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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창작] [물갤문학] 집에 가는 길, 당신과 함께앱에서 작성

니코냥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1.06.18 22:4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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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연애라는 건, 그 사람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해 가는 것이라고들 말한다.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가 아닌 내면의 모습. 사소하게는 몸에 밴 버릇부터, 크게는 다른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는 마음 속이라던가. 의외로 매운 걸 좋아하고, 의외로 완고하고, 의외로 독점욕이 강한 그녀. 그녀는 오늘도 나에게 새로운 면을 보여주고 있었다.

"카스미씨, 오늘 연극 어땠어?"

"아까 다같이 말했잖아? 정말 좋았어."

"난 카스미씨만의 생각을 카스미씨의 입으로 듣고 싶은걸."

"그렇게 말해도 카스밍은 시나리오나 연출 쪽은 잘 모르고..."

"그럼 다시 말할게. 오늘, 나 어땠어?"

하굣길 기차에서 발견한 시즈코의 새로운 일면이다. 연극이 끝난 뒤의 시즈코는, 평소보다 몇 배는 솔직해지는 것 같다. 무대 위에서 켜는 배우 스위치의 불이 꺼지면, 마치 바톤을 건네받는 것처럼 숨겨두었던 어리광 스위치에 빨간 불이 들어온다. 평소에는 부끄러워서 하지 못했던 것들을 서스럼없이 하고, 요구해 온다. 무대 위에서 체력을 불태운 만큼 체면을 차릴 여유가 없어지는 것일까. 나는 미소지으며 시즈코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앉은키는 비슷해서인지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시즈코 스스로가 고개를 약간 숙여준 것이 더 컸던 거 같지만.

"최고였어. 시즈코는 장하구나~."

"예쁘다와 귀엽다 중에는 어느 쪽?"

"줄리엣으로서는 예뻤고, 시즈코로서는 귀여웠어."

"치사한 대답이네."

그렇게 대답하면서도 배시시 웃는 시즈코의 얼굴은, 질투가 날 만큼 귀여웠다. 차창 바깥에서 비치는 저물어 가는 태양의 아련한 주황색 빛이 정말로 잘 어울리는, 그런 미소였다. 나는 시즈코의 머리를 계속 쓰다듬었다. 평소라면 머리에 손이 올라가는 순간, 머리가 헝클어진다고 말하며 거절했을 텐데. 오늘의 시즈코는 마치 쓰다듬어지기를 바라는 강아지마냥 내 손을 원하고 있었다. 시즈코가 나를 쓰다듬을 때도 똑같은 생각을 하는 걸까. 역시 오필리아랑 비교당하는 건 싫은데 말이지.

"지금, 강아지 같다고 생각했지?"

시즈코는 그렇게 말하며 눈을 살짝 치켜뜨고 나를 올려다보았다. 이쪽은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던 시즈코의 일면. 동호회에서 처음 만나고부터 생각해왔는데, 시즈코는 눈치가 빠르다. 지금처럼 풀어져 있을 때라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던 모양이다. 나는 머리를 쓰다듬던 손을 살짝 내려, 시즈코의 볼을 살짝 터치하고는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시즈코가 나에게 뭐라고 더 따지려는 순간, 기차의 안내방송이 울렸다. 베스트 타이밍이라면 베스트 타이밍. 하지만, 나로서는 그 방송을 별로 반길 수가 없었다.

"오늘도 유리카모메를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본 기차는 다음 역인 신바시, 신바시 역까지 운행합니다. 놓고 내리는 물건이 없는지 잘 살펴 주시기 바랍니다."

이 방송은 내가 시즈코와 헤어져야 한다는 알림. 사실 집은 이미 한참 전에 지나쳤지만, 나는 일부러 그 방송들을 무시하고 있었다. 시즈코와 조금이라도 더 오래 있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내릴 수밖에 없다. 신데렐라의 무도회장에 12시를 알리는 종이 울리면 마법이 깨지듯이. 행복한 시간이란 건 빨리 지나가는 법이다.

"어느새 신바시까지... 집, 한참 지나오지 않았어?"

"...응, 그러네."

"아쉽네. 오늘 카스미씨, 엄청 상냥했는데."

