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중후함을 자랑하는 제국 마법성 귀빈실 안, 그 실내는 벌써 몇 분째 무거운 정적이 자리하고 있었다. 제국 황제와 그를 호위하는 제국 4 기사의 일원.. 거기다 대 매직캐스터인 플루더 파라다인과 그 뒤를 잇는 차석 마술사, 카다인까지. 제국의 거물들이 모인 자리임에도 그 반대편에 앉아있는 외부인은 외려 형형한 눈빛을 빛내며 그 침묵을 깼다.
“…이제 믿으시겠습니까?”
“으음…”
제국 황제, 지르크니프는 여성의 말에 침음성을 흘리며 그녀를 마주보았다. 그는 방금 전 이 방에서 생사의 기로에 있던- 다 죽어가는 노인이 완벽하게 회복하는, 기적을 목도했다. 새로운 영웅의 등장. 그것은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그리고 제국 황제로서도 크게 반겨 마지않는 일이었다. 그러니까, 그 영웅에게 벌써부터 안좋은 첫인상을 강렬하게 각인시켜주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지르크니프는 말 없이 플루더 쪽을 한 번 노려보았다가 입을 열었다.
“..일이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내가 직접 귀인을 맞았을 텐데. 아무래도 황제라는 위치에 있다보니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할 수 만은 없었음을 이해해 줬으면 한다. 여기 플루더와 제국 마법성이 저지른 무례는 내가 제국을 대표하여 대신 사과하지.”
지르크니프가 진지한 어조로 이자벨을 마주보며 사과했다. 비록 고개는 숙이지 않았지만 한 나라의 수장으로서 할 수 있는 가장 깊은 사과이리라. 당연하지만 그는 직급이 직급인만큼 타인에게, 그것도 직접 사죄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그런 지르크니프조차도 경악할만큼 오늘의 실태는 처참했다.
객을 초대해 놓고 그 앞에서 자해를 저지르려 한다던가, 당황하여 뒷걸음질치는 객을 압박하여 잡아놓고 있는다던가.. 그 무례를 지적하는 객에게 경계진을 펼친다던가…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는 손님 응대를 오늘 마법성은 해 내고야 만 것이다. 물론, 플루더는 마법에 있어서는 제정신이 아니고, 무례를 지적한 유리의 기세가 무심코 경계를 해 버릴 정도로 엄청났다고야 하지만.. 그것은 변명이 되지 못했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제국 황제가 직접 사과를 할 줄이야.. 개혁을 빠르게 이루어냈다 하더니 꽉 막힌 인물은 아니라는 거로군.’
신분의 고하가 명확한 이 세계의 특성을 알고 있는 이자벨도 지르크니프의 사과에 대한 의미를 파악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무례를 저질렀다고야 하나 정체도 밝혀지지 않은 외부인에게 황제가, 그것도 자신이 직접 저지르지도 않은 무례를 사과하는 것은 일례가 없는 일이었다. 그것은 황제조차 함부로 대하기 꺼려하게 만드는 제 6위계 매직 캐스터의 위상이 이 세계에서 얼마나 높은 지 알게 해주는 일면이기도 했다. 당장 지르크니프도 이자벨의 실력이 증명되자 사과를 하지 않았던가.
이자벨은 미소를 지으며 예의있게 대답했다.
“아닙니다. 당황스러운 일이 있었다고야 하지만 먼저 공격을 한 것은 잘못된 행동이었습니다. 그러니 사과를 해야 할 것은 오히려 제 쪽입니다.”
“…그리 말해주니 고맙다. 그러고 보니, 첫만남이 너무 강렬했던지라 인사도 제대로 나누지 못했군. 나는 바하루스 제국 황제인 지르크니프 룬 파로드 엘=닉스라 한다. 그대의 소개를 구해도 되겠나?”
