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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나의 아저씨 그 치열했던 사랑과 연민의 변증법

o o(211.201) 2018.05.20 10:00:03
조회 4143 추천 69 댓글 66




이건 어제 밤에 올렸던 글인데 다시 올려.
사실 붙여놓음 그리 긴 글도 아닌데 갤 분위기랑 잘 맞지 않는 것 같아서 지웠던 글이야.
여기를 접하다 보니 저절로 생긴 나한테 낯선 대화체 문장이 너무 길어진 것도 걸렸고.
그 동안 열정적으로 이 이야기에 빠져든 사람들이라면 이해해줄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올리고 보니 아닌 건가 내가 너무나간 건가 싶어서 그랬어.
여기서 글 올린 거 처음도 아닌데 이상하게 올리고 나서 보니까 이 글은 걸리더라.
나도 갤에서 이빨 좀 까고 자유롭게 틱틱거리는 분위기 좋아해.
근데 아닌 거에 대해서는 또 아니게들 하는 게 보여서 그게 그동안 특히 좋았었다.
이 글이 여기서 함께 생각과 감정을 나눴던 사람들에게 내가 마지막으로 줄 수 있는
나름의 작은 선물일 수 있길 바랬어.
숱한 비난과 억압 속에서도 아랑곳없이 뭉쳐서 아껴준 사람들이잖아.
그만한 가치가 있었던 것이 담겼던 작품이었고.
난 내 여력이 되는 한 그게 어떤 것인지를 밝혀보고 싶었고,
그걸 들어줄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 당신들이라고 생각했었어.
긴 글이니까 패스하고 싶은 사람은 지나쳐줘.








......



키다리 아저씨의 주인공인 주디는 작품 속에서
내 기억으론 이런 말을 해.


자신은 마치 누군가에게 간신히 허락을 받고
슬그머니 이 세상으로 기어들어온
비참한 기분으로 살아야 했는데
이제는 진짜인 세상에 속한 사람으로 느껴진다고.


그 말은 그녀가 마침내 불우한 시절과
그러한 삶을 살아야 했던 자기연민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
사회적인 자존감을 가진 인간으로서의
자기를 의식하게 되었다는 거야.


근데 여기서 자존감이란 뭘까.
그녀가 말하는 진짜 세상이란 건 뭘까.


그건 그녀가 키다리 아저씨의 도움으로 대학생이 되고
자신의 재능과 노력으로 인정을 받아 장학생이 되고,
고아원에서 멸시받고 학대받던 가엾은 소녀가
마침내 어엿한 신분의 신사숙녀들과
당당히 상대할 수 있는 지식인 숙녀가 되었음을
나타내는 말이지.


출신이 미천하고 가난하지만
머리만은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교양인으로서의 자격을 얻었다는 거야.


어느 드라마에서 어떤 속물이 이런 말을 했었어.
왜 그런 놈한테 집착해?
우리같은 사람은 돈 없고 능력 없는 건 참아도
무식한 건 못참잖아?


난 이 말이 우리의 허영심이 가진 의식수준의
어떤 마지노선을 표현했다고 생각해.


주디는 그 한계선을 지켜냈고
비록 키다리 아저씨의 도움으로 시작했지만
더 이상의 그의 지원을 거절하고 자립적인 인간이
되려고 할 때 키다리저씨의 사랑은
더 정당화되고 더 극대화되고,
결국 맺어지게 돼.


기적이 일어난 거야.
동화의 순정한 꿈이 아니라
세속의 관점과 이념의 충족을 통해.


키다리 아저씨의 정체는 이처럼 자기를 개발하고
사회에 인정을 받는 인간으로서 진입해야 하는
근대적 자아의 요구가 여성에게도 적용됨을 강변하는,
동화의 틀을 빌렸지만 동화의 순수성이 타락한
일종의 계몽적인 욕망의 산물이야.


근데 근대적이라고 하지만
현대에도 '스펙'이라는 이름으로
한층 더 집요하고 지독하게 요구되는 시스템의 이념이지.
거기엔 더 이상 근대적 자아니 어쩌구니 하는 고상한
덧칠도 필요없고 '니가 그래도 사람같이 살려면'이라는
확정식이 붙어있어.


