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소 얼마 후, 창헌이로부터 등기우편을 받았다. 나의 출소일 오전 11시가 지나는데도 짐을 내보내라는 전화가 오지 않아서 기각이 된 줄 알았다고 했다. 12중 5방으로 돌아오는 김 대표님의 얼굴을 어떻게 보나? 하는 걱정을 하다가 울리는 전화를 받고 신이 나서 내 짐을 빼주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이재헌 사장, 김두형 사장과 신입 김 사장, 안훈도 사장도 편지를 보내왔다.
안훈도 사장은 항소심에서 출소하지 못했다. 단지 1년 6월의 징역에서 6개월이 줄어들었을 뿐이다. 아마 곧 출소할 듯하다. 박도사 박경헌은 그의 예언대로 2월 초에 항소심에서 피해자와의 합의서를 제출하여 출소했다. 대단한 인물이다.
출소 다음날에는 회사로 출근해서 직원들과 함께 중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살이 많이 빠져서인지 힘이 없다. 19kg가 빠지니 직원들도 처음에는 잘 몰라볼 정도였다. 식사 후에는 목동의 보호관찰소에서 가서 사회봉사명령 이행을 위한 등록을 했는데 바로 시작하는 게 아니라 한 달 이상을 기다려야 하는 것이었다. 3주간이나 빠져 있어야 해서 업무에 바로 복귀하기가 어려웠다.
사회봉사는 화곡동에 있는 한 지적장애인들의 일터에서 했다. 장애인들과 함께 일을 하는 것이었는데 진짜! 의외로 보람도 있고 장애인들에 대한 나의 시각이 많이 달라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봉사를 마치고는 정식으로 업무로 복귀했다.
영구네집 85편을 보면 이렇게 쓴 적이 있다.
[접견은 부사장과 아내가 왔다. 회사 이야기를 하는데 아내가 뜬금없는 이야기를 한다. 존형이 회사로 전화해서 아내한테 미국행 비행기 값을 달라고 했단다. 이게 무슨 소리냐? 자세하게 이야기를 해 보라고 했더니 존형이 회사로 전화를 했단다. 그리고는 아내를 바꿔 달라고 해서 “나는 지금 필리핀 마닐라에 있는데 깜방에서 유식이와 다 이야기가 됐으니 자신에게 미국행 비행기 표 값인 4천 달러를 보내 달라”고 했단다. 나랑 언제 그런 약속을 했을까? 그래도 사람을 믿고 지냈는데 여기서도 나한테 사기 치려는 사람이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필리핀으로 갔던 존은 또 사기를 치려고 했다. 내가 사회봉사를 하고 있던 사이에 회사에 전화를 걸어 “사장 친구인데 필리핀에서 총을 맞았다. 병원비가 없다. 병원비 좀 보내 달라.”고 했지만 회사에서 그의 말에 귀를 기울여 줄 사람은 없다. “그런데요?”, “그래서요?”, “사장님 안 계시거든요.” 라는 회사 여직원의 몇 마디에 그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4월 달에는 이재헌 사장이 보석으로 출소했다. 그는 출소 하자마자 나를 찾아와서는 중국산 비아그라를 수백 알이나 주고 갔다. 나는 쓸 일이 없어서 그것을 지인에게 줘 버렸다. 같이 술을 마시고 싶었지만 서로 정신없이 바빠서 커피만 두어 번 마셨고 4월 말쯤에는 같이 서울구치소로 가서 창헌이의 접견을 했다. 창헌이의 여자친구는 창헌이를, 이재헌 사장은 4방의 봉사원인 추 사장을 접견 신청했는데 같은 시간으로 잡아서 10분간의 접견 시간 동안 양쪽을 오고가면서 말을 나눴다. 접견을 마친 후에는 이재헌 사장과 ‘은미정’에 가서 해장국을 먹었다.
창헌이는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으나 항소심에서 6월이 줄어들어 결국 징역 2년 6월이 되었다. 지방 교도소로 이감을 가려다가 여자친구랑 멀어지는 것이 싫어서 서울구치소에 남는 대신 취장에서 일을 하고 있다. 취장에서 일을 하면 빡세지만 나중에 가석방을 받을 때 유리한 면이 있다.
과일 이름을 가진 PJ들을 고용하여 음란물을 만들었던 이모 사장은 항소가 기각 됐다. 현재는 전남의 한 교도소에서 복역을 하고 있다.
5월에는 이재헌 사장과 함께 목포를 갔다 왔다. 장오와 추 사장을 보기 위해서다. 넉 달 만에 장오를 만난다는 기쁨(?)에 들떠 목포 시내의 PC방으로 갔는데 허걱! PC방 문을 연 장오는 완전히 나와 이재헌 사장을 생깠다. ‘뭐야? 왔어?’ 하는 느낌이다. 포옹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이는 나에게 찬물을 끼얹은 것 같다. 이재헌 사장이 화가 났다.
“장오야! 니 지금 생까나? 죽고 싶나?”
