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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소설] 푸른 달_2앱에서 작성

무나강장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4.02 19:2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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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






레밀리아의 무리가 대저택에 발을 들이고 나서 몇 주쯤인가 지난 어느 날, 레밀리아와 그 사용인과 여동생은 평소처럼 대저택의 검은 대문 앞에 도착했다. 그러나 평소와는 달리, 대문 근처에는 문지기를 비롯한 어떤 사람도 없었고, 그저 저 멀리 본 건물 한 쪽 마당에서 사용인 여럿이 분주하게 왔다갔다 하고있을 뿐이었다. 그 중 한 명이 레밀리아의 도착을 발견하고는, 허겁지겁 달려와, 숨을 헐떡이면서 대문을 열고는 말했다.

"죄송합니다 레밀리아 님... 하아... 오신 줄도... 하아... 모르고..."

"무슨 일 있나요?"

반쯤 열린 대문으로 레밀리아가 주위를 둘러보며 걱정스럽게 물었다.

"아뇨, 별 일 아닙니다. 자, 주인님께로 안내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사용인은 숨을 고르고, 평소처럼 레밀리아 네의 짐을 들고 앞장섰다.
레밀리아를 비롯한 세명은 두리번거리며 사용인을 따라가 현관 안으로 들어갔다.
저택의 부지 한 쪽에서 사용인 여러명이 가을하늘 아래서 흙먼지를 일으키며, 공사에 가까운 일을 하고 있었다.

분주하던 밖과 달리, 건물 안은 정적이 흐를정도로 한산했다.
레밀리아가 알기로 휴식 시간도 아닌데, 다들 밖에 나간걸까. 하지만 밖에 있는 사용인도 그리 많아 보이지는 않았었다.
사용인의 안내에 따라 플랑은 유키의 놀이방으로, 레밀리아와 메이링은 2층에 있는 주인의 서재로 들어갔다.

사용인이 살며시 문을 열었을 때는 주인과 메이드장 C가 이야기를 하던 중이었다.
한 쪽은 고민이 가득한 얼굴로 책상 앞에 앉아있었고 한 쪽은 반대편에 서서 굳은 인상으로 무언가 계속 말하고 있었다.
사용인이 헛기침을 하자 둘은 거의 동시에 문가의 레밀리아를 돌아봤다.

주인이 멎쩍게 웃으며 일어나 반겼다.

"이런, 이거 죄송합니다. 대화에 열중하느라 오신 것도 몰랐네요.
자, 안으로 들어와 앉으시죠. 메이드장."

주인은 그렇게 말하며 책상 앞 1인용 소파 쪽으로 걸어갔고, 메이드장은 서재 옆에 붙은 탕비실로 들어갔다.
레밀리아도 주인의 1인용 소파의 앞에 놓은 손님용 장소파에 앉았다. 그러자 주인이 메이링을 보며 말했다.

"메이링 씨도 부디 앉아주시죠. 사실 오늘 할 얘기는 메이링 씨와도 관계가 있으니."

당황스런 제안에 메이링은 슬쩍 레밀리아를 보고는, 레밀리아가 작게 끄덕이자 그제서야 레밀리아 곁에 다소곳히 앉았다.
레밀리아가 먼저 입을 열었다.

"지난번까지 하던 얘기는 저희들의 거처와 사업에 대한 이야기였죠...?"

새 주제가 나올 것임을 예견한 레밀리아가 확인차 물었다.

"네, 그랬었죠. 하지만 오늘은 다른 얘기를 할까 합니다.
아니, 사실 내용이 달라졌을 뿐, 주제는 여전히 같지만요."

주인은 그렇게 말하곤 잠시 뜸들이더니, 얘기를 계속했다.

"들어오시면서 느끼셨을지 모르겠지만, 요즈음 저택 내부가 상당히 분주해졌습니다.
사용인이 줄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새로운 일이 생겼기 때문이기도 하죠.
사용인이 줄은 이유는 물론 말할 것도 없이 예의 그 전염병 때문입니다.
제대로 격리했다고 생각했는데 발원지가 따로 있는 건지 지속적으로 퍼져서 이번에도 3명이나 앓아 누웠습니다.
그것도 노동력이 꽤 되는 사람들만 아파버려서..."

"...그럼, 새로운 일이라는 것은?"

"저희 부지 내에는 본관 저택 뒷편에 몇개의 작은 별채가 있습니다.
그 별채들에 확진자들을 나눠서 격리해 놓는데, 그 중 한 곳이 바로 어제 아침, 무너졌습니다."

여기서 잠시, 주인이 한 숨을 쉬고는 얘기를 이었다.

