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 리뷰가 생각보다 힘이 많이 들어가는 바람에, 좀 어렵고 딱딱한 느낌이 있었던 거 같아. 그래서 오늘은 힘 좀 빼고 시작해야 할 듯 해. 시작하면서 먼저 말하고 싶은 것은, 매번 그랬지만 영화 스포가 나온다는 점이야. 어떤 영화들은 반전이 포인트인 영화들이 있을 텐데... 이 리뷰들에서는 지켜주지 못할 거 같아. 미리 영화를 보고 오는 게 더 좋을지도ㅎㅎ
2.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를 가지고 갤러리에서 검색을 해보니까, 이런 글들이 많더라고. 안녕이 Hi이냐, Bye이냐 하는 건데, 보통 중의적인 의미라고들 말해줘서 그런가보다 했어. 남녀의 삼각관계 이야기라서, 이걸 웅연수와 지웅이로 가져가는 건가, 싶었지. 그래서 연수에겐 하이, 지웅이에겐 바이, 이렇게 되는 건가 했는데... 근데 영화를 보고 나니까, 이게 꼭 그런 의미는 아닐 수도 있겠다 싶었어. 영화는 일단 삼각관계를 표방하는 것 같은데, 그럼에도 철저하게 여주인공 둘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고 보여. 남자가 가운데 잠깐 끼긴 하지만, 마치 도구처럼? 이야기를 진행시키기 위해 활용될 뿐이지 그렇게 큰 비중은 아닌 거 같아. 그래서 단순한 삼각관계의 이야기라기보다는, 두 여주인공들이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받고, 그렇게 성장을 하는 이야기인 것 같아. 가벼운 삼각관계 연애물인가 싶어서 봤다가, 생각보다 묵직한 대사들에 놀랐어.
3. 영화는 액자식 구성으로 되어 있어. 현재의 상황에서 시작해서, 중간에는 과거의 일들을 풀어내고, 마지막에 다시 현재의 상황으로 돌아오는 거지. 바깥쪽 테두리를 구성하는 현재의 상황은 <칠월과 안생>이라는 제목의 웹소설에 대한 것으로 시작해. 칠월과 안생은 영화의 두 여주인공 이름이야. 13살부터 26살 까지의 두 사람의 이야기를 칠월이 소설로 쓴 건데 인기가 엄청 많았던 거지. 그래서 이 판권을 따기 위해서, 회사에서 안생에게 칠월과 연락이 되느냐고 묻는 거야. 안생은 칠월도 모르고 소설도 모른다고 부정을 해. 그리고 퇴근길 지하철에서 우연히 남주인공인 가명을 만나게 돼. 가명에게서도 웹소설 이야기를 들은 안생은, 집에 와서 칠월의 소설을 찾아 읽으면서 영화가 시작되는 거야.
4. 그런데 영화를 시작하면서부터, 나래이션으로 영화 전체를 꿰뚫을 수 있는 메시지를 던져 주고 있어. “칠월이 안생을 처음 만난 건 13살 때였다. 세월이 지난 후 칠월은 가명에게 말했다. 자신과 안생의 우정은 숙명이었다고.” 우리는 보통 사랑을 운명이라고 말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우정도 그에 못지않음을 말하고 있어. 그래서 영화 전체를 아우르는 내용은, 그렇게 서로를 동경하고, 사랑하고, 때로는 증오하기도 했지만, 결국 우정이라는 이름으로 맺어져 있는 관계에 대해서 말해주고 있는 것 같아. 그래서 소울메이트라는 말 자체도, 연인보다는 친구라는 의미로 이해하는 게 더 낫지 않나 싶어. 물론 일반적인 의미의 친구보다는 훨씬 더 깊은 관계를 의미하겠지?
5. 주인공인 칠월과 안생은 13살에 처음 만나서, 서로가 정말 소울메이트라고 불러도 될 만큼, 모든 것을 함께 하면서 자라게 돼. 물론 서로의 환경은 조금씩 달랐어. 칠월은 안정적인 가정에서 부모님의 사랑을 받으며 살았고, 안생은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엄마는 일과 출장으로 바빠서 잘 못챙겨주는 듯해. 그래서 안생이 칠월의 집에 자주 놀러가서는 밥도 먹고, 같이 씻고, 잠도 같이 자고, 그렇게 서로가 함께 하는 모습이 나와. 마치 어린 지웅이가 웅이네 집에 가서 매일 밥 먹고 놀고 하는 것처럼 말이야.