평소의 시즈쿠라면 하지 않을 만한 말. 구기종목은 못하는 주제에, 오늘따라 심장 가운데로 아무렇지도 않게 직구를 던져댄다. 입밖으로 '오늘 시즈코도 엄청 귀여웠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을 겨우 집어삼킨다. 그 말을 하면 진짜로 헤어져야만 할 것 같았으니까. 나는 그 대신에 조그마한 거짓말을 해 본다. 카스밍은 신데렐라라기보다는, 백설공주에 나오는 여왕님. 원하는 걸 얻기 위해서는 수단 방법 가리지 않는다.

"카스밍, 오늘은 하라주쿠 쪽 악세서리샵에 들러 볼까 하는데."

시즈코는 가마쿠라에 사니까, 하라주쿠 정도면 아마 가는 길이 겹칠 것이다. 시즈코의 눈이 살짝 커지더니, 곧 얼굴 전체에 환한 미소가 번져나간다. 이 정도는 귀여워야 카스밍의 연인이라고 할 수 있겠지.

2

신주쿠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시즈코가 눈을 비비며 고개를 꾸벅이고 있었다. 계속해서 떨어지는 고개를 들어 살짝 흔들고는, 졸린 탓에 초점이 살짝 풀린 눈으로 다시 나를 바라본다. 시즈코의 체력이 떨어졌기에 이런 귀여운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긴 하지만, 역시 걱정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시즈코, 많이 피곤해 보이네."

"응. 아침 리허설 전에 혼자 연습하려고 좀 일찍 나왔더니..."

"몇 시 정도에?"

"글쎄... 잘 모르겠는걸. 새벽별이 보일 즈음이었으니까... 흐아암."

"새벽별?! 아무리 겨울이라 해가 짧다고는 해도... 도대체 어제 몇 시간 잤어!"

"카스미씨, 지하철 안에서 큰 소리를 내면 안 되지."

"미안... 그래도 시즈코가 걱정되니까..."

"걱정해줘서 고마워."

시즈코는 그 말을 마치고는 다시금 하품을 했다. 연극에도 스쿨 아이돌에도 전력을 다하는 그녀는 정말 아름답지만, 때때로 자신을 너무 혹사시키는 경향이 있다는 게 문제다. 나는 말없이 시즈코를 바라보며, 내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시즈코는 망설이지 않고 내 호의를 받아들여, 어깨에 머리를 기댄다. 왼쪽 어깨에 기분 좋은 무게감이 느껴진다. 고개를 기댄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시즈코는 꿈나라로 떠났다. 이 정도 속도라면 카나타 선배랑 좋은 승부가 되겠는걸.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몸을 살짝 낮추어, 시즈코가 조금이라도 더 편히 잠들 수 있게 해 준다.

나의 인내심에 한계가 찾아온 것은, 시즈코가 내 어깨에 기댄 뒤 잠들기까지 걸린 시간보다도 짧았다. 어깨가 저리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카스밍이 생각한 것보다도 더 두근거리는 시츄에이션에 온 몸의 감각 신경이 흥분하고 있는 것 뿐이다.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미각... 아니, 미각은 역시 아니다. 아무튼, 4개의 감각이 제멋대로 폭주하고 있었다.

어찌 보면, 시즈코의 자는 모습을 오늘 처음 보는 시점에서 이와 같은 사태는 예견되어 있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리 합숙을 같이 했다고는 하지만, 동호회 중에서도 느지막히 일어나는 편인 카스밍이, 동호회 중에서도 가장 빨리 일어나는 시즈코의 자는 얼굴을 볼 수 있을 리가 없다. 미녀는 잠꾸러기라고 하는데, 왜 카스밍은 잠꾸러기고 시즈코는 아닌 걸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금 고개를 살짝 돌려 시즈코를 바라보았다.

비록 어깨에 기대어 있기에 그 얼굴을 똑바로 볼 수는 없지만, 시즈코의 자는 모습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파괴력이 있었다. 조용히 감고 있는 눈과, 연하지만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 속눈썹. 연극의 흥분이 가시지 않았는지 약간 상기된 볼. 살짝 벌어진 앵두색 입술 사이로 보이는 새하얀 앞니와, 그것과 대조되는 듯한 핑크색 혀. 시즈코가 숨을 쉴 때마다 오르락내리락 하는 가슴. 조용히 내 손을 잡고 있는 시즈코의 새하얀 손. 창 바깥에서 비쳐오는, 태양이 지기 직전의 저녁놀에 비친 그녀는 마치 영화 속의 주인공 같았다.

