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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태극마크 그려진 일본제 비행기의 정체

SV-001/R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3.07.15 22:40:21
조회 11701 추천 88 댓글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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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한번쯤 본 적 있을 이 두 사진들.


전간기 일본의 타치카와(立川) 사에서 개발했고 이후 2차대전 시기까지 구 일본 육군의 훈련기로 사용되었던 95식연습기(九五式練習機), 일명 Ki-9(キ9)입니다.


그런데 사진을 자세히 보시면 동체에는 미국의 식별표지, 아래쪽 주날개 밑에는 태극 모양의 식별표지가 그려져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래 전부터 국내 밀리터리 커뮤니티 등지에서는 이 기체가 대한민국 공군에 의해 사용된 기체라는 이야기가 퍼져 있었습니다.



위 두 사진의 원 출처는 미 국립해군항공박물관(National Naval Aviation Museum)인데요. 지금은 웹페이지 자체가 사라져서 찾아볼 수 없지만 위 사진들의 설명란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습니다.


Accession Number NNAM.1996.488.159.039 및 NNAM.1996.488.159.040


Accession Date 05/01/1996


Date Created circa 1951


Object Desciption A former Japanese Tachikawa Ki-9 "Spruce" pictured at airfield K-1 in South Korea during 1951. Note that it is painted in South Korean markings.


Robert L. Lawson Photograph Collection


말하자면 이 사진들은 로버트 L. 로슨이라는 사람이 가지고 있던 사진집에서 발췌한 것인데, 1951년에 남한의 K-1에서 촬영되었다는 것입니다.


K-1은 한국내 비행장 및 공군기지의 식별코드에 따르면 김해기지를 일컫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김해에서 촬영되었다는 뜻이죠.


그렇다면 정말로 한국 공군이 일본제 항공기를 보유 및 운용했던 것일까요? 조금만 찾아보면 비슷한 기체의 사진을 더 찾아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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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은 호주전쟁기념관(Australian War Memorial)에서 소장하고 있는 사진으로 다행히 출처 웹페이지가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웹페이지에 따르면 이 사진은 1951년 3월 해럴드 던클리(Harold Vaughan Dunkley)라는 사람이 찍었다고 하는데요. 설명문에는 다음과 같이 대한민국 공군의 타치카와 Ki-9라고 명기해 놓고 있습니다.


Republic of Korea Air Force (ROKAF) Tachikawa Ki-9 primary trainer aircraft on an airfield in South Korea. ROKAF rondels can be seen on the underneath side of the lower wings, and on the fuselage of the aircraft. The aircraft, which has a tandem open cockpit, is powered by an Army Type 95 9 cylinder air-cooled radial engine, developing 350 horsepower. It has a maximum speed of 240 kph and a cruising speed of 150 kph. A total of 2,618 Ki-9 aircraft were originally manufactured for the Japanese Army Airforce in the Second World War. After the war, a large number remained in rear echelon areas such as China, Korea and Thailand. They were also operated by the fledgling Indonesian People's Securty Forces Airforce immediately after the Second World War.


https://www.awm.gov.au/collection/C1089214

 


이외에도 원출처를 알 수 없는 아래 2장의 사진을 추가로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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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사진은 동체에 태극 모양 식별표지가 있고 꼬리날개에 'K' 자 모양의 표지가 없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미 국립해군항공박물관 보유 사진보다 호주전쟁기념관 보유사진 속에 찍힌 기체와 더 가까워 보입니다. 위 4장의 사진들이 동일 기체를 찍은 것은지 아닌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이쯤 되면 대한민국 공군에서 Ki-9를 운용했다는 게 사실이 아닐까 생각되지 않는 게 이상하겠지요.


하지만 대한민국 공군의 보유 항공기 관련 자료를 아무리 찾아봐도 Ki-9를 비롯한 일본제 항공기를 운용한 기록은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특히 『최초 국산 경비행기 부활호』를 쓸 때 공군역사기록관리단에서 공군의 연도별 항공기 증감에 관련한 자료를 볼 수 있었는데 여기에는 공군이 지금까지 운용했던 전 기종의 도입 및 퇴역 년도를 알 수 있지만 일본제 항공기에 관한 내용은 전혀 실려 있지 않았습니다. 또한 6.25 전쟁 공군 참전용사들의 회고록 및 증언록이라든가 『공군발전약사』, 『공군사』 같은 정사를 찾아봐도 우리 공군이 6.25 전쟁을 전후한 시기에 일본제 항공기를 운용했다는 내용은 없고요.