지르크니프의 말에 이자벨은 잠시 고민에 잠겼다. 인사. 인사라.. 자신보다 높은, 그것도 황제에게 하는 인사란 어떻게 하는 거지? 물론, 가벼운 자기소개 정도로도 딱히 지적을 받을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예의도 모르는 인간으로 펌하당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높은 존재를 대하는 황실 법도 따위, 그녀는 알지 못했다. 애초에 그녀는 이 세계로 전이해오고 나서 늘 인사를 받는 입장이었지 누군가에게 고개를 숙이고 인사할 일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다. 이자벨이 잠시 고민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옆에 앉아있던 유리 역시 따라 일어섰다.
“신앙계 마검사, 헬리아가 제국의 황제를 뵙습니다. 소란이 있었다고는 하나, 황제께 제대로 인사도 드리지 못한 점, 사죄드립니다.”
“헬리아 아가씨의 수행원- 유리아, 제국의 황제를 뵙습니다. 소란을 일으켜 면목이 없습니다.”
이자벨은 고민과는 달리 더 없이 우아하고 아름다운 자태로 예법을 선보였다. 사실 이 모습은 다른 데서 온 것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이것은.. 흉내였다. 가슴께에 올려진 오른손, 과하지 않을 정도로 숙여진 상체. 차분하고 진정성 있는 목소리와, 입가의 부드러운 미소까지. 그녀는 그저 평소에 자신을 대하던 데미우르고스의 모습을 흉내냈을 뿐이었다. 물론, 그라면 이자벨에게 무릎을 꿇었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오만한 악마 성격을 가지게 된 그녀는 인간에게 무릎을 꿇고 싶지도, 그럴 생각도 없었다.
이자벨의 실제 생각이 어떠하든, 지르크니프는 그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완벽한 자태를 보곤 생각했다.
‘…이 자는, 확실하게 높은 신분의 사람이군.’
지르크니프의 시선이 이자벨의 로브 자락에 닿았다. 일단은 저 옷부터 그녀의 신분을 짐작케 할 수 있는 것 중 하나였다. 범인이 보기에는 그저 평범한 로브처럼 보이겠지만 그는 어릴 적부터 온갖 재보와 보물들을 보고 자란 황족이었고, 그렇기에 저 로브의 가치를 알 수 있었다. 재질부터, 재단된 부분까지.. 비록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맵시 하나하나가 매우 정교하고 꼼꼼하게 만들어진 고급품이었다. 게다가.. 자신을 헬리아의 수행원이라고 표현한 여성의 로브 또한 못지않은 고급의 재질이었으니.. 수행원까지 저런 복장을 갖추려면 당연하지만 주인의 위세가 대단해야 했다.
‘..허나 중요한 것은 행색 따위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자태. 어릴 때부터 좋은 교육을 받고 대우받으며 자란 이들은 그 행동거지에서부터 티가 난다. 그리고 지금 제 앞에서 예를 표하는 헬리아의 자태는 누가 봐도 귀족의.. 그것도 아주 치밀한 교육을 받은 고위 귀족의 그것이었다. 굳이 예를 표하는 모습이 아니라도 그랬다. 앉은 모습부터, 사소한 손짓 하나하나에도 묻어나오는 우아함은 가지고 싶다고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직 날 때부터 주변의 환경이 받쳐줌과 동시에 본인조차도 뛰어난 기질을 가지고 있는 존재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헬리아는 그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지르크니프는 일이 생각보다 어렵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잔인한 말일지는 모르겠지만 평민들은 다루기 쉽다. 그들에게 평생 한 번 볼 일도 없는 황제라는 존재와, 상상도 해보지 못했던 부와 명예를 보여준다면 눈이 돌아가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리라. 그러나 저렇게 부족함 없이 자란 이는 그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을 추구한다.
‘그러나 로브를 벗지 않는 것은 어째서지? 역시, 뭔가 숨기고 있는 건가.’
지르크니프의 자색 눈동자가 순간 날카롭게 빛을 발했다. 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곧 더없이 온화한 표정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렇군, 헬리아 공. 제국의 초대에 응해주어 고맙다.”
“아닙니다. 아르셰의 소개가 아니었다면 저 역시 초대조차 받지 못했을 겁니다.”
