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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버번의 기원에 관해 -하편

ㅍㅈㅇㅌㄹ어(221.147) 2021.07.21 20:23:16
조회 888 추천 11 댓글 19
														

Fred Minnick의 Bourbon에서 발췌


그래서 정말로 누가 버번을 만들었는가?


버번의 유래를 찾으려면 우선 옥수수를 살펴 보아야 한다.

정착민들이 서부로 이동하여 켄터키로 가면서, 옥수수를 심게끔 장려했다, 이 다재다능한 곡물은 밀가루 대용, 그냥 먹기, 사료, 그리고 위생상 부차적 용도로 쓸 수 있었다. 신대륙에서 옥수수는 곧 인구를 부양하는것과 동치되었다. 그리고 켄터키 토양은 1792년 어매리칸 가제티어의 주장에 따르면 “희망 사항을 초과할 정도로” 옥수수 경작에 적합하였다. 그렇게 애지중지할만한 작물이어서, 조지2세는 마그나 카르타에 의해 발간된 법령집 (1765)에서 “옥수수를 증류하는 것을 삼갈것.” 을 주문했다 대영제국은 옥수수를 식용으로 사용하길 원했고, 그래서 미국 식민지에서는 증류 목적을 제한했고, 아일랜드에서는 금지했다.


그러므로, 켄터키가 1792년 주가 되었을 당시, 증류용 곡물로 옥수수를 선호하지 않았다. 그 이유가 법적 제한이건 선호건 간에, 북동부 사람들은 호밀을 증류했고, 그래서 미국 최 초창기 위스키는 옥수수가 아닌 호밀이었다.


하지만 위스키가 버번과 확실히 동종이라고 할 수 있는 켄터키 스피릿으로 진화하게 되고, 버번 발명가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추측을 맞닥뜨리는 조건이 맞는 과정을 보려면, 1813년부터 1818년 사이를 유심히 관찰해야 한다. 이 시기에 북동부에서 옥수수 증류가 소문을 타게 되었다.

1813년에야 비로소 북동부에서 호밀 위스키에 대한 선호가 꺾여 옥수수에게 넘겨준다. 당시 전문 증류업자들은 이미 옥수수가 “”다른 어떤 곡물보다 소출이 크다”고 여겼다고 1813년 저명한 북동부 증류업자인 해리슨 홀이 집필한 ‘홀의 증류소’에 그 기록에 나와있다. 만약 홀의 증류에 대한 훈수를 잘 따른다면, 옥수수와 호밀로 증류할 것이다. 홀은 기록했다 “항상 호밀과 옥수수를 메시에 섞는 걸 염두해뒀다, 각 곡물을 별도로 증류하는 것 보다, 더 생산성이 높고, 순도 높은 증류주를 얻을 수 있다 호밀의 1/4만큼 소출이 나온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사실 뉴저지에 기반을 둔 홀은 테네시와 켄터키 위스키를 대서양 연안의 증류주를 더 선호하는 인구집단에 홍보했다. 홀이 호밀 중심인 북동부에서 옥수수를 증류에 채택한 건, 서부 주 사람들에게 좀 더 신뢰를 줄 수 있었고, 홀은 지극히 솔직하게 썼다.


켄터키와 테네시 증류업자들이 ‘이미 증류 기술에 괄목할만한 발전을 이루어냈고, 그 비옥한 땅에서 자라는 엄청난 양의 곡물은 필수 소비양을 아득히 넘어서, 돼지사료로든 위스키로든 잘 처리할 방법이 없다. 그래서 이미 테네시와 켄터키 위스키는 우리 항구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리고 보통 사람들은 고향에서 가까운곳에 만들어 진 걸 선호한다; 이 방법은, 서부 위스키가 대부분 옥수수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원료로 옥수수를 사용하는데 있어 널리 퍼진 편견을 반박할 강력한 논변이 될 수 있다.’


