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에 떨어진 은하계의 정의와 천명의 정당성을 바로세우기 위해 조선국을 필두로 여러 의로운 국가들이 욘다림에게 반기를 들었다.
전쟁의 북소리가 울리자마자 충직한 번병의 군사들은 L-게이트를 통해 욘다림의 영토 안으로 들이닥쳤다.
하지만 그 날카로움과 정예함이 조선국이나 욘다림에 비해 조금 떨어질 수 밖에 없었던지라, 이들에게는 보급선 타격, 전초기지 점령, 욘다림 내부 동조 세력 지원 등 2선급 임무만을 맡도록 하였다.
이들의 지원으로 욘다림 내부 민주주의자들, 유자들, 심지어는 무정부주의자까지 각지에서 우후죽순 일어나 반정부시위를 펼쳤다. 대부분은 그 호응이 도시 하나, 마을 하나 정도를 에워싸는 정도였으나 로모녹스 연합같이 새 국체를 세우는데 성공한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들이 유학을 조금 배웠다고 한들 그 본질인 지역 군벌 수준을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어서, 근처를 초계하던 욘다림 분함대에게 토벌되어 짧은 국사에 종지부를 찍고 만다.
땅이 넓은 것도, 국가가 부유한 것도 아니었기에 어찌 보면 당연한 결말이었다고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들의 작은 반란은 천명 대전의 전체 전황에 꽤나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로모녹스의 분리주의자들과 영토 이곳저곳을 종횡무진하는 번국들의 연합함대를 동시에 상대하려다 보니 적 전선에 구멍이 생기고 만 것이다.
조선국 수군은 적의 함대가 반씩, 또 반에서 반씩 나뉘어 후방 안정을 도모하러 가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함대끼리 결전을 벌였을 때 확실한 승리를 점칠 수 있겠다 싶어진 그 시점에 L-게이트를 경계 중인 국토방위수영을 제외한 전 수영이 적의 영토로 도약한 것이다.
특히 제 5 수영의 도약지는 적의 도성인 욘다림이 공전 중인 브'욘드 성계였다. 이번 공세가 전황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지, 또 그만큼 이번 공세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따로 말 할 필요가 없음이라.
제 5 수영은 거의 배에 달하는 적 수도방위함대와 교전하여 승리했다. 그 대가로 수사 본인의 목숨과 소속 함선의 대부분을 잃어 남은 천명대전 기간 내내 다시는 전장에 참여할 수 없는 신세가 되었으나, 제주권만큼은 확실하게 확보해낸 덕에 적의 도성을 점령할 수 있었다.
피해를 입은 수영은 제 5 수영 뿐만이 아니었다. 제 9 수영, 제 51 기동수영, 제 3수영 등이 궤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고 그 지휘체계만을 간신히 유지한 채로 패퇴하고만 것이다.
이는 해당 수사들의 통솔력이 특출나게 뛰어나서 후퇴하면서도 지휘체계를 살릴 수 있었다기보다, 단시간에 너무나 많은 함선을 잃어 지휘 부담 자체가 줄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주상께서는 이러한 함대들을 후방으로 돌려 점령되지 않은 적 전초기지와 성을 점령하는 역할을 맡기셨다.
천명 대전 발발 2년차. 번국 수군들이 열심히 적의 후방을 뒤흔들어놓은 덕에 조선국은 조선국대로, 살로림은 살로림대로 신속히 진격할 수 있었다.
이에 욘다림은 도성을 포함해 영토의 반 이상을 잃고 예비대까지 투입해가며 발악했지만 역부족일 뿐이었다.
이 무렵 욘다림과의 전쟁에서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했던 것은 오스쿠론 성계의 세 요새행성이었다. 이는 본디 옛 타메시안의 도성이었던 곳으로, 그들이 쓰던 방어시설이 꽤나 괜찮은 상태로 남아 있었던 터라 욘다림이 방어선을 쉬이 다질 수 있었던 것이다.
오스쿠론의 세 요새를 무시한 채로 진격하자니 보급선에 문제가 생길 것이 우려가 되었고, 오스쿠론 방면 공세를 포기하자니 오스쿠론 너머에 있는 욘다림의 핵심 공업 시설이 너무나도 가치 있는 표적이었다.
