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가 길어서 전편 읽고 오는거 추천.
근왜토 시리즈
넬슨 일대기, 넬슨의 그녀들 1 : https://gall.dcinside.com/m/ttwar/546730
넬슨 일대기, 넬슨의 그녀들 2 : https://gall.dcinside.com/m/ttwar/547114
넬슨 일대기, 넬슨의 그녀들 3 : https://gall.dcinside.com/m/ttwar/548308
윌리엄 해밀턴 경.
1791년, 61세의 해밀턴 경은 국왕의 허락을 받아 26세 엠마와 결혼함. 젊은 시절 국가를 위해 군복무도 했고 평생 국가를 위해 헌신한 노귀족이 인생 말년에 행복을 찾겠다는데 말릴 사람이 있을까. 신분도 명성도 나이도 맞지 않는 부적절한 관계임에도 허락을 받은 둘은 런던의 한 작은 교회에서 조용히 식을 올림.
자기 외삼촌 윌리엄 해밀턴 경에게 정부(Mistress) 엠마를 떠넘긴 찰스 그레빌.(Charles Francis Greville)
전편을 읽었으면 알겠지만 찰스 그레빌은 내가 결혼만 하면 다시 데리러 온다면서 외삼촌인 윌리엄 해밀턴 경에게 엠마를 넘겼음. 그러나 엠마를 떠넘긴 1786년부터 5년간 아무 소식도 없었음. 포기한 엠마를 윌리엄 해밀턴 경이 거두어 들이고 서로 간의 감정이 싹 터 1791년 결혼하고 엠마가 "레이디 해밀턴"이 되자 그레빌은 기다렸다는듯이 또 다시 영남충 같은 짓을 함.
엠마가 15살때부터 엠마를 정부로 들여서 임신까지 시켰던 페도충 해리 경(Sir Harry Fetherstonhaugh).
엠마를 그레빌 전에 데리고 있던 해리 경이라고 기억할 것임. 해리경은 엠마가 자신의 아이를 임신하자 엠마를 버렸고 엠마는 옆에 가만히 있던 아다찐따 그레빌한테 도와달라고 요청하고 엠마의 미모에 반한 그레빌은 엠마를 받아들였었음.....사생아를 자기 집에서 키우지 않는다는 조건 하에.
그레빌은 엠마를 받아들인 후 엠마의 사생아(Emma Carew)의 양육비도 자신이 부담하고 있었는데, 외삼촌이 엠마와 결혼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양육비를 윌리엄 해밀턴 경에게 떠넘김. 당시 엠마의 사생아는 한 학교 교장 부부가 키우고 있었는데, 그레빌은 윌리엄 해밀턴에게 이제 이 아이도 외삼촌 양녀니까 외삼촌 저택으로 데려가는게 어때요? 라고 함. 이 때 무슨 생각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윌리엄 해밀턴 경은 양육비는 떠맡았지만 엠마의 사생아를 나폴리에 있는 자기 저택으로 데려오지는 않음.
감이 왔겠지만 윌리엄 해밀턴 경도 소설 속 착한 사람은 아니었음. 엠마의 사생아 얘기가 나오면 화두를 돌리거나 모르는 척을 했고, 평민인 엠마를 같은 젠트리 계급처럼 대했고 자기 정부인으로 받아들여 "해밀턴 부인"의 명칭을 주었지만 잠시 데리고 있을 목적으로 20대 엠마에게 먼저 다가간 것은 당시 50대 윌리엄 해밀턴 경이었음. 엠마는 사랑했지만 사회적으로 존재 자체가 껄끄러운 엠마의 사생아조차 사랑하지는 못했던 모양. 이 위에 엠마의 사생아 그림을 넣으려고 했는데 평민으로 사무직 비서나 하며 살아선지 돈 좀 있으면 개나소나 그려서 남긴다는 초상화 한장도 없음.
