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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리탄] 고해성사

우동게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08.24 06:15:32
조회 13496 추천 309 댓글 22
														

죄를 지은 신도가 ‘고해소’라는 밀폐된 공간에서 신부에게 죄를 고백하고, 다시 죄를 짓지 않겠다고 맹세하면, 신부는 그 죄를 용서받을 방법을 알려주고, 신에게 용서를 구하는 행위.


철저히 비밀리에 이뤄지는 의식으로, 신부는 신도의 얼굴을 볼 수 없고, 외부에 절대 알려서는 안 되는 ‘비밀 유지 의무’가 있다.


하지만 그 의무 때문에 나를 미치게 하는 일이 생겼다.


“하느님의 자비를 굳게 믿으며 그동안 지은 죄를 사실대로 고백하십시오.”

“고해한 지 하루가 지났는데, 또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또 당신입니까.”


누군지 알 수는 없어도, 목소리는 기억하게 된다. 요 며칠 사이 계속해서 찾아오는 남자다. 당연히 나도 사람인지라 탄식이 나올 수밖에 없다. 


“죄송합니다. 신부님.”

“언제나 말씀드리듯이 계속 그러시면,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는 게 아닙니다.”

“이번엔 정말로 사람을 안 죽이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신부님의 말씀대로 출입 금지 표지판을 달았는데도, 제 집에 들어오는 바람에 어쩔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저 살인자의 집에 왜 자꾸 들어가는지 모르겠지만, 남자는 무단침입에 대한 정당방위를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살인을 계속한다면 정당방위로 보기 어렵다.


“말로 타일러 쫓아낼 수는 없었습니까?”

“죄송합니다. 신부님. 사람들은 제가 말을 걸면 미쳐 날뛰더군요. 사실 신부님이 저와 대화를 하시는 게 신기할 정도입니다.”


웬만해선 신도의 죄를 기억 안 하려고 하지만, 저자는 ‘나를 보게 된 자는 죽게 된다.’라고 전에 고백했었지. 그렇다면 내가 고백하는 자의 얼굴을 볼 수 없어서 괜찮은 건가?


“살인 충동을 억누를 수 없다면 경찰의 도움을 받으시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그들은 저에게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어째서죠?”

“그들도 인간이라서입니다.”

“그대는 인간이 아닙니까?”

“사실대로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고해성사에 장난은 허용하지 않는다. 오로지 진실만을 말해야 하는 곳. 나는 이 남자의 말을 진실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인간이 아니면 뭐일까?


“그럼, 당신은 누구입니까?”

“궁금하시다면 고해성사실에서 나와, 제가 누군지 보시겠습니까? 신부님?”

“아뇨. 고해성사할 때는 신도의 얼굴을 보지 않습니다.”


보고 싶은 충동이 없는 건 아니었으나, 이 문을 열면 안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거절했다. 하지만 신도는 기뻐 보였다.


“역시, 신부님은 그럴 줄 알았습니다.”

“그럴 줄 알았다? 만약 제가 당신이 누군지 확인하려 했다면?”

“그럼 실망했을 겁니다.”

“저에게?”

“신부님이 유일하게 믿을만한 인간이라 믿었던 저 자신에게.”


결국 도돌이표다. 돌려보낼 수밖에 없다. 신부는 범죄자에게 권유할 뿐, 직접적인 행동은 할 수 없다. 그렇다고 사죄경을 주고 싶지도 않다.


“이만 돌아가시지요. 살인을 멈추기 전에는 사죄경을 외울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저에게 다시 한번 지혜를 주십시오. 저도 조용히 살고 싶고, 죽이고 싶지 않습니다. 출입 금지 표지판을 무시하고 건물에 들어오는 자들을 죽이지 않을 방법이 있겠습니까?”


이런 자에게 무슨 조언을 할 수 있는가? 아니, 이 자와 이야기하면 한가지 해답이 보인다.


“만약에 그들이 당신을 보지 않고, 당신의 신경을 곤두서게 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무사히 나갈 수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신부님.”

“그렇다면, 가이드북을 만드는 건 어떻습니까?”

“가이드북? 제 집은 관광지가 아닙니다.”


그는 화가 난 목소리로 툴툴거렸다. 


“달리 말하면 규칙서겠지요. 이 집에서 무엇을 하지 말고 이대로 행동하면 살아서 나갈 수 있다. 그런 규칙서를 만들어서 정문에 배치하는 겁니다. 그럼, 그들도 조심하지 않겠습니까?”

“좋은 생각입니다! 역시 신부님은 똑똑하시군요!”

“무사히 해결하시길 바랍니다.”