"조사해본 결과 대들보가 부숴졌더군요.
글쎄요, 부숴졌다고 할까. 부식됐다, 폭발했다, 엇나갔다... 아직 뭐라 단정짓기는 힘듭니다.
적어도 '파괴'된 것은 분명합니다.
아무튼 그 일 때문에 확진자들이 여럿 다쳤고, 한 명은 현재 위중한 상태입니다.
무엇보다 문제인 것은, 이미 별채들엔 자리가 다 차서 그들을 격리할 공간이 없다는 것이죠.
그렇다고 나가라 할 수도 없고 해서... 일단 다른 별채에 나뉘어 우겨넣은채
지금 밖에서 저희 사용인들이 보수 및 재건축 작업을 하기 위해 일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건... 정말 큰일이네요..."

레밀리아가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예, 그래서 문제가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재건축에 전염병 문제에, 외상환자들까지...
그래서 여러모로 고민했고, 그렇기에 어렵게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주인이 어두운 얼굴로 천천히 고개를 들어 레밀리아를 보고 말했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잠시만이라도 저희를 도와주실 수 있으실까요?"

"저희가요? 무엇을..."

"실례합니다만, 메이링 씨는 인간이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현재 토목공사가 급한데, 남성 사용인들 중에 특히 확진자가 많은터라
힘이 필요한 일들이 많습니다. 그렇기에 만약 메이링 씨가 손을 빌려주신 다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메이링이 놀란 눈치로 레밀리아 쪽을 힐끗 봤다.
레밀리아는 여전히 주인이 하는 말을 듣고 있었다.
"물론, 저도 이런걸 부탁할 만큼 가까운 사이인건 아니란 건 알고
그냥 부탁드리는게 염치없다는 것도 압니다.
그래서 한가지 제안을 하는 것인데, 임시라도 괜찮으니 레밀리아 씨네가
저희 저택에서 머무르시는 것은 어떨까요.

이전, 레밀리아 씨의 얘기를 듣고 기억난 것인데, 지금 머무시는 그 저택은
분명 소령 세자매들의 거주지인 것으로 알고있습니다. 아마 제 생각 이상으로 불편하시지 않을까 싶네요.
그리고 여기엔 식량과 편의시설도 충분하니 그 곳보다는 여기가 나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지금까지 하던 거주지와 사업 논의도 계속 이어갈 수 있겠구요."

주인은 그렇게 얘기를 끝내며 무의식적으로 두 손을 만지작 거렸다.
레밀리아가 조금 놀란 표정으로, 하지만 여전히 침착한 채 대답했다.

"상당히 갑작스런 제안이네요.
먼저 그 사고에는 깊은 유감을 표합니다. 많이 힘드신 상황이군요.
하지만 그렇다 해도 알게 된지 얼마 안된 저희를 들이시려 하다니...
이 결정은 주인어른 분의 독단이신가요?"

"아뇨, 그럴리가요. 전 저택 내의 모두의 의견을 존중합니다. 모두에게 물어봤죠.
사용인들은 물론, 확진자들, 유키, 메이드장, 아 그리고 파츄리 씨까지도 -사실 이 제안을 하신 분이 파츄리 씨입니다.
그리고 상황이 상황인지라 대부분 찬성해주더군요.
...다만 메이드장은 조금 보류 쪽이었지만...
너무 성급하게 믿는 것 아닌가 싶다고 하더군요."

"하하하, 그럴만도 하죠. 그 분의 뜻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정말 갑작스럽게 이런 제안을 해서 죄송합니다."

주인은 다시 한번 사과하며 레밀리아의 눈치를 봤다.
레밀리아는 아직 깊게 고민하고 있는 듯 했다.

"...저는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주인의 표정이 약간 밝아지려 했다.

"저 또한 독단으로 결정할 수 없기에,
따로 플랑과 메이링과 이야기를 해보는게 좋을 듯 하겠네요."

"아, 물론이죠. 천천히, 얘기 나누시기 바랍니다."

그 대화를 끝으로 레밀리아와 메이링은 방을 나왔다.
그 직후에 탕비실에서 메이드장이 주인없는 다과를 가지고 뒤늦게 나왔다.



레밀리아는 계단 쪽으로 걸어갔다.
메이링이 물었다.

"플랑도르님께 가시나요?"

"그래. 칭찬해줘야지.
얘기하는 척이라도 해야하고."



그날, 레밀리아 네는 평소보다 더 오랜 시간 저택에 머물렀다.
저택 안이나 외부를 어슬렁거리며 둘러보거나, 사용인들에게 이것저것 물어봤다.
사용인들이 보기에 과연 여기서 살만한가를 알아보기 위해 그러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것은 반쯤은 맞았다.

