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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제 3회 마도학자 접견 일지 - 크리스탈로의 눈물모바일에서 작성

Anatolia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01.31 18:56:50
조회 662 추천 18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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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크리스탈로의 최고 통찰을 각색한 2차 창작임. 공식설정들을 최대한 엮었고, 인물의 말투, 취향, 관계 등은 공식 느낌이 나도록 쓰려고 했음. 다만 어디까지나 ‘2차 창작’임을 감안해줬으면 함.

2. 시리즈 전작의 요소들도 섞여 있으므로 읽어보면 소소하게 도움이 될 수도 있음.

3. 주연은 버틴, 이터니티, 크리스탈로. 조연은 소네트, Z, 제시카, 블로니, 투스 페어리. 마이너한 캐릭터들이 포함된 건 그들의 설정, 배경이 묻히기에 아쉬워서 릾붕이들이 한 번 봐줬으면 하는, 그런 마음이 있음. 왜냐하면 이 게임은 거의 안 쓰는 4성 3성들도 설정을 대충 잡진 않아서임. 의외로 이게 뭔 소리지 싶은 건 공식 설정일 수도 있음. (제시카 펫모임, 이터니티의 사기행각 같은 거)

4. 컨텐츠도 지금 할 수 있는 건 다 즐겨서 심심해서 씀. 모자란 글이지만 재밌게 읽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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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o see a World in a Grain of Sand
  And a Heaven in a wild flower  
  Hold Infinity in the palm of your hand  
  And Eternity in an hour

  - Auguries of innocence (William Blake)


  [6/9, 14:22]

  “타임키퍼. 최근 힐마의 상태가 많이 악화됐어. 늘 그랬듯, 힐마는 이겨내겠지. 폭풍우도 이겨냈을 정도로 그 아인 강하니까.”

  Z씨의 집무실. 그녀의 표정이 어둡다. 빼곡히 무언가 적힌 종이더미를 바라본다. 그 중 하나를 들어올려 내게 건넨다. 종이를 받는다. 의학적 내용들이 기록된 서류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 게 아니었다.

  “저번 접견이 갈라보나와 피클즈였지. 그 둘은 어떻게 됐나. 버틴.”

  Z씨의 질문이 잘 들리지 않는다. 뭐라고 답은 해야 하는데, 말문이 목구멍에서 걸려버린 기분이다. 서류의 내용... 아니, 편지의 내용 때문이다.

  “버틴?”

  “그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가끔 갈라보나씨가 피클즈와 천문대 앞에서 터그놀이도 합니다.”

  내가 말하고도 뭐라고 답을 한 건지 모르겠다. 터그놀이? 말도 안 된다. 피클즈가 보더콜리라지만, 그런 활동적인 놀이를 좋아하진 않는다.

  “그런가? 그건 다행이군.”

  Z씨가 앉고 있는 의자를 돌려, 창가 쪽으로 방향을 튼다. 차갑고 무뚝뚝한 재단 건물 바깥에선 싸늘한 태양 빛이 줄기를 이룬다.

  “버틴. 이번 접견은... 힐마가 하는 편이 나을 것 같네. 원래는 다른 사람들을 생각했지만... 어쩌면... 그 아이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을 수도 있네. CIDS(선천성면역결핍증)도 문제지만... 투스 페어리의 보고대로면 지금은 피부암의 전이가...”

  Z씨의 말은 사무적이면서도 그 속엔 가늠할 수 없는 슬픔이 있었다. 업무적으론 냉철한 상사다. 하지만 가장 인간적인... 아니, 가장 마도학자다운 상사다.

  “고민을 좀 해봤네. 내 생각엔... 그녀가 적절한 조언을 해줄 수 있지 않을까 싶네.”

  힐마. 아니, 크리스탈로의 편지를 곱게 접어서 품 속에 넣는다. 그리고 Z씨가 다시 건넨 서류를 받는다. 이번엔 편지가 아닌 진짜 서류다. 익숙한 사진과 함께 서류에 쓰여 있는 이름은 다음과 같다.

  ‘이터니티’



  [6/11 11:12]

  Z씨에 의해 새로운 법안이 통과되고, 분명히 재단 내에서의 내 입지는 변했다. 그와 동시에 수 많은 마도학자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고, 그 중 일부는 나의 여행가방 안에 들어올 수 있었다.

  나는 타임키퍼이며, 모든 마도학자들과 대인관계를 쌓을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그것이 내가 모든 마도학자들과 편하게 지낼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소네트나 소더비, 레굴루스, 조슈아처럼 편하게 말을 할 수 있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그 반대도 존재한다.

  그 대표격인 사람이 아무래도 이터니티 씨일 것이다. 소더비와 레굴루스조차 존댓말을 쓰게 만드는 사람이다. 그녀는 내가 타임키퍼라는 직함을 맡았을 때부터... 어쩌면 그 이전부터 재단에서 생활했던 사람이다. 그녀에 대해 알려진 건 많지 않다. 갬블러이기도 하고, 잡화 상점 주인이기도 하다. 그런 표면적인 것들만 알려져 있다.

  똑똑.

  문을 두드린다. 이터니티, 그녀의 방이다. 동시에...

