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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창작] ss 번역) 사랑을 밝히다 -4- (完)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1.11.25 02:41:21
조회 1284 추천 25 댓글 7

														



14


「---근데 리나코 너무 심한 거 아냐? 맘대로 남이 자는 얼굴 찍고 말이야-」

「그러게 카스미 양」

「게다가 카스밍이 입 벌리고 잠든 사진 보고 웃고-」

「그러게 카스미 양」

「심지어 『플레멘 반응 같아』라니. 정말 너무하다구」

「그러게 카스미 양」

「…………see의 과거형은?」

「그러게 카스미 양」

「하아…… 시즈코!!」

「----히얏! 후, 헤, 왜, 왜 그래? 카스미 양」

「왜 그래, 가 아니잖아. 정말」


 학교에서 돌아오는, 갑자기 선선해진 길 위. 나에게 있어서는 익숙한 길이지만 시즈코에게는 그렇지 않을지도. 시즈코가 항상 이용하는 역은 훨씬 뒤에 있다. 다만 아까부터 시즈코의 눈이 굴러다닌다거나 걷는 태가 어색하거나 하는 것은 모르는 길을 걷고 있기 때문이라는 어린애 같은 이유는 아니다.


「시즈코, 너무 긴장했어. 카스밍네 집에 좀 가는 정도로」

「~~~~, 그래도~!」


 나도 이렇게 갑자기 애인을 집에 초대하게 될 줄은 몰랐다. 심지어 평범하게 부모가 있을 때에. 아니, 부모가 없을 때가 아니면 안 된다거나 하는 관계는 결코 아니지만…… 난 대체 누구에게 변명하고 있는 것일까.

 나라고 떨리지 않는 것은 아니다. 토요일과 일요일은 엄마가 일 때문에 바쁘다고 해서 평일에 데려오라고 했다. 그러나 시즈코의 거처는 고도 가마쿠라. 그렇지 않아도 늦기 쉬운 동아리 활동 뒤에 우리 집까지 오게 했다가는 가마쿠라에 돌아갈 무렵에는 밤이 깊고 만다. 그건 안 된다는 말 때문에 자그마치 금요일인 오늘, 우리 집에서 묵게 된 것이었다.

 설마 첫 숙박이 이런 형태일 줄이야. 물론, 그냥, 잘 뿐이지만. 그런 것만으로도 상대가 애인이라면 마음가짐도 바뀐다. 실은 꽤, 두근거리고 있다.

 그건 그렇고 엄마는 왜 그렇게 시즈코를 보고 싶어한 걸까. 딸의 애인이 어떤지에 대한 걱정? 설마. 그냥 흥미로? 분명 그 쪽일 가능성이 높다. 참고로 아빠에게는 시즈코에 대해 아직 말하지 않았다. 그것은 상대가 여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이전에 딸에게 애인이 생겼다는 사실을 안 것만으로 반드시 졸도해 버릴 거라는, 나와 엄마의 심모원려의 결과다.

 조금 진정됐다기보다는, 마음을 다잡은 모습의 시즈코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카스미 양이 어머니의 부탁을 들어줬다니 좀 의외네」

「그래? 딱히 엄마하고 사이가 나쁘진 않은데」

「응, 알아. 그래도 애인을 어머니와 만나게 하는 건 부끄러워할 거라고 생각했거든」


 키득키득 웃는 시즈코. 곤란한 듯이 눈썹 끝이 내려간 이 부드러운 미소는 정말이지 불편하다. 심장이 꽉 막혀서 순간 멈추어 버리기 때문이다. 몸에 해롭기 짝이 없다.

 미소의 위력을 감퇴시키려고 곁눈질로 그녀를 보고 있던 탓인지, 시즈코에겐 째려보는 것처럼 보였던 것 같다. 조금 당황한 모습으로 내 얼굴을 들여다본다.


「미, 미안해, 화났어?」

「아, 아니. 전혀. 나야말로 미안」

「그래? 다행이다」

「……사실은」

「응?」

「……내가 시즈코를 소개시켜주고 싶었던 것도 있었어」

「그래?」

「응」

「왜?」

「……그걸 묻는 거야?」

「……응. 듣고 싶어」


 내가 쑥스러워하는 것을 순식간에 간파하고 장난스럽게 묻는다.


「……시즈코가 내 애인인 걸 아는 건 엄마뿐이니까」

「그래서?」

「그러니까……그게」

「그러니까?」

「……자랑하고 싶었어! 이 사람이 내 멋진 여자친구라고! 맘껏! 달리 자랑할 수 있는 사람도 없으니까!」


 듣고 싶다고 해서 들려줬더니, 시즈코는 새빨개져서 고개를 숙였다.


「그, 그렇구나」

「응」

「…………」

「…………」


 흥. 카스밍을 너무 얕보면 이렇게 된다구요.

 고소하다. 나도 무사하지 못한 것만 빼면.

 결국 둘 다 입을 다문 채 우리 집 앞까지 오고 말았다.


「도착했어」

「으, 응」


 시즈코는 「NAKASU」라고 쓰인 문패를 묘한 얼굴로 바라본 채 우두커니 서 있다.


「아직 아무도 없을 거야. 들어가자」

「앗----아, 알았어」

「?」


 왜 초조해 하는 걸까. 우리 부모님을 만난다고 잔뜩 긴장했었으니 반대로 안심할 부분일 텐데. 아직 부모님은 돌아오지 않았고, 함께 집에 있는 것은 나뿐----

 아아, 그래서.

 시즈코 녀석. 나까지 긴장되잖아.

 열쇠를 꺼내어 문 구멍에 집어넣는다. 그런데 어라? 반응이 없다.


「벌써 왔나?」


 그대로 문을 당겨보니 문제 없이 열렸다. 시즈코가 바로 뒤에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다녀왔습니다-……」

「시, 실례합니다」


 시즈코가 쭈뼛거리며 문지방을 넘었다. 그러는 동안에 안쪽에서 발자국 소리가 다가온다. 그 리듬만으로 발소리의 주인이 탄력을 잘못 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제발 이상한 짓은 하지 말아줘, 엄마.


「어서오렴----」


 앞치마 차림의 엄마는 현관에 얼굴을 내밀자 나를 잠깐 보고 바로 그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내 옆에 있는 녀석도 조건반사처럼 등을 편다. 순간 모두 말이 없어졌다.

 하지만 곧 엄마는 여느 때와 다름없는 미소를 우리에게 지어보였다.