시즈코의 숨소리는 덜컹거리는 기차의 소리와 비교하면 아주 작았지만, 나에게는 오히려 정반대로 들렸다. 기차의 소리도, 사람들이 대화하는 소리도, 기차 내 방송의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귓가에 들어오는 것은 시즈코의 새근거리는 소리뿐. 마치 세상에 우리 둘만이 남아 있는 것만 같았다. 시즈코의 숨소리가 귓가를 간질일 때마다 흠칫흠칫 놀라 버리고 만다.

어깨에 고개를 기대고 있는 시즈코에게서는 좋은 향기가 풍겨왔다. 향수 같은 건 뿌리지 않는 시즈코이지만, 그런 만큼 오히려 다양한 향기가 난다. 머리카락에서는 은은한 아카시아 향이 난다. 교복에서는 산뜻한 라벤더향 섬유유연제의 향이 난다. 무대에서 흘린 땀의 냄새마저도 페로몬이 되어 나를 유혹한다. 그 모든 향기 사이에 숨어있는 것은, 시즈코의 살에서 나는 달큰한 향기. 다른 누구에게서도 찾아볼 수 없는 시즈코만의 향기다.

어깨를 타고는 시즈코의 심장 박동과 체온이 전해져 온다. 나보다 살짝 높은 그녀의 체온이, 내 어깨를 뜨겁게 데운다. 시즈코가 내 어깨에 기댔을 때부터 나의 심장은 터질 것만 같이 쿵쾅거리는데, 그와는 대조적으로 그녀의 심장 박동은 느긋하기만 하다. 내 쪽이 더 좋아한다는 것을 들켜 버린 기분이 들어, 왠지 진 것만 같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시즈코한테라면 져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것만으로는 조금 부족하다고 생각할 만큼 욕심쟁이가 된 나는, 눈을 지그시 감아 시각을 차단해 보았다. 감각 하나가 사라진 만큼, 다른 감각들이 그를 보충하려는 듯이 더욱 활성화된다. 코끝을 간질이던 향기도, 귓가에 속삭이는 듯했던 숨결도, 잔잔하게 전해지던 심장 박동도. 이제는 내 몸에 때려박듯이 새겨지고 있다. 나는 그 폭력적인 감각에 몸을 맡긴다. 약간 도착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그 느낌에, 살짝 흥분해 버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래서였을까, 그녀의 스커트 주머니에서 울리는 진동에 나는 과도할 정도로 깜짝 놀라며 몸을 떨었다.

3

내 주머니에서는 울리지 않은 진동. 그렇다면 동호회 단체 라인방의 것은 아니다. 시즈코한테 온 개인 라인일까. 시즈코는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잠들어 있다. 지금이라도 몰래 시즈코의 휴대폰을 꺼내 무슨 내용일까 확인해 볼까도 생각했지만, 역시 그건 선을 넘는 거겠지. 아슬아슬하게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이성을 붙드는 데 성공한 나. 하지만 동시에 나와 시즈코만의 시간을 방해받은 것만 같아 살짝 화가 난다. 앞에서 시즈코를 독점욕이 강하다고 평했던 것은 취소하자. 사랑을 하면, 모두가 그렇게 변하는 것 같으니까.

어떻게 하면 시즈코에게 라인을 보낸 누군지도 모를 사람에게, 지금 시즈코는 내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 순간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은 핑크색 경단이었다. 그러고 보니, 아유무 선배는 항상 유우 선배와의 추억을 이야기하거나, 유우 선배와 찍은 사진을 자랑하곤 했었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나는, 자기도 모르게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는 것을 느꼈다. 지금의 나는 분명 장난을 칠 때의 소악마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겠지.

