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노빠꾸로 말레키스가 버티고 있는 감시탑과 주둔 부대를 향해 개돌을 때린 울쑤안 수어사이드 스쿼드.

첫 전투 당시의 피해로 인해 이제 겨우 400이 채 되지 않는 병력으로 또다시 수배의 병력에 들이받았지만 이번에도 와장창 개발살을 내버리고 엘사리온은 마술사 왕의 군막까지 치고 들어간다.

근데 읎어. 치킨 킹 이색기는 또 드래곤 타고 원정대 눈 앞에서 훌쩍 날라버렸다.

엘사리온의 표정은 얼음장과도 같이 창백하게 굳어있었다. “우리는 나가론드로 간다.”

“아니되네! 제발 여기서 이 어리석은 원정을 그만 멈추시게나!” 벨라나에르가 다급히 외쳤다. 드루키들은 와해되어 나가론드를 향해 어지러이 패퇴하고 있는 참이었다. 쉐도우 워리어들은 감시탑의 한쪽 측면을 열심히 파들어가고 있었는데 감시탑의 토대를 약화시켜 그대로 무너뜨리기 위함이었다. 나머지 울쑤안 병력들도 전사자와 부상자들을 보살피느라 분주했다. 허나 벨라나에르의 기대와는 달리 그들중 누구도 철수를 위한 준비에 매진하고 있지 않았다. 전사들은 다시금 전진하기 위한 행군태세를 갖추어나가고 있었다.

“이게 다 말레키스의 계략임을 눈치채지 못했단 말인가?” 벨라나에르는 거세게 항변했다. 허나 엘사리온은 이미 멀어버린 눈으로 저 먼 밤의 어둠을 조용히 응시할 뿐이었다. “우리는 승리를 거둔 것이 아닐세. 놈들이 우리에게 승리를 허락해준 것일 뿐이지. 두 번이나 마술사 왕은 놈의 드래곤을 이끌고 우리 머리 위를 맴돌았네. 두 번이나! 놈은 불길 한 번으로 우리 전부를 잿더미로 만들 수 있었음에도 그리하지 않았어! 무엇 때문이겠나? 놈이 우리를 끌어들이고 있는 게야! 더욱 더 깊숙이 들어오도록 말일세. 놈이 우리를 이용하려들고 있는 것이 분명하네!”

“이용이라.” 엘사리온은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좋습니다. 이용하라고 하지요. 손아귀 속에서 미끄러져 놈을 찌를 도구가 기꺼이 되어줄 터이니. 행군 태세를 갖추라. 전진한다.”

“허면 거짓이었단 말인가? 분명 감시탑의 군세만 정리하고 나면 되돌아가겠다 말하지 않았나. ” 벨라나에르는 제자를 향해 힐난을 퍼부었다.

“분명 그리 말씀드렸습니다. 허나 마술사 왕이 꼬리를 말고 도망쳤으니 우리는 놈의 숨통을 끊을 때까지 다시 전진할 겁니다.”

“좋을 대로 하게. 나는 함선으로 돌아갈 테니. 이번에는 내 병사들이 자네에게 놀아나도록 두지 않겠네. 더는 말레키스의 장난질에 이용 당하는 건 사절일세.”

이렇게 옥신각신하던 벨라나에르가 더는 제자의 패악질을 참지 못하고 강경하게 철수하겠다 주장하자 엘사리온은 갑자기 안면을 싹 바꿔서 스승님 말씀에 따르겠다고 고분고분하게 나온다. 오잉? 우리 제자가 드디어 정신을 차렸어라?

이를 지켜보던 알리스 아나르는 적잖이 실망해서 실의에 빠지는데, 물론 이성적으로는 벨라나에르의 말이 백 번 맞는 얘기였지만 뭔가 좀 광적으로 열정적이던 엘사리온이 갑자기 김이 빠진 듯 철수를 결정하자 속으로는 마음이 많이 상해버렸던 것이다.

그렇게 해변을 따라 한참을 터덜터덜 철군하던 중.

이제 해안가의 절벽을 뒤로 한지도 한 시간 이상이었다. 멀리서 뿌옇게 밝아오는 새벽은 짙은 숲의 그림자에 가려 아직은 원정대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울쑤안의 병사들이 깊은 숲을 헤치고 나아가는 동안 알리서 아나르의 수석 정찰병인 리스가 소리 없이 숲의 그림자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조용히 보고를 끝마친 그녀가 다시금 모습을 감추자 엘사리온은 그림자 왕의 곁으로 다가섰다. “우리가 포착되지 않은 것이 확실합니까?”

“그렇소, 소드 마스터.” 알리스 아나르는 무겁게 답했다. “우리를 감시하는 어떤 적의 정찰병도 없었고, 하늘 위는 날아다니는 하피도 자취를 찾을 수 없었소. 회군길은 안전한 것이 분명하오.”

“좋군.” 엘사리온은 정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부관, 부대에 정지 신호를 보내라. 이 정도면 충분히 왔으니.”

“무엇이 충분하단 말인가?” 고개를 돌린 벨라나에르가 황망한 물음을 던졌으나 제자는 그에게 어떤 주의도 기울이지 않고 있었다. “알리스 아나르, 휘하의 그림자 전사들에게 아까 전리품으로 수거하라 명했던 드루키들의 갑주와 의복을 갖추라 이르십시오. 나의 소드 마스터들도 마찬가지로 위장할 것입니다. 숲속에서 밤이 다시 올 때까지 잠복해있다가 움직일 겁니다. 나가론드로 향해 전장에서 복귀하는 드루키 부대로 위장하는 겁니다.”

알리스 아나르의 심장이 대번에 다시 뛰어오르기 시작했다. 소드 마스터는 포기한 것이 아니었다!

벨라나에르는 또한 펄쩍 뛰어올랐다. “또 거질말을 했구나!” 그가 소리쳤다. “이제는 자네의 가장 오랜 친우마저 속여 넘긴단 말인가!”

아 스승님이고 나발이고 여기서는 못 먹어도 고라고.

옆에서 한창 풀 죽어 있다 히죽히죽 좋아죽는 알리스 아나르는 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