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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발터 모델은 어떤 인간?-절망편

시튼야채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1.10.02 21:49:02
조회 9370 추천 89 댓글 57
														

희망편: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war&no=2045913


출처는 A Flawed Genius: Field Marshal Walter Model, a Critical Biography by Marcel Stein.


발터 모델은 동부전선에서 벌어진 거의 모든 전쟁 범죄에 참여했다.


물론 주요 가해자까지는 아니었다. 모델은 전쟁 범죄에 있어 발터 폰 라이헤나우, 에리히 폰 만슈타인, 헤르만 호트, 게오르크 폰 퀴흘러, 한스 폰 살무트, 막스 폰 헤켄도르프, 발터 브레이머만큼 주도적이진 않았다. 하지만 그가 주관 없이 독일의 이름 아래 결국 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며, 모델의 범죄는 그와 유사한 태도를 보인 다른 많은 국방군 지휘관들과 비교했을 때 딱히 더하지는 않았으나, 그렇다고 결코 덜하지도 않았다. 그의 이름이 나치 독일의 전쟁 범죄, 특히 방대한 홀로코스트 관련 자료에서 거의 언급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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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정치장교 명령

작전 도중 붙잡은 소련 정치장교들을 현장에서 즉결 처분하라 명령한 소위 ‘정치장교 명령’은 OKH와 OKW의 긴밀한 협력 하에 준비되었고, OKH는 최종적으로 1941년 6월 6일 사단 이상 지휘관들에게 명령을 배포했다. 명령은 사살한 정치장교의 수를 정기적으로 OKH에 보고하라 요구했고, 몇몇 군단과 사단들은 매일 보고를 제출했다. 최신 연구에 의하면 모든 독일 집단군과 군, 군단, 그리고 최소 80%의 사단이 명령을 실행했다.


그러나 붉은 군대가 한때 폐지됐던 정치장교 제도를 재도입한 건 1941년 7월 15일의 일이었다. 따라서 전쟁의 첫 한 달간 독일군은 정치장교 포로를 물리적으로 잡을 수 없었다. 하지만 여러 독일군 부대가 전쟁 첫날부터 정치장교의 사살을 보고했는데, 그들은 포로로 잡은 붉은 군대 장교들을 무작위로 처형한 후 정치장교라고 보고했을 것이다. 이와 같은 무자비한 정책은 결과적으로 붉은 군대의 저항의지만 높였고, 독일군은 이 사실을 서서히 깨달았다. 결국 히틀러는 1942년 5월 6일 명령을 취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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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많은 독일 장교들이 명령의 책임소재를 오롯이 히틀러와 나치에게 떠넘기려 시도했다. 하지만 그들의 주장과는 달리 히틀러의 주장에 대한 ‘저항’은 결코 존재하지 않았다. 또한 구데리안을 비롯한 많은 장교들은 정치장교 명령을 애초에 받은 적이 없다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구데리안의 경우 그의 지휘 하에 있었던 레멜센 장군의 정치장교 관련 언급과 17 기갑사단 정보장교의 증언을 취합해 볼 때, 딱히 신빙성이 있어 보이진 않는다.


모델은 바르바로사 작전 초기 구데리안의 2 기갑집단 소속 3 기갑사단 사단장으로 복무하고 있었다. 따라서 그 또한 정치장교 명령을 전파 받아 실행했을 가능성이 크다. 결정적으로 1941년 7월 28일, 3 기갑사단 정보 보고서는 다음과 같은 보고를 남겼다.


‘카라초프의 포로 집결지...처형이 예정된 정치장교는 처형될 것. 며칠 전 붙잡은 다른 정치장교는 포로로 남을 것’


유용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 판단될 경우, 정치장교들은 SD에게 넘겨져 심문을 받은 다음 처형되었다. 포로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정치장교는 소수에 불과했다.


2.바르바로사 명령

재판권 법령(Gerichtsbarkeitserlass), 소위 ‘바르바로사 명령’은 정치장교 명령과 함께 소련 침공 직전 선포된 또 다른 ‘범죄 명령’이었다. 1941년 5월 13일 공표되고 6월 초 병사들에게 전파된 이 명령은 보통 형법에 의거해 처벌되는 적국(러시아) 민간인에 대한 범죄행위에 완전한 면죄부를 주었다. 명령에 의하면 ‘국방군 장교와 군인, 협력자들의 민간인에 대한 범죄는 형법에 의거 처벌가능하다 해도 기소될 필요가 없’었다.


