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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창작] [물갤SS] 리나쨩 보드[사랑하는 소녀]앱에서 작성

니코냥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1.01.12 22: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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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음을 전하는 것은 어렵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한다는 것은 굉장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고, 그나마도 그 사람이 마음을 받아들여 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그럼에도, 수많은 사람들은 타인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하고 싶어한다. 분명 그것은 타인과 연결되고 싶은 마음이 만들어낸 결과일 것이다.
고등학교 1학년의 평범한 여자아이인 텐노지 리나 역시 위와 같은 부분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는 그녀가 표정을 제대로 지을 수 없다는 부분에서도 기인하는 것이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표정을 짓지 못한다는 것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단순한 용기의 문제였다.
오히려, 지금 그녀는 자신의 감정이 표정에 드러나지 않음에 감사하고 있었다. 만약 리나의 감정이 표정에 드러나 있었다면 아마 그녀의 얼굴은 창밖의 석양보다도 붉었을 것이고, 입꼬리는 1초마다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며 지금 둘만이 있다는 행복과, 고백의 실패를 가정했을 때의 절망을 드러냈을 것이다.
그렇다. 지금 그녀는 사랑을 하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단 둘이 부실에 남아 있다. 하지만 위에서도 말했듯이, 리나에게는 아직 마음을 제대로 전할 용기가 없었다. 고백은 커녕 단 둘이서 대화하는 것조차 힘들어서 고개를 푹 숙이고 그림을 그리고 있을 뿐이었다. 리나의 앞에 앉아 있던 그림의 모델은 입을 삐죽 내밀고는, 작업이 시작된 지 한 시간 만에 리나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리나코~"
"..."
"지루해~ 모델이란 거, 원래 이런 거야?"

아무래도 카스미는 모델이란 직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카스미는 고개를 의자 뒤로 젖힌 뒤 팔을 바둥대며 온몸으로 지루함을 표현하고 있었다. 물론 리나가 생각한 상황도 이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리나쨩 보드의 개선을 위해 사람의 표정을 그리고 싶으니 모델이 되어 달라고 용기를 짜내 말한 것까지는 좋았으나, 카스미와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는 계획은 그녀의 부끄럼이 허락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 결과가 이것이었다.

"리~나~코~"
"...응, 왜?"
"그림 아직 멀었어?"
"아직 50% 정도려나."
"50%?!"

카스미는 커다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리나를 바라보았다. 상반신은 책상을 넘어 리나 쪽으로 쏠려 있었고, 엉덩이는 의자에서 떨어져 있었기에 그 얼굴이 아까까지보다 더욱 리나에 가까웠다. 순간 '아, 지금 표정 귀엽네 '라는 생각을 한 리나는, 스케치북을 뒤집어 카스미의 표정을 빠르게 스케치했다. 아까의 그림보다는 평소의 리나쨩 보드와 가까운 그림이었다. 하지만 리나는 그림에 집중하느라 위에서 내려오는 카스미의 손을 보지 못했고, 눈치챘을 때는 이미 스케치북이 카스미의 손으로 넘어가 있었다.

"아."
"그럼 어디..."

카스미는 스케치북을 보고서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스케치북의 그림을 가까이서도 보고, 팔을 쭉 늘려 멀리서도 보았다. 10초 정도 뒤, 카스미는 스케치북을 돌려주며 리나에게 말했다.

"역시 그림으로는 카스밍의 귀여움을 담을 수 없는 걸까?"
"그런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다니, 카스미쨩답네."

물론 리나 역시 마음 속으로는 그 말에 동의하고 있었다. 아마 그림이 완성된다고 해도 원판에 비하면 훨씬 부족할 것이었다. 사진이라고 해서 다를 것도 없을 것이다. 리나에게는 지금 눈앞에서 살아 숨쉬는 카스미가 무엇보다도 귀여웠다. 하지만 그걸 막상 다시 의식하니 새삼 부끄러워져서, 스케치북으로 얼굴을 가렸다.

"오, 리나코! 지금 건 좀 귀엽잖아!"
"정말, 놀리지 마."
"아니, 그 그림 말이야."

리나는 그 말을 듣고 스케치북을 뒤집어 보았다. 아까 대강 스케치한 카스미의 놀란 표정이 그려져 있었다. 자기가 귀엽다는 얘기가 아니라 실망한 리나였지만, 그런 리나의 마음을 모르는 카스미는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언제 그린 거야?"
"스케치북 뺏기 직전에."
"흐흥~ 역시 카스밍은 데포르메 되어도 귀엽다니깐."
"그럼, 계속 이렇게 그릴까?"
"음... 오늘은 좀 늦었으니까..."
"...그러네, 조금 있으면 해도 질 거고."