저는 오래 전부터 해방 이후 한반도에 남겨진 일본제 항공기에 대해서 관심이 있었습니다. 이제부터 쓸 내용은 제가 재작년 『최초 국산 경비행기 부활호』를 쓰면서 수행했던 자료수집 와중에 발견했던, 이 태극 마크가 그려진 일본제 비행기의 정체를 알려줄 수 있는 몇 가지 단서들입니다.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war&no=3448010

 


일제강점기, 김영수(金永修)라는 비행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경상북도 영덕 출신으로 1938년에 2등비행사 면허를 취득한 사람이었습니다.


1922년 그 유명한 안창남(安昌男) 비행사가 여의도 상공을 날아오른 이후 비행술을 배운 식민지 조선인에게 고국방문비행은 하나의 통과의례처럼 자리잡았습니다. 김영수 비행사도 예외는 아니었는데요. 2등비행사 면허를 취득한 그 다음해인 1939년 4월 말에서 5월 초 사이, 고국방문비행을 마친 것입니다.


그리고 김영수는 1930년대 후반으로 보이는 시기, 대구 동촌비행장, 즉 지금의 대구기지가 있던 자리에 '조선항공연구소'라는 작은 비행학교를 세우게 됩니다. 조선항공연구소는 조선총독부가 개최한 지방방공비행대회*라는 행사에 협조하면서 연습기와 부속품을 대가로 얻게 되는데, 1944년 이후 지방방공비행대회가 중단되면서 조선항공연구소는 재정난에 빠지고 말았다고 합니다. 거기에 더해 조선항공연구소는 항공기와 비행장까지 징발되었는데 학교 설립자 김영수는 일본 육군항공대에서 복무해달라는 총독부의 요청을 거절하고 고향에서 해방 때까지 숨어 지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주: 지방방공비행대회는 방공사상, 곡산장려, 신사참배를 선전하고 곡예비행, 소이탄 폭격 및 화재진압시범 등을 보여주었던 행사였음)


1945년 해방 이후, 한반도의 항공인들은 일본이 남기고 간 항공자산을 활용해서 항공력을 건설하려는 움직임을 벌였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김포비행장(지금의 김포공항)과 여의도비행장에 있던 일본군의 항공기와 시설물을 접수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일본 육군, 해군 및 조선총독부에서 만든 자료를 종합하면 이 시기 일본이 남기고 간 항공기는 남한 지역에 있던 것만 모두 합쳐도 739대 가량이나 되었던 것으로 짐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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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일본 국립공문서관 아시아역사자료센터 '하야부사부대 병기개수일람표'(隼部隊 兵器概数一覧表))


https://www.jacar.archives.go.jp/aj/meta/result?DB_ID=G0000101EXTERNAL&DEF_XSL=default&ON_LYD=on&IS_INTERNAL=false&IS_STYLE=default&IS_KEY_S1=C13070041100&IS_TAG_S1=InD&IS_MAP_S1=&IS_LGC_S1=&IS_KIND=detail&IS_START=1&IS_NUMBER=1&IS_TAG_S18=eadid&IS_KEY_S18=M2013071117281677111&IS_EXTSCH=F2006083118101851446%2BF2006090108075391350%2BF2007112018363101106%2BF2006090108080491493%2BF2013071117281577106&IS_ORG_ID=M2013071117281677111

 



(출처: 일본 국립공문서관 아시아역사자료센터 '진해경비부 인수목록'(鎮海警備府 引渡目録))

https://www.jacar.archives.go.jp/aj/meta/result?DB_ID=G0000101EXTERNAL&DEF_XSL=default&ON_LYD=on&IS_INTERNAL=false&IS_STYLE=default&IS_KIND=summary_normal&IS_START=1&IS_NUMBER=20&IS_TAG_S51=iFi&IS_KEY_S51=F2008021311185876300&IS_EXTSCH=F2006083118101851446%2BF2006090101382792715%2BF2007112716592602417%2BF2007112717182402433&IS_ORG_ID=F2008021311185876300&IS_SORT_FLD=sort.seq%2Csort.refc&IS_SORT_KND=acs&DIS_SORT_FLD=sort.se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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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국가기록원 '민간항공기 현재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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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자료들을 모두 정리한 것 (출처: 『최초 국산 경비행기 부활호』, 32쪽


지금 대한민국 공군이 운용하는 전술기 숫자도 수백 대 가량임을 감안하면 비록 대부분이 연습기이긴 하지만 엄청난 수량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당연히 해방공간에서 항공계를 새로 일으키려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관심이 없을 수가 없었겠지요.