6. 하지만 둘은 성격이 정반대라고 생각될 정도로 달랐어. 칠월은 얌전하고, 순종적이고, 규범적이고 여성적인 모습이라면, 안생은 활달하고 진취적이고 반항적이고 모험적인 면이 강해. 거의 정반대라고 할 수 있어. 칠월과 안생은 너무 다르지만, 그럼에도 너무 친해서 모든 것을 함께 하고 그 우정을 소중히 여겨. 서로가 서로를 너무 아끼기 때문에, 절대로 변할 것 같지 않다는 느낌을 받기도 해.
7. 그런데 중학교를 졸업하면서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해. 칠월은 상급학교로 진학을 하지만 안생은 직업학교로 진학을 하면서 일찍 돈을 벌고자 해. 그렇게 길이 조금씩 엇갈리는 와중에, 칠월이 같은 학교의 ‘가명’이라는 남학생을 좋아하게 되면서 이 둘 사이에 뭔가 조짐이 생겨. 삼각관계가 시작이 되는 거야. 일단 안생은 칠월에게 좋아하는 남학생이 생겼다는 말을 듣고는, 그 학교를 찾아가서 가명을 먼저 만나. 내 친구가 너를 좋아하니까 잘하라는 식으로, 어떤 인간인지 보러 온 것 같은 느낌으로 잠깐의 만남을 갖는데, 이때 서로가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게 된 거야. 물론 안생은 그런 가명을 뒤로하고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기는 해.
8. 가명과 칠월이 교제를 시작하긴 하지만, 그럼에도 가명과 안생 사이에도 미묘한 상황들이 몇 번 발생을 해. 그리고 서로의 마음을 살짝 확인하는 순간도 생기는데, 셋이서 산속에 있는 불당? 같은 곳에 가서 소원을 빌러 가다가 칠월의 체력이 달려서 안생과 가명 둘이 먼저 올라가게 돼. 그리고 불당에서 각자 소원을 빌면서 있는데, 뭔가 분위기나 대화가 미묘한 거지. 얼른 돌아서려는 안생의 손목을 가명이 낚아채서 잡고, 그렇게 서로가 마음이 있다는 걸 암묵적으로 확인하게 돼.
9. 하지만 이 일 때문에 안생은 아예 떠나기로 마음을 먹어. 짐을 챙겨서, 자신을 좋아했다던 남자가 있는 베이징으로 떠나는 거야. 칠월은 기차역에서 배웅을 하면서 엄청 슬퍼하는데, 여기서 문제가 생겨. 차창 밖으로 몸을 내밀고 칠월과 이별하는 안생이 이만큼 몸을 숙이는데, 그만 목걸이로 하고 있던 호신부가 밖으로 삐져 나온거야. 이 호신부는 가명이 항상 몸에 지니고 있던 건데, 이걸 안생이가 하고 있는 걸 기차가 출발하는 찰나에 드러나게 된 거야. 기차는 이미 출발해서는, 묻지도 못하고 해명하지도 못한 채 헤어지게 돼. 그때의 심정을 칠월은 이렇게 기록을 해. “그날 칠월은 오래도록 울었다. 가명에게 말하지 못했지만, 안생을 자기 자신만큼 많이 사랑할 수 없어서 실망했고, 인생의 모든 일을 누군가와 공유할 수 없다는 것에 실망했다. 예전엔 미처 몰랐었다. 어른이 된다는 게 이런 것이라는 걸.”
10. 이제 떨어져서 지내게 된 칠월과 안생은, 매번 서로에게 엽서를 보내면서 소식을 주고 받게 돼. 안생은 자신이 겪은 수많은 경험들을 전해주고, 칠월은 대학생활을 비롯해서 별반 다를 것 없는 일상을 전해 줘. 안생은 음악하는 남친이 바람을 피우면서 헤어지고는, 인디사진작가와 사귀면서 전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사진도 찍고 노숙도 하고 지내기도 하고, 또 크루즈선에 직원으로 타서는 오랫동안 항해를 하기도 해. 반면 칠월은 여전히 안정적인 생활을 하면서, 대학 시험 이야기, 은행원으로 취업한 이야기, 그리고 가명과의 결혼 계획들을 전해 줘.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는 게 있다면, 안생의 엽서에는 매번 마지막 말이 똑같다는 거야. “가명에게 안부 전해 줘.”