즐거운 시간은 빠르게 지나간다. 별다른 대화나 특별한 사건 같은 것도 없는 시간이었지만, 단순히 카스미와 단 둘이서 같은 시간을 공유하는 것 자체가 리나에게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하지만 카스미에게도 즐거운 경험이었을지에까지 생각이 다다르자, 리나는 체념했다. 아마 다음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던 찰나 카스미가 말을 이어갔다.

"이번 주 안에, 어때?"
"이번 주?"
"이번 주는 방과후에 시간 많을 거 같고, 다음 주는 시즈코가 연극 연습 좀 도와 달래서."
"그럼... 이번 주 카스미쨩의 방과후, 통째로 빌릴 수 있을까."
"뭐, 상관없지만... 다음에는 이렇게 지루하게 하면 안돼."
"...노력해 볼게."
"그럼 오늘은 이만 집으로 가 볼까."

카스미는 자리에서 일어나 가방을 싸기 시작했다. 리나는 카스미가 가방을 다 쌀 때까지도 멍하니 앉아 있었다. 다음이 있다는 것에 너무 기뻐서 농담처럼 던진 말이 현실이 되었다. 지금이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고백해도 성공하지 않을까, 그렇게도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카스미의 얼굴을 보니, 다시 부끄러움이 고개를 들어 그것은 미뤄 두기로 했다. 그래, 다음주에 이 행운의 이벤트가 끝나면 고백하자. 리나는 마음속으로 그런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리나코, 뭐해? 빨리 안 오면 두고 간다?"
"...응, 잠깐 기다려."

'만약 네가 오후 4시에 온다면, 나는 3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어린왕자에 나오는 그 유명한 대사의 기분을, 리나는 지금 이해할 수 있었다. 리나는 스케치북을 가방에 대충 던져넣은 뒤, 카스미를 따라 부실 밖으로 나갔다.

2

어젯밤에는 세계의 누구보다도 행복했던 리나였지만, 지금은 달랐다. 막상 고대하던 그 시간이 다가오자, 리나는 오히려 두려워졌다. 저번처럼 지루하면 어떡하지? 내가 카스미쨩의 시간을 너무 빼앗는 건 아닐까? 온갖 불안과 걱정들이 리나의 머릿속에서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동아리 연습이 끝나고 다시금 둘이 되자, 리나의 머릿속은 백지가 되어 있었다. 부실 의자에 멍하니 앉아 있다가 스케치북을 꺼내고, 그나마도 꺼내다가 떨어뜨리고.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리나가 다시 스케치북을 줍고 자리에 앉아 가장 처음 꺼낸 말은, 카스미의 폭소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 잘 부탁드립니다."
"푸흡! 그게 뭐야, 리나코!"

카스미는 한참동안 배꼽을 잡고 웃었다. 리나는 볼을 부풀리며 나름의 불만을 표시해 보았지만, 별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이내 스케치북에 웃는 카스미의 얼굴을 그려나갔다. 이 보드는 나중에 쓸 일이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던 리나가 카스미의 눈에 맺힌 눈물까지 그릴 때쯤, 카스미는 웃는 것을 그쳤다.

"하아... 이렇게 웃는 것도 오랜만이네."
"..."
"미안, 혹시 저번에 지루하다고 한 거 신경쓰고 있었어?"
"조금."
"리나코는 이상한 부분에서 성실하다니까~"

카스미는 그렇게 말하며 너무 웃어서 약간 나온 눈물을 닦고는, 스케치북을 슬쩍 바라보았다. 그리고 리나에게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우며 윙크해 보였다. 아마 합격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카스미는 자세를 바로잡고 말을 이어갔다.

"그럼, 나랑 리나코랑 얘기하면서 그리는 건 어떨까."
"얘기하면서?"
"그래, 리나쨩 보드에 다양한 표정을 넣으려면 나도 표정변화가 있어야 할 거 아냐."
"...알겠어."
"좋아, 그럼 평소부터 리나코한테 궁금했던 거 전부 물어봐야지!"
"그럼 나도 카스미쨩한테 질문해도 될까?"
"괜찮지만 우선 나부터! 처음 만났을 때, 카스밍 어땠어?"

