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는 예전에 3가지 종류의 우정에 대하여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그가 언급한 3가지 우정 중 하나는 효용성에 토대를 둔 우정이다. 이 우정은 단순히 사회경제적 이득을 위한 우정이며, 한쪽 혹은 양쪽 모두 이득을 보지 못한다고 느끼게 되는 순간 파탄나는 우정이다.
오늘날 이런 우정 관계는 국제정치에 쉽게 대입 가능하다. 이번 이야기들의 주인공들도 이런 케이스다. 그들의 우정은 겉으로는 돈독해보이지만 실제로는 순전히 이득을 위한 것이고, 이들의 이익이 서로 충돌하는 지점이 있다. 이 이야기에서 두 친구는 중국과 러시아다. 그리고 그들의 이익이 충돌하는 지점은 중앙아시아다. 아직 끝나지 않은 이 이야기는 이 중앙아시아라는 땅의 특징과 역사에서부터 시작한다.
중앙아시아 지역은 광활한 초원과 사막으로 되어있는걸로 유명하다. 중앙아시아는 내륙해 카스피해를 제외한다면 맞닿아있는 바다가 없고, 따라서 무역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해양 교역에 직접적인 접근성이 매우 떨어진다.
반대로 중앙아시아는 유라시아 주요 문명권들의 교차로기도 하다. 중앙아시아는 중동과 인도, 중국과 우크라이나를 전부 이어주는 일종의 관문 지역이다. 이런 중앙아시아의 지리적 여건은 실크로드를 비롯한 육로 무역이 번성하던 시절에 이 지역을 부유하게 만들어 주었고, 이는 오늘날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에도 영감을 주었다. 또한 과거 대영제국과 러시아 제국의 세계적 대결인 그레이트 게임의 중심지가 되기도 하였다.
중앙아시아는 전통적으로 유라시아 유목 민족들의 터전으로 작용해왔다. 스키타이, 흉노, 아바르, 마자르, 튀르크, 몽골, 타타르, 오이라트, 중가르 등등 수많은 유목민들이 유라시아 대평원을 누비며 정주민들을 약탈했다. 중앙아시아의 깊숙한 내륙지대는 유목 세력들이 이따금씩 정주민들에게 패배할때마다 이들을 위한 안식처가 되었다.
하지만 기술이 발전하면서 광대한 유목 제국들은 쇠퇴하기 시작했다. 항해술의 발전은 해상무역 혁명을 일으켜 전통적인 중앙아시아 육로 교역에 크나큰 타격을 주었다. 총포의 발달은 유목민들의 기병 부대가 더이상 전투에서 우월한 위치에 서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농업의 비약적인 발전은 유목민들의 숫적 열세를 더욱 심화시켰다.
이런 유목민들의 쇠퇴에 쐐기를 박았던 사건은 1700년대 중반 청의 중가르 정벌이었다. 청나라는 발전된 기술로 준가르족을 격파하였고 아예 몰살시키려 들었다. 중가르인들은 중앙아시아 내륙 깊숙히 후퇴하여 재정비하려 했지만, 그들은 그러지 못했다. 유목민들의 땅에 러시아라는 전혀 새로운 대륙 세력이 들어섰기 때문이다. 결국 준가르인들은 청나라에게 학살당하거나 러시아로 도망쳐 동화되었다.
러시아 제국의 동진은 1600년대부터 본격화되었다. 이미 1600년대 말에 청나라, 조선과 극동에서 충돌한 적이 있었다. 러시아는 1800년대에 중앙아시아 칸국들을 차례대로 집어삼켰으며 유목민의 땅을 청나라와 사실상 양분하게 되었다. 또한 제2차 아편전쟁 때부터 다시끔 청나라에 눈독을 들였다.
그후 1862년, 청나라는 위구르 지역에서 무슬림 대반란을 겪게 된다. 여기서 등장한게 서투르크스탄 출신 야쿱 백이다. 그는 혼란을 틈타 대활약을 펼치며 청군을 물리쳤고, 나중가서는 자신의 독립 국가 카슈가리아를 선포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슬람 근본주의 통치와 위구르인 탄압 및 다른 무슬림들에 대한 공격으로 처음에 호응하던 수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잃었고, 이후 청나라가 재정비하고 쳐들어오자 패배하며 죽는다.
