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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구네집 이야기 시즌 2] 서울구치소 91 "구운 오징어"

김유식 2010.07.22 08:37:13
조회 8777 추천 3 댓글 40


  12월 23일. 수요일.


  아침에 밥맛이 없어서 아욱국 건더기를 조금 먹고 책을 읽었다. 오전에 부사장이 접견 온다고 해서 미리 양말을 신고 기다리고 있는데 교도관이 내 이름을 부르기에 접견표의 이름을 보니 부사장 접견이 아니고 한 변호사다. 이번에도 특별한 목적으로 온 것은 아니고 그냥 들른 것이라고 했다. 내가 한 변호사에게 판결 내용을 미리 알 수는 없느냐는 질문을 하자 한 변호사가 말하길, 예전에는 판사에 따라서 미리 알려주는 경우가 있었는데 온갖 문제가 많아서 이제는 절대로 불가하다고 했다. 판결 내용을 미리 알게 되면 불량 변호사들이 그것을 빌미로 피고인 가족들에게 돈을 뜯어내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한 변호사와 10분 정도 이야기를 마치고 돌아오니 운동시간이다. 장오가 부숴 먹던 라면 조각을 하나 씹으면서 사탕도 입에 물고, 6호 운동장에서 23바퀴를 뛰었다. 운동장을 다 뛰고 7방 김두형 사장과 들어오는데 13방의 족보가 불분명한 건달이 아는 척을 한다. 족보가 불분명하다는 것은 창헌이의 말이었는데 같은 방에 들어오는 건달에 따라서 자신의 조직이 계속 바뀌었기 때문에 불분명하다고 한 것이었다. 이를테면 박쥐형 건달이라고나 할까? 그러면서 내게 창헌이를 통해 오징어를 보내주면 마가린을 발라서 맛있게 구워주겠다고 했다. 13방은 항상 위험하게 뭔가를 구워 먹는다. 물파스를 가져다가 알콜 램프처럼 불을 피우고는 쏘세지나 떡갈비를 구워 먹는 일이 많았다. 구워 먹으면 맛있기는 하지만 너무 위험한 행동이다. 그나마 13방이기 때문에 교도관들이 사동 현관 입구에서 오는데 걸리는 시간이 있어서 들킬 위험은 줄일 수 있다.


  “오징어를 넉넉하게 드릴 테니 구워주시고 몇 개는 드세요.”


  내가 말했다.

  “아닙니다. 저희도 오징어 많아요. 다 구워드리겠습니다.”


  의외로 싹싹하게 대답하는 모습에 나는 방으로 들어오자마자 창헌이를 통해서 오징어 다섯 마리를 보냈다. 바로 점심시간이 됐다. 배가 고파서 연두부를 비지찌개에 부어 먹었다. 그리고 일요신문을 읽고 나니 재소자라면 누구나 좋아하는 목욕시간이다. 목욕 준비를 하는데 11방의 순천 건달이 다른 곳으로 전방을 갔다. 곧 만기 출소라고 들었는데 왜 보내는지는 모르겠다. 짐이 많아서 창헌이가 마차를 가져와서 옮겨다줬다.


  오늘 오전엔 인터넷서신은 들어오지 않았고, 직원이 보낸 크리스마스 카드와 창헌의 여자친구가 내게 보낸 카드가 왔다. 시원하게 때를 밀고, 새 옷으로 갈아입고 책상을 펴고 앉아서 커피 대신 쌍화차를 마셨다. 목포 김 회장은 양쪽의 엄지발가락을 모두 다쳐 목욕을 하지 못한다. 이틀에 한 번꼴로 의무과에 가서 소독하고 붕대를 갈아주는 드레싱을 하는데 당뇨 때문에 잘 낫지 않는다고 했다. 몸무게도 평소 85kg였는데 지금은 70kg로 줄어들었다고 했다.