늦은 오후 그러나 아직 저녁 먹기엔 이른 시간에, 레밀리아와 메이링은 주인의 서재에서 제안을 수락했다.
크게 기뻐한 주인은 조금 뒤면 저녁이니 함께하자고 했으나 레밀리아는 일이 있다며 먼저 돌아가보겠다고 한 뒤,
도서관에 들려 파츄리를 만나고는 정문 밖으로 걸어나갔다.


#
이후, 입주는 빠르게 진행됐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레밀리아 네는 꽁꽁 싸맨 이사짐들을 가지고 왔고,
거기엔 딱 필요할정도의, 그리고 고유한 물건들만 있어서 옮기는 것도 순식간에 끝났다.

그들에게 주어진 방은 2층의 큰 방 하나와 작은 방 하나로, 각 스칼렛 자매, 메이링의 방이었다.
원래 사용인의 거주지는 식당, 응접실 등의 공공 구역과 함께 1층이지만
메이링의 방은 주인의 특혜로 2층, 스칼렛 자매의 옆방으로 주어졌다.

입주한 그 날 부터, 메이링은 저택 내 메이드의 관리에 따라 보수공사에 참여했다.
사용인이 밖에서 땀흘리며 일하는 동안, 레밀리아는 주인의 안내에 따라 저택 내부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처음으로 안내받은 곳은 도서관인데, 외부에서 봤을 때는 저택의 가장 오른쪽에 붙여진 탑에 해당한다.
책들은 주인이 이전세계에서 함께 가져온 것들과, 오랜시간 환상향에서 수집한 것들이었는데 그 수가 굉장했다.
그만큼 많은 책들을 보관하는 구역이니만큼, 높은 탑이라는 공간을 필요로 하는 것도 당연한 것이었다.

"여기가 도서관입니다.
아, 파츄리 씨 잠시 실례해도 괜찮겠지요?"

"네, 물론."

주인이 도서관의 문을 열다가 먼저 온 손님을 보고는 말했다.
이에 도서관 한쪽 구석에서 조용히 책을 읽던 파츄리가 고개를 들어 새로운 주민을 보고 답했다.

"책이.... 정말로 많네요..."

레밀리아가 도서관 내부를 올려다보며 감탄했다.

"과찬이십니다... 아니, 사실 그 말이 맞죠. 허허허.
아마 여기가 환상향에서 책이 가장 많은 곳일 겁니다.
다만... 닥치는대로 수집하는 것이다 보니
다독가인 저도 아직 읽지 못한 책들이나, 이해하지 못하는 책들이 많지만요."

주인이 그렇게 말하며 한 책장에 꽂힌 책들을 손바닥으로 가볍게 쓰다듬었다.

"아마 파츄리님이 아니었으면 책장에서 꺼내지지도 못한 책들이 대부분일 겁니다.
이 도서관도 유키도 파츄리님의 학식에 신세를 지고 있는 것이죠.
(듣기로는 대단한 마법사라 하시더군요.)"

그렇게 뒷 부분은 작게 말했다.
그것을 들었는지 못들었는지 파츄리가 책을 덮고 말했다.

"주인어른."

"네? 네."

"이전 얘기 나눴던 건 말입니다만..."

파츄리가 그렇게 말하며 살짝, 레밀리아의 눈치를 봤다.

"....아, 그 치료약 말씀이시군요. 레밀리아 씨가 들어도 문제는 없습니다.
이제 한 식구니, 오히려 같이 들어야죠."

주인은 사람좋은 웃음으로 말했고, 레밀리아는 작게 미소지으며 감사를 표했다.

"그럼 말씀드리겠습니다만,
진전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본 병의 증상과 비슷한 병을 다룬 서적도 찾았고,
그 서적에는 치료제로 보이는 약에 대한 제조법도 찾은 듯 합니다."

"...듯 하다...?"

주인이 환희와 신중 사이의 표정으로 물었다.

"문제는 그 서적이 제가 모르는 언어로 쓰여졌다는 것입니다.
구유럽의 언어는 글자도 같고 대게가 일정한 규칙 내에서 이루어집니다만은...
이것은 북유럽, 그것도 고대의 언어라 제가 쉽게 풀이하기가 쉽지 않네요.
이 언어에 관한 책을 찾아야 한다면 시도는 해보겠지만 이미 사라진 언어라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찾을지 장담은 못합니다."

"...그렇군요...
해법이 바로 앞에 있는데 손이 닿지 않는다니..."

주인의 표정은 굳어졌다. 하지만 어둡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고민하고 있는 듯 했다.

"그럼-"

"저기."

레밀리아가 주인의 말을 끊고 입을 열었다.

"실례가 안된다면 그 책을 봐도 괜찮을까요?
어쩌면, 제가 아는 언어일지도 모르니."

"네? 네, 잠시만."

생각지 못한 발언에 파츄리와 주인 모두 놀란 듯 했다.
파츄리는 바로 책상을 뒤져 여러 책들에 깔린 서적을 찾으려 했고
주인은 놀란 채로 물었다.