문제는 그 사이였다. 러시아 제국은 1871년에 자국민 보호 및 무슬림 세력으로부터의 보호를 명목으로 친-야쿱 벡 봉기가 벌어진 일리 지역을 점거했다. 그리고 청나라가 야쿱 벡 세력을 완전히 물리친 1877년에도 일리 반환을 거부했다. 쇠퇴하던 무슬림 유목민들이 아닌 러시아가 진정한 북방 오랑캐로 각인되는 순간이었다.
청나라는 서방 국가들에게 도움을 요청해야했다. 청나라는 독일에서 현대적 총기를 여럿 수입하는 등 군 현대화에 박차를 가했다. 그리고 당시 중앙아시아 뿐만이 아니라 거의 전 세계에서 러시아와 경쟁을 벌이던 영국에게 지원을 요청했다(재밌게도 영국은 야쿱 벡의 후원자였다). 영국은 이에 청나라를 외교적으로 지지하는 한편 찰스 고든 장군을 파견해 청을 군사적으로 조언했다.
영국을 앞세운 청의 압박에 러시아는 결국 1881년 청에게 일리를 반환한다. 하지만 러시아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앙아시아에서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증대시키려 들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만주 개입 말고도 몽골과 티베트에서도 지속적인 영향력 확대가 있었고, 무슬림 칸국들의 병합도 1895년까지 계속되었다.
이후 러시아 제국과 청나라는 모두 각각 러시아 혁명, 신해 혁명으로 몰락한다. 하지만 그 자리에 들어선 소비에트 연방과 중화민국은 여전히 중앙아시아에서도 충돌을 벌였다. 소련은 몽골을 자국의 위성국으로 뒀으며 1934년 위구르 지역의 혼란스러운 삼파전에 직접적으로 개입해 꼭두각시 역할을 자처하는 한족군벌 성스차이를 신장의 지배자로 만들었다.
1940년대 중반, 성스차이가 소련을 배신한 이후 중화민국 정부에 의해 쫓겨나고 신장 지역이 다시 혼란에 빠지자, 이오시프 스탈린은 다시끔 개입한다. 소련은 동투르키스탄 제2공화국 세력을 지원하며 국민당을 신장에서 몰아내고 다시끔 이 지역을 장악하려 했다. 하지만 중국 내전에서 마오의 승기가 유력해지자 그는 결국 위구르 지역의 중공 복속을 택한다.
스탈린 사후 중소 관계가 다시끔 험악해지면서 중소 결렬로 이어졌고, 양국은 전세계에서 미니 냉전을 벌였다. 이번 대결에서도 중앙아시아 지역의 역할이 있었다. 1979년 소련이 안보적 이유로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자 중공은 적극적으로 아프가니스탄 무자헤딘들에게 무기를 팔았다. 베이징은 아예 CIA와 직접 협상하여 매년 수천만달러의 무기를 거래하기로 했다.
1991년 크리스마스 무렵에 일어난 소련 해체는 러시아가 지배하던 중앙아시아의 지정학을 근본적으로 뒤흔들어놓았다. 백년 넘게 모스크바에게 직접적으로 지배되던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이 분리 독립을 했다. 러시아와 이 다섯 공화국들은 체제전환 과정에서 끔찍한 고통을 견뎌내야했다. 몽골과 아프가니스탄도 러시아의 세력권에서 꽤나 벗어났다.
오늘날의 중앙아시아는 소련 시절과 다르게 러시아가 독점하는 놀이터가 아니다. 터키는 타지키스탄을 제외한 구 소련 국가들과 역사적, 문화적, 인종적으로 가까우며 협력하고 있다. 이란은 아프가니스탄과 타지키스탄의 페르시아계 민족들과 시아파들로 개입하고 있다. 아프간 전쟁이 끝난 미국은 이제 이 지역에 대한 관심이 줄겠지만, 그렇다고 사라진건 아니다.