정녕 오랜 세월의 궤도폭격으로 이들 모두를 죽이고 나아가야 하는가, 아무리 천명을 빼앗기 위한 전쟁이라지만 전장에 끌려온 민초들을 그리도 허무하게 절멸시키는 것이 과연 유자의 도리에 맞는 행위인가 하는 고민에 조정이 시끄러워 졌을 때, 그들이 다시 한 번 일어났다.
바로 유전자 생체강화 의용대, 줄여서 유생대들이었다. 각지의 의로운 유생들이 모여 총과 경전을 들고 한데 모이니 그 규모가 140억으로, 저번 천상 전쟁 때 모였던 것의 2 배에 달했다.
이들은 각 형제, 어머니, 요람 요새로 강하해 방어군 중 소인배들에게는 레이저와 고폭탄을, 군자들에게는 공맹의 말씀을 전파하며 적의 지상 방위선을 무너뜨렸다.
하니, 더 이상의 전쟁은 무리라고 판단한 욘다림 왕국은 항복을 선언하고는 은하 공동체에 익선관을 반납하였다.
은하계에 질서와 안정을 가져오고자 했을 뿐이다라, 이들은 항복 문서에 조인하는 그 순간까지도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할 뿐이었다. 아아, 이 얼마나 후안무치한 것들이란 말인가!
하지만 개가 짖어도 기차는 달리는 법. 은하계 곳곳에서는 폭군의 치세가 끝을 맞이했음을 축하하는 기념식이 열렸으며, 추후 은하 공동체 부활을 논의하는 담론이 대두될 뿐이었다.
욘다림 왕국의 처결에 대해서도 할 말이 있었다. 대전쟁에서 패배했다고는 하나 이들은 본질적으로 강대국, 이들은 단 10년만에 잃었던 함대들을 전부 재건해 조선국과 대등한 위치에 다시금 오를 수 있었다.
그렇게 재건된 함대를 곳곳에 파견해 "저번 전쟁의 명분은 본국의 은하 제국 지위 포기에 관한 것이었으며, 조약의 어디에도 영토 할양과 관련된 내용은 명시되어 있지 않았다"며 왈짜를 부리는게 아닌가!
이들은 여전히 태양 등 지구 국제 연합의 정당한 영토에서 퇴거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지구에서도 중원과 만주는 허구한 날 나뉘어 싸우다 하나로 합쳐지고 나서는 주변 나라들을 겁박했듯이, 욘다림 역시 그 국체 자체를 여러 갈래로 찢어 놓지 않으면 언제고 다시 힘을 키워 복수를 노릴 공산이 있었다.
이에 재건 은하 공동체의 첫 안건은 조선국의 은하 관리인 임명에 관한 것이었다. 욘다림과 달리 조선국은 정당한 민주주의적 절차에 의해 이 무한한 권한을 임명 받았으며, 이에 따르는 막중한 임무를 나라가 끊어지는 그 순간까지도 수행할 것을 약속했다.
그 임무란 공동체 안팎의 모든 위협으로부터 공동체를 수호하는 것이었으며, 이 때 그 위협은 욘다림 왕국의 존재 그 자체를 의미했다.
이후 조선국을 필두로 은하 공동체는 몇 번의 전쟁을 통해 욘다림 왕국의 국경선을 재조정하는데 혈안을 기울였다.
욘다림의 국경 핵심 산업지대를 통째로 독립시킨 뒤 친 조선파 욘다림에게 안동공의 직위를 봉작해 욘다림 공국을 세웠으며, 욘다림의 도성인 브'욘드와 일대 성계를 독립시켜 역시 욘다림 후국을 세운 것이다.
그 결과 은하계의 판도가 이리 변하여 욘다림 왕국의 강역은 반절이 되었으며, 정세는 실로 천하삼분지계의 재림이라 할 수 있었다.
나누어 지배하라. 세계무대의 오랜 격언에 따라 조선국은 욘다림 공국과 욘다림 후국이 욘다림 왕국을 적대하도록 계획했다. 심지어는 둘 사이에 존재하는 경제적, 종교적 차이를 지속적으로 자극해 갈등을 빚도록 유도했으며, 문자 개혁을 통해 절대 하나로 합쳐질 수 없도록 하였다.
불과 한 세대만 흐르더라도 세 욘다림 국가는 애초에 하나였던 적이 없었던 것처럼 으르렁대며 싸울 것이다.
하니, 국력이 급속도로 쇠약해져 다시는 조선국의 세계 계획에 반기를 들 수 없을 정도로 추락하고 만 욘다림 왕국이었다.
