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펜턴스로 넘어오면서 depth 스테이지에선 새로운 길이 열렸는데

아이작은 이곳으로 들어가려면 무려 '폴라로이드'를 대가로 지불해야함

폴라로이드가 무엇이냐?

자기 상자에 넣을 정도로 아끼는 가족의 추억임

사이가 완전히 틀어진 엄마와 아빠가 웃고 있는 모습이 담겨 있고

그런 시절도 있었다~라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유일한 증거물

부모가 다시 결합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아이작으로서는 둘도 없는 보물인 셈인데

그 보물을 한낱 스테이지를 뚫겠다고 던져주는 것

새로운 스테이지에 들어간 아이작은 여느 때처럼 보스를 쳐죽이기로 하는데

오잉??

보스는 없고 웬 아이템이 놓여 있음

이름은 '아빠의 노트'

비스트 루트로 가는 핵심 아이템임

이 아이템을 먹는 순간부터 아이작은 역행 스테이지에 돌입함

역행 스테이지는 특이하게 보스 방에서부터 시작해 시작 방으로 가는 구조로 되어 있는데

각 스테이지의 시작 지점에는 이렇게 빛줄기가 있음

이 빛줄기로 들어가면 아이작은 위로 승천하는 연출과 함께 이전 스테이지로 돌입하게 됨

기존 아이작에서는 전혀 볼 수 없었던, 여러모로 특이한 진행 방식인데

우리는 여기서 의문 하나를 떠올릴 수 있음

왜 하필 이런 방식이지?

아이작의 번제는 전통적으로 게임이 진행될수록 '아래로 내려가는' 구조임

아래로 내려갈수록 아이작의 망상 또한 점점 심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음

Basement, Cave, 그리고 Depth에선 그나마 현실의 모습을 취하지만

엄마를 죽인 뒤 나오는 Womb나 Cathedral, Sheol은 완전한 판타지로 현실과 유리되어 있음

하지만 비스트 루트는 다름

아래로 내려가는 대신 '위로 올라간다'는 진행방식을 택한 것임

<아이작의 번제> 시리즈에서 '아래'가 심화된 망상과 판타지를 뜻한다면

'위'는 그것과 반대인 '현실'을 상징함

즉 비스트 루트로 가는 과정은

그 자체가 아이작이 망상을 그만두고 현실을 직시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에 대한 메타포임

상자 속에 들어가는 것이 아닌, 상자 밖으로 나가기로 결심했다는 뜻

현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굉장히 힘듦

역행하는 동안 아이작은 기존보다 훨씬 강해진 적들을 맞닥뜨리고, 환청 또한 계속해서 들림

하지만 그 환청은 기존에 듣던 종교적 속삭임이 아닌, 현실의 것들임

아이작은 현실에서 목격했던 부모의 싸움을 되새기며 위로 올라감

최초의 스테이지에서 빛줄기를 타고 올라가면 최종 스테이지인 Home이 나옴

아이작의 모든 스테이지를 통틀어서 가장 이질적인 공간인데

바로 망상도, 판타지도 없는 현실의 공간이기 때문임

자신이 한때 들어가서 숨곤 했던 상자(좌측 하단)는 너무 작기까지 함

하지만 엄마의 방에서 잠드는 순간 아이작은 다시 망상에 빠짐

애증이 뒤섞인 엄마는 아이작에게 있어 존재 자체가 트라우마이기 때문

이곳에서 아이작은 자신의 트라우마들과 싸우게 되는데

첫째는 바로 '종교'

아이작의 엄마를 미치게 만든 원흉인 TV 속 종교의 '교리'임

혹은 몇몇 해석처럼 신(I am god)일지도 모르고

첫 번째 트라우마를 무찌르게 되면 드디어 시리즈의 최종 전투에 돌입하게 되는데

바로 '묵시록의 짐승'

엄마의 옷을 걸친 이 보스는 아이작이 엄마에게 가진 트라우마 그 자체를 나타내는 보스임

종교적 관점을 떼놓고 보자면, 아이작이 짐승을 상대하는 행위는

트라우마를 이겨내려는 아이작의 필사적인 노력을 상징함

최후의 망상이자 만악의 근원인 비스트(트라우마)를 무찌르는 데에 성공하면

해석의 여지가 많은 마지막 엔딩이 나오게 되는데

트라우마를 이겨낸 아이작은 한층 성숙해졌기 때문

승천하는 동안 아이작은 육체(???)와 영혼(The lost)가 빠져나감

공포심과 수치, 걱정 또한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함

가족을 향한 마지막 미련마저 떨쳐냄

이는 처음에 이야기했던 '가족 사진을 대가로 바치는' 행위와도 일맥상통함

마지막에 이르러서 아이작은 가족을 향한 애착과 증오, 미련을 모두 버리게 되었다는 의미임

그렇다면 아이작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죽음을 상징함...