그리고 중국이 있다. 한나라 시절부터 좋던 싫던 중앙아시아에서 큰 역할을 했고, 모스크바와도 몇차례 겨룬 중국 말이다. 오늘날 중국은 러시아와 함께 중앙아시아에서 제일 세력이 큰 국가다.
러중 양국이 중앙아시아 최대 선수로 등극한 것은 단순한 운빨이 아니다. 앞서 설명했듯 중앙아시아는 역사적, 지리적으로 두 강대국과 가깝다. 그에 반해 서방은 직접적인 접근 방법이 아예 없으며, 아프가니스탄을 제외하면 이 지역에 신경 쓸 거리도 없다. 이란과 파키스탄은 중앙아시아에 본격적으로 개입하기에는 모든 면에서 빈약하다. 터키는 역사적, 문화적 요소를 앞세울 수 있고 인도는 경제적으로 개입할 수 있지만, 두 국가의 역량은 아직 러중 양국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중앙아시아의 정치적 상황도 한 몫 한다. 이 드넓은 지역에서 제대로 된 민주주의 국가들은 몽골과 키르기스스탄이 유이하며, 나머지는 전부 독재 국가들이다. 자유민주주의를 내세우는 서방과 별로 어울리지 않은 지대다. 권위주의 정권들은 까다로운 서구권 대신 그들과 정치적으로 비슷한 중국과 러시아를 선호한다.
먼저, 러시아가 가진 소프트파워 저력부터 알아보자. 러시아는 백년 넘게 중앙아의 절대적 지배자로서 군림해왔으며, 덕분에 이 나라들과 역사, 문화적으로 가깝다. 소련의 세속주의 강요 정책으로 오늘날 중앙아시아 사람들은 대부분 매우 세속적이다. 중앙아시아에서 제일 흔하게 들리는 외국어는 노어고, 수많은 사람들이 러시아 텔레비전 프로그램과 라디오 방송을 즐긴다. 러시아 문화가 중앙아시아 곳곳에 포진해있다.
이런 소프트파워는 오늘날 중앙아시아에서 러시아가 긍정적인 이미지를 구축하는데 있어서 일등공신이다. 거기에 러시아는 중앙아시아와 교역하고 수백만명의 중앙아시아 사람들을 외노자로 받아들이며 이들의 경제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러시아는 또한 중앙아시아의 대표적인 안보 책임자로 행동한다. 오늘날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군사장비의 대부분을 모스크바에서 수입하고, 러시아와 다양한 군사적 협력을 펼치고 있다. 특히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이 집권한 이후로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테러리즘을 상대하는데 있어서 크게 협력해왔다. 푸틴은 종종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대규모 합동훈련을 실시한다.
러시아는 이 나라들의 내부적 문제들에도 열심히 참견했다. 1990년대 당시 타지키스탄의 이슬람주의자들을 진압했고, 우즈베키스탄 정권의 학살을 비난하며 협력을 중단한 서방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며 그런 내부적 문제들을 눈 감아줬다. 2010년 키르기스스탄 소요도 러시아가 해결사 역할을 맡은 후에 끝났다. 모스크바는 중앙아시아의 마약과 인신매매 근절 프로젝트에도 큰 역할을 맡고 있으며, 이는 러시아의 평판 관리에도 도움이 된다.
물론 그렇다고해서 러시아가 무조건 환영받는건 아니다. 어쨌던 로마노프 황가가 중앙아시아를 식민화했다는건 엄연한 사실이고, 이 때문에 러시아를 꺼리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또한 중앙아시아에는 수백만명의 러시아인들이 존재하는데, 몇몇 중앙아시아 엘리트들은 이 러시아인들이 향후 제2의 우크라이나 사태를 일으킬까봐 두려워한다.
중국의 중앙아시아 접근은 그와는 사뭇 다른 모양새다. 중국의 문화적 경쟁력은 전체적으로 처참한 수준이고, 중앙아시아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군사력 또한 러시아에게 밀린다. 대신 중국은 주로 강력한 경제력을 앞장세워 중앙아시아에서 힘을 휘두르고 다닌다.