동부 해안 유력 일간지에 광고들이 등장하며 구리 증류기를 사용한 위스키와 켄터키 위스키를 찾는 게 보이자, 펜실베니아의 호밀 증류업자들은 피부로 시장의 압박을 느꼈다. 그러나, 이 홀의 글에서 위스키를 지칭하는데 ‘버번’이라는 단어는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홀의 후기 저작들을 보면 의심의 여지 없이 생산 방법이 버번 제작 기술이라는것을 보여준다. 1818년 작 “증류업자’ 를 보면, 홀은 지금 현재 기준으로 사워 메시라 불릴만한 형식의 발효가 기록되어있다.


메싱법이 테네시와 켄터키에 들어왔다… 이 주 에서는 흔히 일부 주류업자들은 더러운 통을 사용하는데, 그 통에 필요한 양 만큼 팔팔 끓는 상태의 팟 에일을 넣고, 옥수수 가루를 더한 후, 잘 젓는다. 이 상태로 삼 사 오일 정도 놓아둔다, 이때 소량의 호밀 가루나 몰트를 더하고, 완전히 식을 때 까지 둔다. 이스트는 첨가하지 않고, 그럼 이제 4일 정도 뒤에는 팟스틸에 넣을 수 있다.


홀은 이 기법(오크통 태우기)을 호밀 메시에 사용하는것은 권장하지 않으며 그러려면 좀 더 실험이 필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홀의 책에는 통 안쪽을 짚으로 태우는 것에 대한 내용이 있으며, 증류업자들이 버번 생산 기법을 사용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홀은 고도우의 옥수수 비중이 높은 위스키를 그을린 통에 넣는 건 권장하지 않았다.


고도수의 버번을 그을린 오크통에 넣는 최초의 기록은 1826년 기록이다, 렉싱턴의 식료품상이 “태운”통에 보관한 위스키를 주문했다. 이보다 이른 기록을 찾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증류업자들은 기록이나 일지를 남기지 않았으며, 레시피는 손으로 적은 노트로서 가보로서 전해졌다. 학술적 차원에서 진정한 버번의 아버지를 찾는 건 불가능할 지 모른다. 하지만 버번의 창시자일 가능성이 높은 사람의 이름을 추측해 보는 게 말이 안 되는 일은 아니다.

비록 크레이그의 이름이 버번과 함께 가장 흔하게 거론되지만, 크레이그만이 그 창시자로 거론 되는 건 아니다. 다른 사람으로, 한때 다음 사람들의 이름이 신문지상이나, 가족사, 구전사를 통해 언급었다: 다니엘 샤우헌, 제이콥 스피어스,와틀 분, 다니엘 스튜워트, 존 해밀턴, 마샬 브레셰어, 존 리치. 그리고 많은 노예 증류 종사자와 위스키 제조에 종사하는 여성도 많았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아무도 버번의 창시자로 기록해주지 않았다.


제이콥 스피어스가 가족은 1780년 후반 켄터키로 이주해왔다. 1897년 기록에 따르면, 제이콥 스피어스의 버번 카운티 증류소는 “유명 공작새 증류소”로 알려졌다 패리스 북쪽으로 5마일 거리에 예전에 위치해 있었던 공동체인 스토너 크릭에 따라 카이젤톤 인근에 위치한 언덕 위에 세워졌다. 해당 기사는 “켄터키에서 가장 오래된 증류소”로 쓰며 스피어스를 버번의 창시자로 세웠다. “이 날림으로 지어진 증류소에서 최초의 버번 위스키가 증류되었다 - 버번과 켄터키를 이 땅의 가장 외진 곳 까지 장차 이름을 날리게 할 그 상품을.” 이 1800년대 신문 기자들은 스피어스가 펜실베니아에서 켄터키로 “위스키 반란 시기에 워싱턴이 보낸 군부대로부터 유혈 사태를 피하기 위해” 이주해 왔다고 적었다, 하지만 이건 사실이 아닐 수 있다, 왜냐면 과세 기록에 따르면 그는 1789년 11월 파예트 카운티에 있었다. 또 1790년에 링컨 카운티에 있는 제이콥 스피어스도 있었다. 하지만 이 스피어스는 1791년 애비게일 휴스턴과 결혼했고, 1818년 사망했다. 증류업자라 기록된 스피어스라는 사람은 엘리자베스 닐리와 결혼했고, 1825년에 사망했다. 이 스피어스는, 독립 전쟁 병사 출신으로, 1800년 버번 카운티의 2번째 인구 센서스에 등장하고, ‘켄터키 역사’ 한 장에서“버번 카운티 통계”에서 최초 버번 카운티 증류업자로 인정했다.

