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4년 스포츠조선에서 연재했던 컬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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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개월 전쯤 일이다. 용산에 있는 한 협력업체를 방문했는데 나와 이야기를 나누던 그 회사의 이사가 전화를 받았다. 필자한테 양해를 구하고 전화 통화를 하던 그 이사는 제법 긴장된 표정과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뭐? 20억 원이 빠졌다고?”
“누가 썼는지도 몰라?”
“이거 미치겠네! 그 돈이 어떤 돈인데!”
“당장 확인해 봐!”
“20억이 애들 장난인 줄 알아?”
전화를 끊고 나서도 협력업체 이사는 상기된 표정으로 연신 씩씩댔다. 입에서는 욕설도 터져 나왔다. 이렇게 되니 뭔가 상의하러 갔던 필자의 입장이 상당히 난처하게 됐다.
“저, 뭔가 일이 생기신 모양이죠? 곤란하실 것 같은데 저는 다음에 찾아뵙겠습니다.”
이렇게 말하자 그 이사는 갑자기 허허 웃으며 대답했다.
“그게요, 그거 한게임 머니입니다. 제가 아이디를 친구한테 빌려줬는데 그게 금방 앵꼬가 났다고 해서요.”
그러면서 본인도 쑥스러운지 뒷머리를 긁적였다.
한 달 뒤 같은 업체를 또 방문했다. 이번에는 그 업체 사장과의 미팅 약속이 되어 있었는데 사장실 분위기가 어딘가 냉랭했다. 앉으라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별로 손님을 반기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소파에 앉아서 차를 마시고 있는데 전화기에 대고 사장의 내 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휴, 죽겠구만! 2억을 모으기가 쉽나?”
“정확히 얼마야? 뭐라고? 1억 8,700만원?”
“3만원 남아있다고?”
대충 감이 왔다.
‘아항! 한게임에서 놀다가 싹 날렸구나!’
필자는 나름대로 위로를 해야겠다 싶어서 살짝 미소 띤 얼굴로 말을 걸었다.
“사장님, 너무 심려하지 마세요. 뭐 그럴 수도 있는 일 아니겠습니까? 진정하시죠.”
이 말은 듣고 사장의 얼굴이 좀 풀리는 것 같았다.
“에휴... 그래도 그렇지. 참나, 이렇게 당한 적은 처음이에요.”
내가 다시 말을 건넸다.
“큰 거 맞으신 모양이네요. 죄송합니다만 피해액이 얼마나 되시죠?”
사장은 담배를 한 모금 깊숙하게 빨더니 말했다.
“2억 원이 좀 안돼요.”
필자는 그래도 용기를 북돋워 주겠다는 일념으로 한마디 더했다.
“에이~ 사장님도 참! 그 정도 갖고 뭘 그러세요, 쫀쫀하게. 연간 매출액 150억 원이 넘는 회사에서 뭐 그리 약한 모습 보이세요?”
필자의 말에 협력업체 사장의 눈이 크게 커졌다. 잘만하면 눈알이 쏙 빠질 것 같았다. 급기야 필자가 사족을 달고 말았다.
“에이 그까짓 거 제가 당장 수혈해 드릴게요. 2억? 한 20억 드리죠, 뭐.”
이 말을 들은 사장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옆에 앉아있던 이사가 황급히 필자를 밖으로 끌고 나갔다.
“사장님! 왜 그러세요? 오늘 저희 직원이 회사 통장 들고 튀었다구요! 불난 집에 부채질 하세요?”
“커헉!”
더 이상 필자는 그 업체를 방문할 수 없었다. 방문은커녕 횡령사고 당한 업체에 가서 놀리고 왔다는 소문이 퍼졌다. 이후로 누군가가 수천만 원 이상의 돈 이야기를 할 때면 꼭 묻는 버릇이 생겼다.
“그거 진짜 돈이죠?”
온라인 게임에서 쓰는 돈의 단위는 바뀌었으면 좋겠다. 도토리나 밤톨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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