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영구네집 이야기 시즌 2] 서울구치소 87 "돌아온 편지"

김유식 2010.07.16 09:20:52
조회 8924 추천 2 댓글 50


  12월 19일. 토요일.


  오늘은 어제만큼 춥지는 않은 것 같다. 소금 미역국 건더기를 건져 먹고,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아스피린 프로텍트도 한 알 먹었다. 다리 저리는 증상과 관계가 있지 않을까 의심 했었지만 그다지 관계는 없는 듯하다. 아마 다이어트로 인해서 그런 듯.


  나는 간밤에 일찍 잠이 들었는데 그 사이에 창헌이와 장오의 미니청문회가 있었던 모양이다. 금요일까지 선일이가 면회를 오지 않으면 장오가 딱밤을 맞기로 했었는데 결국 오지 않았다. 창헌이는 때리겠다고 했지만 장오는 토요일에 올 수도 있으니 하루만 더 기다려 달라고 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토요일은 가족이 아니면 올 수 없다. 직계 가족을 동반하면 가능하지만 장오는 면회를 올 가족이 없다. 따라서 선일이가 장오를 보러 온다 해도 구치소 접견장으로 들어올 수가 없는 것이다. 아마 창헌이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짐짓 모른 척 눈감아 준 것 같다.


  오전 10시쯤에는 약간 모자란 50대 초반의 교도관과 1방의 재소자와 싸움이 났다. 1방에서 빵 하나를 소지를 통해 다른 방에 가져다주라고 한 모양인데 사실 허가된 사항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통용이 된다. 그걸 교도관이 큰소리치면서 제지하자 자고 있던 2방의 사형수인 영웅파두목이 성질이 난 것. 잘 자고 있는데 큰 소리로 깨웠다는 이유다.


  “씨발! 빵 하나 보내주라는데 왜 못 보내줘? 그런 거 하나 줘도 되잖아?”

  

  “뭐라고요? 그게 규정이 되어 있는 겁니까?”


  “야! 그냥 빵 하나 보내주면 되지 왜 시끄럽게 해서 남의 잠을 깨우는 거야?”


  “뭐라고요? 이거 안 되겠구만!”


  “안 되겠구만? 안 되면 어쩔 거야? 엉?”


  창헌이가 우리 방 창살 쪽으로 오더니 “또 지랄이네.”라며 혼잣말을 한다. 내가 왜 그러냐고 묻자, 저 교도관이 원래 꼴통으로 유명하단다. 규정을 너무 따지는 바람에 어느 사동에서 근무하든지 재소자들과의 싸움이 끊이질 않는다고 했다. 사동 담당 교도관은 부장이라고 부르는데 우리 12중에도 담당 부장이 있기는 하지만 간간이 다른 교도관들이 순번제로 돌아서 근무하기도 한다. 우리 23중 담당 교도관은 아주 친절하고 착한 사람인데 가끔씩 대신 근무하러 오는 교도관들 중에는 이상한 사람도 있었다. 방마다 기웃거리면서 트집을 잡던 교도관이 있었는데 작년에 어느 죄수가 뒤통수를 때려서 병원으로 후송시킨 적이 있다고 했다. 일반적으로는 교도관들은 대부분 친절하고 죄수들과의 사이도 좋은 편이다. 기억나는 교도관 한 사람은 어린 나이에 7급으로 시험치고 들어왔는지 계급이 좀 높았는데 우리 사동에서 근무하는 날이면 방마다 돌면서 웃는 얼굴로 “오늘 하루 같이 지내는데 잘 부탁드립니다.” 하면서 인사를 했다. 당연히 사동에서의 인기도 높았다.


  2방의 사형수와 싸우던 교도관은 큰 소리를 치면서 조용히 철문 옆의 목찰을 살피고는 자신과 상대하고 있는 죄수가 사형수라는 것을 알았다. 급 깨갱 모드.


  “헉! 미안합니다. 험험.”


  하더니 사라졌다. 물론 빵도 배달해 주라고 했다. 누구든지 사형수와 싸워서 좋을 게 없다. 잃을 게 없는 사람과 싸우는 것이다. 싸우는 상황을 벽걸이 거울을 통해 비춰보던 이재헌 사장이 장오에게 말했다.


  “장오야. 복도에 대고 욕치기 내기 장기 한 판 두자.”


  “욕치기요?”


  “그래. 욕치기. 내가 지면 내가 복도에 대고 큰 소리로 욕하고 네가 지면 네가 하고.”


  “그러죠.”


