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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창작] [문학상] 줄어들지 않는 거리 6cm앱에서 작성

니코냥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2.07.09 10:10:46
조회 658 추천 25 댓글 5

														

1

아직 모두가 눈을 감고 있을 어두운 새벽에, 내 눈을 뜨게 한 것은 창문을 두들기는 빗소리였다. 톡, 톡 하고 떨어지는 잔잔한 소리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쾅, 쾅 하고 창문이 부서져라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도 아니었다.

커튼을 살짝 걷어 눈으로 확인해 보니, 하늘에서 누군가가 물뿌리개로 꽃에 물을 주듯이, 비는 그저 천천히 땅을 향해 떨어지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길을 잃은 몇 개의 물방울이 내 방을 찾아오고 싶었던 것일까. 나는 미소지으며 조그맣게 속삭였다.

"미안, 지금은 손님이 있거든."

나는 걷었던 커튼을 원래대로 돌려놓고는 다시금 침대로 향했다. 어둠 속에서 몸을 누이고 나서야 나는 내 자리에 뭔가가 부족함을 알아챘다. 자리를 비운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내가 쓰던 이불은 이미 손님에게 빼앗겨 버린 모양이었다.

머리맡에 놓아둔 휴대전화를 들고 불빛을 비추어 보니, 내 옆에는 흰색의 거대한 고치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쌕쌕 숨소리를 내며 때때로 꿈틀거리는 그 고치를 바라보고 있자니 문득 어릴 때 읽었던 소설이 생각난다.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아침 침대에서 눈을 떠 보니 딱정벌레가 되어 있었다고 하던데, 어쩌면 밤 사이에 이런 느낌으로 우화했을지도 모르겠다.

이 고치에서는 아마 나비가 태어나겠지. 연보랏빛이 도는 아름다운 날개를 가진 나비. 그 날개를 활짝 펼쳐 하늘 높이 날아가는 나비. 나비가 봄에 태어나 날아가듯이, 카나타씨도 봄이 되면 떠나갈 것이라 생각하니 조금 우울해진다.

이제 막 여름이 시작되었을 뿐인데도 미래의 일을 상상하며 혼자서 멋대로 불안해진 나는 카나타씨가 지금 내 곁에 있음을 확인하기 위해, 손을 이불 덩어리 위에 살며시 올려놓았다. 그 순간, 이불이 크게 뒤척였고, 방심하고 있던 나는 그대로 이불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카, 카나타씨?"

카나타씨는 내가 말을 걸었음에도 대답 없이 잠자고 있었다. 아까 그렇게도 강하게 나를 끌어당겼던 손은, 이제 축 늘어진 채로 내 팔 위에 올라와 있다. 고치 안에서는 서로의 숨쉬는 소리만이 들릴 뿐이었다. 바깥의 빗소리 따위는 고치에 막혀서 들리지 않았다.

심장이 마구잡이로 뛰기 시작한다. 숨이 점차 가팔라진다. 체온이 올라간다. 카나타씨의 숨결을 얼굴 정면으로 받아낸다. 눈이 점차 어둠에 익숙해짐에 따라 카나타씨의 얼굴이 선명해진다. 이렇게나 가까이 있었구나, 하고 새삼스레 놀란다. 살짝만 움직여도 코가 부딪힐 정도의 거리에서, 나는 혹시 카나타씨가 깰지도 몰라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이불 안에서 움직일 수 없는 나는, 마치 거미줄에 걸린 먹잇감과 같았다. 하지만 카나타씨를 바라보는 나의 모습은, 거미가 먹잇감을 바라보는 것과 같은 것이었으리라. 언젠가 내가 썼던 미녀와 야수의 대본에서 야수가 그랬던 것처럼, 나는 금방이라도 터질 것만 같은 자신의 욕망을 참는 것만으로도 한계였다.

'어차피 잠자는 도중이고, 입맞추는 것 정도는 안 들키지 않겠어?'

