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마이너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창작/번역] 점자성서) 황금에 새겨진 추억앱에서 작성

Psychedelic_surreal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04.13 12:09:15
조회 330 추천 11 댓글 13
														

용찬의 땅이자 부패의 땅 케일리드의 상부, 흐르는 물이 언제나 있는 용총에서 「파름」 대교 너머에 자리한 곳, 짐승 신전. 그 곳에는 사제가 살았다.

두건과 로브로 온 몸을 꽁꽁 감싼 그 짐승은 분명한 지성을 가지고 있었다. 죄책감을 품고서 속죄하는 그림자는 굶주리며 「죽음」을 먹어치워갔다.

그랭이라는 이름의 사제가 언제부터 그 신전에 살았는지, 애초에 그 신전은 언제 만들어졌고 그랭은 언제 태어났는지, 아는 사람은 드물다.

황금 나무보다 이전에 세워지고 태어난 것들을, 황금 나무의 치세 아래 사는 자들이 알 수는 없을 것이다.



비는 온 사방을 뒤덮은 채 처절하게도 내렸다.

평소와는 달리 그랭은 신전 바깥에 있었다. 밤의 장막이 내려오자 황금 나무는 그 어둠 속에서 더 찬란히 빛났다. 내리치는 빗발을 맞으면서 그랭은 금빛의 광휘를 뚫어져라 응시했다.

그리고 다섯 손가락 달린 손을 꽉 쥐었다. 손등에 달린 기묘한 아뮬렛은 누구라도 본능적으로 뒷걸음치게 만들 만한 기운을 뿜고 있었다. 그러나 온갖 더러운 일을 행하고 시체들의 산을 쌓으며 피와 살점과 뼛조각을 묻힌 그 손과 달리, 그랭의 눈은 항상 황금 나무의 찬란함과 따뜻함을 바라보았다.

황금 나무, 엘든 링의 상징이자 황금률의 표상. 그리고 저 안에 그랭의 주인이 있다. 그랭이 태어난 목적이자 이유가 있다.

뒤집힌 홍예 모양의 룬에 꿰인 채 매달린 여신, 영원한 여왕 마리카. 그랭은 한때 그 찬란함에게서 말리케스라는 새 이름을 하사받고 그 그림자 속에서 달리고 뛰고 싸웠다. 마리카와 말리케스는 마치 누이 같았다. 둘은 황금의 광채 속에서 찬란히 빛나며 영광의 세월을 누렸다. 그 풍양의 나날은, 그러나 오래 가지 못했다.

비는 그칠 기미 없이 내렸다. 벼락이 내리치고 맹풍이 불었지만 그랭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그러고 싶었다. 그것이 자신에게 어울린다고, 사제는 생각했다. 다음 여명이 머지 않았지만 해가 보기 싫었다. 빛을 받기가 싫었고 따뜻함을 쬐기 싫었다. 그랭은 그것들이 너무나도 과분하다 생각했다. 자신 때문에 부숴진 영광을 떠올리기란 괴로웠다.

그러나 도망치고 싶다 해도 결국 사제는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랭의 충심은 그 대상을 바꾸지 않았다. 인도에 대한 믿음이 꺾이는 법도 없었다. 자신이 저지른 일이니 자신이 책임을 지고 수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직 갈 길은 멀다. 적들이 죽음 앞에 전부 바스라지고 그 날의 죄를 전부 갚게 될 때까지, 쓰러질 수는 없다. 죽음을 전부 되찾는 순간이 오면...

그랭은 황금 나무를 향해 울부짖었다. 과거를 향해 외쳤다. 외치고 또 외쳤다. 야속하게도 목은 쉬는 법이 없었고, 그 소리는 황금 나무에 닿을 일이 없었다. 결코 들리지 않을 절박함은 소명을 다하지 못한 채 허공에서 빗속에 녹아 사라져갔다. 대답은 없었고 메아리도 들리지 않았다. 빛바랜 자는 이 소리를, 이 비명을 들을 수 있을까.




음모의 밤이 있던 날, 말리케스는 잠들어있었다. 정신을 차린 짐승은 곧 있어서는 안될 파멸과 잿더미를 마주했고, 절망했다. 대체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알 수 있는 것은 자신이 죽음을 빼앗겼다는 것과 고드윈이 온전하지 못한 죽음을 맞이했다는 것, 그리고 엘든 링이 파쇄되었다는 점뿐이었다.

누구의 잘못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이미 죽음과 하나 되어있던 말리케스는 죽음을 빼앗기며 기억조차 빼앗기고 말았다. 막연한 책임감이 느껴졌다. 모든 것이 자신의 탓인 것만 같았다. 어찌할 수 없고 어찌해야 할지도 모르는 죄책감에 짓눌린 채, 그림자는 속죄하기 시작했다.

수치, 죄책감, 분노, 회한. 그랭은 고통에 몸부림치면서도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오랜 분투와 노력과 기다림 끝에 한 전사를 만났다.

어딘가 쓸쓸함을 간직한 빛바랜 자는 채울 수 없는 공허를 가지고 있었고, 마치 모든 것에 대해 오래 전에 질려버린 듯 항상 허공을 보는 듯했지만, 그 성정 속에 언제나 있던 상냥함은 그랭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았다.

사제가 먼 옛날 뽑아낸 자색 눈은 죽음이 깃들어있었기에 다른 죽음에 이끌렸다. 그 눈을 인도 삼아 지하의 대묘지를 파헤치고 온갖 기묘한 곳들을 누비며 틈새의 땅에 퍼진 죽음을 하나둘 회수해왔다. 머리가 깨질 듯한 고통과 죄의 괴로움을 느끼면서도 그랭은 하나둘 사근을 먹어치워갔다.

머리가 깨져나가는 듯한 감각과 함께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여 빛바랜 자를 공격한 적도 있었지만, 짐승은 이내 지성을 되찾고 공격을 멈추었다. 그 때 빛바랜 자의 얼굴에서 보이는 감정은 놀라움이라기보다 슬픔에 가까웠다.

죽음에 잠식되어 뒤틀린 나무뿌리를 제자리로 돌려놓을 때마다 기억이 조금씩 돌아왔다. 과거도 한 조각씩 맞춰져갔다. 이대로라면 정말 수습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랭은 희망을 가졌다.




그 처절한 외침이 정말 들리기라도 한 듯, 빗속에서부터 빛바랜 자는 나타났다. 평소와 달리 벗은 투구를 품에 안은 전사의 걸음걸이는 많이 지쳐있었고, 맨얼굴은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눈가의 주름과 내려간 입꼬리가 합쳐져 상당히 늙어보였다.

"...신전 안에 아무도 없길래 놀랐는데, 여기 있었나."

그랭은 눌러쓴 두건 밑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이 약간의 과거마저 오래는 허락될 수 없단 말인가. "그래. 무슨 일로 왔지?"

빛바랜 자에게는 확실히 무언가 볼일이 있었지만, 지금 당장 말하고 싶지는 않은 듯했다. 빛바랜 자는 바위 위에 걸터앉았다.

"...네 과거를 말해줘."