  경상도에서는 “욕하는 것을 ‘욕치기’라고 말하나 보다. 결과는 이재헌 사장의 승. 지금 빨리하라는 이재헌 사장의 요구에 장오는 나중에 하겠다고 했다.


  잠시 후 창헌이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장오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장오! 너. 또 구라깠어. 딱 제대로 걸렸다. 너 이 형 들어가면 뒈지는 줄 알고 있어!”


  방 사람들이 또 뭔 일이 있나 하는 표정으로 창살로 모여들었다. 창헌이는 편지 한 통을 흔들면서 말했다.


  “이거 보세요. 저 새끼 구라치는 거. 선일이라는 여자친구 있다는 거 다 개구라예요.”


  창헌이가 흔든 편지를 이재헌 사장이 받아보더니 장오에게 건네주면서 물었다.


  “장오야. 이거 어떻게 된 거고?”


  그 편지는 이번 주 월요일에 장오가 선일이에게 보낸 편지였다. 편지지와 편지봉투, 우표를 빌려서 내 지우개를 사정없이 써가면서 몇 시간 동안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고 했던 편지다. 그 편지가 “수취인 불명”으로 장오의 손으로 돌아왔다. 장오의 얼굴은 포커페이스 그 자체다. 표정의 변화가 없다.


  “어? 이게 왜 돌아왔지?”


  놀람도 없다. 담담하다.


  “뭘 어떻게 돌아와? 개새끼야! 김선일이라는 사람이 없으니 돌아온 거지! 그걸 몰라서 묻냐?”


  창헌이의 큰 소리에 장오는 별 말이 없다. 창헌이의 드립이 이어졌다.


  “너 여자친구 없지? 선일이는 도대체 뭐냐? 유령이냐? 사이버 캐릭터냐? 선일이라는 애가 존재하기는 하는 거냐?”


  “아니에요. 있어요.”


  “있는데 왜 편지가 돌아오냐? 씨발놈아. 왜? 주소가 잘못됐다고 우겨보지?”


  장오의 얼굴에서 미미한 파동이 느껴졌다. 주소가 잘못됐다고 구라를 치려던 것이었을까? 주소 이야기를 창헌이가 미리 꺼내자 장오의 변명은 반대로 움직였다.


  “아니에요. 이 주소 맞아요. 제가 이삿짐도 옮겨 줬어요. 확실해요!”


  “요 씨발놈. 계속 구라까네. 그 아파트가 있기는 한 거냐?”


  “진짜에요! 부천 약대오거리 아시죠? 거기 약국이 하나 있구요. 그쪽에서 조금 더 지나가면 있어요.”


  “씨발놈. 내가 거기 약국이 있는지 없는지 어떻게 알아?”


  장오는 나름 자신이 말이 맞다는 신뢰를 심어주기 위해서 떠들어 보지만 내 눈에는 뚱뚱 가물치가 애처롭게 뜰채를 빠져나오려고 하는 몸부림으로 보였다. 그런데 뚱뚱 가물치는 너무 힘이 빠졌다.


  “장오! 너 이 형 들어가면 딱밤부터 때리고 시작할 거니까 각오해라. 이 형이 김천에서 딱밤만 연마한 거 알지?”


  구라꾼 장오는 딱밤을 맞아야 한다는 현실을 직시했다. 무표정하던 얼굴에 우울한 빛이 나타났다.


  “네.”


  내가 장오의 손에서 편지를 빼앗아 다시 한 번 읽어봤다.


  “선일아. 미안하다. 내가 너한테 참 못된 짓을 많이 했다. 내가 지금 구속되어 있는데 나가면 잘해줄게. 여기 와서 네 생각 많이 하고 있다. 사랑한다. 선일아.”


  저 선일이는 도대체 누구일까? 가상의 여자까지 만들어서 사랑을 하는 걸까? 성폭행은? 영화관은? 임신은? 도대체 어느 것이 맞는지 모르겠다. 머리가 아파왔다. 여기는 어딜까? 나는 누구일까? 매트릭스 안인가? 그동안 장오의 구라가 유치하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위대해 보인다. 내가 물었다.


  “장오야. 선일이랑 같이 영화 본 것은 맞지? 그리고 그날 모텔에 갔었지?


  “네.”


  “영화표가 영치시킨 네 청바지 뒷주머니에 들어있고?”


  “네.”


