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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 태국 방콕 카오산 동대문식당 짬뽕

김유식 2013.06.16 00:21:43
조회 36742 추천 80 댓글 312


* 2011년에 쓴 글입니다만 지금도 내용은 다르지 않습니다.


 

  저는 짬뽕을 꽤나 좋아하는 편입니다. 논현동이나 신길동의 불짬뽕도 좋아하고, 홍합짬뽕, 굴짬뽕도 좋아하고, 호텔마다 경쟁적으로 내놓는 계절 특선 냉이짬뽕도 좋아하고 심지어는 볶음짬뽕도 좋아합니다. 짬뽕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주당들이 많을 겁니다. 혹자는 밤새 윈저 + 페리에나 소주 + 맥주 폭탄으로 달린 속을 달래주는 것으로는 전주 콩나물국밥이 좋다, 황태북어국이 좋다. 시원한 멸치국수 국물이나 아니면 느끼한 라면이 좋다고 하지만 저는 짬뽕 아니면 냉면입니다.


  짜장면하고 짬뽕은 전 세계 어딜가도 먹을 수 있습니다. 웬만한 교민사회가 구성된 곳이라면 찌개나 갈비집 다음으로 들어오거든요. 뭐 일본의 나가사키 짬뽕이 맛있네 어쩌네 하지만 사실 뭐 그건 해물이 좀더 들어간 우동 쪽에 가깝지 않나요? 한국식의 맵고 칼칼한 국물맛을 내는 비슷한 음식은 찾아보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중국에서도 못 보았습니다.


  이번에 꽤 오랜만에 태국 방콕의 카오산을 찾았습니다. 예전에는 자주 들락날락 하던 곳이었지만 사정이 여의치 못해서 (그 중에는 출국 금지도 포함. ㅠ.ㅠ) 막상 나오기가 쉽지 않았지요. 카오산하면 바로 들르는 곳이 한식당 동대문입니다. 김치말이국수로도 유명하지만 저는 그동안 여기 와서 거의 김치만두국만 먹었습니다.


  그런 동대문의 사장님이 전날 술 마신 저에게 짬뽕을 권해주시더군요. 동대문에서의 짬뽕이라.... 그다지 내키진 않았습니다. 동대문에는 다른 먹을 거리도 많고, 국물거리라면 근처에도 식당들이 많이 있으니까요. 오뎅국수라든지, 나이소이라든지... 또 동대문의 태국인 직원들이 짬뽕을 얼마나 잘 만들어낼 지도 의심이 갔습니다.


  큰 기대 하지 않고 기다리기를 몇 분..... 짬뽕이 날라져 옵니다. 일단 그릇은 큽니다. 중국집에서 흔히 쓰는 그릇은 아니지만 그 보다는 큽니다. 명동칼국수 그릇만 합니다. 해물도 왕창 들었습니다. 국물 색상은 뻘겋다기 보다는 좀 더 맑은 색인 듯 보입니다.


  짬뽕을 먹는 방법이야 가지각색일 겁니다. 저는 해물과 채소 건더기를 다 건져 먹고 나서 면을 집습니다. 해물, 채소, 면을 같이 드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저는 해물맛을 해물맛대로, 채소맛은 채소맛대로 느끼기 위해섭니다. 그리고 면을 따로 먹는 이유는 면만 먹어야 면발이 후르륵 식도를 타고 넘어가는 쾌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죠. 한 번에 같이 먹다보면 면이 알아서 식도 타고 넘어가는 게 아니라 걸리적거리는 게 많아져서 식도가 연동운동해서 밀어넣어야 하죠. 그러면 목구멍을 넘어가는 그 재미가 한층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일단 수저를 들고 국물 맛을 보았습니다. 이거..... 솔직히 굉장합니다. 뭔 짬뽕 갖고 그런 캐호들갑을 떠느냐고도 말하실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짬뽕을 좋아하는 저로서는 그런 호들갑 떨고도 남습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김치만두하고 싱가폴 프라이드 누들입니다. 앞의 것은 전국 어디가서도 먹을 수 있지만 뒤의 것은 런던 소호의 왕케이 레스토랑에서만 제대로 된 맛이 납니다. 그 식당에서 1년 내내 싱가폴 프라이드 누들만 먹었습니다.
 


  저에게 그 음식을 소개해준 친구는 처음에만 별로고 먹다보면 인이 박힐 거라고 했습니다. 진짜 그러더군요. 나중에 한국에 돌아온 뒤로 저와 같이 그 음식에 빠졌던 후배는 순전히 그 누들을 먹기 위해 다시 런던을 갔을 정도입니다. 저도 몇 번이나 날아가서 먹었습니다. 12시간 비행한 아침에 도착한 히드로 공항에서 피카딜리 라인 타고 소호에 도착해서 왕케이 식당 앞에서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다가 먹는 그 맛이란! 