11. 그러다가, 가명은 졸업 후에 좀 더 도전을 해보고 싶은 마음에 베이징으로 가겠다고 해. 원래는 양가 부모님의 재촉으로, 졸업하고 2년 뒤에 결혼할 것까지 계획을 세우고 있었는데, 가명이 좀 더 배우고 일하고 싶다는 이유로 떨어져 지내게 된거야. 그렇게 장거리 연애를 하게 되고, 그 사이에 떠돌던 안생이 칠월에게로 돌아와. 하지만 이 둘은 서로를 그렇게 그리워했지만, 예전처럼 지내지는 못해. 함께 여행을 가서도, 서로 다른 가치관 때문에 부딪히게 되는 거야. 여행의 처음은 좋았어. 같이 다니고, 먹고, 구경하고, 재미있게 보냈는데, 점차 서로 다른 가치가 나타나게 되는 거야. 안생은 허름한 게스트룸을 구하고자 했지만, 칠월은 안생을 데리고 호텔로 가. 레스토랑에 가서도 가격표를 보고 놀란 안생은 샐러드를 먹겠다고 하지만, 칠월은 자기가 사겠다며 랍스터를 주문하기도 해. 안생은 공짜 술을 먹으려고 바텐더와 협상을 하고, 다른 테이블에 가서 내기를 해서 술을 따오기도 하는데, 칠월은 그게 마음에 들지 않는거야. 여기서 서로 감정이 격해지면서, 말다툼을 하게 되고, 그렇게 안생은 짐을 챙겨서 떠나버려. 그리고 그렇게 서로 연락을 끊은 채 2년의 시간이 지나게 돼.
12. 25살의 나이가 되었고, 베이징에서 가명은 우연히 안생을 만나게 돼. 그런데 안생은 꽤나 많이 변해 있었어. 예전처럼 자유분방한 모습이 아니라 많이 안정적인 모습으로 바뀐 거야. 가명은 내년 봄에 칠월과 결혼하기로 했고, 안생은 남자친구와 캐나다로 가기로 했다면서 서로의 근황을 나눠. 그런데, 데리러 온다던 안생의 남자친구가 그 앞에서 교통사고로 죽게 되고, 그런 안생을 가명이 자기 집에서 지낼 수 있도록 해줘. 그리고 이걸 칠월한테 들키게 되지. 그렇게 칠월과 안생은 다시 돌이키지 못할 정도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말로 다투고 헤어지게 돼. 서로를 가장 잘 알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상처를 받는지도 너무 잘 알고 있는 거야. 특히 칠월이 거의 원수질 것처럼, 자신의 밑바닥 전부를 드러내면서 몰아붙여.
13. 그후 시간이 지나서, 가명은 칠월에게 프로포즈를 하고, 그렇게 사랑을 나누고 결혼준비를 해. 한데 문제가 생겨. 칠월과 가명의 결혼날이 되었는데, 그만 가명이 오지를 않은 거야. 결혼식 당일에 신랑이 신부를 바람맞힌 거지. 좁은 동네에서 소문이 날대로 났으니, 이제 칠월은 일도 그만두고, 고향을 떠나게 돼. 꼭 안생이 그랬던 것처럼, 크르주선에서 일해보기도 하고, 세계 각처를 다니면서 여행도 하고, 일도 하면서 그렇게 삶을 보내는 거야. 그리고 26살에 칠월이 안생을 찾아와. 마치 서로 모습을 바꾼 듯이, 안생은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있고, 칠월은 자유분방한 생활을 하고 있어. 그렇게 둘은 서로 잘 지내고 있음을 확인하고는 공항에서 이별을 해. 여기까지가 칠월이 쓴 소설의 이야기야.
14. 그런데 여기에 반전이 있어. 현재의 시간으로, 30대의 안생에게 아이가 하나 있었는데, 이 아이는 가명과 칠월 사이의 아이였던 거야. 소설 속에는 그저 공항에서 헤어진 것으로 마무리가 되어있었는데, 실상은 아니었던 거야. 26살에 안생을 찾아온 칠월은 사실 홀몸이 아니었고, 가명이 결혼식 당일날 오지 않은 것도 사실은 칠월이 오지 말라는 부탁을 해서 그런 거였어. 자신만을 온전히 사랑하지 않는 남자와 평생을 살 수 없다면서, 그렇게 가명이 결혼식에 오지 않도록 해서 자신이 고향과 부모님을 떳떳하게 떠날 계획을 세웠던 거야. 그리고 그렇게 지내다가, 가명과의 하룻밤으로 인해 불러온 배를 안고 안생을 찾아온 거야.
