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를 오가면서 포토마루 맞은 편의 우리사 진열장에 있는 그라플렉스에 눈이 가기 시작했어.

물어보고 싶었는데, 우리사 사장님이 가게를 워낙 잘 비우시는(...) 관계로 그냥 구경만 했음. 비싸겠다 하면서.

그러던 중 어느날 문득 우리사 지나가다가 사장님 계시길래 가격을 물어보니 30만원이라길래 냉큼 사서 오게 되었음.

1. 그라플렉스 센츄리 그라픽은 뭔가?

그라플렉스의 프레스 카메라는 다 비슷비슷해보이겠지만 스피드 그라픽, 페이스메이커 크라운 그라픽 등등 다양한 형태의 4X5판 라인업을 가지고 있었음. 각 라인업에는 '미니어처' 혹은 '베이비' 라인업이 있었는데, 4X5판이 아닌 2.25 x 3.25판 필름을 사용하는 모델이었어. 흔히 2x3판이라고 부르는 판형인데, 중형 롤 필름의 6x9 판형보다 약간 작은, 거의 같은 사이즈이기 때문에 편의상 120 필름백을 붙여놓고 사용하는게 일반적임. 2x3판 시트 필름 구하기도 힘들고, 비싸니까.

4x5판 대형 카메라가 아니라 6x9판 중형카메라이기 때문에 막상 보면 크기는 그리 크지 않게 느껴져.

물론 6x6판형을 사용하는 후지카 6와 비교했을 때 도대체 뭐가 작나 싶긴 함 -_-ㅋㅋ 후지카6가 35mm 카메라처럼 보이니까.

무게는 생각보다 가벼워. 플라스틱 바디거든. 플라스틱 제품이 워낙 드물던 시절의 제품이라 그런지 바디 안쪽에 보면 '마호가니트(Mahoganite)'라는 브랜드의 플라스틱 소재를 사용했다고 하는 군..... 앤틱 플라스틱 제품에 주로 쓰는 베이클라이트 계열 플라스틱의 일종이라는데, 다양한 무늬를 가지고 있어서 멋스러운 소재라는군.... 암튼 당시 기준으로는 상당히 최첨단 소재를 사용했고, 목재가 아닌 플라스틱 바디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가벼운 특징이 있어. 핸드 헬드 촬영도 불편하긴 하지만 못할 수준은 아니었지.

뒷판에는 이렇게 120 필름백이 붙어 있는데, 내가 구입한 카메라는 스크린백이 없었어.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초점을 맞추냐? 목측식이나 하겠지만 왼쪽에 보면 레인지 파인더가 있어서, 초점을 맞추는데는 큰 무리가 없음. 목측식 촬영을 위한 프레임 가이드도 있어서 확실히 기자들을 위한 카메라가 맞긴 맞구나 싶긴 해. 어차피 조리개 조이고 적당히 거리 맞춘 다음에 플래시 펑펑 터트리면서 사진을 찍었을테니, 초점 맞추기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을 거야. 다만 스크린을 구하기 전에는 무브먼트를 연습하긴 어려워.

2. 렌즈는 무엇을 쓰나?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내가 가지고 있는 센츄리 그라픽은 칼 자이즈 테사 100mm 3.5 렌즈를 사용해. 셔터는 폴딩이나 롤라이플렉스 등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는 컴퍼 제품을 사용하고 있고, 셔터 속도는 최대 500분의 1초까지 지원해주네. 아쉬운 점은 T셔터가 없다는 점. 스크린으로 초점을 맞출 때는 벌브로 셔터를 개방해놓고 맞춰야 한다는 이야기야. 환산화각으로는 43mm 정도 되는 것 같네. 일반적으로 코닥이나 Wollensak 렌즈를 사용하고, 일부 모델에서는 칼 자이즈나 슈나이더 렌즈를 사용해. 칼 자이즈는 이베이 뒤져보면 종종 나오긴 하는데 슈나이더 제노타 렌즈 장착한 모델은 잘 안보이네. 좀 더 구하기 어려운 모델로 보면 될 거야. 그라플렉스 정보를 모아놓은 graflex.org에서는 칼 자이즈와 슈나이더 렌즈에 대한 정보를 따로 소개하고 있진 않고 있어.

렌즈의 구조는 일반적인 대형 카메라 렌즈들과 유사하지 렌즈 보드에 결합해서 사용하는 구조인데, 센츄리 그라픽은 렌즈보드 규격이 너무 작아서, 쓸 수 있는 렌즈의 폭이 좁은 편이라는 점이 아쉽다고 하네. 렌즈는 80-200$ 수준에서 구할 수 있는 것이 많은데, 렌즈보드 구하기가 쉽지 않고, 렌즈 구하기도 쉽지 않아. 일단 있는 거 잘 쓰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나한텐 아직 중요한 문제는 아님.

3. 어떻게 쓰는가?

처음에 이걸 사고 헤맸던 포인트는 크게 두 가지. 첫 번째는 일단 바디를 열줄 몰랐음. 나중에 알고보니 바디 위에 우둘투둘하게 튀어나온 부분을 누르니까 열림.

두 번째는 벨로우즈를 어디까지 꺼내야 되느냐...였지... 접었다 폈다 하니까 벨로우즈를 어느 기준으로 펼쳐야하는지 몰랐고, 임의로 펼쳤다가 초점이 안맞아서 필름 두롤을 통째로 날리는 사태가 발생 했었어. 엑타 두롤이 그렇게 사라졌다... 이것 역시 나중에 알고보니까 무한대 초점 기준을 맞춰주는 인피니티 스탑이 접었다 펴지는 구조라는 것을 몰랐기 때문에 발생했던 문제. 세상에 쓸모 없는 부품은 없다!

4. 써보니 어떤가?

화끈하게 두 롤을 날리고, 지금 세 번째 롤을 촬영 중이기 때문에 뭐라 이야기하기 어려운 면이 있어. 결과물을 제대로 보지 못했으니까. 다만 초점이 맞지 않은 상태의 결과물들은 초점이 제대로 맞은 뒤의 결과물을 기대하게 만들어주었지. 판형이 크니 400 이상의 고감도에서도 부드러운 사진을 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드는데, 이런 부분들은 나중에 이런 저런 필름들 많이 물려 놓고 쓰다보면 알게 되겠지.

현실적인 방법은 삼각대+릴리즈 조합과 함께 사용하는 것. 다른 모델들은 바디에 셔터릴리즈가 달렸다고 하는데, 센츄리 그라픽은 그게 없다. 그러다보니 무거움+귀찮음이 배가 되는 문제가 있긴 해.

다만 가격대가 150$에서부터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6x9판 중형 카메라 중에서 가장 저렴한 선택지 중 하나라는 점, 무브먼트 등의 활용을 위해 4x5판 카메라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으레 가지는 추가장비+필름값의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이기도 해. 이베이에서 거래되는 녀석들은 대체로 포커싱 스크린도 갖고 있으니까.

지금까지 언급한 내용 중에서 궁금한 점이 있다면 댓글 ㄱ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