"그 언어를 어떻게..."

"사실, 제 출신지가 북유럽입니다.
꽤나 오랜 시간부터 살았으니 어쩌면 그 언어도....
아 감사합니다. 확실히 낡은 책이네요. 보자..."

책을 받아든 레밀리아가 표지를 펼쳤다.
주인과 파츄리는 그녀가 독서하는 모습에 집중했다.

"...네. 제가 아는 언어가 맞네요.
제가 살던 고향 근처의 언어지만, 문제없이 번역할 수 있습니다."

"아!"

주인이 환희에 가득찬 탄성을 질렀다.
좀처럼 표정을 짓지 않는 파츄리도 희미하게 미소를 짓는 듯 했다.
이어서 레밀리아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저기, 그럼 혹시..."

"네, 파츄리 씨만 괜찮다면 곁에서 도울 수 있겠습니다."

"저야 감사하죠.
읽지 못하던 책을 읽게되는 건 그 무엇보다도 기쁜 일이니까요."

"아, 정말 다행이군요.
정말 다행이에요."

뜻밖의 긍정적인 결과에 주인은 진심으로 안도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만,"

파츄리가 말했다.

"레밀리아 씨가 도와주신다고 해도 바로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저도 아직 내용을 파악한 것이 아니기에,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리는지,
어떤 재료가 필요한지를 모릅니다. 내용에 따라선 혹, 힘들지도 모르구요.
그러니까 아직 확신은..."

"물론이죠. 그만큼 그 부분은 전적으로 파츄리 씨와 레밀리아 씨에게 맡기겠습니다.
필요한 재료, 도구, 서적이 있다면 뭐든, 뭐든 말씀해주십시요.
메이드장이나 일반 사용인 뭣하면 저에게 직접 말씀해주셔도 괜찮습니다."

주인은 아직 격양된 감정을 억누르지 못했는지 빠른 속도로 얘기했다.
그렇게 어린아이같은 주인을 본 파츄리는 작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알겠습니다. 명심하도록 하지요.
레밀리아 씨와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정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레밀리아 씨도."

"아, 네. 물론이죠
맡겨만 주세요."

그렇게 주인은 만면 가득 미소를 지은 채, 레밀리아에게 다음 방을 소개하기 위해
도서관 문을 나섰다.
뒤따라가던 레밀리아는 살짝 뒤돌아보더니 파츄리를 향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파츄리는 그저 무표정으로 끄덕일 뿐이었다.



이 후에도 저택 탐방은 계속되었다.
다만, 주인의 방소개에는 지엽적인 얘기가 많고
굳이 들여다 볼 필요가 없는 방 자체도 적잖이 있기에, 그 내용은 생략하기로 하자.
대신 각 방에서 일어난, 아무래도 좋은 듯 하지만 보이지 않는 씨앗을 품고있는 사건 몇개를 얘기하는 것이 낫겠다.





#
레밀리아의 무리가 입주하고 나서 몇달 후, 나무 밑둥의 불긋한 낙엽 위로 새하얀 눈송이가 쌓였을 때,
플랑도르는 권태스런 시간의 축적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언니는 도서관에서 나오질 않았고, 친구는 감기에 걸려 하루종일 방 안에서 자고 있었다. (단순한 감기였다.)
그렇다고 밖에서 뛰어놀자니 초겨울의 쌀쌀한 공기가 작은 흡혈귀의 손가락을 에고 돌았다.
그것은 저택 내부도 마찬가지였는데 아무리 부호라 해도 그 넓은 저택 전부에 난방을 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기껏해야 주인 가족의 방과 업무실이 있는 2층, 그리고 커다란 아궁이가 있는 1층의 부엌정도.

현관의 정중앙 계단을 중심으로 1층은 두 구역으로 나뉘어졌는데,
오른쪽은 식당, 응접실, 유키의 공부방 그리고 부속탑인 도서관이 있었고,
왼쪽은 부엌과 사용인 거주구역이었다. 부엌과 사용인의 방이 붙어있는 것은
부엌의 요리냄새로부터 1층의 사용구역(오른쪽)을 떨어트리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처럼 추운 겨울에 부엌의 아궁이를 통해 사용인의 방까지 함께 덥힌다는,
주인의 배려이거나 절약이기도 했다.

2층에서 뛰어놀다간 혼나기 일수이니, 플랑은 언제나 1층의 부엌으로 가곤 했다.
그곳은 따뜻하고 음식도 많았지만 사용인들의 방의 바로 옆이라 항상 조심해야 했다.
물론 거기 있는 걸 들킨다고 뭐라 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워낙 낯가리는 플랑인지라
가급적 레밀리아 무리 외의 다른 사람은 피하려 했다.
그렇다 해도 구역이 구역이니만큼 가끔은 다른 사람과 마주치기도 했는데, 오늘이 그날이었다.