그랭은 조금 놀랐다. 너무나도 오랜 시간 동안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았던 것을 지금 빛바랜 자는 묻고 있었다. 그러나 그 질문에는 악의가 담겨있지 않은 듯했다. 꽤 망설이다 겨우 꺼낸 듯한 물음에서는 대신 무언가 준비하고자 하는 의지가 엿보였다.

"...왜인지는 묻지 않겠다. 나도 어차피 심심해지던 참이니 잘됐군."

그랭은 잠시 침묵했다가 서서히 입을 열었다. 가라앉아있던 과거가 서서히 수면 위로 올랐다.








틈새의 땅이 바위와 폭풍과 벼락과 짐승으로 가득했던 때, 파름 아즈라는 그 도읍이었다.

틈새의 땅의 규율에 필요한 것은 왕과 신이라는 점은 그 아득한 과거에서부터 이어져온 것이었다. 마치 땅 자체에 새겨진 법칙처럼, 파름 아즈라에도 왕과 신은 서로가 서로의 반려로서 존재했다.

한 쪽은, 다섯 머리의 용. 붉은 벼락의 구름과 시간을 뒤트는 힘을 가진 폭풍으로 용은 왕의 칭호를 얻었다. 강력한 힘을 가진 용은 「플라키두삭스」라는 이름과 함께 수인들에게 내려진 벼락의 축복을 반영구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그 축복은 왕의 상징이 되었고, 많은 적들이 용왕의 축복을 입은 곡도에 베여나가 쓰러졌다.

다른 쪽은, 「쌍조」. 자색 눈에 여섯 쌍의 검은 날개와 말라비틀어진 회색의 몸을 가진 그 죽음의 화신을 파름 아즈라의 수인들은 신으로서 숭배했다. 파름 아즈라의 수많은 영묘와 바위에 그 몸이 파묻히는 식으로 매장된 고룡들은, 지금도 남아 죽음을 숭배했던, 야성 깃든 고대 문명의 흔적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파름 아즈라에는, 더 높은 신이 있었다.

넓디 넓은 원형의 신전에 새겨진 원들의 호. 그 금빛 문양을 수인들은 태초의 순간에 파름 아즈라를 탄생시키고 틈새의 땅 전체를 빚어낸 신의 흔적이라 했다.

그 신의 존재는 허무맹랑한 것이 아니었다. 다섯 손가락과 황금. 짐승 사제들의 무기인 단검은 그 신이 파름 아즈라의 짐승들에게 내린 두 축복, 지성과 생명을 상징했다.

그리고 용왕과 쌍조 또한 생명에 있어서는 꽤나 기이한 존재들이었다.

용왕은 불사의 존재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 몸이 죽을 때마다 왕은 시간을 뒤트는 힘으로 자신의 시간을 되감아 영원을 살았다. 왕은 죽지 않았다.

쌍조는 불사의 존재가 아니었다. 그러나 이미 죽은 존재였다. 죽은 존재였기에 죽을 수 없는 신은 많은 숙적들에게 있어 공포의 존재였고 파름 아즈라의 백성들에게 있어 자애로운 어머니였다. 신은 죽지 않았다.

그렇게 죽지 않는 왕과 신을 필두로 파름 아즈라는 영광의 세월을 누렸다. 하늘에 뜬 자색 태양은 미지근하게, 너무 따뜻하지도 않고 너무 차갑지도 않게 파름 아즈라를 비추며 원초의 문명을 세례했다. 찬란한 나날들이었다.




"...자색 태양이라고? 분위기 하나는 끝내주겠는데." 빛바랜 자는 조금 감탄했다.

그랭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괴이한 미적 감각이군. 그 아래에 있으면 나는 정신이 나갈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다."




하지만 그랭만은 그 속에서 고독했다.

파름 아즈라는 죽음을 숭배했다. 그러나 어디에도 언제나 예외는 존재한다. 그랭은 바로 그 예외였다. 짐승 사제임에도 그랭은 죽음을 그닥 좋아하지 않았다. 좋아할 수 없었다. 살아있는 한은 방도가 있고 길이 있으며 길이 있는 곳에 희망도 가능성도 있다고 예전부터 믿어왔던 그랭의 신념은 결코 꺾이지 않았다. 죽음은 어디로도 이어지지 않는다. 저 무량의 허무가 모든 것의 종착지일지라도 끝까지 발버둥치고 몸을 뒤채며 숨을 쉬고 싶었다. 그랭은 그저 그러고 싶었다.

다른 사제들과 같이 기도를 드리고 같이 왁자지껄하게 떠들며 지내는 동안에도 그랭은 결코 마음 속 깊숙이 웃을 수 없었다. 온 사방이 영묘이고 죽음을 영광스럽게 여기는 땅에 홀로 떨어진 듯한 기분. 자신을 이해해주는 사람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듯한 숨 막히는 감각. 그랭은 다만 자신이 아직 살아있음에 감사하며 하루하루를 버텨낼 뿐이었다.




그래, 그랬지. 그랬었지. 그랭은 잠시나마 선명하게 떠오른 자신의 과거에 희미하게 미소지었다. 그리고, 아직 나는 살아있다. 살아있는 한은 길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어차피 얼마 못 갈 행복을 조롱하듯 몰락의 기억은 필연적으로 뇌리를 찢고 들어왔다. 그랭은 얼굴을 찌푸렸다. 빛바랜 자는 불길한 예감을 느낀 듯 편안하던 자세를 조금 고쳐앉았다.




어느 날, 드높은 우주로부터 무언가 떨어졌다. 그것은 온갖 별로 이루어진 침입자, 영원한 암흑에서 태어난 사생아였다. 악의를 가진 괴물은 파름 아즈라에 막대한 파괴의 흔적을 남기고 토벌되었다.




"...아, 그럼 이 무기도?" 빛바랜 자는 「유적의 대검」을 꺼냈다.

"그래. 처음 그 파편을 봤을 때 그게 왜 네 손에 있는가 하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랭은 복잡한 심정으로 대답했다.




그리고 그 파괴는 단지 전조일 뿐이었다.

언제부터 용왕의 비늘이 금빛으로 덮이고 그 숨결에 「황금」이 깃들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용왕은 어느샌가 그 백성들 앞에 모습을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그와 비슷한 시기에 신전에 새겨진 호의 황금도 조금 그 색이 바뀌었다고 몇몇 사제는 말했지만, 대부분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무언가 뒤틀리고 있었다. 수인들은 단순히 지성을 얻는 것을 넘어 본연의 야성을 잃어가고 있었다. 거친 발톱은 점점 부드러워졌고 날카로운 송곳니는 하나둘씩 그 예리함을 상실해갔다. 거기에 더해 맥동하는 생명은 도를 넘어 짐승들의 모습은 점점 괴이하게 뒤틀려갔다. 그 변화는 저 아래에 태동하고 있는 다른 문명 때문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도 있는 것일까.

어느 날, 홀로 거처로 돌아가던 그랭은 어떤 환영을 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지금 눈 앞에 없는 광경이 머릿속에 펼쳐진 것이기에 그렇게 부를 수만 있었을 뿐 분명히 일어나고 있는 일이었다. 그랭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무언가에 선택받은 듯, 그 모습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의식 속으로 들어와 펼쳐졌다.