최소한의 법지식이 있는 모든 독일 장군과 장교들은 이 명령이 모든 문명 세계의 보편적 법원칙과 근본부터 단절되어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챘을 것이다. 그러나 일부 장교들은 어떻게든 핑계거리를 찾아냈다. 전쟁이 끝나고 전범재판에 선 만슈타인은 이 명령이 합법이었다는 주장을 펼쳤다. 그에 의하면 독일군의 진격이 너무도 빨라서, 군사법정을 제때 세울 수가 없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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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 코첸하우젠 장군이 134 보병사단에 한 연설은 당시 동부전선의 독일군 지휘관들이 어떤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는지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이다. “오직 잔인한 힘만이 적에게 인상을 남길 수 있다. 군법회의와 즉결 군법회의는 폐지된다. 능동적이든 수동적이든 저항을 시도하는 자는 즉시 본보기로 사살하라. 모든 장교에게는 즉결심판 권한이 주어진다.”


바르바로사 명령은 통신을 타고 모든 사단장에게 전파되었으며 여기에 대한 도덕적 반발은 없다시피 했다. 모델 또한 사단장으로써 이 명령을 분명 전파 받았을 것이다. 실제로 모델은 해당 법령에 준수해 사건을 처리했는데, 그에 대한 기록이 BA-MA 기록 보관소에 여전히 남아 있다.(BA-MA, MSg 2/5354, p.3 and BA-MA, RH 27-3/226)


3.홀로코스트

1) 3 기갑사단과 살인특무부대 B

러시아와의 전쟁이 시작되면서 나치 친위대는 4개의 살인특무부대(Einsatzgruppen)를 조직했다. 이들의 임무는 간단히 요약하자면 소련 점령지 내 모든 공산주의자, “아시아 열등종자”, 집시, 유대인에 대한 조직적 살해였다. 또한 살인특무부대와 국방군은 1941년 4월 28일 브라우히치가 서명한 OKH 명령을 근거로 동부전선에서 긴밀히 협력했는데, 모델이 소속된 중부집단군 지역을 맡은 건 살인특무부대 B였다.


모든 살인특무부대는 특별 특공대(Sonderkommandos)와 작전 특공대(Einsatzkommando)로 나뉘어 있었다. 이중 특별 특공대는 최전선 병사들을 가까이에서 따라다녔고 작전 특공대는 원래 후방에 머물도록 정해져 있었으나, 군 지휘관들의 증가하는 요청으로 인해 곧 전선 인근에 배치된다. 살인특무부대원들은 이렇듯 군대를 따라다니며 후방 지역 사령관에게 보고하라는 지시를 받고 있었다. 하지만 특별 특공대가 최전선에 접근하는 경우, 모든 보고는 인근 최전방 부대 정보참모부관에게 직접 전달되었다.


보안경찰과 SD는 모든 군 참모부에 대변인을 파견해 살인특무부대의 활동을 “중앙 집중적”으로 관리했는데, 그 대변인은 보통 해당 군에 배치된 살인특무부대의 지휘관이었다. 대변인의 임무는 친위대 주 보안본부의 지시를 즉시 군 사령관에게 전달하고, 관련된 전선부대 정보참모부관들과 긴밀히 접촉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이들 장교들은 살인특무부대의 살인 활동과 본인 부대의 군사 활동을 적절히 조율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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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모델의 3 기갑사단은 1941년 여름과 가을 서부 소련을 휩쓴 조직적 살인의 첫 광풍에 거의 관여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모델이 나치 광신도들의 ‘임무수행’을 막아섰기 때문은 아니었다. 당시 3 기갑사단은 2 기갑집단의 최선봉이었다. 살인특무부대나 친위대, 경찰부대가 점령지에 도착할 때 쯤 이면 사단은 이미 그곳을 떠난 지 오래였다.


물론 모델의 병사와 장교들은 점령지의 유대인을 확실히 살해했을 것이다. 이는 모든 국방군 부대에서 벌어졌던 일이다. 하지만 3 기갑사단이 이러한 살인에 조직적으로 가담했다는 확실한 기록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후의 살육에서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모델의 9군은 결코 숨길 수 없는 흔적을 남겨두었다.