“스피어스시는 통나무를 적당한 사이즈로 자르고, 증류하고, 제분소를 다녔고, 자기가 구입한 종마를 잘 길렀다.” 책에는 그가 1790년 즈음에 최초로 스틸팟을 세웠다고 기록했다.



  • 최초 기록

버번 위스키에 대한 최초 언급은 1821년 서부 시민 일간지에서 스타우트와 애덤스가 “버번 위스키, 배럴이나 케그 단위로 팝니다.” 라는 광고에 등장한다. 본 저자는 1821년 수백개의 기록을 검색해봤으나 이보다 이른 언급은 등장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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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콥 빔은 1795년 켄터키에 그의 아내 메리 메이어스와 정착했고, ‘빔 레거시’를 세우게끔 시작할 상속을 받았다. 짐빔 브랜드는 1970년 버번 판매량 최다에 올랐고, 계속 성공가도를 달려왔다.


‘켄터키 역사’가 출간되기 전에, 1869년 뉴 올랜즈의 피케이연 타임즈의 기사를 보면, 스피어스시는 버번 역사와 연관이 있다, “버번 카운티에서 만들어진 최초의 위스키는 펜실베니아에서 대략 1790년 즈음에 이주해 왔다. 최초 증류소는 제이콥 스피어스에 의해 이후에 곧 세워진다.”


혼란스러운 건, 다른 제이콥 스피어스의 남매인 캐터린 스피어스 프라이 카펜터가 가보의 뒷면에 최초로 기록된 사워 메시 레시피를 적었고 1818년이라 기년했다는 것이다. 과거의 신문 기사들이 잘못된 것이라까? 두 제이콥스를 혼동한 것일까? 그럴 것 같진 않다. 후대의 모든 다른 과거 기록들이 버번 카운티에 살고 있던 스피어스가 버번의 창시자로 논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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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어진 사실을 모두 종합해보면, 제이콥 스피어스는 버번 창시자로 가장 유력하다. 스피어스가 후손은 적어도 제이콥이 버번 카운티 이름을 따 버번이라고 명명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이 주장은 1860년대 아브라함 스피어스의 부고 기사가 뒷받침한다. 사진은 제이콥 스피어스 손자 제이콥.


금주법 이후, 1935년대 연방 의회 식품, 약물, 화장품 규제에 대한 청문회에서 켄터키 민주당 하원의원 버질 챕먼은 미국 위스키와 관련해서 “나는 1790년, 켄터키가 주로 인정되기 2년 전에 내가 살고 있는 버번 카운티의 제이콥 스피어스라는 사람이 스트레이트 버번 위스키를 만들었고, 그게 버번 카운티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 이후로 그 형식의 위스키가 세상 어디서 만들어지던 버번 위스키라 불려진다는 게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라는 걸 분명히 안다.” 고 했다.

챕먼의 평론은 의원이 버번의 창시자를 놓고 한 최초 언급이다. 챕먼은 “역사적 사실”이라는 진술을 해 주었는데, 대체 누가 하원의원이 ‘팩트’라고 하는 걸 믿는단 말인가? 제이콥 스피어스의 자취는 곧 차갑게 식어버렸고, 제이콥의 이름이나 그 역사를 되살리려는 시도는 미미했다.


