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잘 살았으나 순식간에 빈국으로 몰락한 나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문장을 듣자마자 베네수엘라를 떠올릴 것이다. 한때 좌파 진영에서 찬사를 받았으나 지금은 우파 진영의 조롱거리가 된 이 나라는 실패한 국가로 너무나도 유명해졌다.
하지만 최근 이 나라보다도 더 빠르게 무너져가는 나라가 있다. 한때는 중동의 스위스라는 별명도 들었던 레바논이다. 레바논은 2019년에 -7%, 작년에는 -20%의 성장률을 보이며 베네수엘라보다 더 가파르게 침몰하고 있다. 이 나라가 마주한 문제들은 한둘이 아니며, 그 기원이 매우 복잡하다. 레바논이 곧 내전에 돌입할 수 있다는 불안한 관측들도 있다.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레바논이 현재 어떤 위기에 쳐해있으며, 이 위기가 더 심화될 수 있는가? 그리고 만약 심화된다면 주변 국가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레바논의 종교 분포 지도)
레바논의 비극은 1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 식민 시절부터 시작된다. 1913년 기준 기독교인들이 8대2로 다수던 기존 레바논 지역은 주변의 베카 계곡 등의 행정구역과 통폐합되면서 1932년에는 기독교인들과 이슬람교도들의 비율이 엇비슷해졌다. 그러나 프랑스인들은 종교별 의석 배분에 있어서 기독교인들에게 유리한 6대5 비율로 줬고, 이는 무슬림들에게 박탈감을 선사했다.
설상가상으로 레바논은 단순하게 기독교/이슬람으로 딱딱 나뉘어지지 않는 나라다. 이슬람교도들은 수니파와 시아파가 거의 비슷한 비율로 있으며 여기에 알라위파와 드루즈파까지 있다. 기독교는 동방 가톨릭교의 일종인 마론파가 다수나 동방정교회와 말키트 가톨릭, 아르메나아 정교회와 아르메니아 가톨릭, 소수의 개신교도들도 존재한다. 종파들 간의 사이는 거의 타 종교만큼 안 좋고, 이는 과거에나 현재에나 레바논의 정세 불안정에 기름을 붓기만 한다.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도중, 레바논은 독립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프랑스의 식민 잔재는 여전히 남아있었다. 기독교인들과 이슬람인들, 그리고 정교회 종파와 마론파 종파, 수니파와 시아파 사이에는 긴장감이 흘렀다. 중동전쟁과 팔레스타인 난민들의 유입은 국가 내부의 긴장이 더 심해지게 만드는데 공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레바논은 전성기를 구가했다. 195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걸프 국가들의 자본이 성공적으로 유치되고 관광업과 금융업이 발달하면서 레바논은 전세계에서 제일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나라들 중 하나였다. 이 당시 레바논은 중동의 스위스, 수도 베이루트는 중동의 파리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였다. 천연자원이 희박한 국가로서는 엄청난 성과였다
그러나 이런 경제성장으로 대변되는 밝은 면의 반대쪽에서는 민족 갈등이 있었다. 종교에 기반한 민족 갈등은 이따금씩 불이 붙었고, 1958년에는 전면 내전 직전까지 가기도 했다. 팔레스타인 난민들의 존재와 레바논과 시리아 양 국가 모두에 존재하던 레바논-시리아 통합주의자들은 내부 갈등을 더 골치아프게 만들었다.
레바논의 내부적 갈등은 경제성장 덕분에 겨울철의 살얼음마냥 표면적으로나마 얼어붙어있었다. 경제성장이 멈추게 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뻔했다. 그리고 1966년, 레바논 최대 은행이던 유스프 베이다스 인트라 은행이 파산하면서 경제성장이 주춤하고 갈등이 악화되기 시작했다.
그 다음해에, 3차 중동전쟁의 여파로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추가로 들어왔다. 거기에 팔레스타인 무장단체들이 요르단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행패를 부리다가 축출된 이후 레바논으로 넘어오면서 긴장은 가중되었다. 레바논의 국민들은 곧 팔레스타인에게 호의적인 사람들과 그렇지 못하던 사람들로 나뉘었다.
경제적 정체와 난민 유입으로 쌓여가던 민족 갈등은 1975년에 불이 붙었다. 마론파 기독교도들과 수니파 무슬림들, 시아파 이슬람교도들과 정교회 기독교교도들 등이 서로 뒤엉켜 싸우면서 정부는 와해되었고 국가는 기능을 정지했다. 나중가서는 시리아와 이스라엘 같은 외세까지 개입했다.
