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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망의 연재 중일전쟁 3-1부 전선의 고착

Geweher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0.08.07 18:38:18
조회 261 추천 0 댓글 3

여러분 다시 돌아왔습니다. ㅋㅋ 요근래 이대갤이 어지럽혀진 것에 마음이 아파지네요 ㅠㅠ

하지만 쇟도 이대갤을 위해서 개념글을 써보고 싶은데 현실이 눈물을 앞을 가리게 하는 군요

쇟이 중일 전쟁 연재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완결을 짓고서 당분간은 공부 때문에 버로우를 해야 할것 같습니다.


하지만 수능 끝나고 나선 개념이 넘치는 이대갤을 위해 부족하나마 글을 올려보고 싶습니다.


자 사설은 여기까지 하고 중일 전쟁 시리즈 시작합니다.



3-1 전선의 고착 (부제: 아니 황군이 고자라니?!)

일본군은 37년 개전 이래로 중국 땅에서 초반에는 포풍 전진을 하기도 했습니다.
일본군은 중국의 여러 도시들에 대해 무자비한 폭격을 가했고, 중국의 주요 해안가 도시들을 점령하고자 전진에 전진을 합니다.

그러나, 대본영은  전쟁 첫해에 그들이 이뤄내고자 했던 성과에 대해 불만족스러웠습니다.

대본영은  중국 국민당의 장개석이 중국내의 내분을 통합하기 전에 장개석의 조직화된 직속부대를 분쇄하고자 했으며, 중일전쟁이 일본경제에 부담을 끼치기 전에 빨리 전쟁이 끝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일본의 이러한 의도는 중국이 시간을 벌기위해 공간을 포기하는 등 결정적 전투를 회피하는 등 지구전 전략을 나아갔기때문에 전쟁은 점점 장기화 되어갔고  대본영의 바람은.........

http://pds7.egloos.com/pds/200712/05/34/8mile.JPG

(아아 대본영....  씨바놈들 할 말을 잊게 만들어 주네요.......)

그렇게 점차적으로 전쟁은 장기전으로 서서히 흘러갈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일본이 똥줄이 스멀스멀 타들어 갈때 중국은 한편, 중국은 상하이와 남경을 잃어버린것이 큰 타격이긴 했으나, 중국군은 아직도 대부분의 항구와 4개의 대외 주요보급로를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하이퐁에서 쿤밍간 이어지는 철도와 양곤과 라쉬오를 거쳐 쿤밍에 도달하는 철도 및 도로,
그리고 러시아에 이르는 2개의 도로가 주요 보급로였습니다.

어라 이런 걸 전에 본적이 있나? ;;
파일:Eastern Front 1941-06 to 1941-12.png

중일전쟁으로 부터 3년뒤 어떤 나라가 겪게 될 데자뷰? (믿으시면 골룸은 아니고요...)

그리고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 한다는 속담이 제대로 적중해버리는 사건이

\'저희가 생각해도 낮은 확률입니다.
저희가 생각해도 이상할 정도의 상황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 일어났습니다.
2.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하더라 (태아장 전투)

파일:Taierzhuang.jpg

태아장 전투 (1938년 3.24~4.7) 그것이 실제로 일어나고 맙니다 ㄷㄷㄷ

원광대학교의 사학과 관련 전공을 하는 어떤 분이 작성하신 논문에서 이 사건의 전말을 다루고 있습니다. 한번 보시죠
<중지파견군으로 재편성한 일본군은 1938년 3월 태아장에 침입하였다.
이에 손연중의 제 2집단군과 탕은백의 제 20군단은 14일간의 격전 끝에 일본군에 막대한 피해를 주고 마침내 격퇴하였다.
일본군 측의 통계에서도 1,126명이 사망했고 부상자는 만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태아장 전투는 항전초기 중국군대가 정면전쟁에서 이룬 최초의 대승리였다.

태아장의 승리는 크게 선전되어 중국인의 항전의식을 크게 고무시켰다.
이 전투에서 이전의 방어, 진지전과는 달리 적극적인 진공작전과 운동전을 採用(채용)했고,
일본군 후방에서 중공의 팔로군이 호응했다. 전술의 중요성과 합작의 의미를 분명히 해준 전투였다.

태아장에서 패배를 한 일본 대본영은 중국에 결정적 타격을 가하기 위해 6개 사단을 동원해 화북과 화남을 잇는 요충지인 서주를 공격해 왔다.