카나타씨를 바라본 지 얼마나 지났을지 모르겠다. 어느 시점에서, 내 안의 야수가 그렇게 속삭였다. 나는 야수의 속삭임을 따라 시선을 카나타씨의 입술로 옮겼다. 무슨 꿈을 꾸고 있는지 입술을 오물대는 카나타씨. 그 모습이, 나에게는 지금 당장 입을 맞춰 달라는 유혹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나는 욕망과 이성 사이에서 오랫동안 갈등하다, 결국엔 얼굴을 천천히 움직여 이불 바깥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아까까지의 흥분이 거짓말이었다는 듯, 나는 순식간에 현실로 돌아왔다. 카나타씨의 숨소리를 대신하는 것은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 카나타씨의 향기를 대신하는 것은 비에 맞은 식물에서 풍기는 싱그러운 냄새. 카나타씨의 얼굴을 대신하는 것은 방문 아래 틈새를 비집고 들어오는 조명의 불빛. 나는 그 불빛을 보고는, 벌써 가정부 분들께서 일하고 계신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불 속에서 도대체 몇 시간을 마주보고 있었던 것인지 생각하며, 나는 혹시 카나타씨를 깨울까 침대를 천천히 빠져나왔다.


2

"내가 미쳤지."

발갛게 상기된 얼굴을 세면대에서 씻으면서 일부러 자신의 뺨을 강하게 쳐 본다. 찰싹 하고 뺨에 차가운 물이 닿는 것을 느끼며, 나는 방금 있었던 일을 다시 떠올린다. 카나타씨의 표정 하나하나가 손에 잡힐 듯이 생생했다. 그것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다시 이불 속에 들어가 있는 기분이 들 정도로. 잠시 눈을 감는 것만으로 카나타씨가 눈앞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양 손을 앞으로 뻗는 것만으로... 나는 차가운 거울 표면에 닿는다.

감았던 눈을 뜨자, 눈앞에는 지금껏 한 번도 보지 못한 표정을 짓고 있는 오사카 시즈쿠가 거울에 비치고 있었다. 잘 참았다, 오사카 시즈쿠. 만약 이런 표정을 카나타씨에게 보였더라면, 나는 고개를 들고 학교를 다닐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다시금 얼굴에 차가운 물을 끼얹고, 수건으로 대충 닦은 뒤, 방으로 향했다.

아침 6시가 되어가는데도, 방 안은 아직 어두운 채로 남아 있었다. 침대 위의 이불 덩어리 역시 그대로였다. 기껏 놀러와 놓고 9시가 되자 졸리다며 멋대로 내 침대 위로 올라가더니, 벌써 9시간째 곤히 주무시는 중이시다.
내가 자기 때문에 얼마나 밤잠을 설쳤는지 알기는 할까. 같은 침대를 써야 할지 다른 방에서 자야 할지 고민하다 1시가 되어서야 용기를 내어 같은 침대에 누웠다는 것도 모를 것이다. 긴장 때문에 눈을 2시에 감은 것도, 그러고도 깊게 잠에 들지 못해 4시에 눈을 뜬 것도, 장장 2시간 동안이나 같은 이불 안에서 자기를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도 모르겠지.

카나타씨는 아무렇지도 않아하는데 자기 혼자 마음고생하는 것만 같아서 조금 심술이 난 나는, 카나타씨가 들어 있는 이불을 천천히 흔들었다. 하지만 아무리 흔들어도 카나타씨가 일어나지 않았기에, 점점 흔드는 속도가 빨라졌다. 나는 어느새 전력으로 카나타씨를 깨우려 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카~나~타~씨! 이제 아침이예요!"

"우으으으으..."

이불 안에서 괴로운 듯한 신음소리가 들려오더니, 이내 아래쪽에서 카나타씨가 얼굴만을 내밀었다. 부스스한 머리칼에 가려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꽤나 짜증난 표정을 짓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9시간씩이나 잤으면서 잠이 부족한 건가, 이 사람은.