약 12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기나긴 전쟁은 1990년에 가서야 끝났다. 타이프 조약은 기독교-이슬람 의석 배분을 기존의 54대45에서 64대64로 조정하면서 그 안에서도 종파별로 다양하게 배분하였다. 대통령은 마론파로, 총리는 수니파로, 국회의장은 시아파로 한다는 암묵적인 협약은 유지되었다. 또한 전쟁 당시에 활약하던 민병대들은 (헤즈볼라를 제외하면) 전부 무기를 버리게 되었다.
그러나 새로운 레바논 국회의원들은 대부분 전직 민병대 지도자들이었고, 그들은 종파에 따라 움직였다. 이 정치인들은 정부에게 그들만의 정부 권한 할당을 요구했고, 공공예산은 곧 종파 정치인들에 의해서 좌지우지 되었다. 이 때문에 레바논은 2015년에 쓰레기 처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전국적인 문제가 되던 우스운 상황에 처한적도 있었다.
아랍 국가들과 국제 기구들은 막대한 자금 지원과 해외 동포들의 투자는 레바논의 전후복구를 이끌었다. 그러나 레바논은 기존의 황금기와 똑같이 또다시 관광업과 금융업에 의존한 경제를 구축했다. 1,2차 산업은 거의 전무한 수준이었다. 척박한 산지 투성이인 국토와 전쟁으로 인해 제대로 된 교육을 못 받은 사람들의 국가로서는 어쩔 수 없었더라고 해도, 이런 경제 구조는 한창 발전중인 개도국에게 어울리는 형태가 아니었다. 그러나 레바논이 처음에 이런 3차 산업을 키워야 했던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당연하지만 레바논은 상기한 문제 때문에 식료품과 제조품의 대부분을 수입해야하는 반면, 수출량은 매우 적다. 그 덕분에 이 나라는 엄청난 무역적자에 시달렸다. 결국 그 무역적자를 메꾸기 위해서 관광업과 금융업으로 외화를 벌어와야 했던 것이다.
후자에는 큰 문제가 있었다. 레바논의 은행들은 자본을 유치하기 위해서 최소 5%, 최대 20%나 되는 비정상적인 높은 이율을 유지했다. 이런 엄청난 이율 덕분에 수많은 해외 투자자들ㅡ레바논계 외국인들도 많았다ㅡ들이 이 조그마한 나라에 자신들의 돈을 보관했다. 레바논 국민들도 돈을 쉽게 벌기 위해서 은행에 많은 재산을 저축했다.
이렇게 은행들이 모은 달러(와 레바논 화폐인 리라)는 곧 다시 중앙은행으로 옮겨졌고, 중앙은행은 그 돈을 다시 정부와 정치인들에게 빌려줬다. 레바논 정부는 달러를 통해서 필요한 물품을 수입하고 고정 환율을 유지하며, 리라를 이용해서 각종 사업들을 펼쳤다.
그러나 이런 사업들은 대부분 정치인들이 그들의 권한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지역구민들과 같은 종파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기 위한 정책들이었다. 필요 이상으로 공무원들을 고용하고 보조금을 나눠주는 그런 비효율적인 정책들 말이다. 이 부패한 정치인들은 종종 그 돈을 자신들의 주머니에 넣기도 하였다. 따라서 이자는 새롭게 들어온 돈으로 지불되었다.
결국 레바논 정부는 일종의 거대한 폰지 사기 시스템을 통해 막대한 돈을 빌렸으나, 그것을 새로운 산업에 투자하면서 국가경쟁력을 기르는데 쓰는 대신 일회용 포퓰리즘 정책들에 낭비했다. 이런 정책들은 언젠가 반드시 안 좋게 돌아올것이 분명해보였다.
이런 비효율적이고 부패한 시스템은 정부부채의 증가를 야기했다. 원래부터 높았던 레바논의 부채는 계속 증가하여 2006년에는 GDP 대비 180%까지 올라갔다. 레바논은 해외 원조와 기괴한 금융 구조, 그리고 급성장하던 관광업으로 잠시동안 버텼지만, 곧 역내 정세의 거대한 파도에 휩쓸리게 되었다.
2010년에서 2011년, 누적되온 독재와 경제위기의 여파로 중동 전체에 독재 정권들에 대항한 시위들이 일어났다. 불안정하고 불완전하기는 해도 민주주의 국가였던 레바논은 별 탈 없었지만, 이웃 국가 시리아는 그러지 못했다. 시리아는 곧 끔찍한 내전에 빠져들었다.
