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 콩칠팔새삼륙 이야기야.


예정과 달리 너무 바빠진 연말. 시간이 안 되어 보지 못한 프리뷰 기간동안 쏟아지던 후기를 거의 다 읽었어. 분노의 불호후기들을 보며 어쩐지 멍한 기분이 들었고 담담하게 좌절할 수도 있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끊임없이 수정하는 것 같은 반응들에 불호후기도 호후기도 찾아보기를 멈추지 않았어. 그리고 가끔 후기에 스며있는 애정들이 저리게 다가왔고 그래서 오히려 첫걸음을 떼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어햎 낮공을 보았고, 시놉 정도만 알던 극이 너무나도 좋아 도저히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어. 그래서 4년만에 콩칠팔새삼륙, 내 애정극을 보러 갔다. 공연 시작 20분 전까지도 망설이고 망설이다 발걸음했는데 막상 들어가 앉으니 초연을 했던 충무블루보다 훨씬 넓은 공연장에 들어찬 무대가 마음을 들뜨게 했어.

내가 객석에 앉은 순간 정말 콩칠팔이 돌아왔구나 하는 감회가 들었던 것 같아.

그리고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초연과는 전혀 다르기도 하고 그대로이기도 했던 공연.

서툰 면이 있던 내 애정극이 다시 새롭게 서툴게 돌아온 것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지만, 완벽하지 않아도 마음이 가는 게 애정인가봐.

이야기 흐름이 많이 달라졌지만 개인적으로는 속편을 보는 기분이었어. 초연 때 이야기 틈새에 감춰둔 이야기들을 보여주고 초연 때 보여준 몇 이야기는 뒤로 돌려두고. 옥임이와 용주가 사귀기 시작하는 감정선은 의외였어. 초연 때는 이미 사귀는 채로 용주가 시집간 뒤의 이야기로 진행돼서 이런 알콩달콩한 연애이야기는 못봤었는데.

고운 전통한복을 차려입고 쪽을 진 용주의 팔짱을 끼고 멋들어진 양장 차림으로 같이 둥지를 찾아 날아가자던 옥임. 구두를 까딱거리며 애처럼 투정부리던 미소옥임. 내가 기억하던 초연의 기차여행 장면이야.

그런데 이번 재연에서는 둘의 학생 때의 모습이라니! 교복을 입은 둘의 모습을 볼 줄은 몰라서 많이 놀랐어. 옥임이와 용주가 알콩달콩한 모습을 좀더 볼 수 있는 건 참 좋았어. 용주가 문학소녀인 것도.

밖으로 나돌지 못하게 머리를 죄 쥐어뜯기던 용주가 극단 홍보를 하며 돌아다니던 게 아니라 거울속에 난 넘버를 부르고 빛으로 걸어나와 살롱 안에서 당당히 무대에 서는 부분도 그렇고.

어느 부분을 비추느냐에 따라 이야기가 많이 달라지는구나 싶었어.

동선이나 장면연출 이야기흐름 감정선 정말 까려면 깔 게 넘치는 데도 왜 입 벌리고 보고만 있었는지 도통 모르겠어. 홍익덕은 진짜 아닌데ㅋㅋ
그리고 공연보면서는 나지 않던 눈물이 왜 커튼콜 때 빵하고 터져버렸는지도 모르겠다.

2년 쯤 전인가 정확하지는 않은데.. 콩칠팔 주연인 미소의정배우가 아트원3관에 공연을 같이 보러왔던 기억이 나. 우연히 나도 같은 공연이었고 둘이 여전히 같이 공연을 보러다닌다는 사실이 날 어쩐지 굉장히 설레게 만들었어. 혹시 콩칠팔 다시 오는 거 아냐?하고 설렜는데 그 기억마저도 흐려질 무렵 진짜 다시 올 줄이야.

특히 의정배우. 지킬루시를 짱짱하게 해내던 의정배우 목이 갔던 시간들을 마음 졸이며 지켜봤는데 오늘 보면서 너무 기뻤어. 예전만큼은 아니어도 거의 그 정도로 돌아온 목이 짱짱하게 아트원을 넘치도록 채우더라.

돌아오느라 수고했어.
어디가 그렇게 애달픈지 모르겠는 애정극인데 여전히 넘버도 좋고 결국 난 이걸 좋아할 운명인가보다. 그러니 혹평 새겨듣고 오래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가끔 내 기억에서만 살아있는 것 같은 애정작들을 떠올리면 너무 쓸쓸한데 이렇게 다시 만나는 게 어디냐 싶기도 하고.

그리고 좋아했던 초연의 모습은 고이 유리병에 담아 마음 한켠에 담아두어야 할 것 같다. 그래도 여전히 온기가 느껴져. 재연의 전혀 달라진 장면에서 흘러나오는 기차여행 멜로디에 감동해버릴 정도니까ㅋㅋㅋ

오늘 다시 만난 게 꼭 크리스마스의 선물같았다.

바발들 다들 메리크리스마스ㅇ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