주머니에 손을 뻗어 내 휴대폰을 꺼내고, 사진 어플을 켠다. 시즈코가 깨어 있었다면 지하철 안에서 셀카를 찍는 건 매너가 아니라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나에게는 매너보다 휴대폰 너머의 상대에게 마운트를 취하는 것이 중요했다. 아유무 선배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오른손을 얼굴 앞으로 약간 뻗어 각도를 조절한다. 카스밍의 귀여운 얼굴과, 세상 모르고 내 어깨에 기대어 자는 시즈코의 얼굴이 스마트폰 안에 들어온다. 한쪽 눈을 감아 윙크를 하고, 혀를 조금 빼물어 귀여운 포즈를 취한다. 왼쪽 손은 시즈코가 깨지 않도록 천천히 움직여, 언제나처럼 검지손가락으로 볼을 터치한다. 오늘 터치하는 것은 시즈코의 볼이라는 것이 차이점이지만. 지상 구간의 역광을 지나 지하 구간으로 들어갈 때를 기다려 촬영 버튼을 누른다. 좋아, 오늘도 카스밍은 세계 최고로 귀엽다.

사진에 과하지 않을 정도의 필터를 씌우고, 혹시 주변 사람이 찍히지는 않았는지 확인한 후 인스타를 연다. 메시지는 뭐라고 적을까. 의식하지 않는 듯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시즈코는 내 것이라고 알릴 수 있을 만한 문장. 신은 카스밍에게 귀여움을 준 대신, 똑똑함은 주지 않았다. 한참동안 머리를 굴려도 별다른 말이 생각나지 않아서, 그냥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쓰기로 했다.

무대의 줄리엣은 지금 제 어깨에☆

#니지가사키학원
#스쿨아이돌동호회
#연극부
#나카스카스미
#오사카시즈쿠
#1일1카스밍

이 정도면 됐으려나. 올린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반응이 상당히 뜨겁다. 시즈코의 스커트 주머니에서도 내 휴대폰의 진동과는 시간차를 둔 진동이 몇 번인가 울린다. 성공이다. 역시 해시태그를 몇 개 정도 넣은 게 정답이었나. 시즈코에게 개인 라인을 할 정도로 친하면서, 동호회 라인방으로 연락하지 않을 만한 인물. 그러면서도 시즈코나 연극부의 해시태그에 반응할 만한 사람. 누군지는 대강 짐작이 간다. 뭐, 카스밍이 이긴 지금에 와서는 별로 중요하지는 않지만. 나는 조용히 승리의 기쁨을 느끼며, 기차가 곧 시부야역을 지난다는 방송을 듣고 있었다.

4

가마쿠라는 초행길이라 잘 모르겠지만, 저번에 아이 선배가 신주쿠에서 에노덴을 타고 놀러갔다고 했으니 그쪽으로 가면 되겠지. 퇴근 시간은 약간 지났지만, 그래도 시부야에서 신주쿠로 가는 노선이다. 시부야에서 잔뜩 사람이 들어온 탓일까. 기차의 문이 닫히자, 좌석에 앉아 있음에도 인파의 묵직한 압력이 다리로 느껴진다. 내 어깨에 기대 있던 시즈코도, 역시나 그 압력에는 눈을 뜬다. 눈을 뜨는 데 한 정거장 정도가 걸렸지만.

"우으으..."

"시즈코, 이제 정신이 들어?"

"카스미씨? 여기 어디야?"

"요요기역 가는 중. 그 다음이 신주쿠역이니까, 좀만 참아."

"카스미씨, 하라주쿠 가는 거 아니었어?"

"자는 시즈코를 놔두고 어떻게 카스밍 혼자 가. 세상 모르고 자던데."

"깨우지 그랬어."

말은 그렇게 하는 시즈코였지만, 얼굴은 기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아까의 시즈코였다면 뭐라고 말했을까. 사랑한다고 말해줬을까. 조금 아쉬워진다. 살짝 붉어진 얼굴과 함께, 시즈코는 이렇게 말했다.

"카스미씨, 사실 시부야에서도 가마쿠라 갈 수 있어."

"엣."

"나도 평소에 그쪽으로 다니는걸."

"괜히 왔네... 그냥 시부야에서 탈걸"

"거짓말이야. 시부야에는 오다큐 선이 안 다니거든."

"...카스밍도 물론 알고 있었거든! 시즈코한테 맞춰준 거거든!"