인 줄 알았는데?

나레이터가 죽은 줄 알았던 아이작에게 물어봄

"이야기를 다르게 바꿔보는 것은 어떻겠냐"고

이를 들은 아이작은 알겠다고 대답하며

나레이터는 아이작과 그의 부모님'들'로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함...

처음과 이어지면서 굉장히 완성도 있는 결말임

이에 둘러싼 해석도 굉장히 많은 것을 보면 잘 만든 결말이기도 함

슬슬 쓰는 것도 귀찮아지니 대충 요약하자면

1. 망상 속에서 엄마를 죽인 아이작은 두 가지 길로 들어설 수 있음

첫째는 더더욱 판타지 속으로 빠져든다(womb 루트)

둘째는 아프지만 늦기 전에 현실을 직시한다(home 루트)

2. 현실을 직시한 아이작은 자신을 괴롭히는 트라우마(도그마, 비스트)를 상대함

이는 공포에 매몰되지 않으려는 어린아이의 정신적 투쟁을 의미함

3. 비스트를 무찌른 아이작은 승천함

이는 죽음을 의미

트라우마를 이겨내고 성장한 아이작에게 '망상 속의 자신'은 더는 필요치 않다는 뜻

게임 제작자인 에드워드 맥밀런은 질답에서 아이작은 죽었다고 못을 박음

이를 보고 많은 사람들은 "아이작은 신의 품에 안긴 채로 주마등을 보며 승천했다"고 해석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름

개인적으로 womb 루트와 home 루트는 각각 두 가지 분기로 나뉜 평행세계라고 생각하는데

상자 속에서 망상을 반복하는 아이작은 현실에서 죽게 되고(애프터버스+ 엔딩)

현실과 맞선 리펜턴스의 아이작은 망상 속의 자신을 떨쳐내게 됨

즉, 트라우마에 휘둘리는 과거의 나약한 자신을 죽였다는 소리(좋은 의미로)

이렇게 본다면 제작자 말대로 아이작은 죽은 게 맞음

그것이 부정적인 방향인지, 긍정적인 방향인지에 대한 차이점이 있을 뿐....

여기서 몇 가지 궁금증이 들 수 있는데

Q 그렇다면 마지막 엔딩에서 아이작이 언급하는 'daddy'는 대체 누구인가?

죽음 뒤 어린 양을 맞이한 신(Father)을 나타낸다는 것이 정설이지만

무작정 신이라고 하기엔 의문점이 많음

종교계에서 '하나님 나의 아버지'라고 말하듯 아버지와 신이 연관된 것은 맞지만

영미권에서 'daddy'는 신을 의미하지 않기 때문

물론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아이가 신에게 'daddy'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천국과 천사마저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아이가 과연 '신'의 품에 안겨 안식을 맞이할 수 있는가? 라는 의문이 듦

그렇다면 정말로 아이작이 마지막에 언급한 대디는 누구일까?

나는 단어 그대로 '아빠'라고 생각함

조금 더 정확히는, '아이작의 새로운 아빠'

영미권에서 아동학대는 굉장히 민감한 이슈임

발각되기만 하면 부모는 자식을 양육할 권리를 잃게 됨

노력하고  자식을 되찾는 부모도 있지만, 다른 부모에게 입양되는 경우도 적지 않음

아이작의 경우는 후자라고 생각함

양부모에게 입양된 아이작은 학대의 후유증으로 자기파괴적인 망상을 일삼게 되는데

아이작의 양아버지(나레이터)는 이를 이용해 아이작과의 관계를 진전시키는 한편, 아이작이 가진 트라우마를 치유하고자 마음먹음

그것이 바로 이 '아이작의 번제'라는 놀이

즉 아이작의 번제는 아동 학대로 고통받은 아이가 트라우마를 이겨내는 여정을 담은 게임이고

리펜턴스의 최종 엔딩에서 아이작은 결국 자신의 트라우마인 종교와 가족, 특히 (구)엄마를 이겨냄

굉장히 희망찬 해피엔딩이다~ 라고 말할 수 있겠음

물론 개인적인 해석이니 내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면 네 말이 맞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