"어머, 플랑 아가씨."

메이드장은 언제나 플랑도를 플랑 아가씨라 불렀다.
다른 사용인들은 항상 '플랑도르님' 라 부르기에
플랑도 그렇게 불리면 그게 메이드장인 것을 알았다.

"메이드장 언니."

"그냥 메이드장으로 괜찮다니까요~
하지만 역시 언니도 좋네요."

사실, 메이드장은 이 저택 내에서 레밀리아 무리와 유키를 제외하고
유일하게 플랑이 불편하지 않은 상대였다.
메이드장도 그것을 아는지, 플랑에게는 특히 살갑게 대해줬다.

"간식이 먹고싶으셔서 오신거에요?"

"아, 아냐. 그냥... 심심해서..."

"그렇죠. 요즘처럼 추워질 땐 모두 방에만 틀어박혀있으니...."

"언니는 무슨 일로 왔어요?"

플랑은 '메이드장 언니'와 '언니'를, 그리고 반말과 존댓말을 섞어쓰고 있었다.
사실, 둘만 있을 때는 거의 항상 언니라곤 했다.

"음... 저는 간식 먹으러요."

메이드장이 장난스레 웃었다.

"플랑 아가씨도 먹을래요?"

메이드장이 선반을 열며 말했고, 플랑은 말없이, 그러나 분명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선반에서 꺼낸 것은 낡은 양철통에 담긴 쿠키들이었다.
초콜릿, 모카, 딸기, 아몬드가 박힌, 오직 밀가루 등의 여러 종류의 쿠키가 한데 모아져있었다.
메이드장이 플랑과 함께 간식을 먹을 때면 언제나 초콜릿을 플랑에게 주고 자신은 아몬드가 박힌 쿠키를 먹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부엌의 구석 한켠에 쪼그리고 앉아, 둘이서 쿠키를 나눠 먹었다.

메이드장은 줄곧 미소 짓고 있었고, 그것을 본 플랑은 메이드장에게 물었다.

"좋은일 있었어?"

"티나나요? 사실 제 스승님의 상태가 호전되고 계시거든요.
아, 정확히 스승님은 아니고 제가 여기 들어왔을 때부터 쭉 절 가르쳐주셨던 분인데,
제 전임 메이드장, 그러니까 원래 메이드장 분이세요.
몇달 전 별채가 무너졌을때 가장 크게 다치셔서 목숨이 위험하셨었는데..."

플랑은 자기도 모르게 오른손을 다리 사이에 넣어 감췄다. 등 뒤가 오싹했다.
그러나 눈치채지 못한 메이드장은 계속 얘기했다.

"그래서 계속 의식불명이셨는데 다행히 오늘 눈을 뜨셨어요.
왕진 온 의사분은 아직 완전히 회복하려면 멀었다고 하셨지만
절 보자마자 잔소리 하시는게 얼마나 반가운지...
견습 때는 그렇게 듣기 싫었는데... 참 신기한 일이에요."

메이드장의 표정은 추억에 어려있는 포근한 표정이었다.

"물론 전염병의 병세는 여전하지만 레밀리아님이 파츄리님과 함께
치료법을 연구하고 계신다고 하니 희망을 가져봐야죠.
메이링 씨 덕분에 별채 보수공사도 거의 끝나가고.
여러모로 플랑 아가씨 네가 와주셔서 정말 다행이에요."

"으, 으응....
하지만 난 아무것도 안했는걸..."

플랑이 멎쩍은 미소를 지으며 바닥만 쳐다본 채 말했다.
그 때, 부엌 문이 열리면서 누군가가 들어왔다.
메이드장과 플랑은 깜짝 놀란채 경직됐었고, 이내 곧 메이드장이 움츠린 몸을 플랑 쪽으로 기울였다.
의자와 책상으로 가득한 그 구석은, 너무나 좁아서 플랑은 몸을 움직일수가 없었고
그렇게 메이드장은 거의 플랑을 껴안다시피 플랑과 밀착했다.
메이드장의 산뜻한 채취가 플랑의 코끝을 간지럽혔고, 심장소리가 그녀의 귓가에서 울렸다.
그러나 그것이 누구의 고동인지는 분명치 않았다. 갑작스런 포옹에 플랑의 귓볼은 붉어졌다.
한편 벌컥 문을 연 누군가는 단순히 사람을 찾고있던건지 안으로 들어와보지도 않고 두리번거리다 도로 문을 닫았다.

"휴... 땡땡이 치던거 들킬뻔했네."

메이드장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고, 플랑도 따뜻한 포옹에서 풀려났다.

"앗, 플랑 아가씨, 괜찮으세요?"