첫 질문부터 직구구나, 라고 리나는 생각했다. 리나는 분명 카스미를 좋아하기는 했지만, 첫 만남부터는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과 너무나도 달라서, 친해질 수 있을지 걱정도 했었다. 카스미가 가진 수없이 바뀌는 표정에 대해 질투도 했고, 동경도 했고, 결국에는 좋아하게 되었다. 리나 자신과는 다른 그 행동력이, 좌절하지 않는 모습이, 확고한 자기 의견이 좋았다. 카스미의 미소가, 그 귀여운 미소가 자신만을 향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되기까지는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지금 와서 그 시절을 떠올려 보니, 그렇게 오래 되지는 않았음에도 먼 과거처럼 느껴졌다. 과거의 리나 자신에게, 너는 미래에 카스미를 좋아하게 된다고 말하면 분명 믿지 않겠지. 하지만 리나는 이런 이야기는 지금 할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진심을 숨기며 이야기했다.

"내 생각하고 다르네, 라고 생각했어. 나랑 아이씨가 부실에 찾아간 건 세츠나씨의 라이브를 본 뒤였으니까, 스쿨 아이돌은 전부 그런 줄 알았어."
"잠깐! 그거 칭찬 아니지!"
"노 코멘트."
"리나코, 치사해! 질문에는 대답해야지."
"질문 하나 썼잖아. 다음은 내 차례."

리나는 신중하게 고민한 끝에 질문을 골랐다. 카스미를 살짝 떠 보는 듯 하면서도 그것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법한 질문. 진지한 질문이긴 하지만, 분위기가 너무 다운되면 '그냥 만약에 말야'로 넘길 수 있는 질문. 그런 질문을, 리나는 카스미에게 던졌다.

"카스미쨩은 고백하는 파? 고백받고 싶어하는 파?"
"으음..."
"너무 진지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고."
"역시, 카스밍은 고백받고 싶으려나~ 그래도 좋아하는 상대가 너무 둔탱이면, 발끈해서 고백해버릴지도."
"...그렇구나."
"그럼 다음 질문은 나지? 아까 그거, 칭찬 아니지?"
"아니지."
"역시!"
"이제 내 차례. 내일 신문부 인터뷰는 진지하게 할 거야, 귀엽게 할 거야?"
"당연히 귀엽게지! 아, 하지만 진지한 카스밍도 놓치기 싫은데..."
"카스미쨩, 아까부터 욕심쟁이네."

그날은, 그렇게 질문을 하나씩 이어가며 서로 웃는 시간이 이어졌다. 리나 쪽에서도 더는 어려운 질문을 던지지 않았고, 카스미는 아예 리나쨩 보드의 모델이라는 본분을 잊은 듯 했다. 리나는 계속해서 카스미의 여러 표정을 스케치북에 그려나갔고, 눈 깜짝할 사이에 한 시간이 지났다. 내일은 어떤 대화를 하고, 어떻게 고백할까, 리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행복한 기분으로 카스미와 같이 하교했다.

3

리나의 들뜬 기분은, 다음날이 되자 순식간에 가라앉아 버렸다. 시즈쿠가 주역에서 강판당했다는 소식은 예상치 못한 변수였다. 리나도 물론 시즈쿠가 걱정되었지만, 카스미는 리나보다 훨씬 더 불안해하는 것처럼 보였다. 카스미는 계속해서 부실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손톱 끝을 잘근잘근 씹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시즈쿠의 분위기가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먼저 눈치챈 것도 카스미였다. 과연 내가 틀어박혀 있었을 때 카스미쨩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라고 리나는 생각했다. 리나는 이내 자신이 시즈쿠를 질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리나코, 아무래도 시즈코가 걱정되는데..."
"...응, 나도."

시즈쿠가 걱정된다는 것은 진실. 하지만 그 뒤에 숨어있는 질투라는 감정을, 리나는 다시 숨겼다. 감정을 숨길 때는 무표정만큼 편리한 것이 없었다. 최근들어 무표정에 감사할 일이 많은 것이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리나는 알 수 없었다. 짧은 대화 뒤에 다시금 부실 안에는 침묵이 이어졌고, 이번에도 그 침묵을 깬 것은 카스미였다.

"역시 이대로는 안 돼."
"..."
"우리가 시즈코를 응원해 주러 가자."
"어떻게?"
"음... 같이 놀다 보면 괜찮아지지 않을까?"
"시즈쿠쨩, 지금 놀고 싶은 기분은 아닐 거라고 생각해."
"그러니까 리나코의 도움이 필요한 거라구. 둘이서 시즈코를 억지로라도 끌고 가서 놀게 하는 거야."
"...그러다 미움받을지도 몰라."
"..."