  “어머, 꼬마 아가씨. 웬일이야? 길 잃은 건 아닐 테고. 혹시 물건 사러 온 거니? 마침 세일 중인데.”

  그녀의 여행 가방 속, 잡화 상점이기도 하다. 문을 두드리자마자 문이 활짝 열리고는 이터니티, 그녀가 맞이한다.

  “아뇨. 그게... 재단의 업무가 있어서 말씀 드리러 왔어요.”

  하얀 블라우스 차림의 그녀. 한 손에는 와인잔. 그 안에는 와인 대신 우유가 들어 있다. 그녀가 반대쪽 손에 든 파랗고 작은 병을 흔든다. 그 속에 든 파란색 액체가 넘실거린다. 그것도 아주 끈적이듯 느릿하게.

  “그래? 재단에서? 일단 들어올래?”

  그녀가 상냥한 목소리로 말한다. 방 안에 들어선다. 눈에 보이는 건... 수 많은 책들. 그리고 빨간색 카펫. 커튼. 한쪽엔 넓은 선반이 있는데 그 위엔 다양한 옷가지와 가방, 모자, 망토 같은 것들이 있었다. 다만 비매품은 아닌 것 같다. 가격표 같은 것이 걸려 있다. 비행 가방 3000 톱니 동전... 안개 망토  5800 톱니 동전...

  “그래서, 재단에선 무슨 볼 일이 있길래 우리 꼬마 아가씨를 다 보냈을까?”

  그녀가 레드벨벳 소파에 앉는다. 나는 맞은편 의자에 앉는다. 그녀와 눈이 마주친다. 까만 밤, 만월일 때나 보일 것 같은 노란 눈이다. 그녀의 ‘재단’이란 단어엔 날이 서 있다. 일전의 사건으로 그녀는 재단과의 관계가 썩 좋지 못하다. 일종의 사기였는데... 아무튼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접견과 관련해서요. 이번에 세 번째 접견이 있는데, 이터니티씨가 맡아주셨으면 합니다.”

  그녀가 내 말을 듣긴 했을까. 그녀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더니 한쪽 선반에 놓인 TV를 켠다. 무슨 프로그램을 보나 했더니 투나잇쇼의 녹화본이다. 그녀는 잠시 동안 말 없이 TV를 보면서 우유를 마신다. 그러다 나를 보더니 그렇게 말한다.

  “너도 한 잔 할래? 신선한 우유가 피부 미용에 좋거든. 어려서부터 관리하는 게 나중에도 좋잖아? 혹시 모르지. 네 얼굴에 주근깨도 스무 살엔 나처럼 말끔해질지.”

  ...

  “이터니티씨. 이터니티씨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

  고개를 숙인다. 고개 숙여 누군가에게 부탁을 했던 게 언제가 마지막이었는지 기억도 안 난다. 많은 사람들을 폭풍우 속에서 떠나 보내면서. 내 얼마 없는 능력이 고작 그 빗속에서 생존하는 거란 걸 알게 되면서. 타임키퍼라는 직함을 받으면서. 나는... 줄곧 냉정해지려고만 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누군가와의 작별은 마음을 아프게 한다. 다들 그랬을 거다. 피클즈도 주인을 떠나 보내면서. 소더비도 카슨씨를 떠나 보내면서.

  다들 아팠을 것이다.

  “부탁드려요.”

  이터니티씨의 표정이 어떨진 모르겠다.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이것뿐일 거다.

  “얘, 아가야. 고개 들어.”

  고개를 든다. 그러자 나긋하게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넘기는 그녀가 있다.

  “우리 꼬마 아가씨가 부탁하는 일인데. 당연히 도와줘야지. 물론 재단 녀석들의 일이라는 건 탐탁치 않지만, 그게 중요하겠어? 오래 살다 보면 공과 사는 자연스레 구분하게 되는 법이란다.”

  다행이다. 그런 감정이 먼저 든다.

  “그리고 아무에게나 고개 숙이면 안 돼. 꼬마 아가씨가 어리긴 해도 말야. 차별 받고, 핍박 받아오며, 수없이 고개를 숙여야 했던 우리 마도학자들이지만, 너는 우리들의 리더잖아. 안 그래?”

  고개를 끄덕인다. 이터니티씨의 말이 맞다. 나는 타임키퍼다. 그리고 여행가방 속 수 많은 마도학자들의 리더이기도 하다.

  “그래. 그 표정이 좋은 거야.”


  [6/11, 13:13]

  이터니티씨에겐 어느 정도 설명을 드렸다. 그녀가 필요한 이유에 대해서도. 힐마. 그러니까 크리스탈로의 몸 상태에 관해선 재단 사람들도 유의하고 있다. 선천적으로 좋지 못하고, 잔병치레도 잦다. 재단의 방사선치료 역시 겸하고 있지만, 곧 새로운 병이 도진다. 메디슨 포켓은 이따금 라플라스 연구소의 신약을 가져와준다. X도 로렌츠 연구소의 여러 의료 장비들을 그녀에게 가져온다. 투스 페어리씨도 늘 크리스탈로 몫의 이빨요정은 남겨둔다.

  그러나 어떤 것도 그녀에게 유의미한 효과를 내진 못했다.