플랑의 뺨과 귓바퀴는 붉게 상기되어있었고, 코로는 당황해서 제대로 쉬지 못했던 숨을 이제서야 거칠게 쉬고있었다.
플랑이 숨을 가다듬고 대답했다.

"응, 괜찮아. 갑작스러워서 그냥..."

메이드장은 플랑을 지긋이 보다가 따뜻한 미소를 짓고는 금발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플랑 아가씨. 플랑 아가씨는 아무것도 안하지 않았아요.
저는 평소에 이렇게 땡땡이 치지 않아요. 일이 많건 적건, 항상 일만 했어요.
오늘 일을 다 하면 내일 일을 하고, 내일 일을 다 하면 모레일을 하고, 그런 식으로...
말하자면, 숨돌리는 방법을 몰랐던 거죠.
저를 제외한 사용인들은 모두 관리해야 할 대상이고, 또 주인님과 아가씨는 모셔야 할 분들일 뿐이니까.
터놓고 대화할 사람이 없었거든요. 솔직히 말하면... 조금 외로웠어요.

하지만 플랑 아가씨는 달라요. 플랑 아가씨는 업무와는 무관한 단 한분이세요.
저에게 일을 시키시지도, 제가 일을 시키지도, 혹은 여기서 어떤 일을 하고 계시지도 않아요.
그렇네요, 어쩌면 그렇기에 아무것도 안하는 걸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저는 플랑 아가씨 앞에서만, 또 곁에서만 숨을 돌릴 수가 있어요.
플랑 아가씨가 없었더라면 이렇게 땡땡이치며 주인님 간식 빼먹는 일은 아마 절대로 안했을거에요.
플랑 아가씨. 플랑 아가씨네가 와서 여러 좋은 일이 생겼지만,
그래도 제게 생긴 가장 좋은 일은, 역시 플랑 아가씨가 오신 것 그 자체에요."

메이드장을 그렇게 말하며 플랑을 내려다봤다.
그 문장의 모든 마침표, 그 목소리의 울림, 그 따뜻한 미소에는 결코 부정할 수 없는 상냥함이 선명히 새겨져있었다.
플랑은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고 땅바닥만 쳐다보고 있었다.
고개를 들 생각을 못했던 건지, 얼굴을 보여주기 창피했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황금빛깔이 조금 섞인 홍조로 가득한 플랑의 만면에는, 그녀가 한번도 지어본 적 없는 진한 미소가 가득했다.
분명, 그 감정 또한 한번도 느껴본 적 없는 것이리라.

그런 플랑의 미소를, 또 마음을 메이드장은 아는지 모르는지
한번더 플랑의 금빛 머리칼을 쓰다듬고 일어나며 말했다.

"그럼, 전 다시 일하러 가볼게요.
아 그리고 그 쿠키는 전부 먹어도 괜찮아요."

그렇게 메이드장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부엌에 홀로 남은 플랑은, 아궁이의 열기가 너무 강하다고 느꼈다.





#
이 작은 밀회가 있고 또 몇주 후,
겨울하늘이 더 깊어지고 서리가 맺히지 않은 창문을 찾을 수 없을 때 즈음, 저택의 아가씨, 유키가 완쾌했다.
혹시나 전염병이 아닌가 걱정했던 주인과 메이드장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지만,
이번엔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유키를 잡으러 허둥지둥 돌아다녀야 했다.
사용인들이 아무도 없는 방에서 허탕을 치는 한편, 레밀리아가 의외의 장소에서 유키를 발견한다.



저택의 2층은 정면에서 봤을 때 오른쪽 복도 끝에는 대도서관으로 통하는 문과 주인의 침실방이 있었고,
왼쪽 끝에는 큼지막한 거울 하나와 그 옆에 스칼렛 자매의 2인실이 있었다.
그렇기에 레밀리아가 자기 방으로 들어가려 할 때쯤이면 자연스레 저 멀리서부터 거울을 보게됐는데,
그 거울에 비치는 것은 프릴로 가득한 고딕풍 의복과, 그 너머에 보이는 도서관의 문 뿐이었다.
복도가 길었기에 2층의 오른편, 즉 주인의 활동영역에선 그 거울에 뚜렷히 보이지 않지만,
어쨌거나 거울에 비치지 않는 존재라는 것은 그리 유쾌하지 받아들여지지 않는 법이기 때문에
레밀리아는 거울 앞에 설 때마다 자기도 모르게 긴장하고 조금 과하게 의식하곤 했다.
이 저택에 거울이 많이 없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그 날도, 레밀리아는 주인과의 토의를 마치고 먼저 방으로 돌아가던 중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방 문의 문고리를 막 돌리려는 찰나, 고소한 밀가루냄새가 났다.
주방도 식당도 1층에 있고, 플랑도 요즘은 어딜 돌아다니는지 방에 없기 때문에,
자신의 방 문 앞에서 나는 희미한 음식 냄새는 레밀리아가 이상하게 생각하기에 충분했다.
방 안에서 나는게 아니라면, 복도에서 나는 것일 테고, 복도에 있는 거라곤 서리낀 채 닫힌 창문들과 거울이 전부였다.

