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 학생, 노동자, 예술가, 광대.... 모든 청년 남성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설거지론"앞에 집결하고 있다.

빈부와 계층, 사상과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하나의 탁자 앞에 둘러앉은 모두가 하나의 현상을 탐구하는 것에 여념이 없는데 

서로를 시기하고 질투하기 바쁘던 민중들이 이토록 단합하는 까닭은

그동안 남성들에게만 부과되던 막중한 의무와 책임은 여전한데 비해

현저히 줄어드는 권리와 입지를 보장하는 작금의 사회상을 자조적으로 대변하는 것임이 틀림없다.

수많은 남성들이 은연중에, 혹은 무의식적으로 쌓아오던 불만이 

억눌러지고, 탄압되고, 핍박받고, 무시되고, 박해받던 와중

누군가 무심코 내뱉은 설거지라는 작고 완벽한 균열의 단어가 마침내 재앙의 불씨를 당긴 게 틀림없다.

이는 지극히 합리적이고 타당하며 명확한 인과에 놓여있다. 

하여 수면위로 떠오른 설거지론은 

집단지성과 토론이라는 정제와 가공을 거쳐 점차 주철처럼 단단해지고 보석처럼 흠잡을 데 없어진다.

또한 과정중 발발한 토론들로 하여금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고 옥석을 가려낸 우리들은

이제는 단순한 불만의 배설을 넘어 "진정한 사랑"이라는 어떤 하나의 진리에 다다르고 있다.

혁명가들에게 계몽된 민중들이, 우주의 질서를 발견한 과학자들이, 깨달음을 얻은 중생들이, 진리에 이른 철학자들이 느꼈을

세상의 진리와 모순, 존재의 의의, 종의 기원, 종말의 미래, 삶의 비의에 비견할만한 향취를 

우리가 "설거지론"을 통해 일부나마 재현시키고 있다는게 재밌지 않는가?

이미 명제는 진실로 밝혀졌고 곧 진리가 될 것임을 추호도 의심할 수 없다.

사방에 들끓는 사람들이, 소식들이 그것을 증명한다.

그러니 우리는 다가올 변화와 파멸을 지켜보면서 

관음하는 방관자들의 심정으로 미래를 준비하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