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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구네집 이야기 시즌 2] 서울구치소 24 "월드컵 운동화"

김유식 2010.04.14 22:46:51
조회 12692 추천 4 댓글 38


  10월 21일 수요일.


  방바닥이 뜨끈뜨끈하게 지펴져서 아침에도 더 이상 방이 춥지 않다. 한겨울엔 어떨지 모르겠지만 이 정도면 겨울나기에도 괜찮을 듯싶다. 기상 점검을 마치고 아침식사를 했다. 아욱된장국과 감자조림, 깍두기에다가 두유가 나왔다. 국물만 살짝 먹고 아침을 때웠다. 잠깐 커피를 마시며 뒹굴거리고 있으려니 교도관이 다가와서 접견이 있다고 알려준다. 아니 이렇게 일찍 무슨 일이람? 신청인을 보니 부사장이다. 무슨 큰일이 나서 왔나 싶어 긴장하고 내려갔더니 사실 별일은 아니었다. 출근하다가 일찍 들른 거였다.


  접견 1회 차에서 5회 차까지는 10분이 아닌 12분의 접견시간이 주어진다. 평소와는 달리 12분 동안 이야기를 했더니 오랫동안 떠든 것 같아 기분이 좋다. 거기다 번쩍번쩍하는 월드컵 새 운동화를 신고 나갔더니 발걸음이 한결 가볍다. 사방으로 돌아와서 소지에게 바늘을 달래서 새로 구매한 사복 바지를 줄였다.


  오전 열 시 경에는 운동을 갔다 왔다. 30분 운동시간에 80바퀴씩 뛰는 죄수 무리들이 있어서 새 운동화가 생긴 김에 다섯 바퀴를 같이 돌아보았는데 20년 가까이 운동을 하지 않았더니 다섯 바퀴 뛰는 것도 엄청나게 힘들다. 앞으로는 하루에 한 바퀴씩 늘려서 뛰어야겠다. 다섯 바퀴 돌고 나서 가쁜 숨을 몰아쉬며 나머지 시간에는 걸었다. 역시 발이 편하니 걷기에도 편하다. 월드컵 운동화 만세!


  아침부터 접견과 운동까지 다 마치고 나니 바로 식사시간이다. 사실 죄수들이 방 철문을 나갈 수 있을 때는 접견과 운동 때 아니면 별로 기회가 없다. 변호사가 올 때라든가, 목욕을 할 때, 아니면 의무실에 갈 때뿐이라 가급적 오전에 운동, 오후에 접견 아니면 그 반대로 해야 철문 밖의 공기도 쐬고 왔다갔다하느라 시간도 빨리 가는데 오전에 접견과 운동을 다 해 버리면 오후 시간은 진짜 무료해진다.


  점심으로는 쇠고기가 어느 정도 들어 있는 무국과 오뎅 조림 등이 나왔다. 밥을 두어 수저 정도 먹고 설거지를 마친 후 낮잠을 자려고 했더니 웬걸 신입이 들어온다. 60대의 사기범 아저씨다. 1심에서 징역 8개월로 법정 구속되고, 항소심에서는 항소가 기각되었다. 대법원에 상고를 해둔 상태지만 확정이나 다름없다. 상고를 했기 때문에 전방을 오게 된 것이다.


  이럴 때는 왜 상고를 하느냐면 다른 교도소로 이감가기 싫어서다. 법정 구속되고 항소심을 마치는 데는 3~4개월 정도 걸린다. 여기에서 상고를 하지 않으면 형이 확정된 후에 기결수가 되어 다른 교도소로 이감을 가게 되는데 그 대기 기간이 또 최소 1~2개월이다. 그러면 기껏 다른 교도소로 이감 가서 얼마 안 있다가 출소를 하게 되므로 차라리 노역이 없는 서울구치소에서 상고를 하는 편이 좋을 수도 있다.

  항소심을 마치고 상고를 하게 되면 상고 기각이 되기까지 3개월 정도 걸리므로 징역 8개월이라면 상고를 마친 즉시 얼마 안 되어 서울구치소에서 출소를 할 수 있다. 미결수는 하루에 한 번씩 접견도 가능하지만 기결수가 되면 전국 어느 교도소로 이감 가게 되는지도 걱정이고, 접견 횟수도 크게 줄어듦으로 상고를 하는 죄수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다. 다만, 일부 젊은 죄수들은 기결수가 되면 시간이 더 빨리 간다면서 1심에서 적당량의 형량을 선고 받았다 생각하면 항소도 포기하고 형을 확정 지은 후에 기결수가 되어 다른 교도소로 이감 가는 경우도 있다.


  신입 아저씨한테 내가 여기는 1심방이라고 했더니 상고방이 아니냐며 미심쩍어하는 눈치다. 그러면서 자신은 글을 많이 쓸 텐데 책상(밥상)을 계속 차지하고 있어도 괜찮겠느냐고 묻는다. 아무도 그것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자 다소 안심하는 모습이다. 정두식이 아저씨의 짐을 받아서 정리해 줬다.