"...몇시야?"

"아침 6시요."

"6시면 카나타쨩 기준으로는 새벽이야..."

카나타씨는 그렇게 말하며 다시 머리를 이불 속으로 집어넣으려 했다. 나는 이불을 빠르게 젖혀 카나타씨를 다시 밖으로 꺼냈고, 카나타씨는 남아있는 이불 속으로 다시 들어가려 했다. 몇 차례나 이런 짓을 반복한 후에야, 카나타씨는 엎드린 채로 눈을 비비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시즈쿠쨩, 화났어?"

"아니거든요."

"그럼 삐쳤어?"

"아니라니까요."

지금 내가 카나타씨에게 상당히 귀찮은 짓을 하고 있다는 자각은 있다. 그래도 내가 화났다거나, 삐쳤다거나 하는 걸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걸 인정해 버리는 순간, 카나타씨는 내가 왜 삐쳤는지도 분명 물어볼 테니까. 그 질문에 내가 어떤 대답을 하더라도, 그것은 '제가 카나타씨를 좋아하기 때문이예요.'라는 의미를 담고 있을 것이다.

내가 카나타씨를 좋아한다는 티를 낼 때마다, 카나타씨는 퍽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그 표정을 보고 있자면 왠지 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나는 카나타씨를 좋아한다고 이야기할때마다 부끄러워서 죽을 지경인데, 카나타씨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얼굴로 나를 좋아한다고 말하고 있으니까.

내가 여기에서 '어젯밤엔 카나타씨와 더 오래 깨어 있고 싶었어요.'라고 말한다면, 카나타씨는 다시금 그 표정을 지으며 나를 놀리겠지. '저는 한숨도 못 잤는데, 카나타씨는 그렇게나 편하게 주무실 수 있네요.'라고 말한다면 그보다 더한 일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입을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와 동시에 고개를 약간 왼쪽으로 돌리고, 카나타씨가 보고 있을 오른쪽 볼에는 살짝 바람을 넣는다. '저 화났으니까 더 질문하지 마세요.'라고 있는 힘껏 어필하는 여자친구 앞에서, 카나타씨는 곤란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더니, 무심한 척 화제를 돌렸다.

"...우와, 비 엄청 내리네."

"장마는 3일 뒤에나 올 거라고 했었는데 말이예요."

나로서도 이 화제를 계속 끌고 가고 싶은 마음은 없었기에, 일부러 그 흐름에 올라타기로 했다. 오히려 더 추궁하려 들지 않아 줘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얼핏 들 정도로, 나는 꽤나 안심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실없는 대화를 시작하며, 아침을 먹으러 방을 나섰다.


3

"어제 새벽부터 시작된 빗방울은 금요일까지 계속될 전망입니다. 장마전선의 북상은 금요일 이후가 될 것으로 예측되며 그 이후는 기단의 변화에 따라..."

아침으로 간단한 토스트를 준비하며, 우리는 식탁에 앉은 채로 라디오에서 나오는 일기예보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모처럼 준비한 가마쿠라에서의 데이트 일정이었건만, 이번에는 고이 접어두어야 할 것 같다.

"금요일까지인가~ 카나타쨩, 비랑은 영 안 맞는데."

"그런가요?"

"습기차고 꿉꿉하고 머리도 까치집 되고... 토스트도 눅눅하네."

"방금 구운 빵이 눅눅할 리가 없잖아요. 기분 탓이예요."

"그럼, 시즈쿠쨩은 비 좋아해?"

좋아하냐 싫어하냐를 묻는다면 좋아하는 쪽이다. 애초에 이름부터가 시즈쿠, 물방울이기도 하고. 영화에서도 비가 오는 장면은 좋은 연출이 많이 등장하기에 좋아한다. 비 내리는 아침 특유의 냄새는 상쾌한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게 하는 데다, 비가 그친 뒤에 볼 수 있는 무지개도 좋아한다.