어쨌든 옛날에는 그냥 예쁘고 착하면
마침내 왕자님을 만나서 행복하게 살면 됐지만,
언젠가부터 사회화된 인간으로서의
이른바 자아실현이란 걸 이룬 인간으로서만
최상위 부르주아지 계층의 남성과 맺어지는
기적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보다 엄격한 능력과 자질 검증을 필요로 하게 된 거야.


그건 부르주아 사회가 인간과 세계를 지배하고
모든 것을, 내면의 순결성과 감정까지도
계량화 계측화 서열화한 결과이기도 하지.


나에게는 키다리 아저씨에서
이렇게 속보이는 후반부의 로맨스보다는
초반부 고아원 시설에서 주디가 보내는 절망적인 일상의
묘사가 더 기억이 남아.


주디는 키다리저씨랑 잘 됐지만
고아원에서의 주디와 같은 아이들은 그 때도 있었고
지금도 그리고 또 앞으로도 영원히 있을 거니까.


그들은 마음의 결실도 재능의 꽃도 피우지 못하고
엄혹한 시스템의 입구에도 서 보지 못하고
스러졌었고 스러지고 있고 스러질 사람들이니까.


그들을 더 마음에 두고자 하는 나의 이런 감상이
한낱 잔인한 가학애에 불과한지 아니면 다른 어떤 것인지를
들여다 보게 해준 인물이 이 '나의 아저씨'의 지안이야.


드라마 속의 동훈은 지안이
착하다고 하고 예쁘다고 하지
또 춥게 입고 다닌다고.


그것이 동훈의 모습에 비친 지안의 모습이야.
언뜻 동화의 주인공이 가진 삼박자를 다 갖춰서
그녀를 통해 어떤 사랑의 결실이 이루어지길 기대하는 요소가 있지.
실제로 그녀에게는 그런 요소가 모두 충족되어 있어.


근데 이 드라마는 결국 박동훈의 서사였지.
그에게 일어나는 일들, 그의 주변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작품의 전체 내러티브야.


그래서 그가 느끼는 근본적인 허무감이나 절망감의 정체에
대해서


그가 가진 성격적인 면에서의 이해나 묘사가 오히려
외부적으로 풍부하게 채워진 인물군과 사건들에 의해 가려져.


박동훈은 왜 슬퍼하는 거야?
마누라가 바람펴서 그래. 형제들이 다 망한 인간들이야.
다들 박동훈 피빨아먹어. 회사에서 맨날 갈구는 거 못봤니.
저게 얼마나 힘든 인생인데. 사회생활 못해봤구나?
아무도 그를 이해해주지 못해.
....하는 식이지.


그러나 그의 내면의 심부를 파헤치는 결정적인 것은
지안이 들을 수 있는 파장 안에서의 거친 숨소리뿐이야.


그래서 우리는 박동훈과 이지안의 관계에서 그 누구도 끼어들 수 없는
내밀한 연결을 기대하게 되었던 거구.


그 관계는 이런 고립적인 관계형성의 틀이 파괴되면
어떨 수 없이 본래 가졌던 성격을 잃을 수밖에 없었어.


이 작품이 다른 드라마와 차별되는 매력은 두 사람의 접점이
오직 두 사람만의 관계 그 자체로 머물고 있었다는 점에서
비롯되었지.


드라마는 무려 14회까지 이 경계선을 엄격히 지켜오다
마침내 15회에 이르러 서둘러 본래의 세계로 돌아왔던 거야.


난 이런 기형적인 관계가 드라마 중반부를 넘어서긴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거의 마지막까지 밀어붙였다는 건 정말 대단해.


덕분에 온갖 관계가 얽히고설킨 난삽한 드라마가 아니라
장면장면에서 한 편의 정제된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분위기와 느낌이 자꾸 들었던 거야.


사실 박동훈이 정말 어른이고 어른으로서 그녀를 자기가 속한
세계의 양지로 끌어내려는 의식만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가 지안에게 보인 태도와 관계의 형성은
그야말로 '배리'라는 말로밖에 설명되지 않아.


그는 자기의 고독을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정도로
무섭게 느끼는 사람이고 그걸 거의 방치하는 사람인데
지안의 고독에 대해서도 거의 같은 태도를 취했지.