용왕과 쌍조가 싸우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대련이나 어떤 특수한 목적이 아니었다. 그럴 수 없었다. 너무나도 처절한 그 싸움에서 용왕은 다섯 머리 중 하나를 이미 잃었으며 쌍조도 두 쌍의 날개를 뜯겼다. 분명 그것은 목숨을 건 싸움이었다.

용왕은 마치, 무언가에 끌려다니는 듯 움직였다. 기묘했다.

왕과 신의 싸움. 누가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싸움이었지만 결국 한 쪽은 죽음의 화신. 용왕은 시간이 지날수록 만신창이가 되어가는 듯했다.

용왕의 비늘이 쌍조에게 직접 닿은 것은 그때였다.

그 비늘 또한 시간의 힘을 머금고 있다. 그 시간의 힘이 무언가 영향을 끼친 것일까, 쌍조는 잠시 주춤하더니 이내 포효하며 달려들어 기민한 몸놀림으로 용왕의 다른 머리마저 뜯어냈다. 용왕은 고통에 몸부림치면서도 「황금」의 숨결을 뿜어냈다.

쌍조는 금빛 불에 타며 고통스러워했다. 결코 보일 리 없을 그 모습에서 그랭은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그리고 이내, 깃털과 날개를 모두 잃은 새는 고꾸라졌다.


그리고 죽었다.


경악에 빠져 허우적대던 그랭은 이내 뭍으로 나와 상황을 정리했다. 용왕의 비늘은 그 주인이 가진 시간의 힘을 품고 있다. 그리고 그 비늘이 쌍조에게 닿자, 쌍조의 시간은 되감겼고...


쌍조는 잠시나마 살아있는 존재가 된 것이다. 그리고 살아있는 존재는 죽을 수 있다.




"「고룡 왕의 비늘은 미약하게 시간을 왜곡하며 그렇기에 신을 죽일 무기를 만든다」..." 빛바랜 자는 중얼거렸다. "그런 말을 들었지."

"그런 소문도 있나?" 그랭은 어이가 없다는 듯 물었다. "대체 어떤 경위로 소문이 퍼지는 건지, 알 수가 없군."

"이제 적어도 난 확실히 알게 되었네." 빛바랜 자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러나 방법을 잊은 것인지 그러기가 힘든 것인지 입꼬리는 평형을 이루는 것조차 힘들어보였다. 그랭은 잠시나마 같이 웃어주었다. 그리고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곧이어 쌍조의 몸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그 몸에서 빠져나온 검붉은 화염은 하늘로 날아갔다. 대체 어디로 그리도 급히 향하는 것인지, 그 때의 그랭은 알 수 없었다.

용왕은 치켜들고 있던 고개를 갑자기 떨구고서 머리를 흔들었다. 정신을 쉬이 차리지 못하는 듯한 움직임이 끝나자 기묘하게도 용은 어리둥절한 모습이었다.

이틀은 사흘이 되고 닷새는 엿새가 되었다. 몇 달이 몇 년이 되었다. 그러나 파름 아즈라는 물론이고 틈새의 땅 전역을 뒤져도 쌍조는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어느샌가 자색 태양은 뜨거운 적색 태양으로 뒤바뀌어 있었고, 쌍조의 자식들이자 권속인 죽음의 새들은 본래의 화염과 털을 잃고서 차가운 푸른색의 영혼 불꽃을 쓰게 되었다.

그 모든 정황이 가리키는 사실은 하나뿐이었다. 쌍조는 이 땅을 떠났다.

용왕은 울부짖었다. 목숨을 걸고 싸우던 왕의 모습은 거기 없었다. 다만 반려를 잃은 용의 모습만이 있었다. 너무나도 거대한 슬픔과 절망과 당혹과 배신감. 용왕은 이내 자신의 주변으로 막대한 폭풍을 만들어냈다. 시간의 힘을 담고 있는 그 폭풍은 파름 아즈라의 거의 절반을 뒤덮었다. 건물이 파괴되고 거대한 파편이 흩날리며 온 사방이 혼돈으로 가득 찼다.

용왕은 시간 속에 멈춰있었다. 그 곳에서 영원을 기다리며 알 수 없는 이유로 자신을 떠나고 이 땅을 버린 신이 돌아올 때까지, 용왕은 기다릴 것이다.

그러나 파름 아즈라에는 이제 신도 왕도 없었다. 거기 남은 것은 점점 바위 비늘과 두 쌍의 날개를 잃고 깃털을 얻어가는 고룡, 아니 비룡들과 서서히 야성을 상실하고 있는 짐승들 뿐이었다.

파름 아즈라의 백성들은 하나둘씩 시간이 얼어붙은 땅을 떠나갔다. 그리고 제일 먼저 파름 아즈라를 떠난 자들 중에는 그랭도 있었다.


그랭은 정처 없이 떠돌았다. 하늘에서 내려와 땅을 디뎠지만 추락했다는 느낌은 없었다.

풀도 바람도, 물도 대지도, 불꽃도 태양도 생명도, 그 모든 것이 포근했다. 이 땅은 맥동하며 깨어나는 생명으로 충만했다.

틈새의 땅은 아직 제대로 된 규율도 질서도 없어 혼란스러웠지만, 그랭에게는 문제될 것이 없었다. 원래부터 특출난 무력으로 짐승 사제들 사이에서도 이름이 높던 그랭에게 있어 틈새의 땅의 위협은 위협이라기에도 민망한 수준이었다. 이내 틈새의 땅에는 하나의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검은 털의 말하는 짐승이 보이면 절대 싸우려 들지 마라」.




"어이가 없었지. 먼저 공격하려 들어서 선택지가 없었을 뿐인데 그런 식으로 소문을 퍼뜨리다니 참." 그랭은 별 거 아니라는 듯 웃었다.

하지만 빛바랜 자는 알 수 있었다. 그 웃음의 이면에 난 흉터는 분명 고독이었다. 자신에게도 끔찍하리만치 익숙한 고독이었다.




그랭이 훗날 알터 고원으로 불리게 될 땅에서 조용히 바람을 쐬던 날, 누군가 그랭을 찾아왔다. 정확히는, 바로 옆까지 다가왔다.

그랭은 경악했다. 흙도 아니고 메마른 바위뿐인 땅 위로 누군가 기척 없이 자신에게 이렇게까지 접근했다는 점도 경악스러웠지만, 그 모습에서 살의나 악의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기이했다.

황금 빛깔의 머리칼 밑으로 남옥색의 주단 옷을 입은 여인은 자신을 「마리카」라 소개했다.

"...용건이 뭐지?" 그랭은 멀찍이 떨어졌지만 마리카는 다시 가까이 다가오지 않고 말만 들릴 거리를 유지했다.

"...이 땅에 축복을 내리고 싶다." 마리카는 갑자기 알 수 없는 말을 꺼냈다. "들끓는 혼돈에 발이 잡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이 땅에 「생명」을 주고 싶다."

그랭은 어느샌가 긴장되어있던 근육을 풀고서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질서를 세우고, 왕과 신을 옹립하고, 제대로 된 문명을 만들어 찬란한 시대를 열고 싶다. 죽음만이 가득한 땅 위에 빛나는 황금의 나무를 키워내고 싶다." 마리카는 잠시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나에게는 그런 꿈이 있다. 그리고 나만의 세력도 있지. 다만, 하나 부족한 것이 있다."