“아, 그렇지. 푸르트 양에게도 나중에 제대로 감사를 표하지 않으면 안되겠군.”
“ㅎ, 황공한 말씀입니다.”
갑자기 뜻하지 않게 황제까지 만나게 되어 여지껏 조용히 물러서 있던 아르셰가 당황하며 대답했다.
“그럼,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지. 일단, 푸르트 양을 통해 마법성에 연락을 취했다는 것은, 우리 제국을 위해 일해줄 마음이 있다는 것으로 이해해도 되겠나, 헬리아 공?”
“네, 분명 그럴 마음으로 온 것이긴 합니다만…”
이자벨의 눈이 지르크니프의 등장 이후 조용해진 플루더 쪽으로 향했다.
“…저는 매직 캐스터이고, 저 분이 제국 마법성의 수장이시라면.. 함께 할 일도 많지 않겠습니까? ..아까와 같은 상황이 또다시 반복될 수 있다면 솔직하게 사양하고 싶-..”
“—그런!! 그런, 내 사과했잖나! 아니, 지금 이렇게 사과하겠네! 부디! 사양하지 말고 나와 같이 마법을 연구해보지는 않겠나!!! 자네도 매직 캐스터지 않나! 분명, 그 지경이 6위계에 이르렀다면 마법에 대한 열의 역시 남다를 터!!!”
“-…”
아니, 그런 거 없다. 애초에 이자벨은 검사. 마법에 대한 열의라고는 쥐꼬리만큼도 없거니와 그다지 관심도 없다. 외려 검에 대한 열의라면 모를까. 그보다 예의라고는 있는 걸까, 이 인간은. 오늘 하루 벌써 몇 번째 말이 끊겨버린 이자벨이 포기하고 조용히 지르크니프를 돌아보았다.
피하고 싶은 상황은 바로 이런 상황을 말하는 것이라는 듯한 이자벨의 시선에, 지르크니프가 표정을 썩혔다.
“플루더!! 그렇게 자중하라 말했는데도..!! 큭.. 미안하군, 그럴 일은 없을 거다. 내가 단단히 주의를 줄 테니, 공은 염려하지 않아도 괜찮다. 만약 이런 일이 또다시 일어날 경우, 플루더와 대면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하는 방향도 고려할테니..”
“—폐하!!“
“자중 좀 해라, 플루더!! 네가 말하면 할 수록 일이 어렵게 되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건가..!”
다시금 소란이 일어나는 것에.. 그리고 그 소란이 제국 황제와 그 스승인 대 매직캐스터라는 작자가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에 이자벨은 생각했다.
‘왕국이 엉망이라더니 제국은 진창이로군.’
정말로 이런 곳과 연을 맺어도 괜찮은 걸까. 물론 제국에 대한 세간의 평은 굉장히 좋은 편이었다. 주변국과 비교해도 상당히 진보해 있을 뿐더러 특히 실력자라면 신분에 관계없이 등용한다는 것만으로도 제국은 괜찮은 국가였다. …그저 이자벨의 제국에 대한 첫인상이 매우, 안 좋았을 뿐.
속으로 한숨을 내쉰 그녀가 입을 열었다.
“..폐하의 앞에서 주제넘으나, 조건이 몇 가지 있습니다.”
그러자 본인도 차마 봐 주기 힘들다는 눈빛으로 플루더를 바라보고 있던 지르크니프의 표정이 다시 황제의 그것으로 돌아왔다.
“잠깐, 조건을 말하기 전에 먼저 그 로브를 벗고 신분을 제대로 밝혀 주지 않겠나? 그게 먼저라고 생각되는데. 어떤 조건이든 기본적인 신뢰도 없이 일이 진행될 수는 없지 않나.”
“안그래도 그 부분에 대해서 말하고자 하던 차였습니다.”