그러나 이렇게 일본의 항공유산을 접수하려던 항공인들의 계획은 큰 차질을 빚게 되는데, 바로 연합군의 항공금지령 때문입니다. 2차대전이 끝난 지 얼마 안 되었던 1945년 11월 18일, 연합군최고사령부는 SCAPIN 301호를 발령하여 일본의 항공활동을 뿌리뽑으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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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APIN 301의 내용은 위와 같은데, 요약하면 1945년 12월까지 일본은 모든 항공 관련 기관, 회사, 단체를 해산하고 관련 인력의 명단을 제출하며 이후 그 어떤 항공활동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연합군 최고사령부 외에도 한반도의 미군정 또한 일본군을 무장해제하는 과정에서 그 무기가 한국인들에게 입수되어 치안 악화 요소로 작용하는 것을 막고자 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일본군이 가지고 있던 항공기들은 모두 미군에게 넘겨졌고, 미군정은 SCAPIN 301이 발효된 직후부터 일본이 남기고 간 항공기를 모두 파괴해 버렸습니다. 이것이 당시 한국 항공인들에게 얼마나 뼈아픈 상황이었는지는 여러 사람의 저술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에 관해서는 오래 전에 써둔 글이 있으니 참고해 주세요.


https://gall.dcinside.com/board/view/?id=flyingsimul&no=118913

 





그렇다면 김영수 비행사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해방 이후 김영수는 조선항공연구소의 뒤를 이어 대구 동촌비행장에서 '조선비행학교'라는 이름의 학교를 세우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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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1946년 12월 24일자에 실린 조선비행학교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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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는 미군정이 작성한 한국의 항공정책 관련자료에서 보이는, 당시 한국 항공인들 목록인데 김영수 비행사가 기재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따르면 그 1947년 1월 현재 대구 비행학교 교장이라고 서술되어 있습니다.(출처: RG 338, Records of the United States Army Force in Korea, Lt. Gen John R. Hodge Official File, 1944-48, Entry 11070, Box 112, AG File 600.12, 국사편찬위원회 전자사료관 발췌)



한편 이 학교의 상세 사항에 대해서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하나 더 있는데 바로 『신아일보』라는 신문에서 1970년대에 연재되었던 「한국항공 60년」이라는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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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학교는 일본 육군항공대가 남기고 간 비행기와 시설을 그대로 인수받았다. 비행기는 연습기와 수송기까지 합쳐 30대 가량이 있었는데 상당히 성능이 좋은 것들이었다.


(「한국항공 60년」 제20회, 『신아일보』 1973년 8월 30일자)



국가기록원이 보유하고 있는 이 학교와 관련된 문서에서는 이런 서술이 보입니다. 1946년 3월 10일 주한미군으로부터 각종 항공기 20대를 원조받았고 건평 465평의 격납고를 신축하였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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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국가기록원 보유문서 「한국항공학교 설립인가 신청의 일」, 『한국항공초급대학철』)



대한항공에서 저술한 『대한항공십년사』에도 비슷한 서술이 나옵니다.



일제 말기 대구에 조선비행학교를 설립해서 이미 제1기 수료생까지 내 놓은 김영수는 해방이 되자 대구에 진주한 미군과 교섭해서 일본군이 보유하고 있던 수송기 1대를 비롯해서 아직 뜯지 않고 포장된 채로 있는 '붉은 잠자리' 정찰용 비행기와 그 부품 20여대분을 인수받아 제2기생을 훈련 중에 있었다.


(대한항공, 『대한항공십년사』, 634쪽)



비슷한 시기 활동했던 다른 항공인들은 미군정이 당시 한국인들의 항공활동을 위축시켰다고 회고하고 있는데 어째서 김영수 비행사는 비행학교를 다시 세우고 항공기를 지원받기까지 한 것일까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어느 쪽 서술에 오류가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한편 이에 대해서는 다른 서술도 있는데 바로 제1대, 제3대 공군총참모장을 역임하신 김정렬 장군님의 회고록입니다.