15. 칠월의 소식을 궁금해하는 가명에게, 안생은 그렇게 소설과 다른 결말을 이야기해줘. 칠월은 임신한 채로 안생을 찾아왔고, 그렇게 잠깐 안생과 지내다 아이를 낳게 되었다고. 그런데, 칠월은 그 아이를 두고 여행을 떠났다고 말이야. 병실에 아이만 남겨둔 채,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전화를 끝으로 칠월은 떠났다고, 그래서 지금 이 아이가 네 아이라고 가르쳐 준거야. 소설과 다른 결말을 들은 가명은, 아이를 다시 보러 와도 되느냐고 묻고는 자리를 떠나.
16. 그런데 여기 또 한 번의 반전이 있지. 안생은 가명에게 칠월이 그렇게 아이를 두고 여행을 떠났다고 말을 했지만, 사실 칠월은 아이를 낳고 과다 출혈로 죽은 거였어. 그 아이를 안생이 거둬 키우고 있었던 거고, 그리고 그 소설 역시도 안생이 쓰고 있었던 거지. 필명을 칠월이라고 해서는 자신이 연재하고 있던 거야. 그렇게 안생의 소설에서, 칠월은 자유롭게 여행 중인 것으로 그려내면서 끝내는 거야.
17. 이처럼 영화는 단순한 삼각관계의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 실상 칠월과 안생의 이야기에만 집중을 하고 있어. 칠월과 안생이 후반에는 전혀 정반대의 삶을 살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어쩌면 무의식 중에 자신이 정말로 원하던 게 바로 그것이었음을 말해주는 것 같아. 영혼의 단짝이라 여길 정도의 친구였던 둘이, 어떻게 서로를 좋아하고, 어떻게 닮아가고, 그렇게 어떻게 성장해 가는지를 보여주는 것처럼 보여. 그 사이에 겪게 되는 이별과 상처와 성숙의 시간들이 어떻게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하는지를 보여주는 거지. 그리고 그 과정 끝에 진정한 소울메이트가 되어 가는 걸 보여준 것 같아. 무조건 좋은 관계만을 유지해내서 다다른 것이 아니라, 애증 속에 14년의 기간을 붙어 있기도 하고 떨어져 있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미워도 했다가 그리워도 했다가, 그렇게 시간을 보낸 후에야 진짜 소울메이트가 된 거지.
18.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모두가 적당하게 자신의 진심을 숨기기도 하고, 또 알지만 적당히 모른 척 해주면서, 그렇게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걸 보게 돼. 친구라는 것이, 13살 어렸을 때에는 그저 모든 것을 다 드러내고, 다 공유하고, 다 함께 하는 것으로, 그렇게 친밀함 자체만으로도 친구라는 관계가 가능했지만, 나이를 점차 먹어가면서는 그게 아닌 거야. 모든 걸 다 공유할 수 없고, 모든 걸 다 밝힐 수가 없어. 친구이기 때문에 진짜 속마음을 숨겨야 하고, 혹은 친구이기 때문에 알아도 모른 척 넘어가 주기도 해야 하는 것들이 생겨나는 거지. 우정이란 게 그런 거니까. 사랑만큼이나 운명적인 거니까. 단순히 사랑이냐 우정이냐 하는 것으로 칼같이 갈라낼 수 있는 게 아니라, 서로 선을 넘지 않는 선에서 암묵적으로 모른 척 하는 거야.
19. 그런 의미에서, 드라마에서는 이것을 단순히 삼각관계를 이야기하기 위해서 가져온 것 이상으로, 친구란 뭐냐 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 자기 진심을 적당히 숨기기도 하고, 또 혹시 친구의 진심을 알더라도 적당히 모른 척도 해주는 게 사실 친구가 해줄 수 있는 배려인 셈이지. 왜, 10화에서 내도록 나오는 게 그거잖아. 친구 타령 하는 거. 모든 등장인물들이 친구타령을 하고 있지만, 실상 친구에 머물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잖아. 웅이와 연수도, 지웅이도, 엔제이도, 일단은 친구를 표방하고는 있지만, 정말 말 그대로 친구로 만족하지 않지. 그런 점에서, 소울메이트라고 하는 말에 대한 번역의 미묘함이, 드라마에서 친구 사이의 미묘함으로 드러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해.