5월 19일 일본군은 서주를 점령하고 중국군은 추격하는 일본군을 저지하기 위해 정주 이북의 화원구의 제방을 파괴하였기 때문에 일본군은 물 속에 고립되어 진격이 크게 늦어졌다. 태아장 전투와 서주회전은 일본군에 큰 피해를 주었고 중국군의 사기를 크게 높였을 뿐 아니라 일본의 속전속결 작전을 분쇄하였다.>
Itagaki Seishiro.jpg

당시 태아장 전투의 일본군 사령관 이타가키 세이시로 (板垣 征四郎,1885~1948) 되겠습니다.
이사람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여기(http://ko.wikipedia.org/wiki/%EC%9D%B4%ED%83%80%EA%B0%80%ED%82%A4_%EC%84%B8%EC%9D%B4%EC%8B%9C%EB%A1%9C)를 참고 하시면 ㄳ

그렇게 중국군이 일본군을 쳐바른 소식은 그야말로  소련군이 모스크바에서 독일군을 막아낸 만큼의 임팩트를 중국인들에게 줍니다.

중국군에 대한 선입견을 씻어내버리는 의외의 사건이라 쇟도 읽어보면서 놀람을 금치 않을 수 없네요 ㄷㄷ

그렇게 태아장 전투의 소식을 들은 대본영의 심경은 어떨까요??

http://pds11.egloos.com/pds/200902/23/89/f0060489_49a2951eba474.jpg?width=500

더이상의 자세한 설명을 생략하겠습니다.


그리고 어느덧 중국 대륙에서 벌어지던 국공 내전이라는 병1림1픽도 일본의 침략으로 어느새 2차 국공합작으로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대략 쉽게 표현하자면 요런 느낌일까요???

     이 양반과   이 양반이 이렇게 사이좋게 화합하는 격이라고 해야 할까요?? 


네 그렇게 둘이서 지지고 볶고 들었다 놨다 하다가 어느새 정이 들었는지도 모르지만 말이죠?

그리고 설상가상으로 일본에게 위기가 다가옵니다,

바로 ABCD포위망이 다가오고 있던 것입니다.

위키의 설명을 빌자면 당시의 분위기는 이러했습니다.

일본군의 주된 목표는 중국군의 주요보급로를 차단하는것이었다. 그러기 위해 첫 번째 목표는 중요한 철도중심지인 쉬저우 시를 점령하는것이었다. 중국군의 저항은 완강했지만, 북쪽으로부터 남하해 온 두갈래의 공격에 의해 일본군은 5월에 이르자, 쉬저우 시를 거의 점령하기에 이르렀다. 이어서 6월에는 한커우로 통하는 철도를 봉쇄하고자 정저우 시로 진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진격은 중국군이 황하의 제방을 무너뜨려, 주변 지역을 강물로 범람 시켰기 때문에 일본군은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되고, 패배하게 된다.


그러는 동안에도 일본군은 장개석 정부의 수도인 한커우로 공격을 더욱 가열시켜, 8월에는 4만 여명 이상의 병력을 영국령 홍콩으로부터 20마일즈음 북쪽으로 상륙시킴으로써, 광동지역을 쉽사리 점령했다. 이 때문에 한커우는 그 주요 보급로가 차단당하게 되어, 결과적으로 9월에 가서야 장개석은 주요산업시설들을 보다 내륙으로 이전하는 한편, 수도를 충칭으로 옮겼다.


이렇게 되면서 1938년말까지 일본은 중국의 해안 주요도시들을 거의 장악했었으나, 그 지역 내에 아직도 계속적인 난관에 부딪쳤엇다. 각지역마다 게릴라의 활동은 나날이 격화되어가고, 일본의 비 인도적인 행정통치와 점령지 주민들에 대한 갖가지 횡포등으로 주민들의 적개심 또한 깊어만 갔다. 쉽사리 항복할 것으로 생각했던 중국군은 계속 저항을 하고 있엇고, 이와 동시에 미국이 중국 국민당에 더욱더 적극적으로 많은 원조를 제공함으로써 원기를 돋우어 주고 있었다.


2년 만에 신속한 승리를 쟁취하고자 했던 당초의 의도가 좌절된 일본 제국은 1939년에 접어들면서 최소의 군사력으로 전략적 요충지를 점거하는 봉쇄전술로 전환하게 되었다. 즉, 중국의 해안지대를 거의 점령한 일본군은 중국의 보급로를 봉쇄시키는 \'경제적 교살정책\'으로 바꾼것이다. 그러나 넓은 대륙을 바탕으로한 중국군과 중국인들의 끈질긴 저항으로 전쟁의 양상은 계속지속되어 고착화 되어갔다.


네 본래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상황에 처해버린 일본 ㅠㅠ 정말 눈물이 앞을 가리게 만드는 군요 ㅋㅋ

3.짧았던 미()트스)(핀 하지만 깨어진 비극의 사랑

1940년이 밝아옵니다.  세상은 많이 달라지고 말았죠....