하지만, 그렇게나 비를 좋아하는 이유가 많은데도, 나는 카나타씨와의 데이트를 방해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비가 싫어지려 하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살짝 어중간한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뭐, 좋아하는 편이예요. 일단은."

"그래? 흐음... 카나타쨩은 잘 모르겠는데..."

"카나타씨, 어지간히 비 오는 걸 싫어하시나 봐요."

"질색할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카나타씨는 그렇게 말하며 잼을 바른 토스트를 크게 한 입 베어물었다. 우수수 떨어지는 빵가루를 보니, 역시 토스트가 눅눅하다던 말은 대충 던져본 것인 모양이다. 나는 그 부분을 짚고 넘어갈까 생각하다, 이내 마음을 고쳐먹고는 토스트를 먹기 시작했다. 아니, 카나타씨의 그 말만 없었더라면 먹었을 것이라고 정정하는 편이 나으려나.

"시즈쿠쨩은 말이야~"

"...?"

"카나타쨩이랑 데이트하는 것보다 비가 더 좋은 거구나."

"커흑! 켁! 콜록!"

"괘, 괜찮아? 빵가루가 목에 붙기라도 했어?"

"갑자기 이상한 소리를 하시니까 그렇죠!"

"그치만 카나타쨩은 시즈쿠쨩이랑 데이트 못 하게 된 게 이렇게나 아쉬운데, 시즈쿠쨩은 아무렇지도 않게 있길래..."

"아무렇지도 않..."

아무렇지도 않을 리가 없다고 말하려다, 싱글싱글 눈웃음짓는 카나타씨의 표정을 보고는 급히 집어삼킨다. 그리고는 재빠르게 머리를 굴려 빠져나갈 길을 만든다.

"...네요. 비 오는 날이라도 데이트는 할 수 있는걸요."

"집 안에서 할 만한 건 어제 다 했잖아? 같이 요리도 하고, 영화도 보고, 오필리아 털손질도 해 줬고."

"그럼 밖으로 나가죠 뭐. 멀리는 못 나가겠지만, 저희 집 정원이라면 웬만한 데이트 코스보다 나을 거예요."

"카나타쨩, 아까 비는 별로 안 좋아한다고 했는데."

"저는 좋아한다고 말했죠. 이 기회에 카나타씨한테 비가 얼마나 좋은지를 알려 드릴게요. 연애란 건 이렇게 서로를 하나씩 맞춰나가는 거 아닐까요?"

"밖에 나가면 축축해질걸. 카나타쨩, 여벌 옷도 안 가져왔는데."

"비만 내리지 바람은 별로 안 부니까, 우산을 쓰면 괜찮을 거예요."

"흐음~ 그렇게 나오신다 이거지."

내가 자신의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아서였을까. 카나타씨는 어딘가 불만족스러워보이는 표정으로, 도끼눈을 뜨고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일부러 그런 카나타씨를 향해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자, 언제나 쉽게만 생각해왔던 후배로부터의 반격은 어떠신가요.

"그럼 시즈쿠쨩이 원하는 대로 빗속에서 데이트 해 줄 테니까, 카나타쨩이 원하는 것도 하나쯤 들어줄 수 있지?"

"제 쪽에서 먼저 스킨십을 해 달라거나, 좋아한다고 말해 달라거나, 아무튼 저를 놀리려는 것만 아니라면요."

"시즈쿠쨩은 그런 것만 머릿속에 가득하구나~ 엉큼하네."

"항상 그런 부탁은 카나타씨 쪽에서 해 오셨잖아요. 사실은 카나타씨 쪽이 더 엉큼하신 거 아닌가요?"