  그러고 보면 사람은 쓸데없이 많이 먹고사는 동물이다. 장오나 이재헌 사장은 하루에 4~5공기의 밥에 빵, 라면, 과자, 땅콩 등등 쉬지 않고 먹어댄다. 거기에 과일, 계란, 우유, 두유, 요구르트 등도 계속 입 안으로 들어간다. 솔직히 내가 밖에 있었을 때는 그보다 더 먹었으면 먹었지 결코 지진 않았을 것이다. 성인 남성의 하루 필요 칼로리가 2,500Kcal이라지만 구치소 안은 움직임이 최소한으로 제한되기 때문에 사실 1,000~1,500Kcal만 되어도 이상이 없다. 성인 남성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하루 1,000Kcal가 필요하다지만 내가 5~600Kcal만 먹는데도 아무 탈 없이 살도 천천히 빠지는 것을 봐서는 1,000kcal씩 먹으면 살 빠지는 것이 멈추는 정도가 아닐까?


  목포 김 회장은 자신의 억울한 범죄 이야기가 더 이상 방에서 먹히질 않자 이야기 내용을 바꾸었다. 아내와 자식들이 면회 안 오는 것을 씹어댔다. “이 놈의 여편네가!” 아니면 “자식 키워봐야 다 소용 없다.”는 말을 혼잣말처럼 해댔다. 자식들은 모두 셋인데 아들 둘은 각각 지방에서 음식점과 당구장을 한다고 했고, 20살을 갓 넘긴 막내딸은 미국에서 유학 중이라고 했다. 그러나 같은 이야기도 한두번이지, 계속 와이프와 애들을 책망하는 말을 하자 나중에는 다들 듣기 싫어했다.


  오후 3시가 넘어서 이번에는 권 변호사가 접견을 왔다. 역시 특별한 내용이 있어서 온 것은 아니다. 그걸 마칠 때쯤 부사장이 접견을 신청해서 접견실로 갔다. 부사장이 전하는 회사 소식은 우울하기만 하다. 접견을 마치고 돌아올 때는 7방의 김두형 사장과 12방의 마약 사범과 같이 올라왔다. 이 사람은 마약으로 잡힌 게 아니다. 이전에 대마로 잡힌 적이 있어서 “한 번 뽕은 영원한 뽕”이라는 말처럼 파란색의 마약 수번을 달고 있었다. 이번에 잡힌 것은 캐나다 벤쿠버에서 PJ들을 데리고 인터넷 성인방송 사업을 했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국내 PJ 성인방송 사업에서는 1인자라면서 웬만하면 다 안다고 했다. 특히 과일 이름을 가진 유명한 PJ도 자신이 데리고 키웠다고 했다.


  방에 들어오니 13방의 건달이 구워준 오징어가 와 있다. 그런데 얼라? 이게 왜 두 마리 뿐이냐? 장오가 몰래 먹은 게 아닌가 하여 물어보았지만 아니란다. 13방의 건달은 다섯 마리의 오징어를 받아서 두 마리를 먹은 게 아니라 우리 방으로 두 마리만 보냈다. 세상에 다 구워준다더니 오징어를 띵가 먹다니! 장오가 아까운지 “건달치고는 좀 치사하네요.”라고 한 마디 했다. 사실 건달들은 속칭 ‘가오’ 잡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내가 생각해도 다섯 마리를 구워 달라고 하면 다섯 마리를 다 줄 줄 알았다. 앞으로는 더 거래하지 말아야겠다. 두 마리 구워온 것도 그나마 대충대충 구워서 마른 오징어 그냥 뜯는 것과 별반 차이도 없었다. 오징어를 바싹하게 구우려면 역시 접견 대기실의 히터가 낫다.

  거의 오후 5시가 다 되어서 오후 점검을 하고 배식 준비를 했다. 접견을 간 동안에 8통의 인터넷서신과 아내의 접견서신이 왔다. 또 창헌이가 자동차와 게임잡지를 한 권씩 빌려다 줬다. 저녁은 배가 좀 고파서 콩나물국하고 닭다리를 먹었다.


  창헌이는 11방의 순천 건달의 이사 소식을 전해줬다. 멀리 간 것도 아니고 바로 앞의 16중으로 옮겼다고 했다. 그쪽의 강력방에 짐을 풀었는데 이 건달은 철문을 열자마자,


  “방 꼬라지가 이게 뭐냐? 새끼들아!”