"카스미씨, 어차피 가마쿠라까지 갈 생각이었구나?"

"그, 그럴 리가! 난 그냥 시즈코를 혼자 놔둘 수가 없어서..."

"그래 그래, 고마워."

시즈코는 잠에서 깬 지 얼마 되지 않아 익숙한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금세 나를 놀리며 주도권을 되찾는 시즈코. 그녀가 아까까지 자고 있었다는 흔적은, 아까까지 내 어깨에 기대어 있었기에 눌려 있는 오른쪽 머리밖에 없었다. 아, 인스타에 올린 사진도 있나. 시즈코가 그걸 보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나의 의문이 풀린 것은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기차에서 내려 신주쿠에서 표를 끊을 때쯤, 시즈코는 얼굴을 빨갛게 물들인 채로 내 가슴을 툭툭 때렸다.

"카스미씨는 바보."

"그치만 시즈코가 너무 귀여웠는걸."

"그럼 사진만 찍지, 왜 인스타에 올렸어."

"사진은 괜찮은 거냐고."

"그런 모습은 카스미씨한테만 보여주고 싶었단 말이야."

내 여자친구가 너무나도 귀여운 건에 대하여. 순간 세츠나 선배가 좋아할 법한 문장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내 빨라진 심장박동이 시즈코의 주먹에도 전해지려나. 역시나 그건 살짝 부끄러운데.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시즈코는 계속 나를 툭툭 때리고 있었다. 텅 빈 플랫폼에, 조용히 툭툭 소리만이 울린다. 꽤 오래 맞아 가슴이 살짝 아파올 때쯤이 되어서야 시즈코는 나를 때리는 것을 그만두었다.

"이제 화는 다 풀렸어?"

"아니. 부장님한테도 들키다니, 이제 연극부를 무슨 얼굴로 다녀야 할까."

"역시 그 사람이었구나."

"응? 무슨 말이야?"

"아무것도 아니야."

시즈코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하고 나를 바라본다. 에노덴이 올 때까지는 아직 시간이 좀 남은 상태. 아무래도 시즈코의 추궁을 피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시즈코는 눈을 살짝 가늘게 뜬 채로 나에게 말을 했다.

"카스미씨, 혹시 부장님이 불편해?"

"아니, 전혀 의식하지 않고 있거든."

"역시 의식하고 있잖아... 나는 둘 모두 좋아하니까, 사이좋게 지냈으면 하는데."

"그게 싫다는 거야! 시즈코는 나만 좋아하면 되잖아!"

"설마 부장님한테 질투?"

시즈코는 깜짝 놀란 듯,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이내 웃어버리며, 손을 내 머리로 뻗어 쓰다듬는다. 이왕 기회가 온 김에 조금 더 화내볼까, 질투한다는 어필을 해볼까 싶었지만, 시즈코가 쓰다듬자마자 그럴 기분이 눈 녹듯이 사라진다. 파블로프의 개였던가? 리나코가 가르쳐준 단어가 문득 머릿속에 떠오른다.

"카스미씨, 의외로 독점욕이 강하구나."

"...시즈코가 할 말은 아닌걸."

"그건 그렇네. 나도 카스미씨를 엄청 좋아하고 있으니까."

"부장도 좋아한다며."

"그 좋아함이랑 이거랑은 다르지. 그 증거로..."

시즈코는 머리를 쓰다듬던 손을 살짝 아래로 내린다. 옆이 아니라, 앞으로. 그리고는, 내 이마를 덮고 있는 앞머리를 위로 쓸어올린다. 이마에 찬 바람이 살짝 스칠 즈음, 시즈코는 고개를 앞으로 숙여 내 이마에 입술을 맞댄다. 조그맣지만 분명히 츄 소리가 날 정도로 입을 맞추고는, 고개를 돌려 부끄러움을 감춘다. 아무리 대여배우라도 자기 쪽에서 키스하고 태연하게 있을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이런 건 카스미씨한테밖에 안 하는걸."

"...귀여워. 세상에서 제일 귀여워."

"세상에서 가장 귀여운 건 카스미씨라며?"

"그럼 공동 1등 하지 뭐."