장오는 특유의 “아니에요~” 하면서 뻐드렁니를 드러내며 웃었지만 내 예상처럼 반가워하지는 않았다. 장오는 살이 더 쪄서 몸무게가 90kg에 육박했다. 칙칙한 구치소 관복 입은 모습만 보다가 캐주얼하게 차려입은 모습을 보니 더욱 가관이다. 7부 청바지를 입었고 살이 뒤룩뒤룩한 장딴지에 그려진 거미줄 문신이 더욱 크게 보였다. 장오는 300만 원을 빨리 모아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전신문신을 하겠단다. 내가 말려보았지만 장오에게는 어림도 없는 소리다.
장오는 추 사장이 하는 성인 PC방의 바지 사장 역할을 했다. 그날 저녁에는 이재헌 사장과 추 사장, 나와 장오 넷이서 PC방 근처의 맥주집에서 폭탄주를 마셨다. 장오에게 “창헌이에게 한 번이라도 연락 했느냐?”고 묻자 안 했단다. 내가 그러면 안 된다고 책이라도 한 권 보내주는 게 어떻겠냐고 하면서 돈을 줬다. 장오가 알았다고 대답은 했지만 창헌이는 결국 책을 받지 못했다. 장오는 PC방 관리 때문에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맥주집에서의 술값은 8만 원 정도가 나왔다. 내가 계산을 하려고 카운터에 갔더니 이미 뚱뚱한 청년이 내고 갔다고 했다. 웃기는 놈이다.
목포에서 하룻밤을 자고 다음 날 이재헌 사장과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그 후에 이재헌 사장은 다른 사건으로 또 구속이 됐다. 그 소식을 창헌이가 편지로 알려왔다. 지금 받고 있는 재판도 있는데 또 구속이 되다니! 이재헌 사장 집으로 연락을 해 보니 큰 사건이 아니라서 집행유예를 받을 것 같다고 했는데 지난 9월 14일, 결국 징역 10월의 실형이 선고됐다.
이쯤에서 장오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해야겠다. 영구네집 103편에 보면 다음과 같이 쓴 적이 있다.
[나중에 범죄를 저지를 사람이 있다면 장오에게 바지 사장을 맡기는 것이 제격이라는 의견이 나왔다. 그만큼 장오는 서울구치소 생활이 체질이다. 이재헌 사장이 그렇게 말을 하자 창헌이가 반대한다. “어차피 잃을 거 없는 놈은 불기도 잘 분다.”는 이유를 댔다. 나는 잘 모르겠다. 장오는 서울구치소가 천국 다음으로 훌륭한 곳이라고 생각하는 한 구속 기간 동안 월급도 생기고 이렇게 잘 먹고 편하게 지내는데 진짜 사장을 경찰이나 검찰에 꼬바르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목포의 성인 PC방에 경찰이 급습했고 바지 사장인 장오가 잡혔다. 어차피 장오는 바지 사장이라서 구속될 것도 감안하고 했던 일이었다. 그러나 검사의 추궁에 우리의 뚱뚱 가물치는 모든 것을 불었다. 그래서 보석 중이던 추 사장은 도피 생활을 하고 있고, 추 사장의 매제까지 추가로 구속됐다. 그렇다고 장오가 풀려나는 것은 아니다. 장오는 현재 목포 교도소에 수감 중이다. 창헌이의 생각이 맞았던 셈이다.
7방의 김두형 사장은 1심에서 3년 선고 받았고 항소심에서는 1년이 깎였다. 그는 상고를 포기하고 형을 확정지은 다음 안양교도소로 이감 갔다. 얼마 전인 9월 9일 안양교도소에 장소변경 접견을 신청하여 김두형을 보고 왔다. 2011년 3월 출소 예정이다. 7방의 진모 씨는 지난 여름에 출소하여 나의 영구네집 게시물에 리플을 달기도 했다.
금방 풀려날 줄 알았던 목포 김 회장은 사건이 어마어마했던 모양이다. 자그마치 7년의 구형을 받았고 1심에서 징역 5년이 선고됐다고 했다. 글을 모르는 그가 분양사기의 바지 사장이 됐었던 모양이다. 5년이 선고된 후 울면서 폐인처럼 있다가 최근에 서서히 원기를 찾고 있다고 들었다.
영구네집의 등장인물은 아니지만 나를 이 지경으로 빠트린 한현(가명)이라는 희대의 사기꾼은 진짜 영구네집(영등포 구치소)에 갇혔다. 지난 7월에 구속이 되었고 7년의 구형을 받았다. 사법정의가 살아있다고 느꼈다. 사람을 시켜 그에게 합의를 요청했더니 그냥 살겠단다. 40억 원 정도를 꿍쳐둔 것으로 파악되는데 징역 살고 나와서 그 돈으로 잘 살 것이다.
영구네집 이야기 시즌 2에 대한 외전을 여러 편으로 나누어 쓰려고 했다가 마음을 바꾸었다. 징역 산 것이 자랑도 아니고 이제 초심으로만 돌아가고 서울구치소 생활을 잊고 재기를 위해 노력해야 할 시간이다. 벌써 출소하고도 8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아직 나는 서울구치소 12중 5방의 짐을 다 벗어버리지는 못했다.
다시 한 번 이 자리를 빌어 탄원서 등 재판에 도움을 주신 지인들, 디시인사이드 이용자 여러분들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 디시인사이드 김유식 배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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