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한시가 넘어도 나의 시계는 계속 돌아간다

딸깍 거리는 마우스, 따박거리는 소리를 내는 키보드

컴퓨터는 나의 친구이다

컴퓨터가 없었더라면 난 이 현대 사회에서 살아남지 못했겠지

아마 고대시대였다면 나는 이미 기분나쁜 마녀로 매도당해서

화형되어 바작바작 구워지고있겠지

뭐 아프지만 않다면 그것도 나쁘지만도 않지만..

컴퓨터 덕에 내가 사회에서 하나의 도구로 이용되는거고

컴퓨터 덕에 밑에 얘들이 궁시렁거려도 상사로 받아주는 거겠지

조증과 울증이 이주정도 주기로 왔다갔다하는 것이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조증때는 회식도 나가고 일도 수임하고 그걸 받아서

내가 할수 있는 선에서 막 처리하고

울증때는 새로 들어온 새내기들에게 맡기고

난 딱 8시간만 일하고 집으로 들어가는 삶이

회사에서 사회에서 용인된다는게 신기하기만 하다

부장 왈 놀때는 잘놀고 일할때는 열심히 하고

그러다가 건전지 빳데리가 나가면 조용히 뒤에서

신입들 일을 분해해서 떠먹여주는 덕장이라고 하는데

나는 그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사실 신입들을 못 믿어서 내가 거의 다 하는건데

그게 리더쉽이라고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물론 신입 새내기들은 그것도 일이 많다고 개소리를 하지만..

문득 키보드를 멈추고 생각을 해보았다

언제까지 이 일을 계속할수 있을까

승진을 하면서 일감은 더 많아졌는데

언제까지 내가 대부분의 일을 하면서

사소한 디테일까지 캐치를 할수있을지 모르겠다

이 일이 나를 잠식해 가는 느낌이다

대학교때는 모든 일을 처리하고도 시간이 남아서

나름 행복했던 연애도 해봤고

온라인 쇼핑에서 플로럴한 옷들도 사보고 그랬는데

요즘에는 일-디씨관리-잠의 연속일 뿐인데도

그러고도 시간이 부족해 허덕인다

초라한 내 집의 옷장을 둘러보면 검정 양복 하얀색 블라우스

더이상 플로럴한 옷은 보이지 않는다

갈수록 밤에 동화되어가는 것 같다

딸깍거리는 키보드와 따박거리는 마우스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