  Z씨는 이터니티씨가 가진 ‘영생’의 힘에 걸어보기로 했다. 우리 모두가 늙어 죽더라도 이터니티씨는 살아있을 테니까. 그 비밀을... 조금이라도 크리스탈로가 공유받을 수 있다면... 영원은 아니더라도 조금 더 나은 삶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날 잊지 마.’

  ... 누군가가 떠날지도 모른다는 건 왜 이렇게 두려운 걸까. 적응이 안 된다. 슈나이더의 마지막 말이 머릿속을 멤돈다.

  “버틴?”

  미국 억양... 까칠함이 묻어나오지만 사교성이 뛰어날 것 같은 밝은 목소리.

  “블로니?”

  정신을 차리고 보니 로비였다. 창밖을 본다. 이 시간대면 드루비스씨가... 있어야 할 텐데 없다. 대신 로비에는 블로니가 있다. 그녀는 소파에 앉아 있다. 그녀의 사슴 친구와 함께.

  “버틴! 오랜만이야!”

  제시카도 있다. 산뜻하고 순수한 어린 소녀 같은 목소리. 그녀의 꼬리가 흔들거린다. 반갑다는 뜻일까. 강아지처럼 느껴진다. 블로니와 제시카, 둘 모두 잠옷 차림이다. 둘은 끌어안은 채로 소파에 앉아 있었는데, 블로니의 손에는 분홍색 디자인 노트가 들려 있다. 최근 인간들과 소규모 영화 촬영 중에 있다고 들었는데...

  “너도 와서 볼래? 우리 자기랑 지금 하이라이트 부분의 연출에 대해서 얘기중이었거든.”

  ... 한숨이 나온다. 안 하려고 해도 ‘자기’라는 말을 들으면... 조금은 당황스럽다.

  “제니퍼. 버틴이 한숨을 쉬고 있어. 왜일까?”

  제시카가 말한다. 그러자 블로니는 깔깔 웃으면서 답한다.

  “원래 버틴이 시크하잖아. 센스도 없고. 저 녀석의 특성이니까.”

  그러자 제시카의 귀가 쫑긋거린다. 눈이 휘둥그레져선 자기도 내 특유의... 한숨을 따라한다. 표정까지 무표정 그대로다. 그러자 블로니가 박수를 치면서 웃는다.

  “제시카! 완전 똑같았어. 역시 널 연기자로 뽑은 내 안목은 대단하다니까?”

  “역시 제니퍼는 대단한 눈을 가졌구나!”

  저 두 사람이 행복해하는 건 좋은 일이다. 하지만 나까지 껴서 감정을 나누기엔 내 감정 상태가 좋지 않다. 속이 메스껍다. 투스 페어리씨한테 약이라도 달라고 할까.

  “버틴, 잠깐이면 돼. 이번 작품은 내 희대의 역작이 될 거라니까? 진짜야.”

  블로니가 말한다. 한숨이 나오려다 만다. 의식해서 하지 않게 된다. 손목시계를 본다. 오후 1시 20분 경이다. 잠깐 정도 업무적으로 대하는 건 문제가 없을 거다. 그들에게 다가간다. 천천히. 그런데 블로니가 별안간 일어서더니 내 목에 자기 팔을 뱀처럼 휘어 감고는 끌어당긴다. 눈깜짝할 새에 넘어졌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제시카의 배... 아랫배로 넘어졌다. 털 때문에 푹신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사슴의 아랫배는 근육질인지 딱딱했다. 잠깐... 실크햇이 떨어졌...

  “벨벳 라이트닝!”

  제시카가 주문을 외우더니 그녀의 다리에 자란 하얀 균사들이 퍼져나갔다. 그것들이 내 실크햇을 들어올리더니 곧, 내 머리에 씌워줬다.

  “고마워. 제시카.”

  그녀가 교정학교에서 보낸 시간들이 완전히 쓸모 없진 않았던 것 같다. 마틸다가 최고의 제자로 만들겠다던 호언장담이 틀린 말은 아닌 것 같기도.

  “아니야, 버틴. 계속 떨어뜨려도 돼. 평생 주워줄 수도 있어.”

  그녀의 말이 섬뜩하게 들리는 건 기분 탓일까.

  “제시카, 너는 나랑 평생 있어야지. 무슨 소리야?”

  블로니가 장난스럽게 딴지를 걸자, 제시카는 아주 당연하다는 말투로 답한다.

  “그럼 제니퍼도 버틴도 나랑 영원히 같이 살면 되겠다!”

  영원히. 평생. 슈나이더... 크리스탈로...

  “일... 아니, 블로니. 영화 얘기는.”

  자세를 고쳐 잡는다. 둘 사이에 껴서 앉기엔 뭐해서 제시카의 반대쪽 옆자리에 앉는다. 제니퍼가 가운데에 끼인 상태다. 그녀는 금발머리를 한 차례 뒤로 넘기더니, 씩 웃으면서 수첩을 내게 건넨다.

  “자자. 한 번 보라고. 이 정도면 그 안경잡이 공포영화광도 인정할 걸?”