며칠 뒤, 나는 이 살인범을 또 고해성사실에서 만났다.


“신부님. 신부님의 말씀대로 하니, 제가 죽이는 사람의 수가 획기적으로 줄었습니다.”

“다행이군요.”


다행?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게 맞나? 죽이는 사람이 줄었다고 안심한다고? 나도 어떻게 돼가는 건가?


“이제 살인을 완전히 멈춘다면 당신에게 사죄경을 드리겠습니다.”

“저도 그러고 싶지만, 제 집에 찾아온 인간들을 보면 분노를 가라앉힐 수가 없어서 어쩔 수 없네요.”


남자는 웃기 시작했다. 전에는 우울했는데 지금은 쾌활하기도 했다. 재미있나? 조금 화가 났다.


“이제 가십시오. 당신에게 더할 말이 없습니다.”

“그래야겠네요. 신부님. 만약에 제 집에 찾아오게 될 경우….”

“그럴 일은 없습니다.”

“그거야 모르는 일이죠. 제 집에 들어온 인간 중에 이곳에 왜 왔는지, 왜 여기에 있는지 모르는 인간들도 있었거든요.”


한숨을 나왔다. 내가 저 인간의 집을 찾아간다고? 신에게 맹세코 사양이다.


“어쨌든, 제 집에 방문하신다면, 귀하의 초대에 응하여 이 자리에 섰습니다. 라고 말씀해 주세요. 저를 도와준 당신만큼은 무사히 나가게 해주고 싶으니까요.”


고해성사실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 저 남자를 만날 일은 없기를.


며칠이 지났다.


여전히 그 남자는 나타나지 않는다. 문뜩 그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고민을 해 봤자 알 수 없지. 다른 고해성사처럼 빠르게 잊는 게 좋을 거다.


퇴근 후 차를 타고 집으로 가는 길.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처음 보는 저택의 로비에 서 있었다.


뭐지? 내가 왜? 차는 어디 가고? 


내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핸드폰은 통화권을 이탈 상태다.


주변을 살펴보니, 취향이 참 고풍스럽다고 느껴질 정도로 고급스럽지만, 사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불들이 전부 꺼져 있어, 을씨년스러웠다.


“누구 안 계십니까?”


주인이 있을까 싶어서 부르자, 위층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고함이 가까운 소리. 좋은 반응은 아니다.


“저기….”


그때 내 눈에 들어온 건 테이블 위에 올려진 수첩이었다. 수첩에는 [저택에서 살아서 돌아갈 수 있는 규칙] 이라고 적혀 있었다.


잠깐만.


전에 했던 고해성사가 떠올랐다. 말도 안 돼. 여기가 설마 그 남자의 집인가? 내가 진짜로 그의 집에 왔다고?


나는 수첩을 열었다. 


첫 번째 수칙. 절대로 큰 소리를 내지 말 것.


이럴수가.


우당탕! 소리와 함께 다가오는 소리가 점점 커졌다. 뒤로 돌아 문을 열고 탈출하려고 했으나, 문이 밖에서 잠근 것처럼 열리지 않는다. 이제 어떻게 하지?


고해성사…마지막에 남자가 했던 말. 과연 그게 소용이 있나 모르겠지만 하는 수밖에 없다.


“귀하의 초대에 응하여 이 자리에 섰습니다.”


그 순간, 고함과 함께 달려오는 소리가 멈췄다. 잠시 후, 문 뒤에서 익숙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신부님! 오셨군요! 방금 그 말 조금이라도 늦게 하셨다면, 또 다른 무단 침입자인 줄 알고 신부님을 죽일 뻔했네요.”


전보다 친근한 말투였지만, 날 죽일 뻔 했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남자의 말에 온몸에 식은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식사 아직 안 하셨죠? 마침 식사를 준비 중이었는데, 어서 2층으로 올라오시죠.”


문이 저절로 열렸다. 안에는 아무도 없는 암흑밖에 없어 저기에 들어갔다가는 다시는 나오지 못할 것만 같았다.


“신부님. 오늘 운이 좋으시네요. 오늘 신선한 고기들을 잔뜩 구했거든요. 어서요. 올라오세요. 식당은 2층이랍니다.”


올라가지 않으면 분명 나쁜 일이 일어나겠지. 


“아, 맞다. 신부님이니까 식사 예절은 알고 계시죠? 너무 당연한 걸 물어봤을까요?”


나는 수첩을 빠르게 넘겼다. 절망적이게도 식사 예절에 관련된 건 없었다.


“신부님? 왜 안 올라오세요? 저 지금 올라오라고 세 번째 말하고 있는데요.”


신이시여. 저를 구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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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ㅇㅇ(106.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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