20. 그럼 이제 친구 타령이 나오는 부분들을 한번 보자. 첫 장면에서, 치킨이 온줄 알고 즐겁게 나가던 웅이와 연수는, 현관 앞에 서 있는 지웅이를 맞닥뜨리게 되지. 당황해하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황당해하는 지웅이가 말해. “뭐하냐, 둘이?” 선뜻 대답하지 못하는 두 사람을 애매한 눈초리로 쳐다보고 있을 때, 변명이랍시고 꺼내는 말이 바로 친구라는 말이야. “아, 그, 우리... 어제부터 1일이야. 친구하기로 했거든. 친구 1일~” 헐리우드에서도 안 할 매너손으로 어깨동무를 하며 연수가 한 말이 ‘친구’였고, 오해하지 말라는 말을 반 호흡도 안 넘기고 바로 받아넘기는 지웅이가 있지. 오해 안 해, 라곤 하지만, 오해하고 싶지 않다는 의미가 더 강하지 않을까?ㅎㅎ
21. 외박을 한 뒤 몰래 들어오는 연수는 갑자기 등뒤에서 나타난 할머니 때문에 깜짝 놀라면서 나오는 대화도 친구타령이야. 친구집에서 잔다고 했다는데, 할머니는 팩트로 연수를 까버리지. “니가 친구가 어딨어, 친구가?” 그 말에 솔이 언니네서 잤다고 변명을 하지만, 뜬금없이 등장한 솔이 때문에 모든 게 거짓부렁임이 드러나게 돼. 그리고 그렇게 연수의 방에서 취조 아닌 취조가 들어가게 되지. “근데, 최웅이 나보고 친구하쟤. 친구(한숨) 그걸 하자네, 나랑.” 그리고 우리의 솔이언니가 아주 속 시원한 말을 해주지. “또 둘이 쌩지랄을 하는구나.” 맞아, 쌩지랄. 서로 진심을 숨겨야 하고, 또 때로는 모른 척도 해야하다 보니, 보는 사람은 답답하기 그지없는 쌩지랄의 향연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22. 그리고 여기서 솔이언니의 놀라운 통찰력이 빛나는 장면이 나와. 일단은 친구로 지내면서 무슨 생각인지 자백을 받아봐야지, 라는 연수의 말에 던지는 한 마디가, 이만한 진리가 없어. “자백이야, 고백이야? 연수야, 너 지금 수사물 아니고 멜로야. 너 지금 범인 잡는 거 아니구, 짝사랑하는 거라고.” 그렇게 짝사랑 아니라고 화들짝거리는 연수에게 다시 한번 현실을 주지시켜 주지. “상대방 생각이 궁금한 것. 내 마음과 같길 바라는 것. 그걸 바로 우린 짝사랑이라고 부른단다.” 졸지에 친구를 짝사랑하는 포지션이 되었다가, 그마저도 10년 동안 한 사람만 바라봐온 지고지순한 사람이 되어버린 연수는 마음이 복잡하지.
23. 다음 친구타령은 엔제이가 웅이네 마당에서 인터뷰 할 때 나와. 효율적인 동선 때문에, 데이트 하기 위해 왔다는 엔제이의 말에, 엄청 엄청 중요한 거 두고 왔다고 떼를 쓰는 연수는 친구라는 타이틀 때문에 그 이상의 반응을 할 수가 없어. 도대체 이 상황이 뭔지 지웅이한테 물었지만, 그저 친구라는 대답만 돌아올 뿐이야.
연수 : 근데, 저분은 왜 찍은 거야?
지웅 : 몰라. 최웅 친구로 인터뷰 하고 싶다는데?
연수 : 친구?
지웅 : 갑자기 친구가 늘어나, 최웅.
24. 그리고, 엄청 엄청 중요한 거 두고 왔다고, 집주인도 없는데 어떻게 뒤지냐고 떼쓰는 연수와 난처해 하는 웅이 사이의 그 작은 빈공간으로 침투해 들어간 엔제이도 보통은 아니지. 웅이의 팔을 붙잡고는, 아직 이들의 대화가 마무리되지도 않았는데 생글 웃으면서 “다음에 또 봬요.” 라고 상황을 종결시켜 버리곤 끌고 가버리잖아. 눈치도 빠르고 실행력도 있는 엔제이도 사실 만만한 캐릭터는 아니라는 거지.