「반가워. 네가----」

「아, 네, 넷! 처, 처음 뵙겠습니다, 오사카 시즈쿠입니다! 카스미 양과는 그, 교, 교제를……」

「카스미한테 들었어. 잘 부탁해, 시즈…코?」

「넷?」

「엄마!」

「어머, 미안해. 카스미가 그때부터 입만 열면 시즈코, 시즈코밖에 안 하니까」

「꺄아아아」


 초장부터 저질러줬네 엄마.


「네에……」

「엄마, 진짜, 더 이상 쓸데없는 말 안 해도 돼」

「그래그래. 밖에 춥지 않았어? 자, 올라오렴, 시즈쿠」

「네! 저기, 이, 이거, 같이 드세요」


 시즈코가 애지중지 안고 있던 종이봉투를 엄마에게 내민다. 그 움직임이 연료가 다 된 자동인형 같아서 좀 웃겼다.


「어머나, 일부러 고마워…… 게다가 꽤 괜찮은 걸」

「아, 아뇨!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에요」

「그렇게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 시즈코, 내 방 가자」

「으, 응」

「후후. 감기가 유행한다고 하니 둘 다 손 씻고 들어오렴」

「알았어!」


 아니 초등학생도 아니니까. 어쩌면 엄마도 꽤 긴장하고 있는지 모른다. 이상하게 당황한 여자 셋과 아무것도 모르는 남자 하나가 한 지붕 아래. 오늘은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또 다른 긴장감이 생겨났다.

 복도를 따라가는데 도중에 등 뒤에 있던 시즈코가 뭔가 생각난 듯 앗 하고 소리를 냈다. 무슨 일인지 뒤돌아보았을 무렵 시즈코는 다시 한 번 엄마에게 걸어가고 있었다.


「? 시즈쿠, 무슨 일 있니?」

「저기…… 잘 부탁드립니다!」


 그러면서 엄마에게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응?」

「아까, 말하는 걸 깜박해서요」


 잘 부탁해, 라고 들었는데 대답하지 못한 것을 신경 쓴 것 같다.

 그러자 엄마는 안심한 듯 빙긋 웃었다.


「그래. 잘 부탁한다」


 라며 시즈코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남의 여자한테 뭘 하는 거야?


「네, 넷」


 너도 쑥스러워하지 마.


「시즈코! 가자!」

「응!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래. 편히 있으렴」


 항상 지나다니는 집 계단에 두 사람 몫의 발자국 소리. 어딘가 현실에서 유리된 것 같은 울림이 있다.

 내 뒤를 따라오는 시즈코를 힐끗 돌아보니 머리를 손으로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우리 엄마가 미안해」

「아니야. 좋은 어머니시네」

「겉만 좋은 거야 겉만」

「그래? 그럼 역시 모전자전이라는 거구나」

「으극」


 아픈 데를 찔린다. 반박할 말이 나오지 않는다.


「그렇지, 않아」

「아니, 맞아. 왜냐하면」

「?」

「내 머리를 쓰다듬는 손짓이 카스미 양과 꼭 닮으셨거든」

「~~~」


 역시 집에 데려온 건 실수였나.


「여기가 카스밍의 방. 화장실은 저 끝이야」

「----응」

「……시즈코 아직 긴장돼?」

「아니? 조금 두근거릴 뿐이야」

「긴장해 있잖아…… 뭐 됐어. 들어와」

「실례합니다……」


 우선 시즈코를 내 방으로. 시즈코는 한걸음 발을 들여놓자 와, 하고 소리를 냈다.


「카스미 양 방이다……」

「그야 물론 카스밍의 방인데」

「생각보다 깔끔하네」

「지금까지 이 방에 들어온 모든 사람들과 똑같은 소감 말하지 말아 줄래?」


 그야 조금은 청소했지만.


「짐은 대충 놔둬. 그리고 아무 데나 대충 앉아도 되니까. 거기 방석 같은 것도 대충 써도 되고」

「후후, 알았어. 대충 말이지」

「난 신경 안 써도 된다고 말하려고!」

「응응. 알아」


 그러면서도 시즈코는 책가방과 백을 방의 동선에 거치적거리지 않는 곳에 살짝 내려놓았다. 일련의 동작부터가 화가 날 정도로 우아하다. 자란 환경의 차이일까.

 내가 침대 위에 걸터앉자, 시즈코는 뭔가를 찾는 듯 두리번거리다 내 바로 옆을 가리켰다.


「그럼, 그 쿠션 좀 빌려줘」

「이거? 좋아. 자」

「----왓. 고마워」


 침대 위에 있던 쿠션을 던진다. 시즈코는 그것을 간신히 잡고는 방석 대신으로 하나 싶더니, 꼭 껴안고 얼굴을 묻었다.

 스으-……하아-.


「읏, 뭣」


 잠깐. 그거 세탁한 지 꽤 됐으니까. 상당히 됐으니까!


「……에헤헤. 카스미 양의 냄새가 나」

「–––––––」


 알았다.

 얘 긴장한 거 아니야.

 완전 신났어.

 그것도 상당히.


「그건 그렇고, 집에서 내 이야기를 해주고 있구나」

「뭐?! 아, 안 했어!」

「아----그래. 그렇구나…… 아쉽네……」

「!? 하고 있어! 하고 있는 거 맞아!」

「그래? 기쁘네!」

「끄으으으으」


 이렇게 신난 시즈코는 어떻게 해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녀가 만족할 때까지 시즈코의 인형이 되는 수밖에.


「옆에 괜찮아?」

「저기, 침대인데」

「아? 응. 그러네?」

「아,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자, 여기」

「후후, 고마워」


 내가 오른편에 공간을 비우자, 그곳에 몸과 몸이 밀착할 정도로 가까이 앉는 시즈코. 빈 교실과 다르게 정말로 우리 이외에는 아무도 없기 때문에 거리감이 오류를 일으키고 있다.

 시즈코가 내 왼손을 잡고 양손으로 감싸듯이 쓰다듬는다.


「손끝이 좀 차갑네. 오늘 갑자기 날이 서늘해졌지」

「으, 응」


 나의 오른쪽 절반은 굉장히 뜨거운데.

 그런데…… 시즈코, 부드럽다. 게다가, 좋은 냄새……


「언제나 손을 잡고 다닐 수 있다면 카스미 양을 따뜻하게 해줄 수 있을 텐데」


 이렇게 가까이 있는데.

 더 가까워지고 싶다고, 생각하고 만다.


「…………」


 에잇.