"밥상을 차려줘도 못 먹는 누구 때문에 그렇게 된 거 아닐까나~"

반박을 하려고 입을 열었다가,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 입을 닫았다. 카나타씨의 말과, 투둑투둑 창문을 두들기는 빗소리에, 내 머릿속을 스쳐지나간 장면은 몇 시간 전의 이불 속. 내 뇌리에 강렬히 새겨진 그 때의 카나타씨는 확실히 '차려진 밥상'이었다.

눈앞에 서 있는 카나타씨가 이불 속에서의 모습과 겹쳐 보여서, 마치 당장이라도 이불 속으로 돌아간 것만 같아서, 나는 그때처럼 한동안 멍하니 카나타씨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 때, 얼굴을 위쪽이 아닌 앞쪽으로 움직였다면 어땠을까.

"시즈쿠쨩? 시즈쿠쨩, 듣고 있어?"

"아... 아, 네. 밤잠을 설쳐서 그런지 집중을 못했네요."

"밤잠을 설쳤어? 왜?"

"카나타씨의 잠버릇이 어지간히 고약해야 말이죠."

틀린 이야기는 아니었다. 지금 나를 지배하고 있는, 그 일련의 사건은 따지고 보면 카나타씨가 나를 이불 안으로 잡아끌며 시작된 것이니까.

"무슨 얘기 하고 있었는지는 기억나고?"

평소같았다면 나를 걱정해줬을 카나타씨지만, 오늘은 의심스럽다는 눈초리를 보내며 그렇게 말했다. 카나타씨의 부탁을 들어준다는 방향으로 흘러가던 대화의 흐름을 일부러 끊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아니면 내가 카나타씨의 잠버릇을 탓한 것 때문에 살짝 화났거나.

"카나타씨의 부탁 하나를 들어 드린다는 얘기였죠. 그래서, 어떤 부탁인가요?"

"그게 말이지, 카나타쨩 사실은 우산을 안 가져왔거든~ 그런데 빗속에서 데이트를 하려면 우산이 필요하잖아?"

"우산 정도야 얼마든지 빌려 드릴게요. 어디 보자, 남는 우산이..."

"카나타쨩이 빌리고 싶은 건 시즈쿠쨩 우산인데."

"제 우산이요? 어떤 색깔이 좋으신가요? 검은색, 하늘색, 진홍색..."

사실은, 우산 이야기를 시작하는 대목에서 어떤 말이 나올지는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나는 일부러 눈치없는 척을 했을 뿐이고, 카나타씨는 그런 나를 천천히 죄어오고 있었다.

나 역시 그런 로맨틱한 시츄에이션에 흥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것을 해보고 싶다고 카나타씨에게 직접 말할 용기가 없을 뿐이다. 내가 부끄러워서 하지 못하는 말을, 카나타씨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다.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그런 대사를 치는 카나타씨를 보고 있자면, 가끔은 이 사람이 나를 정말로 좋아하는 것이 맞는지 싶다.

연극에서 대사는 직접적일 때도, 간접적일 때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직접적인 대사라도,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다면 그저 지나가는 한 마디가 될 뿐이다. 역으로, 아무리 돌려 말하더라도, 감정을 담뿍 담는다면 인상적인 장면이 탄생하기도 한다. 오사카 감독은 연애라는 이름의 연극에서, 카나타씨라는 배우에게 후자를 요구하고 싶었다.

"나는, 시즈쿠쨩이랑 같은 우산 아래에서 데이트하고 싶어."

연기자의 잘못은 대체로 감독의 디렉션 미스라고 하던가. 카나타씨는 누구보다도 멋있게, 직접적인 워딩을 통해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내가 빠져나갈 길을 막겠다는 카나타씨의 의도는 알겠지만, 내가 보고 싶은 건 멋있는 카나타씨가 아니라 수줍은 카나타씨였는데. 아무래도 나에게 감독의 재능은 부족한 것 같다.