혹자는 말한다. 갈등을 키워 난세를 유지하는 것이 성군의 치세더냐고, 유자의 도리더냐고. 그러나 이는 불가피한 일로, 욘다림이 나뉘어 서로 싸우지 않는다면 언제라도 군사를 키워 주변국을 겁탈할 것이 뻔하다.
그렇게 된다면 더 많은 피가, 더 다양한 종족의 피가 흘러 은하수를 붉게 물들일 터. 현실 정치에서는 어느 정도의 타협이 필요하다는 것이 조선국 뿐 아니라 전 은하의 유학자들이 내놓은 정론이었다.
욘다림의 피를 양분 삼아, 나머지 은하 전체의 평화라는 꽃이 활짝 만개할 것이다.
개천 415년 12월 21일 지구 국제 연합 대통령 오렌지 발아체가 조선국에게 천명을 거머쥐어 칭제건원 할 것을 청하다
오렌지 발아체가 주상 전하와의 독대에서 말하기를, "전하께서 욘다림 폭군들로부터 지구를 되찾아주신지도 벌써 5년이 흘렀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망가진 지구의 산천과 풍습을 옛 것으로 되돌리는 데 사용하라 하시며 50000에 달하는 에너지 크레딧을 쾌척하시니, 지구 국제 연합으로써는 이 은혜를 대체 어찌 갚아야 할지 두렵기만 할 뿐입니다." 하였다.
이에 주상께서 웃으며 말씀하시기를, "그대들의 경전에도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라는 말이 있지 않소. 응당 지구 국제 연합 시민들의 것이었어야 할 지구를 욘다림으로부터 되받아 왔을 뿐이고, 또 대국 된 도리로 남는 돈을 지원했을 뿐이오." 하셨다.
하니 오렌지 발아체가 탄식하며 절을 올리기를, "허어, 전하의 은덕이 달콤한 꿀과도 같이 사해 만방에 그 향을 풍기니 소국의 관료 나부랭이인 저로써는 그저 황공, 또 황공할 따름입니다.
이 오렌지 아무개가 엎드려 청컨대, 욘다림으로부터 앗아 온 익선관을 쓰시고 천명이 조선국에 있음을 만천하에 선포하소서. 건원하여 은하 제국의 권좌에 올라 앉으소서." 하였다.
하니 주상께서 오렌지 발아체를 일으켜 세우시고는, "에헤이, 바닥이 찬데 공히 절을 올리고 그러시나. 일개 필부가 그런 중한 자리에 올라 은하계를 어둠 속으로 끌고 갈까 내 두렵소. 못 들은 것으로 할 테니 이만 들어가 보시구려." 하시더니 자리를 파하셨다.
개천 416년 7월 1일 지구 국제 연합 대통령 오렌지 발아체가 조선국에게 천명을 거머쥐어 칭제건원 할 것을 거듭 호소하다
오렌지 발아체가 조선국의 복식을 차려 입고 궁궐 앞에 엎드려 청하기를, "전하, 지구 국제 연합 만민의 뜻을 지고 있는 이 비루한 늙은이의 마지막 청이옵니다. 지구 국제 연합의 주인이 되어 주시고, 전 인류를 은덕으로 굽어 살피소서!" 하였다.
주상께서 친히 행차하시어 말씀하시기를, "불가하오." 하셨다.
하시더니, 오렌지 발아체를 궁 안으로 들인 뒤 그 성지를 이어나가시기를, "그게 다 명분의 문제요. 의로운 국가들이 여럿 모여 욘다림을 끌어내리고 지구를 그대들에게 돌려준 지가 채 20년이 지나지 않았소. 그런데 이제 와서 아국이 지구 하나만도 아니고 지구 국제 연합 전부를 탐한다고 한다면 은하계의 백성들이 전주 이씨를 황가라 여기겠소, 또 다른 압제자 무리라 여기겠소?" 하셨다.
오렌지 발아체가 잠시 숨을 고르고서 입을 열기를, "그것은 욘다림의 통치가 패도의 극치였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의 믿음을 강요하고, 의로운 선비들을 하옥하고 처형하는 것이 어찌 유자의 도리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조선국은 지구를 떠난 뒤에도 그 도리를 잊지 않은채 되려 발전시켜 전 우주를 덕으로써 호령하니, 어찌 천명이 조선에 있지 않다 할 수 있겠나이까.