2) 9군과 살인특무부대 B 특별 특공대 7a

특별 특공대 7a는 동부전선의 첫 포성이 울릴 때부터 1944년 11월까지 오랜 기간 9군과 활동했다. 그들은 9군의 협조 하에 활발히 대량 학살을 수행했는데 르제프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심지어 9군의 병사들이 학살에 직접 참여하는 일도 있었다. 그리고 모델의 지휘 하에서도 잔혹극은 멈추지 않았다. 모델이 9군에 부임할 당시 시촙카에 주둔 중이던 특별 특공대 7a의 지휘관은 상급돌격대지도자(Obersturmbannfuhrer) 알베르트 라프 박사였다. 그는 전후 신분을 숨기고 잠적하다 체포되었고, 1965년 열린 재판에서 다음과 같은 증언을 남겼다.


“모델 원수와 Krebs 장군 그리고 정보참모부관과의 면담이 있었다. 우리는 특별 특공대와 9군 소속 군단 정보참모들이 긴밀히 협력하여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 지역을 확보해야 한다는 데 합의했다.”


1943~1944년 9군 정보참모부관을 지냈던 헤르베르트 랑게는 1960년 특별특공대 7a의 후임 지휘관 헬무트 루스의 재판에 증인으로 참석했다. 그는 재판에서 다음과 같은 증언을 남겼다.


“7a의 지휘관과 다른 부대원들은 9군과 정기적으로 연락했다. 단지 상호 정보교환을 위한 것이었다. 우리는 상호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복무상 문제와 개인적 질문 모두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7a의 정기 보고서가 나에게 전달되었기 때문에 나는 그들의 활동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난 어디까지나 9군에 유용할 정보가 있는지 추상적으로 훑어본 것뿐이었다. 정말 그러한 경우, 나는 그 보고를 참모장 크렙스 장군과 모델 원수에게 제출했다. 많은 보고서들은 대량 처형에 대한 세부 사항들을 포함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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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델의 9군은 특별 특공대 7a에게 정기적인 보고를 받았고, 특공대 지휘관들은 크렙스, 그리고 모델과 자주 대면했다. 그들은 특공대의 살인행각에 대해 분명 알고 있었고, 그들에게 협조했다. 특별 특공대 7a와 국방군, 경찰 대대가 전쟁 초부터 1942년 2월 28일까지 ‘해치운’ 희생자의 총 수는 29,953명이다. 그리고 모델이 9군을 지휘하는 동안 이들에게 살해당한 유대인과 “집시”들의 수는 총 24,928명에 달한다. 국방군 지휘관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없었다면, 러시아에서의 학살은 결코 그만한 효율과 규모로 수행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 모델은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다른 모든 독일 지휘관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최근 연구는 절멸 수용소에 대한 소문이 독일은 물론 전방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퍼져있었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확실히 노란별을 단 유대인들의 갑작스러운 대량 실종은 눈에 띌 수밖에 없는 사건이었다. 또한 영국인들이 독일 장군 포로들 사이의 대화를 감청한 결과, 동부전선에 있었던 모든 장군들은 그곳에서 자행된 대량 학살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게다가 모델은 1944년 1월 26일 포젠에서 히믈러의 연설에 참석했다. 히믈러는 히틀러식으로 고함을 지르거나 하지는 않았고, 그저 자기연민에 빠진 채 청중들에게 거의 칭얼거리는 투로 그에게 주어진 “잔혹한 임무”에 대해 언급했다. “인종간의 투쟁. 최종 해결책이 요구된다. 우리는 우리 아이들에게 복수하려들 사람들을 절대 살려줄 수 없다.”


모델은 마찬가지로 살인특무부대 또한 알고 있었다. 상기한 증언들과 1942년 5월 20일의 발언은 그가 특무부대 활동에 대해 확실히 알고 있었다는 것을 명확하게 드러낸다. 9군의 사령관으로써, 그는 특별 특공대 7a에게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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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포로 학대

나치 독일의 소련군 포로 학대는 악명이 높다. 독일의 막강한 전술적 능력, 전쟁기계 앞에 1941년의 첫 4개월간 무려 400만 명의 소련군이 포로가 되었다. 그리고 1941년이 끝날 무렵, 200만 명 이상의 소련 포로가 탈진, 기아, 학대로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독일 고위 지휘관들의 이들 포로에 대한 태도는 최상의 경우가 무관심이었다. 가령 1941년 11월 13일, 중부 집단군 회의에서 에두아르트 바그너는 폰 그라이펜베르크에게 다음과 같이 일렀다. 