  저 뚱뚱 가물치는 수천 년 동안 연못에서 묵었다가 인간의 모습으로 변화하여 우리 인간들을 괴롭히고 있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오전 11시쯤 귤 한 개를 까먹고 접견을 갔다. 아버지와 아내다. 요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대기실로 오니 안훈도 사장이 있다. 요즘 살을 뺀다고 하더니 정말 살이 많이 빠져있다. 나더러 1월 말에 꼭 소주한잔 하잔다. 같이 출소하자는 이야기다. 흐흑~ 과연 그럴 수가 있을까?


  방으로 돌아오니 직원들의 인터넷서신과 아내의 접견서신이 와 있었다. 편지 답장을 쓰다가 신문을 읽다 보니 점심시간. 수제비 1/3 그릇하고 반찬으로 나온 시금치 된장 무침을 먹었다. 장오는 밥을 무지 잘 먹는다. 한 끼에 꾹꾹 눌러 담은 공기를 두세 번씩 먹고 평소에도 빵과 두유를 계속 먹어댄다. 나도 저렇게 먹을 때가 있었는데~ 식사 후에는 커피를 마시며 신문을 읽다가 뮤직뱅크를 보고 다시 책상 앞에 앉아서 ‘수상한 삼형제’를 보면서 편지를 썼다. 오후 3시까지 편지를 쓰다가 사과를 한 개 먹고 책을 좀 읽었다.


  오후 4시쯤 이재헌 사장이 접견을 가기에 마른 오징어 두 마리를 주면서 대기실의 히터에다 좀 구워오라고 했다. 접견대기실에는 석유로 때는 큰 히터가 있었는데 히터의 한쪽 구멍에서는 뜨거운 공기가 위를 향해 뿜어져 나왔다. 평소 접견대기실에 있을 때마다 저기에 오징어를 구우면 진짜 맛있겠다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접견을 급히 나가다 보면 오징어 갖고 가는 것을 잊어 먹었다.


  잠시 후 이재헌 사장이 돌아왔는데 시간이 없어서 오징어를 바싹하게 구워오지는 못했다고 했다. 그래도 구워 먹는 것이라 평소 먹던 맛에 비하면 천지차이였다. 이재헌 사장은 오징어를 굽는 동안 주위에서 많은 죄수들이 “이런 방법이 있었네!” 라면서 침을 꼴딱꼴딱 삼켜댔다고 했다.


  오후 4시 반에 점검을 마치고 김치 콩나물국에 참치를 조금 곁들여 저녁을 해결했다. 저녁식사를 마친 후에는 쌍화차를 한 잔 마시고 커피도 한 잔 타서 책상 앞에 앉아서 일기 쓰면서 ‘황금어장’을 봤다. 잠시 후에는 창헌이가 방으로 들어와서 장오에게 딱밤 열 대를 때렸다. 장오는 거의 쓰러질 듯이 아파했고 나머지 열 대는 저금을 해 뒀다. 창헌이는 언제고 거짓말이 다시 뽀록날 때는 사정없이 딱밤을 때리겠다고 말했다.


  오늘의 토요 영화는 “다우트”라는 거였는데 한 10분쯤 지나자 죄수들 모두 분개했다. 죄수들 상대로라면 살인, 방화, 약탈, 폭력 영화를 보여줘야 하는데 오늘 영화도 신부와 수녀가 나오는 이상한 영화였다. 그래서 평소보다 일찍 이불 깔고 누워서 책을 읽었다. 자려고도 해봤지만 잠이 오지 않아 자정 넘어서까지 “콜디스트 윈터”를 읽었다.



  - 계속 -

  세 줄 요약.

1. 사형수와 교도관이 싸웠다.
2. 장오의 편지가 돌아왔다.
3. 오징어를 구우면 맛있다.