레밀리아는 거울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2미터는 족히 넘어보이는 거울은,
사면의 테두리가 매끈한 나무 틀로 둘러싸져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왼쪽 면의 나무 틀을 쓰다듬는데, 아랫부분에 뭔가 위화감이 느껴졌다.
자세히 보니 금에 가까운 틈이 있었다. 레밀리아는 힘을 줘서 오른쪽으로 밀어봤다.

드르륵

거울의 하단부분은 소리를 내며 옆으로 밀려졌다.
딱 레밀리아의 허리춤보다 조금 아래의 높이부분만 따로 이루어져있던 것이다.
그리고 반으로 잘린 거울의 뒷편에는, 텅 빈 공간이 있었다.
아니 완전히 텅 빈 공간은 아니고, 등불을 옆에 둔 채 쿠키를 먹다가 멈춘 유키 아가씨가 있었다.

레밀리아가 거의 기다시피 허리를 숙여 비밀공간 안으로 들어갔다.
유키는 조금 당황하는 듯 싶더니 먹던 쿠키를 내려놓고 말했다.

"문 닫아야 돼요. 안쪽에 손잡이 있어요."

안으로 들어와 허리를 핀 레밀리아가 뒤를 돌아보니 과연 작은 손잡이가 거울 뒷면에 붙어있었다.

드르륵, 탁

레밀리아가 거울을 닫자 안은 방금보다 훨씬 어두워졌다.
하지만 유키의 등불 덕에 사물을 식별하는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레밀리아는 아무렇게나 놓여져있는 상자 중 하나를 골라 걸터앉았다.
그리고 멀뚱히 자신을 쳐다보는 유키에게 말을 걸었다.
자신이 앉은 상자에 긴머리를 늘어트린 채 편하게 앉아있는 유키는 예상이라도 했는지, 놀란 눈치도 아니었다.

"며칠간 이따금 안보인다 싶더니, 여기에 숨어있었군요."

"반말해도 괜찮아요. 제가 연하잖아요?"

"하지만..."

"해주셨으면 해요."

유키가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얘기했다.

"그럼, 그래."

레밀리아가 어쩔수 없다는 듯이 웃으며 대답했다.

"이런 곳에 비밀공간이 있다는 건 아무도 모르니?"

"사실 할아버님도 이 저택을 사신 거라 전부 알지는 못하세요.
여기는 틈이 아주 아래쪽에 있어서, 저나 플랑 짱이나 레미 언니처럼 키가 작은 사람이 아니면 발견할 수 없어요.
그래서 실은, 플랑이 먼저 발견할거라고 생각했는데 살짝 빗나갔네요 헤헤."

"그렇네. 후후."

"혹시... 제가 여기 있는거 할아버님께 이를거에요?"

유키가 애교와 걱정이 반쯤 섞인 얼굴로 레밀리아를 쳐다봤다.
레밀리아가 여유로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글쎄, 그건 생각해봐야겠지?
그런데 왜 여기에 숨어있는거야?"

"그냥...  공부하기 싫어서요. 지루하고 갑갑하고..."

"갑갑한걸로는 여기가 더 심한거 같지만...
그래도 열심히 공부해야 할아버지의 뒤를 잇지."

레밀리아가 온화하게 얘기하자 유키가 고개를 저었다.

"저는 할아버지처럼 되기 싫어요.
물론 할아버지는 정말 좋지만, 하시는 일은 전부 지루해요.
매일 종이에 뭔가 쓰기만 하고, 앉아만 있고..."

"하하하, 틀린 말도 아니네.
그럼 우리 아가씨는 뭐가 되고 싶은데?"

"메이드!"

"메이드?"

"네! 메이드!"

유키가 등불보다도 밝은 얼굴로 말했다.
자신이 비밀공간에 있다는 것도 잊은채 큰소리로.

"왜 메이드가 되고 싶은 건데?"

"그냥 좋잖아요!
옷도 프릴로 가득해서 팔랑거리고 이쁘고. 솔선수범해서 일하는 것도 멋지고.
할아버지가 뭘 부탁하든 메이드장 언니가 바로바로 해내는 거 조금 동경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아가씨는 아가씨잖아.
아가씨는 싫어?"

"싫은건 아니지만... 지루해요.
항상 한 곳에 앉아서 이거 시키고 저거 시키고.
어쩌면 이 저택에 대해서도, 할아버님보다 메이드장 언니가 더 잘 알걸요?"