“생산 작업에 종사하지 않는 포로들은 수용소에서 굶어 죽도록 방치해야 한다.”


그러나 더 심각한 위험 또한 도사리고 있었다. 1943년 8월, 모델 휘하의 9군은 관할 중인 72명의 포로를 SD 부대에게 넘겼다. 이러한 관행은 1941~1943년의 동부전선에서 그리 드문 일이 아니었다. 중부집단군은 대부분 유대인 장교와 병사로 이루어진 10,000명의 포로를 살인특무부대 B에게 양도했고 이들은 모두 살해당했다. 모델은 동부전선 모든 지휘관들과 마찬가지로 러시아 전쟁 포로 학대에 대한 책임이 있다.


5.의도적 기근정책

모델은 군 지휘관으로써 주둔 지역에 대한 권한을 가지고 있었고, 따라서 지역 민간인들의 안전과 안녕에 대한 책임이 있었다. 하지만 나치 독일의 정책은 그런 보편적 책임과는 거리가 멀었다. 독일은 러시아 점령지 전역에서 의도적인 기근 정책을 펼쳤다. OKW는 1941년 5월 23일 소련을 “흑토”와 “보조금” 2개 경제구로 나눈다는 계획을 수립한다. “보조금” 지역(Zuschussgebiete)은 비옥한 “흑토” 지역에서 차단될 예정이었다. 대신 “흑토” 지역에서 수확된 모든 생산품은 국방군과 독일 본토로 수송되어 독일 국민들을 먹여 살릴 것이었다.


1941년 11월 25일 괴링은 이탈리아 대사와의 대화에서 다음과 같은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이번 해가 가기 전 러시아에서 2~3천만 명이 굶어죽을 것인데, 환영할 일이다. 어떤 국가는 반드시 파괴되어야만 한다.” 레닌그라드부터 하리코프까지, 국방군은 기근 정책을 무자비하게 밀어붙였다.


물론 발터 모델은 이 정책의 결정에 일절 관여하지 않았다. 1941년의 그는 결국 상부에게 통제를 받는 수백 명의 동부전선 사단장 중 한명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그는 이 의도적인 기근을 포함한 수많은 반인륜적 정책들을 다른 모든 국방군 사령관들처럼, 정말로 실천해버렸다. 1943년 1월 르제프에선, 매일 평균 10명의 남성, 여성, 어린이들이 굶어 죽었다. 전쟁 전 도시에는 40,000명의 주민이 살고 있었다.


6.납치

1942년 9월 8일, 루돌프 슈미트는 독일 병사를 아버지로 둔 러시아 아이가 무려 150만 명에 달한다고 계산했다. 보고를 받은 히틀러는 가장 기이한 인종 법안 중 하나를 통과시켰다. 흠잡을 데 없는 “인종적 자질”을 제공받은 이러한 아이들은 즉시 독일로 끌려가 “순혈” 독일 가정에 입양되었다. 이런 식으로 가족과 강제로 헤어진 아이들은 11,000명~14,500명에 달한다고 여겨진다. 그와 동시에, 집 없는 아이들은 수용소에 수감되어야 하는 위험분자로 여겨졌다. 모델은 특별 특공대 7a와 특별 특공대 7b의 협력 하에 이 명령을 적극 수행했다. 임시 수용소(Anhaltelager)에 수감된 아이들 중 일부는 독일로 가서 노예노동에 동원됐고, 다른 아이들은 병원에 넘겨져 생체 실험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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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초토화 전술

들소 작전은 모델의 군사 경력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전술적 승리 중 하나로 이름 높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모델은 특유의 무자비함, 혹은 냉정함을 드러냈다. 비야즈마에서는 5,500채의 집이 파괴되었고 그자츠크에선 1,300채, 르제프에선 5,000채가 파괴되었다. 르제프와 시촙카 인근 137개 마을의 교회들 또한 남김없이 파괴되었다. 모델의 루터교 신앙을 생각해볼 때 쉽게 이해되지 않는 행동이다.


또한 일부 독일 기록은 들소 작전에서 60,000명에 달하는 러시아 민간인들이 ‘자진해서’ 철수에 합류했다 주장한다. 하지만 이 주장은 수치가 잘못되어 있을뿐더러 실상과도 괴리되어 있다. 물론 친독 러시아인은 확실히 존재했다. 점령당한 도시의 공직자들은 독일군과 협력할 수밖에 없었다. 또 백만 명 이상의 러시아인들이 히위로써 독일군을 보조했다. 50만 명 이상이 지역 경찰로 동원되었고 SS 부대에 징집되거나 강제수용소의 경비를 서기도 했다. 