카스미의 얼굴이 순간 어두워졌다. 하지만 카스미는 이내 고민을 털어내고서, 결심한 듯이 말했다.

"그래도 시즈코가 기운을 차릴 수 있다면 괜찮아."

그것은 리나에게는 불가능한 선택지였다. 또다시 다른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지 못하면 어떡하지. 또다시 혼자가 되면 어떡하지. 리나는 남에게 미움받을지도 모르는 선택지를 고를 수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카스미는 달랐다. 남들이 보면 눈치 없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카스미는 자신의 의견을 관철해 나갈 수 있는 사람이었다. 리나에게는 그런 카스미가 동경의 대상이었고, 지금의 카스미는 어느 때보다도 빛나 보였다.

"자, 가자! 시즈코를 잡으러!"

4

결론부터 말하자면, 카스미의 계획은 실패했다. 리나쨩 보드로 시즈쿠를 확보하고, 같이 노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시즈쿠는 자신의 마음을 열지 않았다. 시즈쿠가 혼자 돌아가 버린 뒤부터 카스미의 얼굴은 항상 어두웠다. 아까 시즈쿠가 보인 얼굴보다도 어두워 보이기도 했다. 리나와 카스미는 그렇게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각자의 집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 날에도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시즈쿠는 연기 연습을 한다며 아침에 둘을 만나 주지 않았고, 그런 상황 속에서 오전 수업이 머리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리나는 수업을 듣는 척을 하며 머릿속에서 어제 시즈쿠와 했던 대화를 떠올렸다.

'나 말이야, 연기하고 있을 때 가장 당당하게 있을 수 있어. 누구의 눈도 신경쓰지 않고... 자신이 오사카 시즈쿠라는 걸 잊을 수 있어.'
'...자기가 싫은 거야?'
'미, 미안해. 이상한 이야기 해서. 잊어줘?'

그 말을 들었을 때, 리나는 시즈쿠가 자신과 같다는 것을 알았다.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미움받는 것을 두려워하고, 언제나 같은 표정을 짓는다. 리나가 물리적으로 사람들과 단절되어 있었다면, 시즈쿠는 정신적으로 사람들과 단절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을 싫어한다. 바뀌고 싶지만 스스로는 그럴 수가 없다.
아마 나는 시즈쿠쨩에게 도움이 되기 힘들겠지. 리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같은 상처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 상처가 어떻게 생겼는지, 얼마나 아픈지 이해할 수는 있어도, 고쳐줄 수는 없다. 그렇게 생각하던 도중, 수업을 듣던 태블릿으로 1학년 단체 라인이 왔다. 카스미로부터였다.

-오늘 점심 같이 먹을래?-

카스미가 평소에 수업에 얼마나 집중하는지는 제쳐 두고, 수업시간에 라인을 보낸 적은 없었다. 그만큼 카스미도 고민하고 있다는 것이 태블릿 너머로 보이는 듯 했다. 리나는 과연 점심에 무슨 이야기를 해야 좋을지 생각하며, 같이 먹자는 대답을 보냈다. 아마 시즈쿠는 이번에도 연극 핑계를 대며 안 오겠지만 말이다.

5

"몰랐어, 시즈코가 그렇게 완고한 애인 줄은... 뭐가 문제일까?"

카스미는 하늘을 바라보며 한숨을 크게 내쉬고는 그렇게 말했다. 평소의 시즈쿠라면 점심 약속을 거절하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다른 사람의 호의를 거절하는 일이니까. 미움받을지도 모르니까. 지금의 시즈쿠는 그런 것을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몰려 있다고, 리나는 생각했다.
시즈쿠는 소중한 친구였다. 리나는 그런 친구가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다. 그렇게 지금까지 생각해 왔다. 하지만 카스미의 슬픈 표정을 보자, 사실은 카스미가 다시 웃어줬으면 하는 마음이 더 크다는 것을 깨달았다. 언제나처럼 미소지으며 귀여움을 어필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했다. 지금 시즈쿠에게 쏟는 관심만큼, 자기에게도 관심을 쏟아줬으면 했다.
지금의 시즈쿠에게 리나는 직접적인 도움이 될 수 없었다. 하지만 자신의 의견을 밀어붙일 수 있는 카스미라면, 오랫동안 시즈쿠와 함께 스쿨 아이돌을 해온 카스미라면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렇다면 카스미의 등을 밀어 줘야만 한다. 시즈쿠를 위해서도, 카스미를 위해서도, 리나 자신을 위해서도. 리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드물게도, 리나가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분명, 지금의 시즈쿠쨩도 시즈쿠쨩이라고 생각해."
"엣?"
"나도 조금 비슷했으니까 알고 있어. 자신이 싫은 마음."
"..."
"내 때는 아이씨가 꽉 끌어당겨 줬어. 모두가 응원해 줬어. 그래서 라이브를 할 수 있었어. 나에겐, 아이씨가 있었어."