또한 대구에는 김영수 씨가 일제 시대부터 조선 항공 연구소를 만들어 활동해 오다가 해방이 되자 대구에 비행학교를 만들고, 단 한 대의 훈련기로 학교를 운영하고 있었다.


김정렬, 『김정렬회고록』, 86쪽


이렇게 당시 김영수가 운영하던 조선비행학교의 보유기 규모가 어땠는지는 저술자마다 엇갈리고 있어서 확인이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앞서 소개한 『대한항공십년사』의 서술을 보면 한가지 눈에 띄는 부분이 있습니다. 당시 조선비행학교가 인수받은 항공기 가운데 아카톰보라는 비행기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항역덕이라면 잘 아시겠지만 아카톰보(赤とんぼ)는 '고추잠자리'라는 뜻으로서 2차대전시기 일본군이 운용했던 훈련용 기종을 의미하는 별명입니다. 당시 일본군 훈련기의 도색이 주황색이었기 때문에 붙은 별명입니다. 넓게는 훈련기 종류 전반을 일컫지만 좁게는 일본 육군이 운용했던 타치카와 Ki-9 95식중간연습기와 해군이 운용했던 카와니시 K5Y 93식중간연습기를 일컫는다고 합니다.


당시 조선비행학교는 미 군정청의 허가 없이는 비행할 수 없다는 조건으로 학교를 인가받았다. 일본 육군항공대가 운영하던 장비와 시설을 군사적인 노획물로 간주하여 민간인들의 사용을 제한했던 것이다. 그런데 1946년 초 조교 이/근석과 일부 학생들이 허가 없이 대구상공에서 편대 비행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러자 격노한 미 군정청은 조선비행학교가 보유한 프로펠러를 모조리 절단해 버렸다. 이때 김영수는 격납고에 온전한 95식 3형 연습기 1대를 감춰두었다.


이상각, 「신문팔이 소년, 조국의 하늘에서 나부끼다 - 대한민국 최초의 비행기 HL-01의 주인공 김영수」, 『항공문화』 2014년 여름호, 13쪽


그런데 대한민국항공회에서 펴낸 『항공문화』 2014년 여름호를 보면 이 시기 김영수 비행사가 온전한 95식연습기 1대를 몰래 격납고에 감춰두었다는 대목이 나옵니다. 어떤 자료를 참고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맨 앞에서 소개했던 사진과 같은 95식연습기가 나온다는 사실에서 뭔가 가닥이 잡히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이때 결정적인 자료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바로 교통부 항공과와 대한민국 육군항공대에서 복무했던 김광한(金光漢)이 저술한 책입니다.


그러나 중공군의 개입으로 시국은 더 한층 험악해졌다.


하루도 편안한 날이 없이 어수선하게 지내고 있는 어느 날, 항공계 옛날 선배이던 김영수가 대구에서 나를 찾아왔다. 비행기에 관해서 의논하러 왔다는 것이다.


나는 귀가 솔깃해졌다. 비행기라면 먹던 밥숟가락도 놓고 일어서는 나다. 그래 무슨 이야긴지 말해 보시오―.


그는 일제가 패망한 8.15 때에 대구 동촌비행장에 내버려진 비행기 중에서 '95식 1형'이란 연습기 한 대를 몰래 보관하고 있는데 이번 기회에 이것을 다시 손질해서 요긴하게 쓰고 싶다는 것이다. 그 비행기는 5년이 지난 지금까지 한 번도 손을 대 본 일이 없는데 좀 보아줄 수 없겠느냐고 했다.


나는 당장에 '오케이' 했다. 다시 조종간을 잡을 수 있다는 부풀음에 그와 함께 뛰어다녔다. 일이 잘되느라고 항공에 열의를 가지고 교통부 공용 비행기로 만들어 내는 데에 성공했다. 필요한 자금도 교통부에서 나왔다.


나는 별도로 교통부에서 비용을 타 가지고 김씨와 함께 동촌비행장으로 향했다. 이미 낡을 대로 낡은 비행기는 어디에도 쓸모없는 폐기물처럼 보였다. 그러나 나는 자신이 있었다.