  한 시간쯤 지나자 교도관이 오더니 신입 아저씨한테 다시 나오라고 한다. 12중 6방의 상고방으로 갔어야 되는데 잘못해서 12중 5방의 1심방으로 넣었다고 했다. 아저씨는 그러면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옆방으로 갔다. 다행이다. 이 좁은 방에서 여섯 명과 다섯 명의 차이는 정말 크다. 다섯 명까지는 그럭저럭 있을 만하다. 여섯 명은 정말이지 끔찍하다.


  오후 한 시 반이 되자 수요일 목욕시간이다. 박경헌은 어제 머리를 감았다면서 목욕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조선생이 화를 내면서 왜 목욕을 안 하느냐며 한 마디 하자 입이 툴툴 나온 채로 하겠다고 한다. 그런데! 교도관이 오더니 말한다. “박경헌 씨! 접견!”


  목욕하기 싫어하던 우리의 박경헌이 앗싸! 하는 표정으로 뛰어 나간다. 접견올 사람이 없다고 했는데 누가 왔는지도 모르는 채 접견표를 쥐더니 검정고무신을 신고 신나게 사동 복도를 달려나갔다. 나머지 죄수들이 목욕을 하고 개운한 마음으로 쉬고 있을 때 돌아온 박경헌의 모습은 어딘가 침울해 보였다. 누가 접견 왔느냐는 이재헌 사장의 질문에 그냥 아는 후배라고만 대답하고는 그 좋아하는 혀놀림도 멀리한 채 자리에 앉아 계속 한숨만 쉬어댔다. 무슨 일인지 약간 궁금하기는 했지만 떠들기 좋아하는 사람이 조용히 있는 것을 보니 좋은 일은 아닐 것 같아 묻지 않았다.


  정두식, 이재헌 사장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소지가 구매 신청한 우표를 가져왔다. 1,750원짜리 우표 10장과 250원짜리 10장을 샀다. 일전에 등기우편을 보냈는데 20원이 부족하다고 반송되어 온 것이 있다. 20원짜리 우표는 구매하지 않았기에 아깝지만 250원짜리 우표를 더 붙여서 쇠창살 근처의 화장품 박스 안에 놓아두었다. 우편물은 매일 아침 기상점검을 마치면 쇠창살 근처의 빨래집게나 고무줄 사이에 넣어둔다. 그러면 소지가 걷어간다.


  오늘 저녁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배식이 좀 늦었다. 김치 콩나물국과 오징어볶음, 무생채, 양배추 등이 나왔는데 너무 배가 고파서 네 숟가락 정도를 먹고 양배추를 많이 먹었다. TV 중계로 코리안시리즈 야구를 해주나 했더니 오늘은 보석비빔밥을 해준다. 탤런트 소이현이 무지 예쁘게 나온다.


  저녁을 먹고도 한동안 침울하던 박경헌이 역시나 심심했는지 입을 놀려대기 시작한다. 자신이 군대에 있었을 때 자기네 고참 상병이 미쳐서 내무반 안에서 M16을 여러 탄창 쏘아 대면서 난리를 쳤단다. 평소 병장들로부터 갖은 괴롭힘을 당하고 살아오던 상병은 군대 내 괴롭힘에 대해서 일장연설을 하면서 병장 한명 한명씩 이름을 불렀는데 상병의 말에 병장들이 관등성명을 크게 외치면서 대답하던 모습이 웃겨서 박경헌은 그 와중에서도 낄낄거리며 웃었단다. 웃는 소리에 상병이 “박경헌 이리와 봐!”라며 불렀는데 그 말에 놀라서 관등성명을 대면서 뛰어나간 우리의 박경헌. 벌벌 떠는 모습이 불쌍했는지, “야야~ 고문관아 들어가라 들어가.” 소리에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자리로 돌아왔다고 했다. 결국 박경헌은 군대에서도 고문관이었던 사실이 밝혀진 셈이었다. 스스로도 군대시절에 하도 맞아서 정신이 없었다고 했으니 말 다 했다.


  그 상병은 나중에 자신의 목에 M16 총구를 대고 한 방 갈겼는데 총알이 동맥을 비켜가서 살았고 군사법원에서 10년 형을 선고 받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고문관 짓 해서 안 죽고 살아난 자신에 대해서 자부심을 느끼는 것처럼 말했다.


  인생에 큰 도움이 안 되는 쓸데없는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점점 도태되는 느낌이다. 아무래도 아내가 보내준 영어사전으로 공부나 해야겠다. 구라대마왕으로 소문난 소설가 황석영의 글귀가 생각난다.


  “사람은 씨발.... 누구든지 오늘을 사는 거야!”


  나도 오늘 하루를 보냈다.



 - 계속 -

세 줄 요약.

1. 월드컵 운동화가 편하다.
2. 박경헌은 목욕을 싫어한다.
3. 박경헌은 군대시절 고문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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