1791 년 레이디 해밀턴이 된 26살 엠마의 그림. 엠마의 그림을 전담으로 그리던 롬니는 슬퍼하며 이 작품을 마지막으로 다시는 엠마를 그리지 않았다고 함. 롬니는 엠마가 15살때부터 10년 간 그려왔으며 엠마를 당대 최고의 미인으로 만들어준 장본인임.
어찌되었건 윌리엄 해밀턴 경은 엠마를 정부인으로 받아들여 열과 성을 다해 대했음. 나폴리 대사로써 각종 행사에 자기 부인으로 데리고 다니며 당당하게 자기 부인이라고 소개하고 다녔는데, 미인으로 유명했던 엠마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도 많았음. 여러 사교 행사에 다니면서 곧 프랑스어와 이탈리아어 역시 유창하게 할 수 있게 된 엠마는 사교계의 스타가 되었는데, 시실리 왕비 마리아 캐롤라이나(Maria Carolina)와도 매우 친해졌음. 예술가, 가수로 여러 파티와 공연에 출연하며 더욱 더 큰 인기를 끌었음. 대표작으로는 "Attitude"가 있는데 이것도 나체로 춤추는 음....어쨋든 그랬음. 당시 엠마와 만났던 사람의 일기에 기록이 남아있는데 "친절하고 자상하며 아름답고 유머감각이 뛰어났다"고 함(Elizabeth Wynne)
그러나 당시 유럽은 프랑스 혁명정부와 이를 막으려는 영국 정부의 대립으로 난장판이었음. 미국 독립전쟁 이후 발령대기 상태로 백수로 집에서 와이프 패니와 지내던 넬슨은 다시 소집되어 64문급 소형 전열함 아가멤논의 함장이 되어 지중해 함대로 배치되었고, 1793년, 넬슨이 35, 엠마가 28일 때 윌리엄 해밀턴 경의 저택에서 만나게 됨. 나폴리에 5일간 머물며 지원을 받은 넬슨은 그 후 프랑스 해군을 상대로 맹활약을 하며 초고속 승진을 함.
엠마와 윌리엄 해밀턴 경의 사이는 매우 좋았던 걸로 보임. 엠마는 윌리엄 해밀턴 경을 "최고의 남편이자 친구"라고 표현했지만 엠마는 윌리엄 경과의 아이를 갖지 못했음. 경황상 윌리엄 해밀턴 경은 당시 안 스거나 무정자증이거나 둘 중 하나였던 듯. 이 때 엠마는 둘 사이에 아이가 안 생기니 영국에 있는 자기 사생아를 나폴리로 데려오자고 했지만 윌리엄 경은 이를 거절했고, 나중에 사생아가 나이가 차자 영국 내에서 남편감을 찾아달라는 부탁도 거절함.
넬슨의 정부인, 프랜시스 "패니" 넬슨(Frances "Fanny" Nelson). 전 남편의 성은 니스벳.
넬슨이 바다에서 수년간 작전활동을 하는 동안 넬슨의 아내 패니는 집을 혼자 돌보고 노쇠한 넬슨의 아버지를 보살폈는데, 넬슨에게 헌선적인 아내였지만 아직 넬슨과의 아이는 없었고, 결혼 1년만에 병사한 전남편 사이에 조사이아 니스벳(Josiah Nisbet)이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넬슨은 이 양아들을 해군 군의관으로 복무시키며 같이 데리고 다녔음.
넬슨은 나일 해전에서 프랑스 해군을 박살내고 나폴레옹이 이집트 원정을 포기하고 돌아가게 하여 영국의 영웅이 되었음. 이 전투가 해전에선 드물게도 해안가에 자리잡고 해안포 엄호까지 받으면서 니가와 하는 적을 상대로 들박 내가가로 적을 박살낸 상남자스러운 전투인데 나중에 다룰 일 있으면 다루겠음. 프랑스 해군을 박살낸 넬슨은 엠마와 처음 만난지 5년 후인 1798년, 생일 전에 나폴리로 돌아옴. 이 때 넬슨의 나이 39세(생일 전임), 엠마 33세, 넬슨의 부인 패니 37세, 데리고 다니던 넬슨의 양아들 조사이아가 18세.