리나는 여기에서 말을 한 번 끊었다. 과연 지금의 말은 카스미에게 전해졌을까. 자신이 카스미를 좋아한다는 사실도 이렇게 전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리나는 이렇게 생각하며, 카스미의 등을 밀어 주었다.

"시즈쿠쨩에게는..."
"나, 갔다 올게!"
"...화이팅!"

카스미는 먹던 빵도 놔두고는 급하게 뛰어갔다. 카스미는 리나가 응원하는 목소리에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이제는 전진뿐이었다. 카스미의 행동력, 굳은 결의. 모두 리나가 좋아하던 것들이었다. 하지만 리나는 그것이 자신을 향한 것이 아니라는 것에 가슴 한켠이 아려오는 것을 느꼈다.
분명 카스미쨩은 모두에게 저런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겠지. 리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불안을 지울 수 없었다. 요 며칠 카스미의 행동은, 카스미임을 감안하고 봐도 과한 측면이 있었다. 과연 저것이 순수한 우정에서 나오는 행동일까. 불안해진 리나는 몰래 카스미의 뒤를 쫓았다.
리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이 카스미를 놓쳤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리나는 예상되는 곳을 전부 뒤져보기로 했다. 부실에도, 식당에도, 안뜰에도 카스미와 시즈쿠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리나는 시간이 좀 지난 뒤에야 시즈쿠의 교실에서 둘을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리나는 곧, 이 장소에 찾아온 것을 후회했다.

"어쩌면, 시즈코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오사카 시즈쿠가 정말 좋으니까!"

듣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카스미의 목소리가 리나의 머릿속에서 계속 울리는 듯 했다. '나는 오사카 시즈쿠가 정말 좋으니까!' 그 말을 할 때 카스미는 무슨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 리나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카스미를 보던 시즈쿠의 표정으로 미루어 보아, 그것은 아마 리나나 다른 친구들에게는 보여주지 않았던 표정일 것이었다. 시즈쿠에게만 보여주는, 그런 표정일 것이었다.
시즈쿠를 보고 있는 카스미와, 카스미를 보고 있는 시즈쿠. 분명 일순간이었지만 그것을 뒤에서 바라보는 리나에게는 영원과 같은 시간이었다. 카스미가 시즈쿠에게서 고개를 홱 돌리자, 리나는 반사적으로 창문 아래로 빠르게 숨었다. 그리고는 그 교실에서 등을 돌려 걷기 시작했다. 걷다 보니 걷는 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해서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이상하게도,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6

"리나코, 괜찮아?"
"..."
"리나코?"
"...아, 카스미쨩."
"연습 동안에도 계속 멍하니 있고... 무슨 일 있어?"

계속 너를 보고 있었어. 리나는 그렇게 말할 수 없었다. 카스미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다. 카스미의 어두운 표정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리나는 애써 밝은 척을 하며 스케치북을 꺼냈다.

"아니야, 오늘도 잘 부탁해."
"그렇다면야... 그건 그렇고, 이것도 벌써 마지막이네."
"...그러네."
"그럼 오늘도 저번처럼 할까?"
"응."
"저번엔 내가 먼저였으니까, 이번엔 리나코가 먼저 해."

저번처럼 웃으며 질문을 주고받고, 웃으면서 헤어진다. 그것으로 끝날 일이었다. 다음 주부터는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리나의 입은, 리나의 생각과 전혀 다른 말을 하기 시작했다. 아아, 나는 아직 카스미쨩을 포기하지 못했구나. 리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카스미쨩은, 시즈쿠쨩을 좋아해?"
"무, 무슨 소리야, 리나코."

카스미는 당황을 감추지 않고 표정에 드러냈다. 리나는 그런 카스미를 그저 바라보고 있었다. 한 점의 변화도 없는 표정이 카스미를 응시하고 있었다. 카스미는 눈동자를 여기저기로 굴리며 대답을 생각하고 있었다. 카스미는 리나에게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당연히 좋아하지! 시즈코도 리나코도 유우 선배도..."
"시즈쿠쨩을 친구로서 좋아해? 아니면..."
"지, 질문은 한 번에 하나잖아."
"대답해 줘."
"...카스밍이랑 시즈코가 말하는 거, 본 거지?"
"응."

