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아데스의 유리 알파, 부르심을 받고 찾아왔사옵니다.”
하루에도 많은 일들이 벌어지는 아인즈의 개인실, 오늘은 머리를 단정하게 틀어올린 아름다운 미색의 메이드 하나가 아인즈의 앞에 무릎을 꿇고 있다.
“잘 와주었다, 유리 알파여. 오늘 내가 무슨 일로 불렀는지 짐작가는 바가 있느냐?”
“…미천한 제 머리로나마 추측해보자면 곧 있을 두 분의 작전에 대한 것이 아니시온지..”
“과연, 그 말대로다.”
유리의 말대로 아인즈와 이자벨은 곧 리 에스티제 왕국과 바하루스 제국에 직접 잠행을 나갈 참이었다. 그러나 정말로 그들 혼자 나자릭 바깥으로 나간다는 것은 수호자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힐 것이 당연했고 더불어 아인즈 역시 위험하다고 판단한 상태였다. 따라서 인간의 나라로 가는 만큼 인간의 외형과 다를 바가 없는 종복 중에서 수행원이 선별되었고, 그 결과 아인즈에게는 나베랄 감마가, 이자벨에게는 유리 알파가 내정된 것이다.
“..하오나 아인즈 님, 그렇다면 오늘 나베랄을 제외하고 저 혼자 부르신 연유가 무엇이옵니까..?”
“음, 그것은 네게 따로 내릴 명령이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하명하시옵소서.”
공손히 고개를 숙이는 유리의 모습은 인간과 정말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나 그런 유리의 종족은 듀라한. 아인즈와 같은 언데드에 속하는 종족이었으며, 이형종인 동시에 인간의 모습을 가진 얼마 안되는 NPC이기도 했다. 물론, 그녀의 목에 감긴 두꺼운 초커를 제거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그러나 아인즈가 이자벨의 수행원으로서 그녀를 선택한 것에는 단순히 인간과 그 외형이 다를 바가 없다는 이유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다.
“유리여, 너는 이자벨에 대해 얼마나 알고있느냐.”
“…예? 송구하오나 얼마나 알고 있냐는 말씀은…”
“성격에 대한 것 말이다.”
유리는 고민하는 듯 잠시 침묵하다가 대답했다.
“이자벨 님에 대해서 무어라 함부로 말하는 것은 다소 저어되오나…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는 자비로우시고, 다정하시며.. 조금은 짓궂으신 면도 있으신 듯 하옵니다.”
“음, 그렇군. 나도 네 말에 동의한다. …나자릭 내부의 존재에 한한다면 말이다.”
“그 말씀은..”
“이자벨은 분명 너희 모두를 애정하고 있다. 그것은 나로서도 확신할 수 있지. 그러나 나자릭 외의 존재들에 대한 이자벨의 카르마는 극악.. 네가 ‘짓궂음’이라 표현했던 그것이 그들에게는 어떻게 작용할 것 같으냐.”
카르마. 그것은 위그드라실에서 성향을 나타내는 것으로, 그 수치가 마이너스로 갈 수록 사악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NPC들에게는 그저 성향의 표식으로 사용되었으나, 플레이어들에게는 살인을 저지르면 저지를 수록 수치가 낮아지는, 유동적인 것이기도 했다.
그리고 아인즈 울 고운은 악명이 높은 이형종 길드였다. 그 말은 다른 평범한 플레이어들에 비해 PVP를 해야 할 상황이 잦았다는 것이다. 당연히 대다수 길드원들의 카르마 수치는 최하인 극악에 속했고, 이것은 아인즈와 이자벨 역시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이자벨은 꼭 필요한 상황이 아니어도 자진해서 인간종을 사냥하고 다니는 롤플레이를 즐기는 등의 극악무도함을 보여왔다.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녀가 연기하던 그 롤플레이 설정과 극악의 카르마가, 실제가 되어버렸다는 것이었다.
“송구하오나 미력한 몸인지라 아인즈 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말씀을 저로서는 이해하기가 어렵사옵니다.”