자신의 고독이 지안과 함께 있는 순간,
그녀가 그의 주변에 있고 시선만 돌려도 보이는 위치에
있을 때 풀려지듯이
동훈은 무의식적으로 지안의 고독에 대한
자신의 위치도 같은 성격으로 유지하려고 했어.
그녀가 시커먼 동굴같은 곳에서 홀로 웅크리고 산다는 건
아예 모르고 상상도 해보지 않는 사람같아.
그는 그의 떠들썩하고 난리 피우는 세계를 끌고 와서
자, 너도 이제부터 사람사는 것처럼 살 수 있게 해주께
하지를 않아.


마지막회의 장례식장에서 후계족속들이 드글드글하게 된 것도
그의 편이 아니라 상상속에서 살아가는 남자 상훈 때문이지.


자기 세계에 대한 동훈의 애정과 애착은
그 점에서 지안과의 앞에 서면 완전히 무색해져 버려.


그 점을 가장 예민하게 느끼는 인간이 의외로 막내동생인 기훈이야.
지안을 가장 걱정스럽게 쳐다보는 사람이 맏형이 아닌 막내라는 건
애인에게 고백하는 그의 유별난 둘째형 사랑을 통해 그 이유가 설명돼.
지안을 바라보는 상훈의 얼굴은 그다운 동정심과 감상이 가득하지만
기훈의 표정은 골똘하고 자신만의 걱정과 불안이 느껴져.
지안의 곁에 앉아서 일어날 생각을 않는 형을
정신차리란 듯이 소리쳐서 자기들한테 오라고 부르고,
그녀의 모습을 뒤에서 넋을 잃고 보는 형에게
선그라스를 불쑥 내밀며 주의를 돌리고,
형수가 떠났으니 가족이 있는 집으로 들어오라는 둥,
지안과 전화연락을 하는지 떠보고,
인간은 내버려 둬도 자력으로 치유하는 힘이 있다는 둥,
자신이 사랑하는 형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무의식이 일관되게 표현되고 있어.


그가 식구중에서 형수인 윤희와 가장 친하고 개방적이고 허물없는 태도를
취한 건 결국 윤희가 자신의 형을 자신들로부터 앗아갈 수 있는 사람이 못된다는
무의식적으로 계산적인 판단 때문이었던 것 같아.


불륜사실을 알고 난동을 부리다시피 하면서 유일하게 이혼 얘기를 했던 그가
윤희에게는 가지지 않았던 방어적인 태도를 지안에게 보인다는 건,
그 만큼 형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그가 보기에
제대로 된 인사조차 해보지 않은 사이지만
지안의 모습과 태도를 보고 본능적으로
자신들의 안전과 안정을 뒤흔들거나 파괴할 만한
'위험한 아이'란 걸 깨달았다는 거야. 


연민을 일으키는 대상에 대한 가장 예민한 이해력과 감수성을
갖추고 있을 법한 그가 느끼는 이 불안과 두려움은
'연민'과 '사랑'의 감정을 동시에 일으키는 존재가
인간사적인 차원에서 얼마나 위협적이고
이해되고 받아들여지기 어려운지를 말해주는 거 같아.


우리가 진저리나게 봤다시피
기훈이 걱정하는 지안과 동훈 둘만의 관계에 속한 동훈 역시
끊임없이 지안을 밀어내려고 하지.
연민의 영역에선 받아들이려고 하지만
사랑의 영역에선 거부하지도 못하면서 받아들이지를 못해.


그들은 사랑은 사랑으로 갚아져야 한다는
고대인들도 알고 중세인들도 알던 진실을 알지 못하는
모든 것을 물화해서 재고 따지는 현대의 법칙과 도덕에 갇힌
성실하거나 혹은 성실하지 못한 삶의 무기징역수야.


어른이라고 하지만 지안도 아는 것을 그들은 모르는 거야.
지안은 자신이 동훈에게 받은 것이 사랑임을 믿고 사랑으로 갚으려고 해.
그것이 오해라고 한다면,
그건 세상에서 있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오해였지.
그 때문에 동훈에게는 그녀가 갚으려는 사랑이 버거워.


근데 그에게도 사랑과 연민이 일치하는 그 순간이,
울면은 큰일 난 거라는 동훈이란 남자의 눈에
눈물을 흐르게 하는 거야.