라고 한마디 하니 다들 벌벌 떨었다고 했다. 창헌이 말에 의하면 순천 건달이 나이도 좀 있고, 어느 정도 족보 있는 건달임을 방 사람들이 눈치 챈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런데 이 건달의 외모는 전혀 건달답지 못했다. 오히려 회계사나 변호사 같은 외모다.


  생각해보니 16중에는 얼마 전 출소한 김영웅이 있던 곳이다. 아마 김영웅이 출소를 하지 못했고, 김영웅이 있던 방에 순천 건달이 들어가서 저렇게 말을 했었다면 큰 싸움이 나지 않았을까?


  오늘은 변호사 접견이 두 번, 일반 접견 한 번, 목욕에, 운동이 있어서 시간이 빨리 지나갔다. 흑~ 내일은 크리스마스 이브다. 이재헌 사장이 바닥에 이불을 깔기 전에 뭘 좀 먹자고 한다. 장오가 눈치 빠르게 방바닥에 신문지를 깔아놓고 구운 계란과 오징어, 과자 등을 꺼내 놨다. 저도 어지간히 뭔가 먹고 싶었던 게 틀림없다. 최근 장오는 이상한 버릇이 생겼다. 우리 방 사람들은 구운 계란의 노른자위 부분을 잘 먹지 않는다. 콜레스테롤 때문이란다. 나도 퍽퍽해서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게 쌓이는 노른자위가 하루에 무조건 열 개 이상이다. 장오는 기다렸다가 이 노른자위만 한 번에 입 안으로 털어 넣었다. 자신은 노른자위가 제일 맛있다고 하면서 먹는데 워낙 구라가 심해서 진짜 맛있어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주목받고 싶어서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재헌 사장이 계란을 먹으면서 궁금한 듯이 물었다.


  “장오야~ 니는 군대는 오데 갔다 왔노?”


  장오가 흘끔 이재헌 사장을 쳐다본다. 그러고 보니 장오의 나이는 28살이다. 군대를 제대하고도 몇 년이나 지났을 나이다. 그동안 장오의 나이가 어리다고만 생각해서 군대에 대해서 질문이 없었나보다. 밀덕후(Military 오타쿠)였던 나도 궁금했다. 과연 저 놈이 군생활을 제대로 했었을까?


  “저요? 저는 갔다 왔죠.”


  “오데 갔었는데?”


  “육군요.”


  창헌이가 옆에서 “씨발놈이!”라고 말했다. 빨리빨리 이어서 말하지 못하겠느냐는 압력이다.


  “땅개였어요.”


  소총수였나 보다. 해군 방위를 나온 이재헌 사장은 땅개라는 장오의 말에 더 묻지 않았고, 중학교를 다니다 말고 한동안 빵잽이의 생활을 했던 창헌이는 당연히 군대를 가지 않았다.


  “몇 사단이었는데?”


  “37사요.”


  나의 질문에 장오는 두 눈을 꿈벅거리며 대답했다. 37사단이라고 하는 걸 보니 경기 이남의 후방에 있는 곳인가 보다. 나는 한때 일본에서 군수품 판매를 한 적도 있거니와 각 사단 마크에 대해서도 비교적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37사단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30번대 사단이라면 향토사단일 것이다.


  “그냥 일빵빵이었냐?”


  “일빵빵이 뭔데요?”


  ‘어라? 왜 일빵빵을 모르지?’


  “땅개였다면서?”


  “네. 그냥 딱총수요.”


  “요즘은 주특기 번호가 일빵빵이 아닌가?”


  “......”


  땅개 소총수의 주특기 번호가 바뀌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몇 년 전에 어디에선가 육군의 주특기 번호가 네 자리로 바뀌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던 것 같기도 했다. 


  - 계속 -

세 줄 요약.


1. 오전, 오후에 변호사가 찾아왔다.
2. 덜 구운 오징어를 먹었다.
3. 장오는 소총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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