유리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아인즈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나자릭에서는 아주 드물게, 카르마가 +150. 즉, 선에 속하는 존재였다. 그리고 그것이 아인즈가 이자벨의 호위로 그녀를 선택한 이유이기도 했다. 그러나 유리 역시 어디까지나 나자릭의 존재. 이자벨이 원한다면 나자릭 외부의 존재야 어떻게 되든 어쩔 수 없다는 것이 상식에 박혀있는 것이겠지.
아인즈는 이 정도는 예상했다는 듯이 그녀를 위해 설명을 이었다.
“앞으로 이자벨이 나갈 곳은 인간의 제국이다. 국민 중 대다수가 인간.. 이종이라고 해 봤자 역시 인간종에 속하는 엘프 정도겠지만 보고에 의하면 그마저도 노예인 모양이더군. 인간들이 널려 있는 나라다, 유리. 여기저기 표적이 될 만한 인간들이 아주 많이 있는 거라고? 그것도, 언제 어디서 우리가 모르는 강력한 적이 나타날 지 모르는 낯선 땅에서 말이다.”
“…그, 그 말씀은..?”
“본래라면 나 역시 이자벨이 바깥의 인간들에게 무슨 짓을 하던지 신경쓰지 않는다. 그것 역시 그녀의 자유이니. 그러나 지금은 나자릭이 알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한 상태이다. 만약, 인간들의 제국에서 인간들에 대한 적대 행위를 하다가 이자벨이 위험에 처하기라도 한다면..”
“그것은 절대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옵니다!!”
상정하는 것만으로도 놀란 유리가 목소리를 높였다.
“그래,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된다. 그래서 너를 선택한 것이다, 유리. 네가 나자릭의 다른 이들에 비해 유순하고 선한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가 내리는 명령은 이것이니, 너는 이자벨이 외부에서 저지르려는 가학 행위를 최대한 말리고, 그녀가 폭주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지고의 존재의 행동을 막는 것. 그것은 유리 이외에도 모든 나자릭의 존재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행동 중 하나였다. 그러나 당황하던 것도 잠시, 유리의 눈에 결의가 차올랐다.
“유리 알파, 모든 것을 바쳐 명령을 완수할 것이옵니다.“
“그래. 믿는다, 유리.”
***
“준비는 끝났나, 유리?”
“예, 이자벨 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눈에 띄지 않는 복장으로 선택했사옵니다.”
유리는 가벼운 경장갑 위에 로브를 걸친 제 차림을 확인하며 대답했다. 그녀는 눈에 띄지도,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도 들키지 말아야 한다는 이자벨의 명령에 따라 목의 초커 역시 좀 더 눈에 띄지 않는 것으로 교체한 후, 그 위를 로브로 가려서 혹시나 모를 오해까지 원천봉쇄했다. 전체적으로 눈에 띄지 않고, 차림새 역시 화려하다거나 부티가 있어보이지는 않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입고 있는 모든 것이 품질이 좋은 고급의 재질이었다.
“흠, 문제는 없어 보이는군. 길드장과 나베랄은 얼마 전에 도착했다고?”
“예, 서로 다른 나라에서 강자가 동시에 출현하는 것은 여러모로 의심을 살 수 있으니 먼저 출발하신다고 아인즈 님께서 말씀하셨사옵니다.”
“..어차피 몇 년 정도 텀을 두지 않는 이상 피해 갈 수 없는 의심이다. 얼마 전에 카르네 마을에 우리가 나타났던 사실도 이미 왕국의 정부는 알 테고 말이지. 뭐, 길드장이 떠난 지도 꽤 됐으니 이 몸도 슬슬 준비해볼까.”
자리에서 일어난 이자벨이 거울 앞에 섰다. 그러자 등 뒤에 자리하고 있던 커다란 한 쌍의 박쥐 날개와 뿔, 꼬리- 악마의 특징들에서 스멀스멀 연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종국에는 완전이 형태를 잃고 연기로 변한 그것들이 그대로 이자벨의 몸으로 흡수되어 사라져버리는 것이다.