지르크니프의 날카로운 지적에 이자벨은 뜸을 들이듯 제 로브 모자를 만지작거렸다. 외모를 겉으로 드러내고 싶지는 않다. 최대한 변형해두기는 했지만 위그드라실에서 데이터로 등록해 둔 기본 외형에서 크게 벗어나게 할 수가 없었다. 혈연.. 나아가 쌍둥이라고 오해받을 수 있을 수준의 닮은 외형. 나중에 진짜 ‘이자벨’을 드러내게 된다면 필연적으로 이야기가 나올 수 밖에 없으리라. 그러나 이자벨은 생명체에게 통하는 환술 계열 마법이나 스킬을 가지고 있지 않았고, 마법성에서 그런 걸 사용하기에는 들킬 염려도 있었다.
그렇기에 이자벨은 최대한 외모를 드러내지 않는 쪽으로 ‘헬리아’의 설정을 짰으며, 그럴만한 명분도 만들어 둔 것이다.
“..저는 다른 이들이 보기에 조금 독특한 외형을 가지고 있습니다. 원래 저는 아주 머나먼 국가의 귀족이었습니다만, 이 외모가 가문의 명성에 누가 되었기에 약관이 되자마자 성을 버리고 유리아와 함께 모국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건.. 유감스럽군.”
“아닙니다. 저는 이렇게 유리아와 다니는 것이 즐거웠습니다. 여행을 하면서 깨달은 바가 많아 6위계에 접어들 수도 있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또한 그렇기에 두렵기도 합니다. 만약 오늘을 계기로 제국에 뿌리내리게 되었다가, 후에 다시 도망치듯 이 곳을 떠나게 될 것이, 쌓아 올렸던 지난 시간의 의미들이 헛되이 될까 봐 말입니다.”
이자벨은 마침내 로브의 모자를 끌어내렸다. 대체 얼마나 흉한 외모이기에.. 성을 버리고 모국을 떠날 정도란 말인가. 제국의 일원들은 저 로브 너머로 보이는 외모가 얼마나 경악스러운 것이던지 태연하게 반응하리라 마음 먹으며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제 첫번째 조건입니다. 결코 이 외모가 밖으로 드러나는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마침내 로브를 벗은 이자벨의 모습을 본 지르크니프의 눈이 크게 벌어졌다. 아니, 그 뿐만이 아니라 씩씩대고 있던 플루더와, 그런 그를 불안한 눈빛으로 주시하고 있던 카다인, 벽처럼 서 있던 제국의 유명한 기사까지.. 모두가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름답다. 땋아진 새하얀 백발과, 길게 드리운 속눈썹.. 분을 바르기라도 한 듯 하얗고 깨끗한 살결과 오밀조밀한 이목구비.. 장인이 집착적으로 열중하여 빚어낸 작품처럼, 완벽에 가까운 외모였다. ..그러나 완벽하다기엔 약간 아쉬운 면이 있기는 했다. 뭔가, 억지로 뒤틀어 놓은 듯한..
그러나 그런 생각의 향연도 그녀가 그 하얀 속눈썹을 깃털처럼 들어올렸을 때, 멈추고 말았다.
“…!”
“…저런……”
그 공간에 자리한 모두가 몸을 반사적으로 움찔 떨었다. 아름다운 속눈썹이 담고 있었던 것은, 마치 뱀파이어와도 같은 짙은 핏빛의 눈동자. 그 눈동자와 마주했을 때, 본능처럼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동시에 이해되기도 했다. 아무리 아름다운 외모를 지녔어도 저런 눈동자를 가졌다면 배척될 수 밖에는 없었겠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녀가 내건 조건이 당연하다는 것도.
“…제가 왜 외모를 감출 수 밖에 없었는지 이해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이해가 되다 못해 부끄러울 지경이군. 나조차도 반사적으로 반응하고 말았으니...미안하군.”
“미리 말해두지만, 저는 사람들의 피를 빨아먹는 뱀파이어가 아닙니다.”
“당연히, 공이 그런 괴물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뱀파이어는 아니고, 악마지만. 말할 리가 없는 진실을 묻으며 이자벨은 태연하게 다음 조건을 읊었다.
