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1월, 나는 한 LCD 관련부품 생산업체의 준공식에 참여하고 있었다. 투자유치를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뛰어온 결실을 확인하는 자리여서 무척 마음이 들떠 있었다. 그때 곁에 있던 LCD 관련업체의 참석자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지사님, 제가 아는 일본의 한 LCD 회사가 한국 진출을 검토하고 있던데요?”
“거기가 어딘데요?”
‘한국 진출’이란 단어에 귀가 번쩍 띄어 다그치듯 물었다.
“자세한 건 잘 모르겠습니다만 일본의 LCD GLASS 생산업체인 NH테크노글라스라는 회사입니다. 한국에 1억 달러 이상 투자하려고 한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이 내용이 사실이라면 초대형 외자유치 정보였다. 준공식 내내 머릿속엔 ‘NH테크노글라스’라는 생면부지의 회사 이름만 뱅뱅 돌았다. 마침 실무자가 곁에 있어서 바로 지시했다.
“NH테크노글라스라는 일본 회사 정보 좀 알아봐주세요.”
며칠 후 실무 담당자들이 추가로 알아낸 정보를 정리해서 보고했다.
NH테크노글라스는 첨단기술 업종임에도 상장기업이 아니라는 것, 그래서 정확한 회사 정보와 담당자 정보를 알아내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는 것, 아직 한국의 어느 곳과도 실질적 논의에 들어가지 않았다는 것, 투자 금액은 1억 5천만 달러 정도라는 것이 전부였다.
당장 NH테크노글라스를 찾아가 사실 확인을 하라고 지시했다. 며칠만에 마침내 NHT 담당자와의 통화가 이뤄졌다. 우리 정보가 거의 정확하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우리 실무자들에게 무조건 미팅 날짜를 정해 NHT 본사인 요코하마 사무실로 쳐들어가라고 했다.
이렇게 해서 정보를 입수한 지 19일 만인 12월 8일, 우리는 일본의 NHT 경영진 중 한사람인 사카모토 고문과 첫 미팅을 가졌다. 물론 설득 자료와 다른 기업의 성공사례까지 함께 준비해갔다.
당시 NHT는 싱가포르에 거점이 있어서 싱가포르냐 한국이냐를 놓고 저울질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사카모토 고문 역시 NHT 싱가포르 책임자였다. 그런데 경기도에서 적극적으로 달려들자 관심이 서서히 한국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이후 NHT와 접촉이 잦아졌다. 서울에서 NHT 실무진과 함께 만찬도 하고 사카모토 고문이 나를 직접 만나러 호텔에 와서 기다리는 일도 있었다.
그 결과 우연히 정보를 얻은 지 채 석 달도 되지 않은 2004년 2월 17일, 마침내 NHT와 투자 의향을 나타내는 LOI를 체결했다.
NHT사의 투자 유치에서 가장 큰 문제는 부지 확보였다. 생산 공정의 특성상 가로 230m, 세로 340m, 면적 24,000평 이상이 확보되어야 하는데 이런 조건에 맞추기 위해서는 진행 중이던 현곡산업단지 조성사업을 전면적으로 수정해야 했다.
NHT의 유치가 한국 LCD산업 발전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산업단지 추진계획을 변경하는 한이 있더라도 요구사항 대로 투자환경을 마련해주겠다고 결심했다.
2004년 5월말 일본을 방문했을 때 NHT사의 투자 의지와 입장을 다시 확인한 후 경기도지사의 이름을 걸고 NHT의 요구대로 추진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내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이렇게 최선을 다해 NHT의 요구에 응해 주었는데도 NHT는 투자를 실행하지 않고 미적대는 모습이었다. NHT 자체가 HOYA와 NIPPON SHEET GLASS가 각각 50% 지분을 갖고 있는 회사라 신속한 의사결정이 어려운 내부의 사정도 있었고 10년간 조세감면 혜택을 확실히 받아야 최종 투자결정을 내리겠다는 속내도 있었다.
NHT가 원하는 모든 것을 들어주기로 하고 여러 가지 조치를 통해 2004년 10월 11일 10년간 조세감면 대상 업체로 선정되었다는 사실을 NHT에 통보했다. NHT는 비로소 경기도에 대한 확고한 신뢰를 갖고 만족해했다. 11월 15일 드디어 투자결정을 의미하는 MOA를 체결하게 되었다. 그러나 MOA 체결 이후에도 산 넘어 산이었다. NHT는 당초 2005년 8월에 착공하겠다는 계획을 갑자기 당겨 2005년 3월에 착공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해왔다.
건설 시공을 맡은 시공사와 협의하여 개발과 실시계획 변경을 거치지 않고 1차적으로 착공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내 평탄화 작업을 했고 결국 2005년 3월 21일 공장 건설을 위한 첫 삽을 뜰 수 있었다.
그것뿐이 아니었다.
당초 2,500톤 규모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일일 필요 용수량이 사업 확장으로 인해 4,500톤, 6,000톤, 7,200톤으로 증가했다. 용수 공급도 문제였지만 그에 따른 폐수처리를 위해 220억 원 이상을 투자해 폐수처리시설을 증설해야만 했다.
외국기업, 그것도 자국의 기술을 좀처럼 밖으로 내보내려고 하지 않는 일본기업을 유치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점이 하나둘이 아니다. 투자기업 입장에서도 회사의 존망이 걸린 만큼 천문학적 투자를 앞두고 하나하나 점검하고 최대한 유리한 조건을 얻어내려고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작은 정보 하나로 시작된 NHT의 투자 유치 건은 기대 이상의 결실을 맺으면서 해피 엔딩으로 끝났다. 앞으로 또 무슨 암초가 나타날지 모르지만 별로 걱정되지 않는다. 그동안 수많은 산을 함께 넘어온 백전노장의 우리 경기도 찍새와 딱새들을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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