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없는 공간에서 책임은 선택이 되는데,
의무 아닌 책임은 한결 같을 수 있을까?
자신을 성실하다고 자각하는 사람(성실하지 못한 자신을 확인하면 괴로워지는 인간)조차 항상 성실할 수는 없다.
인간의 책임의식은 가변적이다.
상황에 따라 기분에 따라 지키기도 하고 어기기도 한다.
서류로 명시된 약속도 지키지 못하는 인간족속에게
익명세계에서의 양심을 기대하기란 불가능하다.
인간은 대낮 길거리에서도 부끄러움을 모른다.
(자신이 한 행동을 후회하지 않은 인간이 세상 어디있는가?)

온라인과 오프라인은 인간이라는 사실만 같을 뿐이다.
인간이 시장에서 행동하는 것과 같이 전쟁터에서 행동하나?
예시가 비약인가?
그렇다면 학교에서 행동하는 것과 같이 가정에서 행동하나?
개인에게 윤리와 도덕(양심)을 요청할 수는 있겠으나 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 주변인의 모습을 살핀다면 그들이 양심의 호소가 먹히지 않는 족속이라는 사실을 너무나 명확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제약(책임이 의무가 아닌)없는 온라인 환경에서는 더 하면 더 했지 덜 할 수는 없다.
내가 며칠 전 쓰러진 사람을 부축하면서 주변인에게 119 신고를 요청했다.
내가 말을 꺼내니 모두 내게서 고개를 돌렸다. (비유가 아니다)
그들은 알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는 특정인이 호명된다는 걸 말이다.
그들은 특정인(119 발신)으로 호명되지 않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걔중에서 내가 하나를 호명하니 그는 말했다. (말을 채 끝맺지도 않아서 잘 들리지도 않았다)
"저는 아니..."
내가 한 사람을 지목하자 인간들은 필사적으로 딴청을 하기 시작했다.
내 어깨에 후두부에 외상을 입어 전신이 힘없이 흘러내리는 인간이 부축되어 있는 모습을 뻔히 알고도 그들은 하던 일을 하면서 (핸드폰을 만지든 지인과 대화를 하든) 단 한가지의 유일한 행동, 고개 돌리기밖에 하지 않았다.
나는 뒤로 인간(족속들)을 호명했으나 그들은 아무도 응하지 않았고 나는 부축된 이를 벤치에 앉히고나서야 119에 발신전화를 걸 수 있었다.

인간족속의 심성이 구린 건 아니다. (인간족속이 구려봤자 얼마나 구려질 수 있겠는가?)
구리든 아니든 인간족속은 결과적으로 도무지 도움이 안 된다.
(도움이 되면 인간들이 이러고 살겠는가?)
인간족속에게 선의를 의무로 바라서는 안되며 선의로 권리를 가지려고 해서도 안 된다. (악과 위선은 같지 않지만 둘다 선은 아니다. 선은 돈 주고 못 산다. 난 여태 선한 짓을 해본적이 한번도 없다. 내 자랑 중에 하나다)

난 온라인 피플을 인간족속이라 부르면서 매순간 기쁨을 체험한다. 온라인은 내가 오프라인에서 감히 코앞에 대고 인간족속이라 부를 수 없는 이들을 인간족속이라고 부르기 가능한 공간을 나에게 제공한다.

인간족속들아, 오늘도 천박하게 살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