조선의 전통과 풍습을 접한 지구의 학자들이 저것이야 말로 진정한 보편 제국의 모습이라며 눈시울을 붉히며 칭송한 지 여러 해가 지났으며, 이미 아국의 의회에서는 양국 통합에 들어갈 예산과 시간 등을 고려해 각종 정책을 준비해 놓은 지가 오래입니다.
장차 조선이 은하계를 통치하며 그 은덕을 만방에 베푸신다면 이를 반기지 않을 자들이 어디에, 또 얼마나 있겠나이까. 부디 청컨대 51조 3400억 지구 국제 연합 시민의 청을 들어주소서." 하였다.
주상께서는 웃으며 답하시기를, "허어, 경의 퇴임이 세 달도 채 남지 않았다고 들었소만, 그 동안 이런 일을 과인 몰래 꾸미고 계셨나 보오. 뭐, 그것이 그대 시민들 전체의 총의라면 여 또한 받아 감사히, 또 겸허히 받아 들이겠소.
그러나 중간에 천명이니 은하계니 하는 부분은 들어 주기가 좀 어렵군. 저번에도 말하지 않았소, 과인은 그런 엄중한 자리에 앉아도 될 정도로 용단 있는 인물이 아니라고. 지구 국제 연합과 조선국의 통합에 대해서는 관료들에게 지시를 내려 둘테니, 이만 물러가 관료들과 얘기를 나눠 보시구려." 하며 다시금 자리를 파하셨다.
하니 오렌지 발아체가 물러나며 삼창하기를, "만세! 황상 폐하 만세! 대조선국 만만세!" 하였다.
개천 416년 11월 15일 은하 공동체가 조선국이 천명을 거머쥐어 칭제건원 할 것을 세 번째로 간청하다
지구 국제 연합 대통령 오렌지 발아체가 발언하기를, "성상의 하해와도 같은 은덕으로 은하 만방에 덕과 예가 자리 잡은지가 오래로, 그를 따르는 충직한 번국이 여럿 있으니 실상 조선국은 천자국과 같은 위치에 있다 할 수 있습니다.
단지 성상께서 유자 중의 유자라는 명칭에 걸맞게 스스로를 낮추시어 칭제하지 않고 계시니, 저희 신료들이 알맞게 보좌하여 국제를 바로 세우고 주상 전하를 높여 드리는 것이 옳지 않겠습니까?" 하였다.
이에 녹림국 의원이 발언하기를, "실로 옳으신 말씀이십니다. 성상께서 실로 자애롭고 어지셔 아국 뿐 아니라 여러 국가들이 번영할 수 있었는데 어찌 신하 된 도리로 가만 있을 수 있겠습니까. 녹림국 의원 전원은 오렌지 발아체 의원님과 뜻을 함께 하겠습니다." 하였다.
탐라국 의원단 역시 동의하기를, "옳습니다! 자리가 자리니 말씀드리는 것이지만, 이미 탐라국 내부 공문에서는 조선국의 주상 전하를 황상 폐하라, 조선국을 제국이라 칭하여 외왕내제의 예로 조선국을 대하고 있었으니 저희 역시 전원 동의합니다." 하였다.
은하 스텍카시 연합 전권대사가 이어 발언하기를, "아국은 가장 먼저 조선국과 조공-책봉의 예를 맺어 온 국가로, 그 충정이 여타 국가들과 비할 바가 되지 않는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헌데 어찌 이와 같은 뜻 있는 안건에 반대표를 행사할 수 있겠습니까.
항상 그래왔고 지금도 그러하듯이, 아국은 앞으로도 조선국의 제 1 번국으로 남아 변함 없는 사대의 예를 다 할 것입니다." 하였다.
이어 살로림과 양 욘다림 번국 등이 찬성을 표하니, 조선국 역시 고사에도 천명을 이어받은 이들 모두가 두 번의 거절 끝에 세 번째에 칭제를 논했다면서 찬성에 손을 드니 안건이 통과되었다.
모든 광경을 지켜 본 욘다림 왕국 대사가 불경한 말을 내 뱉기를, "끼리끼리 쇼를 하는군. 당신들끼리 잘들 놀아보시오." 하며 가장 먼저 회의장을 나서는 일이 있었다.
태양계, 지구, 한반도. 병자호란을 시작으로 조선국의 모든 것이 시작 되었던 그 곳.