"뭔가?"

"「죽음」을 봉인하고자 한다. 그럴 만큼 강하고 그것이 근원된 땅에서 온 자는 너 뿐이야."

그랭은 어째서인지 자신의 고향을 알고 있는 여인에게 조금 놀랐다. "...일단 계속 말해라."

"곧 이 땅은 전화에 휩싸일 거다. 생명과 죽음 사이의 전쟁이지. 너는, 내 적들을 베어넘기는 검이 될 것이다. 그리고 적들의 수장이 담고 있는 죽음을 봉인하는 그릇도 되겠지."

그랭은 코웃음을 쳤다. "그래야 할 이유가 뭐지?"

마리카는 아무 말 없이 땅에 손을 대었다.

"...대체 뭘 보여주고 싶은 건가." 그랭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이제 됐다. 난-"

마리카가 손을 뗀 자리에서 새싹이 바위를 뚫고 올라왔다. 하나, 둘, 여섯, 일흔셋, 삼백아흔둘.

눈 깜짝 할 새에 하나의 새싹은 새싹의 호수가 되었고 곧 금빛 풀의 바다가 되었다. 메마른 바위뿐이었던 땅은 이내 바위를 부수고 흙이 되어 수많은 생명의 못자리가 되었다. 그랭은 넋이 나간 채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아름다웠다.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미풍에 조금씩 흔들리는 풀들의 파도가 아름다웠다. 그 모습을 그랭은 영원히 바라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마리카는 그랭을 응시했다. "뭘 줄 수 있는지, 뭘 보여주고 싶은지 물었나." 여전히 흔들리지 않는 어조에는 굳은 믿음이 있었다. "생명이다. 그 자체로 빛나고 고귀하고 따뜻한 생명의 온기를 주겠다." 마리카는 손을 내밀었다.

"...죽음이 되어 생명을 섬기라는 건가." 그랭은 조금 웃으면서도 마리카에게 조금씩 다가갔다.

그리고 그 앞에 무릎을 꿇고서 자신도 손을 내밀었다. 손바닥을 위로 한 그랭의 손 위로 손바닥을 아래로 한 마리카의 손이 얹혔다.

따뜻하다, 고 짐승은 느꼈다. 파름 아즈라에서는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각이었다.

평생을 이어질 충절이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큭큭큭. 마리카의 맨얼굴이 어떤지 봤다니 부러운걸." 빛바랜 자는 묘하게 짗궃은 듯한 농담을 던졌다.

"기껏 기나긴 이야기를 꺼냈건만 반응이 그게 뭔가." 그랭은 엄숙한 어조로 말했지만 미소를 숨기지는 못했다.

"...그래. 마리카는 아름다웠지. 지금은 다시 볼 수 없을지라도." 그랭은 어두워지는 말투로 읊조렸다.

"근데, 왜 안되는 거지? 너라면 하다못해 로데일까지는 들어가볼 수 있을 텐데."

그랭은 아무 말 없이 입술을 조금 깨물었다. 피가 조금 배어나왔다.

"...미안..." 빛바랜 자는 말을 잘못 꺼냈음을 직감하고 고개를 돌리고서 힘겹게 말했다.




침묵.




어색함을 품고서 드리워진 안개가 조금 걷히자 빛바랜 자는 조용히 사근을 한 조각 꺼냈다.

죽음의 마지막 조각. 기억의 마지막 파편. 운명적인 해후가 있던지도 오랜 시간이 흐르고 드디어 그랭의 사명이 그 끝을 보게 되었다.

"...그래. 할 일을 해야지." 그랭은 담담히 말했다.

그랭이 내민 손 위로 사근이 얹혔다. 그랭은 사근을 입 안에 넣고 이빨로 자르고 으깼다.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돌아온 기억은 강렬했다. 음모의 밤. 모든 것이 무너지기 시작한 그 날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랭은 기억해냈다. 기억은 물이 밀려들듯 머릿속으로 돌아왔다. 곧 줄기는 개울이 되고 바다가 되었다.








음모의 밤이 있던 날. 말리케스는 잠들어있었다. 무엇이 원인인지는 알 수 없었다. 상냥한 죽음, 자색의 불꽃, 앳된 성자... 흐릿하게 떠오르는 심상은 그러나 알아보기 힘들었다.

그리고 이내 푸른 비늘의 바다 같은 갑옷을 입은 암살자들이 찾아왔다. 그랭은 그 여인들에게서 마리카와 비슷한 기운을 느꼈다.

암살자들은 말리케스에게서 죽음의 룬의 편린을 빼앗아갔다. 죽음의 힘은 말리케스가 아니면 누구도 감당하기조차 버거운, 막대한 힘. 그러나 그 파편만 있더라도 암살자들에게는 충분했다.

단검에 죽음이 담겼다. 단검은 검게 물들고 기괴하게 뒤틀리며 흉악한 기운을 내뿜었다. 푸른 갑옷의 무리는 이내 어딘가로 달리기 시작했다.

암살자들이 도착한 곳은 고드윈의 방이었다. 고드윈은 잠에서 깨었지만 방을 채운 무리를 보고도 동요하지 않았다. 조금의 당황을 이은 것은 기이하게도 반가움이었다. 여인들은 고드윈에게 뭐라 말을 전했고, 고드윈은 잠에서 깨어 여인들의 틈을 걸어갔다.

죽음이 깃든 단검이 고드윈의 어깨를 꿰뚫은 것은 그 때였다.

고드윈은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듯 무릎을 땅에 대고 쓰러졌다. 이내 양 팔이 잡힌 귀공자는 맥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그 등에는 지네의 주흔이 새겨졌고 곧 황금의 눈에서 검은 진물이 새어나왔다.

암살자들은 미동조차 보이지 않는 고드윈의 시체를 보고서 황급히 자리를 떴다. 고드윈은 눈조차 제대로 감지 못한 채 그렇게 허무히 죽었다.

그리고 곧이어 황금 나무 안에서 망치질 소리가 들려왔다.

마리카가 고향의 돌로 만든 망치로 룬의 호를 하나둘 박살내고 있었다. 생명이 깨져갔다. 따뜻함이 사라져갔다.

엘든 링은, 부숴졌다.

그것은 황금 나무가 약속한 영원의 삶이, 환수의 규율이 깨졌음을 의미했고, 마리카의 치세가 끝나버렸음을 의미했다. 그 원인은, 어렴풋이 짐작했던 대로, 그랭 자신이었다. 고드윈이 죽은 것도, 마리카가 엘든 링을 부순 것도... 








이것이 죄인가. 두 번 다시 그 아름다웠던 옛날로 돌아갈 수는 없는가. 황금률은 돌이킬 수 없으리만치 부숴졌다. 그 주도자는 자신이 섬기던 여신이었다. 대체 왜인지 자신에게 묻고 또 물어도 알 수 없었다.

빛바랜 자는 말이 없었지만, 내리깐 시선과 앙다문 입에서는 연민과 고통이 내비쳤다. 그리고 묘한 공감도 내비쳤다. 전사의 과거에도 비슷한 아픔이 있었던 것일까.

