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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구네집 이야기 시즌 2] 서울구치소 36 "텍사스 홀덤"

김유식 2010.05.02 23:47:06
조회 11684 추천 3 댓글 59


  11월 1일 일요일


  접견도 없고, 운동도 없고, 편지배달이나 기타 다른 일도 없는 심심한 일요일이다. 11월의 인사인지 아침부터 날씨가 꽤 쌀쌀해졌다. 이제부터는 겨울이겠지. 식전에 박경헌이 화장실 들어간 틈을 타서 내가 이재헌 사장과, 창헌, 두식이에게 오늘의 설거지 가위바위보 시간에는 꼭 가위를 내라고 했다. 그동안 지켜본 바로는 가위바위보를 큰 소리로 외치면 박경헌은 꼭 첫 번째에 보자기를 냈다. 만약 그래서 박경헌이 설거지에 걸리면 좋고, 만약 아니라면 나머지 사람들 중에서 선의의(?) 경쟁으로 설거지 당번을 정하면 된다.


  내가 가위바위보를 큰 소리로 외치자 역시 박경헌은 보자기를 냈다. 박경헌은 모두 가위를 내고 자신만 보자기를 냈다면서 혹시 미리 짠 것이 아니냐고 투덜거렸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만약 주먹 내셨으면 혼자 일등 하셨을 것 아니에요?”


  “아. 그렇습니까? 그러네요.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박경헌은 군말 없이 설거지를 했다.


  오전 9시의 점검을 마치고 창헌이가 바둑판에다 윷놀이 판을 만들었다. 원래 윷놀이도 구치소 안에서는 못하게 막고 있으나 대부분의 사방에서 몰래몰래 하고 있다. 윷놀이에는 꼭 내기가 동반된다. 그냥하면 진짜 재미없다. 작게는 설거지, 청소 같은 일에서부터 크게는 담요나 운동화 내기까지 달라붙는다.


  나는 윷놀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빠졌으나 이재헌 사장과 정두식, 박경헌 등은 재미있겠다며 달려든다. 각자 네 개의 말을 갖고, 내기로는 딱밤 맞기부터 시작했는데 역시 했다 하면 박경헌이 꼴찌다. 1등은 주로 창헌이가 했는데 말 쓰는 방법이 다르다. 박경헌은 이길 듯하다가도 ‘퐁당’에 빠져서 허우적거리거나, 다른 사람의 말에 잡히거나, 결정적인 순간에 ‘백도’를 던져서 자멸하고 말았다.


  김천의 소년교도소에서 4년간 연마한 창헌이의 딱밤 때리는 손가락 공력은 홍콩의 유명 작가인 ‘김용’의 ‘사조영웅전’에 나오는 ‘황약사’의 ‘탄지신통’과 비견될 만하다. 이재헌 사장이나 정두식에 대해서는 때리는 시늉만 하면서도 박경헌에 대해서는 12성의 내공을 끌어내어 때렸다. “딱!”, “딱!” 거리는 소리가 작은 방안을 울리며 간담을 서늘케 했다.


  박경헌의 맷집이 작다고 하기보다는 창헌이의 매질이 매서운 탓에 연속 스무 대 맞아야 할 것도 박경헌은 한 대나 두 대만 맞고는 비명을 지르며 방바닥에 뒹군다. 창헌이는 정색을 하면서 말한다.


  “어허! 똑바로 안 대요?”


  박경헌의 이마는 맞자마자 벌겋게 부풀어 올랐다. 이마를 문지르면서 애원한다.


  “창헌아. 두식이는 약하게 때리고 왜 나는 세게 때리냐? 좀 봐주면 안 되냐?”


  창헌은 완력으로 박경헌의 목덜미를 잡고 다시 있는 힘껏 손가락을 튕겼다. 또 다시 방바닥에 쓰러지며 두 손으로 이마를 감싸 안는 박경헌을 보면서 대답했다.


  “두식이는 3등이잖아요. 도사님은 꼴찌구요. 원래 꼴찌는 좀 아프게 때리는 거예요.”


  “그러냐?”


  단순하기 그지없는 박경헌은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인다. 밉지만 미워할 수 없는 박경헌의 매력은 여기에 있다. 고집을 피울 때는 한도 끝도 없지만 남의 설명이나 지적에는 금방 수긍하는 면도 있다.


  박경헌의 이마는 결국 작은 혹이 생겼고, 열다섯 대까지 때리자 눈가에 약간의 물기가 비쳤다. 더 때리면 이마가 터져서 피가 흐를지도 몰랐다. 내가 집요한 창헌이의 손목을 잡고 말했다.


  “그만하고, 나중에는 네가 질지도 모르니 다섯 대는 저금해라.”


  박경헌도 큰 소리로 외쳤다!


  “그래! 그래! 저금해 둬라. 창헌아! 제발 부탁이다. 이따가 또 윷놀이 하면 되잖아.”


