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흘러 다시 써본 ‘스토브리그’
이야기
극본:이신화
연출:정동윤
남궁민,오정세,박은빈…..
스피노자의 인용을 생각하며 떠오른
볼만했던 재난영화 ‘딥임펙트’와 실화소재영화 ‘우생순’
‘내일 멸망할 지구에 왜 자꾸 사과나무를 심지?’
유명한 철학자 스피노자에 대한 의도적인 인용입니다.
정확한 표현은 아마 ‘나는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 해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일 겁니다.
왜 그런 말을 했을까요?
시대를 풍미한 현자의 마음을 헤아리기는 어렵겠지만
저라면 ‘불굴의 신념’이나
‘희망의 소중함’이란 의도를 담아 그리 말했을 것 같습니다.
꺾이지 않는 백승수의 의지인 동시에
우승 후 해체라 해도 그 우승으로 얻은 기쁨과 자신감은 남겨질 혹은 흩어질 사람들에게
삶을 버티게 하는 자양분이 되고 소중한 추억이 될 것입니다.
이전의 백승수 단장이 좌절을 겪으면서도 그저 허무하지 않았을 이유일 것이며
윤성복 감독을 연기한 배우 이얼 덕분에 자연스레 연상된
임순례 감독의 수작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도 자연스레 겹쳐집니다.
‘저희도 올림픽 때는 핸드볼 봐요.ㅋ’ 란 대사가 나오기도 했죠.
억척스런 아줌마들의 생활력 혹은 생명력과 김정은 캐릭터의 헌신,
연인이었던 남자감독과의 화해와 감독의 태도의 변화,
반목하던 어린 선수들과 한 팀이 되어가는 과정,
박원상이 연기한 남편캐릭터 그런 것들이 두고두고 생각이 납니다,
매너리즘에 빠졌던 마케팅팀장 임미선이 그런 아줌마겠지요.
사람들은 무시하고 쉽게 보지만 그런 대접을 받을 존재들은 아닙니다.
‘하나의 팀이 되어간다는 것’은
우리 드라마에서도 효과적으로 이야기되었지요.
또다른 영화 ‘딥임펙트’도
생각이 났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국내개봉되었던 ‘아마겟돈’이 오글거리고 지루했다면
이 작품은 상당한 생각거리를 주었습니다.
내가 저런 상황에 직면한다면 나는 남은 시간 동안 무엇을 할 것인가?
당장은 선뜻 떠오르지가 않네요.
맴도는 선택지들은 몇 보이지만 그렇습니다.
특히 좋아하는 장면은 엔딩 즈음의 아버지와 딸이 죽음을 앞두고 화해하는 장면입니다.
그것은 분명 죽음이요 소멸이며 멸망이지만 과연 무가치한 것일까요?
아니라고 확신합니다.
비교한 작품 속 부르스 윌리스 캐릭터의 마지막과 비교하면 더욱 그렇지요.
스피노자도 이신화 작가도 비슷한 시각일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극의 후반부에 바이킹스 단장 김종무가 리빌딩을 서두르는 모습에서도
비슷한 감흥을 받게 됩니다.
포기는 신중하되 가능한 한 빨라야 하니까요.
그것이 단장이 해야 할 일입니다.
그가 고통스러운 전략변경을 서두른 덕분에 구단의 암흑기는 짧아질 것입니다.
겨울이 지나면 언젠가는 봄이 찾아오겠지요. 지금 이 시기처럼요.
메마른 가지에 차츰 푸른 잎들이 자라날 겁니다.
그것은 인간이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섭리죠.
막판 전개가 매끄럽지는 못했으나
결국 반목하던 백승수와 권경민은 자신들이 가꾸어온 사과나무를 기어이 지켜냅니다.
2. 강두기는 맞고 임동규는 틀렸던 이유에 대하여
영구결번의 자격, ‘내
팀’이 아닌 ‘우리 팀’이다.
강두기는 옳았고 임동규는 틀렸습니다.
그러는 한 두 사람은 한 팀이 될 수 없었습니다.
임동규는 자신이 얼굴이 되는 드림즈를 원했고,
강두기는 그저 드림즈의 일원이기를 바랐으니까요.
‘드림즈도 팀이다. 잘
하면 사람들이 박수 쳐준다.’
‘이제 제게 남은 유일한 목표는 드림즈의 영구결번 선수가 되는 겁니다.’
그 결정적 차이를 신임 단장 백승수는 한 눈에 간파합니다.
그것이 그의 중요한 능력이죠.
적재적소와 추진력, 눈썰미, 합리적이고
견고한 철학….
파워게임에서 황당하게 밀려 트레이드당했던 임동규는 거기서 많은 생각을 했을 겁니다.
따돌림의 주체였던 이가 객체가 되어본 후에야 자신의 잘못을 뉘우칠 수 있겠지요.
그렇게 열심히 야구만 하는 놈 처음 봤다는 김단장의 말은
할 것이 야구 밖에는 없었던 임동규의 처지가 빠져 있습니다.