데니얼 샤우한은 메릴렌드 켄트 카운티에서 1731년 태어났고, 그 당시 그 지역 증류 문화의 일원이었다. 독립 전쟁에서 복무한 후, 데니얼의 호밀 위스키는 품질이 좋기로 기록되었다. 1788년, 샤우한 가족은 메릴렌드를 떠나 지금의 버번 카운티라고 알려진 지역에 정착했다. 그 일가족은 데니얼 샤우한이 팟스틸을 설치하고 옥수수 증류를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샤우한은 1791년 사망했다, 켄터키가 주가 되기 1년 전이다, 하지만 샤우한은 증류소를 아들인 조지에게 넘겨줬고, 그의 증류소는 정부 대출금이 있는 것으로 1794년 기록되었다. 데니얼의 손자인 (즉, 조지의 아들) 조지 샤우한은 유명하면서도 전체적으로 비중 있는 인물이 된다. 미국 내전 당시 남부군으로 복무한 뒤, 조지 샤우한은 1872년 켄터키를 떠나 미주리로 향한다, 미주리 역사에서는 샤우한을 버번의 창시자라며 논의의 장으로 끌어들인다. 1881년 출간된 미주리 주 ‘젝슨 카운티 역사’에 따르면 데니얼 샤우한이 팟스틸을 세웠고 버번에서 최초의 위스키를 제조했다고 한다. 샤우한이라는 이름은 또 1875년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일간지에서 버번 창시자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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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브라함 링컨 대통령과 켄터키 버번은 연관이 깊다. 링컨의 부친인 토마스는 이름난 켄터키 증류소에서 일했다.


하지만 데니얼 샤우한이 켄터키로 1788년까지 이주하지 않은 건 분명하다, 샤우한은 해당 지역 다른 증류업자들에 비해 거의 5년 가량 뒤쳐졌다. 메릴렌드의 호밀 위스키 증류업자가 호밀을 구할 수 있는데도 켄터키로 이주하자마자 옥수수를 증류하고 동시에 그을린 통에 담아 제조했을 개연성도 지극히 낮다. 또한 가장 결정적인 역사적 증거의 단편이 켄터키가 아닌 미주리에서 나왔다는 점도 수상하다. 아마도 조지 샤우한이 자기 증류 기량을 부풀리기 위해 조부의 증류 업적을 보존하고자 하는 욕망에서 나왔을 개연성이 크다.


1794년 정비 기록은 샤우한이 증류소를 정말 소유했을 가능성의 문을 열어준다. 그러나 가문 전설 외에, 그 증류소가 옥수수를 증류하고 그을린 통을 썼다는 걸 가리키는 내용은 없다.


와틀 분, 다른 이름으로는 윌리암 와티와 와디 분 으로도 알려진 이 사람은, 데니얼 분의 사촌이었고, 자기 피고용인 - 토마스 링컨,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의 아버지- 때문에 버번의 창시자로 제시되었을 공산이 크다, 미래에 대통령이 될 사람의 아버지가 포팅거스 크릭과 납 크릭 교차점에 위치한 닐슨 카운티에 있는 증류소를 부활시킨 와틀 분 밑에서 일했다. 의회 도서관에 보관된 링컨 문서에 따르면, 분은 1780년 켄터키 최초의 증류소를 세웠다, 하지만 다른 출판 기록을 살펴보면 해당 증류소는 1770년 전후로 세워졌다.

분의 증류 기량은 알기 어렵다. 분의 후손은 와틀의 아버지인 왈터가 실제 증류소를 세운 것이라고 믿는다. 사실, 와틀의 증류소는 유명한 데니얼 분 밑에서 장차 대통령이 될 사람의 아버지가 일했다는 사실의 뒷전에 해당한다. 해당 사례로, 1897년 루이스빌-일보에 실린 이야기에 따르면, “토마스 링컨은 Wm. 분에게 고용되었다, 증류소 직원이자, 메시 일꾼으로서, 그 곳은 현재 빅 애터톤 증류소가 위치한 정확히 그 장소에서 이루어졌다…” 이 이야기가 출간된 이후에, 버번과 애이브러함 링컨의 전설적 지위는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러므로 분이 최초의 증류업자거나 버번의 창시자라면, 신문은 그 사실을 출판했을 거라는 게 사리에 맞다.