머리가 깨질 듯했다. 죽음을 전부 되찾으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 믿었건만, 밝혀진 사실은 그 반대를 속삭였다. 그 무슨 수를 써도 이제 과거는 되찾을 수 없다.

"수고해준 것 고맙다, 빛바랜 자. 허나 이 땅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끝났다. 이제 허기를 유일한 동반자 삼으리라. 잘 있어라."

그랭은 포효했다. 셀 수도 없이 무수한 감정이 담긴 그 소리와 함께 사제의 몸은 푸른 연무가 되어 사라졌다.








그랭은 눈을 떴다. 익숙한 바위의 냄새와 바람이 끼쳐왔다.

몰아치는 폭풍, 떠다니는 돌 그리고 나는 용들과 함께 폭풍에 휩싸인 옛 도읍. 시간의 흐름이 멈춰버린 곳. 모든 것의 근원 되는 땅. 황금 나무가 있기 전부터 존재했던 엘데의 옛 왕과 다섯 손가락의 짐승들과 지성의 첫 편린이 깃든 곳. 파름 아즈라.

그랭은 그 차디찬 옛 고향에 있었다.

정말 끔찍이도 싫어했고 일순이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어했던 고향. 그러나 그랭은 저 밑의 땅에 있을 때도 황금 나무 근처로 가지 못하고 대신 싫어했던 고향의 방식으로 지어진 신전에 머물렀다. 그리고 이제는 아예 그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것은 나름대로의 속죄였다. 자신 때문에 부숴진 황금률의 따뜻함을 누릴 자격은 이제 없다고, 그랭은 생각했다.


몇 날 며칠이고 비척비척 걸으며 주변을 살핀 그랭은 이내 어딘가에 도착했다. 세 늑대와 어린아이와 엘데의 호가 조각된 태초의 규율이 깃든 성지, 시간이 얼어붙은 신전.

다시, 원점이었다.

어울린다고, 그랭은 생각했다. 필요하다면 영원히라도 속죄할 것이라 다짐했다. 그랭은 신전 한 구석에 앉았다. 그리고 쓰디쓴 숨을 내쉬었다. 과거가 돌아오지 못한다 해도, 그랭 혼자만은 그 옛날에 남아있을 것이다. 그 곳에 시간을 멈춘 채 떠나간 이들을 위해 죄를 삼키고 고통을 마실 것이다.

...떠나간 이들?

그랭은 생각해보았다. 나는 무엇을 떠나보냈는가. 또 무엇을 여전히 붙잡고 있는가. 과거는 먼지처럼 떼어내기 어려우면서도 한편으로 잡기도 어려웠다. 파름 아즈라에조차 죽음은 손을 뻗었다. 황금의 고드윈이 죽음의 왕자가 되어 뒤틀린 이래로 틈새의 땅에는 죽음이 퍼져나갔다. 그랭이 지은 죄의 생생한 증거는 온 사방에 그 모습을 보였으며 시간의 틈새에 있는 땅도 그랭이 발을 디딘 이상 이제 예외가 될 수 없었다. 이 비루하리만치 기나긴 존재가 시작된 곳으로 돌아왔지만 그랭은 여전히 길을 볼 수 없었다. 어쩌면 길 따위 처음부터 없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랭은 대신 뒤를 돌아보았다.








황금률이 이 땅에 처음 떨어지고 황금 나무가 세워진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 틈새의 땅의 모든 것은 황금 나무의 적이었다. 금빛 별의 편에 선 자들은 싸웠다. 뱀과 싸웠고 죄과 싸웠고 용과 싸웠다. 불꽃과 싸웠고 가시와 싸웠고 짐승과 싸웠다.

그리고 죽음과도 싸웠다.

거대한 의지가 선택한, 새 시대의 주역이 될 후보는 둘. 영원의 여왕 마리카, 그리고 밤빛 눈의 여왕. 그 중 자색 눈을 빛내며 죽음을 휘두르던 자는 마리카와 치열한 전쟁을 벌였다.


"...자색 눈이라고?" 말리케스는 물었다.

"그래. 눈이 자색이고 검붉은 화염을 휘두른다더군." 마리카는 담담히 대답했다. 궤멸적인 피해를 입힌 적의 수장을 언급하는 것치고는 의외로 차분한 태도에서는 믿음이 내비쳤다.

말리케스는 이어 답하지 않고 그저 생각할 뿐이었다.


그리고 어느 날 그녀는 갑자기 엘데의 죽을 일 없는 전령마저 죽이고 반기를 들었다. 그런 무모한 결정의 이유는 아무도 알 수 없었지만.

거대한 의지는 분노하여 마리카를 하나의 진정한 신으로 삼고 힘을 내렸다. 그리고 그림자 짐승 말리케스는 전쟁이 가장 치열하던 날, 밤빛 눈의 여왕의 본거지를 토벌하는 작전을 맡았다. 그 사명은 더 이상 차출할 병력이 없기에 단신으로 쳐들어간다는 점에서 무모했고, 운명의 죽음을 휘두르는 적을 상대하도록 보내어 실패하면 살아날 수 없다는 점에서 무정했다.

그러나 말리케스는 성공했다.

돌과 불꽃. 발톱과 꼬리. 피와 죽음. 어떤 문명이 살아남을지 결정하는 전쟁은 역설적이게도 야만스러웠다. 짐승은 흑염에 그슬리고 살갗을 벗기며 바느질하는 날에 상처를 입어가면서도 기민한 몸놀림과 압도적인 무력으로 여왕의 사도와 귀인들을 하나하나 쓰러뜨려갔다. 하늘을 날다시피 하는 움직임에 무거운 흑염은 짐승의 몸을 태울 수 없었고 얇은 살갗을 방어구 삼은 사도들은 눈으로 쫓을 수조차 없는 속도로 날아온 바위에 짓이겨졌다. 두꺼운 지방질을 방패 삼은 귀인들은 예리한 단검날에 조각조각났다.

그리고, 밤빛 눈의 여왕. 말리케스는 그 모습을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그 자색 눈도, 그리고 지금은 비록 본래의 색을 잃고서 검붉은 빛깔과 황금색 불티를 날리고 있었지만 그 흑염도, 전부 「쌍조」의 것이었다. 눈 앞의 반신은 죽음을 다루고 수많은 데미갓들을 죽여 그 살갗을 성포와 의복 삼은 영원의 종결자. 한 손으로 나선의 성검을 휘두르고 다른 손으로 검붉은 죽음을 뿜어내는 그녀는 분명 신의 힘을 휘두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조차 말리케스를 꺾을 수 없었다. 기나긴 전투의 끝에 승자로서 선 쪽은 말리케스였고 밤빛 눈의 여왕은 갈기갈기 찢긴 채 바닥에 던져졌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피 섞인 가래를 겨우 뱉어낸 여왕은 쥐어짜내듯 말했다.


"...가여운 것. 네가 믿는 엘데는 「엘데」가 아닌 것을... 거짓 신을 섬기고 있으니 언젠가 그 눈이 머는 날이 올 것이야..."

