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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칙괴담] "전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나를 위한 수칙서"앱에서 작성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09.07 13:51:47
조회 15789 추천 255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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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석자에 목이 멥니다.
국가의 부름을 받아 전장으로 가는 것은 사내로서 당연한 일이라고, 필히 무탈하리라 어머니께 약속드렸지만, 사실 너무나도 두렵습니다.

밤마다 포탄이 사람을 조각내고 죽여갑니다.
언제 하늘에서 폭격이 떨어질지 몰라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운 것도 이젠 예삿일입니다.

쉬어도 쉬는 것이 아닙니다.
팔 다리가 잘린 채 썩어가는 절단부를 부여잡고 격통에 신음하는 이들. 수류탄 파편이 눈에 박혀 맹인이 된 사람. 공포에 떨다 꽉 문 어금니가 부서진 그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제 입안으로 총구를 집어넣어 안식을 얻습니다.

더욱 두려운 것은 나 역시 그네들이 부러워질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살아서 돌아갈 수 있으련지 모르겠습니다.
어머니, 저는 포기하지 않으렵니다. 전쟁이 끝나고 양손에 가득 선물 보따리 짊어진 채 고향 집에서 어머니 당신품에 안기기 전까지 어떻게든 살아남고자 합니다.

하여, 저를 위한 수칙서를 작성해 봅니다.
정말 그런 상황을 상정하고 싶진 않지만, 만약 제가 죽거든 이 수칙서를 유서로 대체하겠습니다.

누군가 이 수첩을 발견하면, 내 고향 집.
- XX 읍 XX 면 XX 리 4XX으로 보내주십시오.

​어머니, 참 많이 보고픕니다. ​

* * *


1. 아무래도 적은 빨갱이들뿐만이 아닌 것 같습니다.

- 무능한 상관과 혹독한 추위, 엄습하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언제고 적과 함께 몰려옵니다. 오늘 엄지발가락 하나가 검게 변하여 결국 절단하고 말았습니다.

때문에 겨울엔 틈틈이 젖은 양말을 말려야 합니다.
고작 발가락 하나가 없다고 해서 이곳은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죽기 싫다면 욱신거리는 환상통을 꾹 참고선 전진하라고 하더랍디다.

어머니, 너무 춥습니다.
따스한 당신 품에 안긴다면 세상에 부러울 것이 하나 없을 텐데.



2. 이곳에선 어린아이가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 추위가 사무치는 밤이면, 너도 나도 어린애가 됩니다.
마누라가 참 곱다던 스물아홉 박 씨 형도, 생이별하고 온 연인이 걱정된다는 동갑내기 임 군도, 전쟁 끝나면 가수로 성공하겠다며 노래를 흥얼거리던 열아홉 애송이 찬이도.

이젠 밤마다 엄니를 찾으며 살려달라 울부짖습니다.

어머니 나도 그렇습니다.
이건 어떻게 해보려야 달리 방도가 없습니다.
무섭습니다. 이곳에서 죽으면 시체도 남지 않습니다. 전염병을 막는다며 나무토막처럼 한데 모아 태워버립니다.

어머니, 나 죽기 싫습니다.
아직 하고픈 일이 태산같이 있습니다. 고작 스물둘입니다. 여기서 재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제발 저 좀 여기서 꺼내주세요 어머니….



3. 내 목표는 언제나 생존뿐임을 유념해야 합니다.

- 여기서 수년을 있으니 깨달았습니다.
국가나 이념, 애국심, 충성심, 군인 정신. 다 소용없습니다. 여긴 그저 전쟁터입니다. 하루에도 손발가락 다 합해도 못 셀 만큼 많은 청춘이 죽습니다.

그깟 무공훈장이 뭐 그리 대수랍니까.

그 훈장 하나가 목숨을 살려주진 않습니다.
어머니, 나는 매일 다짐합니다. 이상한 목표에 사로잡혀서는 안된다고. 내 최우선 목표는 살아서 집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라고.

여기서 공을 세운다고 누가 알아줍니까.
난 싫습니다. 그런 얄팍한 공훈보다 어머니, 당신을 다시 보는 것이 제게 있어 최고의 포상입니다.