데니얼 스튜워트는 켄터키 파예트 카운티 중 메디슨 역으로 알려진 지역에 증류소를 운영했다. 이 사람은 초창기 켄터키 증류기 광고를 낸 것으로 인정할 수 있다. 1789년 6월 출판한 광고에서 스튜어트는 “120갤런 용량의 구리 증류기, 양질의 구리와 백랍 나선관을 갖추었습니다.” 200년 뒤에, 미국 주류, 담배, 화기 단속국은 스튜워트가 버번 창시자 중 한 명일 수 있다고 지목하는 메모를 돌렸다. 네셔널 디스틸러스 사에서도 스튜워트의 버번 증류에 대한 기원을 1950년대에 “서부로 400마일을 그들이 구세계의 기술을 가져 와, 켄터키에서 버번이 탄생했습니다.” 라는 제호로 켐페인을 벌였다. 하지만 스튜워트측의 가장 강력한 논변은 스튜워트가 증류기를 팔았다는데 근거한 것이고, 그가 증류했다는 건 아니다. ‘버번의 사회사’의 저자 제러드 카슨은 스튜어트가 1788년과 1789년에 증류기를 썼을 지 모른다는 이론을 제시했다. 어쩌면, 데니얼이 적재적소에 있었을 수 있다. 유감스럽게도 스튜워트의 증류 업적은 파예트 카운티의 미래 세데에 전해지지 않는다, 그래서 데니얼이 진짜 기여한 게 무엇인지는 미스터리로 남는다.


존 해멀턴은 버번을 발명했다던가 아니면 최소한 버번을 발명했다고 주장했다는 의미있는 언급이 좀 있다. 이를태면 1939년 ‘150년 기념: 버번에 카운티 중심지가 세워진 지 백오십년이 백오십년째의 기록’ 같은 곳과, 1957년 켄터키안 시티즌의 기사에 “존 해밀턴 대장, 위스키 반란 사태에 참여한 댓가로 펜실베니아에서 도망갔으며, 스피어스보다 앞서 버번을 증류한 사람…” 해밀턴은 스튜워트도 또한 광고했던 바로 그 네셔널 디스틸러스의 광고에 언급된다. 하지만 가장 강력한 증거는 법정 기록에서 나온다 1799년, 조지 컬프는 존의 형제, 데니얼을 고소한다. 컬프는 곰과 사슴 가죽을 대가로 위스키를 지불하게 되었는데, 소송 문서에 따르면, 버번 카운티의 존 해밀턴이, 위스키를 확인했어야 했다. 컬프는 지불했으나, 가죽을 받지 못했다. 또한 1790년부터 1794년 사이 버번 카운티에서 존 해밀턴에 의한 재산권 변동이 있었다. 하나는 1791년 7월 제이콥 마이어와 존 골크가 소유한 2천 에이커에 이르는 구역의 일부분인 메인 슬레이트 크릭에서 삼천 에이커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1793년 3월 “코퍼스 런 광천수”에 위치한 4백 에이커에 관한 것이다. ‘켄터키 역사’에서, 저자는 해밀턴이 100살까지 살았고, 사람들이 해밀턴이 버번 카운티의 최초 증류업자라고 자주 언급했다고 한다.


존 해밀턴은 매우 흔한 이름이다, 위스키 거래 기록에 존 헤밀턴만 몇 명이 있다, 예를 들면, 아일랜드의 벨파스트에, 저명한 위스키 판매상인 존 해밀턴은 1790년대 초반 몇 배럴의 위스키를 팔았다. 또 펜실베니아에도 존 해밀턴이 있다. 1819년 ‘피츠버그 주간 가제트’ 기록에 따르면, 존 헤밀턴의 마차가 털렸고, 이를 잡은 이에게 $100의 보상금을 주겠다는 것이다. 이름을 혼동할 가능성을 배제하더라도, 구전으로만 전해저욘 헤밀턴의 기여에 대한 제안들은 1800년대 버번과의 연관성을 짓기 부족하다.


마샬 브레셰어는 증서에 따르면, 1782년 5월 7일 벤자민 포프와 제임스 패턴으로부터 땅과 165 갤런의 위스키를 구매했다. ‘켄터키 버번: 위스키 제조 초창기’의 저자 헨리 크로우기는 이 기록이 브레셰어가 위스키를 만들었다는 걸 암시한다고 적고, 그래서 최초의 증류업자중 한 사람이라고 한다. 마샬의 가족도 유력 증류 지역에서 이주해 왔다. 브레셰어는 프랑스에서 미국으로 1658년 이주해 왔는데. 오늘날 펜실베니아 브라운스빌이 있는 모논가헬라 강변에 정착했다. 여기는 호밀 위스키의 온상이었던 곳이다.