앞으로도 조선국의 모든 것이 일어 날 그 곳. 개천 430년 6월 25일, 조선국은 정확히 1000년의 시간 끝에 자신들의 고향땅으로 돌아 왔다.
주상께서는 왕실 성간선에서 내리시자 마자 옥체를 굽혀 서울 땅에 입을 맞추셨다. 그 자리의 모두가 흐르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차오르는 감정을 참지 못하고 외칠 뿐이었다.
"대조선국 천세! 주상 전하 천세! 천천세!"
사방에 끝도 없이 몰려 든 환영인파를 둘러보시고는 하염없이 옥루를 흘리시다 웃으시더니, 또 옥루를 흘리시기를 여러 번 반복하실 뿐이었다.
환향식이 끝난 뒤 주상께서는 세자 저하와 함께 광화문을 통해 경복궁 안으로 들어가시더니, 강녕전에 드셨다.
"원아. 이 아비는 이제 삶에 바랄 것이 없구나. 이미 너무 늙어버려 아집만 남은 내가 이 자리에 앉아 있어봐야 열성조의 업에 누가 될 일만 하게 될까 두렵고 또 두려울 뿐이란다."
"어찌 그런 말을 하시옵니까. 앞으로도 조선국을 이끌어 주소서."
"아니, 됐다. 네 어머니랑 함께 지구 구경이나 하면서 말년을 보내고 싶구나. 너에게 양위하마. 조선국의, 은하계의 첫 번째 황제가 되거라. 그런 영예는 나같은 늙은이가 아니라 너에게 어울릴게다."
"아바—"
"예끼, 되도 않는 삼고는 할 생각도 말거라. 오렌지 발아체 그 놈이 조선을 기어코 황제국으로 만드는 꼴을 보고 기가 다 빠졌다. 게다가 이미 신료들과도 얘기가 끝난 일이다.
언론에는 대충 네가 오체투지를 하며 두 번 거절했다고 말해 둘테니 그리 알거라. 그럼 종묘와 사직을 잘 부탁한다는 당부를 남기고 필부 이 아무개는 물러가 보겠습니다. 황상 폐하 만세! 대조선국 만세! 만만세!"
선왕께서는 그 뒤로도 8년간 대비마마와 함께 전 지구를 유랑하시다, 에베레스트에 올라 천명을 받아드는 아들의 모습을 TV로 지켜보시고는 3일 뒤 서울왕립중앙병원에서 붕어하셨다.
자신의 죽음을 슬퍼하지 말고 옛 시대의 끝이자 새 시대의 시작으로 여겨 달라던 부왕의 유훈에 따라 큰 축제처럼 치뤄진 국가장이 끝나고, 새로이 즉위한 천자께서는 선제를 대한제국의 초대 황제로 추존하고 고종(高宗)의 묘호를 지어올리셨다.
아들이 어찌 아버지의 업을 훔쳐 이름을 날리겠는가 하는 뜻에 따른 것이었다.
이후 천자께서 은하 제국 어전회의에서 "각 국가가 사력을 다하여 항구적인 평화를 유지하고, 덕과 의로 은하 만방을 가득 채워 선제께 부끄럽지 않은 모습을 보여드리자"며 직접 제안하셨고, 각국이 앞다투어 결의하니 진실로 요순의 치세가 은하계에 재림하게 되었다.
황실함에 올라 태양으로 향하시던 천자께서는, 창 밖으로 지구를 바라보며 굳어 있는 호위 군관에게 농을 던지셨다.
"아들에게는 너무나도 큰 제국을 물려주시고는 자신께서는 온갖 곳을 놀러다니며 온갖 것을 즐기시다니, 아버지도 참 무심하시지. 확 귀관에게 제위를 선양하고 싶은 마음이 들 지경이군. 자네는 아들이 있다면 그러지 말게나."
군관은 뭐라 대답을 해야할지, 같이 웃어드려야 할지, 그것도 아니라면 부복하고 통촉해달라 울부짖어야 할지 선택하지 못하고 그저 얼어붙을 뿐이었다.
"에잉, 재미없게. 됐네, 업무로 돌아가 보게."
군관의 반응과는 별개로 황실함은 지구로 가까워져만 갔다.
역시 천자 이원의 신세한탄과는 별개로, 은하계는 한없이 돌아가며 계속해서 그의 업무를 늘릴 뿐이었다.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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