그 말과 함께, 공격권은 자연스레 나에게 넘어왔다. 굳이 따지자면 공격권이라기보다는 아까의 보답이라고 해야 할까. 나는 양손을 뻗어 시즈코의 머리를 살며시 잡는다. 한 손으로는 머리를 뒤에서 받치듯이, 나머지 한 손으로는 시즈코의 볼을 쓰다듬듯이. 시즈코도 내 얼굴을 보더니, 눈을 감는다. 이제 남은 건 내가 조금만 얼굴을 앞으로 가져다대는 것. 머릿속에서 카운트다운을 시작한다. 5초, 4초, 3초, 2초.

"후지사와행 기차가 곧 들어옵니다. 승객 여러분께서는 한 걸음 물러나 주시기 바랍니다."

곧이어 기차가 덜컹거리며 플랫폼으로 들어온다. 그 소리에 우리 둘은 퍼뜩 정신이 들었다. 아무리 달아올라 있었다고는 해도, 오픈된 플랫폼에서 이런 짓을 하려고 하다니. 머릿속에 상식이 다시 돌아오자 남는 것은 부끄러움뿐. 우리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서로에게서 고개를 돌린다. 얼굴이 화끈거린다. 우리는 조용히 손을 잡으려다, 그것조차도 부끄러워 각자 기차 안으로 향한다. 물론, 그렇다고 옆자리에 앉는 걸 포기했다는 건 아니지만.

5

우리가 후지사와에서 내려 에노덴으로 갈아탔을 때는 이미 8시를 넘어 있었다. 퇴근을 하기에도, 관광을 오기에도 늦은 시간. 관광 코스 중 하나로 자리잡은 에노덴도, 이 시간쯤 되면 사람이 없다. 넓은 차량 안에 앉아 있는 것은 우리 둘뿐. 바깥은 이미 해가 떨어져 어둑어둑하다. 우리는 아까 있었던 일의 반동으로, 조용히 창 바깥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먼저 입을 연 것은 나. 시즈코에게 말을 건 것은 아니다. 바닷가 마을 몇 개를 지나, 기나긴 터널이 끝나고 창 밖에 보인 바다의 풍경이 너무나도 예뻤기에, 나도 모르게 감탄이 나왔다.

"우와..."

"여기까지 따라오기를 잘했네, 카스미씨."

"시즈코는 매일같이 이런 걸 보는 거야? 치사해."

"오다이바에도 바다는 있잖아."

"이렇게 맑지는 않잖아."

"그것도 그렇네."

"말은 그렇게 하면서, 시즈코도 사실은 밤바다가 꽤나 예쁘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 아니야?"

"들켰네. 카스미씨랑 같이 보는 건 처음이라 그런가."

"그럼 카스밍한테 감사해야겠네."

"응, 고마워."

시즈코는 웃으며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밤바다를 바라보았다. 아, 익숙한 눈이다. 극장에 가서 같이 영화를 볼 때, 시즈코는 저런 눈을 한다. 지금 시즈코는 어떤 영화를 생각하고 있을까. 나는 밤바다를 같이 바라보며 생각해 보았다. 도쿄 근교라 별은 그다지 보이지 않지만, 하늘에 뜬 초승달이 바다를 아름답게 비추고 있었다. 최근에 같이 본 영화 중에서 밤하늘이 예쁘게 나온 영화가 있었던가. 그러고 보니 시즈코가 꽤 좋아한 뮤지컬 영화가 있었지. 아침이 밝아오는 밤하늘 아래에서 주인공 커플이 춤추는 장면이 떠오른다. 바닷가는 아니지만.

"정답, 라라랜드!"

"아깝네, 카스미씨. 그래도 내가 영화 생각하고 있다는 건 알았구나?"

"시즈코가 영화 볼 때의 눈을 하고 있었으니까."

"카스미씨, 영화를 볼 때는 영화에 집중해야지."

"그래도 카스밍, 제대로 봤다구? 라라랜드에도 나오잖아, 커플이 댄스를 할 때 밤하늘에 떠 있는 달."

"카스미씨, 라라랜드의 그 씬에는 달이 안 나와."

"어? 진짜? 말도 안 돼."

"역시 집중 안 했잖아."

"그래서 정답은 뭐야? 내가 알 만한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치히로가 기차를 타고 제니바의 집으로 가는 장면."