4

두 사람이 같은 우산을 쓴다는 시츄에이션은 로맨스물의 정석 그 자체라고 생각한다. 요새는 오히려 너무 진부하다는 이유로 잘 나오지 않을 정도이지만, 일단 나오기만 하면 여전히 상당한 파괴력을 자랑한다.

상대보다 키가 살짝 작은 히로인이 주인공을 지근거리에서 올려다보는 구도는, 히로인에게 있어 주인공의 존재를 더욱 크게 만든다. 닿을 듯 말 듯한 우산 손잡이 사이의 거리는 설레임과 애달픔과 두근거림을 한번에 표현하고 있다고 해도 좋을 정도다. 그것이 지금까지 내가 가지고 있던, 우산을 같이 쓴다는 행위에 대한 이미지였다. 하지만 그 환상은 카나타씨와 같이 우산에 들어가자마자 깨져버렸다.

"카나타쨩은~ 비 맞는거 싫으니까 딱 붙어 있어도 되지?"

그 한 마디가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지금 카나타씨는 허리를 살짝 굽힌 채로, 우산을 들고 있는 나를 꽉 껴안은 채로 걷고 있었다. 카나타씨의 얼굴은 내 어깨 위에 올라가 있었고, 상반신은 딱 붙다 못해 서로의 체온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올려다보는 구도? 닿을 듯 말 듯한 거리? 그런 건 창작물 속에서나 존재하는 것이었다. 설레임이나 애달픔 같은 감정은 오필리아나 줘 버리라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안에서 카나타씨에 대한 감정은 점점 커져만 갔다. 설레임과 애달픔이 사라진 만큼을, 두근거림이 채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두근거림은 로맨스물에서 묘사되는, 친구 이상 연인 미만의 사이에서 느낄 수 있는 간질간질한 느낌의 두근거림이 아니었다. 지금 내가 카나타씨에게 느끼고 있는 감정은, 불과 수 시간 전에 이불 속에서 느꼈던 그것과 같았다.

왼쪽 귓가를 카나타씨의 숨결이 천천히 간지럽힌다. 숨을 들이쉬고 내쉴 뿐인 일련의 동작일 뿐인데도, 그 숨이 너무나도 뜨겁다. 마치 의도를 가지고 간지럽히는 것만 같아서, 카나타씨가 숨을 쉴 때마다 흠칫흠칫해버린다.

우산을 들고 있는 왼팔에는 카나타씨의 몸이 딱 붙어 있었다. 카나타씨의 부드러운 감촉이, 딱딱한 우산대와 대조되어 더욱 푹신하게 느껴졌다. 발을 한 걸음 옮길 때마다 떨어지지 않으려고 더욱 붙어 와서, 팔이 카나타씨의 몸 속으로 삼켜지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시즈쿠쨩."

"히익?!"

카나타씨의 갑작스런 속삭임에, 나는 온몸의 털이 곤두설 정도로 놀랐다. 입 밖으로 새어나온 괴성에 부끄러워할 틈도 없이, 카나타씨는 내게 계속 속삭였다.

"시즈쿠쨩, 저기 말이야."

"카나타씨..."

"시즈쿠쨩~"

"자꾸 이름 부르지 마세요..."

카나타씨가 내 이름을 귀에 속삭일 때마다, 몸 속 깊은 곳에서 뭔가가 끓어오르고 있었다. 인간을 유혹하는 악마의 달콤한 속삭임. 지옥의 업화처럼 끓어오르는 이 감정을 지금 발산했다가는, 분명 나도 악마에게 이끌려 지옥에 떨어지고 말겠지. 악마의 유혹 앞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나의 경우에는 떨리는 목소리로 '이름을 부르지 말아달라'고 부탁하며 걷는 것이 고작이었다.

"카나타쨩, 비가 살짝 좋아졌을지도 모르겠네~"

"..."

"왜 좋아졌는지 안 물어봐?"

"...왜 좋아지셨는데요."