  제니퍼의 노트에는 여러 장면의 스케치와 날려 쓴 글자들이 가득했다. 전형적인 미국인의 날림 필기체라 알아보기 어렵지만... 뱀파이어에 관한 내용 같았다. 그 중에는 눈에 띄는 장면이 하나 있었다. 바로 뱀파이어가 어떤 사람의 목을 물어 뜯는 섬뜩한 장면이다.

  “그래, 그 부분이 하이라이트야. 뱀파이어는 자기가 뱀파이어라는 걸 여자친구에게 속였어. 그러다 여자친구가 시한부에 걸렸는데, 그때 뱀파이어가...”

  여자친구 역할에는 ‘앤’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제시카의 또 다른 별칭... 아마 그녀가 담당하는 역할이 아닐까. 그 장면에 대해선 굵은 글씨로 ‘특히 무섭게 연출’이라는 메모가 적혀 있다.

  “제니퍼 말로는 그 부분을 내가 연기할 거래. 그런데 내가 뱀파이어한테 물리는 걸 싫어하는 연기를 해야 한대. 영원히 살게 될 텐데 물리면 좋은 거 아닌가?”

  제시카가 말하자, 블로니는 검지손가락을 까딱이며 그게 아니라는 제스처를 보인다.

  “영원히 산다는 게 모두에게 좋은 건 아니잖아. 물론 제시카, 너와는 영원히 있고 싶지만 말야. 나는 너와 짧더라도 재밌는 삶을 살고 싶지, 길고 지루한 인생을 살고 싶진 않거든.”

  ...

  “제니퍼, 그러면 길고 재밌는 삶은 어때?”

  블로니가 제시카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우리 자기랑은 그렇게 보내고 싶지만, 영원히 살게 된다면 하루 하루를 소중히 즐기지 못할 것 같거든. 나란 여자가 그래. 귀찮다고 잠만 자지 않을까? 지금도 잠은 많지만...”

  ...

  “아, 제시카. 펫모임 시간이 되겠는 걸? 이제 거의 2시가 다 됐어. 옷 입고 준비하자! 버틴, 당연히 너도 같이 가야겠지?”

  블로니가 내 볼을 검지로 쿡쿡 찌른다. 제시카도 아주 골똘히 바라는 눈망울로 나를 본다.

  “가자, 버틴! 이번 펫모임엔 새 친구들이 잔뜩 올 거래! 소네트를 닮은 강아지나... 뽀글뽀글한 솜털 같은 강아지 친구. 아, 뉴바벨의 새 카벙클 친구들도 잔뜩 온다고 했어!”

  내게 잔뜩 바라는 그녀들이다. 소네트를 닮은 강아지면... 저번 펫모임에서 봤었다. 시르네코 델레트나 얘긴가. 이름이 루이지였지... 하지만 아쉽게도 오늘은 이들과 시간을 보내기엔 업무가 있다. 아주 중요한 업무가.

  “오늘은 접견일이라 안 돼. 다음에 시간을 내볼게.”

  내가 말하자 제시카는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그러곤 블로니를 쳐다본다. 블로니는 따분한 일 따위 집어치우라는 듯, 한숨을 푸욱 내쉰다.

  “그러고 보니 매월 11일이었지. 오늘은 누군데? 저번엔 갈라보나씨랑 피클즈가 했다며. 얼마 전 펫모임에 둘이 왔더라?”

  ...

  “제니퍼, 버틴은 왜 못 가? 접견이 뭐야?”

  블로니가 제시카를 나를 번갈아 본다. 그러더니 나에게 윙크를 하고는 제시카의 어깨를 손으로 부드럽게 감싼다.

  “하여간, 너도 일 중독이야 버틴.”

  그녀가 눈치 없는 마도학자는 아니다. 아무래도 접견에 대해 설명하면 제시카가 난입하려고 할 테니... 그녀는 제시카를 일으켜 세우가 그녀들의 방 쪽으로 걸어간다. 블로니가 나를 돌아보더니 씨익 웃고는 오른손을 흔든다.

  큰 폭풍우가 지나간 것 같다. 정신을 차려야지. 이제 접견실로 가면 된다. 크리스탈로의 방은 무균실에 가까워서 웬만하면 사람들이 출입을 잘 안 한다. 그녀가 밖에 산책이라도 나올 때나 가끔 안부를 묻는 정도다. 물론 그녀는 어느 상황에서나 사람들을 따스한 마음으로 반긴다. 하지만 그녀의 방에 들어간다는 건 리스크가 있는 일이다. 때문에 그녀에겐 Z씨의 부하 직원들이 따로 연락을 해놓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녀는 지금 접견실에 있을 거다.

  그렇게 접견실 앞에 섰다. 문 손잡이를 잡는다. 참... 노크. 노크를 한다. 그러자 안에서 어느 성숙한 여인의 말소리가 들린다.

  “꼬마 아가씨지? 들어와.”

  문을 연다. 오늘 접견실 청소는 사츠키가 아닌 메디슨 포켓과 라플라스의 몇몇 직원들이 했다. 약품 처리를 해서 최대한 병원균을 죽이려는 의도였다. 때문인지 방 안에선 코를 찌르는 락스 냄새 같은 것이 진동을 했다. 물론 탕비용품들도 없다. 다과도 없다. 오로지 파란 드레스를 입고 머리를 위로 땋은 이터니티씨. 그리고 환자복을 입은 채, 오른팔 전체에 붕대를 감고 링거를 꼽고 있는 그녀가 있다.