"무슨 말이지?" 말리케스의 친퀘디아가 여왕을 겨누고 있었다. 다섯 손가락 달린 지혜의 상징은 지금이라도 반신의 목을 꿰뚫고 또 잘라낼 것만 같았다.

밤빛 눈의 여왕은 피식 웃을 뿐이었다. "말해봤자 그 우둔한 눈이 뜨일 일은 없을 터. 그냥 죽여라. 이젠 피곤하다. 각오가 되어있기를 바란다, 짐승."

말리케스의 투구 밑 눈이 조금 흔들리다 멈췄다. "...잘 가라." 단검이 목 안을 딛자 피가 뛰어오르며 춤을 추었다. 자색 눈은 빛을 잃었고 머지 않아 생기도 잃었다. 말리케스의 동작은 굳은 각오를 대신 보이는 듯했다. 곧, 짐승의 눈은 자색으로 물들었다.

운명의 죽음의 규율은 마리카의 그림자에 깃들었고, 그렇게 봉인되었다. 말리케스는 영원한 삶과 죽음 없는 환수의 법칙, 황금률의 치세 하에서 유일한 공포이자 유일한 죽음이 되었다. 신의 아이들을 진정 영웅으로 만드는 하나의 쐐기가 되었다. 말리케스는 그토록 싫어했던 죽음이 되어서라도 생명을 섬기기로 했다. 그 온기가 좋았기 때문이었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말리케스는 각오되어있었다. 그랭은 준비되어있지 못했다.








갑자기 가슴이 두근댔다. 숨이 가빠왔다. 이제는 여왕이 남긴 유언의 의미를 알 것만도 같았다. 거대한 의지는 이 땅을 버렸고 엘데를 버렸고 황금 나무를 버렸다. 신도 왕도 모두 저버리고 전령에게도 답하지 않고 있다는 그 무언가는, 분명 진정한 신이 아닐 터이다.

하지만 후회는 없었다. 후회가 있다면 음모의 날에 있을 뿐이었다. 말리케스는 황금 나무와 그 규율을 믿었고 마리카를 믿었다. 풍양을 믿었고 은혜를 믿었으며 행복과 온기와 약속을 믿었다. 그렇기에 그 검에는 망설임이 없었고 그 움직임에는 주저함이 없었다. 한때 그랭이 보았던 눈부신 광휘는 지금 이 순간까지 짐승을 이끄는 인도였다.


그랭은 이내 한 명의 기사를 만났다. 한때 고룡의 힘을 빌어서라도 로데일을 수호하고자 했던 신자는 자신보다도 더 경건한 믿음 앞에 경의를 표하고 그 방패가 되기로 맹세했다.

그러나 사태를 타개할 방도는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그랭 스스로도 마음 한켠으로는 모든 것이 영원히 끝장나버렸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회개를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다른 선택지는 전부 그랭이 납득할 수 없는 것들 뿐이었다.

적어도, 죽음의 룬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봉인되었다. 이제 지키기만 하면 된다. 비록 자신을 저버리고 엘든 링을 부쉈을지언정, 마리카는 아직 죽지 않았다. 그 상냥했던 빛바랜 자도 왕이 되어 이 세상을 수복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며 싸우고 또 싸우고 있다. 나만 포기할 수는 없다고, 그랭은 생각했다. 살아있는 한은 무언가 할 수 있다.

사제는 위를 올려다보았다. 태초의 규율의 문양은 황금의 광채를 내뿜고 있었다.

시작의 순간 이 땅에 있었던 진정한 신의 증거.

그러나 그랭은 개의치 않았다. 진짜건 거짓이건, 적어도 그랭에게 있어 황금 나무는, 황금률과 마리카는, 진정한 이유였다. 그로써 얻은 따뜻함도, 영광도, 인연도, 모두 어찌됐건 그랭 자신에게만큼은 진실된 것들이었다.

그거면 충분했다.








마리카가 갓 태어난 아기를 품에 안았다. 짧고도 얇은 머리칼은 벌써부터 찬란한 금색을 띠고 빛났으며 그 눈도 축복으로 충만했다. 황금의 싸라기와 나뭇잎은 고귀한 탄생을 축복하듯 내리고 또 내렸다.

아기는 마리카의 적법한 후계자, 왕자 고드윈이었다.

마리카는 미소를 지으며 말리케스에게 고드윈을 보였다. 아기를 내미는 손길은 상냥했지만 자부심으로 가득 차있기도 했다. 말리케스는 미소지었다.

"...이 아기가, 언젠가 우리 모두를 이끄게 될 거라 생각하니 기분이 묘하군, 마리카."

"그래. 하지만 우리의 풍양은 언제까지고 이어질 거야. 적들이 있다면 물리치고 장애물이 있다면 치워버릴 뿐. 너를 믿는다, 말리케스."

말리케스는 왼손을 움켜쥐었다. 손등의 아뮬렛이 다섯 손가락을 조였다. 짐승들이 처음으로 얻은 지성을 상징하는 사제의 단검과 하나 되어 마리카의 적들을 쓰러뜨릴 만전의 준비가 되어있는 그 봉인은, 말리케스가 어디에서 온 존재이건 간에 지금 그 충절이 어디로 향하는지 보여주는 듯했다.

수많은 암살자들이 찾아왔다. 귀공자의 목숨을 노렸던 그 무리는 그러나 여왕의 그림자에게 모두가 잘려나가고 조각나고 난자되어 스러져갔다. 말리케스는 고드윈을 수호했고 찬란한 미래를 수호했다.

고드윈은 곧 흠잡을 데 없는 왕자로 자라났다. 출중한 외모는 군중의 지지를 얻기에 부족함이 없었고 총명한 판단에는 차기 군주의 자질이 충분했다. 갈고닦은 황금률 원리주의의 기도는 곧 그 누구의 것보다도 압도적인 금색을 내뿜으며 황금의 귀공자의 상징이 되었다.


"말리케스 삼촌!" 소년 왕자가 말했다.

"음?" 보통은 로데일의 어두운 곳에 기거하기를 좋아하던 말리케스는 고드윈을 보고서 조금 놀라 답했다. "무슨 일이냐?"

"이것 봐요!" 소년은 환히 미소지으며 손에 든 무언가를 들어올렸다. 그것은 스카라베였다. 무얼 굴리고 있었는지는 이제 알 수 없겠지만.

"어떻게 잡은 것이냐? 어여쁘구나!" 말리케스는 마주 미소지으며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온갖 전흔으로 갈라지고 굳어버린 손은 황금의 왕자의 윤기 흐르는 머리칼과 그닥 어울려보이지 않았지만, 둘의 표정은 마냥 행복했다. 황금에 축복받은 나날들은 그렇게 이어져갔다.

그러나 축복은 영원하지 못했다.

흐느낌의 반도에서 비가 내리듯 황금 나무에서 항상 내리던 풍양의 물방울도 결국 그치고, 끝나지 않을 것 같던 풍요와 은혜는 서서히 고난과 역경으로 바뀌어갔다. 그러나 말리케스의 충심은 변하지 않았고, 자색의 죽음 깃든 눈은 언제까지고 누이 마리카를 바라보았다.