"그야, 시즈쿠쨩이랑 이렇게 붙어 있을 수 있으니까. 처음이지? 이렇게 오래 껴안고 있었던 적."

항상 덥다거나, 끈적거린다거나, 무겁다거나 하는 핑계를 대며 카나타씨를 밀어냈었지. 그 이유는, 지금의 나를 보고 있는 사람이라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시즈쿠쨩은 말이야, 이러는 거 싫어?"

카나타씨는 계속해서 나를 몰아붙인다. 잠도 제대로 못 잤고, 카나타씨와는 꼭 붙어있는 데다, 머릿속에는 계속 어젯밤의 카나타씨가 떠오른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한계까지 몰아붙여진 상황에서 거짓말을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나는 카나타씨의 장난섞인 질문에, 아마 사귀고 난 뒤 처음으로, 솔직히 대답했다.

"...좋아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의외의 대답에 카나타씨가 침을 꿀꺽 삼키는 움직임이, 어깨를 타고 그대로 전해져 왔다. 지금 그쪽을 바라보지 않아도, 카나타씨의 눈이 휘둥그레 커져 있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다.

"...이야~ 다행이다. 시즈쿠쨩 쪽에서는 한 번도 안 달라붙어 오길래, 그런 건 싫어하는 줄로만 알았다구."

"좋아해요. 카나타씨 옆에 더 있고 싶고, 카나타씨를 더 느끼고 싶어요. 제 진심, 받아들여 주실 수 있으신가요?"

"시, 시즈쿠쨩?"

카나타씨에게 진실을 밝힌 것을 트리거로, 마침내 내 진심을 가리고 있던 가면은 벗어던져 버리고, 야수가 뇌를 지배한다. 카나타씨의 심장 박동이 팔에 느껴진다.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뛰고 있는 그 심장의 펌프질은, 평소의 느긋한 카나타씨와는 참으로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내가 심장 박동을 느끼고 있는 것을 알아챘는지, 카나타씨는 황급히 붙이고 있던 몸을 떼어내며 우산 밖으로 나갔다. 나는 손에 들고 있던 우산을 땅바닥에 대충 던져버리고는, 카나타씨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카, 카나타쨩, 아직 마음의 준비가..."

"눈, 감으세요."

"알았다, 이거 연기하는 거지? 그 동안 놀려서 미안하다고 사과할 테니까..."

"감으라니까요."

나는 카나타씨의 양 어깨를 꽉 누르며 말했다. 분명 키는 카나타씨 쪽이 약간이라도 더 클 텐데, 어깨를 누르고 나니 카나타씨가 작아만 보였다. 시선을 한 군데 두지 못하고 여기저기로 돌리던 카나타씨는, 마침내 수줍은 듯이 고개를 살짝 들어 나를 올려다보고는, 그대로 눈을 감았다. 내가 꿈에도 그리던 이상적인 히로인이, 그 자리에 있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앞으로 내밀며, 이불 속에서의 카나타씨를 떠올렸다. 그 때는 얼굴을 앞으로 내밀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를 고민했는데. 나는 3시간이라는 길을 돌아 똑같은 상황에 도달해 있었다.

빗속에서 한참동안 서 있던 나는 목을 앞으로 쭉 빼서, 카나타씨의 귓가에 입술을 가져갔다. 그리고는 아직도 눈을 꼭 감고 있는 카나타씨에게 속삭였다.

"전부 연기예요. 감쪽같이 속으셨죠?"

나는 카나타씨의 볼에 살짝 입을 맞추고는 고개를 원래대로 돌려, 어안이 벙벙한 카나타씨를 미소지으며 바라보았다.


5

중간에 우산을 던져버려서 비에 젖은 생쥐 꼴이 된 우리는, 조용히 집으로 돌아와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몸을 씻었다. 키스는 하지도 않았는데 왠지 한 것만 같은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먼저 샤워를 권했지만, 결국에는 같이 목욕탕에 들어갔다.