첫번째는 외부에 이자벨의 외모를 드러내지 않을 수 있도록 협조하는 것, 두번째는 이자벨이 어느 곳에서 조력하게 되던지 유리와 동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세번째는 업무 시간이 아닌 개인 시간에 일신의 자유를 보장하여 줄 것, 네번째는 이자벨과 유리의 안전을 보장할 것.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마지막은, 이자벨을 마법 연구 대상이 아닌 한 사람의 인격체로서 존중하는 것.
“무리한 것을 요구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폐하.”
“흐음.. 확실히 그래 보이는군. 세번째 항목이 조금 걸리긴 하지만.. 공이 그 자유로 범죄를 저지르거나 제국의 이름에 해를 끼치는 짓만 하지 않는다면, 문제는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당연하지만, 개인 시간에 일탈 행동을 하다가 위험에 빠지거나 제국에 피해를 입힌다면.. 제국은 그대들을 보호하지 않는다.”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니 염려 마십시오, 폐하. 그보다 마지막 조건은 제대로 지켜질 수 있겠습니까?”
“…물론, 당연…히라고 말하고 싶지만, 일단 최선을 다하지.”
지르크니프는 플루더 쪽을 힐긋 보고는 말했다.
“그럼 조건은 이것으로 다섯가지로군. 조건은 조건이고, 제국에서 일하는 대가로는 무엇을 받기를 원하나?”
지르크니프의 눈이 빛났다. 그녀가 스스로 귀족이라고 말한 것으로 그녀의 정체에 대한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부족한 것 없이 자란 듯 보이는 헬리아이니, 당연히 왠만한 것으로는 회유가 불가능할 터였다. 그래, 저 아래 범인들이 좋아하는 명예라던가, 권력이라던가.. 돈이라던가… 그런 것으로는 그녀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 리가..
“돈을 원합니다.”
“…응..?”
“돈이요.”
“……정말?”
“엄청 많이요.”
정말, 엄청나게 많이.
***
늦은 밤, 마차에서 내린 이자벨과 유리가 여관으로 돌아왔다. 지르크니프는 물론이고 앞으로 일하게 될 마법성과도 여러 가지를 조율하고 문서화하느라 시간이 늦어져 버린 것이다.
‘피곤하구나..’
달칵, 여관 객실의 문이 세상과의 단절을 알리자 마자 이자벨은 참고있던 한숨을 내뱉었다. 이상한 마법 변태의 난동에다, 생각지도 못한 황제와의 만남.. 하루만에 덜컥 맺어버린 근로계약이라.. 피로감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스트레스 풀기로는 디저트가 제격이지. 물론, 귀엽고 단 것으로!’
“유리, 너도 뭐라도 먹지 않겠… 허?”
단 것을 먹을 생각으로 신난 이자벨이 돌아본 유리는.. 무릎을 꿇고 고개를 깊이 숙이고 있었다. 그 광경이야 이자벨에게는 익숙한 것이었지만, 유리의 모습은 단순 예의가 아닌 깊은 사죄의 자세였다.
“감히, 이 미천한 종이 이자벨 님의 심원하신 계획을 망칠 뻔했나이다. 부디, 벌하여 주시옵소서.”
“안 망쳤잖나. 당장 내일부터 저 마법성에 가기로 했는데?”
“…이자벨 님께서 멈추어 주시지 않았더라면, 미련한 저는 그대로 일을 망쳐 버렸을 것이 분명하옵니다.”
패착으로 얼룩진 유리의 표정에, 이자벨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유리, 착각이 지나치다. 이 몸은 저딴 인간들의 목숨 따윈 신경 쓰지 않는다. 아까 그 늙은 인간이 들이대던 상황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몸과 나자릭의 힘이라면 모두 무로 만들고 새로이 계획을 시작할 수도 있었겠지. 뭐, 굳이 살인멸구가 아니더라도 말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자신을 바라보는 유리의 모습에, 이자벨의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가 피어났다.
