이자벨의 모습에 모몬가는 몇 번이나 감탄했다. 그리고 보통 이러한 상황 - 모몬가와 종복들의 의견이 부딪치는 상황에서는 거절을 못하는 모몬가 대신 그녀가 나서 그의 편을 들어주는 것이다.
”아니, 근위대는 필요 없다. 이 몸과, 길드장. 우리 둘로 충분하다.”
“ㄱ, 그것만은 삼가해 주시옵소서. 두 분께서만 가신다면 무슨 일이 있었을 때 방패가 되어 죽을 수가 없나이다.”
이자벨은 잠시 모몬가를 돌아보았다. 표정 변화가 없는 해골의 붉은 안광에서, 제발 편하게 돌아다니고 싶다는 욕구를 발견한 듯이 그녀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극비리에 할 이야기도 있다. 수행은 허락하지 않겠다.“
”하, 하오나…..“
”걱정하지 마라. 이 몸은 나자릭에서도 손에 꼽히는 근거리 전위, 그리고 길드장은 방패가 될 언데드들을 소환하면서도 전위인 이 몸을 보조해 줄 수 있는 훌륭한 매직캐스터이다. 문제가 생기더라도 도주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다.“
잠시간의 침묵. 자신만만한 이자벨의 표정에도 불구하고 모몬가에게는 매우 길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알겠나이다. 부디 존체를 잘 살피소서.”
‘이자벨 씨, 나이스!!!!’
메이드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모몬가는 메이드에게 의도치 않은 변명을 해 버렸다는 죄책감마저 지워내버릴 듯한 해방감을 느꼈다. 하지만 문제가 한 가지 더 있었다. 모몬가와 이자벨을 발견한 나자릭의 존재들이 평소처럼 또 줄줄히 무릎을 꿇어대며 인사를 올린다면, 이 일탈은 결국 의미가 없어지게 되는 것이다.
“<상위 도구 창조 Creat Greater Item>”
모몬가가 마법을 발동함에 따라 그의 온 몸이 갑자기 전신 갑주로 뒤덮였다 플루티드 아머(Fluted Armor)라 불리는 그 갑옷은 칠흑색으로 빛났으며 금색과 보라색 문양이 들어가 매우 값비싸보였다. 몇 차례 움직여보면서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모몬가가 이자벨을 돌아보았다. 그 시선에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던 이자벨이 뭔가를 깨달은 듯 인벤토리에서 전신을 가리는 칠흑색의 로브를 꺼내 뒤집어썼다. 그 로브는 찢긴 것처럼 볼품없는 동시에, 얼굴이 있는 부분이 완전히 어둠으로 가려져서 매우 위험해보이는 인상을 자아냈다.
그리고 둘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링 오브 아인즈 울 고운으로 전이할 수 있는 가장 지표에 가까운 곳으로 반지를 작동시켰다.
”후아, 드디어!! 한 번 나오는 것도 정말 어렵네요, 이자벨 씨-”
나자릭 지하대분묘 제 1계층으로 통하는 문이 존재하는 중앙영묘에 도착한 모몬가는 그동안 참아왔던 숨을 크게 내쉬며 자신의 동료를 돌아보았다.
“그렇네요, 모몬가 씨. 그나저나 지금 우리 둘의 모습은 왠지 역할이 역전된 듯한 느낌인데요? 갑옷 입은 매직캐스터와, 로브 입은 전사라니-”
“와, 그것도 그렇네요-”
“이런 외형으로 새로운 설정 짜보는 건 어떨까요? 새로운 롤플레이라던가..”
“…이자벨 씨…”
정신 압박에서 해방되었다고 생각하는 자신과 달리, 애초에 아무렇지도 않았던 이자벨은 어쩌면 오늘의 일탈도 가볍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모몬가는 이자벨에게 ‘그 때처럼 모험을 하자’고, ‘분명 즐거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니 그에겐 이자벨을 떠나지 않게 할, 즐거운 경험을 줄 의무가 있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실존하는 나자릭에 함께하는 것으로 이자벨은 이미 충분히 즐겁다는 사실을 모몬가는 알지 못했다.
’그 때처럼 재미있게 놀자고 말했으면서.. 이렇게 둘이 놀 수 있는 시간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아시긴 하나요, 이자벨 씨.”
내심 한숨을 내쉬던 모몬가는 곧 그런 것도 잊고 신나서 이자벨과 편안한 잡담을 나누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건 제가 설정광이라서 하는 말은 아니구요, 가명을 정하는 것은 어때요? 호칭을 그대로 하다가는 역시 모두에게 들켜버릴테니.”