시리아와 중동 전역이 혼돈에 빠지면서 레바논도 무사하지 못했다. 주변국들과 덩달아 레바논의 경제도 흔들렸다. 시아파 무장단체자 정당인 헤즈볼라는 이란의 명령에 따라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을 지원하러 나섰다. 그리고 시리아에서 무장한 군인들과 거의 150만명에 달하는 난민들이 국경을 넘고 몰려들었다(레바논의 인구는 600만이다).
이때부터 레바논의 몰락은 시작되었다. 인구의 25%에 달하는 시리아 난민들은 경제적 부담을 가중시켰고 치안 악화와 사회적 혼란을 야기했다. 페르시아만의 수니파 왕정들은 이란과 시리아의 하수인 역을 하는 헤즈볼라를 보고서는 레바논에 대한 지원을 칼같이 끊었다.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관광업도 큰 타격을 받았다. 일부 국내외 투자자들은 이 나라의 안전성에 대한 우려 때문에 조금씩 돈을 빼내가기 시작했다.
부패행정과 취약한 경제구조로 저성장에 허덕이고, 투자자들이 조금씩 신뢰를 잃어가자, 레바논 정부는 다급해졌다. 예산의 3분의 1을 정부부채를 갚는데 쓰고 선거철마다 재정 지출을 늘리는 나라는 새로은 투자자들의 유입 없이는 무너지는게 뻔했다.
2016년 금리가 다시 한번 올라가면서 이 추세는 잠깐 반전되었다. 하지만 이미 몇몇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경제성장률이 1~2%인 나라가 이렇게 비정상적인 이율을 유지하는 상황이 지적받았고, 뭔가 대단하게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기류가 서서히 형성되고 있었다.
그러다가 2017년 말, 기어이 큰 사건이 터졌다. 헤즈볼라에게 암살당한 전직 총리의 아들이자 당시 레바논 총리던 사드 하리리 총리는 이 헤즈볼라에 대한 미지근한 태도로 사우디아라비아의 반감을 샀고, 2017년 사우디 방문 도중에 사실상 억류되었다.
사우디 왕실에 의해 그는 사임을 강요받았고 가택연금 상태에 쳐해졌다(사우디아라비아가 하리리 총리의 자리를 그의 형으로 대체하려 했다는 주장도 있다). 이 기상천외한 납치극은 계속되어 레바논과 사우디아라비아 관계 파탄 직전으로 이어졌고, 결국 프랑스 대통령이 직접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 억지로 하리리를 석방시킬수밖에 없었다.
하리리 총리는 무사 귀국한 후에 즉시 사임을 철회하였다. 그러나 이미 레바논이라는 나라에 대한 신뢰는 본격적으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역내 지정학적 역학 관계에 대한 우려가 고이율 정책의 유혹을 앞섰고, 국내외 투자자들이 그들의 돈을 회수하기 시작했다. 레바논의 금융과 경제가 무너지고 있었다. 폰지 사기 시스템이 아래에서부터 무너지고 있었다.
2019년이 되자, 레바논의 은행들은 끝내 못 버티고 계좌들을 동결시켰다. 레바논 리라는 급격하게 폭락했고 이에 따라 생필품들의 가격이 치솟아올랐다. 실업률도 크게 증가하였다. 수십만명이 정치권에 항의하며 시위했다.
거기에 2020년에는 코로나19 대유행과 베이루트 폭발 사고까지 겹쳤다. 레바논의 경제는 와르르 무너졌다. 2021년 12월 현재, 레바논은 화폐 가치가 기존 대비 90% 넘게 폭락했으며 전국민의 78% 이상이 빈곤층이다. 정부부채는 GDP 대비 170%가 넘어가며 정부는 2020년 4월에 디폴트를 선언했다. 하루 22시간이 정전이며 2017년 이후 경제규모가 30% 이상 수축했다. 수많은 국민들은 물, 에너지, 음식, 의약품, 주거 등등의 기본적인 것들조차 없다. 세계은행은 레바논 경제위기가 1800년대 중반 이후 세계사 3위급 규모의 경제위기라고 진단을 내렸다.
이런 상황 속에서 레바논의 오래된 종파 갈등이 다시 불붙고 있다는것도 문제다.
수많은 다른 중동 국가들처럼 레바논의 정확한 인구 통계는 누구도 모른다. 정파 분포가 정치적으로 민감한 주제인만큼 이 나라는 1932년 센서스 이후로 한번도 인구조사를 한 적이 없다. 이슬람교도들이 기독교인들보다 많다는건 확실하지만 수니파가 최대 종파인지 시아파가 최대 종파인지, 혹은 마론파 기독교가 둘보다 거대한지는 불분명하다.