변경에서 반란의 치세를 치켜올린 한 데미갓을 주살하고 돌아온 날, 말리케스와 마리카는 같이 로데일을 산책하며 대화를 나눴다.

"...고드윈은? 괜찮나? 처음부터 고드윈이 오는 순간을 노렸다고 하던데."

"보고에 따르면 반란이 발발한 순간부터 현장에서 병력을 지휘하며 계속 싸웠다는군. 사후처리도 도맡아서 진행 중이고. 이제 예전의 그 책벌레 소년이 아니니 걱정은 덜어도 돼. 무력도 지성도 모두 출중한, 황금 나무의 백성들이 기대하는 군주에 걸맞는 왕자로 잘 자라주었으니." 마리카의 목소리에는 뿌듯함과 자랑스러움이 묻어나왔다.

말리케스는 희소식에 안도했고 또 기뻐했다. 두려움과 불안은 씻은 듯 사라졌다. 실로 오랜만에, 희망을 품을 수 있었다. 분명히 무너져가는 시대와 약해지는 치세. 그러나 빛나는 왕자만큼은 굳건히 서서 황금 나무의 영광이 끝나려면 멀었음을 증거하고 있었다.

마리카가 말리케스의 갑옷 틈을 찌르고 도망친 것은 그 때였다.

"크아악! 또 거기인가! 마리카!" 평소에도 조금 예민한 부위였다. 찌릿한 감각이 온 몸을 타고 흘렀다.

그러나 말리케스가 겨우 고개를 돌렸을 때 마리카는 이미 모퉁이 너머로 사라지고 있었다. 그 표정은 분명 그림자 짐승을 놀리고 있었다.

"매번 똑같이 당하는 것 같군그래..." 말리케스는 투덜거리며 모퉁이를 돌았다. 잡으려면 이번에도 몇 시간은 걸릴 것이다. 이번엔 어떻게 복수해줄까, 말리케스는 상상해보며 혼자 큭큭댔다.

저녁노을 내리는 로데일은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진 채 저무는 하루의 황혼 속에 추억을 담고 있었다.








폭풍이 얼굴을 때렸다. 시간 속에 멈춰버린 도읍에는 해가 지는 일이 없었고 때문에 말리케스에게 익숙했던 어둠도 이제는 얻기가 어려웠다. 그랭은 숨고 싶었다. 이 무너져가는 도읍의 시간은 멈춰있었지만, 야속하게도 뒤로 돌지는 않았다.

그랭은 친퀘디아의 날을 훑고 아뮬렛을 긁고 벽에 몸을 기댔다. 너무나도 졸렸고 너무나도 피곤했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이제는 익숙해져버린 허기 탓일까, 아니면 정신이 그런 걸 누릴 자격조차 없다고 판단한 것일까. 짐승은 벽에 기대어 스스로의 마음 속에서나마 시간을 되감아 보았다.








대고룡 그랑삭스의 로데일 외벽 함락과 함께 시작된 고룡 전쟁은 수많은 사상자를 내었다. 희생을 막기 위해 고드윈은 고룡 포르삭스에게 결투를 신청했고, 승리하여 그 굳건한 바위를 벗 삼았다. 말리케스는 옛 고향에서 온 생명들이 지금의 고향에서 스러져가는 것을 보고 괴로워했지만, 고드윈이 승리자로서 개선의 행진을 하는 모습을 보고서 그 괴로움은 눈 녹듯 사라졌다. 말리케스의 자색 눈에 비친, 마리카의 후계자는 틈새의 땅을 이끌 완벽한 재목이었다.

"...포르삭스라. 이제 싸우면 내가 지겠는걸." 연회장 바깥에서 잠시 바람을 쐬던 말리케스는 따라나온 고드윈을 보고 지나가듯 읊조렸다.

"황금 나무가 세워진 이래로 나온 농담 중 가장 터무니없는 것이 아닐까 싶네요." 고드윈은 웃음기 빠진 얼굴로 말했다. "당신한테 누가 이길 수 있다고 그러십니까."

"일단 마리카부터 포함시키고 생각해볼까."

고드윈은 결국 참고 있던 웃음을 터뜨렸다.

"아, 그건 맞겠네요."

흑철에 황금 섞인 갑옷을 잠시나마 벗어던진 검은 짐승과, 고풍스러우면서도 편한 예복을 입은 황금의 왕자는 서로의 등을 쳐주었다. 오랜 우정과 믿음과 친근함이 내비치는 모습이었다.

"수고하셨습니다. 당신이 언제나 그 누구보다 고생하시고 있다는 사실에 우리 모두가 항상 감사드림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딱히 필요는 없다만 그래도 고맙군. 너도 수고했다. 물론 내일도 모레도 글피도 계속 수고할 일만 있겠지만 일단 오늘 밤은 푹 쉬면서 이 승리를 즐기자."

둘은 나란히 앉았다. 금빛 풀은 부드러웠고 바람이 선선하게 불어왔다. 조금 따뜻한 공기와 황금 나무에서 내리는 금빛 나뭇잎과 금싸라기. 안에서 왁자지껄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축배를 드는 사람들. 그 사이에서 빛나는 듯한 미소를 짓는 마리카.

행복했다. 이 행복의 순간이 영원할 것만 같이 느껴졌다.








그리고 고드윈은 음모의 밤이 있던 날 제일 처음으로 죽은 데미갓이 되었다. 고드윈을 죽인 무기는 말리케스에게 봉인되어있던 운명의 죽음이었다. 말리케스의 죄 때문에 고드윈이 죽었다.

내가 고드윈을 죽였어.








그랭은 다시 울부짖었다. 눈알이 파여나간 구멍이 쓰라려왔다. 빛살은 어김없이 비추어 내려왔건만 그랭만이 이 땅에서 홀로 버려진 듯했다. 눈물을 흘리고 싶었지만 이미 그럴 눈이 없었다. 눈을 뜨고 싶었지만 그랭의 눈은 이미 파여나가버렸다. 이것이 운명인가, 라고 그랭은 생각했다. 다만 가만히 기대어 반추하고 또 반추할 뿐이었다.


저 드높은 거인들의 불가마에서 불기둥이 솟아오른 것은 그때였다.


그랭은 오래 전에 잊은 무수한 감정을 다시금 느꼈다. 공포, 불안, 절망.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앞으로 한 걸음씩 내딛었다.

거인들의 붉은 화염, 악신의 태양. 다시 하나의 자색이 되기를 원하는 그 규율이 힘을 보였음은 곧 누군가 이 시간의 틈새로 오고 있다는 뜻. 그로써 생길 수 있는 결과도, 그럴 이유도, 하나 뿐이다.

운명의 죽음이, 또다시 빼앗길 처지에 놓였다.

끔찍한 과거가 뇌리를 타고 올랐다. 두 번 다시는, 두 번 다시는 빼앗길 수 없다. 더욱이, 그 불길에는 무언가 섬뜩한 느낌이 있었다. 이번에는 정말로 돌이킬 수 없을 듯한 감각, 어째서인지 타들어가는 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듯한 사람들의 비명 소리. 모든 것에 질려버린 사람이 모든 것을 영원히 끝장내고자 하는, 포기하고자 하는 의지.