 오른팔로 시즈코의 허리를 안아 끌어당긴다. 그리고는 언젠가와는 반대로 시즈코의 어깨에 머리를 맡겼다. 어리광을 받아주고 싶은 건지 부리고 싶은 건지 모르겠다.


「……후훗」


 시즈코는 말없이 잡은 손에 힘을 주어 내 머리에 뺨을 갖다 대었다.

 이렇게 시즈코에게 두근거려 놓고는 고작 이거밖에 못 하는 걸까.

 엄마 말대로 역시 쑥맥인가 싶어서 좀 분하긴 했지만.

 직접 느끼는 그녀의 체온에 그런 건 금세 아무래도 좋아졌다.


「후암……」

「졸리니? 카스미 양」

「응. 조금……」


 확실히 졸립다. ……기분이 좋으니 특별히, 개를 대하는 것 같은 말투인 건 내버려 둬 주자.

 아-. 안 돼 이거 멍해진다.

 정말로 잠들어 버릴지도-----

 싶던 찰나,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방안을 울렸다.

 둘이서 침대 위에서 뛰어오른다.


『카스미-, 아빠 곧 온다고 연락하셨다-』

「아……응, 알았어!」


 문 너머의 엄마에게 대답한다. 엄마도 그 이상 말하지 않고 문 너머로 발소리가 점점 멀어져 갔다. 아무래도 올 때의 발소리는 시즈코에게 정신이 없어서 들리지 않았던 모양이다.


「까, 깜짝이야」

「응, 깜짝 놀랐네……」

「……아하」

「후훗」

「아하하하」

「하하하하」


 뭐가 왜 우스운 건지는 몰라도 아무튼 웃겼다.


「하아…… 그만 내려갈까? 곧 밥 때니까」

「응! ……그러고 보니 아버지께서는」

「아, 응. 자러 온다는 말은 해뒀어」

「그렇구나. 인사 드려야겠지……」

「이미 말했지만 아빠한테는 시즈코 얘기 안 했으니까, 아빠 앞에서는 『친구』인 걸로 부탁할게」

「응. 알고 있어」

「……시즈코도 참, 그렇게 쓸쓸한 얼굴 하지 마! 어쨌든 부모님 앞에서는 붙어있을 수 없잖아. 조금만 참아줘」

「그래…… 아」

「응?」

「카스미 양도 둘이 있을 때는 붙어있고 싶어?」

「읏----얼른 가자!」

「후후후, 네에」


 함께 부엌으로. 이미 요리는 거의 다 되어가고 있었다. 냄새 좋다. 하지만 급이 평소에 비할 바가 아니다. 내가 니지가사키에 붙었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딸의 애인이 오는 것뿐인데, 엄마는 상당히 기합이 들어가 있는 것 같다. 애초에 오늘 저녁 담당은 아빠였을 텐데. 평소와 같은 식사 준비로 이만한 것이 만들어질 리는 없고, 혹시 이것 때문에 오늘 일찍 돌아온 걸까? 그래서 먼저 와 있었구나.


「둘 다 손 씻고 오렴」


 그러고 보면, 아까 노크도 평상시 같으면 막 문을 여는 엄마인데 오늘은 문 너머로 말을 걸 뿐이었다. 역시 시즈코에게 마음을 써주는 것 같다. 그리고 나에게도.

 왠지 기분이 이상하다.

 그래도 싫지는 않다.


「어머니 요리 잘하시는구나」

「뭐 그럭저럭? 레시피대로는 만들 수 있어」

「아하」

「근데 남은 걸로 뭐 만드는 건 아빠가 더 잘해」

「후후후, 그렇구나」


 손씻기를 마치고 돌아오니 엄마가 테이블에 식탁보를 깔고 있었다. 이 또한 꽤나 풀이 잘 먹은 식탁보다. 좀 호들갑 떠는 것 같아서 멋쩍긴 하지만, 역시 기쁘기도 하다.

 이제 접시를 늘어놓기만 하면 된다.


「카스미, 상 차리는 것 좀 도와」

「네에」


 그리고 내가 부엌으로 가려던 그때.


「어, 어머, 님」


 하고 목소리를 높인 것은 시즈코였다. 어머님, 이라고 부른 상대는 물론 우리 엄마였다.


「저도, 도와드릴게요!」


 순간 놀랐지만, 시즈코다웠다.

 그러자 엄마는 다시 빙긋 웃으며,


「그럼 부탁해볼까?」


 하며 손짓했다. 시즈코도 기뻐하며 우리 집 부엌으로 들어간다.

 조금 의외였다. 아까부터 대하는 태도를 생각하면 손님에게 그런 일은 시킬 수 없다고 말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다른 손님이었다면 그랬을 것이다. 그냥 내 친구라거나 그랬다면. 하지만 시즈코는 그렇지 않다. 손님이지만, 그냥 손님이 아니다. 내 애인이다. 즉, 나와 대등한 존재. 내가 돕는다면 시즈코에게도 도움이 허락된다. 시즈코에게 도움을 받는 것은 상대가 나의 애인인 시즈코이기 때문이라는, 엄마의 경의의 표시인 것이다.


「카스미, 뭘 멍하니 있어. 시즈쿠도 돕고 있잖니」

「네에」


 상을 차리는 동안에 아빠도 돌아왔다. 또다시 시즈코가 무서운 기세로 고개를 숙인다. 아빠는 아, 네가. 카스미가 항상 신세지고 있구나, 라고 농담인지 뭔지 알 수 없는 인사를 하고 일단 침실로 들어갔다.


「자상한 아버지이신 것 같네」

「음, 자상한 건, 맞으려나」


 반쯤 딸바보 아빠라는 말은 하지 말자.

 사복으로 갈아입은 아빠가 돌아와서 넷이서 먹기 시작한다. 언제나 세 사람에겐 너무 넓었던 식탁이 오늘은 안락하고 비좁아 오히려 마음이 편할 정도였다.


「맛있다, 맛있어요!」

「그래? 다행이네」


 엄마의 정면에 앉은 시즈코가 눈을 반짝이며 말한다. 엄마도 솔직히 기뻐하는 것 같다. 어제부터 잔뜩 긴장해 있던 엄마의 모습을 아는 나와 아버지는 좀 더 냉정했다.


「그러게. 평소보다…… 맛있네」

「아마 재료가 좋아서 그렇겠지」

「두 사람 다 한 마디씩 많아?」

「아하하……」


 그런데 정말로 너무 맛있었다.