베이루트 폭발사고에서 가장 피해를 입었던 것은 기독교인 공동체였다. 이들은 현재까지도 규명되지 않은 베이루트 폭발사고의 진실을 누구보다 강력하게 원한다. 수니파는 최근 헤즈볼라와 친한 마론파 대통령이 그들을 무시하고 있다는 사실에 분노하고 있다. 현재 헤즈볼라가 베이루트 사건에 큰 책임이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는 사실은 시아파의 심기를 긁는다.
두달전에 벌어진 레바논 총격전은 민족 갈등의 고조를 보여준 사건이었다. 기독교 동네에서 스나이퍼들이 시아파들을 저격했고, 이후 헤즈볼라 병력들과 몇시간동안 교전을 벌였다. 헤즈볼라는 즉각적으로 기독교 정당 겸 민병대 세력을 배후로 지목하면서 동시에 현재 이뤄지고 있는 베이루트 폭발에 대한 수사가 정치적으로 편향된 상태라고 주장했다. 기독교인들이 이를 전혀 좋게 받아들일리가 없다. 갈등은 지금 이 순간에도 조금씩 쌓이고 있다.
이렇듯 레바논은 경제가 침몰하면서도 동시에 점점 종파갈등의 수렁에 빠지고 있다. 이 나라의 몰락에 주변 국가들은 어떻게 반응할 것이고, 또한 지역 정세에 어떤 영향을 줄까?
국제적으로 또다른 난민 위기가 일어날 수 있다. 레바논의 지식인들과 인재들은 이미 수천명 단위로 탈출하고 있고, 경제위기가 지속되고 종파갈등이 폭발한다면 또다시 수백만의 난민들이 생겨날수도 있다.
이란은 아마 레바논에 제일 적극적으로 개입할 것이다. 이미 헤즈볼라의 요청에 따라 구호품을 보내던 이란은 중동의 패권 유지를 위해서 그런 지원을 지속할 것이다.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을 견제하기에도 적합한 동시에 시리아를 안정화시키는데도 유용하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이란에 맞서기 위해서 레바논의 몰락을 지켜볼 것이다. 지난 15년간 사우디아라비아는 레바논 내에서 헤즈볼라를 견제할 동맹 세력을 찾지 못했고, 현재는 레바논이 우선 그 댓가를 치르게 하는 방향의 외교 전략을 수립했다. 왕국은 이 나라가 무너지는게 헤즈볼라와 이란의 책임과 부담이 될거라는 냉혹한 계산을 완료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국고에 돈이 넘쳐나고 레바논과 거리가 멀기 때문에 과감하고 과격하며 무책임한 행보를 보일 수 있다.
터키는 예전부터 레바논 지역에 별로 전략적 관심이 없었던 나라다. 하지만 최근 동지중해에서 가스전이 여럿 발견되면서 터키는 이에 대한 접근을 목표로 하며 레바논에 적극적으로 개입할수도 있다. 물론 터키 경제가 현재 좋지 못하고, 터키 자체가 레바논에서 지난 몇년간 영향력과 이미지를 잃어온만큼, 과연 터키가 제대로 개입할지는 미지수다.
프랑스는 최근 마크롱 행정부 들어서 구 식민지 국가들과 좀 더 사이좋게 지내려고 노력해왔다. 작년 베이루트 참사 직후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엄청난 환대를 받으며 레바논을 긴급 방문했다. 현지 비호감도가 약한 프랑스는 향후에 특정 세력을 밀어주기보다는 레바논의 안정화를 위해 노력할 것으로 보인다. 이 편이 추가적인 난민사태도 막는 동시에 프랑스의 긍정적인 이미지와 영향력을 유지하기에도 좋다.
이스라엘도 아마 사우디와 비슷한 기조의 "강 건너 불구경" 정책을 펼칠 것이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의 하마스와 레바논의 헤즈볼라, 그리고 이란의 우호 관계를 절대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올해 하마스, 헤즈볼라 모두와 교전을 한 바가 있는 이스라엘은 두달 전 레바논의 새로운 총리에게 엄청난 욕을 먹었다. 두 나라는 공식적으로 수교한 적도 없다.
한때 중동의 금융허브였던 레바논. 부패한 정치인들의 잘못된 정책들은 이 나라에 재앙을 불러왔다. 오늘날 레바논의 모습은 베네수엘라의 그것에 종파갈등과 복잡한 국제 이익관계를 섞은 모습이다. 적어도 단기간 내에 레바논이 다시 이전의 모습을 회복할 가능성은 없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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