카스미는 오랫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카스미의 몸이 대답을 대신 하는 것만 같았다. 카스미의 얼굴이 점점 붉어졌다. 입끝은 파르르 떨리고, 눈은 꼭 감은 채였다. 갈 곳을 잃은 손은 허공을 휘적이고 있었다. 리나는 이미 대답을 예상하고 있었다. 질문하기 전부터, 방에 카스미가 들어오기 전부터 그 대답은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카스미가 대답하지 않기를 바랐다. 얼마나 지났을까, 리나의 바람과는 달리 카스미는 입을 열었다.

"나는 시즈코를, 사랑해."

카스미는 리나에게서 눈을 돌린 채 그렇게 대답했다. 카스미의 대답을 듣자, 리나는 카스미가 짓는 표정을 스케치북에 그대로 옮겼다. 손끝이 떨리고 있었지만 이 그림만큼은 완성하고 싶었다. 스윽, 스윽. 부실 안에는 스케치북 위를 움직이는 펜의 소리밖에 남지 않았다. 그림이 완성되자, 리나는 스케치북을 들어 자신의 얼굴을 가렸다.

"리나쨩 보드, [사랑하는 소녀]."
"지금까지 리나코가 그린 것 중에 가장 잘 그린 거 같아."
"그렇구나."

그리고 리나는 스케치북의 그 페이지를 뜯었다. 부욱, 하는 소리가 부실에 울렸다. 과연 그 소리는 스케치북에서만 나는 소리였을까, 리나는 알 수 없었다. 리나는 그렇게 뜯은 페이지를 카스미의 손에 쥐어 주었다. 보드를 넘겨 주면서도 카스미의 손이 따뜻하다고 느껴 버리는 자신에게 놀라면서.

"이건, 답례. 그 동안 고마웠어."
"하지만 이건 리나코가 쓰는 게..."
"...아마 나는 쓸 일 없을 거야."

카스미는 리나의 어깨에 손을 올리려 했지만, 리나가 몸을 피해버렸다. 마지막의 마지막에 와서야 마음을 전할 수 있었다. 카스미에게도 그 마음이 닿았을까. 리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말했다.

"부적이라고 생각해. 아마 시즈쿠쨩, 둔감하니까 아까 그것도 고백이라고까지는 생각 안 할 거야."
"..."
"응원할게. 이제 시즈쿠쨩한테 가 봐."
"...고마워, 미안해."

카스미는 리나를 뒤로 하고 부실에서 조용히 나갔다. 리나는 스케치북의 뜯긴 자국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리나는 마음의 한 구석이 뜯겨나간 기분을 느끼면서 스케치북을 보고 있었다. 그러다 스케치북을 한 장, 또 한 장 뒤로 넘기며 이번 주에 그렸던 그림들을 보기 시작했다. 놀려서 화내는 얼굴, 이야기하다 웃는 얼굴, 얼굴, 얼굴, 얼굴. 모두 카스미의 얼굴이었다. 마지막에는 아직 완성시키지 못한, 처음으로 그리던 그림이 있었다.

"정말로, 귀엽지 않네..."

스케치북 위에 눈물이 떨어졌다. 한 방울, 두 방울. 세는 것조차 힘들 정도의 눈물이 그림 위로 떨어졌다. 웃는 얼굴이었을 터인 그림이 마치 우는 얼굴처럼 변할 때까지 리나의 눈물은 그치지 않았다. 리나의 첫 사랑은, 마치 리나가 지금 보고 있는 그림처럼 완성시키지 못한 채로 끝나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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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디어 착상은 여기서
리나와 시즈쿠는 닮은 점이 꽤 있는 캐릭터라고 생각함
그렇다면 둘 모두 카스미를 좋아하는 이유도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해 봄
이렇게 줄글로 쓰는 건 카스미 무적급 때 쓴 거 이후로 오랜만인데 잘 써졌는지 모르겠다
줄글이 상황 설명이나 심리 묘사에는 좋은데 그만큼 필력이 딸리면 바로 보이는 거라

다음에는 가벼운 작품으로 돌아오지 않을까 싶다
최근 너무 1학년 위주로만 써서 2학년 정모라던가 써보고 싶음
여기까지 읽어줘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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