그랭은 포효했다. 누가 되었건, 이제 빼앗기지 않는다. 다시 되찾은 죽음을, 사명을 지킬 것이다. 단검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용총의 짐승 신전에서는 태양이 해무를 뚫고 올라왔다. 사방을 뒤덮고 있던 어둠은 이내 피처럼 붉은 색채에 그 자리를 내주고서 사라졌다. 전사가 미치고 병사들은 죽은 채로 싸우며 동물도 식물도 온전히 살지도 죽지도 못한 채 단지 썩어갈 뿐인 고통의 땅이 바로 밑에, 가까이 있었지만, 신전만은 오롯이 그 높은 절벽에 서서 엄숙함을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신전에 마땅히 있어야 할 사제는 그 자리에 없었다.

이제 텅 빈 신전을 외로이 지키는, 검은 시랍의 한 마리 가고일만은 여전히 그 앞에 남아 여기 어떤 존재가 있었는지, 어떤 희망과 슬픔이 있었는지 보여주는 듯했다.

추천 비추천

11

고정닉 6

1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말머리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2864 설문 비난 여론에도 뻔뻔하게 잘 살 것 같은 스타는? 운영자 24/06/03 - -
2865 AD 호요버스 신작 <젠레스 존 제로> 7월 4일 오픈! 운영자 24/06/05 - -
4192064 공지 갤 운영기준 및 호출벨 [15] ㅇㅇ(49.169) 24.02.10 13660 29
3962861 공지 엘든링 복지/템 운반 규칙 [76] DeusVult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7.26 25443 93
4400050 공지 프리뷰에서 나온 정보는 제목에 적지 말아주세요 [1] IvoryRhones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4.06.07 37 1
3584137 공지 프롬갤 공략, 팁, 스토리설명 등 읽을거리 모음 [61] 콜드스냅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12.09 106497 40
4400827 일반 코옵 더 없음? [1] Anvil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52 9 0
4400826 일반 블본 리마 나오면 혈정석 안옮겨주나 ㅇㅇ(220.79) 02:51 7 0
4400825 일반 깔삼하게 슛~ [4]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50 42 0
4400824 일반 청령 할 때는 최대한 매너 지킴 [4]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50 21 0
4400823 일반 블본 리마 나와봤자 PC는 못하잖아 [1]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49 33 0
4400822 일반 최고회차 1레벨 말레니아 성황리에 처치 [1] 이세계트럭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49 34 0
4400821 일반 빨간미쿠,림버스1999,리버스컴퍼니,원신:야생의숨결 dd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49 24 0
4400820 일반 독일 시간 6월 15일이면 한국시간은 몇 일임?? ㅇㅇ(61.72) 02:48 9 0
4400819 일반 블본 리마라구? [1] ㅇㅇ(121.167) 02:48 25 0
4400818 일반 프롬겜은 틀딱들 존나 패는듯 [2]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46 56 0
4400817 코옵 불사의묘지 돌 럼 [4] 점순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45 28 0
4400816 일반 이걸 미야자키가 통과시켜줬다는게 말이 안됨 [2] 얼음우롱차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45 59 0
4400815 일반 뭔가 허전하긴 하노 [10] 캬루볶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45 83 0
4400814 일반 호날두 커마는 없음? [6] ㅇㅇ(122.128) 02:45 44 0
4400813 일반 청령 3랭 노리는 부랄들에게 꿀팁인거 [3]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45 23 0
4400812 스포❗ dlc에서 그 무기 나오면 이 전회는 어캐 되는거냐 [3] 이론충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45 36 0
4400811 일반 여긴 왜 밝은걸까 [7] rhcn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44 48 0
4400810 일반 고드릭 레날라 라단 잡았는데 [6] ㅇㅇ(119.200) 02:43 31 0
4400809 일반 신의 살갗의 두명<여기 어케잡아야함? [6] ㅇㅇ(175.205) 02:42 41 0
4400808 일반 로건 왜 제사장 안떠나냐 [5]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41 19 0
4400807 일반 처음 봤을땐 ㅇㅇ(121.167) 02:40 24 0
4400806 일반 얘 귀엽죠 ㅠㅠㅠㅠㅠㅠ [9] 이세계트럭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40 80 0
4400805 일반 너네는 절대 꼴맘들이랑 드랭글레이그 코옵하지마 [3] 점순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39 55 0
4400804 일반 새벽 겜쇼 기다리는거보니 출시전 생각나네 [4] ㅇㅇ(220.79) 02:38 34 0
4400803 일반 sgf인가 뭔가에 엘들크 나오는거 확정임? [3] ㅇㅇ(121.167) 02:37 36 0
4400802 일반 그런데 꼴 청령 랭크 찍을거면 복수령이 나은듯 [12]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37 58 0
4400801 일반 똥3 pvp할라면 [2] ㅇㅇ(211.178) 02:37 20 0
4400800 일반 이따 아침 6시에 생방 볼 프붕전사 있나 [4]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36 35 0
4400799 일반 아직도 라단패턴 잘 모름 [2] name001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36 62 0
4400798 일반 기도는 복지가 됨? [2] ㅇㅇ(220.81) 02:35 34 0
4400797 일반 흑검 특 간지남 ㅇㅇ(121.167) 02:35 11 0
4400796 코옵 pc8 포르삭스 할 사람 [13] ㅇㅇ(39.114) 02:33 30 0
4400795 일반 도읍 태워야 네펠리 스톰빌성가냐 [10] ringoringo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32 65 0
4400794 일반 엘든링 흑검으로 최대체력 10%깎는거 이거 의미있는거야? [1] ㅇㅇ(175.119) 02:32 39 0
4400793 일반 의외로 sgf에 아무것도 안나오는거 아님? [2] ㅇㅇ(220.79) 02:32 30 0
4400792 일반 뱀뼈의 도 강공모션 좃간지나네 [1] 얼음우롱차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32 41 0
4400791 일반 방금 공열안자경같은거 두대맞고뒤졌는데 [2] dd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31 30 0
4400790 일반 청투 어그로 끄는법.tip [7]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30 49 0
4400789 일반 반지손가락 괜찮음? [4] ㅇㅇ(121.167) 02:29 23 0
4400788 일반 sgf는 몇시에 함? [7]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28 42 0
4400787 일반 아시발꼴맘새기들아 [46] ㅇㅇ(124.54) 02:28 96 0
4400786 일반 리마 이거 뭔 글리치임 [2] ㅇㅇ(220.79) 02:27 23 0
4400785 일반 근데 독나방 세팅 장점이 머임 [3] 이론충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27 36 0
4400784 일반 좆간지나면 밤샘 [7] ㅇㅇ(121.167) 02:27 65 0
4400783 일반 1회차때 뼛가루들 다 챙길걸 그랬다... 노스탈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26 14 0
4400782 일반 이 게임 망했나요 [4] rhcn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26 55 0
4400781 일반 시리스는 진짜 개웃김 [2]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26 43 1
4400780 일반 개인적으로 들크에 ㅇㅇ(61.72) 02:25 10 0
4400779 일반 근데 완장 월급 나온다는 거 틀린 말은 아니더라 [28]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25 126 2
4400778 일반 기도캐 쌔다.. [1] ㅇㅇ(1.232) 02:25 24 0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