“이 몸은 그저, 네가 당장 눈 앞의 상황에만 연연하지 않고 조금 더 깊이 생각해 줬으면 하는 거다. 굳이 그 늙다리 인간이 아니더라도, 앞으로의 여정에서 그와 비슷한 일은 언제고 일어난다. 그 순간마다 그 분노를 표출해서야 무엇도 할 수가 없다.”
어느새 유리에게로 다가선 이자벨이 몸을 숙여 꿇어 앉은 그녀의 어깨를 부드럽게 잡았다.
“이 몸이라고 내 대신 화를 내 준 네 마음을 왜 모를까. 그 마음만은 무척 기쁘다. 그래도 너를 보낸 길드장의 뜻도 이해를 해 줘야지. 이 몸을 말리라고 보냈는데 반대로 네가 화를 내고 있으면 어쩌자는 거냐.”
“..그, 그걸 어떻게..!”
“아하- 역시, 따로 명령을 내린 거로군? 찍어봤는데 맞았어.”
“이, 이자벨 님..”
가끔은 마구 괴롭혀주고 싶을 정도로 당황하는 NPC는 귀엽다. 하지만 오늘은 날이 아니다. 아인즈에게 빨리 전해야 할 기쁜 소식이 있기 때문이었다.
짤랑.
유리의 손에 금화가 찬 주머니가 떨어졌다. 주머니는 꽤나 묵직한 소리를 냈다.
“앞으로 생활하려면 너도 돈이 필요할 테지.”
“아, 아니옵니다, 이자벨 님. 저는 먹지 않아도 되고, 달리 필요한 것도 없기에.. 이것은 제게 과하옵니다.”
“그럼 네 자매들에게 줄 선물이라도 골라라. 이 몸과 길드장과의 여정에 뽑히지 못해서 적잖이 아쉬워하는 모양이던데. 기념품이라도 사 가면 위로가 되겠지. 사고 남은 돈은 편히 쓸 수 있도록 은화나 동화로 환전해 두고.”
“..황공하옵니다, 이자벨 님.”
미소지은 이자벨은 디저트를 가져오라고 유리를 내보낸 후 얼마 전 있었던 아인즈와의 대화를 상기했다.
-정말, 돈이 너무 부족하다구요.. 양피지를 구하러 간 데미우르고스 쪽에도 필요하고, 세바스 쪽에도 필요하고..
-보물전에 있는 금화를 쓰면 되잖아요? 그 정도로는 티도 안 날 텐데.
-그건 안돼요! 최후의 보루란 말입니다!
-모몬가 씨도 참 피곤하게 사시네요.
아인즈는 길드의 금전을 관리했었던 만큼 소득이 미미한 이 상황이 매우 부담스러운 모양이었다. 하지만 오늘로 그 부담도 많이 낮아질 터였다. 이자벨은 유리에게 주고 남은 돈이 담긴 자루를 만족스럽게 바라보았다.
지르크니프에게 선금으로 받은 돈만 해도 가히 엄청난 액수였다. 그야 물론, 세상에 단 하나.. 아니 이제 둘이 된 6위계 매직 캐스터를 고용하는 일이다. 한두 푼으로 될 리가 없다. 게다가 이자벨은 그것에 만족하지 않고 지르크니프를 탈탈 털어서 정말 거액의 돈을 약속 받은 것이다.
이자벨은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곧바로 아인즈에게 전언을 걸었다.
-모몬가아!!!!!!!
-우왓, 깜짝이야!!! 이, 이자벨 씨..??
-누나가 돈 벌어 왔다!
-...예?
------
장내기능시험 한 방에 패스- 크 매우 뿌듯한 것!!!
곧 태풍 온다던데 다들 몸 조심하고 오늘도 읽어줘서 고마워!
댓글 영역
획득법
① NFT 발행
작성한 게시물을 NFT로 발행하면 일주일 동안 사용할 수 있습니다. (최초 1회)
② NFT 구매
다른 이용자의 NFT를 구매하면 한 달 동안 사용할 수 있습니다. (구매 시마다 갱신)
사용법
디시콘에서지갑연결시 바로 사용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