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은 동우화인켐 \'가족\'이 아니라 \'가축\'
“작업시간에 화장실 좀 가지마. 물을 조금씩 마셔!”
아침 조회 시간 조장의 훈계로 작업을 시작한다. 소변이 마려워도 화장실에 갈 생각이 없다. 관리자한테 승낙 받아 확인증을 받아야 갈 수 있는 화장실, 차라리 참을 수만 있다면 가라고 해도 가고 싶지 않다. 생리 현상을 가지고 아침부터 한 마디 듣고 나니 기분이 잡친다. 엊그제 옆 라인의 언니는 관리자한테 승낙 받는 일이 수치스러워, 참다 참다 그만 옷에다 실례를 하고 말았다. 소변 참는 게 일상이다 보니, 심지어 방광염에 걸려 약을 지어 먹는 경우도 많다.
작업등을 켜고 엘씨디 편광 필름을 검사한다. 밝은 불빛에 필름을 반사시키며 검사를 하는데,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눈이 침침해진다. 갈수록 눈이 나빠져 걱정이다. 시력이 나빠지면 일터를 그만두어야 하는데…….
“아줌마, 빨리 좀 해!”
하, 요거 봐라. 이제 스물 서넛 된 정규직 직원이 반말이다. 하청노동자는 아예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지 늘 반말을 툭툭 던진다. 내 나이가 마흔이 넘었는데. 지금이 양반 상놈 있는 조선시대도 아닌데 말이다. 조회 때는 조장이 화장실 가는 걸로 지랄이더니, 이제는 새파랗게 젊은 것이 닦달이다, 어이가 없지만 참는다. 어쩌랴. 상대는 원청회사 정규직 직원인데…….
너무 분하다. 같은 공장에 같은 날 입사해도 하청 노동자는 연봉이 원청회사 직원의 절반 이다. 한 달에 60시간 넘게 잔업을 해서 받아가는 월급은 겨우 백만 원이 넘는다. 법에서 정한 최저임금이 있는 줄도 몰랐다. 주면 주는 대로 받았다. 처음 입사할 때 상여금이 500%였는데, 아무런 통보도 없이 슬그머니 400%로 줄였다. 이 사실을 모른 체 미련스럽게 일만 했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알고, 얼마나 화가 난지 모른다. 돈 때문이 아니다. 정당한 임금조차 못 받으면서 소변이 마려우면 다리를 비비 꼬며 일한 내 자신이 너무 한심했고, 깜쪽 같이 속인 회사가 너무 괘씸했다.
이번 주말에 고향에 계신 아버지 칠순 잔치를 가야 하는데 도저히 관리자한테 말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 지난달에 시동생 결혼식 때문에 일요일에 쉬었는데, 이번 달에도 빠진다고 하면 보통 난리가 아닐 텐데…….
좀 이상한 게 있다. 주5일 근무인데, 왜 토요일은커녕 일요일에도 맘대로 쉬지 못하는 걸까. 왜 눈치를 보며 일요일 근무를 빠져야 하는지, 당연히 쉬는 날 쉰다고 하는데 욕을 먹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남들은 묵묵히 일하는데 나 혼자 따질 수도 없고. 그나저나 그 놈의 잔업이나 좀 적었으면 좋겠다. 이건 몸이 아파도 꼬박꼬박 잔업을 해야 하니, 미칠 정도가 아니라 등골이 휘어 죽겠다. 주야 바꿔 가며 열두 시간 맞교대를 돌다보면, 살려고 일하는 건지, 죽으려고 일하는 건지, 당최 모르겠다. 근로기준법이 우리나라에 있다는데 강제에 가까운 잔업과 특근이 뭔 말인가. 일주일에 한 번은 햇빛 좀 쐴 수 있으면 좋겠다.
