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은 익주 외부에서 들어온 유비가 이끄는 전사 집단이, 익주를 장악한 유장 세력의 안으로 들어가, 무력 쿠데타를 일으켜 축출하면서 시작된 일종의 외래인 정복 왕조임.
필연적으로 정복자는 원 거주민에 비해 소수일 수밖에 없는데, 유비는 쿠데타 과정에서 유장 휘하의 전사집단을 대거 투항병으로 받아들여 전력화했음. 이들은 동쪽에 있는 주에서 와 유장의 정치적 기반이 된 존재인데, 동쪽 주에서 왔기에 동주병이라 불렸음. 어쨌건 얘네도 익주 토착민은 아니라서, 가능한 한 강한 군주에게 빌붙어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그런 이야기.
이렇게 익주를 정벌한 시점에서 유비의 군사력은 서주나 그 이전부터 유비를 따라온, 무장 친위세력이라고 볼 수 있는 핵심 부곡 집단(우두머리 전사를 따르는 봉건적 전사 집단), 다음으로는 형주의 유표 아래에서 모아들여 군사력부터 문관 일까지 '국가적인' 일은 다 일임한 형주계파, 그리고 마지막으로 익주 정복과정에서 합류한 투항병인 동주계파, 이렇게 3개의 축으로 구성된 상태였음.
이 상태에서 연달아 벌어진 사건이 관우의 죽음, 장비의 죽음, 이릉대전임.
관우, 장비가 죽고 관우의 군대가 와해되면서, 본래 유비 군대의 제일 고참이자 중핵이던 무장친위세력은 구심점을 잃고 세력이 극도로 악화되었음. 이릉대전은 형주 계파의 군사력을 극단적으로 소진시키면서(사료상 8만인데, 호왈이니 그대로 믿지는 않더라도 장교급 소진이 심각함.) 군주인 유비 본인을 죽음으로 내몰았음.
그럼 여기서 동주계파가(익주 정복할때 투항해온 애들이) 정권을 잡아야 하지 않나 싶지만, 이때 정권의 핵심부를 죄다 틀어쥐고 있던 계파는 형주계파였고, 얘들은 기껏 자기들이 10년간 유비를 따라온 결과 힘들여 정복한 땅을 동주계파에게 선물로 꽁으로 넘겨줄 생각은 없었음.
유비는 죽을 때 동주계파의 수장인 이엄과 형주계파의 수장인 제갈량에게 각각 군권, 행정권을 넘겼는데, 제갈량은 남부 반란 진압(남만 진압)을 핑계로 이엄에게 군권을 양도받았고, 중앙군을 끌고 나가서는 남부 반란 진압을 제대로 마치지 않고 돌아왔으며, 한중을 군사도시화하고 막부를 수립함. (중국사에서는 흔히 '패부'라고 함.) 여기서 군사도시화란 정복의 결과 붙잡은 이민족이나 적국의 민호(백성)들을 강제이주시키고 경작시킴으로서 병력과 그에 필요한 자원을 자체수급하는 도시를 말함.
제갈량은 중앙군을 이끌고 막부를 거느리며 황제를 대신해 막부 산하 조직에서 행정과 외교, 군사, 인사, 상벌, 즉 국가의 전권을 행사했는데, 이건 헌제를 대신해 전권을 행사한 조조와 거의 같고, 이렇게 한중의 '중앙군'을 통제하는 자가 정권을 통제하는 구조는 이후 비의 대까지 계속되게 됨. 제갈량의 북벌은 이런 상황에서 충성의 발로로도 읽힐 수 있지만, 얼마든지 통치 정당성을 위한 요식행위로도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생각하면 됨.
여기까지가 정복왕조로서 촉이 보여준 모습이고, 결국은 군권을 가진 이가 정권을 장악하게 된다는 오래된 도식의 일부라고 볼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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