“으음, 그 이유가 둘 다일거라고 확신합니다만-.. 확실히 가명은 필요하겠네요. 저는… ’다크 워리어‘로 할까요.”
“..’다크 워리어‘라니.. 모몬가 씨의 흑역사가 될 게 분명한 이름이네요. 이런 길드장을 두고 있는 데도 우리 길드의 이름은 정상적이라니 정말 다행이야.“
”하하, 그런가요.. 그럼 이자벨 씨는 어떤 가명을-…!!“
웃으며 막 1계층의 문을 넘어가던 모몬가는 무엇인가를 보고 그 자리에서 딱 멈추고 말았다. 이자벨 역시 모몬가의 시선 끝에 자리한 기이한 이형의 존재들을 보고 걸음을 멈추었다.
일단 긴 송곳니와 비늘로 뒤덮인 육체, 날카로운 발톱이 달린 굵은 팔을 자랑하는 듯한 녀석은 뱀처럼 긴 꼬리에 불타는 날개를 가져 악마라는 이미지에 딱 어울리는 외형을 띄고 있었다. 또한 까만 가죽 본디지를 입은 여성의 몸과 까마귀의 머리를 가진 존재에 이어 이자벨이 받은 마몬과 똑같은 외형의 악마들도 있었으니..
그들의 이름은 차례로 ’분노의 마장‘, ’색욕의 마장‘, ’탐욕의 마장‘이었다. 모몬가와 이자벨의 예상이 맞다면 이들은 데미우르고스의 친위대로 본래 4기씩 총 12기가 있어야 했지만 그 중 몇이 이자벨의 근위대에 배치되면서 현재는 그 숫자가 조금 적었다.
그들 전원의 눈동자가 변장한 모몬가와 이자벨에게로 모였다. 모이고는 조금도 움직일 줄을 모른다. 응시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압박감마저 느껴지는 진지한 눈동자. 어째서 제 7계층에서 데미우르고스를 호위하고 있어야 할 그들이 1계층에서 발견된 것인가. 1계층에는 본래 샤르티아 휘하인 언데드 몬스터가 상주해 있어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이자벨이 그들의 몸에 가려서 보이지 않던 한 악마의 존재를 속삭였을 때 모몬가는 비로소 그 의문을 풀 수 있었다.
“..데미우르고스…”
이름이 불린 악마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것은 어째서 자신의 주인들이 이런 곳에 있는 지 궁금해하는 표정 같기도 했고, 처음보는 몬스터가 있다는 표정 같기도 했다. 어쨌거나 그 속을 알 수는 없었기에 모몬가는 미미한 가능성에 걸고 걸음을 내딛었다. 벽 쪽으로 붙어서 악마들을 최대한 의식하지 않은 채 지나가는 것이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본 이자벨도 조용히 그 뒤를 따랐다.
그렇게 양측의 거리가 가까워졌을 때, 모몬가는 절망하고 말았다. 그렇게나 동료와의 개인적인 시간을 원했는데-.. 악마들이 마치 짜기라도 한 것 마냥 한 쪽 무릎을 꿇는 것이다. 선두에서 고개를 조아린 것은 당연히 데미우르고스였다. 그 멋들어진 움직임에선 품위마저 느껴져, 모몬가는 허무한 한숨을 토했다.
”모몬가 님과 이자벨 님이 아니십니까. 이자벨 님께는 소신이 오전에 근위대를 편성해 드렸을 것인데, 대동하지 않고 두 분만 이 곳에 납시다니… 혹시 근위대가 마음에 들지 않으신 것입니까? 게다가 그 차림은….“
한 방에 간파당했다. 아니, 본명으로 부르며 떠드는 모습을 보였으니 당연한 결과인가. 그래, 데미우르고스만 함구시키면 문제 없겠지. 모몬가는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아… 몇 가지 사정이 있어서 말이다. 우리가 왜 이러한 차림을 했는지, 데미우르고스 너라면 알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데.“
데미우르고스의 단아한 얼굴에 다양한 빛이 지나갔다. 몇 번 숨을 쉴 만한 시간이 흐르고, 결국 알 수는 없었다는 듯 말하는 것이다.
”송구스럽기그지 없지만, 제 미력한 머리로는 두 분의 심원한 사려를—“
”-듣지 못했느냐, ’다크 워리어‘라 부르거라.“
”..다크 워리어….님..?“
데미우르고스는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한 기색이었지만, 모몬가는 애써 무시했다. 이자벨이 말한 것처럼 왠지 흑역사가 되어 버릴 것만 같은 상황에, 그는 참지 못하고 웃음소릴 흘리고 있는 이자벨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많은 서번트가 오고다니는 출입구에서 ’모몬가‘라고 불려 소중한 동료와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는 그의 계획이 망가지는 것은 최대한 피하고 싶었다.