미국 독립전쟁 당시 프리깃 함장 시절 20대 넬슨.
그 5년 간 넬슨은 갖은 고생을 다 했던 터라 망신창이가 되었는데, 전투에서 팔 한쪽과 다리 한 짝을 잃었고 이는 거의 다 빠졌으며 천식인지 뭔지 모를 지금으로서는 알수 없는 기침병에 고생하고 있었음. 장교이고 젠트리 계급이라 사정이 나았다지만 넬슨 역시 12살때부터 해군에서 근무했음. 천성적으로 배멀미를 해서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몸도 안 좋은 사람이 차갑고 습한 바다에서 야채도 제대로 못 챙겨 먹으며 바닷물보다 짜서 바닷물에 담가놓으면 좀 덜 짜지는 염장고기를 맹물에 삶은 것과 비스킷을 먹으며 이끼가 끼거나 썩어가는 물에 술을 타서 먹으며 수십년을 보냈으니 몸이 멀쩡할리가 있나.
죽기 전 47세의 넬슨.
넬슨의 정부인 패니의 아들 조사이아 니스벳(Josiah Nisbet). 자기 원래 아버지가 의사였는데 이를 따라 해군 군의관으로 복무함.
모두의 환대를 받으며 위풍당당하게 나폴리로 돌아온 넬슨은 자기 양아들 조사이아(당시 18세)를 데리고 윌리엄 해밀턴 경의 저택에 머뭄. 엠마는 넬슨이 도착하기 전에 사랑을 담은 편지를 보내는데, 넬슨이 도착하자 달려와 안기며 "Oh God, Is it possible?" (세상에, 지금 일어나는 일이 사실인가요?) 라고 외치고 기절함. 연기를 잘한건지 진짜 그런건지 몰겠는데 뭐 원래 말 한마디 행동 하나 다 오글거리던 시대니까 그렇다 치고, 문제는 넬슨인데 영남충은 영남충인지 영국 집에서 자기만 오매불망 기다리는 자기 와이프 패니한테 엠마에 대한 편지를 쓰는 존나 이해 안 가는 행각을 보임. 이래서 군생활 오래하면 안되는가 봄. 옆에서 이 꼬라지를 보고 있던 양아들 조사이아(18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무슨 생각을 했을런지는 알수 없지만 조사이아는 평생 해군 군의관, 장교로 복무하며 정상적으로 와이프 만나 결혼하고 외도도 없이 아들 딸 낳고 잘 살다가 50세에 자기 방 침대에서 죽음.
그냥 가져온 1800년대 파티(Ball) 그림.
엠마는 자기 남편 윌리엄 해밀턴 경의 저택에 머무는 넬슨을 지극 정성으로 간호하며 곁을 떠나지를 않았는데, 곧 다가올 넬슨의 40세 생일(9월 29일)을 위해 손님만 1800명 가량을 초대한 파티를 염. 여기서 엠마는 어릴때부터 군생활만 한대다 이런데 잘 안 와봐서 주뼛대는 넬슨의 양아들 조사이아(18세)가 너무 딱딱하다며 웃고 즐기라며 분위기를 복둗어 주었는데, 누구 때문에 파티에서 혼자 못 웃고 얼굴 죽상하고 있었겠냐 지금 자기 아버지가 자기 어머니 버리고 대놓고 바람피우고 있는데. 영국놈년들은 어떻게 정상인이 하나도 없냐.
이 파티에서 자기와 넬슨의 관계를 마음껏 과시한 엠마는 이때부터 넬슨의 비서로 번역, 사교계 다른 사람들과 소개 등을 맡아 정치적 후원자가 되었는데, 곧 둘은 사랑에 빠....졌다기보단 이제 눈치 볼일이 없어서 대놓고 하기 시작함.