  “타임키퍼씨! 오셨군요!”

  연약한 듯, 부서질 듯한 유리 같은 목소리다. 동시에 너무나 투명해서 마음 속에 먼지 한 점 없을 것 같은 목소리기도 하다. 크리스탈로는 하얀 눈 같은 앞머리를 옆으로 넘기며, 나를 향해 인사했다. 그녀는 웃고 있다. 아주 활짝.

  “힐마... 아니, 크리스탈로. 그리고 이터니티씨. 이렇게 만나게 돼서 반가워요.”

  나도 인사를 한다. 이터니티씨는 손을 흔들고, 크리스탈로는 목례한다. 그녀의 완드이자 휠체어인 의료기기 코발트-61+가 파랗게 빛난다.

  “두 사람 모두 접견 때문에 여기 모인 거예요. 접견에 대한 설명은 앞서 들으셨겠지만, 간단히 요약하자면 마도학자들의 관계 조성을 통해 업무시 더 강한 팀워크를 발휘하기 위함이에요.”

  내가 말하자, 크리스탈로가 궁금한 듯 묻는다.

  “그러면 타임키퍼씨. 저도 자주 나갈 수 있게 되는 건가요? 이터니티씨랑?”

  ... 바로 답을 하지 못하겠다. 비록 희망 섞인 이야기라지만, 거짓말이란 건 바로바로 말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응. 곧 있으면 네 병도 나을 테니까. 그러니까...”

  뭔가 말을 더 이어 붙여야 할 것 같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다. 나는 테넌트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거짓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니까.

  “얘, 그래서 우리 아픈 꼬마 아가씨랑은 무슨 얘길 하면 되는 건데?”

  이터니티씨가 묻는다. 하지만 나도 딱히 정해진 가이드라인은 없다. 지금까지 어찌저찌 잘 이어져왔으니 말이다.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아요. 자기소개는... 어떨까요.”

  내가 답한다. 자기소개라. 대단한 변명이다. 어차피 서로에게 안면이 아예 없는 건 아닐 텐데. 게다가 크리스탈로나 이터니티씨나 재단에서 오랜 시간 생활했다. 서로를 모를 리가 없다.

  “정말요? 저는 좋아요! 콜록... 이터니티씨, 안녕하세요. 저는 크리스탈로라고 해요.”

  그녀가 기침 섞인 말을 한다. 하지만 이터니티씨는 정작 아무렇지도 않은 듯, 크리스탈로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그래, 반가워. 난 이터니티라고 해. 신기한 물건을 팔고 있는 만물상의 아름다운 사장님이지.”

  크리스탈로가 얼굴을 붉힌다. 머리를 쓰다듬어주면 유독 좋아했다. 그녀는 그걸 칭찬의 의미로 받아들인다고 했다.

  “나도 빛나는 은발인데, 너는 정말 새하얗네. 마치 눈 같은 걸?”

  다행이도 이터니티씨가 크리스탈로에게 모질게 굴진 않았다. 오히려 칭찬을 해줘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다만 그녀의 손길 하나 하나에 심장이 덜컹거린다. 혹시라도... 작은 병균이라도 크리스탈로에게 악영향을 끼칠까 싶어서.

  “너는 올해로 몇 살이니? 10살 쯤 되려나?”

  “아, 아마... 16살이에요. 이터니티씨는요?”

  “나? 나는 너보단 많지. 아주 오랜 세월을 살았단다. 바다가 마르고, 또 혼자가 될 때까지. 물론, ‘언니’라고 불러도 될 정도의 나이야.”

  적어도 100년을 넘게 살아온 그녀가 할 말은 아닌 것 같다. 냉정하게 얘기하면 할머니... 아니, 증조할머니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니까. 다만 제시카가 그렇듯, 마도학자나 초자연자들의 나이엔 크게 의미가 없다. 다른 성장 속도에서 살아가는 경우도 있으니까.

  그래서다. 이터니티씨가 부른 건.  “이터니티씨, 책에서 봤는데... 바다가 마르려면 엄청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아요?”

  크리스탈로가 궁금한 듯 묻는다. 평소 여러가지 책을 읽는 그녀라면 이 부분에 질문을 던질 거라고 생각했다. 이터니티씨는 크리스탈로의 뺨을 어루만지더니 답했다.

  “그럼.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지.”

  “그런데도... 이터니티씨는 되게 어려보여요. 신기하다...”

  “너도 신선한 우유 한 잔 씩 매일 마셔봐. 나처럼 될 수 있을 걸?”

  유감스럽게도 그건 불가능하다. 완전히 멸균시킨 우유를 구하는 건 어려우니까. 게다가 크리스탈로는 유당불내증이 있다. 그리고... 애초에 이터니티씨의 신선한 우유 한 잔이 영생의 비밀이라느니... 그런 말은 허구다. 그럴 리가 없다.

  “이터니티씨. 크리스탈로는... 우유를 마실 수 없어요. 균도 문제고, 유당불내증이 있거든요.”