브레셰어는 상징적인 켄터키인이 되었고, 불릿카운티에서는 그의 이름을 따 랜드마크에 이름을 붙였다. 만약 마샬이 정말 버번을 발명했다면,그 시대에 증거로서 좀 더 널리 알려져있었고 언급이 있었을 터이다. 브레셰어는 엘라이자 크레이그보다 확실히 중요하고 전설적이라고 할 만 하다.


존 리치는 버번을 발명한 사람들과 연관된 사람이다. 리치는 1792년 넬슨 카운티 주민으로 최초 연방 인구집계에 있다. 1752년 스코틀랜드 태생으로, 1812년 넬슨 카운티에서 사망했다. 필슨 클럽의 저명한 M.F.컴스 박사는 1895년 넬슨 카운티의 리치 증류소가 “켄터키의 유명한 붉은 술”이 최초로 탄생한 곳이라고 적었다. 뒤이은 논문에서 리치의 증류소를 시큼한 냄새가 나는 바닥으로 깔린 8 평방 피트의 작은 증류소라고 적었다. “구리 나선이 달린 증류기 받침이 놓였을 낡은 화덕이 여전히 남아있다, 리치에 대한 기억과 연관된 유일한 기념물이다.” R.E 휴지스와 C.C 우슬리는 1901년 루이스빌과 네쉬빌 철도 메거진인 ‘아름다운 켄터키’에 적었는다. 건물은 여전히 남아있고, 굴뚝 돌에는 J.R. 1780이라는 표식이 남아있다. 가족사가에 따르면 리치는 평저선에 가득 싣고 그걸 1780년 뉴 올렌즈에 보냈다고 한다, 그리고 그의 후손들은 아직도 리치가 첫 배번 베럴을 만들었다고 믿는다, 주로 1890년대 필슨 클럽 에세이에 기반한 것이다.



버번, 이름의 유래


1600년대부터 1800년대까지, “버번”보다 널리 알려진 이름은 없었다, 부르봉 가문으로 알려진 강력한 지배층 가문과 연관이 있었다. 버번 가문은 권력을 1200년대부터 쥐었는데, 클레르몽의 백작이자, 프랑스 루이 9세의 6번째 아들인 로베르가 부르봉 영지의 상속자인 부르군디의 베아트리스와 결혼한 데서 비롯한다. 이들의 자식인 루이는 1327년 부르봉의 공작이 되고, 브루봉의 앙리에 의해 그 혈통이 부르봉-방돔, 최초 라바르 (1555)와 프랑스(1589)를 지배하는 방계로 이어진다. 부르봉 가문은 프랑스를 1792년까지 비배했고, 1830년 다시 지배한다, 하지만 그 이름은 그저 가문 문장에 불과한 게 아니다. 뉴 올랜다의 부르봉 거리를 비롯해, 여러 카운티에, 신세계의 켄터키 같은 곳은 그 이름을 따 붙였다. 높은 가격을 부르고, 품질 좋기로 유명한 상품들 또한 그 이름을 따 붙였다. 부르봉 커피, 부르봉 설탕, 부르봉 코튼은 각기 분야에서 최고로 치부되었다, 상인들은 이 사실을 신문에 광고했다. 누가 위스키에 버번이라는 이름을 붙였던 간에, 거의 분명히 이에 즉각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이름이 될 거라는 걸 알고 있었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 이름이 버번 카운티를 따 붙였다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은 뉴 올랜즈의 버번가를 따 붙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버번가’의 저자 리처드 캄파넬라는 거리 이름과 위스키와의 연관은 순전히 우연이라고 주장한다 그가 적은 바에 따르면:


그리고 이름의 문제가 있다: 미국에서 술을 가장 숭상하기로 유명했던 장소가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증류주와 별명을 같이 하는 것은 순전한 우연이다. 하지만 버번가와 버번 위스키는 공통된 기원이 있다, 버번 거리는 1720년대와 버번 술은 1780년대, 켄터키의 한 주가 루이 16세의 미국 독립을 도와준 것을 기념할 때 둘 모두 부르봉 가문에 경의를 표했다. 해당 지역은 나중에 고품격 미국 위스키를 증류하고 그 이름을 빌려줬다. 그 장소는 역시 19세기에 위스키와 다른 상품이 가득 실린 평저선과 증기선을 통해 오하이오와 미시시피를 내려와 뉴 올랜즈로 끊임없이 보낼 것이다, 그리고 버번 위스키가 버번가에 두 세기 대부분 동안 흘러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만난 두 우연이 버번가에 대한 명성을 설명해 줄 수 있고, 결코 깎아내리지 않았다.



이반 윌리엄스는 오하이오 강 근처 루이스빌의 5번가에 작은 증류소를 차렸다, 하지만 그는 “면허 없이 제품을 팔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고 이 혐의로 인해 대배심에 의해 기소되었다.

윌리엄스의 악명은 거기 그치지 않는다. 윌리엄스의 이웃은 증류소의 악취로 이의를 제기했고, 마침내 그 곳은 루이스빌에 의해 위법적 방해물로 판정되었다. 하지만 윌리엄스는 단 한번도 버번의 창시자로 고려된 적이 없다, 그리고 이 사람의 선조를 찾기도 어렵다, 당대에 이반 윌리엄스라는 사람이 루이스빌에 2명 있었기 때문이다. 증류업자 윌리엄스는 루이스빌 이사회의 초창기 이사였다. 윌리엄스에 대한 초창기 기록에 따르면, 윌리엄스는 자기 위스키가 든 항아리를 지참해 항상 이사회에 참가했다. 이사회 전원은 회의가 끝나기 전에 위스키를 마셨으나, 그게 버번이라 불린 적은 한 번도 없다.

윌리엄 클라크, 헨리 허드슨 와튼, 제이콥 메이어스, 제이큽 포먼에 대한 애매한 주장들도 있었다.

버번 역사가 마이클 R. 비치는 한 프랑스 형제를 지목하기도 한다, 존과 루이스 타라쏜을 1810년대에 그을린 통 기술을 버번에 도입하고, 위스키 대신 옥수수 브랜디라고 명명한 것이다. 이 주장은 설득력 있으나, 옥수수 브랜디란 아이슬란드, 스웨덴, 노르웨이에서도 옥수수로 만들어진 증류주를 정류한 것으로 인기가 높아 쓰인 용어이다.


학술적 관점에서, 유력한 창시자의 집 주변을 발굴해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 누군가가 분명 통을 그을릴 아이디어를 떠올렸을것이다. 전설에 일부 진실이 있다는 증거 또한 있다. 1900 루이스빌 디스패치의 4월 29일 기사에 따르면 “ 위스키가 농장의 사소한 부산물에서, 하나를 넘어서 켄터키에서 가장 큰 산업이 되는 발전 과정을 경험한, 해당 분야에서 일하고 벌어먹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 해당 기사는 엘라이자 크레이그의 이름이 버번의 창시자로 이어지기 30년 전에, 그리고 농장 화재 전설이 탄생하기 50년 전에 쓰여진 것이다. 어쩌면 농장 화재 전설이 사실일 수 있다, 다만 전설이 잘못된 것일 수 있다, 어쩌면 직원들이 실수로 태워서 통을 만드는데 썼고, 그게 우연히 고품질 위스키를 낳았을 수 있다. 물론, 이 추측은 엘라이자 크레이그와 그 농장 화재로 이어진다. 유럽 통 제조업자가 브랜디용 통을 그을리고 있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비치의 이론이 가장 유력하다, 누군가가 이 기술을 신대륙에 들여온 것이다. 1700년대 어떤 미국 통 제조업자 또한 통에 들었던 이전 이물질- 생선 머리 같은 것- 을 제거하려고 화염을 활용하는 걸 논한적이 있다, 하지만 이들은 의도적으로 그슬려서 위스키에 향을 입히려고 한 게 아니다. 논의를 정리해 보면, 과장된 헛간 화재보다는 증류업자가 증류주를 나르려다 실수로 그을린 통에 담았다는 게 설득력 있다.