유럽에선 칫솔 수염 아저씨와 붉은 수염 아저씨가 서로 불가침 조약을 체결하고


http://pds10.egloos.com/pds/200903/26/08/c0026408_49cb1c6c38728.jpg

파일:MolotovRibbentropStalin.jpg

본격 파시스트와 공산당의 신명나는 밋흐스핀의 현장 jpg.

독일이 유럽에서 선전포고를 하고 독일군이 포풍같은 속도로 진격을 해나가고 있을 무렵에

 이 둘의 사이가 걷잡을 수 없이 갈라지는 병크가 터져 버리고 맙니다.

1940년 중국대륙은 일본군 점령지구, 충칭을 중심으로 하는 국민당 정부, 옌안을 중심으로하는 공산당의 섬강녕변구등 3개지역으로 크게 나뉩니다.

전쟁이 고착화되어가면서 계속 시일만 끌어갈 뿐이고요 .

그럼에 따라 마오쩌둥의 공산당은 세력이 점점 커져가고 팔로군도 1940년에는 40만 명으로 불어났고, 신사군이 2만에서 10만으로 급증되었다. 팔로군은 백단전투에서 일본군을 25000여 명을 크게 무찌르는등 성과를 보였다.

그리고 희망찬 소식도 들려오네요.. 

미국과 소련이 사이좋게 중국을 향해 지원을 해주기로 한다네요 ㅋㅋ

하지만 1941년 사건이 터지고 맙니다

신사군 사건
(국공내전의 일부)
날짜1941년 1월 7일 - 1월 13일
장소중국, 안후이 성 징현
결과국민당군의 승리
교전국
Republic of China Army Flag.svg 국민혁명군People\'s Liberation Army Flag of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svg 신사군
지휘관
Republic of China Army Flag.svg 상관운샹People\'s Liberation Army Flag of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svg 예팅
병력
80,000명9,000명
피해 상황
 ?7,000

신사군 사건(新四軍事件) 또는 원난 사건(皖南事变)은 중일 전쟁중인 1941년 중국 공산당중국 국민당공동 항일 전선을 펼 당시 일어난 사건으로 이 사건으로 공산당과 국민당의 합작은 사실상 결렬되었고 이론적으로만 존재하게 되었다.

이사건을 두고 중화민국중화인민공화국의 역사가들의 평가가 나뉘는데 중화민국 쪽에서는 이를 공산군의 불복종에 대한 징벌이라고 보는 반면 중화인민공화국쪽에서는 국민당의 배신행위라고 보고 있다.

사건의 전말을 이러했습니다.

제2차 국공 합작이후 양쯔 강 남쪽에서는 공산당의 지휘를 받는 신사군이 일본군과 유격전을 벌이고 있었다. 공산군과 공산당의 세력이 점차 강해지는 것에 불안을 느낀 장제스는 점차 공산군과의 협력을 꺼리게 되었고 1940년 12월 신사군을 안후이 성저장 성에서 철수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공산당은 이에 동의하고 병력을 양쯔 강 이북으로 이동하라고 명령했다. 처음에 신사군 공산당 장교들은 이 명령에 반발햇으나 결국 이동에 합의했다.

예팅이 이끄는 신사군의 정예 병력 9,000명은 3개 방면으로 나눠 양쯔 강을 도하하기 시작했고 1월 5일 도하를 마치고 집결하였다. 이때 갑자기 8만명의 국민혁명군이 나타나 이들을 포위하고 다음날 부터 공격을 개시하였다. 숫적 열세에 밀려 신사군은 병력의 상당수를 잃었고 부대장 예팅은 부하를 살리기 위해 1월 13일 국민당군측과 협상을 시도하였다. 예팅이 협상하러 오자 갑자기 국민당측은 그를 체포해 버렸고 결국 신사군의 부부대장도 전사하고 2,000명의 병사만 살아서 포위망을 돌파하였다.

1월 17일 장제스는 신사군의 해체를 명령했고 예팅은 군법회의에 넘겨졌다. 그러나 1월 20일 옌안의 공산당 군사위원회는 부대를 재건하기로 결정하고 천이가 새로운 부대장이 되었고 류샤오치는 정치위원이 되었다. 신사군은 7개 사단 및 1개 여단으로 구성된 9만병력의 규모로 재편되었다.

이 사건으로 사실상 제2차 국공 합작은 결렬되었고 국민당은 항일전선을 깨뜨렸다는 비난에 당면한 반면 공산당은 항일의 영웅으로 인식되었다. 비록 공산당은 이 사건으로 인해 양쯔강 남쪽의 영토에 대한 영향력을 상실했지만 더욱 소중한 인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

그렇게 서로 기껏 장학량이 만들어 논 국공합작은 여지없이 개발살이 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1941년 12월 미국은 일본에게 똥침을 맞고 맙니다. 

2대갤러 여러분들이  아시는 진주만 기습이 바로 그것이죠.