이 고물 비행기는 원래 일본의 군용기로서 내가 한번도 타 본 일이 없다. 그러나 어떤 비행기든 그 구조와 성능에 대해서 충분한 지식이 있기에 손을 써보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며칠을 수리하고 정비하느라고 손이 부르틀 지경이었다. 드디어 완성을 보아 시승할 단계에 왔다.


내 실력을 모르는 사람들은 내가 몰고 가는 비행기에 동승하는 것을 꺼려했다. 무리도 아니다. 고철상에나 팔아먹을 비행기를 뚝딱거려 가지고 하늘을 날겠다니 목숨이 아깝지 않고서야 누가 타려고 하겠는가? 하지만 나는 혼자서라도 날 참이었다.


교통부 직원인 정비사들도 나의 조종기술을 믿지 않았다. 비행기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자 서정만 정비사가 뛰어왔다. 자기가 동승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단단한 각오라도 했던 모양이다.


그를 뒷자리에 태우고 나는 비행기를 몰았다. 엔진의 폭음소리도 순조롭게 비행기는 활주로 위를 미끄러져 나가다 공중에 떴다. 고도를 잡고 대구 시가를 내려다보며 한 바퀴 선회하고 나서 낙동강 줄기를 따라 부산으로 날았다.


…(중략)…


교통부 전용기의 출현으로 정부 고위층의 항공에 대한 인식은 깊어졌다. 나는 비행기 품에 돌아온 행복감에서 새로운 인생의 보람을 느꼈다.


전란으로 파괴된 경북 왜관의 낙동강 철교가 그 복구공사를 끝내고 개통식을 거행한다고 했다.


…(중략)…


축하비행을 무사히 마치고 부산으로 돌아온 얼마 뒤에 그 식전에 참석했던 교통부의 김윤기 시설국장이 내게 들려주는 말은 이러했다.


그 날 내외 귀빈들이 나의 축하비행을 지켜보았는데 그러자 이 대통령이 불쑥 물었다.


"저것은 무슨 비행기지?"


마침 옆에 있던 K.N.A.의 신용욱 사장이 얼른 나서서 대답했다.


"저건 일본군이 쓰던 군용기인데 고물이어서 아주 위험합니다.


"응, 그래?"


대통령은 그러면서 한참 눈부신 얼굴로 우러러보다가


"왜놈이 쓰던 거라도 잘만 고쳐 쓰면 돼"


하며, 믿음직스러운 표정으로 나의 비행을 지켜보더라는 것이다.


…(중략)…


교통부의 공용기는 'K-1'이라는 부산의 김해비행장을 기지로 쓰고 있었다. 이 비행기는 또 내가 늘 조종하고 다녔기 때문에 나의 전용기처럼 되기도 했는데 그 프로펠러는 나하고 깊은 인연이 있는 것이다.


해방 후 일제가 버리고 간 민간·군부의 비행기는 서울의 김포 비행장과 여의도 비행장을 비롯하여 남한의 각 비행장에 수두룩 있었다. 그랬던 것이 어느 정상배(政商輩)의 손에 모조리 넘어가 기체는 분해되어 고물상의 손을 거쳐서 자취도없이 사라졌었다.


내가 영등포 어느 고물상 앞을 지날 때 가게에 걸려있는 비행기 프로펠러를 발견하고 그 아까운 비행기들이 이렇게 값없이 뜯긴 신세가 되었음에 얼마나 가슴을 쳤던가. 그것이 내 분신인 양 느껴져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당시 가난한 살림에 쪼들려 왔지만 나는 그 프로펠러를 사들여 내 방에 걸어놓고 지난날 하늘을 날던 추억을 되씹으며 울분을 달랬었다. 그랬던 프로펠러가 실로 뜻밖에도 제 몸뚱아리를 찾아 요긴하게 쓰였으니 사람 아닌 프로펠러의 팔자도 때가 오면 자기 세상을 만나게 되는 모양이다.


이 프로펠러가 더듬은 운명은 이러했다. 앞에서도 말한 김영수는 그때 대구에 살았었는데 파일럿이기도 한 그는 해방이되자 동촌비행장에 있던 일본 군용기 한 대를 자기 창고에 감춰두고 이따금씩 꺼내어 하늘을 날기도 했었다.