 이렇게 빨리 가족과 애인이 함께 식탁에 둘러앉게 될 줄은 몰랐는데.

 지금은 무척 흡족한 기분이다.


 잘 먹고 나서 나와 시즈코는 다시 내 방으로 돌아왔다. 시즈코는 뒷정리에도 입후보했지만 이번에는 엄마가 사양했다. 오히려 평소 설거지 따위를 하고 있는 나까지 휴가를 얻어버렸다. 「방에서 둘이서 편히 쉬렴」 그렇게 말하는 참견쟁이 엄마의 미소가 뇌리에 어른거린다.


「음~ 너무 많이 먹었나」

「후후, 정말 맛있었어」


 배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침대에 드러눕는다. 쓰러진 방 한가운데에서 조신하게 앉아 시즈코가 양손으로 잔을 들고 홍차를 한 모금.

 으음, 빈틈없네.

 하지만………… 귀여워.


「왜 그래?」


 시즈코가 고개를 갸웃한다. 그에 따라 긴 머리카락이 흔들리고 윤기 나는 그늘이 진다.


「아니, 잠깐 생각이 나서」

「뭐가?」

「이 침대 위에서 시즈코의 고백에 대한 대답을 생각해냈거든……」

「아아……」


 시즈코는 조금 부끄러운 듯이 홍차의 수면을 응시했다.


「그 토요일 일요일만큼 고민한 적은 없는 거 같아……」

「미, 미안해」

「또 그런다. 그때 일은 서로 입씨름 안 하기로 정했잖아」

「……응. 그랬었지」

「그리고 그것 때문에 우리는 사귈 수 있었고」


 정말로, 인생은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싶다. 앞으로도 쭉 친한 친구일 거라고 생각했던 시즈코가 지금은 어엿한 애인. 그것도 겨우 한 달도 안 된 사이에. 왠지 정말로 현실인지 의심스럽기까지 하고…… 아, 시즈코가 전에 말했던 꿈꾸고 있는 것 같다는 것은 이런 걸까.

 하지만 이런 꿈이라면 깨지 않아도 좋을지도.


「입씨름은 안 할 거지만, 이것만은 말하고 싶어」

「뭔데?」

「고백해 줘서 고마워. 시즈코」

「……응. 카스미 양도…… 얼버무리지 않고 제대로 들어줘서 고마워」

「응. ……헤헤. 카스밍한테도 홍차 줘」

「알았어. 여기, 카스미 양」

「고마워」


 티 포트에서 찻잔에 담긴 홍차가 김을 뿜고 있다.


「레몬 넣지?」

「응」

「설탕은?」

「……됐어」

「어머, 웬일이야?」

「배불러」

「후후……그래」

「응」



「그럼 불 끌게」

「응」


 삑, 하는 소리가 나고 온 세상에서 빛이 사라진다.

 아직 밤 11시 전이지만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그만 자자」는 말이 나왔다. 둘이서 얘기도 많이 하고 나름 장난도 치고. 그것은 물론 기분 좋은 시간이었지만, 어렴풋이 피로를 느끼고 있었다. 서로 평소에 쓰지 않는 신경을 썼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목욕을 마치고 나니 갑자기 졸립다.

 목욕은 한 명씩 들어갔다. ……딱히 특필할 일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했다. 함께 들어간다는 말은 아마 둘 다 머리에 스쳤겠지만, 농담으로라도 말할 수 없었다. 이상한 일이다. 사귀기 전이라면 오히려 함께 들어가자고 쉽게 제안할 수 있었을 텐데.


「잘 자」

「응, 카스미 양도」


 조금 아래쪽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머리를 베개에 맡기자 옆으로 누워도 침대의 폭과 높이 때문에 이불에서 자는 시즈코는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희미한 숨소리만 들린다.

 시즈코를 향해 등을 돌리듯 옆으로 누워 이불을 푹 덮는다. 조금 춥다.

 그렇게 자려고 했는데 좀처럼 잠이 오지 않는다. 항상 어두컴컴해도 그 무엇에도 부딪칠 일 없이 걸어다닐 수 있는 내 방인데, 웬일인지 전혀 낯선 방, 아예 다른 세상에라도 있는 듯했다.

 평소 쓰던 이불이 입술과 종아리를 찌른다. 등 뒤에서 들리는 시즈코의 잠옷이 이불에 스치는 소리가 유난히 또렷하게 들린다. 졸릴 텐데 이상하게 신경이 과민해져 있었다. 찬 손끝과 반대로 가슴 속이 뜨겁다.


「……시즈코. 자?」

「……아니, 아직」


 들리는 목소리를 보아하니 시즈코도 나와 반대편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시즈코, 이불에서 잘 수 있겠어? 집에선 침대에서 자잖아」

「후후, 신경 써 줘서 고마워. 괜찮아. 잘 수 있어」

「그래……」

「…………」

「……시즈코, 이불에서 곰팡이 냄새 안 나? 괜찮아?」

「아냐, 안 그래. 괜찮아」

「응……」

「…………」

「…………시즈코?」

「왜? 카스미 양」

「그게…………춥지 않아?」

「안 추워. 걱정 마」

「그래. 그럼 다행이고……」

「응」

「…………나는, 조금 춥네」


 아아아아.

 나 대체 뭐 하고 싶은 건데. 아무리 카스밍이래도 지금 건 귀찮아.

 살짝 자기혐오에 빠져 있는데, 뒤쪽에서.


「----푸훗, 후후후흣」


 참지 못하고 새어 나온 듯한 웃음소리.

 시즈코가 나를 놀릴 때와 비슷한 소리다.


「……시즈코? 왜 웃어?」

「뭐~? 후후후…… 그치만. 언제나 나를 귀찮은 녀석이라고 말하면서, 카스미 양도 굉장히 귀찮은걸?」


 시즈코는 그렇게 말하고는 상체를 일으켰다. 황급히 나도 일어난다. 어둠 속에서도 시즈코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곤란한 듯한 미소를 짓고 있다는 것도.


「카스미 양」

「……왜?」

「같이 자자?」

「…………응」


 시즈코는 베개를 들고 일어났다. 나는 이불을 반쯤 젖히고 몸을 벽 쪽으로 민다.


「실례합니다」

「으, 응」


 시즈코가 내 침대에 앉아 다리를 매트리스와 이불 사이에 찔러넣는다. 그리고 내 베개 옆에 자기 배개를 놓고 내 쪽으로 몸을 틀면서 누웠다.