아, 그러고 보니 그런 장면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워낙 어릴 때 봐서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뭔가 쓸쓸한 느낌이 드는 장면이었지. 바다 위를 달리는 기차. 천천히 치히로와 그 일행밖에 남지 않게 되고, 점점 어두워지는 바깥 풍경. 그렇게 생각해 보면 지금 상황이랑 굉장히 닮아 있었다.

"그럼 카스밍이 치히로지?"

"아니, 치히로는 나."

"그럼 카스밍은 하쿠네? 멋있지, 하쿠~"

"카스미씨는 가오나시."

"왜!"

"속이 검은 점이라던가, 나한테 집착한다던가. 꽤 닮지 않았어?"

"우으으... 이렇게 된 이상 시즈코를 잡아먹어 버리겠어!"

"우와, 무서워라."

"시즈코를 원해~ 시즈코를 데려와~"

"풉, 의외로 닮았는걸. 역시 가오나시 맞잖아."

아, 위험하다. 성대모사라고는 해도, 그렇게 말하고 나니 진짜 시즈코를 원하게 되어 버렸어. 내 앞에서 순수하게 쿡쿡 웃는 이 아이를 당장 껴안고 키스하고 싶다. 센을 원하던 가오나시가 이런 기분이었을까. 가오나시는 기차 안에서는 이미 깨끗해진 상태였다는 걸 생각해 보면, 내 쪽이 더 나쁜 아이일지도 모른다. 카스밍은 귀여우니까 분명 신도 용서해 주시겠지만.

"...시즈코를 원해."

"그만, 그만. 웃겨서 제대로 앉아있을 수가 없잖아."

"나 진지해. 아까 플랫폼에서 하던 거, 마저 하자."

"...카스미씨의 스위치는 알다가도 모르겠단 말이야."

"몸, 약간만 낮춰 줄래?"

시즈코는 내 말을 듣고, 좌석에 앉아 있던 엉덩이를 살짝 앞으로 뺀다. 약 2cm의 차이. 이번엔 내가 내려다보는 쪽이다. 작다고 하면 굉장히 작은 차이지만, 평소와는 정반대의 상황에 기분이 고양되는 것을 느낀다. 아무래도 아까 어깨를 빌려준 일로 인해, 내 안에서 위험한 뭔가가 눈을 떠 버린 것 같다. 나를 올려다보는 시즈코의 눈망울은, 밤바다와 같이 깊은 푸른색이었다. 내 머리에 달려있는 초승달 모양 머리장식이, 시즈코의 푸른 바다 위에 떠 있었다. 내가 고개를 숙이자 달이 천천히 바닷속으로 들어간다. 그 눈이 감겼을 때, 내 입술은 이미 시즈코의 입술과 맞닿아 있었다.

눈을 감고, 마치 고급스러운 음식을 먹듯이 시즈코를 음미한다. 어깨를 빌려줬을 때와는 또 다른 감각. 부드럽고, 촉촉하고, 말랑하다. 혀끝에 살짝 느껴지는 시큼하면서도 달콤한 레몬 커스터드의 맛. 연극이 시작하기 전에 내가 건네주었던 수제 쿠페빵의 맛이다. 시즈코에게서 나의 색깔을 찾아낸 것 같아 기뻤다. 내 안에도, 나조차 모르는 시즈코의 색깔이 있는 걸까. 우리는 천천히 서로를 자신의 색깔로 물들여간다. 입천장을 캔버스삼아, 혀를 붓 삼아. 푸른색과 노란색 물감이 섞이며 서로 같은 색깔이 되어간다. 우리가 키스를 끝낸 것은, 숨이 막혀 눈앞이 초록색으로 변할 즈음이었다.

"푸하."

"하아... 하아..."

"최고기록일지도..."

"시즈코의 보이스 트레이닝 덕분이야."

"이러려고 폐활량을 늘린 건 아니었는데."

"앞으로 이걸로 연습해도 되겠는데?"

"될 리가 없잖아."

"아얏."