그리고 그 순간이 박동훈이 가장 아름다운 인간이었던 순간이지.


광일이 찾아가서 한판 붙은 뜨거운 남자가 아니라
그를 만나러 계단에 오르기 전에 한 방울의 눈물을 흘렸던 남자,


자기의 일상과 영혼이 무단으로 탈탈 털렸다는 걸 알게 되고서도
한 아이를 가엾이 여기는 눈물을 흘렸던 남자.


더 이상 어딘가에서 자신의 힘겨운 숨소리를 들어주는 이 없는
텅 빈 공간에서 홀로 흐느끼는 남자.


배경은 다르지만 그 공간은 지안이 홀로 그를 생각하며
수없이 울어야 했던 그 어두운 방과 다르지 않아.


기훈은 형을 통해 그걸 느낀 거야. 자기 입으로 형이 세상에서 제일 불쌍해
하면서 온갖 허세를 부렸지만


막상 형에게 그를 묶는 구속의 사슬이 풀리려는 기운이 보이자 무서운 거야.


사람들 사이에서 지안만 등장하면 쪼아지는 그 기묘한 긴장감의 원흉이
동훈의 가족관계에서도 생긴다는 건 이 드라마의 메인 포스터가
얼마나 역설적이고 사람 뒷통수 치려고 작정했던 건지를 보여줘.


이렇게 드라마 내외적으로 온통 억압적이었던 상황에서
둘은 차포 다 떼고 오직 두 사람만이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생겼던 감상의 무게와 기대치의 강도를 무시할 수는 없어.


왜냐면 지안도 그 점에서 아무런 거부감이 없었고,
그의 세계를 동경하는 게 아니라 그의 세계 속에 있는
그를 동경하는 거니까.


그리고 그 동경의 바탕은 기이하게도 그녀가 사람들에게 일으키는 감정인
연민과 서글픔, 고통이야.


그녀는 키다리 아저씨의 주디가 간신히 허락을 받고 세상에 끼어든
비참한 느낌으로 사는 상태
그보다 더 절망적인 바깥으로 몰린 존재야.


그런 사람이 어떻게 박동훈같은 지위의 사람에게
그와 같은 감정을 품을 수 있을까.


어느 종교에서는 신은 인간의 모든 것을 내려다 보시고
가엾이 여긴다고 하지.


정말 놀라운 발상이야.
도대체 다 내려다 보면 봤지 어떻게 가엾이 여기지?
구역질이 나지 않고 긍휼히 여긴다니.


그건 인간 존재의 본질이 가진 비극성의 통찰임과 동시에
신의 신적 능력과 지위에 따른 귀결이기도 해.


지안의 도청은 그녀의 그 비참한 상황에서도 그녀의 위치를
적어도 동훈에 대해서만은 사실상 신의 위치로 끌어올리는
기적적인 장치야.


기술시대 이전의 세계관에서라면 악마나 신으로부터 받은
능력을 쓰는 거나 같아.


그리고 그 능력으로 내려다 본 한 인간이
그의 눈에 각별하고 의미 있고 가치 있게 보이는 거야.


인간에 대한 신의 연민은
인간 존재의 비극성이기도 하지만
그들을 내려다 봐야 하는 신적 능력의 비극성이기도 해.
모든 것을 보고 모든 것을 안다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건 없고,


그런데도 신이 인간을 가엾이 여긴다는 건
그를 사랑한다는 뜻이지.


인간사를 다 보고 다 알지만 간섭할 수 없는 신의 관조적인 비극성이
신의 육화를 통해 십자가라는 물성의 비극으로 화하듯이


이 어린 소녀에게는 그 현실적인 투쟁이 힘에 겨운 분투 속에서의
자기파괴로 이어져.


지안이 아저씨를 통해 다시 세상에 대한 희망과 신뢰를 얻고
그가 그녀의 손을 놓아도 잘 살아갈 거란 생각은
이 드라마의 결말이 어떻든
난 좀 순진하고 우습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 생각은 거의 변함이 없어.


이 아이는 외부세계에 대해서는 극단적으로 무관심하고
자기의 정열을 배신하는 일이 없어.
한 순간도 그걸 놓치 않아.
그 정열에 위배되고 그것을 말살하려는
마지막 순간엔 자기도 모르게 흉기를 찾고
자신이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사람임을 주지시키지.
사회는 계속 이 아이를 그 마지막 순간을 향해 몰아붙일 거야.