벌써 어깨가 뻑적지근하다. 새우등처럼 굽은 채로 꼼짝하지 않고 일을 하자니 사지가 뒤틀린다. 일어나 기지개라도 한 번 펴고 싶은데, 작업장 안에서 일어서지도 못하게 한다. 가끔은 일터를 박차고 나가고 싶은 심정이다. 아니다. 앉아서 일하는 걸 다행으로 알아야지. 지난 달 불량이 났다고 보름동안 일어서서 꼼짝 못하며 일하지 않았는가. 다리가 팅팅 부었던 생각을 하면 새우등이 되어도 앉아서 일하는 게 낫다. 서 있다고 기지개를 펼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참고 일해야지.
1960년대 이야기가 아니다. 2008년 경기도 평택시 포승공단 동우화인켐 평택공장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의 고백이다. 평택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이천 명 정도인데 이 가운데 절반이 넘는 노동자가 비정규직으로 고용되어 일하고 있다. 동우화인켐은 우리나라 엘씨디 편광필름 시장의 40%를 차지하고 있다. 연매출이 1조5천억 원에 순이익이 자그마치 9천억 원이다. 굴지의 대기업 삼성전자에 납품한다. 9천억 원의 순이익의 비밀은 불행히도 동우화인켐 절반 이상을 차지한 비정규직 노동자의 설움과 절망에 있었다.
동우화인켐 하청노동자 16명은 설움의 눈물을 닦고, 절망의 일터를 희망의 일터로 만들려고 지난 5월에 노동조합을 결성했다. 이제 조합원이 400명이다. 제조업 비정규직 노조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다. 그만큼 동우화인켐 하청노동자의 아픔이 컸다는 말이다. 조합원이 늘어가는 과정은 감동, 그 자체였다. 조합 가입 유인물을 돌릴 때는 슬금슬금 관리자 눈치를 보며 피하던 동료들이, 점심시간이나 휴게시간에 조합 간부 곁에 다가와 금속노조 조끼 주머니에 손을 살짝 집어넣고 쏜살같이 사라지곤 했다. 주머니를 만져보면 조합에 가입하겠다는 종이가 들어 있다. 16명으로 과연 조합을 지켜낼 수 있을까하는 두려움은 사라지고, 할 수 있다는 벅찬 감동이 밀려왔다.
“청소하는 아주머니들이 찾아 왔어요. 나이가 많아요. 환갑이 넘은 분도 있고요. 청정작업은 따로 소장이 있는데, 월급날은 사무실로 불러서 소장이 김치나 고추장을 담가오라고 한대요. 자기 외손자 돌이라고 금반지를 해오라고 하고요. 상품권을 사다가 상납도 해야 했고요. 작업 시간에 졸았다, 걸레질 방향이 틀렸다, 하며 툭 하면 사유서를 쓰라고 했대요. 사유서를 쓰면 상여금 가운데 이삼십 프로를 삭감해서 준대요. 징계 절차도 해명 기회도 없이 소장 마음 내키는 대로 감봉을 한 거예요. 나이든 아줌마들이 마땅히 갈 일자리도 없고 그러니 온갖 수모를 당하고, 돈까지 뜯게 가며 소장 앞에 끽 소리 못한 채 있었던 거예요. 이 말을 하면서 아부머니들이 펑펑 울어요. 집에 가서 가족들한테도 말할 수 없었다며 우는 거예요. 정말 부끄러워 어떤 때는 이렇게 돈을 벌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데요. 노조 초창기잖아요. 조직을 꾸리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노동조합을 하고 안 하고의 문제를 떠나 소장의 횡포는 범죄행위였기에 조합 간부들이 나서서 싸웠어요. 검찰에도 고발하고요.”
악질 관리자에 맞서 노동조합에서 열성으로 싸워 결국 소장을 몰아내자 청소작업을 하던 노동자들이 김치를 담가 조합을 찾아왔다.
“소장한테 가져다 준 김치는 수모를 당하며 눈물로 담갔지만, 이 김치는 고마워서 눈물을 흘리며 정성껏 담았어. 이런 김치는 골백번 담아도 내 마음이 행복할 거야.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이거 밖에 없어.”