중국의 중앙아시아 투자는 2000년대 중반부터 본격화되었다. 베이징은 수백억 달러의 돈을 중앙아시아 지역의 기반시설과 광산업에 투자했다. 또한 이 지역의 광물을 수입하는 대신 중국산 제조품들을 판매하며 직접적인 교역도 커졌다.
중앙아시아 지역은 온갖 천연자원이 가득한 것으로 유명하다. 석유와 천연가스, 크롬과 코발트, 은과 우라늄, 금과 아연 등등 수많은 지하자원과 희귀 광물들이 지하에 매장되어있다. 중국은 이런 자원들에 막대한 금액을 투자하며 안정적인 공급망을 구축했다. 그리고 이런 경제적 투자를 이용해 중앙아시아의 여러 부패한 엘리트들의 돈벌이를 돕고 있기도 하다.
이렇듯 중국과 러시아의 주력 분야들은 서로 다르며, 따라서 두 나라가 현재 중앙아시아에서 직접적으로 경쟁 관계에 놓여있다고 보기에는 힘들다. 두 국가는 중앙아시아에서 여러 동일한 목적들을 추구하기도 한다. 양국은 모두 테러리즘과 이슬람 극단주의가 억제되는것, 미국의 발자국이 소멸하는것, 그리고 중앙아시아가 번영하는 것을 원한다.
하지만 현재 양국이 별로 충돌하지 않고 있다고 해서 향후에도 그러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이미 양국 간의 갈등과 경쟁이 조금씩 심화되고 있다는 분석들도 나오고 있다. 특히 그간 러시아, 중국 정부와 가까이 지내던 루킨 교수의 최근 주장이 이를 뒷받침한다.
루킨 교수는 소련의 중국 대사로 일한 전적이 있으며 러시아 외교부와도 자주 연락하고 있고, 중국으로부터 러중관계 발전의 공로로 훈장을 받은 적이 있다. 이런 그는 최근에 러시아의 중앙아시아 패권이 중국에게 위협을 받고 있으며 이 때문에 러중관계의 정점은 이미 지나갔다고 저술했다. 루킨의 이런 주장은 사실상 러시아 엘리트의 생각을 대변한다.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와 러시아의 EEU 프로젝트는 모두 자국과 중앙아시아 나라들의 경제적 성장과 교류를 촉진시키고 경제적 통합을 이뤄내는 프로젝트다. 두 프로젝트는 당연히 충돌하며, 여기서 경제력이 훨씬 강한 중국이 우위에 있다. 자본이 부족한 러시아는 작년의 일대일로 회담에 외무부 장관이 아닌 하급 외교관을 보내며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불만을 표출했었다. 또한 러시아와 같은 원자재 수출국가들인 중앙아시아 나라들은 러시아보다는 원자재 수입국가 중국과 궁합이 더 잘 맞는다.
중국은 러시아의 군사적, 문화적 패권도 넘보고 있다. 그간 중국군은 중앙아시아 나라들과 거의 경찰력이나 특공대 분야에서만 협력을 하며 러시아의 눈치를 봤으나, 최근에는 무기 수출을 늘리고 군사훈련도 확대하며 군 기지도 추가적으로 건설하는 등 점점 공격적으로 나오고 있다. 현재 중앙아시아 무기시장에서 러시아의 점유율은 60%대고 중국의 점유율은 15% 정도다. 지금까지 러시아의 점유율이 직접적으로 타격을 입은 적은 없지만, 향후에는 이게 바뀔수도 있는 노릇이다. 중국은 최근 러시아에게 미리 통보하지 않은채 타지키스탄에 군사기지를 건설한 적도 있다.
베이징은 이 지역 사람들에게 교육의 기회도 제공하고 있다. 시진핑 정부는 중앙아시아 인재들에게 중국 유학을 시켜서 친중 성향의 엘리트들을 계속 양성하는걸 목표로 삼고 있다. 또한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초등학교에서 중국어를 가르치는걸 지원하고 있기도 한다. 이는 러시아가 가진 언어적 이점을 향후에 위협할 수도 있다.