  비슷한 이름을 가진 음식을 유럽 전역에서 많이 팔지만 맛을 흉내 내기는 어렵습니다. 나중에 그 후배는 진짜 비슷한 - 어쩌면 더 훌륭한 - 맛을 내는 싱가폴 프라이드 누들 식당을 마카오에서 찾아냈습니다. 그 후로는 런던에 대한 매력이 급감했습니다. 마카오는 세시간 반이면 날아갈 수 있으니까요. 마카오의 식당에서 파는 “싱저우차오멘”은 왕케이의 그것 보다 맛이 좀 더 진하더군요. 먹으면서 눈물을 찔끔 흘렸습니다. 이 감동을 저만 느낄 수 없다고 생각해서 얼마 후에 와이프를 데리고 같이 갔습니다. 와이프는 한입 먹어보더니 “먹을만하네” 하는 바람에 저를 좌절케했습니다.


  잠깐 말이 딴 곳으로 샜습니다. 제가 그만큼 면에 환장한 놈이라는 부연설명을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일주일에 라면 다섯 개는 먹습니다. "면식수햏" 잘 지키는 놈입니다. 진짜 동대문 짬뽕의 국물 맛은 훌륭했습니다. 홍합이 아닌게 아쉬웠지만 바지락과 오징어, 새우도 넉넉하게 들었고 채소의 양도 푸짐했습니다. 건더기를 다 건져먹고 면을 먹으려는데! 웬걸! 이건 뭡니까? 이건 평소 먹던 짬뽕면이 아닙니다. 면이 꼬불꼬불거리는 것이 꼭 삼양에서 나온 멸치국수의 면발 같습니다. “에이 이건 아니지!” 하면서 젓가락질 하기를 주저했습니다. 매끈한 우동면발이 맛있는 이유는 맛도 맛이지만 식도 타고 자연스럽게 흘러내리는 능구렁이 같은 맛도 무시못할 겁니다.


  그래도 배고픈데 한 입 먹어보자! 젓가락을 들었습니다. 아마 여기서 많은 분들의 호불호가 갈릴 것 같습니다. 흰색의 면발이 구렁이 넘듯 식도를 넘는 맛과 비교하면 약간 메밀색 나는 동대문 짬뽕의 면은 그 쾌감이 약간 덜할지 모르지만 다른 장점이 있습니다. 이 칼국수스러운 면은 제가 짬뽕의 건더기를 먹는 동안 국물을 그대로 다 빨아들였습니다. 마치 면의 틈새틈새 사이로 짬뽕 국물을 한껏 품은 맛입니다. 어금니로 면을 씹자니 짬뽕국물 캡슐이 터지는 듯한 느낌입니다. 아마 이 면은 반죽할 때 소금을 꽤 썼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면이 이토록 맛을 잘 간직하기는 힘들 겁니다.


  제가 주제넘게 짬뽕을 평가해 봤자지만 그래도 맛있는 짬뽕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국물과 면이 같이 노는 짬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어떤 불량스러운 중국집의 짬뽕은 국물과 해물맛은 끝내주지만 면이 따로 놉니다. 나중에 면을 먹으려다 보면 이건 그냥 삶은 우동면 따로 먹는 느낌을 받게 합니다. 그런데 동대문의 짬뽕은 목구멍에 대한 식감을 좀 줄였을 지는 몰라도 면 자체에서 맵고 깊은 해물맛을 내는데는 압권입니다. 닥터캡슐처럼 짬뽕캡슐이 면에서 팡팡 터집니다!! 이 조화로움은 웬만한 짬뽕집에서도 찾기 어렵습니다. 가끔씩 가는 논현동 임피리얼 팰리스 호텔 2층의 중식당 천산에서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간혹 동네마다 유명하다는 수타짬뽕집을 가보아도 막상 먹으면 별로였던 곳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서울에서 2,300마일이나 떨어진 방콕의 카오산에서 태국의 주방장이 만들어낸 요 짬뽕은 참으로 맛있었습니다.


  다음날 다시 가보니 태국 사람들이 바글바글 와서 짬뽕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날에도 한국인들 태국인들 우르르 와서 단체로 먹고 가더군요. 이러다가 동대문 식당, 여행사가 짬뽕집으로 바뀔지도 모르겠습니다. 가격은 약간 셉니다. 180밧입니다. 근데 전날의 숙취를 싹 날려주고, 기분좋은 땀을 내게 해주는 값으로는 결코 비싸다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면을 다 먹고 국물에 밥을 말아먹는 만행을 저질러도 200밧 미만입니다. 태국에서 팍치에 입맛 상하신 여행객이 있다면 아주 괜찮은 선택일 것 같습니다. 혹시나 이글 보시고 드셨다가 맛없다고 하시는 분 계시면 제가 도의적으로나마 책임을 지겠습니다. 어떻게 져야 할 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만 뭐 나중에 팟타이라도 사드리면 될지 모르겠네요. 팟타이에서 계란은 빼겠습니다.



  알콜성 수전증으로 사진이 개판인 거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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