 여기에 와서 오늘 심장이 가장 빠르게 뛴다.


「카스미 양?」

「네, 넵」

「조금 춥네」

「아, 그러게, 응」


 이불을 시즈코도 확실하게 덮이도록 팔을 뻗으면서 나도 쓰러진다. 큰맘 먹고 시즈코를 향해 옆으로 누웠더니 얼굴이 너무 가까워서 뒤로 벌렁 나자빠질 뻔했다.


「따뜻하다」

「응」

「정말?」

「어?」

「에잇」


 이불 속이 스멀스멀 움직이더니, 내 손이 무언가에 잡혔다. 시즈코가 또다시 자기 손으로 내 손끝을 감쌌다. 따뜻했다.


「역시 차갑네. 후후」

「……고마워」

「천만에」


 시즈코는 내 손끝을 쥔 손을 자기 몸 쪽으로 가까이 하고는, 잠시 기도하듯이 눈을 감았다가 입을 열었다.


「카스미 양. 오늘 정말 고마웠어」

「나야말로. 갑자기 초대했는데」

「아니. 나를 어머니에게 소개시켜주고 싶었다고 해줘서 기뻤어」

「……응」

「……사실은 나도 카스미 양의 어머니를 만나보고 싶었어」

「우리 엄마를?」

「응. 우리 관계를 이해해주는 사람을……」

「……시즈코」

「미안해, 이런 얘기 하고 싶지 않았는데」

「괜찮아. 말해줄래?」

「……약속했지. 우리 일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을 거라고. 그래도 이 관계를 앞으로도 계속해 나가다 보면, 언젠가 누군가에게 알려질지도 모르잖아? 그 때, 그 사람이 뭐라고 말할까를 생각하게 돼. 축복해주는 사람도 있을지 몰라.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분명 많을 거야……」

「…………」

「나는 무슨 말을 들어도 좋아. 괜찮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내 일이니까. 하지만 나 때문에 카스미 양까지 힘들어하게 되는 건 절대 싫어. 그래서 카스미 양이 어머니에게 나에 대해 이야기했다고 했을 때, 너무 무서웠어. 나 때문에 카스미 양이 가족과 관계가 나빠진다거나 하는 것만큼은, 나, 견딜 수가 없어서……」


 나는 잡혔던 손을 되잡았다.


「카스미 양의 어머니께서 기뻐하셨다는 말을 듣고, 인정해주는 사람이 있구나 하고 생각했어. 하지만 실제로 만나기 전까지는 아직 무서웠어」

「응」

「그런데 오늘, 정말로 나를 환영해주고 계신다는 것을 알고, 너무, 너무…… 기뻤어」

「응」

「……고마워, 카스미 양. 어머니에게 나에 대해 말하기 분명 무서웠을 텐데. 정말로…… 용기를 내줘서, 정말, 고마워」

「……아니야. 카스밍에게 고백해줬을 때의 시즈코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걸. 카스밍은 언제나 하고 싶은 대로 할 뿐이야. 시즈코와 사귀고 있는 것도, 카스밍이 그렇게 하고 싶기 때문이니까. 그러니까 『나 때문』이란 말 하지 마」

「카스미 양……」

「그리고 있지, 엄마가 인정하지 않았더라도 분명 언젠가 인정했을 거야」


 그 다음을 말할 생각에 저절로 미소가 터졌다.


「왜냐면, 이렇게 멋진 여자친구니까!」


 그러자 십 수 센티미터 앞의 윤곽이,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역시, 좋아해. 너무 좋아……」

「우후후, 알고 있다구요」


 모든 것이 어둠에 녹았다. 청각, 후각과 손끝의 감각을 빼고는, 몸과 외부의 경계선마저 흐릿해 점점 다른 세계에 있는 듯했다.

 하지만 그것은 전혀 모르는 세계가 아니다.

 적어도 시즈코가 있는 세계다.

 아니, 오히려.

 그것은 시즈코밖에 없는 세계였다.

 나와 시즈코만의 세계.

 그 어둠을 밝히듯 가슴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번쩍, 조용히 켜진 것 같았다.


「다음엔 시즈코네에도 묵게 해줘」

「응, 물론이야! ……『친구』로서가 될지도 모르지만」

「신경 안 써. 오필리아는 카스밍을 좋아하려나」

「그건 내가 보장할게. 닮았는걸」

「시즈코 씨? 그건 뭐랑 뭐가일까요?」

「후후, 무슨 말일까?」

「하여간…… 아, 참」

「응?」

「우리 일, 동호회 사람들한테는 말하지 않을래?」

「동호회 멤버들에게?」

「응. 분명 응원해 줄 거야. 리나코도, 선배들도」

「응원…… 그런다면, 좋을 텐데」

「……물론 시즈코가 기다렸으면 하면 그렇게 할게」

「……미안해」

「아니야, 괜찮아. 그래도 언젠가는 꼭 말하고 싶어」

「응. 그건 나도 그래. 동호회 모두, 그리고, 우리 가족에게도……」

「…………아, 그럼 있지」

「응?」

「우리 둘 다 열여덟 살이 되면 말하자」

「열여덟? 왜?」

「열여덟이면 성인이 되고, 결혼도 부모 동의 없이 할 수 있잖아? 그럼 누구랑 사귀든 상관없지!」

「…………」

「……안, 될까? 미안, 내 머리로는 이 정도밖에 생각이 안 나서」

「……아니. 좋은 생각이라고 생각해」

「그, 그래?」

「그래도 서로 열여덟 살까지면…… 나, 많이 기다리게 되겠네? 빠른 년생 카스미 양?」

「으극」

「후후…… 그럼 내후년 카스미 양 생일날, 나 분명 두근거리고 있겠네」

「……그거, 오늘처럼 기쁜 두근거림으로 변했으면 좋겠다」

「응…… 그러니까 카스미 양. 그때까지는 이 손, 절대 놓으면 안 돼?」

「시즈코야말로. 다른 애를 보고 있거나 하면 용서하지 않을 테니까」

「응. 약속」

「무조건이야?」

「응. ……」

「…………」

「…………있지」

「……응?」

「말하기 싫지만, 이렇게 가까이 있을 때 하고 싶었던 말이 있어」

「신기하네. 카스밍도 있는데」

「정말? 뭐야?」

「시즈코부터 말해도 돼」

「뭐어? 그럼, 하나 둘 하면 할까?」

「응, 좋아」

「그럼 간다? 하나 둘----」


「「잘 자」」



15


 아침에 눈을 뜨니 침대에는 나밖에 없었다. 어? 어젯밤은…… 어라? 방의 한구석에 이불과 침구가 가지런히 개어져 있었다.

