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과 겨울에는 드라마, 나는 달린다가 생각난다

"나 이제 평범한 환자로 살거야

그러면 아마 병원하고 집만 시계추처럼 왕복 하며 그렇게 살겠지?

갈대밭 보고 겨울 바다도 보고 그 풍경 눈 속에 담고 환자생활 견뎌볼려구"

여주는 마지막 부탁이라 말하며, 상식이와 처음이자 마지막인 여행을 떠나

두 사람 다 생의 특정 구간에서 숨가쁜 시기를 지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는데

바다도 보고 갈대도 보며 제대로 된 숨을 내쉬고 있는 모습을 보니까

잠시나마 직면하고 있던 무거운 상황에서 벗어난것 같아서 인상 깊었던 장면이야

여주는 바닷가에서 그동안 말하지 못하고 꾹 눌러 두고 있었던 어린시절 기억을 상식이에게 털어놓고 홀가분해져

상식이가 "이런 바다 보니까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가 그냥 막 흘러나오져?" 라고 묻는데

여주는 "아니, 너 니까, 너니까 속마음을 보이네, 처음이야" 라고 대답해

여주의 대답은 상식이를 그만큼 신뢰하고 있다는게 느껴졌어

이 장면이 더 기억에 남는 이유는 바닷가에서 주고 받는 두 사람의 대화가 물흐르듯 편하게 느껴져서 이기도 해

"여주씨는 몸이 아픈사람이고 난 마음이 삐딱한 사람이고 여행와서 서로 위안 받은것처럼 돌아가서도 그렇게 지내요"

그 동안의 상식이는 불안정하고 껄렁했고, 그렇게 보여지던 건달이었는데

나직한 톤으로 여주와 주고 받는 말에서 평범한 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여주가 투석없이 견딜 수 있었던 시간은 48시간 이었는데 더 버티지 못하고 쓰러져서 급하게 서울로 올라가게 돼

올라와선 병실을 지키고 있던 여주 어머니께 들켜서 맞고

말도 없이 환자를 데리고 나간 잘못이 크니까

변명도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이고 원망을 듣는데

"다시는 여주앞에 나타나지 말아달라" 는 여주 어머니의 말에 충격을 받고, 상식이는 머리속이 복잡해진 것 같아

쓰러진 여주 걱정에, 다시는 못 보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에, 아픈사람을 괜히 데리고 나가서 이꼴로 나타나버린 죄책감으로

갈대밭 여행은 끝이나

희한하게도 사고뭉치 캐릭터인 상식이를 떠올리면 실없는 웃음을 짓게 되는데

그 시절 스물두살을 연기한 스물다섯의 에릭 눈빛이 맑고 투명해서

이 드라마는 팬인 나에겐 소중하다