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도 지금까지 우리가 개연적으로 파악해온 홍경래가 난을 일으킨 이유는

백성들의 민생이 도탄에 빠졌기 때문이야.

오늘 라온이한테도 말했지.

네가 조금이라도 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어주고 싶어서 그랬노라고.

그럼 민생은 왜 도탄에 빠졌나.

홍경래가 세자에게 설법했듯 하늘이 내린 왕이 상하관계에 따라 백성을 통치했기 때문이었나?

아니. 우리가 지금까지 파악해온 민생이 도탄에 빠진 이유는

김헌 일당으로 대표되는 신권의 횡포로

'왕권이 극도로 약화되어'

왕은 외척 등쌀에 밀려 제대로 백성에게 신경을 쓰지 못하고, 외척은 제 주머니 채우느라 백성을 착취했기 때문이야.

즉, 국왕중심체제 하에서 신권에 의해 왕권이 약화된 게 이 모든 비극의 시작이야.

이게 무슨 말이냐면, 왕권이 다시 전횡을 일삼던 신권을 제압하고 정상적으로 백성의 삶을 보살필 수 있다면,

즉 국왕중심체제가 원래대로 바로설 수 있다면 이 비극적인 상황이 정상화될 수 있다는 말이고.

옥중에서 홍경래는 세자에게 하늘이 내린 왕이 백성을 통치하는 국왕중심체제에 문제가 있다고 말했지만

그 말은 틀린 말이었어.

그가 난을 일으킬 수밖에 없도록 세상을 비틀려 놓은 원인은 왕이 아니라 그 왕을 억압하는 제3의 세력이었고.

홍경래는 하늘이 내린 왕과 그 왕에 의한 체제를 반대하는 게 아니라

왕에 의한 체제가 바로 설 것을 원했어야 했어.

결국 홍경래의 사상과 그 문제 상황에 대한 원인 파악 자체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어 있었다는 거야.

그런데 작진피셜 홍경래의 생각과 세자가 꿈꾸는 세상이 다르지 않다지?

이게 정말 문제인 게

정말 단순하게 생각해서 애초에 사상의 전제부터가 잘못된 원인 파악에 근거해 있던, 홍경래의 잘못된 생각이

이 극의 주인공 세자의 생각과 일치한다는 거야.

즉, 그건 주인공의 생각도 잘못된 것을 향한다는 말이거든.

게다가 홍경래는 국왕중심체제를 반대하는 민주주의 논자인데.

주인공 이영이 지금까지 펼쳐온 정치행보는 철저히 국왕중심체제적인 것이었어.

이 드라마의 절대적 안타고니스트는 김헌 세력, 즉 국왕중심체제 하의 왕권을 약화시키고 신권의 전횡을 지향하는 이들이고,

여기 맞선 이 드라마에 히어로 이영은 신권의 전횡을 막고 다시 왕권을 강화시키려는 인물이었거든.

이영이 애초에 대리청정을 시작한 것도 신권에 억눌린 왕권의 반등을 위해서였고

그의 첫 정치적 행보인 진연에서는 그 잘못된 신권을 왕권 앞에 무릎 꿇렸어.

이 드라마의 정치적 갈등은 철저히 국왕중심체제를 정상화시키려는 왕권 세력과 이를 막으려는 신권 세력의 갈등이었지,

국왕중심체제의 잘못을 꼬집고 민주주의 체제 세상을 만들려는 게 아니었어.

여기서 이영의 생각이 홍경래의 생각과 일치하게 된다?

그럼 이영이 여태껏 드라마에서 펼쳐온 정치적 행보는 처음부터 다 틀린 것이 되는 거야.

오늘 옥에서 세자와 홍경래의 대화씬이 유독 충격적이었던 건,

국왕중심체제를 정상화시키고, 왕권의 강화를 위해 힘써온 그간 이영의 노력들이

하늘이 내린 왕이 아니라 백성에 의한 왕 운운하는 홍경래의 그 대사 몇 마디에 전부 붕괴되는 순간이었기 때문이야.

무려 16부를, 그가 가는 길이 철저히 옳은 길이리라 믿고 따라갔던 히어로인데.

겨우 2회를 남겨두고 그간 히어로가 걸었던 길이 틀린 길이라는 말을 들었던 거야.

차라리 이영의 생각은 옳고 홍경래의 생각은 틀렸노라고 방향이 잡혔다면 좋았을 텐데.

이영과 홍경래 생각의 일치라니.

그럼 우리의 주인공이 틀렸다는 건가?

드라마와 캐릭터의 근간이 흔들리던 순간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