자기 아내가 자기 부하랑 놀아나는데도 아무것도 하는 것이 없던 윌리엄 경을 풍자한 그림(1801년)
엠마의 남편 윌리엄 해밀턴 경(1798년 당시 69세)은 이 관계를 오히려 응원 해줬는데, 자기 저택에서 엠마, 넬슨과 함께 살면서 "우리는 셋이 모여 하나다!" 같은 소리를 했음. 예전 50대 때부터 은퇴하기를 원했었고 군복무로 배에서 생활하다보니 건강도 급속도로 악화되던 시기인데다 당시 수명을 생각했을때 당장 내일 사망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나이임. 넬슨과 윌리엄 경도 불편한 감정 없이 서로를 존중했다고 함.
그때나 지금이나 스캔들은 모두의 관심을 사로잡는 터라 곧 런던에서는 나폴리에서 넬슨제독과 영국 최고의 미인 엠마 해밀턴과의 공개 불륜이 핫토픽으로 떠올랐고, 젠트리 출신도 아닌 평민 연습생으로 젠트리들 파티에서 벌거벗고 춤이나 추던 엠마가 귀족에다 국가 영웅인 넬슨을 꼬시다니 하면서 온 나라가 웅성댔음. 하지만 엠마 해밀턴 역시 나폴리 여왕과 친밀한 사이인데다(나폴리 여왕 마리아 캐롤리나는 사촌 마리 앙뚜아네트가 처형당한 후 엠마에게 더욱 의존하게 되었음) 정치적으로 영향력이 있는 인사가 되어 넬슨에게 정치적으로 큰 도움을 주는 큰 손이 되어 있었기에 불편충 분탕종자들도 본격적으로 불타오르지는 못했음. 1799년 나폴리에서 일어난 혁명에서 아일랜드 반란으로 영국 본토의 지원을 받지 못하던 넬슨이 반란을 진압하는데도 엠마가 중재자로써 큰 역할을 함(윌리엄 해밀턴 경은 이제 실질적으로 은퇴한 상황).
1800년 그려진 넬슨의 정부인 패니의 초상화. 표정에서 많은 것을 읽을 수 있다.
그렇게 1800년, 지난 10년간 매년 본국에 보낸 나 좀 은퇴/전역시켜 달라는 해밀턴 경의 요구가 받아들여지고, 넬슨 제독 역시 본국으로 소환되면서 임신한 엠마도 같이 런던으로 돌아옴. 런던으로 돌아온 넬슨은 엠마와 함께 런던의 한 호텔에 머물렀는데, 넬슨의 정부인인 패니와 노쇠한 넬슨의 아버지는 집에서 축하파티를 하니 어서 집으로 오라는 편지를 보냈지만 답이 없어 직접 넬슨과 엠마가 머무는 호텔로 찾아와 여기에서 식사를 같이 함. 여기서 패니는 엠마가 임신한 모습을 보게 되는데, 밥이 코로 넘어가는지 입으로 넘어가는지 모르는 상황이었음 것 같음.
같이 밥 먹는 사람이 넬슨, 넬슨 애인 엠마, 넬슨 정부인 패니, 패니 아들이자 넬슨 옆에서 군생활하던 양아들 조사이아, 그리고 오늘내일하는 넬슨 아버지. 캬아.....쉽,,,헐,,,
어쨌든 이 관계는 곧 신문에서 대서특필로 보도되고 온 영국과 전 세계가 이 토픽으로 핫하게 불타오름. 넬슨이 없는동안 집을 돌보고 헌신했던 정부인 패니는 이 관계를 부정했지만, 엠마는 이미 정치적 영향력으로도 대스타가 되어있던 터라 여론은 엠마 편이었음. 영국의 모든 여자들의 엠마 해밀턴의 옷차림, 스타일을 따라하려고 했고, 넬슨은 패니를 아예 무시해버림.