그래서 보면, 엔제이는 되게 과감하면서도, 선을 아슬아슬하게 타는 그런 인물인 것 같아. 마치 게릴라전을 하는 것처럼, 슬쩍 선 이쪽으로 넘어왔다가도 또 어느새 저만치 물러가서는 아닌 척하고 있지. 눈치가 빨라서 가능한 것 같아. 상대를 흔들 수 있는 말을 기습처럼 던지지만, 부담 때문에 반발이 생기기 바로 직전까지만 갔다가 얼른 돌아오잖아. 이제는 자기 건물까지 까였다면서도, 또 금방 웅이의 매력을 짚어주고 좋아해 줘. 친구 이상이 되고 싶은 당위성을 한 번 더 확인하게 된 것이랄까..? "이해받으려고 안 해도 돼요. 다른 사람들한테 이해받을 필요 없어요. 뭐 어때요. 보이는 대로 보고, 믿고 싶은 대로 믿으라고 해요. 나만 날 이해하면 돼요. 그것도 어려운 건데..." 꼭 필요할 때 필요한 말을 해주는 사람, 엔제이의 지친 마음에 위로로 다가온 웅이는, 짝사랑이라도 좋다는 엔제이의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게 해주는 것 같아.
25. 그리고 이런 엔제이 앞에서, 이번엔 웅이가 친구타령을 해.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알아보는 바람에 제대로 된 데이트도 못하고 집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눈치 빠른 엔제이에게 눈치 없는 웅이가 친구타령을 하는게지.
엔제이 : 작가님은 쉴 때 혼자 뭐하고 놀아요?
웅이 : 음... 꼭 뭘 해야 되나? 전 가만히 있는 것도 괜찮은데.
엔제이 : 그럼 어젠 뭐했는데요?
웅이 : 아.... 어제는.... (연수 생각에 한참을 대답을 못함)
엔제이 : (가만히 보다가) 나 이런 역할 하기 되게 싫은데...
아마 여기서 엔제이 머릿속에서는 시나리오 한편이 다 나오지 않았을까? 연수가 와서는 중요한 거 놔두고 갔다고 떼쓰는 상황도 있었으니, 지금 선뜻 말하지 못하는 웅이가 연수와 함께 있었을 거란 건 뭐 충분히 연상되지 않을까?
엔제이 : 뭐 하나만 물어봐도 돼요?
웅이 : (운전중 살짝 쳐다봄)
엔제이 : 국연수씨랑 어떤 사이에요?
웅이 : (뜸 들이다가) 아.. 예전에, 아니면 지금?
엔제이 : 둘 다.
웅이 : 예전엔 진짜 좋아했어요. 이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많이.
엔제이 : (생각하는 표정)
웅이 : 지금은.... 친구하기로 했구요.
엔제이 : 그만큼 많이 좋아한다는 기분은 어떤 기분이에요? 나 궁금해. 끝난 사람인데도 그렇게 말할 정도로 좋아한다는 거 어떤 건지.
웅이 : ...
엔제이 : 아니다, 취소. 말하지 말아요. 나 하나도 안 궁금해, 치.
지금은 친구하기로 했다는 그 말의 여운은, 친구라는 말에 친구로 끝나지 않을 의미를 담고 있어서일 거야. 모두가 다 알고 있지만 지들 둘만 모르고 있는, 솔이 언니 표현으로 “쌩지랄”을 하고 있는 거 말이지.
26. 한편, 연수는 지웅이와 골목을 다섯 개를 지나올 동안 웅이의 관심병에 대해 논하다가 나중엔 궤변까지 하지. 이게 그 정도로 맘에 들지 않는다는 것은, 그 관심이 자신만을 향하고 있지 않아서이지 않을까? 지금 친구라는 관계로 만족할 수 없음을 속사포같이 쏟아내고 있잖아.
연수 : 걔가 원래 친구를 쉽게 사귀는 애가 아니거든. 기본적으로 사회성이 있는 타입이 아니란 말이야, 걔가. 어? 자기 말고는 아무한테도 관심이 없는 애거든. 근데 연예인이라고 그러니까 막 관심이 가고 그러는 거지. 자기도 꽤 유명해졌겠다, 막 그런 걸 즐기는 거야. 하, 끝까지 숨기면서 활동하지, 왜 갑자기 공개하고 그랬대? 걔도 관심을 받고 싶었던 거야.