대구의 동촌비행장은 미군 제5공군 전투기 기지로서 그 기지사령관은 군작전에 방해된다 하여 민간비행기는 뜨지 못하도록 경고를 내렸다. 김 씨는 그래도 비행기를 타고 싶어서 미군의 경고를 무시하고 계속 비행기를 띄우자 화가 난 사령관은 어느 날 부하를 시켜서 김씨 비행기의 프로펠러를 톱으로 싹뚝 잘라버리고 말았다.


하늘을 날 수 없게 된 김영수는 그래도 비행기에의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생각다 못해 그 때 서울에 있던 내게로 왔다.


"김 형은 변통을 잘 부리는 사람이니 비행기 프로펠러를 하나 구해주시구려"


…(중략)…


그러지 말고 제발 부탁한다는 그의 간청에 이기지 못하는 체하면서 며칠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가 내 방에 있는 프로펠러를 갖다 주었던 것이다.


…(중략)


이리하여 그의 비행기는 다시 하늘을 뜨게 되었고 그러다 완전 폐물이 되어 더 쓸 수 없었던 때에 내 손을 거쳐서 재생되어 지금은 교통부 공용기로 빛을 보게 된 것이다.


김광한, 『하늘을 보라, 끝이 없다 창공의 사나이 김광한』, 227~234쪽


이 95식연습기에 대한 김광한의 저술은 상당히 구체적입니다. 요점만 정리하면 해방 직후 김영수 비행사가 95식연습기를 몰래 가지고 비행하다가 미군에 의해 프로펠러가 잘리고 말았는데 김광한 비행사가 프로펠러를 구해다주었다는 것입니다. 후일 6.25 전쟁이 발발하고 전쟁 도중에 김영수 비행사가 김광한 비행사에게 다시 한 번 비행기를 수리해 줄 것을 요구했고 그것이 수락되어 이 비행기가 교통부의 전용기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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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이 책의 표지를 보면 미군 표지 및 꼬리날개의 K 표지를 한 95식연습기와 자신이 찍힌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편 이 비행기에 대한 다른 서술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바로 초창기 교통부 항공과에서 근무했었던 송석우(宋錫禹)입니다. 그는 자신의 저서 『노고지리의 증언』에 다음과 같은 말을 썼습니다.




기술계장 송석우는 우선 조선비행학교 연습기의 감항검사를 실시하였다. …(중략)… 1949년 5월초 화창한 봄날이었다. 경부선 급행열차가 대구역에 도착할 때 조선비행학교 김영수교장이 송 검사관을 맞이하였다. 두 사람은 난생 처음 만나는 사이였지만 송석우가 어리둥절할 정도로 김교장의 피수검 자세는 겸손하였다. 동촌비행장에는 검사받을 비행기 뿐만이 아니고 학교 교직원이 모두 정열하여 기다리고 있었으며 정비용 공구들도 잘 정리해 놓고 있었다. 이윽고 김교장의 구령으로 검사관에게 '일동 경례'를 하는 것이었다.


검사는 지상에서의 점검과 비행검사로 나뉘어 시행되었다. 장시일동안 창고 안에 숨겨졌던 기체라서 꼼꼼히 검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조종 교관석과 생도석의 각종 계기 특히 속도계의 작동이 일치하지 않아 이의 시정을 통보하고 감항검사를 마쳤다. 감항검사 때의 도열 경례같은 일제시대의 권위주의적 수검방법은 차후부터는 없앨 것도 아울러 당부하였다. 일일점검이나 시간점검의 요령에 관한 질문도 몇 가지 하고, 주의사항을 당부하기도 하였다.


과거에는 일본인 검사관의 검사를 받았지만 처음으로 같은 한국인 검사관으로부터 감항검사를 받는 감회를 김영수비행사(1등)는 상기된 기색으로 피력하였다. 이것이 해방된 대한민국에서 처음 치러진 감항검사 제1호였으며 95식 1형 연습기는 HL-01이라는 등록번호를 교부받았다. 항공운송사업을 개시한 대한국민항공사의 수입항공기 스틴슨기 3대가 감항증명과 등록번호를 받기 5개월 전의 일이었다.


김영수교장 겸 조종 교관은 이 95식 연습기로 많은 국산조종사를 길러냈다. 6.25 발발 후 창설된 육군항공대 조종사의 주력멤버가 된 윤원주, 변덕규, 장기수 등이 이때 양성된 조종사들이었다. 일제시대 일본육군이 쓰다 남긴 고물연습기였지만 민한공 육성의 '일번타자' 역할을 톡톡히 한 비행기였다.


