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계획서는 뭔가요?”
총학생회 수석행정관 나나가미 린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샬레의 선생이 건넨 서류철을 바라본다.
“총학생회의 예산 승인이 필요할 것 같아서 계획서를 가져왔어.”
“근데… 샬레 여자 목욕탕 건축의 건? 선생님… 혹시?”
“아… 아냐! 오해하지 마! 난 아직 예비군도 남은 건장한…”
“그건 알고 있습니다.”
당황하며 손을 내젓는 선생을 안경 너머로 바라보는 린.
이윽고 고개를 돌려 선생이 가져온 계획서에 눈길을 보낸다.
“왜 갑자기 이런 계획서를…?”
“그게… 요즘 들어 샬레 휴게실에 있는 샤워실을 쓰는 학생이 늘어나서 말야.”
처음엔 극소수의 학생만 사용하던 샤워실이었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지금은 수많은 학생들이 아침저녁을 가리지 않고 찾아오는 키보토스의 명소가 된 지 오래다.
“그래서 학생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샬레 지하에 목욕탕을 만들면 좋을 것 같아.”
“...그렇군요.”
계획서를 모두 훑어본 린이 서류철을 책상에 내려놓는다.
“양식에 맞춰서 잘 쓴 계획서군요.”
“고마워. 서식에 안 맞다고 반려당하는 건 너무 슬펐거든.”
“일단 계획서대로라면 예산을 꽤 써야 하는 만큼, 납득할 만한 설명을 듣고 싶군요.”
안경을 살짝 치켜올리며 자신을 바라보는 린의 진지한 시선에, 습관처럼 마른침을 삼키며 따로 준비한 브리핑 자료를 보여주는 선생.
“일단은 이것부터.”
“이건 뭐죠?”
“지난 달 샬레 샤워실 사용대장이야.”
최근 들어 샤워실을 이용하는 학생이 너무 늘어나는 바람에 샬레 당번과 별도로 샤워실 정리 당번까지 생겼고, 이용대장까지 만들어 관리하고 있지만 너무 많은 학생들이 찾는 바람에 샬레 업무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을 정도라는 선생의 하소연이 이어진다.
“...그리고 어젠 아예 미야코가 샬레에 수영복을 입고 들어와선…”
“저기, 일단 알겠습니다만… 선생님.”
“응?”
“이 학생들이 샬레의 샤워실을 꼭 사용해야 하는 이유가 있나요?”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바로 찌르고 들어오는 린의 날카로운 질문.
“어… 일단 래빗 소대는 코우사카 공원에 샤워 시설이 없으니 어쩔 수 없고…”
“그럼 여기, 미소노 미카 씨는?”
“기숙사 샤워실에 더운물이 안 나와서 어쩔 수 없다고…”
“흥신소 68? 이 분들은…”
“사무실에 샤워실이 없대.”
“...아비도스 고등학교 분들은 샬레까지 거리가 수십 km가 넘는데 왜…?”
“수도세를 못 내서 학교에 물이 안 나온다고…”
“...수도세 낼 돈은 없고 샬레까지 올 교통비는 있다구요?”
“자가용 헬기를 타고 오니까 괜찮다고…”
“...아케보시 히마리 씨는 불편한 몸인데 굳이 샬레까지…”
“샬레의 샤워실에서 샤워를 하라는 점괘가 나왔다더라구.”
선생의 대답을 들으며 린은 입술을 꽉 깨물며 속으로 생각한다.
이 사람은 학생밖에 모르는 바보거나, 눈치라곤 전혀 없는 둔감의 화신이거나.
아니면 둘 다라고.
“그리고 사람이 너무 많이 와서 그런지 학생들이 불편해하는 것 같아.”
“어떤 면에서 불편해하나요?”
“음… 예를 들면 샤워하러 와선 왜 다른 학생이 샤워실에 있는지 설명을 요구하기도 하고, 자기가 말했던 바디워시를 안 쓰고 왜 다른 걸 쓰고 있냐고 따지기도 하고, 수건이 부족하다며 내가 썼던 수건을 찾기도 하고…”
이쯤 되니 린도 진지하게 선생에게 일침을 가하고 싶어졌지만, 총학생회장 대행이라는 지위가 마지막 남은 인내심의 끈을 억지로 붙들어잡고 버티게 도와준다.
