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부터 잘못 되었을까.


빚이 늘어나기 시작할 때부터 였을까. 누드 화보 때부터 였을까. 도박장을 운영하기 시작할 때부터 였을까. \'더 지니어스\' 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할 때부터 였을까. \'룰 브레이커\' 에서 친목질을 할 때부터 였을까. 그도 아니면...

아니다. 이것은 그보다 더 오래 전.

오래 전부터 잘못되어 있었다.


탕!



단숨에 소주 한잔을 들이킨 이상민이 거칠게 소주잔을 탁자 위에 꼬라박았다. 여느 때라면 탈락자를 위로하기에 여념이 없었을 출연진들도, 오늘은 그저 말없이 그를 바라만 볼 뿐이었다.

이상민은 책상 위에 놓인 연어회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오늘따라 성규의 요망한 말투가 그리웠다. 임요환의 가슴에서 번쩍거리던 \'0\' 이라는 숫자가 그리웠다.

그러나

그들은 이제 더이상 이 곳에 없었다.


"사, 상민이형..."


이상민의 바로 옆 자리에 앉아있던 홍진호가 조심스럽게 회 한점을 내밀었다. 이상민은 굶주린 사자처럼 회를 거칠게 물어뜯었다.


"진호야, 나는... 내가 잘못된거니? 잘못이 있다면 내가 사람을 너무 믿은 잘못이고, 근데 사람을 믿은 건 잘못이 아니잖아."

"혀, 형. 화 푸, 풀어요. 세상은 지, 지금보다 더 험한게 마, 마, 많아요."


이상민은 홍진호의 위로에 조금이나마 마음이 풀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래. 한 잔에 모두 털어버리자. 내일이면 또다시 빚쟁이들과 드잡이질을 해야겠지만, 오늘만큼은 싹 털어버리자.


이상민은 말없이 술을 마시고, 회를 집어먹기를 반복했다. 그러나 이상민의 내면에 들끓는 화는 도무지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상민은 고개를 들어 김경훈이 앉아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경훈아, 너... 하나만 묻자."

"네?"

"너 혹시 무슨 모종의 거래가 있었니? 아니면 너 만취였니? 도대체 거기서 왜..."


이상민은 붉어진 얼굴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다시 한번, 사람들의 이목이 이상민에게 쏠렸다.


"... 왜 모두 불어버린거니?"

"저는 그냥 형을 살리려고..."

"아니야, 아니야. 넌 널 위해 등졌지. 어! 너 이새끼!"


이상민은 대뜸 술잔을 들어 김경훈의 머리에 내리꽂았다. 김경훈의 머리에서 피 한줄기가 주륵 흘러내렸다.


"너 이거 잘라버린다!"

"상민이형, 진정하세요!"

"경훈아, 경찰 부를까?"


놀란 사람들이 이상민과 김경훈의 사이를 가로막았다. 하지만 여전히 이상민은 차마 입에 담을수도 없는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물건들을 집어던졌다. 결국 술자리에서 끌려나간 이상민은 부축해주는 이들을 내팽겨치고, 도로 한구석에 털썩 주저앉아버렸다.

이상민은 허탈한 표정으로 달을 바라보았다.


세 번이었다.


처음 김경훈이 모든 것을 말한 순간. 이준석에게 볶음밥 2~3인을 말한 순간. 그리고 김경훈의 블러핑에 속아넘어간 것까지.

이상민은 조금이나마 홍진호의 기분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조금이나마 더 홍진호와 가까워지는 것을 느꼈다.


자리를 털고 일어난 이상민의 뒤로, 오랜 친구의 발목에서 빛나는 그것과 같이 \'무한리필 횟집\' 간판이 화려하게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