이 연습기는 그후 6.25를 겪으면서 김영수교장이 유지할 수 없게 되자 교통부가 이를 인수(당시 화폐로 200만환)하여 항공학교 교재로 사용되다가 학교 뒷켠 창고 안에서 폐기처분되어 비행기로서의 일생을 그곳에서 마쳤다.


송석우, 『노고지리의 증언』, 181~182쪽


말하자면 김영수 비행사가 가지고 있던, 95식연습기가 1948년 대한민국 건국 이후 교통부에 의해서 최초로 수행된 감항검사를 수검했고, HL-01이라는 등록부호를 부여받음으로서 대한민국 최초의 등록항공기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김영수가 가지고 있던 95식연습기는 어떻게 해서 교통부의 전용기가 된 것일까요?


앞서 인용한 『하늘을 보라, 끝이 없다 창공의 사나이 김광한』을 보면 6.25 전쟁 도중에 이 비행기가 교통부의 전용기가 되었다고 하는데 자세한 내막은 적지 않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한국항공대학교가 펴낸 『한국항공대학교 50년지: 1952~2002』의 서술을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그러나 항공대학의 개교당시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그야말로 혼돈상황이었는데 교육의 실태를 살펴보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첫 번째 항공대학의 설립과 관련하여 1.4 후퇴 이후 부산역과 부산철도국 청사에 피난살이 사무실을 설치하고 있던 교통부는 1952년 초부터 시설국장 김윤기와 항공과장 윤한병이 주동이 되어 교통고등학교 내에 항공학교를 병설할 것을 계획하였다. 그 당시, 1951년 말에 항공과가 대구 동촌비행장의 한국항공학교 교장 김영수 소유 연습기 95식 2형을 당시 화폐 200만환으로 인수한 것이 김해비행장에 있었기 때문에 이 비행기도 활용해 보겠다는 의도도 있었다.


…(중략)…


1951년 7월, 교통부는 대구에 있던 조선비행학교 소유의 항공기 1대를 겨우 인수하여 부산의 수영비행장으로 가져다 놓았다. 사실 조선비행학교는 학생의 지원이 없었고, 비행기 운영을 위한 유지예산조차 확보하기 어려워 교통부 측에 인수하기를 요청하고 있었다. 부산으로 피난한 정부 각 기관의 운영과 체제는 당시 매우 어려운 형편이었으므로 교통부에서는 인수한 항공기의 운영을 위한 유류비용조차 확보하기 어려워 거의 운항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이런 차제에 확보된 항공기를 활용하여 항공 전문인력 양성을 위한 교육기관 설립이 논의되기 시작된 것이다.


한국항공대학교, 『한국항공대학교 50년지: 1952~2002』, 66~67쪽


초기의 교통부가 이 무렵 항공기를 도입했다는 사실은 당시의 신문지면에서도 보도되고 있습니다.



교통부 항공과에서는 항공사상을 널리 일반에 보급시키기 위하여 이번 대구에 있는 구 조선비행학교장 김영수씨의 소유인 일본제 95식 1형 비행기 1대를 밧어들이기로 되엇다한다. 차기의 담당조종사는 일등비행사로 1940년 1월생 구산(駒山)*에서 열린 일본활공경기대회에서 활공기(소아라) 체공시간 11시간 40분이라는 신기록을 가진 김광한씨, 기관사는 항공과장 송석우씨라고 하며 앞으로는 항공에 대한 각종 행사와 실지교육등을 베푸리라고 한다.


「민간항공사상고취 교통부서 연습기 확보」, 『동아일보』 1951년 7월 5일자


*(주2: 김광한이 일본에서 활공기록을 수립한 정확한 장소의 이름은 나라 현에 있는 이코마(生駒) 산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1951년 7월 교통부 항공과가 조선비행학교의 95식연습기를 200만 환의 가격으로 사들였는데, 교통부가 이를 도입한 이유는 항공에 대한 각종 행사와 교육 등에 활용함으로써 항공사상을 일반에 보급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전쟁이라는 국난에 직면한 작은 국가의 일개 정부부서가 항공기를 운용할 수 있는 역량은 사실상 없다시피했고, 그 타개책으로 제시된 것이 항공 교육기관의 설립이었던 것이죠.


