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남산 도큐멘타 보기 전에 유령산책 참가했는데, 어제 완전 봄날씨더라고.

날도 좋고 유령산책도 재밌었어. 저번에 누가 유령산책 글 올리면서 관객한테 뭐 시키는거 아니냐고 걱정했던 횽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런거 전혀 없었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유령산책 하는 관객들이 중요한 장면의 일부가 되는 것들이 있었어. 이건 스포니까 얘기 안할게. 아무튼 그런거 걱정 전혀 안 해도 될 듯.

유령산책은 공연 보러 가는 횽들은 가능하면 꼭 참여해보길 바래. 공연을 바라보는 관점이 유령산책을 하지 않은 사람들과는 일단 좀 달라져. 공연 자체가 서사가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남산과 남산을 둘러싼 일대의 사건들에 대해서 그리고 '연극'이라는 것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는데, 그것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단서들이 명확하지는 않아. 하지만 이야기를 따라가는데 전혀 무리는 없어. 그런데 유령산책을 공연 보기 전에 하게 되면, 이 이야기들의 틈을 스스로 메울 수 있게 돼. 유령산책 가이드DHC가 투어를 하면서 들려주는 이야기들이 자연스럽게 공연과 연결되어 있거든. 이 이야기를 체화시키고 극장에 들어가는 유령산책 관람객들은 자연스럽게 공연을 보다 더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게 될 것 같아. 아무래도, 그런 '적극'의 의미가 아니었을까 싶어.

공연 자체는, 무척 좋았어.

남산예술센터는 공연 보러 자주 갔었지만, 남산에 케이블카나 남산타워같은 장소들 외에는 남산이라는 공간에 대한 인식이 별로 없었어. 특히 나한텐 그냥 극장이 있는 곳으로만 인식되는 곳이야. 그런데 공연을 통해 이런것들을 바라보게 돼.

남산예술센터의 역사
남산예술센터의 연극
남산예술센터를 둘러싼 일대의 역사
남산예술센터를 둘라싼 일대에서 일어난 연극보다 더 연극같은 사건
시대의 암울
시대의 암울로 이뤄진 연극적 사건
그 중심의 인물
중심의 인물과 연극을 둘러싼 정치적인 일들
극장 안과 극장 밖이 절대로 분리될 수 없는 것들

특히, 극장 안에서 일어났던 사건들(연극을 하고 싶으나, 연극을 할 수 없는)과 연극을 위해 일어난 일(어쩔 수 없거나 혹은 의도적이었던 정치적인) 그리고 정말 끔찍했던 역사의 한 축을 이루는 고문이나 조작같은(연극보다 더 연극적인) 사건들 말이야. 이런 것들이 잘 버무려져 무대 위에 올려져.

이런 것들을 이루는 방식이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이 이야기에 흡입되는 것들이 좋았어. 무엇보다, 이걸 하기 위해 배우나 연출자가 얼마나 공부를 많이 했을지 알겠더라. 공연 보고 나와서 프로그램북 보고 알게 된거지만, 이 공연을 올리기 위해 정말 공부를 많이 했구나를 알게 됐어.

그리고 결과적으로는, 왜 부제가 '연극의 연습'인지도 알게 됐어. 연극을 연습하는 삶이라는 게, 결국은 현실이라는 이야기? 극장 밖과 극장 안의 이야기들이 사실은 명확하게 분리될 수 없는 것처럼, 연극의 연습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것들. 그래서 자꾸만 '연극이 뭐지', '연극이란' 같은 원론적인 질문으로 귀결되고 있는 느낌이었어.

아무튼, 나는 이 공연이 좋더라.
연극만 주구장창 보러 다니는 나같은 사람한테는, 좀 진지하고 그러면서도 유쾌하고, 그리고 생각하게끔하는 것들이 많았어.

극장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는 점도 굉장히 좋았거든. 공연을 보러 갈 때, 극을 보러 갔었는데, 이 공연에서는 극장을 만나고 온 느낌이었달까.


좀 아쉬운건, 꼭 이런 공연에는 관객들이 많이 없더라고. 대중적인 연극이 아니니까 당연히 그런 영향을 받긴 하겠지만, 이 업계에 있는 사람들이나 혹은 나같은 연극 애호가들한테는 굉장히 흥미롭고 재미있는 공연일거야. 그래서 이렇게 긴 영업글을 남겨.

횽들도 꼭 보러 가길.
극이 아니라, 극장을 바라보게 되는 신선한 경험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