“...알겠습니다. 그러니까 이것도 학생들을 위한 일이라는 말씀이시죠?”
“응. 학생들도 그렇고, 나도 불편한 점이 많아서...”
“음? 그건 무슨…”
“학생들이 너무 많이 쓰다 보니 내가 샤워할 틈이 없기도 하고, 이상하게 가끔 샤워실이 비는 시간에 내가 들어가서 씻으려고 하면 꼭 실수로 다른 학생이 들어오더라고.”
“...실수… 라구요?”
“응. 이상하게 학생이 샤워실을 이용할 땐 그런 실수를 안하던데, 꼭 내가 샤워할 때만 되면 학생들이 샤워실에 잘못 들어오곤 하거든.”
“...샤워실 잠금 장치가 고장난 건 아닌가요?”
“그건 아닌 것 같아. 분명 문을 잠그고 샤워를 하는데 학생들이 실수로 문을 열곤….”
“그 정도면 실수가 아닌 거 아닌가요!?”
결국 참다못한 린이 서류철을 책상에 내려치며 발끈한다.
“...아. 죄송합니다. 요즘 일이 너무 많아서 스트레스 때문에…”
“괜찮아. 린 쨩도 수고가 많구나.”
“누가 린 쨩입니까. 아무튼…”
이제와서 이 사람에게 학생들의 진짜 목적에 대해 설명한다고 해도 달라질 게 없다는 걸 깨달은 린이 한숨을 내쉬며 책상에 내리꽂은 서류철을 다시 주워든다.
“알겠습니다. 그럼 계획서대로 샬레 건물 지하에 목욕탕 신축을 추진하겠습니다.”
“정말이야!? 고마워, 린 쨩!”
“...그리고 계획서에 적힌 대로, 목욕탕이 완공되는 대로 학생들의 샬레 샤워실 이용은 금지하면 되겠죠?”
“응. 그렇게 하면 학생들도 굳이 샬레 윗층까지 귀찮게 올라오지 않아도 되고, 나도 마음 편하게 씻을 수 있으니까.”
싱글벙글 웃으며 계획서 결재란에 사인하는 자신을 바라보는 선생에게, 계획서를 돌려주며 한숨을 내쉬는 린.
“선생님에게도 이런 경험이 필요하겠죠.”
“응? 무슨 말이야?”
“전술과 지휘의 천재라도 학생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건 다른 문제라는 사실을.”
무슨 말인지 정말 모르겠다는 표정의 선생을 보며, 앞으로 일어날 일이 훤히 보이는 린이 보일 듯 말 듯 미소를 짓는다.
그렇게 몇 주간의 공사가 끝나 완공된 샬레 여성전용 목욕탕.
온탕과 냉탕은 물론 입욕제를 이용한 특별탕과 다양한 온도의 사우나, 자동 때밀이 안드로이드에 매점과 안마의자까지 초호화 시설을 갖춘 목욕탕이 완성된 후, 선생님의 뜻대로 학생들의 샬레 샤워실 이용이 금지된다.
그리고 키보토스 학생들의 차가운 외면 속에 개장 이후 단 한 명의 이용객도 없던 샬레 여성전용 목욕탕은, 일부 과격파 학생들의 ‘이 목욕탕을 파괴하면 다시 샬레 샤워실을 이용할 수 있다’는 프로파간다에 의해 결국 개장 한 달을 넘기지 못하고 깔끔하게 박살나고 만다.
한때 목욕탕이었던 처참한 폐허를 슬픈 얼굴로 바라보는 선생과, 그런 선생을 답답한 눈길로 바라보는 린.
“...저기… 린 쨩.”
“네.”
“지난번에 했던 말, 무슨 뜻인지 설명해줄 수 있어?”
“...선생님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통해 우리들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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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글이 너무 안써짐...
긴 글도 아니고 단편도 수정을 반복하는데 완성이 안되고...
내가 쓴 글을 보면 맘에 안들고 수정할 곳만 보여서 계속 수정만 하는데
그냥 너무 신경쓰지 말고 올릴까 하는데
그건 또 내가 만족을 못하겠고...
쉽지 않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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