그전에는 러시아를 최대한 덜 자극하려던 중국이 최근 이렇게 점점 대담해지자, 러시아는 불쾌해 할 수 밖에 없다. 그동안 모스크바의 전략은 구 소련권 국가들을 자국의 영향권 내에 묶어두는 것이었는데, 협력하는 관계인 중국이 중앙아시아에서 이를 뒤흔들고 있다.
물론 러시아와 중국에게 서방이라는 공통된 적이 있는만큼, 이런 중앙아시아를 둔 갈등이 두 국가의 공동전선을 무너뜨리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두 국가가 실제적인 동맹을 구축하거나 더 가까워지는데 있어서 걸림돌이 되기에는 충분하다. 아니 중국이 더욱 공격적으로 변한다면 외려 양국의 사이가 벌어질수도 있다.
오늘날 중국은 중앙아시아에 막대한 자본력을 투입해 역내 엘리트를 회유하고 중국어 교육을 지원하고 있으며, 경제협력과 군사협력을 병행하여 러시아의 지배력을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다. 경제력이 부족한 러시아는 중국의 얌체짓에 쉽사리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의 카드덱에는 비장의 한 패가 있다. 바로 여론이다.
이미 유명해질대로 유명해졌지만, 중국의 일대일로는 현지인들에게 별다른 혜택을 주지 못하며 대상국에게 부채함정을 선사하는, 문제가 많은 프로젝트다. 중공은 이런 부채를 탕감해주는 대신 각국의 기반시설 임차권이나 광물 채굴권 등을 따내며 이익을 챙기고 있다.키르기스스탄과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이 세 나라는 현재 중국의 부채 함정에 빠져 곤란을 겪고 있다.
교역 확대와 다른 종류의 투자들도 현지 사람들에게 부정적으로 다가오고 있다. 중국과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중국산 물품들이 현지 소상공인들에게 피해를 입히고 있고, 중국인들에게 경제가 장악당한다는 공포감도 늘어나고 있다.
중국 정부의 극심한 소수민족 탄압 정책도 중국의 이미지를 손상시키고 있다. 대부분의 중앙아시아인들은 이슬람과 튀르크라는 공통된 종교적 배경과 민족성을 공유하고, 여기에는 중공이 탄압하고 있는 위구르인들도 포함된다. 신장 지역에서 위구르인만이 아니라 자국 내의 카자흐인과 키르기스인도 탄압 대상에 포함된다는 잔혹한 진실은 불에 기름을 붓는 꼴이다.
이런 요인들은 중앙아시아 사람들 사이에서 중국에 대한 비호감도가 증가하는 원인이 되었다. 지난 몇년간 대규모 반중 시위가 40번 넘게 열렸고, 민족주의자들의 중국인 린치 사태도 종종 일어났다. 중앙아시아 엘리트들은 종종 중국 스파이들을 체포하고 친중 법안들을 철회하는 쇼를 선보이며 이런 감정들을 달래는데 애쓰고 있다.
지난 11월 2일 중앙아시아 바로미터라는 기관에서 카자흐스탄인들과 우즈베키스탄인들에게 자국에 가장 도움이 될 국가를 물어본 설문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여기서 러시아는 양국 모두에서 54%에 달하는 압도적인 수치를 기록한 반면, 중국은 평균 4%도 안되는 처참한 응답률을 자랑했다. 그밖의 여러 여론조사들에서도 러시아의 대중적 호감도가 중국보다 훨씬 월등하다는게 드러나고 있다. 결국 대중의 여론은 베이징이 아닌 모스크바에 가있고, 이는 중국이 중앙아시아 패권을 차지하는데 큰 걸림돌이 될 것이다.
이 글에서 지금까지 중앙아시아에서 펼쳐진 러중갈등의 역사와 그것의 현재를 살펴보았다. 화려한 무대 뒤편에서 벌어지는 곰과 용의 갈등은 조금씩 심각해지고 있는걸로 보인다. 오만해진 중난하이가 크렘린이 생각하는 레드라인을 슬금슬금 넘고 있다. 물론 러시아와 중국의 협력 관계 자체는 근시일 내에 파탄나지 않겠지만, 장기적으로 이들 사이의 간격이 벌어질지도 모를 노릇이다. 과연 누가 진정한 중앙아시아의 맹주로 등극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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