그러나 안타깝게도 귀중한 항공기를 왜 교통부에 넘겨줄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조선비행학교측의 입장이 담긴 자료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


한편 이와 관련된 듯한 사진이 미 공군박물관 홈페이지에서 발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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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의 항공기는 기체가 구겨져서 식별이 쉽지는 않지만 카울링의 모양 등으로 미루어 보아 95식연습기일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이 사진을 실은 미 공군박물관 홈페이지에는 다음과 같은 설명을 올려두고 있습니다.



https://www.nationalmuseum.af.mil/Visit/Museum-Exhibits/Fact-Sheets/Display/Article/196089/air-superiority-controlling-the-skies/

 


6.25 전쟁 당시 북한 공군은 Po-2 경비행기를 이용해서 야간에 UN연합공군의 비행장을 기습 공격하는 전술을 사용했는데요.


위 사진 속의 비행기가 이때 격추된 기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진 속 기체 측면에는 '국립항공대학'이라는 한자가 씌어 있습니다.


앞서 1952년 교통부가 교통고 부설 항공과를 만들었다고 썼는데요. 이 항공과가 자라서 독립한 것이 바로 국립항공대학(국립항공학교)입니다. 지금의 항공대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지요.




전체적인 내용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일제강점기부터 대구 지역을 근간으로 활동했던 김영수 비행사라는 사람이 있었다.


2. 그는 해방 이후 일본군이 남기고 간 95식연습기 1대를 숨겨두고 있었다.


3. 이 비행기는 당시 교통부에 의해 대한민국 최초의 등록항공기가 되었다.


4. 6.25 전쟁 이후 이 비행기는 김영수의 조선비행학교에서 교통부로 넘겨져 한동안 전용기로 사용되었다. 이때 이 항공기가 있었던 장소가 바로 김해기지였다.


5. 이후 항공기 운용이 어렵게 되자 교통부는 교통고등학교 항공과에 실습용으로 이 95식연습기를 넘겨주었다.


6. 교통고등학교 항공과가 국립항공학교(지금의 한국항공대학교)로 독립하면서 이 비행기는 학교의 유일한 비행기 교재가 되었다. 하지만 이후 학교 창고 안에서 폐기처분되고 만다.


7. 지금까지 한국에서 '대한민국 공군이 운용했던 일본제 Ki-9'라고 일컬어지는, 태극마크 달린 95식연습기의 정체는 여러가지 문헌이나 회고록, 정황을 살펴봤을 때 이 기체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된다.




그렇다면 결과적으로 항공대 소유가 된 95식연습기의 행방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앞서 『노고지리의 증언』 내용을 보면 이 비행기가 항공대에서 실습용으로 사용되다가 창고 안에서 폐기처분되었다고 나오는데요.


항공대에서 발간한 또다른 책인 『한국항공대학교 60년』이라는 책에 이런 사진이 실려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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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비행기의 말로는 사진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 된 것이죠.


그리고 이 비행기의 원 소유자(?)였던 김영수 비행사는 6.25 전쟁 휴전 직후 대구에 다시 '한국항공학교'라는 이름의 비행학교를 세웁니다. 그러다가 1950년대 말에 정계에 진출해서 실제 국회의원에까지 당선되었는데, 국회의원이 된 지 얼마 뒤 5.16 군사정변이 일어나면서 의원 자리에서 내려오게 됩니다.


그 이후 그가 어떻게 살았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조선일보 1987년 10월 21일자 기사에 따르면 1987년 10월 19일에 세상을 떠났다고 되어 있습니다.


한편 김영수가 마지막으로 대구 지역에 세웠던 이 비행학교는 한국항공대학, 한국항공초급대학 등 이름이 계속 바뀌다가 1960년대에 폐교하고, 학교의 모재단이던 일용학원이 새로 공업고등학교를 세우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지금의 경상공업고등학교입니다.



기타 참고문헌


대한민국항공회, 『대한민국항공사』


유지아, 「전후 재조선일본군의 무장해제 과정에서 형성된 한미일관계」, 『한일관계사연구』 제28집


국사편찬위원회, 「일본군 장비와 시설 처분」, 『주한미군사 1』


임달연, 『한국항공우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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