오랜만에 작렬하는 시즈코의 춉. 나는 머리를 부여잡고 시즈코를 바라본다. 그리고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소리내어 웃었다. 처음에는 조용히, 점차 소리높여, 나중에는 기차가 떠나가라 배를 부여잡고 웃었다. 사랑을 하게 되면, 웃는 데 이유 따위는 필요 없다. 앞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나오니까. 우리는 그렇게 한참을 눈물이 나올 정도로 웃었다. 다음 역이 종점인 가마쿠라역이라는 차내 방송과 함께, 우리는 점차 웃음을 그친다. 시즈코는 눈물을 닦으며 나에게 말했다.

"달이 참 아름답네요."

"갑자기? 분명 예쁘긴 하지만... 거기에, 웬 존댓말?"

"카스미씨, 국어 공부 좀 해."

"대화의 흐름을 따라갈 수가 없는데요?!"

"정했다. 내일은 같이 츠루가오카 하치만 신사에 가자."

"이것도 되게 갑작스럽네... 뭐, 나는 좋지만."

"가서 카스미씨가 공부를 잘하게 되기를 빌 거야."

"역시 그쪽이었냐!"

"그럼 카스미씨는? 어디 생각해 놓은 데라도 있어?"

"아니, 카스밍 아무 계획 없이 와 버린 거라..."

"그럼 내 맘대로 아무데나 가도 되지?"

"아, 생각났다! 카스밍 에노시마 가 보고 싶어! 등대나 수족관에서 사진을 찍으면 카스밍의 팔로워도... 니히히."

"또 오늘같은 사진 찍어서 올리려고?"

"그것도 괜찮겠네."

"사진찍기 좋은 곳이라면, 아까 지나온 시치리가하마 해변은 어때?"

"에? 겨울에 해변이라니..."

"아무도 없고 좋잖아."

"또 키스하려고?"

"키스를 해온 쪽은 카스미씨거든?"

"그렇게 잔뜩 돌아다니려면 하루로는 부족하겠네."

"하루 더 자고 가면 되겠네."

우리는 그렇게, 평범하기 그지없는 대화를 나눈다. 하지만 시즈코와 함께라면 그 평범한 시간이, 그 1분 1초가 너무나도 즐겁다. 앞으로도 이런 시간이 계속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시즈코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기차의 문 앞에 선다.

"가마쿠라. 가마쿠라 역입니다. 오늘도 에노덴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놓고 내리는 물건이 없는지 잘 살펴 주시길 바랍니다."

문이 열리고, 차가운 밤공기가 몸을 감싼다. 나도 모르게 시즈코를 껴안아 버리고 만다. 역시 시즈코 쪽이 나보다 따뜻하다. 시즈코는 나를 내려다보며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나를 살짝 밀어내면서도 손을 잡아 주는 시즈코. 나는 시즈코와 함께 기차의 문을 나선다. 새로운 한 발을 내딛을 시간이다.



줄글로는 처음 써보는 약간 로드무비스러운 로맨스
잘 써졌는지는 모르겠다
특별한 시츄에이션을 만들기보다는 일상 안에서의 묘사에 주력한 느낌이 있음

사실적인 묘사를 위해 도쿄 지하철 노선도 뒤져가면서 했음
니지가사키 학원(도쿄 빅사이트)에서 유리카모메 타고 신바시까지
신바시에서 JR야마노테선 타고 신주쿠까지
신주쿠에서 오다큐선 타고 후지사와까지
후지사와에서 에노덴 타고 가마쿠라까지
시즈쿠는 도대체 어떻게 매일같이 이 노선을 왕복하는 거지
웬만하면 열.차라는 단어를 쓰고 싶었는데 금지어더라

달이 아름답네요는 물 건너에서 지긋지긋하게 쓰는 나츠메 소세키 네타
영어의 I love you를 저걸로 번역한 게 일본의 감성이라나
정석적인 대답은 죽어도 좋아(요)
씹덕이라면 한번쯤은 들어봤을 얘기임

가마쿠라에서 노는 내용이라던지
시즈쿠네 집에서 밤을 보내는 내용이라던지도 쓸까 했지만
기차에서 시작된 이야기니까 기차에서 내리는 걸로 끝내는 게 깔끔할 거 같았음

피드백은 언제나 환영
다음에는 시오리코 주역의 개그물 구상중
여기까지 읽어줘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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