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소장, 이고림이 탄 차량이 황실 영빈관 앞에 멈춰섰다.

연신 땀을 닦아내는 이고림은 미리 군복 안, 살결에 땀을 흡수시키기 위해 넣어둔 수건을 꺼내 차 뒷자리에 대충 집어던졌다.

차량 유리가 짙게 선팅되어있는 것이 퍽 다행이었다.

그러나 이건 비단 이고림이 아니더라도 고위급 장교라면 누구나 이럴수밖에 없을 것이다.

황실에서 직접 호출한다는 것은 두가지를 의미했다. 그사람의 인생이 편해지거나, 아니면 나락으로 떨어지던가.

전자는 거의 존재하지 않고, 후자는 꽤나 흔한 일이었다.

황실 예법을 필사적으로 떠올리면서 이고림은 차에서 내렸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예복을 입은 집사장이 한마디를 툭 던지고 절도있는 걸음거리로 건물 안에 들어갔다.

"소장 이고림, 황제 폐하의 명을 받아 이곳에 왔습니다."

"왔군요, 이고림. 앉으시오."

황제가 외피를 우아하게 펄럭거리며 말했다. 황제 혼자는 아니었다, 물론.

국방부 장관과 차관은 알아볼 수 있었지만, 딱 봐도 중앙정부부서에 한자리 차지한듯한 사람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문서와 지도, 디스플레이를 조작하고 있었다.

"이고림, 혹시 아에시르와 위드라에 대한 이야기는 들었소?"

"외계종족이 살고 있는 그 원시행성 말입니까? 네, 잘 알고 있습니다."

"간단히 말하겠소. 두 행성 모두 정복하시오."

"....네, 알겠습니다."

"카고그, 쉬글라르그. 그에게 정보를 전달하도록."

황제가 명을 내렸다. 국방부 차관과 카고그라는 인물이 이고림을 데리고 방 밖으로 나갔다.

"오랜만이군, 이고림. 축하하네. 자네 승진했어."

"죄송하지만 차관님. 아직 무슨일인지조차 듣지 못했습니다."

"미안하군, 지금 우리가 모인것부터가 1급 군사비밀이라."

카고그가 어떤 방 앞에서 걸음을 멈추더니 문을 열었다. 방 안에 왠 거대한 천막같은 것이 설치되어있었다. 그들이 천막 속에 들어가자, 카고그가 천막 문을 닫았다.

"인사가 늦었군. 반갑네. 제국정보국 국장 카고그라네."

"만나서 영광입니다."

"난 알테니 넘어가고, 그럼 브리핑부터 시작하도록 하지. 간단해. 행성방위군에서 추천과 지원을 받아서 모은 인력들이 있다네.

뭐, 자네 사단에서도 몇백명정도 뽑았으니 알테지.

이들은 표면적으로는 항성기지와 전초기지 방어와 수많은 우주 채굴 스테이션의 경비를 위해 모집되었다고 하지만, 사실 이건 핑계일 뿐이네."

쉬글라르그가 이고림에게 문서를 내밀었다.

그가 이제부터 통제해야할 2개 사단 병력 및 장비들을 담은 명단과 아에시르와 위드라의 간략한 3차원 행성표면지도,

초보적인 작전개요와 수많은 보급작전서와 군수지원서가 포함된 두툼한 문서였다.

빠르게 문서를 훑어보던 이고림의 얼굴이 어두어졌다.

"죄송하지만, 이건 불가능합니다."

"알아." 두사람이 예상하는 반응이었다는듯 즉각 대답했다.

"차장님!" 이고림이 쉬글라르그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쉬글라르그는 그를 외면하며 고개를 저었다.

고작 3만명분의 병력으로 행성 전체를, 그것도 2개나 점령하라니. 말이 되는 소리가 맞는지는 그렇다고 쳐도 물리적으로 그게 가능할지조차 짐작가지 않았다.

거기다. 이고림이 다시 한번 문서를 읽어보았다.

이고림의 문자해독능력이 몇시간 만에 퇴화한것이 아니라면, 작전은 최대 3년안에 마쳐야 할정도의 군수지원능력밖에 포함하고 있지 않았다.

물론, 행성 2개를 모두 점령하는 것이 전제인 명령서였다.

"차장님, 국장님. 저는 군인이고, 국가를 위해 모든것을 희생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만약 황제 폐하께서 저보고 죽으라고 한다면 그대로 하겠습니다. 그렇지만 이 명령은, 이 명령은! 대체 어째서입니까?"

"1급 군사비밀이네."

"아니, 설명해주도록 하지."

이고림과 쉬글라르그가 놀라서 카고그를 쳐다보았다. 하긴 누구라도 제국정보국 국장이 직접 1급 비밀을 가르쳐주겠다는데 놀라지 않을 사람이 있겠냐만서도.

"알디브 성계와 베른 성계로 우리 라이피안 제국이 확장하고 있다는건 알고 있겠지?"

잘 알고 있었다. 아에시르 성계와 엎어지면 시기관이 닿을 정도로 가까운 곳에 있었으니.

"거기서 대규모 외계 우주함대가 발견되었다네. 심지어 베른 성계에는 우리의 항성기지와 유사한 영구 궤도시설물까지 발견되었고.

다행스럽게도 베른 성계의 외계 함대는 우리에게 별 관심을 두지 않는것처럼 보이는데, 진짜 문제는 알디브 성계야. 놈들은 돈타우르 성계로 넘어올려고 하거든.

그리고 혹시나 해서 탐사정을 몇척 보내봤는데, 그냥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우리 과학선까지 공격하더라고."

이고림의 숨이 턱 막혔다. 돈타우르 성계가 어딘가. 바로 그가 점령해야하는 아에시르 성계의 바로 옆에 붙어있는 성계가 아닌가.

"더 재미있는 사실 알려줄까."

카고그가 이고림을 재밌다는 듯 쳐다보며 말했다

"돈타우르의 5번째 행성에서 우주탐사국장 샤블리굼 박사가 정체불명의 인공구조물을 발견했네.

처음에는 궤도거주지 같은건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외계인들의 전함이었고."

무려 우리 항성기지보다 더 크다네. 카고그가 웃으면서 뒷말을 덧붙였다.

"그래서....그럼..."

"음. 우리 우주 함대사령관으로 임명된 호그가가 제독이 그거 타고 외계함대를 무찌르러 이동중이네."

"그, 그럼 우리 함대는....?"

"놈들의 함선보다 우리 함선이 더 작고 무장도 빈약하다고 판단,

우리 함대는 만약 호그가가 제독이 실패할 경우 우리 항성기지를 방패삼아 유격작전을 벌이며 최대한 시간을 벌려고 한다.

그렇지만 그 전에, 자네의 역할이 더 중요하지."

그렇군. 이고림이 절로 체절을 주억거렸다.

확실히. 굉장히 엉성하고 운에 모든 것을 맡겨야하는 작전임은 분명하지만, 그 명령 자체는 굉장히 합리적이라는 사실이 아이러니했다.

"만약 놈들이 아에시르를 우회한다면 어떻게합니까?"

"뭐, 라이피안 성계에서 막아내기를 빌어야지." 카고그가 무심한 얼굴로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