‘입력된 기본 외형에서 크게 바꿀 순 없지만 이 정도의 조정은 가능해. 애초에 원래 모습은 연기 덩어리 그 자체니까.. 얼굴도, 조금은 바꿀 수 있으려나.’
잠시간의 조정이 끝난 후, 이자벨은 유리를 돌아보았다.
“어떤가 유리, 이 정도면 정체를 숨기기엔 적당해 보이나?”
“..확실히 평소의 이자벨 님과는 다른 모습이시오나.. 매우 닮은 외형인지라 이자벨 님을 아는 자가 본다면 필시 혈연 관계를 의심하지 않을까 하옵니다.”
“이건 혹시나 모를 상황에 대비한 임시방편일 뿐.. 애초에 얼굴을 드러내는 일은 없도록 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다시 거울을 바라본 이자벨은 마지막으로, 역안을 만들기 위해 과금했던 스킬(-특정 부위의 색을 반전시키는 온오프 스킬)을 해제했다. 그러자 새카맸던 공막이 인간의 것처럼 흰색으로 변하는 것이다. 본래라면 이 스킬로 붉은 눈동자 역시 녹안으로 바꿀 수 있을 것이었으나.. 그녀는 이후를 생각해서 그것은 보류하기로 했다.
그것을 끝으로 미리 준비해뒀던 장비로 갈아입고 모든 채비를 마친 이자벨은 나자릭을 떠나기 위해 방 밖으로 나왔다. 문득 나와서 보니, 그곳에는 이자벨의 근위대가 나라라도 잃은 표정으로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이런.. 생각해보니 이 몸이 없으니 당분간은 실직이로군, 마몬. 슬프겠어.”
“…언제고 이자벨 님의 무사귀환을 기원하고 있겠습니다.”
“후후.. 헛소리는 관두고, 이 몸이 돌아올 때까지 너희는 7계층으로 돌아가 이전과 같이 데미우르고스를 보좌하도록 해라. 그리고 가기 전에 이 몸이 길드장으로부터 받은 데스나이트와 은신형 서번트들을 지금 지표로 보내라고 알리도록.”
“명령, 받들겠습니다.”
“가자, 유리.”
명령을 마치고 거침없이 지표로 올라가는 이자벨을 유리가 뒤따랐다.
“데스나이트라니.. 전이로 곧장 제국으로 이동하시는 것이 아니였사옵니까?”
“아, 현지의 언데드와 길드장의 언데드가 얼마나 다를 지 흥미가 생겨서 말이다. 가는 김에 카체 평야를 경유해서 갈까 한다. 인간 기준으로 매우 먼 거리긴 하지만.. 뭐, 우린 인간이 아니니 문제 없겠지.”
그렇게 이자벨과 유리는 데스나이트 1기와, 그림자 악마와 한조를 비롯한 은신형 서번트들을 이끌고 카체 평야로 전진하게 된 것이다. 물론, 유리와 데스나이트는 날 수가 없는 데다가 이자벨 역시 그 먼 거리를 볼품없이 뛰어갈 생각은 없었기에 아우라의 마수를 빌려 타고가기로 했다.
그렇게 이동하기를 한참.. 흔들림 없이 엄청난 속도로 달리는 마수의 위에서, 이자벨이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러고 보니, 유리는 착했지?”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시온지..”
“플레이아데스 중에서 가장 착하잖아? 유리가.”
“가장 착하다니.. 모두 열심을 다하고 있사옵니다.”
“뭐, 그건 그렇지. 그렇고 말고.”
“..?”
아무리 인간형 NPC가 없다지만 근접 클래스인 이자벨에게 굳이 같은 계열의 유리를 호위로 붙여준 것은… 아마 아인즈의 걱정이 한 몫을 차지한 것이리라. 물론 유리가 그 사실을 아인즈에게 들었는지, 명령을 받았는지, 자각은 하고 있는건지.. 그것까진 이자벨도 알지 못했다.
“정말이지.. 걱정되면 된다고 솔직하게 말하면 될 것을.. 여전히 자기주장이 없어서 걱정이다.”
“이자벨 님..?”