  창헌이는 매우 아쉬워하면서 손가락을 내렸다. 박경헌의 이마가 돌머리인 탓인지, 아니면 창헌이도 내공과 감정을 실어 손가락을 튕겼는지 창헌의 손가락도 붉게 부풀어 있었다. 창헌이가 열 대를 때릴 때까지는 방바닥을 구르면서 웃던 두식이도 표정이 굳어 있다. 저렇게 세게 맞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기는지, 아니면 박경헌이 불쌍해서인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흉흉해진 방 분위기를 반전시킬 요량으로 오징어를 꺼내서 밥상 위에 찢어 놓았다. 아프다면서 이마를 문지르던 박경헌도 오징어를 뜯자 잽싸게 밥상 앞으로 달려든다. 오징어를 뜯으면서 h2를 5권까지 다 읽고, 존이 준 ‘에스콰이어’ 잡지를 읽는데 별로 읽을 만한 내용이 없다. 이런 류의 잡지가 팔리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 돈 많은 사람들만 사 읽는 잡지인가 보다.


  오늘 점심식사 때는 카레가 나왔다. 밥은 안 먹고 카레만 수저로 세 번 떠먹고 말았다. 운동도 없는 일요일에다가 어제는 접견 때문에 운동도 못했으니 섭취량을 그만큼 줄여야 한다. 일요일 오후시간은 참으로 느리게 가는데 TV 드라마 ‘찬란한 유산’을 보면서 시간을 때웠다. 이승기와 한효주의 알콩달콩한 이야기가 두 번째 보는 것임에도 재미있다.


  저녁을 먹기 전에는 창헌이가 예전에 소년수 시절에 배웠다는 ‘뿔면’을 해줬다. 컵라면에서 면만 덜어내서 뜨거운 물에 담근 후, 고추장과 참기름, 김가루와 라면 스프 등을 넣고 비벼먹는 일종의 쫄면 비슷한 먹을거리인데 의외로 맛이 훌륭했다. 탕반기에 가득 만들었는데도 원래 많이 먹는 이재헌 사장과 정두식, 그리고 걸신까지 들린 박경헌 때문에 금세 바닥을 보였다.


 나도 그것을 조금 집어 먹느라 저녁밥은 먹지 않아도 되었다. 저녁식사 후에는 내가 흰색 바둑알 52개를 이용해서 트럼프 카드를 만들었다. 각기 스페이드, 다이아몬드, 하트, 클로바 무늬를 새기고 숫자를 적어 넣었다. 옆에서 박경헌이 빨리 만들어서 바카라를 하자고 성화다. 하지만 바카라는 도박으로는 재미있을지는 몰라도 여럿이서 같이 하기에는 뭔가 부족하다. 그래서 창헌이와 두식이에게 홀덤을 설명해 주고 넷이서 홀덤을 했다. 내기는 영치금으로 필요한 것 사주기였다.


  1인당 오천 원 상당의 검정색 바둑알을 주고 텍사스 노리밋 홀덤을 시작해서 창헌이가 1등, 박경헌이 꼴찌를 했다. 박경헌이 억울한지 창헌이에게 일대일로 다시 붙자고 한다. 그러나 박경헌의 머리는 소년교도소와 사회의 하우스에서 정통 도박을 배운 창헌이의 실력을 따라갈 수 없었다. 창헌이에게 이기는 것을 포기한 박경헌은 애꿎은 정두식에게 선전포고를 했다. 내켜 하지 않는 두식이도 연속으로 이겨대자 어느덧 박경헌의 내기 영치금은 3만 원이나 줄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한 판만 더 하자고 우기는 박경헌. 딜러는 창헌이가 하고 내가 옆에서 구경했는데 어느 순간! 창헌이가 바둑알 카드를 내 던지고는 박경헌의 왼손 팔목을 잡았다.


  “손 펴요.”


  나와 정두식이 뭔 일인가 싶어 눈이 커졌다. 박경헌은 실없이 웃으면서 말했다.


  “야~ 창헌아. 왜 이래?”


  “손 펴보라구요. 이 손요!”


  창헌이가 박경헌의 왼손을 잡고 손가락을 펼치려고 했다. 박경헌은 그 손을 뿌리치느라 안간힘을 쓰지만 창헌이의 힘에는 못 당했다.


  “아무 것도 없는데 왜 펴보라는 거야?”


  “진짜요? 진짜 아무 것도 없어요?”


  “그래! 뭐가 있다는 거야? 이것 놔. 팔목 아프다.”


  창헌이가 아프다는 박경헌의 팔목을 더욱 세게 잡고 흔들면서 말했다.


  “아무 것도 없으면 빨리 손가락 펴 봐요. 아무 것도 없는데 왜 꽉 쥐고 있어요?”


  “네가 이렇게 잡고 있으니 못 피지 않냐. 손 놔주면 필게.”


  “안 돼요. 지금 펴요.”


  창헌이의 고집도 만만치는 않다. 박경헌이 정색을 하면서 물었다.


  “너! 내가 이 손 폈는데 아무 것도 없으면 어떻게 할 거냐? 아까 딴 영치금 퉁 쳐주는 거냐?” 


 - 계속 -

세 줄 요약.


1. 방사람들이 짜고 가위바위보를 했다.
2. 박경헌은 윷놀이를 해서 딱밤을 맞았다.
3. 바둑알로 트럼프카드를 만들어 홀덤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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