물론 와신상담의 오기도 이유였겠지만요.
마치 성서에 등장하는 집 나간 아들의 변화된 귀가가 이야기하듯 그 시련을 통해서야
임동규는 ‘드림즈’란 가족의
일원이 될 수 있었지요.
돌아온 임동규는 단골집이었던 칼국수의 맛을 다시 즐길 수 있지 않았을까요.
백승수와 권경민의 차이 역시 그것이었죠.
그저 자신의 자리에서 조직을 위해 묵묵히 할 일을 하는 자인가?
아니면 자신의 전리품으로 여기며 조직을 깨뜨리는 자인가?
우리는 어떤 사람입니까?
지금 여기 이 사회가 사람이 살기 힘들어진 이유 역시
이 질문 안에 들어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생활의 발견’이란 영화에
보면 이런 표현이 등장합니다.
동양고전의 인용으로 보입니다만.
‘우리 사람은 못 되어도 괴물은 되지 말자.’
비슷한 맥락입니다.
새해에는 내가 조금은 사람에 가까워지기를 바라고 또 바랍니다.
자연스레 권경민의 부모님과 인생 이야기로 가보려 합니다.
3. 권경민의 현재를 만든 아버지와 큰아버지를 중심으로
사람과 괴물, 혹은
진짜와 가짜, 성숙과 미성숙 그리고 아들과 아버지.
나이를 먹었다고 하여 사람이 아니며 더군다나 어른이 되는 건 아니지요.
여러분도 알고 저도 압니다.
하지만 이런 당연한 사실을 죽었다 깨어나도 모르는 이들이 있습니다.
지금 제가 글을 쓰는 피시방에도 몇 분 계시네요.
권경민의 가족사는 그를 이해하기 위한 결정적인 참고자료입니다.
아버지는 가방끈은 짧을 지라도 사람이 일을 하고 가족을 건사하며 무엇을 지켜야하는 지를 아는 분이었죠.
‘사장님 참 대단한 분이었는데….’
그 노인의 추억을 정작 아들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저 어린 시절의 기억을 잠시 더듬을 뿐이죠.
어쩌면 백승수라는 별종을 처음으로-아주 처음은 아니었겠지요. 자신이 기어이 길들이거나 축출한 이들에 대한 기억에 대한 대사가 나오니까요.-
맞닥뜨리며 흔들리고 있는 자신에게서 경고등이 울렸을 겁니다.
‘그깟 어린 시절 뭐가 좋다고? 그만
무시해 버려!’
‘제가 잘 하면 당신들이 다르게 대해줍니까?’
‘다르게 대해주지!’
‘아니던데요. 더 이용만
하던데요.’
백승수의 말에는 이 사회를 꿰뚫은 통찰에서 온 진실이 있고,
권경민은 무의식적으로 희망고문을 겪는 중입니다.
‘언젠가는 큰아버지가 나를 제대로 인정해 줄거야.’
이해하지도 좋아하거나 존경할 수도 없는 아버지의 존재는
권상무에게 풀기 힘든 숙제였을 겁니다.
조금 곁가지로 빠지면
‘골든타임’의 장면들에
깔려 나오는 에브리싱글데이의 ‘father’가 명곡인 이유이죠.
‘거울 속의 난 당신을 닮아가고
현실 속의 난 당신과 멀어지고
추억 속의 난 당신을 동경하고
기억 속의 난 당신을 미워하고…’
가사 예술이지 않나요.
미침 설이네요. 제게도 여수에 살고 계신 아버지와의 불화는 그저 난제일
뿐입니다.
머리와 가슴이 따로 놀고 있지요.
‘아들이 아버지한테 그 정도 돈도 못 드려요?’
아버지는 왜 아들의 돈을 받지 않았을까요?
그 돈의 이면을 꿰뚫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 치킨을 사들어간 저녁 어린 아들의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는 낙으로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한동안 하실 수 밖에 없었겠지요….
그게 우리 아버지들입니다.
이제 어떤 분들은 그 자리를 물려받으셨겠네요.
모두들 고단해도 힘내세요!
삼천포로 빠지고 있지만
그게 남자의 숙명이며 모순되게도 행복 아닐까요?
종반의 전개가 좀 다른 드라마 같았다 불평도 하시지만
그래서 전 권상무가 사표와 함게 등록금 신세진 것을 계산해 떨구고
감옥 같았던 회장실을 나서는 모습이 참 통쾌했습니다.
비슷한 감정을 ‘결혼계약’의
이서진(한지훈)의 한 클라이막스에서도 느꼈지요.
물론 그는 되려 아버지의 세계를 벗어나는 순간이었지만
드디어 벗어던진 넥타이에 제 목덜미가 시원해지는 느낌이었으니까요.
좀 피곤해지고 이만하면 읽을거리로 괜찮겠다 싶어
이번 글은 여기서 맺겠습니다.
연휴 마지막 날 마무리 잘 하시고
건강하시고 가내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내 인생 챙길 여유가 없다 해도 사적인 계획 하나 쯤은 정하셔서 기어이 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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