“-뭐, 아무 것도 아니다. 그것보다, 이제 슬슬 언데드가 보이기 시작하는군. 여기서부터는 약속했던 가명으로 부르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헬리아’ 님.”
“그럼 ‘유리아’, 데스나이트를 돌격시켜 지금부터 이 몸 앞을 막는 모든 언데드들을 척살하도록 지시해라.”
이자벨의 의사에 따라, 이제껏 이자벨과 유리가 탄 마수의 뒤를 쫓아오고 있던 데스나이트가 거대한 플람베르쥬를 빼들고 미친듯이 돌진해 나가기 시작했다. 무시무시한 언데드의 칼질에, 카체 평야의 안개 속을 배회하고 있던 스켈레튼이나 좀비 따위들은 손쉽게 두 동강이 나 소멸했다.
“흐응, 창조자가 아니어도 어느 정도의 명령은 다 알아듣는군. 언데드가 가득한 평야라더니, 다른 곳보다 좀 더 짙은 부정의 기운과 시야를 방해하는 안개 정도에 저급한 언데드 밖에는 없는 모양이고. 이 페이스라면 기껏 해봐야 엘더 리치 정도가 한계려나.”
마수의 등에 매달린 널찍한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이자벨은 실망스러운 한숨을 토해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 유리가 이자벨의 흥미를 끌만한 것을 보고하는 것이었다.
“헬리아 님, 선발대에서 특이사항을 보고해왔습니다.”
“하? 특이사항? 그게 뭐지?”
“..인간의 무리를 발견했다는 소식입니다.”
***
“하, 나는 진짜 여기 싫어.”
“어쩔 수 없잖아, 이미나. 요즘 전혀 의뢰가 없었으니까.”
“워커한테도 언데드 토벌 의뢰가 들어오는 게 다행이지. 이것도 요즘 유독 언데드 수가 늘어나서 가능한 거라고.”
바하루스 제국에서 활동 중인 워커 팀, 포사이트. 전사, 궁수, 매직캐스터, 신관으로 구성된 팀은 언데드를 토벌하고 보수를 얻기 위해 몇 시간 째 갖가지 종류의 스켈레톤들과 씨름 중이었다. 요즘 들어 워커에게 주어지는 의뢰가 없어 돈이 궁해졌기에 어떻게든 싸우고 있기야 했지만, 카체 평야는 엘더 리치도 나오는 위험한 곳인데다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와 기분 나쁜 죽음의 기척이 자욱했기에 그들로서도 그다지 오고 싶지 않은 곳이였다.
“모두 집중해 주시죠. 저쪽, 좀비가 가까워지고 있습니다만.”
“내가 처리할게, 로버. <Magic Arrow 마법화살>.”
금발의 깡마른 소녀가 영창을 내뱉자, 마법진과 함께 생성된 화살들이 좀비에게로 날아가 그 심장에 박혀들었다.
“나이스, 아르셰- 명중률이 점점 좋아지는데?”
“..별로, 평소 하던 대로 했을 뿐이야.”
“좋아, 좋아. 슬슬 다들 지쳐가기도 하고, 돌아갈 때도 언데드는 나올 테니 오늘은 이쯤 하고 돌아갈까. 토벌한 개체수는 제대로 파악한거지?”
“물론이죠, 헤케란. 증거가 될만한 것도 최대한 챙겼으니까요.”
이제 돌아가기만 하면 몇 시간동안의 씨름도 한 동안은 안녕이었다. 돌아가면 당장 더러워진 옷부터 벗고 목욕부터 할 테다. 각자 돌아가 피로를 풀 생각으로 힘을 낸 그들은, 그들이 머물고 있는 여관으로 돌아가기 위해 방향을 잡았다. 하지만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는 바람에 그 계획은 무산되고 만 것이다.
쿵. 쿵. 쿵.
“..이게 무슨 소리지?”
쿵. 쿵. 쿵
“무언가, 가까이 오는 듯한…”
“일단 모두 전투 태세를 갖춰!! 무언가 강한 게 올지도 몰라!”
카체 평야의 안개는 인간에게 있어서는 가시거리를 줄이는 최악의 방해물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소리가 나는 것으로 추정되는 방향을 향해 집중하고 있을 수밖에는 없었다.