추천 비추천

2

고정닉 0

0

원본 첨부파일 1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설문 어떤 상황이 닥쳐도 지갑 절대 안 열 것 같은 스타는? 운영자 24/05/20 - -
268 제가 떼돈 벌던 시절의 게임기. [1185] 김유식 18.07.30 109969 607
231 [컬럼] 인터넷에 부는 홍어(洪魚) 매카시즘 [869] 김유식 14.05.15 274711 923
228 [횡설수설] 태국 방콕 카오산 동대문식당 짬뽕 [312/2] 김유식 13.06.16 36860 80
227 [횡설수설] 디시인사이드의 야후코리아 인수설. 그 내막. [200] 김유식 12.10.21 35672 160
226 [횡설수설] 2CH의 니시무라 히로유키. [152] 김유식 12.05.09 61253 243
224 [횡설수설] 강의석 씨의 절박한 옥중 단식 투쟁. [369] 김유식 11.09.21 26114 48
223 [영구네집 이야기 시즌 2] 의정부 교도소에서 온 편지. [83] 김유식 11.09.12 28804 34
222 네놈을 살려두긴 "쌀"이 아까워! [898] 김유식 11.07.25 227819 175
219 [횡설수설] 출간. [683] 김유식 11.06.28 40365 21
218 [컬럼] 신보수 네티즌의 등장. [399] 김유식 11.03.14 41471 66
217 [횡설수설] 여행. [474] 김유식 10.12.22 42123 23
216 [옛날컬럼] 화가 나는 경영지침서. [136] 김유식 10.12.15 34825 36
215 [옛날컬럼] 커뮤니티 사이트 운영. [97] 김유식 10.12.10 21779 36
214 [옛날컬럼] 기업 메일 브랜드화? [157] 김유식 10.12.07 14401 14
213 [컬럼] 종북주의자들의 어불성설. [425] 김유식 10.12.03 29098 114
212 [옛날컬럼] 삶의 가치. [71] 김유식 10.11.30 17867 29
211 [옛날컬럼] 온라인 사기. [97] 김유식 10.11.26 23397 47
210 [옛날컬럼] 술버릇. [77] 김유식 10.11.23 17306 18
209 [옛날컬럼] 싱하형. [87] 김유식 10.11.22 162473 75
208 [옛날컬럼] 세운상가. [49] 김유식 10.11.19 16445 22
207 [옛날컬럼] 국가보안법. [57] 김유식 10.11.17 22548 78
206 [옛날컬럼] 500원. [53] 김유식 10.11.16 18455 29
205 [옛날컬럼] 펀딩 브로커. [42] 김유식 10.11.15 11476 13
204 [옛날컬럼] 초심. [84] 김유식 10.11.12 11878 10
203 [옛날컬럼] 채용. [46] 김유식 10.11.11 13963 22
202 [옛날컬럼] 러시아 아가씨 술집. [77] 김유식 10.11.10 50990 93
201 [옛날컬럼] 그들이 온다. [45] 김유식 10.11.09 10938 7
200 [옛날컬럼] 용팔이. [45] 김유식 10.11.08 17933 18
199 [옛날컬럼] 가격표기 오류 2. [43] 김유식 10.11.05 11801 6
198 [옛날컬럼] 가격표기 오류. [54] 김유식 10.11.03 13822 12
197 [옛날컬럼] DDR [90] 김유식 10.11.01 31170 46
196 [옛날컬럼] 악플러. [84] 김유식 10.10.29 16814 21
195 [옛날컬럼] 유두의 균열. [51] 김유식 10.10.28 22293 68
194 [옛날컬럼] 박살난 휴대폰. [36] 김유식 10.10.27 11532 11
193 [옛날컬럼] 게임머니. [41] 김유식 10.10.26 10481 8
192 [횡설수설] 최악의 크리스마스. [122] 김유식 10.10.12 15798 9
191 [횡설수설] 궁금한 거. [60] 김유식 10.10.07 12342 10
190 [횡설수설] 여자 교생선생님. [104] 김유식 10.10.04 34222 45
189 [횡설수설] 가끔씩 생각 나는 돼지. [81] 김유식 10.10.02 16507 8
188 [영구네집 이야기 시즌 2] 출소 후 이야기. [175] 김유식 10.09.16 31208 31
187 [영구네집 이야기 시즌 2] 서울구치소 126 "출소" 끝. [142] 김유식 10.09.09 28645 23
186 [영구네집 이야기 시즌 2] 서울구치소 125 "항소심 선고공판" [69] 김유식 10.09.08 15319 10
185 [영구네집 이야기 시즌 2] 서울구치소 124 [25] 김유식 10.09.07 10143 3
184 [영구네집 이야기 시즌 2] 서울구치소 123 "탄원서" [34] 김유식 10.09.07 11252 6
183 [영구네집 이야기 시즌 2] 서울구치소 122 "항소이유서" [49] 김유식 10.09.07 12074 4
182 [영구네집 이야기 시즌 2] 서울구치소 121 "공판 하루 전" [62] 김유식 10.09.06 11139 3
181 [영구네집 이야기 시즌 2] 서울구치소 120 "교화지원금" [70] 김유식 10.09.03 13463 4
180 [영구네집 이야기 시즌 2] 서울구치소 119 "박도사의 예언" [44] 김유식 10.09.02 11335 4
179 [영구네집 이야기 시즌 2] 서울구치소 118 "장오의 취직" [33] 김유식 10.09.01 10907 6
178 [영구네집 이야기 시즌 2] 서울구치소 117 "목포 김 회장" [34] 김유식 10.08.31 11071 6
12345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