사실 극이 종반부에 이르렀을 때까지
그녀는 '그 와중에 기특하게도 공부를 잘하는' 키다리 아저씨 신드롬의
여전히 대척점에 놓인 존재였어.
약속되었던 3형제와의 인간적인 유대는
낌새조차 보이지 않았고 실제로 그래.


친해지는 과정 따위는 앞에서 다룬 기훈의 경우에서 보이듯이
원래부터 그런 플랜은 있었던 적이 없었다는 얘기겠지.


의외였던 사무실 남자 직원들과의 회식 장면도 아예 덜어냈다는 건
이 드라마가 처음부터 지안의 존재에 대해
흔히 말하는 히로인에 대해 다른 드라마에선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기묘한 관점이 있었고 이를 관철시키고 있음으로 보여.


그 덕분에 신비스러웠던 지안의 캐릭터는 아무 위화감 없이
더 심화되어 사람들에게 전달될 수 있었던 것 같아.


어두운 골방에서 혼자 웅크리고 앉은 소녀.
그녀의 아저씨와 함께 밥을 먹고 술을 마시던
독설을 퍼붓기도 했고 한순간 웃기도 했던 소녀.
마지막 통화에서 자신의 진심을 있는 그대로 말하고 다시 혼자이기를
아무런 희망없이 선택할 수 있었던 한 사람을.


결국 동훈의 손을 통해서야 구제될 수 있는 상황의 전환이
그제까지 두 사람만의 세계에서 이루어지고 쌓여왔던
이 존재의 신비스런 몰입감을 다른 주제로 옮겨놓았어.


마침내 자기의 영원한 음지에서 이 세상의 양지로 진입한 지안은,
그녀의 사랑은 변한 걸까.


지안의 사랑하는 마음은
가엾이 여김에서 왔다고 앞서 말했어.
그녀에게 그건 오로지 지켜주고 싶다는 뜻이 되지.
그리고 그건 더 이상 지켜줄 수 없을 때
그 성격의 변화가 수반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야.


도청앱을 지우며 한 줄기 눈물이 흘러내린 순간,
그녀는 현실의 소녀로 돌아왔어.


이 드라마의 모든 장면들을 통틀어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야.


누군가의 천사가 있었는데
스스로 날개를 꺽고 땅으로 내려온 거야.
가장 초라하고 서글픈 모습으로.


그녀는 이제 현실의 인간으로서,
동훈과의 감정을 완전히 인간적인 차원에서 맞이해야 하는데
놀랍게도 그녀의 선택은 변하지 않아.
자신이 떠나는 것이 그를 지켜주는 것이란
사실을 처음처럼 그대로 수용해.


다만 이제는 도망가지 않고 떳떳하게.
나 없이도 정말 행복할 수 있는지 한번 해보시라는 듯.


동훈의 말대로 단지 그녀가 정말 '어린애'고 그가 '어른'이라면
그들의 관계에서 이런 떨어짐의 요구는 불필요하지.
그건 그들의 관계가 '신비스러운 존재 대 인간'의 성격은
벗어났다고 해도 오히려 '인간 대 인간'으로서
더 명확해지고 수평적이 되었음을 의미해.


스지찜을 먹던 식당에서의 마지막 조우가 이를 증명해.
지안의 태도는 여전히 직설적이지만 전보다 훨씬 구체적이야.
그에 대한 동훈의 반응은
그가 이전에 보지 못한 그녀의 모습이야.


지안은 할머니가 알려준 동훈과의 인연의 의미가
그녀에게 그 떠남이 불행의 늪에서 영원한 자기파괴의 고통이 아니라
스스로의 편안할 안에 이르는 과제가 되었다는 것을 이해했고
받아들였어.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게 뭔지는 아나?'
그 낮게 울리면서 서늘한 목소리.


할머니는 지안의 성정을 너무나 잘 알아서
언제나 그것이 마음에 쓰였던 모양이야.
사람을 좋아하는 그녀의 마음 속에
자기의 돌봄이란 개념이 없다는 것을.