쿵. 쿵.. 쿵… 쿵…
소리가 느려지고, 동시에 무척이나 가까워졌다고 느꼈을 때, 안개 사이로 그것이 모습을 드러냈다. 쿵쿵 거리는 소리를 내며 천천히 안개를 젖히고 나타난 그것은… 거대한 해골의, 기사였다. 2미터는 족히 넘어보이는 신장. 그 신장의 거의 대부분을 가릴 정도로 거대한 타워 실드와 플람베르쥬. 날카로운 가시가 돋아난 풀 플레이트 아머까지.
뻥 뚫린 눈구멍으로 산 자들을 응시하는 그 모습은 포사이트에게 하여금 그것이 지금껏 단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강대한 언데드라는 사실을 각인시켜 주었다. 언데드가 내뿜는 살기에 노련한 포사이트의 리더, 헤케란도 절로 공포에 질려 중얼거렸다.
“ㅈ, 저게 뭐야.. 스켈레튼 워리어..? 아냐, 그럴 리가 없는데..? 대체, 저 모습은..”
“<사자심 Lion’s Heart>!! 정신 차리십시오, 헤케란-! 어서 도망칠 방법을..!”
“꺅!!!”
“이미나!!!”
마치 여유를 부리는 듯이 천천히 다가오던 녀석이 순간 엄청난 속도로 플람베르쥬를 휘둘렀다. 일부러 그런 것인지, 거대한 그것이 이미나의 바로 앞, 지면을 강타했다. 단지 그것 뿐인데도 이미나는 서있던 곳으로부터 튕겨져 나와 바닥을 몇 바퀴고 굴러야 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팀의 전위, 헤케란이 정신을 잃은 이미나의 앞을 가로막고 섰다. 그것의 앞에 마주하고 서니 더욱 선명해졌다. 몇 번이고, 동료들을 대신에 수많은 공격들의 앞에 섰던 그였음에도.. 확신이 들어버린 것이다. 저 존재의 공격을 단 한 번이라도 몸으로 막아낸다면, 그것으로 자신의 목숨은 없을 것이라고.
“로버딕!!!”
“알겠습니다, <언데드 퇴치>!!”
헤케란의 외침에 이어, 신관인 로버딕이 스킬을 사용했다. 신관 클래스가 가진, 통상적으로 하루에 4회만이 사용 가능하다던, 언데드에게 특화된 스킬. 로버딕이 이 스킬을 사용하면 스켈레튼을 비롯한 하급 언데드들은 줄행랑을 치는 것이 보통이었다.
“…맙소사… 안돼.. <마법 최강화 Maximize Magic - 턴 언데드 Turn Undead>!!”
스킬에 뒤이은 마법의 적중에도, 녀석은 그 자리에서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달리 데미지를 입은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그저, 그것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마치 비웃기라도 하는 듯 그르렁거리는 소리를 울리면서.
“<갑주강화 Reinforce Armor>!! 헤케란, 어서 물러서!! 예전에 파라다인 스승님께 들은 적이 있어. 무척 거대한 형상의 전설적 언데드가 있다고!! 저건 그 존재가 분명해!! ..<죽음의 기사 Death Kinght>가, 확실해!”
“..죽음의 기사…! ……아르셰! 너야말로 이미나를 데리고 도망쳐!! 넌 비행 마법을 쓸 수 있으니 이미나를 안고 도망치는 거야! 로버딕, 너도 신관이니까 분명 살 수 있어!! 어서 가!!!”
“당신을 두고 어딜 가라는 겁니까!!!”
“정말 다 죽을 작정이야!?!”
“!!!! 헤케란!!!! 안돼!!!!!”
아르셰의 비명과도 같은 외침과 함께, 데스나이트의 공격이 날아들었다. 눈 앞이 한 순간에 점멸하고, 헤케란이 정신을 차렸을 땐 한참을 날아가 바닥에 쳐박혀 있는 상태였다. 입에서도, 코에서도 피가 줄줄 흘렀다. 아르셰가 강화 마법을 걸어주지 않았더라면 그대로 죽었으리라.