 시즈코…… 어라? 어제 있었지? 시즈코.

 자다 일어난 특유의 난잡한 머릿속에 보조선을 그은 것은 아래층에서 들려온 잘 아는 두 웃음소리였다. 두 개 다 여자 목소리.

 파자마 바람으로 부엌에 내려가자 그곳에는 시즈코와 엄마의 모습이 있었다. 시즈코는 벌써 갈아입고 앞치마까지 두르고 있다. 심지어 그거 내 거.


「……좋은 아침」

「좋은 아침이야! 카스미 양」

「일어났니? 너도 얼른 세수하고 옷 갈아입고 오렴. 잠버릇 너무 심하다 얘」

「……응-」


 내가 화장실로 가려고 고개를 돌리자 시즈코와 엄마는 다시 잡담을 하기 시작했다. 샛노란 웃음소리에 섞여 「카스미도 어릴 적에는」이라든가 「하지만 카스미 양 요전에도」라고 들린 것 같지만, 잠에 취해 있었기 때문에 자세히는 모르겠다.

 옷을 갈아입고 다시 돌아오니 아침식사 준비가 다 되어 있었다. 딱 하나만 빼고.


「카스미 양. 여기 우유」


 그렇게 말하면서 시즈코가 내민 것은 데이트하면서 샀던 하늘색 머그잔. 그야 물론 그때부터 매일 사용하고 있지만.


「……고마워」

「후후」


 냐아아아.

 아침부터 멋쩍게시리.

 머그컵을 받아 테이블에 앉아서 옆을 보는데 낯익은 듯 생소한 것이 있어서 또 놀란다.


「어라, 왜 시즈코 것도 있어?」


 내 것의 짝이 되는 시즈코의 노란 머그잔이었다. 뭐야, 진짜 여기 왜 있지?


「어? 그게…… 카스미 양, 집에서 써주고 있다고 하니까, 같이 쓰고 싶다고 생각해서…… 가져왔어」


 라고 말하며 수줍어하는 시즈코.


「그, 그렇구나……」


 자고 일어나서 낮았던 체온이 급상승.

 어제 그렇게 얼어있던 녀석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자기 집에라도 있는 것 같은 편안함. 여기에 히죽거리는 얼굴을 어깨 위에 얹은 엄마만 없다면 그냥 좋아해도 될 텐데.


「아빠는…… 토요일이니 아직 안 일어나려나」

「그래, 그러니까 우리끼리 먹자」

「네!」


 항상 보는 식탁에 손을 정갈히 모으고 있는 시즈코가 있는 풍경도 왠지 위화감이 없어졌다.


「카스미 양? 안 먹을 거야?」

「아니, 먹을게. 잘 먹겠습니다. ……아, 이 계란 프라이 한 거야, 시즈코?」

「……! 응! 알겠어?」

「응. 평소보다 덜 탔어」

「……시즈쿠, 이게 부리는 억지는 흘려듣는 게 사귀는 요령이야」

「이거라고 하지 마」

「네! 기억할게요!」

「시즈쿠 씨?」


 어째 모르는 사이에 많이 친해졌다. 가벼운 소외감마저 든다. 어이~.


「음! 이 잼 맛있네요!」

「정말? 그 잼 내가 만든 거야!」

「어머! 그러셨어요? 굉장하네요!」

「응. 카스미가 빵 만드는 데 자극을 받았거든」


 ……뭐, 사이가 좋은 건, 좋은 거지.


「엄마, 일은? 이렇게 늦장 부려도 돼?」

「아, 오후에 잠깐 볼일 있는 게 끝이야」

「아 그래」

「……후후」

「뭐야」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시즈쿠를 채가거나 안 해」

「읍, 뭣----그런 말 안 했거든!?」

「알기 쉽네. 후후후」

「크으으……」


 옆에 눈을 돌리자 시즈코는 조금 쑥스러워하면서 쿡쿡대고는, 소리 없이 입으로만 뭐라고 말했다.


『고마워』


 따, 딱히, 나는.

 잼 맛도 모르고 나는 아침을 입에 쑤셔넣었다.



「잊은 건 없어?」

「응. 확인했어」

「머그컵은? 챙겼어?」

「괜찮아. 수건에 싸서 가방에 넣었어」

「그렇구나……」

「응……」


 아직 해가 다 뜨기 전에 아가씨는 귀가. 두 가방을 안은 시즈코가 내 방을 아쉬운 듯 둘러보고 있다.


「왜 그래?」


 하고 물으니.


「응-? ……조금. 조금이지만…… 돌아가고 싶지 않아져서」


 같은 말을 해서.

 왠지 엄청 꼭 안고 싶어졌다.

 그래서, 했다.


「왓」


 갑자기 뒤에서 안긴 시즈코는 순간 굳었지만, 곧 힘을 빼고 명치 언저리로 둘러진 내 손에 자기 손을 포갰다.

 어제 베개의 답례로 시즈코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그녀의 입자를 들이마신다. 역효과였다. 오히려 더 견딜 수 없어졌다.

 그래도 어떻게든 참고.


「또 언제든지 와」

「……응」


 우리는 조금 더, 그대로 붙어 있었다.



「신세 많이 졌습니다. 너무 즐거웠어요」

「나도 재밌었어. 딸이 또 하나 생긴 것 같아서」


 현관에서 작별 인사를 한다. 이제 돌아가기만 하면 되는 시즈코가 엄마에게 머리를 숙인다.


「이거 아침에 먹은 잼이야. 가족하고 먹으렴」

「괜찮으세요? 감사합니다!」


 그거 매번 너무 많이 만들어서 여러 사람에게 나눠주니까 가져가도 돼.


「……얘, 시즈쿠」

「네……?」

「이런 걸로 괜찮다면, 있고 싶은 만큼 함께 있어 줘」

「……네!」

「후후…… 카스미, 시즈쿠를 역까지 바래다주렴」

「이런 걸로 괜찮다면 동행해 드립죠」

「비굴해지지 말아줘? 나는 카스미 양'이' 좋은걸」

「…………」

「아, 부끄러워한다」

「시끄러워 엄마! 시즈코! 가자!」

「후후. 감사했습니다」

「그래, 또 오렴」


 시즈코의 손을 잡아당기면서 반대쪽 손으로 문을 연다. 아침 햇살이 눈부시다. 오늘은 따뜻한 날이 될 것 같다.