지웅 : 그거 너가 공개하라고 설득했던 거 같은데.
연수 : 그러게 왜 설득이 되고 그래.
뿐만 아니라, 저녁이 되어서도 ‘친구’라는 말에 엄청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연수가 나와. 할머니 머리를 염색해 주면서도 계속 궁시렁 대지. “하, 친구는 무슨... 같이 학교를 다니길 했어, 일을 하기를 했어? 같이 나눈 추억 하나도 없으면서 친구는 무슨 친구.” 친구란 말에 그토록 예민하게 반응하는 건, 사실 자신도 지금 같은 선상에 서있기 때문은 아닐까? 그러면서도, 애호박을 듬성듬성 썰면서, 친구로서 연락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다가도, 너 짝사랑하고 있다는 솔이의 말이 떠올라서 금방 접어버리지. 짝사랑도 나쁘지 않다는 엔제이와 대비되는 장면인 거 같아.
27. 이렇게 친구타령 하는 장면들이 계속 나오고 있지만, 사실 친구가 그 친구 아닌 거 다 알고 있지. 그러니 이제는 자기 진심을 숨겨야 하는 장면들이 나오고 있어. 엄청 엄청 중요하다고 말하던 게 겨우 파우치라는 걸 안 웅이는, 또 굳이 그걸 들고 그 시간에 찾아오네. 그리고 연수는 나중에 누가 먹게 될지 모를 된장국을 끓이다가, 메시지를 확인하고는 쭈뼛거리면서도 기대감을 가지고 대문을 열고 보는데, 결국 인정하고 마는 거지. 예전에 그저 순수하게 서로 좋아했던 시절과 오버랩 되면서 말이야. “큰일났어요. 그거 맞나 봐요. 짝사랑.”
최웅 : (파우치를 건네며) 너거야?
연수 : 어.. 맞아.
최웅 : 그게 너가 말한 그렇게 중요한 거냐?
연수 : 이거 주러 온 거야?
최웅 : 응, 뭐, 되게 중요하다고 하시니까..
연수 : .....그게 다야?
최웅 : .....
이 말에 둘은 한참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지. 누가 봐도 그게 다가 아닌 표정인데 말이야. 친구란 이름으로 남기 위해서는, 자기 진심을 숨기고 있어야 하는 거지. 그리고 그렇게 집안으로 끌려가서 할머니한테 쿠사리(?) 먹으면서도 견딜 수 있었던 건, “너 울린 놈을 뭐가 이뻐서”라는 그 말 한마디였을 거야. 하지만 여전한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이 또 이어져.
최웅 : 갈게.
연수 : 야, 최웅
최웅 : (뒤돌아봄)
연수 : 그...... 고마워.
최웅 : 뭐가?
연수 : 어...... 파우치, 가져다 줘서.
최웅 : 거봐. 친구 해도 괜찮잖아, 우리.
지금 ‘친구’라는 말에 경기 일으킬 연수한테, 친구 해도 괜찮다는 말을 전혀 괜찮지 않은 표정으로 말하고 있어. 둘 다 표정은 전혀 안 괜찮아 보이는데, 굳이 말로는 괜찮다고 하는 게 아이러니 하지. 그러니 보면, 친구 타령하는 건, 친구 이상을 원하는 사람이 하고 있는 거잖아. 그래서 이제 연수는 자기 마음을 인정하고, 할머니한테 말해. 나 웅이랑 친구하기 싫다고.
“근데 할머니. 나 아직도 최웅 좋아해. 내가 버려놓고, 내가 놓아놓고, 내가... 내가 아직도 최웅 좋아해. 그니까, 최웅 혼내지 말고 나 혼내. 미련하고 못난 놈이라고 나 좀 혼내줘. 왜 그랬냐고, 왜 그렇게 후회할 짓 했냐고 나 좀... 나 좀 혼내줘. 나 어떡해 할머니. 나 최웅이랑 친구 하기 싫어. 못해. 근데 최웅은 그게 되나 봐. 나 이제 어떡해 할머니.”