“헤케란!! <중상치료 Middle Cure Wounds>!!!”
“큭..제발, 가… 제, 발…”
데스나이트가 끝을 내려는 듯 빈사 상태가 된 헤케란의 앞에서 그 무기를 다시 치켜들었다. 그 앞에 쓰러진 헤케란도, 그것을 무력하게 지켜볼 수 밖에 없는 아르셰와 로버딕도.. 모두의 눈에 절망이 깃들었을 때, 그 목소리는 들려왔다.
“-감동해서 눈물이 줄줄 날 지경이군.”
있을 리가 없는 제 3자의 목소리에, 데스나이트가 공격을 중단하고 몸을 그 방향으로 돌렸다. 그 행동은 이미 포사이트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것을 온 몸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가라, 유리아.”
“하아아앗!!!!”
목소리가 한 번 더 울림과 동시에, 기합 소리와 함께 안개 속에서 한 인형이 튀어나와 주먹을 뻗쳤다. 그것은 정말로 훌륭한 동작으로, 데스나이트의 다리에 정권을 박아넣었다. 그 주먹질에, 놀랍게도 데스나이트가 균형을 잃고 휘청거렸다. 연격으로 다리를 맞으며 휘청거리던 그것은, 더욱이 분노한 모습으로 포효를 내지르며 무기를 고쳐잡았다. 그러자 안개 속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한 번 더 울려퍼졌다.
“물러서라, 유리아. ..<정화 Purification>.”
‘유리아’라고 불린 사람의 멀찍이 물러서자 안개 속에서 목소리의 주인이 걸어나왔다, 한 손에는 지팡이를 들고, 전신을 로브로 감싼,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성. 그녀는 포효하는 데스나이트의 모습에도 당황하지 않고 태연하게 강력한 위력의 신성 마법을 사용했다. 한 순간 하얀 빛이 터져나오고, 이에 적중한 데스나이트가 마치 고통을 느끼는 것처럼 눈에 띄게 휘청거렸다.
“이걸로 끝이다!”
휘청거리는 데스나이트에게로 뛰어오른 그녀가 쥐고있던 지팡이를 휘둘러 그 안면부를 강하게 강타했다. 그 강한 힘에 쿵, 하는 소리를 내며 뒤로 주저앉은 녀석에게 여성은 다시 한 번 더 지팡이를 치켜올렸다. 그렇게 최후의 일격을 날린 그녀가 먼지로 변해가는 데스나이트의 시체에서 내려왔다.
“<마법최강화 Maximize Magic - 중상치료 Middle Cure Wounds>. 괜찮은가?”
“어, 어떻게…”
“..이곳을 지나치던 차에 소란스러운 소리를 들은 거다.”
뒤집혔던 속이 편안해지고 출혈이 멎는 것을 느끼며 헤케란이 더듬더듬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목숨을 구해주셨습니다.”
쓰러진 이미나를 부축한 로버딕 역시 감사를 표했다.
“같은 신관으로서, 감탄했습니다.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아르셰, 너도 어서 감사를- ..아르셰?”
자신의 동료들 중에 구해짐 받고도 감사를 표할 줄 모르는 이는 없었다. 이미나는 정신을 잃었으니 그렇다 치고, 아르셰는 특히나 예의가 바른 아이었다. 그러나 아무런 말도 들려오지 않는 것에 헤케란은 그녀 쪽을 돌아봤다가 놀라고 말았다. 아르셰가, 데스나이트를 마주쳤을 때보다 경악한 눈으로 생명의 은인을 쳐다보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 아르셰는 보고 있었다. 인간 중에 유일하다는, 인간의 한계- 6위계에 다다른 자신의 스승님과 동급의 오라를, 눈 앞의 은인에게서도 보고 있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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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루더: 뭐? 같은 6위계라고...? 아 침고인다
운전면허 학원 등록했다. 1종 따야하는데 귀찮네 이거 돈도 많이 들고..
사실 데스나이트에게는 마법보다 이자벨의 지팡이로 후리기가 더 치명적이었다는 사실은 안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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