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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 Indelible. 5모바일에서 작성

Aopa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4.09.15 03:34:21
조회 23148 추천 18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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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인은 과다출혈. 단 한번에 경동맥을 끊어버렸고, 시체 절단은 사후에 이루어졌어."



듣기만 해도 끔찍한 말들을 내뱉는 검시관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지도, 그렇다고 시체도 보지 못하는 엘사는 그저 고개만 돌리고 검시관이 말해주는 부검결과를 노트에 핵심적인 내용만 적고 있었다. 반면 엘사와 다르게 시체를 유심히 지켜보던 한스는 창백한 부위들과 다르게 유독 머리만 빨갛게 착색된 걸 본 한스는 검시관에게 물었다.



"*시반이 머리에 생겼네요?"



*사후에 심장이 멈춰 혈액순환이 되지 않아 혈액이 중력에 의해 시신의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가면서 혈액침전이 일어나 피부가 착색되는 현상.



"용케 알아보셨네요. 맞아요. 이 피해자 거꾸로 매달려 있었어요."



검시관과 한스의 대화를 듣던 엘사의 머릿속에 원망과 저주가 서린 피해자의 눈동자가 떠올랐다.



보지마. 떠올리지마. 도망쳐.



엘사는 기억하기 싫지만 계속해서 떠오르는 그 눈빛이 떠올라 손톱을 물어뜯었다. 불안감이 더욱 커질수록 손톱을 물어뜯는 소리가 커졌다. 계속해서 손톱을 물어뜯던 엘사는 이빨에서 나는 딱 소리도, 검시관이 해주는 말도 더이상 들리지 않았다. 오로지 상상의 공간 속에 숨어서 눈동자가 사라지길 바라고 있었다.



"엘사!"



"네?"



옆에서 들려오는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큰 소리에 엘사는 아 하며 노트에 허겁지겁 적었다.



"오늘은 이정도만 하고 부검결과 나온거 세세하게 적어서 저희 팀으로 보내주세요.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엘사의 상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한스의 배려였다. 한스는 엘사가 수사 도중 초점 없는 눈으로 멍하니 서 있는 일이 있다면 분명 무언가가 그녀를 자극하고 있단 걸 알고 있었고, 그 무언가는 분명 엘사가 수사를 하는데 방해를 하고 있단 걸 알고 있었다. 부검실에서 나와 1층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 타고 있던 한스는 옆에 서서 고갤 숙이고 시무룩하게 있는 엘사를 위로했다.



"괜찮아. 자네 때문에 올라온 거 아니야."



거짓말.



엘사는 한스가 자신을 위해 거짓말을 했단 걸 알고 있었다. 그 거짓말이 그녀를 비참하게 만들었고, 손톱자국이 날 정도로 두 주먹을 꽉 쥐게 하였다. 엘리베이터는 어느새 1층에 도착했고, 한스는 양손으로 엘사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를 위로했다.



"오늘은 이만 퇴근하고, 내일부터 열심히 해."



고개를 들자 자신을 보고 있는 한스와 눈이 마주쳤다. 그의 눈동자에선 연민이나 동정이 아닌 이해로 가득 차있었고, 엘사는 그 눈빛에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엘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주먹을 쥐고 로비에서 걸어 나와 주차장으로 향했다.



엘사는 어깨를 축 늘어트리고 주차된 자신의 차로 걸어갔다. 실의에 빠진 엘사의 뒷모습을 보던 한스는 올바른 선택을 했다고 계속해서 되뇌며 죄책감을 씻어내리려 했다. 하지만 죄책감이란 건 쉽게 사라지지 않았고, 엘사가 차에 타고 주차장을 빠져나가 시야에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 조용히 그녀의 뒤를 바라봤다.





*





잘 다듬어진 자갈길 위로 차 한 대가 들어오고 자갈길 정중앙에 멈췄다. 덜컥하는 소리와 함께 차 문이 열리고 달빛을 받은 은백색으로 빛나고 있는 머리칼과 함께 깔끔한 흰 셔츠를 입은 엘사가 한 손에 가방과 벗어 놓은 정장 재킷을 걸치고 차에서 내렸다. 차에서 막 내려선 엘사는 비어있는 남은 손으로 넥타이를 풀면서 현관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달이 참 밝다. 현관문을 열쇠로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머리 위를 쳐다보며 생각했다. 문을 연 채로 한참 동안 들어가지 않고 아예 문을 닫고 현관에 앉아서 밝은 빛을 내는 달을 구경했다. 넋을 놓고 쳐다보니 달의 정 가운데에 있던 점이 커졌다.



달빛이 점점 커지고 있는 점에 빨려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 느낌이 들 때마다 점은 계속해서 커졌다. 주변의 빛을 모조리 삼켜대며 크기를 계속해서 키워서, 마치 악마의 피조물처럼 주변의 모든 빛을 삼켰다. 점은 빛을 다 삼켜 칠흑 같은 어둠으로 뒤덮여서야 커지는 것이 멈췄고, 검은 하늘에 보이는 건 오로지 달과 점밖에 보이지 않았다.



도망쳐.



하늘에 있는 달이 눈알로 변했다. 눈알이 돌아갔고, 무언가를 찾는 듯 이리저리 두리번거렸다. 엘사는 일어서서 최대한 소리를 내지 않고 집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조심스레 문고리를 돌려 문을 당기니 가방이 문에 부딪히며 쿵 소리를 냈다.



떨리는 몸으로 아주 천천히 뒤를 돌아봤다. 하늘에 있던 눈동자가 엘사의 코앞에 다가와 자신에게서 도망친 엘사를 쳐다봤다. 그 시선은 마치 저주와 원망을 품는 듯했고, 엘사는 이 눈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눈에서 한줄기의 눈물이 흘렀다. 공포? 동정? 연민? 전부 아니었다. 지독하게 원망을 품던 눈에서 나온 눈물은 엘사에게 도움을 바라는 손이었다.



살려줘.



눈은 필사적으로 엘사에게 도움을 바랐고, 엘사는 더는 참을 수 없었다. 문을 닫고는 모든 것을 던지고 방으로 도망쳤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방구석에 쭈그려 앉아있던 엘사의 귀와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쾅-



쾅-



쾅-



쾅-



쾅-



미칠 듯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는 양손으로 귀를 막아도 계속해서 들려왔고, 한참 동안 문을 두드리던 눈은 엘사의 희미해지는 정신과 함께 서서히 죽어갔다.





*





덜컥-





*

휴재 끝 연재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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