28. 이제야 친구타령을 넘어서는 장면이 나와. 모두가 전혀 다른 의미의 ‘친구’만을 빙빙 말하다가, 드디어 ‘친구’라는 기표에서 벗어나서 진짜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하게 된 거야. 이미 키스까지 해놓고서도 친구를 하자고 하니, 도대체 그 친구의 의미가 뭐냐는 것을 자백(고백)받고자 시작을 했던 건데, 그래서 짝사랑이 아니라고 부정하면서 버텨왔던 건데, 이제는 도무지 버틸 수 없을 지경까지 온 거고.. 이제 여기서부터 변화가 시작되겠지. 친구라는 이름으로 모인 등장인물들이, 이제 친구라는 이름만으로는 버틸 수 없는 상황들이 오겠지만... 그럼에도 영화에서처럼, 사랑이든 우정이든 어떻게든 제 자리를 찾아가지 않을까 하는 거야. 우정도 숙명이라고 말한 영화의 메시지를 그대로 들여올 수 있다면, 친구란 이름에 가려져 헤매는 웅이와 연수는 어떻게든 자리를 찾을 거고, 그렇다고 그것이 모든 우정의 관계를 무너뜨리지도 않는 거지. 지난한 과정을 거쳐서 소울메이트가 되는 것처럼, 이들에게는 연인의 뜻으로, 또 저들에겐 친구란 뜻으로 각각 세워지는 거지.
29. 그래서 마지막 장면들은 되게 도전적이야. 눈이 부었다면서 다시는 우나 봐라 다짐하며 오는 연수는, 엄마의 생일상에 넋이 나간 지웅이와 만나게 되지. 부은 눈을 감추려고 피하려는 연수의 팔을 붙잡은 지웅이는, 자신의 생일임을 밝히고는 이제껏 감추어왔던 엄마에 대한 마음을 밝히게 돼. 엄마가 집으로 돌아올 때마다 웅이 집으로 피했기 때문에 웅이는 알고 있었을지 몰라도, 그날 지웅이 엄마를 처음 본 연수는 알지 못했을 거야. 그리고, 사실 지웅이도 그 골목에서 연수를 만난 건, 어쩌면 가장 위로해줬으면 좋았을성 싶은 사람을 만난 것이기에 더 마음을 드러낼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 아직도 엄마는 내가 복숭아 못 먹는거 모르나봐, 엄마 앞에서 죽다 살아났는데도 모르나봐, 라는 말에 연수는 어떤 말도 할 수 없었지. 그리고 “아니면 알고 싶지도 않은 건가...”라는 그 말의 여운은, 그 다음 장면으로도 이어지는듯 해. 편집실에 앉아 있는 웅이야 말로, 알고 싶지 않은 사실을 직면하게 되었으니까 말이야. 카메라의 시선이 담아내고 있는 연수를 향한 지웅이의 감정을 알게 되고, 외장하드에 붙은 지웅이의 이름까지 확인하면서 확신하게 되는 거지.
30. 그래서 영화가 보여줬던 친구의 의미들을 확인할 수 있는 것 같아. 진심도 적당히 숨길 줄 알아야 하고, 또 혹시나 알게 되어도 모른 척할 줄 알아야 하고 말이지. 마냥 좋은 것들로만 모든 관계의 시간을 채울 수도 없다는 걸 알게 될 거고, 그 시간이 지나면 더 단단해져 갈 우정과 사랑이라는 게 있음을 보게 되는 거지. 사랑을 운명이라고 말하는 것만큼, 우정도 숙명이라고 한다면 말이야. 그래서 에필로그에서, 지웅이가 웅이와 함께 자는 수많은 장면들이 반복해서 나오는 게 아닐까. 바로 지난밤까지 포함해서 말이지. 알쓰인 지웅이를 두고는 작업하러 내려갔다가도, 다시 올라와서는 “형이 들어줄게, 얘기해봐.”라고 말하는 우정이, 단순히 사랑보다 열등한 것이라고만은 할 수 없는 거잖아ㅎㅎ 이리 저리 얽혀있는 짝사랑의 작대기들이 서로 부딪히기도 하겠지만, 또 그 과정을 통해 성장하고 성숙하게 될 거니까 말이야.
31. 나도 못본 영화였지만, 생각보다 재미있게 봤어. 배우들이 연기 되게 잘 하더라. 못본 친구들은 한번씩 봐도 좋을듯 해. 그리고, 원래 나왔던 이야기들처럼 충분히 Hi & Bye로도 볼 수 있을 거 같아. 나는 '친구'란 말에 집중을 해서 본거라 조금 다르니까, 감안하고 봐줘.
긴 글 보느라 고생했고, 읽어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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