금속노조 동우화인켐 비정규직분회에서 부분회장을 맡고 있는 한지희 씨는 목울대가 심하게 떨려 이 김치를 넘길 수 없었다. 맵지도 않은데 김치를 씹으면 눈물이 찔끔거렸다.
노동조합을 만들 때 간부들은 동우화인켐 노동자의 건강권과 생명권만은 꼭 지키자는 결의를 했다. 한 달에 한 번 꼴로 작업장에서 유독 가스 냄새가 났다. 회사는 별 일 아니라며 계속 작업을 시켰다. 가스가 유출되면 표현하기 힘든 메케한 냄새가 나서 머리가 어지럽고 눈이 따가우며 속이 울렁거려 헛구역질이 났다. 도저히 작업을 할 수 없는데, 회사는 원인은 밝히지 않고 작업만을 시켰다.
노동조합은 가스 유출 사고가 나자 작업장 밖으로 작업자를 대피시켰다. 함께 일하는 동료의, 그리고 나 자신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려는 ‘본능’이었다. 하지만 회사는 작업 중지를 시켜서 손해를 입혔다며 조합 간부들에게 2억 원의 가압류와 함께 해고, 정직, 감봉과 같은 징계를 내렸다. 회사는 100명 남짓의 용역경비를 새로 고용하였다. 용역들은 폭력을 행사하며 공장에 있던 해고 노동자들의 사지를 들어 공장 밖으로 내팽개쳤다. 회사는 사람의 목숨보다 매출과 이익에 눈이 멀어 있다고 한지희 씨는 말한다.
10월 13일 새벽에 다시 가스 유출 사고가 일어났다. 조합 간부들이 노동부의 협조를 받아 현장에 들어가 가스를 채취하였다. 원진노동환경연구소에서 가스 성분을 분석하니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암을 일으킬 수 있는 벤젠, 앉은뱅이 병을 일으켜 논란이 된 노말 헥산, 독성물질인 트리클로로에틸렌과 톨루엔이 검출되었다.
동우화인켐은 엘씨디 편광필름과 함께 반도체에 사용되는 화약약품을 만들어 삼성 반도체에 납품한다. 삼성반도체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백혈병으로 18명이나 죽어 요즘 국정감사에서도 시끌벅적한데, 지금껏 이 약품을 직접 만들어 납품한 동우화인켐 노동자는 더 위험한 조건에 놓였던 것이다.
“죽음을 몰고 올지 모르는 가스를 피해 작업장을 뛰쳐나간 것이 죄가 된 노동자가 2억원의 가압류를 받아야 하는지, 해고를 당해 마땅한지, 이제 한 번 따져봐야겠어요. 더 이상 동우화인켐은 이익에 눈이 멀어 노동자의 생명권을 강탈할 것이 아니라 당장 공장을 멈추고 가스 유출의 진상규명에 나서는 게 맞지 않나요? 한 겨울이 다가오는데 노동자를 해고해 공장 밖 길바닥으로 내쫓을 것이 아니라 함께 신나고 안전한 일터를 만드는데 노력해야죠. 1조 5천억 원의 매출만 자랑할 것이 아니라 1조 5천억 원의 적자를 보더라도 우선 되어야 할 것이 있어요. 생명, 바로 사람의 목숨이 달려 있잖아요. 동우화인켐 사훈이 ‘인간존중’인데, 그 인간에 비정규직 노동자는 낄 수도 없다니 말이나 됩니까? 비정규직은 동우화인켐 \'가족\'이 아니라 \'가축\'이예요.”
피곤에 지쳐 입술이 터진 한지희 씨의 호소다.
지난 10월 28일에 동우화인켐에 가서 취재를 했고, 전국노동자대회가 끝난 11월 9일 새벽에 이 글을 쓴다. 전국노동자대회에서 삼성반도체 백혈병 집단 발병을 고발하던 가족의 목소리가 귀에 쟁쟁하다. 며칠 뒤가 전태일 38주기 추도식이다. 동우화인켐 비정규직 노동자의 얼굴에 1970년대 청계천 봉제공장에서 일하던 시다들의 얼굴이 겹쳐진다. 오도엽/시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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