그런 모몬가의 내심을 어떻게 판단했는지, 데미우르고스의 얼굴에 알았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아하, 그렇게 된 것이군요.”
“에?”
모몬가는 자기도 모르게 작게 소리를 냈다. 대체 무엇을 알았다는 것인지 그도 알고 싶었으나 평범한 사람인 모몬가로서는 대놓고 물어보기에 무리가 있었다. 그저 부디 그의 계획이 잘 풀리는 방향 쪽으로 생각했기를 바라며 클로즈드 헬름 안에서 흐르지도 않는 식은땀을 흘릴 뿐이었다.
“두 분의 심원하신 의향을 일말이나마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이 곳의 지배자가 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리는 배려가 아닐까 합니다.”
“-아아.”
’으—응??’
그러나 모몬가는 얼마 가지 않아 한 번 더 당황하고야 말았으니.. 데미우르고스가 말하는 알 수 없는 말들에 이자벨은 자신도 이해했다는 듯한 소리를 내는 것이다.
나만 이해하지 못한 건가..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스스로의 설정에 관심 좀 가져볼걸.. 하물며 ‘꽤 똑똑하다’는 한 마디라도 적어 놓을 것을.. 하며 모몬가가 후회하는 와중에도 두 악마의 대화는 이어졌다.
“하오나 단 한 명의 수행원도 없다니, 수호자인 저로서는 간과할 수 없는 일이군요. 폐가 되리라는 것은 잘 알지만 부디 이 가엾은 신하를 불쌍히 여기시어 관대한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길드ㅈ.. 아니, ’다크 워리어‘가 서운해 할 텐데.. 그래도 하는 수 없군. 그럼 네게만 동행을 허락하겠다.”
“억지를 받아주시어 기쁘기 이를 데가 없습니다, 다크….위자드 님.”
이자벨의 가명을 정하지 않은 관계로 적당히 외형대로 이름을 붙여 준 데미우르고스의 배려심 넘치는 행동에, 이자벨은 작명 센스 최악 길드장의 허물을 뒤집어 써 버린듯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뒤에 ‘님’이라는 존칭은 빼 주었으면 한다만.”
“무슨 말씀을!! 제가 어찌 감히!!!”
“그으래, 데미우르고스- 자꾸 계층수호자인 네가 ‘다크 워리어 님’, ’다크 워리어 님‘이라고 부르면 우리가 누구인지 너무 티가 나지 않겠나?”
’이 악마, 분명히 나를 놀리고 있다.‘
일부러 ’다크 워리어‘라는 민망한 네이밍을 강조해 부르는 이자벨의 모습은 자신도 ’다크 위자드‘로 불리우게 만든 모몬가에 대한 복수심이 다분히 포함되어있는 것이었다.
“물론, 잠입공작 같은 지극히 특수한 임무나 명령을 띄었을 때라면 따르겠으나. 이 나자릭 지하대분묘에서 모몬가 님… 아니, ’다크 워리어‘ 님을 망령되이 부를 종복은 결코 있어서는 아니되는 것입니다!“
’알았으니까 이제 그만해 줘-!!‘
이자벨은 고통 받고 있는 ‘다크 워리어’의 모습을 즐거운 듯이 감상했다.
“..매우 실례가 많았습니다. 두 분의 소중한 시간을 빼앗았군요. 그러면 너희는 이 곳에서 대기하며 내가 어디로 갔는 지를 설명해라.”
“알겠습니다, 데미우르고스 님.”
“가지, ’다크 워리어‘ 그리고, 데미우르고스.”
-아, 이자벨 씨, 진짜!!!!
NPC에 이어 길드장도 고장내어버린 이자벨은 다시금 매우 좋아지는 기분으로 앞장서는 것이다.
물론, 나자릭의 존재들이 외형이 아닌 기척으로 상대를 파악한다는 것은 아무리 길드장을 고장낸 이자벨로서도 알 수 없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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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편 생각한다... '아, 이번 편은 좀 별론데..?'라고...
+한 편 이자벨은 데미우르고스 뿐만 아니라 좋아하는 존재 모두를 괴롭히고 다닌답니다.
+저번의 담화로 모몬가는 이자벨에게 즐거움을 줘야 한다는 약간의 강박을 느끼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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