  내가 말하자 이터니티씨는 유감이라는 듯, 고개를 젓는다.

  “아쉽네. 꽤 좋은 생활 루틴이 될 텐데 말이지.”

  이터니티씨가 아쉬운 듯 말한다. 아니, 나는 이런 게 필요한 게 아니다. 오늘 접견 만큼은 확실한 목적이 있으니까.

  “이터니티씨. 크리스탈로가...”

  하지만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크리스탈로가 곧 죽을 지도 모르니, 영생의 비밀을 공유해달라고. 그걸 크리스탈로 앞에서 말할 수 있을까? 나는... 나는...

  “타임키퍼씨... 전 괜찮아요. 전 믿어요. 아프면 아플 수록, 더 나아질 수 있다는 증거라고요.”

  크리스탈로가 내 손목을 꼭 잡는다. 그녀의 여린 손가락들은 하나 같이 생기가 없다.

  “뭘 먹어도 입에서 쇠맛이 나는 시간들도. 늘 병원이나 이곳, 제 방에서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것도. 제가 포기하지 않고 믿는다면 언젠가 나을 거라고요. 언젠가 두 다리로 서서, 소더비씨가 말했던 바이콘도 보고, 투스 페어리씨의 차에 타서 드라이브도 나갈 거예요. 메디슨 포켓씨의 실험도 도와주고 싶고, X씨와 같이 발명도... 콜록... 콜록...”

  그녀가 갑자기 기침을 심하게 한다. 그녀의 손바닥에... 혈흔이 묻어 나온 게 보였다. 나도 모르게 먼저 몸이 나선다. 크리스탈로에게 다가간다. 안아준다. 하지만 그것 말고는 내가 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등이라도 두들겼다간 그 등이 부서질 것만 같다. 온갖 곳에 금이 간 유리조각처럼. 어떻게... 투스 페어리씨라도... 고리... 슈나이더...

  “버틴. 괜찮아.”

  내 이름. 타임키퍼도 아니고, 꼬마 아가씨도 아닌 내 이름이 들렸다. 이터니티씨다. 그녀가 진지한 표정으로 내게 말한다.

  “재단에서 날 왜 불렀는지 알 것 같으니까. 내가 오랜 세월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눈치’ 때문이기도 하거든.”

  그때였다. 크리스탈로가 나를 살며시 안아줬다. 분명 온기라곤 없는데, 차갑디 차가운 그녀의 몸인데, 따스하다.

  “고마워요. 타임키퍼씨.”

  그녀가 나를 살짝 밀어낸다. 무슨 뜻인지 알 것 같다. 자리로 돌아간다. 그리고 앉는다. 내 연미복 넥타이에 크리스탈로의 입에서 흐른 피가 조금 묻었다. 그래도 괜찮다. 빨면 되니까.

  “미안해요. 잠시...”

  “괜찮아. 그럴 수 있지. 하물며 그렇게 이성을 존중하는 인간 녀석들도... 이런 상황에선 너처럼 행동했을 거야.”

  이터니티씨가 말한다. 그녀의 말이 틀리진 않을 거다. 오랜 세월 속 산증인일 테니. 속을 가다듬는다. 침을 삼킨다. 그들에게 소리가 들렸을까. 다시. 디사 본론으로 돌아가자. 고개를 든다. 이터니티가 크리스탈로에게 손수건을 건넨다.

  “2800 톱니 동전이야. 우리 타임키퍼 이름으로 달아둘게.”
  그녀가 농담한다. 크리스탈로도 살며시 웃으며 입가를 닦는다. 대충 농담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래서 말인데, 버틴, 크리스탈로. 유감스럽게도 영생의 비밀은 존재하지 않아.”

  ...

  “나도 내가 왜 이렇게 됐는지 모르거든. 어쩌다 보니 오랜 세월을 살게 됐을 뿐이야. 파란색 피와 바닷속 생명체들... 그것과 관련된 마도학 능력이 어느정도 작용을 했을 수도 있겠지만, 자세한 건 몰라.”

  잠시나마 평온을 되찾았던 얼굴이 금새 무너질 것만 같다. 시야가 흐릿해진다. 입을 막는다. 뭔가 터져나올 것만 같아서다. 나는... 나는...

  “타임키퍼씨. 혹시 이터니티씨가 저와 접견을 하게 된 게...”

  이쯤 되면 바보라도 알았을 거다. 그리고 크리스탈로는 바깥 세계에 대한 상식이 모자랄 뿐, 바보가 아니다.

  실패다.

  “타임키퍼씨... 괜찮아요. 저는 오래 사는 게 목적이 아닌 걸요?”

  어느새 내 손이 얼굴을 집어삼키듯, 감싸고 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크리스탈로의 손가락이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그리고 천천히, 내 앞을 열어주었다.

  “저는 그저 한 번이라도 제 다리로 뛰어보고 싶을 뿐이에요. 두 다리로 일어서서, 사람들에게 찾아갈 수 있다면, 제게 희망을 줘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할 수 있다면... 다른 꿈들은 어떻게 되든 상관 없어요.”