"헤겔이구나..."

"네?"

"아, 아냐. ...그래서 플랑이랑도 자주 아가씨와 메이드 놀이를 한거야?"

"네... 근데 솔직히 말하면, (플랑 짱은 아가씨에 재능이 없는거 같아요.)"

아무도 없는 비밀기지임에도, 유키는 그렇게 작게 속삭였다.
레밀리아도 작게 웃으며 답했다.

"확실히 그렇네. 플랑은 나와 달리 남을 부리는 데에는 소질이 없는 편이지.
...그럼, 꿈은 메이드인거야?"

"네......
하지만 그럴 일은 없겠죠. 저는 할아버지의 유일한 가족이라 뒤를 이어야 하니까요...
제가 태어나기 전부터 정해진 거래요..."

방금까지도 기운 넘치던 유키가 풀죽은 채 대답했다.
레밀리아는, 뭔가 생각난듯 친근한 미소를 지으며 유키에게 한가지 제안을 했다.

"유키."

"네?"

"사실 이건 비밀인데...
언니는 운명을 조종하는 능력이 있어"

레밀리아는 마치 산타클로스에 대해 얘기하듯 얘기했다.

"언니가 명한다면 무엇의 운명이든 결정지을 수 있지.
그러니까 이건 어떨까?
유키가 정말로, 정-말로 원한다면,
유키에게 메이드가 되는 운명을 내려줄게.
어때?"

"정말요?"

유키가 반색을 하며 물었다.

"물론. 하지만 효력이 있으려면 이 레미 언니를 마음 깊이 믿어야 해."

"네! 믿어요!
부디, 부탁해요!"

"그럼 좋아."

레밀리아는 그렇게 말하며 유키의 머리 위에 손을 올렸다.
그러자 방금까지 방방 뛰던 유키는 순한 양 처럼 가만히 고개를 숙였다.

레밀리아가 뭐라 알아먹을 수 없는 말을 중얼 거렸고,
유키는 자기도 모른 채 심각한 표정이 되어 숨조차 멈췄다.

그러기를 2분 남짓, 레밀리아가 손을 풀며 유키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이제 됐어.
유키의 운명은 새로 써졌어."

유키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인자한 표정의 레밀리아가 유키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유키가 레밀리아를 껴안으며 외쳤다.

"레미 언니! 좋아해요!"

너무 강하게 달려든 바람에 레미가 거의 뒤로 넘어갈 뻔 했지만, 겨우 중심을 잡았다.



유키는 아직 어린 아가씨였다.
레미가 한 행동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것이 허구의 장난일 수도, 가슴따뜻한 위로일 수도, 혹은 파렴치한 사기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유키는 조금도 하지 못했다.


#
그로부터 며칠 후, 아직 여명이 채 밝아오기 전에. 레밀리아는 방문을 나섰다.
살금살금, 주인의 침실방 앞을 지나 대도서관으로 통하는 문을 열었다.
아직 새벽인데도 불구하고 도서관 내부는 수십개의 등으로 빛이 가득했다.
도서관 한 쪽 구석엔 주인의 부탁으로 2주 전에 입주한 파츄리가 책을 읽고 있었다.
일찍 일어난 걸까 밤을 샌걸까, 어느쪽이던, 상관없었다. 레밀리아가 파츄리 쪽으로 다가갔다.
파츄리가 레밀리아를 올려다보자, 레밀리아가 말했다.

"파츄리 씨 일찍 일어나셨네요. 부지런히도 공-"

"아무도 없어."

파츄리가 무심하게 얘기하곤 다시 책을 들여다봤다.
레밀리아도 목소리를 편하게 푼 채로 짧게 물었다.

"약은?"

"밑에.
...오늘?"

"그래. 오늘."

레밀리아가 그렇게 말하자, 파츄리는 평소보다도 더 진지한 얼굴로 책을 덮었다.
그리고 도서관 내부의 계단을 통해 1층으로 내려갔다.

레밀리아는 2층 난간에 팔을 걸치고, 도서관 내부를 둘러봤다. 이제 시작이었다.



그 날 아침, 주인은 크게 기뻐하며 환호성을 질렀다.
너무 크게 소리지른 나머지 비명이라 생각한 사용인 여럿이 달려올 정도였다.
그러나 분명히 비명은 아니었다. 함께 있던 메이드장도 아주 진한 안도의 미소를 짓고있었다.
주인이 레밀리아와 파츄리에게 고개 숙이며 말했다.

"정말로,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두 분에겐 갚을 수 없는 은혜를 지었습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그렇게 말하는 주인 앞, 책상 위에는 방금 레밀리아와 파츄리가 가져온 초록색 물약,
그러니까 1년 전에 만들어진 치료제가 다소곳이 눕혀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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