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금은 코리아컵에 밀렸어도 여전히 K-경마 최고의 권위를 가지고 있는 그랑프리.

하지만 2300m라는 1년에 몇번 치루지도 않는 드럽게 긴 거리 덕분에 

누가누가 직선에서 덜 퍼지는가를 겨루는 양상이 많이 나오는 까닭에

나오는 면면에 비해 불꽃튀는 접전 승부는 흔치가 않은 편이다.

그 흔치 않은 승부중 가장 드라마틱한 승부, 추입마가 코차이로 우승을 따먹는 전개는 딱 한번 나왔는데, 그게 바로 1996년 그랑프리다.

개인마주제 전환후 명마로 손꼽히던 1995 그랑프리 우승마 대견이 고부중에 시달리다 이해 그랑프리를 회피하고,

60kg만 넘으면 맛이 가는 1994 그랑프리 우승마 지구력은 1995년에 65kg까지 올라갔던 핸디캡에 치명타를 입고 1996년엔 한번도 우승을 추가하지 못하고 있었다. 

실력이 아니라 븅신 마사회의 핸디캡에 양강이 무너져 가던 시기, 그 사이를 뚫고 슬금슬금 새로운 강자들이 올라오는게 이 그랑프리였는데,

1995년 4세로 늦깎이 데뷔, 무려 2003년 11세까지 현역을 지속하며 총 78전 43승이라는 불멸의 기록을 세운 신세대.

그리고 SBS배를 추입으로 따고 온 훌라밍고가 있었고,

이해 한번도 우승을 못했지만 왕년의 가락으로 부활을 노리는 2년전 우승마 지구력,

64kg를 달고 기어이 이겼지만 그 이후로 맛이 가기 시작한 핵탄두,

직전경주에서 일반경주지만 2300m에서 승리한 금맥 등

기존의 강자가 어우러져 신구대결의 구도가 성립되고 있었다.

게이트 이탈이 빨랐던 신세대는 언제나처럼의 도주 전개. 그 뒤를 3마신 차이의 거리를 두고 박태종이 기승한 아담이 뒤를 쫓는 형태로 시작한 레이스는 

반대편 직선에서 지구력이 외곽에서 추진해 오며 흐름이 빨라진다. 신세대가 편하게 도망가게 놔둘 생각이 없었던 지구력이 경합을 시도했으나 다시 거리를 벌리며 3코너 진입. 3코너를 넘어가는 시점에 이번엔 금맥이 무섭게 외곽으로 치고나오면서 신세대를 위협했다.

신세대는 아직도 힘이 남았다는 듯 직선에 접어들어서도 선두를 유지했지만, 200m를 남긴 시점에서 드디어 퍼졌는지 발이 무뎌졌고, 3위권에서 버티던 지구력도 페이스가 무너지던 상황. 이렇게 금맥이 그랑프리를 따나 했는데...

마군 복판에서 갑자기 뛰쳐나온 훌라밍고가 무시무시한 추입으로 따라붙으며 금맥을 위협, 골에 나란히 들어온다.

사진 판정의 결과는 코 차이 훌라밍고의 승리. 2300m에서, 그랑프리에서 보기 정말 힘들었던 추입 명승부였다.

그리고 이 훌라밍고의 마주는 바로 사딸라 김영철 형님이다.

1992년에 마사회에서 개인마주제를 도입할때 방송국 선배의 꼬임에 넘어가 마주를 하기로 마음먹은 김영철.

당대에도 이미 탑티어 탤런트라 돈은 모자랄것 없겠다, 호기롭게 20마리나 분양신청을 하는 패기를 선보였는데

다행히 폭망하지 말라는 뜻이었는지 추첨끝에 딱 5마리만 분양받았다.

그중에 칠장사라는 말이 있었고, 7경주에 7번마로 배정되자 트리플 세븐인가? 운빨 터지나 하고 설레기가 무섭게 그 경주를 우승.

유명인 마주중 처음으로 승리를 거두며 언론에 기사를 타기도 했다.

하지만 그게 초심자의 행운이었는지, 이후 소유마들 성적이 꼬라박으며 적자가 나기 시작했고,

돈나가기 시작하니 마음도 멀어져서 바로 다음해인 1994년에 소유마 전체를 팔아치우고 있었다.

그러다 1년 이상 소유한 경주마가 없으면 마주자격 박탈이라는 통보가 오자 부랴부랴 1995년에 말을 다시 샀는데, 그게 훌라밍고였던것.

훌라밍고는 이듬해인 1997년에도 60kg을 달고 일반경주를 우승하는 저력을 보였지만, 440kg대의 작은 말에 60kg는 역시 무리였던지 그 이후로 커리어가 꺾였고, 1998년 5월에 경주를 치르고는 구절염이 발견되어 은퇴하고 번식암말로 전업한다. 임신이 쉽지가 않아 생전에 낳은 자마는 총 4두, 그중 3두가 데뷔를 했고, 최고 성적은 2군까지 올라갔던 훌라째즈.

여담이지만 김영철에게 첫승을 안긴 칠장사는 바로 안성 칠장사에서 따온 이름인데, 어린시절 궁예가 몸을 숨겨 지내면서 활쏘기 연습을 했다는 전설이 남아 있는 사찰이다.

궁예 전설이 얽힌 이름의 경주마로 첫승을 한 양반이 궁예로 전설이 될 거라고는 김영철 본인도 상상을 못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