  실크햇이 툭 떨어졌다. 고개를 너무 숙이고 있던 탓일까. 그런데 이번엔 그녀의 손길이 내 머리로 향했다. 크리스탈로가 내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전, 괜찮아요. 그리고 언젠가... 괜찮아질 거예요. 콜록... 콜록...”

  그녀의 손길이 곧, 내 앞으로 툭 떨어졌다. 중심을 잃어버린 것처럼. 곧이어 코발트-61+가 붉은 화면으로 변하며 크리스탈로 대신 아픔의 비명을 질렀다. 이터니티씨가 쓰러지는 크리스탈로를 붙잡고, 아마도 멍하니 앉아 있었을 내게 말했다. 의료진을 데려오라고.


  [6/11, 15:33]

  “크리스탈로는 괜찮다고 해요. 천식으로 인해 급성 호흡 곤란이 온 거라... 지금은 투스 페어리씨의 치료를 받고 방에 있어요. 괜찮으세요? 타임키퍼...”

  소네트... 그녀가 걱정스런 눈빛으로 쳐다본다. 그녀가 보기에도 내가 이 정도로 동요하는 건... 오랜만에 보는 일일 테다. 이런 상황들이 익숙해지긴 커녕, 겪으면 겪을 수록 악몽이 되어간다. 크리스탈로가 쓰러지고, 투스 페어리씨를 모셔왔다. 메디슨 포켓은 라플라스에 있으니 부를 건 그녀 뿐이었다. 투스 페어리씨가 응급처치를 하는 동안 이터니티씨는 내 진정과 사태 수습을 위해 소네트를 불렀다.

  그리고 지금이다.

  “괜찮아, 소네트. 이터니티씨는?”

  내가 묻자,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문 밖을 가리킨다.

  “지금 밖에 계세요. 모셔올까요?”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자 소네트는 조심스레 문을 열고는 내 집무실 안으로 이터니티씨를 들인다.

  “고마워, 목이 긴 아가씨.”

  “네... 네?”

  소네트는 황당하다는 표정이다. 이탈리안 제스처도 한다. 목이 길어 보이는 건 그녀의 복장 때문일 텐데. 반면 이터니티씨는 그런 일을 겪고도 태평하다면 태평한 모습이다.

  “아까는 죄송했어요. 제가... 대처를 잘 못했어요.”

  사과부터 한다. 내가 잘못한 부분이니까. 내가 책임을 져야한다. 그런데 이터니티씨는 내 책상 쪽으로 다가오더니, 천천히 입을 연다.

  “꼬마 아가씨. 누구든 실수할 수는 있어. 그리고... 영생의 비밀은 말야. 어느 날, 내가 파란 칵테일을 마시면서 시작됐어. 해산물의 은은한 단맛이 났지.”

  그녀가 작은 포켓 속에서 무언가를 꺼낸다. 그녀의 마도학 매개체인 푸른 피다.

  “그건 투구게의 푸른색 피... 아닌가요?”

  내가 묻자, 그녀가 답한다.

  “그 출처는 나만 알고 있어. 유감스럽게도 그렇게 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은 아니야. 하지만 말야. 영생을 살아간다는 건 수많은 행복을 그저 지나간 것으로. 동시에 그 수만큼 많은 악몽을 간직하는 것으로. 좋지 않게 이어져나가기 마련이야.”

  ...

  “그래도 크리스탈로에겐... 힐마에겐 더 이상 방법이 없을지도 몰라요. 그래서...”

  “얘야. 애초에 그 애는 이 피를 감당할 수도 없어. 너 역시도. 그리고 뒤에 이탈리안도 마찬가지지. 영생의 대가는 아까도 말했듯 참혹하거든. 그런데 그 투명한 유리 같은 아가씨가... 그걸 원할까?”

  ... 크리스탈로가 원하는가. 그녀는...

  “나는 슬슬 가볼게. 낮잠을 잘 시간이라서. 아 참, 오늘 대화한 비용은 전부 네 앞으로 청구할 거야. 알지?”

  이터니티씨가 소네트를 스쳐지나가며 목례한다. 문을 열고 집무실 밖으로 나간다. 소네트가 내 쪽으로 온다. 뭔가 근심이 가득한 표정이다. 그녀가 말한다.

  “타임키퍼...”

  ... 소네트가 앞에 있는 게 민망하게... 머릿속이 복잡하다. 크리스탈로가 살고 싶어하는 건 분명하다. 건강해지고 싶은 것도 분명하다. 하지만 그 결과값이 영생이라면. 과연 그녀가 원할까. 문득 아까 전에 봤던 블로니의 영화 얘기가 떠오른다. 뱀파이어와 시한부 여자의 이야기. 그녀의 말이 떠오른다.

  ‘영원히 산다는 게 모두에게 좋은 건 아니잖아. 물론 제시카, 너와는 영원히 있고 싶지만 말야. 나는 너와 짧더라도 재밌는 삶을 살고 싶지, 길고 지루한 인생을 살고 싶진 않거든.’

  ... 그녀의 말이 정답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틀린 말도 아닐 것이다.

  “소네트. 혹시 꽃에 대해 잘 알아?”

  소네트에게 묻자,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답한다.

  “네? 꽃이요?”