특기할 만한 이벤트는 없었다. 서로 너무나도 지쳐 있었으니까. 몸도 마음도 진이 빠져 버린 나는 샤워가 끝나자마자 파자마로 갈아입고는 침대에 몸을 누였다. 잠시 뒤, 역시 파자마로 갈아입고 나타난 카나타씨는 천천히 내 옆에 드러눕더니, 몸을 돌려 이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겁쟁이."

"네?"

"어떻게 거기서 뺄 수가 있어?"

"뺀 게 아니라 처음부터 연기였다니까요."

"거짓말. 그 눈은 누가 봐도 진심이었어. 카나타쨩은 알고 있는걸."

"진정한 배우는 눈만으로도 연기를 할 수 있다고들 하죠."

"우산 같이 쓰자마자 안절부절 못하던데."

"카나타씨도 제가 조금만 세게 나오니까 바로 그렇게 되시던데요."

"우으으... 분명 두근거리긴 했지만, 이건 카나타쨩이 계획한 거랑 다른데..."

카나타씨로서도 내가 이렇게 강하게 나올 줄은 몰랐겠지. 하루종일 나를 놀리며 즐기려던 계획이 물거품이 되어 꽤나 실망한 것 같았다. 나로서는, 계획에도 없던 귀여운 카나타씨를 볼 수 있었기에 만족하고 있었지만.

"...뭐, 떡밥이야 다시 뿌리면 되는 거고. 이건 인내심의 승부니까~"

"무슨 낚시라도 하러 가시나요."

"오, 그것도 좋지. 하지만 그 전에... 안녕히 주무세요~"

카나타씨는 재빠르게 이불 속으로 숨어 버렸다. 아까까지의 실망감은 어디론가 가 버리고, 언제나의 카나타씨로 돌아온 모양이다. 나는 그런 카나타씨를 보며 다시금 미소를 짓고, 몸을 일으켜 커튼을 치고, 불을 끄고는 침대로 돌아왔다.

"...정말, 어쩔 수 없는 사람이라니까."

침대로 돌아온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텅 비어버린 내 자리와, 그 옆자리에 놓인 거대한 고치였다. 잠버릇만큼 고치기 힘든 것도 없다고 했지. 이불 없이 자는 것도 가끔은 괜찮지 않을까 생각하며 침대에 누워서 오늘 하루를 되돌아보니, 잠들기 직전에 뭔가 신경쓰이는 것이 하나 떠올랐다.

'...뭐, 떡밥이야 다시 뿌리면 되는 거고. 이건 인내심의 승부니까.'

떡밥? 떡밥이라는 단어는 뭔가 큰 걸 꾸밀 때 쓰는 말이 아니던가. 단순히 나를 놀리려던 거였다면, 즉석에서 나오는 임기응변만으로도 충분하다.

인내심이라는 단어도 신경쓰인다. 굳이 따져보자면, 오늘 나는 카나타씨에게 내내 끌려다니다가 마지막에 카운터를 날린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 한 번의 패배로 인내심의 승부를 논한다는 것은 뭔가 이상하다.

의구심 속에서 천천히 잠에 빠져가던 나는, 문득 카나타씨 쪽을 바라보다가 무언가를 눈치챘다. 카나타씨의 고치에서, 잡아달라는 것만 같이 손이 살짝 빠져나와 있었다. 순식간에 잠이 달아나고, 머릿속이 멍해진다.

나는 무언가에 이끌리듯이 카나타씨의 손을 잡았다. 그 순간, 마치 오늘 새벽에 있었던 것처럼, 카나타씨의 손이 강하게 나를 이불 안으로 잡아끌었다. 이불 속의 카나타씨 역시 새벽에 봤던 그대로 눈을 감고, 입술을 오물거리고 있었다. 그 입술은, 마치 '이번에는 다른 쪽 선택지를 고를 차례야'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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