어떻게라는 질문은 누가 라는 질문으로 시작할 수도 있다. 필자는 1800년대 스피어스, 샤우한, 리치를 거명하는 기록에 큰 의미를 둔다, 왜냐면 이 사람들은 정확한 시기에 증류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샤우한은 버번 카운티에서,리치는 넬슨 카운티에서. 하지만 콜린스의 책을 사실로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두 사람이 아니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 사람들은 1780년과 1789년 사이에 당시 파예트 카운티의 일부였던 조지타운에서 증류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지타운은 1782년 스캇 카운티 청사 소재지가 된다. 과세 기록 목록에서 스피어스가 첫 버번이 탄생한 연도로 추정되는 1789년 파예트 카운티 주민으로 나오기 때문에 버번이 창시될 때 카운티 내에서 창시한 것으로 가장 흔하게 언급되는 근거가 된다. 하지만 스피어스는 버번 카운티로 이주하고 1790년에 그 곳에서 증류를 시작한다, 스피어스가 파예트 카운티에 기여한 것은, 아마 논의된 적이 없을 것이다. 게다가, 켄터키는 굉장히 토착적인 주여서, 사람들이 자기 카운티에 높은 자부심을 지닌다, 그래서 스콧 카운티 창립시자들이 자기 구역을 떠난 증류업자에게 공을 돌리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다.


스피어스가 버번의 창시자라는 사실에 대한 핵심 사실들은, 1860년대 신문 기사와, 콜린스의 ‘켄터키 역사’에서 그를 최초 버번 카운티 증류업자로 거명하는 점, 1789년 파예트 카운티와 연관짓는 과세 기록, 버질 챕먼 하원의원이 선서 하에 스피어스가 버번을 발명했다고 한 것이다. 이 모든 것 가운데, 난 챕먼의 연설이 가장 흥미롭다. 챕먼이 스피어스를 언급해서 얻을 게 무엇인가? 그는 끝내주게 환상적인 일화를 풀어내느것으로 유명해서 스피어스가 버번을 창시한 게 역사적 사실이라고 한 게 아니다. 즉 버번 카운티 주민인 하원 의원 챕먼은 스피어스에 대한 이야기를 커피숍이나, 교회, 어떤 모임에서 들었을 것이다. 이런 구전 역사는 무시할 수 없다. 의원의 진술에서 켄터키 정치학도 슬쩍 엿볼 수 있다: 챕먼은 버번 카운티가 주장하는 버번에 대한 기원을 뒤흔들려 한 것이다. 스콧이나 파예트 카운티는 알 바 아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스피어스가 버번의 창시자라는 주장은 기각되었다. 다수의 사람들이 그을린 통에서 훌륭한 위스키가 나온다는 결론에 동의했거나, 당시 증류업자들이 기록 할 만큼 중요한 과정이라고 여기지 않았을 수 있다; 그러므로, 그 사람들의 자식이나 손주나 이웃은 누가 버번을 만들었는지에 대한 각기 자신만의 결론을 내렸고, 전해들은 말이 사실로 고착되었다. 스피어스의 주장은 또한 섹시한 전설에 밀려날 수 밖에 없다.어떤 사람들에겐 광고기획 회의실에서 탄생했을 법한 엘라이자 크레이그 전설을 그냥 지나치기엔 너무 매력적이라 느꼇을 것이다.

스피어스가 최초 버번 증류업자가 아니더라도, 스피어스는 적어도 분명 켄터키 초기 정착민이자 가장 중요한 사람인게 분명하다. 스피어스는 평저선에 위스키를 실어 뉴 올렌즈로 보낸 초기 켄터키 사람들 사이에 있었으며, 그 도착지에서 펜대의 힘에 의해 버번의 마케팅 영향력이 시작되었다, 바로 토마스 재퍼슨 대통령이 루이지애나를 구입하기로 서명했을 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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