이처럼 강력한 사랑의 도전 앞에 선 박동훈은
그녀가 자신의 속마음을 다 들여다 보는
신비스런 존재에서 현실의 소녀로 돌아오기 이전까지는


그녀와의 관계를 한낱 빨리 걷기 따위의 거리감으로 모면했지만
마침내 그의 후계족속들로 그와 그녀 사이를 빡빡히 채워서
안전한 공간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어.


그러나 그 마저도 그의 순수한 의지로 한 게 아니라
그녀가 그가 그렇게라도 할 수밖에 없도록
스스로 불구덩이에 뛰어들었기 때문이야.


이지안은 항상 그런 식이었지.
고통이 있다면 그 고통을 끌어안고 한덩이가 되어 버려.


지안이 동훈에게 처음 안아주고 싶다고 했을 때
그녀가 동훈에 대해 자기욕심을 채우려고 했던 말이 아니란 건
거절하고 떠나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에 다 담겨 있어.


그건 처음으로 사랑에 눈뜬 미숙한 아이의 눈이 아니라
진짜 삼만살이의 눈이야.
타인의 고통과 온전히 하나가 될 수 있는 사람의 눈.
인간이 가장 깊어졌을 때의 눈이야.


동훈은 그 눈을 보지 못해.
그저 사람을 대하는 시선 정도로만 보지
단 한 차례도 어떤 의혹을 갖고 유심히 보지 않아.
내 생각엔 그걸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그 자신도 잘 모르는 거 같아.
어쩌면 그랬다간 정말 자신이 그녀와 하나가 되어버릴 것을
그 귀신같이 비상한 직관으로 알았기 때문일까.


하긴 신체적인 접촉을 극단적으로 꺼렸던 것도
나로서는 그 때문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어.


15화에서 처음으로 그런 동훈에 대한 불만이 쏟아져 나왔어.
겉으론 럽라-비럽라의 싸움이었지.


사람들은 그가 그녀를 위해 큰 희생을 각오했다고 해.
하지만 윤희의 말처럼 그는 직장을 그만둬도 자기의 신분을 유지할 수 있고
윤희의 불륜사실을 까자는 제안도 놀랍게도 윤희가 먼저 하지.
이쯤 되면 이 사람 정말 불가해한 인물이야.
그럼 그가 하는 건 뭘까.
그가 지안을 위해 이리뛰고 저리뛰고 애쓰는
그 모든 것이 그의 사랑이야.


지안이 도청이라는 신적인 장치를 통해 획득할 수 있었던
기적같은 연민과 사랑의 합일을
동훈은 자연스레 사회적으로 비교할 수 없이 우월한 자기의 위치에서,
세속의 관점에서 시작할 수 있었어.


때문에 지안의 사랑이 가진 극한성을 그는 따라갈 수가 없지.


그 때문에 사실은 이 드라만 럽라와 비럽라가 아니라,
럽라와 럽라의 싸움이 더 극심하고 뜨거웠던 거야.


지안은 자기의 모든 걸 버리면서 사랑했고
동훈은 자기의 모든 걸 동원해서 사랑했으니까.
우리는 그 차이 때문에 동요했고 더 격앙되었던 거지.
왜냐면 어느 것이 더 위대하고 고귀한 것인지를
우리의 마음 속이 항상 명령하는 바이니까.


결국은 동훈의 현실적인 사랑이
지안의 모든 걸 버리는 사랑의 비극성을 막았지만
초월적인 의미에서 생겨났던 그녀의 사랑을
인간적인 차원으로 내려와서도 버리지 않았던 그녀의 올곧은 영혼이
마침내 그녀에게 모든 것을 가져다 주었다고 생각해.


힘을 주어 말하는 그녀의 마지막 '네' 라는 대답 속에
그녀가 아끼고 그녀가 사랑하는 모든 것의 확신과 긍정이 담겨 있었으니까.


이 세상의 양지에서 살게 된 그녀의 마지막 모습이
비록 또 하나의 동화 혹은 또 하나의 주디의 변주에 불과하다 해도,
그 영원할 것만 같았던 어두운 방안에서 누군가의 목소리와 숨소리를 들으며
자신의 연민과 사랑을 하나로 합일했던
그 사람과 다르지 않아 보이니까.





























출처: 나의 아저씨 갤러리 [원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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