이러한 협력자들이 전진하는 소련군의 보복을 두려워할 이유는 충분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은 수의 러시아 민간인들이 강제로 끌려나와 후퇴에 ‘합류’ 해야 했다. 그들은 독일로 보내져 열악한 환경의 노예 노동에 동원되었다. 최신 연구에 의하면 독일 측 주장과는 달리 60,000명이 아닌 무려 130,000명의 민간인이 ‘합류’했는데, 이는 지역 총 인구의 41.3%에 달하는 수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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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모델은 많은 작전 지역에서 수차례 대 파르티잔 작전을 감독했다. 하지만 이러한 비정규전의 특성상, 상황은 빠르게 더러워졌다. 1944년 당시 모델 지휘 하 중부 집단군 장교였던 피터 폰 더 그뢰벤은 전후 인터뷰에서 많은 “불편한 광경”을 목격했다고 인정했다. 그가 서명한 보고서 중 하나는 1,920명의 파르티잔을 사살했다고 기록했지만, 정작 수거된 화기는 소총 30정에 불과했다. 이 사실을 지적받은 그뢰벤은 말을 더듬었다.


1944년 산산조각난 중부집단군은 후퇴하는 과정에서 역시 많은 만행을 저질렀다. 소속 부대가 뿔뿔이 흩어진, 좌절하고 흥분한 독일군 병사들이 파괴적인 유혹에 빠져드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한 독일군 장교는 벨라루스의 한 마을 전체를 불태우는 광경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우리는 집집마다 가솔린을 붓고, 짚단으로 둘러싼 다음 불을 붙였다. 주민들은 쫓겨났고 가축들은 몰수되었다. 난 그곳을 불태우는 것에 어떤 거부감도 느끼지 않았다. 집들은 원시적이었고 보존의 가치가 없었다. 그것들은 독일, 프랑스, 영국식 집과는 확연히 달랐다. 놈들은 우리만큼의 건축기술을 갖추지는 못했으나 어떻게든 살아남았을 터였다. 우리가 가축을 빼앗아가도 놈들은 여전히 들판이나 숲에서 야채를 찾을 수 있었다. 그들은 지혜가 뛰어나서 가혹한 날씨에도 어떻게든 살아남을 수 있었다. 물론 우리가 범죄를 저지른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그저 명령을 따랐을 뿐이다.”


물론 초토화 전술은 독일뿐만 아니라 소련 또한 사용한 바 있었다. 그러나 모델은 러시아에서와는 정반대로, 조국 독일의 초토화는 격렬히 거부했다. 그는 1945년 연합군에게 전략시설을 넘겨주지 말라는 히틀러의 자기 파괴적 ‘네로 명령’을 완전히 무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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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결론

전후 많은 오해가 있었지만 발터 모델은 딱히 광신적인 나치가 아니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나치에 맞서 양심을 지킨 훌륭한 인격자와도 거리가 멀었다. 최근의 연구자들은 모델을 열렬한 독일 민족주의자로 묘사한다. 그는 1차 대전 이후 완전히 뭉개져버린 독일의 존엄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나치의 정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본인이 나치를 이용한 것만큼이나 나치 또한 본인을 이용하도록 허가했다. 다른 많은 국방군 장교들과 마찬가지로 그의 전쟁은 그의 정권과 너무나도 긴밀히 얽혀 있었다. 그 또한 결국 나치 독일이 동유럽에 건설한 학살공장의 한 톱니바퀴였다. 모델의 여러 행적을 살펴보면, 심지어 그에게 인종적 편견이 있었다는 의심조차 배제할 수 없다. 


오직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는 변명은 그에게 적용될 수 없다. 모델은 스스로 필요하다 생각하는 경우 총통의 명령까지도 무시할 수 있는 장교였다. 그는 여타 수많은 국방군 장교들처럼 나치의 비인간적 명령에 내심 동의했고, 따라서 이를 그대로 수행했다. 결국 그는 군사적 재능과는 별개로 보편적 양심과 그 자신의 신앙에서마저 눈을 돌린 또 다른 일개 국방군 장교에 불과했다. 그 또한 결국 히틀러의 장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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