  [6/12, 12:33]
  
  크리스탈로의 방문을 두드린다. 들어가기 전, 알코올로 손을 확실하게 소독한다. 손에 든 물건이 상하지 않도록 조심한다. 곧이어 그녀의 목소리가 들린다.

  “네, 들어오세요!”

  문을 열자, 다른 마도학자들과는 사뭇 다른 방의 풍경이 느껴진다. 지독한 병원 냄새와 그 속에 묻힐 듯 말듯한 책 냄새. 도서관과 병실 중간 어딘가의 모습이다. 창밖에선 정오의 햇살이 들어온다. 크리스탈로는 자신의 완드에 앉아 있다.

  “오셨네요! 타임키퍼씨, 와줘서 기뻐요! 오늘은 별일 없으셨나요?”

  그녀의 옆에는 평소와 다르게 하얀색 의사 가운을 입은 투스 페어리씨도 서 있었다. 손에는 이빨요정들이 빛나는 유리 단지를 든 채다. 물론 그녀의 트레이드마크인 교정기도 그대로다.

  “제가 나갈 타이밍이겠군요. 그럼 좀 있다 올 게요. 크리스탈로씨.”

  “아, 네. 고맙습니다 투스 페어리씨.”

  두 사람이 서로 인사한다. 나는 가볍게 목례한다. 투스 페어리씨가 나가면서 내게 귓속말을 한다.

  “괜찮을 거예요.”

  그녀가 나갔다. 이제 방에는 나와 크리스탈로 둘 뿐이다.

  “그런데 타임키퍼씨. 손에 그건... 뭐예요?”

  손에 든 거. 꽃이다. 물망초. 어제였다. 소네트가 바깥 세상에는 어두운 관계로 드루비스씨와 콘블룸과 함께 꽃을 보러 나갔다. 드루비스씨에겐 꽃에 관한 조언을 구하려고 했고, 콘블룸은 그저 수레국화가 필요해서였다. 드루비스씨는 물망초가 괜찮을 것 같다고 했다. 슈나이더의 마지막 말처럼... 그녀는 물망초가 ‘나를 잊지 말아요.’라는 꽃말이라고 소개했다. 콘블룸은 신기한 눈으로 보면서 자신의 가방에 파란 수레국화를 쓸어담았다.

  그렇게 가져온 거다. 약간의 잡화를 섞어서 꽃다발을 만들었다. 크리스탈로를 위한 꽃이다.

  “널 위한 거야. 힐마.”

  그녀에게 건넨다. 크리스탈로가 갑자기 얼어 붙었다. 나는 그저 다가가서 그녀의 손에 꽃다발을 쥐어줬다. 그녀가 들고 있던 책이 바닥에 떨어지고, 대신 꽃다발이 그녀의 손에 안착했다.

  “상처가 늘었어. 조심해.”

  그녀에게 말한다. 크리스탈로는 멀뚱멀뚱 날 쳐다보더니, 상황을 인지한 듯 입을 벌린다.

  “아...”

  눈물을 흘린다. 그녀가 눈물 젖은 목소리로 말한다.

  “저를 보러 와주셔서 감사해요. 꽃도... 감사하고요. 직접 만져보는 건 처음이에요. 정말... 감사해요.”

  크리스탈로가 펑펑 울기 시작한다. 우는 건 그녀의 건강에 좋지 않을 텐데. 여전히 걱정이 들면서도... 괜찮다. 어제보단 낫다는 투스 페어리씨의 말이 있어서도. 영생보단 필멸이 나을 수도 있다는 이터니티씨의 말이 있어서도 아니다. 그냥. 크리스탈로가... 힐마가 진심으로 기뻐하고 바라는 일을 한 거니까. 그거면 됐다.

  “그런데 힐마. 수액이랑 빨간백 말고도... 뭐가 또 늘었네.”

  그녀의 완드에는 수액 같은 걸 걸칠 수 있는 링겔대가 설치되어 있다. 평소라면 (피는 아니라고 하는)빨간백과 면역효소가 들어간 수액이 걸려 있는데, 오늘은 뭔가 이상한 게 하나 더 추가되어 있다.그러자 크리스탈로가 조금 진정하더니 답한다.

  “아, 그... 메디슨 포켓씨가 새로운 약을 만들어왔대요. 이름은 장생의 피라던데... 잘 모르겠어요.”

  ... 설마 이터니티씨가. 메디슨 포켓이 저런 이름의 약을 지었을 것 같진 않다. 그의 작명센스는 굉장히 투박하고 거침 없으니까. 진실은 당장 모르겠지만... 그래도 크리스탈로에게 도움이 된다면 다행일 것 같다.

  “그래도 저걸 맞은 뒤로는 통증이 많이 가라앉았어요. 조금은 힘도 나고요.”

  그녀가 다시 웃는다. 해맑다. 나도 지금이라면 웃을 수 있을 것 같다. 웃는 건 잘 못하지만 조심스럽게 웃어본다. 그녀가 만족할 수 있도록. 황무지의 햇살이 오늘따라 더 따스하게 느껴지는 건 기분탓일까.


제 3회 마도학자 접견 일지 - 크리스탈로의 눈물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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