4. 죄책감을 잊어야 합니다.

- 이젠 죽인 인민군 수를 셀 수도 없습니다.
오늘도 노획을 위해 적군 시체를 뒤져봅니다. 문득 흙에 파묻힌 시체를 들어 올립니다. 얼굴이 눈에 들어옵니다. 열댓 살 먹은 꼬맹이가 거기에 있습니다.

머리에 총알구멍 뚫려서는 두 눈 시퍼렇게 뜬 채 어린놈이 그렇게 죽어있습니다.

숨을 쉴 수가 없었습니다.
어머니, 이제 내가 선(善)이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빨갱이를 죽인 건지, 아무것도 모른 채 총 한 자루 들고 끌려온 어린아이를 죽인 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어쩌면 여기서 나는 사람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아니, 오히려 그편이 더 편합니다. 짐승이라면 가슴을 찢는 듯한 이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도 될 테니까요.

하지만 역시 전 인간인가 봅니다.
그래서 억지로 참습니다. 억누르지 않으면 버틸 수가 없으니까. 이 감각은 아마 평생 지워지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5. 함정을 늘 주의하고 살펴야 합니다.

- 오늘 왜소한 강 일병이 진열을 뛰쳐나갔습니다.
형님, 형님이라고 울부짖으면서 뒤도 안 보고 가는데, 사람 눈이 그리 돌아갈 수 있는지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당장 멈추라는 분대장 말까지 무시하면서 가길래, 뭐가 있나 봤더니 저 멀리 소나무에 시체 하나가 매달려있습니다.

인민군에게 사로잡혀 끌려갔던 강 일병의 형이었습니다.

형님 여기서 왜 이러고 있느냐고, 빨리 내려오시라고 강 일병이 제 형을 끌어내리는 찰나에 부비트랩이 터졌습니다. 형과 아우가 나란히 산산조각 나 죽었습니다.

한순간에 귀한 아들내미 둘을 잃은 노모는 무슨 죄랍니까?

어머니, 전 꼭 무사히 돌아가겠습니다.



6. 전장에서 이유 없는 평화는 없는 것 같습니다.

- 며칠간 밤낮없이 치열하게 교전해오던 적군이 움직임을 멈추었습니다. 무능한 지휘관은 적군 보급에 차질이 생긴 것이라며 우리에게 휴식을 취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오랜만에 휴식에 다들 신이 났습니다.

모닥불 앞에 앉아 서로 이야기도 주고받고, 노래도 부르며 오래간만에 피로가 조금 풀리려던 찰나. 환하게 웃던 박 이병의 머리에 총알이 관통했습니다.

기습이었습니다.
방금까지 노래를 부르던 전우의 몸이 수류탄에 터지고, 자기는 서울대학교 가서 홀어머니 호강시켜 주겠다던 학도병 혁수도 몸에 수십 발 총상 맞고 피 흘리며 죽었습니다.

정말 죽고 싶지 않았습니다.
나보고 형 형 거리던 의동생 놈이 총 맞고 엎어져, 살려달라고 하는 걸 봤는데도 그냥 도망쳤습니다. 뒤에서 총성이 울립니다. 의동생 놈이 죽은 건지 다른 이가 죽은 건지 모릅니다.

살기 위해 무작정 후퇴할 뿐입니다.



7. 제정신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 나 아직 살아있습니다.
죽지 못해 사는 게 아니라고, 항상 명심해야 합니다.
이젠 내 옆에 아무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전쟁 끝나면 밥 한 끼 사준다던 형님도, 여자 좀 소개해달라던 철없는 동생 놈도.

아무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내 뒤에는 가족들이 잠들고 있는 땅이 있습니다.
버텨야 합니다. 곧 전쟁이 끝난다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이제 조금만 더 있으면 어머니를 볼 수 있습니다.

돌아가면 어머니 품에서 목놓아 울고 싶습니다.

엄니 아들 살아돌아왔다고, 나 무척이나 힘들었다고.

어머니,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8. 어머니.

- 보고 싶습니다.

(이후 내용 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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