그렇게 신명나는 런던생활이 이어지고 12월, 넬슨이 부제독(Vice Admiral)로 승진하고 다시 원정을 떠나기 위해 준비를 시작하자 패니는 최후통첩을 함. 나를 택하던지 엠마를 택하던지 둘 중 하나를 택하라고. 넬슨은 한치 망설임도 없이 엠마를 택하고 패니와는 다시는 만나지 않았음.
엠마와 넬슨 사이의 자식, 호레이쇼 넬슨(Horatio Nelson)
이미 사랑하는 남편인 윌리엄경마저 자신의 사생아를 무시하는 것을 지켜본 엠마. 심지어 처음 넬슨과 만나기 전 윌리엄 경은 엠마에게 사생아의 존재를 비밀로 숨기라고 말할 정도였고, 엠마도 넬슨에게 자기 사생아의 존재를 숨겼음. 당시는 그런 시대였다는게 변명 아닌 변명이 되겠음.
1801년 1월, 넬슨과 엠마의 아이가 태어남. 엠마는 넬슨과의 부적절한 관계, 자신의 출신성분 때문에 이 두번째 자식마저 사회로부터 거부당할까 불안했는지 이 딸의 이름을 넬슨의 이름을 그대로 따 호레이쇼 넬슨(Horatio Nelson)이라고 지음. 넬슨이 출정한 이후에도 엠마는 예술가이자 가수로써 런던의 유명한 극장들에서 공연을 했는데, 후에 영국 국왕이 되는 당시 영국의 왕자 웨일스 공, 조지 4세가 엠마에게 추근덕댐. 이 새끼는 영남충 중의 영남충으로 유명했는데 박을 구멍은 다 박아보고 맨날 술 쳐 먹고 다니느라 이 새끼 왕자시절 왕실 예산의 절반이 넘는 빚을 진 적이 있음. 그런데다 또 정치에는 존나게 개입함.
조지 4세. 이 새끼는 왜 이렇게 생긴것부터 마음에 안 들지
왕세자한테 꺼지라고 할 수 있나. 엠마는 어쩔수 없이 예의 갖추는 선에서 왕세자를 만나게 되었는데, 넬슨이 이를 질투하자 보다못한 윌리엄 경이 엠마는 너만을 사랑하고 있다고 편지까지 써야할 상황이었음. 다음 해 2월 넬슨은 런던으로 돌아와 자기 딸을 만났는데, 이때쯤 엠마는 넬슨의 형제에게서 고맙다고 편지도 받는 등 넬슨 집안도 엠마를 받아들인 것으로 보임. 넬슨이 나가있을때에도 엠마와 넬슨은 항상 편지를 주고 받았는데, 엠마는 받은 편지를 항상 가지고 다녔다고 함.
넬슨의 아내로써 시댁에서도, 사회적으로도 인정받은 엠마는 조심스레 자신의 사생아의 존재를 넬슨에게 밝히는데, 뜻밖에도 넬슨은 엠마의 사생아(Emma Carew)를 자기 집으로 불러들여 같이 지내게 했으며 타인에게는 "엠마의 친척(Emma Hartley)"으로 소개했음. 그리고 넬슨은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에도 넬슨은 엠마의 37세 생일파티를 여느라 아버지를 무시했고, 그렇게 엠마의 37세 생일날 넬슨의 아버지는 쓸쓸히 혼자 임종을 맞음. 옆에서 군생활하던 양아들이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정말 궁금함. 넬슨은 나중에 자기 아버지 장례식도 가지 않았음.
이번편으로 완결 지을라 했는데 존나 많네 다음 편이 마지막편이 되었음 좋겠음.
넬슨 일대기, 넬슨의 그녀들 5(完) : https://gall.dcinside.com/m/ttwar/560832
무기, 갑옷 제작 - 철 제련법 1 : https://gall.dcinside.com/m/ttwar/579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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