 역까지 시즈코를 바래다주고 돌아오니 엄마는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문득, 기억 속의 엄마보다도 어느새 훨씬 늙었다는 것을 깨닫고 조금 가슴이 먹먹해졌다.


「다녀왔습니다」

「아, 카스미, 어서 오렴」

「…………」


 ……뭐, 역시 말하지 않으면 안되겠지.


「엄마」

「응-?」

「고마워요. 우리를 위해 신경 많이 써줘서」

「……바보네」


 당연하지, 하고 웃는다.

 그리고 행주를 짜서 랙에 걸치고는, 조금 피곤해 보이는 얼굴을 풀며 말했다.


「정말 착한 애네, 시즈쿠. 너한테는 아까울 정도로」

「그럴 줄 알았어. 그래도…… 나도 그렇게 생각해」

「네가 겸손 떨다니 웬일이래」

「시끄러. 그래도 이제 알았지? 시즈코가 어떤 애인지」

「그래. 잘 알았어. 카스미가 그 애를 무척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걸」

「----어?」

「정말로…… 안심했다」


 그렇게 말하고 엄마는 크게 하품을 하고는 다시 자겠다며 2층으로 올라갔다.

 ……엄마.

 말은 그래도 역시.

 역시 조금 불안했구나.

 그래서 그렇게 시즈코가 보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시즈코와 함께 있는 나를 보고 싶었던 걸까.

 어쨌든 방법이 좀 억지스럽지만.

 그건 남 말할 게 아니지만은.

 시즈코 말대로 역시 모전자전이구나.

 그래도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말이 하나 있다.

 엄마가 우리 엄마여서 정말로 다행이야.


 나도 내 방으로 들어간다. 방은 원래 풍경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런데.

 이 방이 이렇게 넓었나?

 어제처럼 침대에 드러누워 실내를 바라본다. 하지만 어제는 그곳에 있던 사람이 없었다. 말 못할 추억과 생활만이 방안을 가득 채운다.

 백일몽처럼 기억 속 광경이 떠오른다.

 행복한 표정으로 엄마의 요리를 입에 가득 넣는 그녀.

 가위바위보에 져서 무릎베개를 해주는 쪽이 되어 볼을 부풀리는 그녀.

 교대해서 기쁜 듯이 내 허벅지에 자리잡는 그녀.

 익숙한 손놀림으로 막 씻은 머리를 말리는 그녀.

 어릴 적의 내 이야기를 듣고 배꼽을 잡고 웃는 그녀.

 개찰구 너머로 몇 번이나 뒤돌아보며 손짓을 하는 그녀----

 시즈코.

 시즈코, 시즈코, 시즈코……

 전부, 전부.

 만약 이게 전부 다 꿈이라면.

 눈을 뜨면 전부 내 앞에서 사라져 버린다면.

 그런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울컥한다.


 가슴속 깊이 켜진 무언가.

 처음에는 빨갛게, 미덥지 않게 흔들리던 그것은.

 이제야 겨우, 파랗고 뜨겁고, 확고한 불꽃이 되어 나를 태운다.


 ……시즈코.

 나 있지, 찾았어.



16


 시즈코의 결전의 날은 항상 금요일 같지만, 나에게는 역시 월요일인 것 같다.

 그렇다고 해도 시즈코의 경우엔 고백도 숙박도 시즈코 자신의 의사로 시작한 것이 아니다. 심지어 둘 다 내가 원인이다. 왠지 미안하다.

 한편 나는 오늘도 시즈코의 의사도 아랑곳 않고 일생일대의 무대를 밟으려 하고 있다.


「카스미 양?」

「응? 왜?」

「아니…… 오늘 좀 멍하니 있는 것 같아서」

「그랬어? 미안」

「무슨 일 있어?」

「아니, 아무것도…… 아, 그럼, 시즈코를 생각하고 있었어」

「다 들렸거든? 게다가 본인이 눈앞에 있는데…… 마뜩잖네」

「연극 바… 연극광의 채점은 짜네」

「방금 바보라고 하려고 했지? 벌로 이 햄버그는 내가 먹을게」

「앗, 잠깐, 미안, 미안하다니까!」


 여느 때와 같은 점심 무렵. 우리는 「사귄 지 얼마 안 된 커플」의 단계를 벗어나기 시작해 서로 스스럼이 없어졌다. 그렇다고나 할까, 친구였을 무렵의 거리감을 떠올리며 애인으로서의 거리감과 구분해서 사용할 수 있게 된 느낌이다. 둘이서 산 머그컵처럼, 처음에는 실수하지 않도록 조심조심 떨고 있던 것이 여러 차례 접하는 사이에 손에 익숙해져서, 진심으로 소중히 대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서 기쁘다.

 즐거운 시간은 빠르게 지나간다. 수업 시작 10분 전의 예비종이 울린다. 시즈코와 헤어지면서 갑작스럽게 약속을 던진다.


「오늘 동아리 끝나고 기다려줘. 같이 가자」

「응. 알았어」

「중요한 이야기가 있어」

「어? 중요한 이야기?」

「아무튼! 기다려! 이따 봐!」


 자, 잠깐, 그런 소리를 뒤로 하면서 뛰는 듯이 교실로 돌아온다.

 뭐, 될 수 있는 한 기대하셔.


 방과 후. 무슨 말을 들을지 조금 불안해하는 시즈코의 얼굴을 보면서 하는 연습은 꽤나 재밌었다. 시즈코 입장에서는 안절부절 못하겠지만.

 수고하셨습니다, 그 후 바로 돌아갈 준비를 한다. 웬만하면 해가 지기 전에 하고 싶다.


「시즈코, 같이 가자?」

「카스미 양…… 응」


 그럼 모두들 내일 또 봐요, 대강 인사하고 부실을 나선다.


「그럼 갈까?」

「간다니 어딜?」

「그야 당연하잖아」

「어? 앗, 잠깐만」


 시즈코의 손을 잡고 달려간다. 벌써 하늘이 어두워지려 하고 있다. 서둘러.

 달리다 보니 시즈코도 어디로 가는지 아는 눈치였다.


「카스미 양, 혹시」

「응, 맞아」


 도착한 곳은 해안의 녹지. 시즈코가 나에게 고백해줬던 그 장소.

 그러고 보면 언젠가도 이곳에 숨을 헐떡이며 왔지.