빡쳐버린 미국은 중국에 대한 아낌없는 지원을 해주기로 합니다.

그결과로

중국 국민당 정부는 일본, 나치독일, 이탈리아왕국에 선전포고 선언을 하였다. 이렇게 됨으로써 국민당 정부는 연합군의 일원으로 참전하게 되면서 장제스의 직속부대들을 버마전선으로 파견하여 영국군과 공동작전을 전개해나아갔었다.


이어서 미국은 조지프 스틸웰을 군사고문관으로 중국으로 파견하여 버마-인도전선 지휘를 하였고, 미 공군은 중국 전선으로 지원하여 중국 국민당 공군 소속으로 일본군과 싸워 제공권을 확보하고자 하였고, 

이들은 미 공군 의용대대는 플라잉 타이거즈라 불리며, 이들은 연합국이 일본군에 연패하던 태평양 전쟁 초기 몇 개월동안 연합국 부대중에서 유일하게 주목할만한 전과를 올림으로써 연합국의 사기를 크게 올립니다.

이들 플라잉 타이거즈 대대는 미국이 태평양 전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면서 해체되었고,
이후 중국대륙내에는 미육군 제 23 전투기 집단으로 대체되고 맙니다.


엔하위키에선 이렇게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
태평양 전쟁이 시작된 후 미국 측에선 중국 전선의 유지가 "남방으로 보내질 수많은 일본군을 붙잡아 둔다"고 보고 중경정부측에 군수지원을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다. 문제는 장개석이 그 군수품들을 자신의 직계군들에게만 배당한 채 전혀 써먹지 않았다는 것이지만.

하지만 이런 일본군의 상황만큼이나 중국군, 정확히는 국민당군의 실태는 막장의 최전선을 달리고 있었다. 국민당과 공산당군이 일본군과의 교전을 회피하려고 했던 이유는 <U>게릴라</U>전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단순한 연전연패로 인한 사기 저하로 인한 효과였다. 일본군의 초기 공세 때부터 극히 일부를 제외한 나머진 군대는 계속해서 대패하고 있었고, <U>장제스</U>는 그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연합군이 보내는 군수물자는 모두 자신의 휘하 사단에 돌린 채, 구<U>군벌</U> 출신 군대에는 일체 보급을 해주지 않았다. 거기다 군벌 출신 군대는 일부러 모두 최전방으로 돌려 손실을 유도하고, 자신의 휘하 사단은 꽁꽁 숨겨두기만 했다. 덕분에 최신 장비로 무장한 정예병들은 후방에서 놀고, 대검 하나 든 오합지졸 군대가 일본군과 맞서야 하는 어이없는 상황이 계속해서 연출되었다. 얼마나 지독했는지 1944년 일본군의 대공세에 맞서 한달이나 형양을 방어하던 슈에유에(薛岳 Xuē yuè 설악)의 휘하 부대는 <U>미군</U>의 공중지원은 받았는데 장제스가 보내는 총알 하나 못 받아봤을 정도였다.

장제스만이 아니라 옛 군벌들 역시 따로놀기의 진수를 보여주기는 마찬가지였다. 산시성 군벌 옌시산은 자신의 얼마 안 남은 영역에 틀어박혀 단독으로 베이핑의 일본군 사령부와 협상을 벌여 평화상태를 유지하려 애썼고, 임시 수도인 충칭을 중심으로 쓰촨성과 윈난성 지역의 지방 군벌들과 장개석의 알력 다툼은 극심했다.

국민당군의 전투력 역시 개판이라서 중국군은 전쟁 내내 승전이 희귀할 정도로 대패만 일삼았고, 주둔 지역 민간인들의 식량이나 재산을 강제로 약탈하는 등의 범죄가 들끓었다. 게다가 강제 징병을 위해 마을을 공격(!)하는 사태도 종종 벌어졌다. 이런 탓에 각 마을 주민들은 국민당군으로부터 마을을 지키려고 자경단을 결성해 전투를 벌여야 하는 지경이었다.

읭??? 이게 뭐하자는 시츄에이션인가요????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Mk2.0이 되고 마네요 ㅋㅋㅋ


그렇게 중일전쟁은 점차 밑도 끝도 보이지 않는 막장 매치로 변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넵 다음시간에는 마지막 4부 일본군 최후의 저항 대륙타통 작전과 일본의 패망 편을 여러분께 전해드리겠습니다.


길기만  한 글 읽어 주시는 이대갤러 여러분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마지막 편은 최선을 다해서 올려보고자 합니다.

P.s: 중일전쟁에 관한 논문이 한편 있어서 구글링의 결과물 올려보고자 합니다.

관심이 있으시면 한번쯤 읽어보시는게 좋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http://mahan.wonkwang.ac.kr/nonmun/2005non/18.htm

대신 한문의 압박은 책임 못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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