「오오, 그립네」

「……카스미 양」

「응?」

「……중요한 이야기라니?」


 바로 본론을 꺼냈다. 딱 봐도 긴장해 보이는 시즈코의 얼굴이 석양에 비추어 한층 심각한 대비를 그리고 있다.

 좋아.

 예정보다 조금 이르지만, 개연이다.


「응…… 저기 있지, 시즈코」

「……응」

「나,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어」


 순간 소리 없는 목소리를 내며 시즈코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나는 신경쓰지 않고 계속한다.


「그 사람은 말이야, 완고하고 융통성 없고, 사실은 고집불통인 주제에 착한 애인 척 굴고, 그러면서 한번 신이 나면 말릴 수 없고…… 하지만 노력가에, 좋아하는 일에 열심이고, 다정하고,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즐거워서, 다른 그 무엇도 필요없는----그런 사람이야. 난 그 사람한테 고백받고 사귀기로 했어. 처음에는 일단 사귀어보자고 한 거였지만, 정신을 차려 보니 난 이미 그 사람한테서 헤어날 수 없게 되어 있었어」


 거의 단숨에 말하고, 한 번 가볍게 심호흡을 하고 나서 시즈코의 눈을 똑바로 본다.

 시즈코는 혼란스러워하면서도 내 눈을 바라봐 주었다.

 자, 이제 조금만 더.


「뭐, 그러니까, 다시 말해 무슨 말을 하고 싶으냐 하면----」


 마음속의 불길이 향하는 대로.

 아직 한 번도 하지 못한 말을.


「좋아해. 시즈코」


 ……정말이네.

 좋아하는 사람에게 좋아한다고 말하는 거.

 이렇게. 이렇게 기쁘구나.


「……그것뿐이야」


 말하고 나니 갑자기 쑥스러워졌다. 불안하게 만들어서 미안하다고 말하려는 순간, 정면에서 꽉 안겼다. 잘 보니 주륵주륵 흐느껴 울고 있다.


「시, 시즈코!?」

「----바보. 바보, 바보바보바보……!」


 그러면서 내 등을 마구 두드리는 시즈코. 끄악, 심지어 이 녀석 진심으로 때리고 있어.


「시, 시즈코 아파」

「정말로, 무서웠어……! 차이는 게 아닐까, 계속----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말하니까, 나, 나 말고 다른 사람이----정말, 무서웠다고……!」

「시, 시즈코가 들었다 놨다 하는 게 좋대서」

「그거랑 이건 달라! 이…… 카스미 양 바보!!」

「미, 미안……」


 울며 욕하면서도 나를 더욱 강하게 끌어안는 시즈코. 나도 힘껏 그 등을 끌어안으며 속삭인다.


「시즈코」

「……왜」

「좋아해」

「…………」

「너무 좋아」

「…………나도」

「같은 마음이네」

「……응」

「기쁘다」

「……응」

「용서해 줄래?」

「……안 돼. 용서 못 해」

「뭐어……?」

「…………」

「그럼 어떻게 하면 용서해 줄 거야?」

「…………스」

「응?」

「………키스해 주면, 용서할게」

「––––––」


 결국 왔구나.

 하지만 설마.


「시즈코가 시킬 줄은 몰랐는데」

「어?」


 시즈코의 어깨를 가볍게 눌러 몸을 떼고, 오른손을 시즈코의 뺨에 댄다. 엄지손가락으로 눈물을 닦자 손끝이 눈꺼풀에 닿을 것 같은지 눈을 고양이처럼 가늘게 떴다. 귀여워라.


「눈. 감아」

「–––––」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눈을 감았다.

 사실은 내가 해달라고 하고 싶었는데.

 뭐 그래도.

 괜찮겠지, 이 정도는.


「시즈코」


 오른쪽 뺨에 댄 손바닥으로부터 시즈코가 작게 떨고 있는 것이 전해진다.

 눈을 감고 나를 기다리는 그 얼굴은 오렌지빛으로 물들어서.

 우리의 추억은 항상 이 노을이구나, 하는.

 아무래도 좋은 생각을 하게 되는 건 분명 나도 긴장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떨리는 사람끼리, 미숙한 사람끼리.

 함께라면 뭐든 이겨낼 수 있을 거다.

 그러니까 이건 앞으로도 곁에 있겠다는 다짐 같은 것.

 어색하게 상체와 목을 펴고 얼굴을 가까이 댄다.

 고개를 살짝 틀어서 목표가 빗나가지 않게.

 앞으로 2센치, 이제 1센치……


「좋아해」




 손을 잡고 걷는 귀갓길이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진짜 연인이 되고 나서는 처음.

 앞으로도 여러 처음을 시즈코와 쌓아 가겠지.

 다만 하나는 이미 끝내 버렸다.


「……처음?」

「응?」

「키스. 카스미 양…… 처음, 이었어?」

「으, 응…… 시즈코, 는?」


 꾸벅,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구나, 그럼 서로 처음, 인 거네」

「으, 응……」


 시즈코는 아직 얼굴이 빨개진 채 금방이라도 털썩 쓰러져 버릴 것 같다. 그렇게 연애물을 좋아하면서, 시즈코도 참 희한하다니까.

 나도 조금만 방심하면 입술에 부드러운 감촉이 되살아나서 피가 끓어오를 것 같지만.


「……시즈코」

「으, 응」

「……앞으로 잘 부탁해」

「……응? 갑자기 왜」

「그냥 왠지. 조금 전까지의 우리랑 앞으로의 우리는 뭔가 다른 것 같아서」

「……응. 그러네. 아까까지 카스미 양은 내 애인이었지만」

「애인이었지만?」

「지금은 나를 좋아해주는, 내 애인이잖아」

「…………」

「아니야?」

「그럴지도」

「후후후」


 『좋아한다』는 것은 분명, 말로 직접 표현할 수 있거나 확실한 형상이 있거나 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그 사람과 함께 있고 싶어. 그 사람을 위해서 뭔가 해주고 싶어. 그 사람이 기쁘면 나도 기뻐.

 그런 스스로는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마음의 움직임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


「그럼, 나도」

「……응」

「좋아해. 앞으로도 잘 부탁할게」

「……응! 나도 진짜 좋아해! 잘 부탁해, 시즈코!」

「응! 카스미 양!」


 나와 시즈코의 세계는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다.

 아직 어디든 온통 어둠투성이인 세상이지만.

 그걸 밝혀주는 등불이 이젠 두 개 있으니까.

 떨면서 나아가자.

 둘이서. 언제까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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